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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0/22
    관습에 따라라-?
    나은
  2. 2004/10/15
    싸우는 수밖에.
    나은
  3. 2004/10/15
    엉덩이가 차가웠다.
    나은
  4. 2004/10/14
    할 게 참 많다.
    나은
  5. 2004/10/11
    반성폭력 예방교육이 끝나고,
    나은
  6. 2004/10/10
    다시쓰는 한국 현대시
    나은
  7. 2004/10/10
    동네에서 놀기?
    나은
  8. 2004/10/07
    데칼코마니인 집회 문화?(1)
    나은
  9. 2004/10/06
    [잡담] 미칠 듯이 빠른 확산 - 블로그.
    나은
  10. 2004/10/06
    노동자권력
    나은

[잡담] 미칠 듯이 빠른 확산 - 블로그.

  • 등록일
    2004/10/06 21:55
  • 수정일
    2004/10/06 21:55

노동자권력

  • 등록일
    2004/10/06 12:57
  • 수정일
    2004/10/06 12:57

* 이 글은 돕헤드님의 [모골이 송연해지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현실은 힘의 관계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어떤 투쟁이든지, 그렇다. 더 나아가 사회 자체를 바꾸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 권력투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물리적으로 탄압하는 자본가들의 국가권력에 맞서기 위해서 대안은 노동자권력일 따름이다.

 

그러나, 노동자권력의 의미를 자본가권력의 의미와 동일하게 이해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청와대의 주인이 노동자로 바뀐다고, 국회의사당의 다수를 노동자가 차지하고, 국정원장에 노동운동가 출신이 취임한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자권력은 아닌 것이다.

 

시청 앞에서 열린 보수층 집회를 보면서 나 역시 전율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동원된 대중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한다. (혹시 아니라면 지적해 주시길) 반면에, 우리의 운동은 다르다. 자발성과 해방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바탕이 된 운동만이 진정한 운동이다.

 

그래서 저들과 다르며, 달라야 한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특히나 조합주의의식과 가부장성을 넘어서 세계의 모든 억압받던 이들에게는 열려 있고, 지금까지 억압해 오던 자들에게는 날카로운, 그런 권력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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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 아인슈타인 그리고 레닌

  • 등록일
    2004/10/05 11:14
  • 수정일
    2004/10/05 11:14

http://blog.jinbo.net/onikawa/?pid=39

 

막상 읽고 나니 여러가지 질문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혁명을 하고자 한다면...

이라고 말을 꺼내려 했으나 막상 자신이 없어졌다.

혁명이냐? 개량이냐?를 물어 온다면 어쩌지?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를 동급 취급하는 것에 혹은 레닌주의가 스탈린주의의 맹아였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쓰고 싶은데 마냥 소심해지고 있다. 쩝.

 

그리고 무오류성은 나도 결코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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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誌), 후한말의 계급투쟁 (2)

  • 등록일
    2004/10/05 11:01
  • 수정일
    2004/10/05 11:01

http://blog.jinbo.net/tol/?pid=9

 

환관원인론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정말 마음에 든다.

거기에도 마초적인 음모가 있었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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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스크랩들

  • 등록일
    2004/10/05 10:59
  • 수정일
    2004/10/05 10:59
되도록 직접링크. 남을 위한이 아닌, 나를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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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생산의 압박...

  • 등록일
    2004/10/05 01:30
  • 수정일
    2004/10/05 01:30

처음엔 별 생각없이 블로그를 개설했다가, 매일같이 진보넷 블로그에 들어와 보면서 블로그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 지가 머리속에 자리잡았다. 개인적인 공간임과 더불어서 모두의 공간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것. 그게 바로 블로그의 묘미고 매력인 것 같다. 그 때문에 특히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이들에게는 자기의 실천과 생각을 퍼뜨리는데 얼마나 용이하겠는가. 요즘은 틈만 나면 주변 동지들에게 블로그 좀 만들어 보라고 권하고 다닌다.

 

한편, 매일 자가증식 블로거진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생명력있는 블로그는 필히 자가 생산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짤막한 감정의 나열, 혹은 퍼옴과 스크랩 위주로는 좀 곤란하다는 것이지. 특히 나에게는. 내가 온라인을 활용하는 스타일 자체가 어떤 시기에는 온라인 글쓰기에 굉장히 열중하지만 어떤 때는 그저 내버려두기도 하고, 이게 반복되는 형상이다. 그리고 사실 요즘이 글쓰기에 좀 소홀한 시점인 것 같다. 그래서 웬지 모르게 밀려오는 듯한 생산의 압박... 과거에 다음 까페도 만들어 봤고, 이른바 싸이질도 해 봤지만 모두 오래 가지 못하고 버려졌다. 블로그도 은근슬쩍 그렇게 된다면 참 끔찍하다.

 

내일부턴 맘 잡고 뭔가 좀 써 봐야겠다.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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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분업

  • 등록일
    2004/10/02 00:04
  • 수정일
    2004/10/02 00:04

선봉대의 구성과 가두투쟁

대자보와 플랜카드를 포함하는 선전작업

후배 챙기기

뒷풀이 자리 분위기 조성

과일 깎기

...

 

운동권 내에서 보이는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들에 대해 토론했다.

단숨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감해야 한다.

부여잡아야 한다.

진정, 해방을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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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 등록일
    2004/10/01 00:40
  • 수정일
    2004/10/01 00:40

* 이 글은 후지이님의 [오늘 난 자유롭게 책임을 선택한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가끔 학교에 가 보면 지나다가 후배들을 만나곤 한다.

반갑게 인사하고.

걔 중엔 같이 학생회를 하자고 열심히도 매달렸던 이도 있고,

집회에 나가자고 무던히 붙잡았던 이도 있고,

학회에서 세미나 한 번 해 보자고 열심히 침튀겼던 이도 있고.

 

때로는 5초 안에 손 흔들고 살짝 웃으며 "안녕" 한마디로,

때로는 "잘 지내냐"라는 한 마디를 덧붙이고,

때로는 "언제가 졸업이냐, 복학이냐, 휴학이냐, ..." 잡다한 것들을 약간 덧붙이고는 "다음에 보자"로 마무리 한다.

 

지나치면서 항상 던져보는 질문 하나.

과연 그/녀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그/녀들은 이렇게 지나친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쨌든 분명한 것은, 만약 내가 변한다면

분명 그/녀들은 확인하고야 말리라. '운동'이라는 길에는 전망이 없다는 것을.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한편으로, 추석 연휴 탓에 꽤 오래 만나지 못한 후배 동지들을 생각하며,

그 동지들에게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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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등록일
    2004/09/30 09:46
  • 수정일
    2004/09/30 09:46

시골에 다녀왔다.

연세90을 바라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버지 10남매 형제 중 몇과 숙모들이 그렇게 모였다.

명절 때마다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린 말싸움 한 판.

구순이 되어서도 끝까지 농사 짓겠다는 고집불통 할아버지와,

이제는 좀 편히 살자는 할머니의 하소연과,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그렇게 하듯

집에서 숙모들에게 똑같이 하는,

성질머리가 똑같은 아들들의 고함과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숙모들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오고가는 차안 라디오에서,

TV프로그램 속에서,

수십 번도 더 나왔던 그 말.

 

할아버지를 두고 한 숙모가 나지막히 했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남자들에게) 여자들의 일은 일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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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 등록일
    2004/09/25 11:47
  • 수정일
    2004/09/25 11:47

퍼온 글입니다.

예전 한국에서의 프로야구 선수노조 생각나더군요.

그때 강병규 참 멋있었는데..

 

http://blog.jinbo.net/sabotage/?pid=12

 

 

오래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빴습니다. 그리고 어제 큰 마음먹고 써 놓은 글이 업로드 과정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컴퓨터의 신뢰도(통계적 의미에서)가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했던 제 잘못이었습니다. 카피라도 하나 해 놓는건데.

 

오늘의 주제는 프로야구입니다.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은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제게 매우 중요한 관심의 대상입니다. 물론 학술적 차원의 관심입니다. 이들 세나라에서 최근에 공히 화제가 되는 뉴스의 소스가 프로야구입니다. 물론 컨텐츠는 모두 다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구상에서 프로야구 즉, 사업으로서의 야구, 직업으로서의 야구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이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미국과 일본의 경우 프로야구의 경제효과, 즉 해당 산업의 경제적 부가가치 또한 매우 클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그에 비하면 좀 규모가 작고 장사도 잘 안되는 분위기죠.

 

최근 미국 프로야구계의 스포트라이티는 단연 스즈키 이치로 선수입니다. 2000년 11월, 일본의 유명한 게임기 제조업체 닌텐도(게임보이 제조업체)가 대주주로 있는 시애틀 마리너즈에 입단했습니다. 물론 일본에(오릭스) 있을 때부터 타격에 관련한 이러저러한 기록들을 세운터라 약간의 기대는 있었죠. 헌데 이친구 데뷔 첫해에 타율 3할 5푼으로 사상 두번째 메이저리그 신인왕과 정규시즌 엠브이피를 동시에 석권합니다. 미국과 일본의 프로야구 신자들을 놀라게 했죠.

아 그런데 이 선수 올해 미국 프로야구사에 또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무려 80여년을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한시즌 최다안타 기록입니다. 최근 두 경기에서만 9개의 안타를 몰아쳐 1920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즈의 조지 시슬러가 세운 257개의 안타에 불과 10개차로 뒤진 247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즌 잔여 경기가 10경기니 한 경기당 1개씩 치면 타이가 되고 한 경기에서만 두개 이상을 치면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셈입니다.   

만일 이치로가 미국 프로야구계의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고 앵글로 색슨이었다면 지금쯤 전국 맥도날드 샾의 지붕위에 예의 배트를 곳추세워 투수를 노려보는 그의 사진이 풍선 따위에 매달려 이치버거나 빅이치 등을 광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대단한 선수입니다. 

짧은 스윙 동안에 배트의 궤적을 3번이나 바꿀 수 있는 타구능력과 빠른발은 그의 천재성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일본인 특유의 성실함과 승부근성이 재능의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습니다. 이 선수 1980년 88올림픽 개최지를 둘러싸고 스위스 바덴바덴에서 서울과 경쟁했던 나고야 출신입니다. 도요타 자동차와 함께 나고야가 만들어 낸 세계적 상품입니다.

 

다음은 한국의 프로야구 입니다. 영어에서 스캔들이라는 말로 정의하는 일련의 사태나 현상을 일본에서는 불상사(후쇼우지)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불상사라는 말은 우리에게도 익숙하죠? 아무튼 이 불상사 범주에 들어갈만한 큰 일이 한국의 프로야구계를 강타했습니다. 무려 50여명의 선수들이 자신들의 신체를 조작해 병역을 면제받은 사건이 터진겁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국민개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지구상 몇 안되는 나라이고 그 군역의 이행 여부는 법률적 의무를 넘어서는 윤리와 정서 차원의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유력했던 대통령 후보가 두번씩이나 아들 군대문제 때문에 낙마를 했으니 관련한 분위기를 짐작할만 하죠. [신성한 병역]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시민사회 일반의 생활세계와 군대사회 생활의 사회적 거리를 짐작할 수 있으며 그 거리를 단절 고립 부자유 등이 메우고 있는 것입니다. 술먹 먹었다하면 예비군들 입에서 나오는 군대 이야기의 배후에 그러한 단절과 고립의 트라우마가 내재 한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단절과 고립이 가져올 경제적 손실, 신체의 조작을 통한 역의 면제와 경제활동의 지속, 들킬 경우에 지불해야 할 비용 등이 하나의 함수를 만든 셈인데 그 결과는 네가티브가 되었습니다. 병역관련 불상사만 뉴스로 되면 금새 비등하는 우리네 정서 또한 당자자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죠. 관련 혐의자 50여명의 경기 출장을 정지시킨 프로야구 위원회의 결정 또한 사회적 압력에 기인한 바 큽니다. 아무튼 연예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꽤 큰 규모가 될 이번 사태를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해결하는지 두고 볼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프로야구입니다. 바로 어제 잠정적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만 최근 일본 사회는 개시 70년만에 처음 일어났던 선수노동조합(일본프로야구 선수회)의 파업으로 한차례 대사를 치루었습니다.

첫번째, 최근 경영란에 빠진 오사카의 긴테츠 버팔로가 인근의 오릭스와 합병을 발표했습니다. 두 사업체가 하나로 합치는 구조조정(리스토라)을 할 경우 불보듯 뻔한 것은 감원입니다. 리던던스를 정리해고 하는거죠. 게다가 선수들간 생존을 둘러싼 경쟁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긴장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파업의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두번째, 원래 일본 프로야구는 총 12개 팀이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에 각 6팀씩 나뉘어져 한 시즌 경기를 한 후 해당리그 1위팀들끼리 제팬시리즈를 통해 챔피언을 가리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한 팀이 줄어들 경우 밸런스가 깨져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생기게 됩니다. 단일리그로 하는 옵션 그리고 인터리그 경기의 수를 늘리는 방안등이 다양하게 논의되었으나 어느 경우에도 야구노동자들 노동강도의 상승은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세번째, 프로야구 사용자 집단은 독점적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신규업체의 시장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동안 일본 프로야구의 사용자 조직은 몇몇의 스타트업 컴퍼니(벤쳐기업)들의 프로야구 시장 참여를 여러가지 방식과 논리로 거부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그 폐쇄적 보수성이 드러났습니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긴테츠와 오릭스의 합병 발표후 라이브도아라는 신흥 인터넷 기업과 빗셀 고베(몇몇의 한국선수들이 속해있던 구단)라는 프로축구팀을 운영하는 라쿠텐이라는 인터넷 쇼핑몰 업체가 프로야구 사업에의 내년 시즌 신규참입을 희망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선수 노동조합에게는 샘물과 같은 뉴스였을테지요. 헌대, 사용자조직인 엔피비는 이러한 신청을 한 방에 거절했습니다. 내년 신참은 어렵다구요. 사용자 집단은 인터넷 벤쳐들을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동네 피씨방 수준의 사업체들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귀족들 노는 물에 들어 오는 거 못봐주겠다 이거죠. 어찌되었든 이러한 거부가 지난주말 선수회 파업의 직접원인이 되었습니다.

어제 장장 10여시간의 교섭끝에 두단주들이 내년 시즌 새로운 팀의 야구시장 참여를 허용하고 팀의 구성을 위해 지원한다는데 합의 함에 따라 사태가 일단은 마무리 된 상태입니다. 물론 여전히 여러가지 문제들은 남아있습니다. 다이에를 비롯한 몇 구단들의 재무상태가 계속 심각해 지고 있어 장기생존의 가능성이 매우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번 프로야구 노사간 분쟁은 노동조합의 판정승으로 끝났습니다.

 

이번 일본 프로야구 노사분쟁과정에서 흥미로운 논의가 있었습니다. 바로 프로야구 선수들의 직업적 지위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의 파업발표가 있고 나서 사용자단체는 곧바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 발표했습니다. 구단주들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들이며, 따라서 노동조합 조직, 교섭 그리고 단체행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합법적인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이 없는 상태에서 집단행동을 할 경우 사유재산의 침해 등에 따른 손해배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노동자에 대한 법률적 정의는 두가지 법에 의존하는데 하나가 노동기준법(우리의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입니다. 노동기준법은 타인에의해 고용되어 있는, 즉 피용자 일반을 노동자의 범주로 정의하며, 노동조합법은 임금 등의 보수를 받아 생활하는 임금생활자를 노동자로 정의합니다. 타인을 고용해 상품을 제조하거나 고용관계에 편입되지 않고 사업체를 자영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범주를 노동자로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 경우 프로야구 선수들 또한 명백히 노동자가 되는 거죠. 이번 일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노동자로서 사회적, 법률적 인정을 받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85년 도쿄 지방법원이 프로야구 선수회에 대한 자격심사를 통해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수회는 힘을 얻게 되었죠.

물론 단체교섭의 구조나 파트너 구성 등의 문제는 여전히 복잡합니다. 하지만 이번 프로야구계의 단체교섭은 기업별 노동조합 시스템을 근간으로 하고 산업별조직이나 연맹조직의 교섭권이 부재한 일본에서 예외적인 업종별 교섭이었다는 점에서 제게는 큰 흥미거리입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송편먹어본지 증말 오래되었습니다.

 

09/25/204, 권순원,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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