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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단상

  • 등록일
    2006/02/25 01:04
  • 수정일
    2006/02/25 01:04

한참을 혼자서 또 툴툴거리다가, 뒤에다 무슨 말을 덧붙일까 망설이다가 그냥 한 문장만 짧게, 마침표도 여러개로 질질 끌지 않고 근엄하게 보이려고, 이렇게 보냈다.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핸드폰을 닫아 한쪽으로 휙 던져두고 나서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러다가 문득 피식 웃음이 났다. 요즘 핸드폰은 글씨체가 귀엽게 보이는 꼬부랑 글씨체라서, 꾸불꾸불한 글씨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라고 화면에 뜰게 틀림없었다. 훗.

 

어젠 생각지도 않은 문상을 갔더랬다. 사실 안면정도 있는 후배 부친상이었는데, 친구가 가자길래 갔다. 사실은 그 친구가 더 보고 싶었던 탓이다. 생각지도 않게 부의금 2만원을 모아서 내고, 부대에서 갑자기 연락받고 나와 상주역할을 하고 있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후배를 보면서 옛날 일을 떠올렸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살짜기 설명해 주면서 관심을 끌어 보려고 하면,

 

죄송한데요, 제가 장이 안 좋은데 진지한 얘기만 들으면 배가 아파서...

 

그리고 잊고 있던 후배녀석들도 문득 생각이 났다.

 

형, 죄송하지만 이제 노동자들 얘기는 그만듣고 싶어요...

 

매년 한 번 씩은 들었던 것 같다. 문상가서 만난 후배들도 한 때 함께하고자 무던히 애를 쓰던 녀석들. 이제는 그냥 가끔씩 뭐하고 사나 안부정도 묻는 택이지. 집으로 가는 길은 온통 찝찝한 기분이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매듭을 어떻게 풀까 생각하다가, 뭔가 갈피를 잡았다는 생각에 결연한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가, 갑작스레 편지 한 통을 받고 황당하면서도 한없이 고요해지는 기분 속에 있다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 햇살 속에 허탈함에 잠기다가 이제는 찝찝함까지. 하루에 너무 많은 감정 속에 살았다. 안그래도 몸상태가 안 좋은데. 그래서인지 술 한 잔 하자는 동지들의 제안에 망설임없이 오케이했나보다. 소주는 죽어도 못 먹겠던데, 맥주는 잘 넘어가더만.

 

5시간 동안, 이미 흠뻑 술에 젖어버린 동지의 주사를 받아주려 내 몸을 장난감화시켰다. 동지가 악기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북이 되어 주기도 하고. 챙겨주는 선배들도 하나없고 너무 속상하다는 절규(이건 단순 어리광이 아니라 꽤 신빙성 있는 얘기다)를 들으면서 그래 내가 안 그럴려고 여기까지 왔잖냐 속으로 갈궈주기도 하고. 술에 취해서 죄책감이 운동의 동력이 되어선 안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다시 그 시간들로부터 십수 시간이 지났다. 2월은 짧기도 짧고 빨리도 흘러간다. 두통이라고 보기엔 약한데 뭔가 상당히 기분나쁘게 아프고, 기침은 갑자기 심해지고 잠은 오질 않는다. 아직 준비는 덜 된 것 같은데 앞으로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니 문득 두렵다. 잘 할 수 있을지. 뭐, 어쩌겠냐. 젠장. 빌어먹을. 썩을... 욕구불만만 쌓여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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