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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이어진 글들

12월 3일이 진짜 장애인의 날..

  • 등록일
    2009/04/21 03:36
  • 수정일
    2009/04/21 03:36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4804&section=sc5&section2=%C0%E5%BE%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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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신들의 정원으로 놀러오세요

  • 등록일
    2009/04/18 02:15
  • 수정일
    2009/04/18 02:15

<붉은 여신들의 정원으로 놀러오세요> 공연 관람. with SN.

"잘라라! 잘라라! 잘라라! 잘라라!"

고추를 마음껏 자르던 그 퍼포먼스가 기억에 또렷.

 

http://blog.naver.com/artspo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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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투성이 사전 아직도 쓰십니까

  • 등록일
    2009/04/03 21:46
  • 수정일
    2009/04/03 21:46

일주일에 한 번 듣는 강좌에서도 국어사전이 영 틀려먹었다는 소리 자주 듣는데,

영어사전도 마찬가지로구나~

 

오류투성이 사전 아직도 쓰십니까
영한사전은 오역에, 일본식 설명에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정영국 교수 부부가 오류가 거의 없는 영한사전을 펴냈다. 그 사전과 기존 영한사전을 비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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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가장 공감한 부분.

  • 등록일
    2009/03/25 03:15
  • 수정일
    2009/03/25 03:15

김연수 소설, <7번 국도>에서

 

...

그 모든 아버지들 때문이다.

초등학생이던 자신을 꾸중하시던 군인 아버지

그리고 공부하라고 닥달하던 선생님 아버지

왜 데모에 나오지 않느냐고 소리치던 선배 아버지

민주화를 이루었으니 이제 너는 낙원 그 이후를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정치인 아버지

너는 빌어먹을 놈이며 아무런 쓸 모가 없는 놈이며 낙오자이며 병신이며 등신이며 천번만번

죽어도 싼 놈이라며 끊임없이 우리를 닥달하고 우리에게 고함 지르던 그 모든 아버지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곳, 7번 국도에는 그 어떤 아버지도 없다.

그곳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길만이 있을 뿐이다.

...

이런 길 위에서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를 배신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곧 우리가 비난할 사람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누구를 비난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재현이 7번 국도에서 배운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7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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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총장의 언어성폭력

  • 등록일
    2009/02/25 23:57
  • 수정일
    2009/02/25 23:57
중앙대 총장 “토종이 감칠 맛” 여성 비하 논란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여성은 기분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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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가진 자의 논리’와 결탁할 것인가 헌재의 종부세 감세론과 한국의 여성운동

  • 등록일
    2009/02/20 10:54
  • 수정일
    2009/02/20 10:54
지난 해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종합부동산세가 사실상 무력하게 됐다. 당시 헌재는 종부세가 일부 위헌이라고 판단한 근거에 대해, ‘부부별산제로 나타나는 개인소유권을 저해한다’고 했다. 헌재의 결정은 개인소유권 중심으로 여성의 재산권을 지지하는 것이어서 여성주의 진영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이어진 종부세 논란 속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필자 이박혜경(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님은 ‘여성의 재산권’을 둘러싼 여성운동과 페미니즘 담론을 되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또 현재 한국사회에서 ‘젠더’정치와 ‘계급’정치가 맞물려 있는 정황을 살펴보고, 페미니즘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묻는다. –편집자 주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4736&section=sc1&section2=%B0%A1%C1%B7/%B0%FC%B0%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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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박00 성폭력과 신뢰파괴 사건에 대한 결정문

  • 등록일
    2007/02/28 16:46
  • 수정일
    2007/02/28 16:46
http://blog.jinbo.net/sol/?pid=84


[hrnet]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박00 성폭력과 신뢰파괴 사건에 대한 결정문
 

인권운동사랑방입니다.

 

유쾌하진 않지만, 중요한 소식 하나를 전하게 되었어요.

 

사랑방 자원활동가이자 평택 미군기지 반대운동에 참여해 왔던 박모 씨의 성폭력과 신뢰파괴 사건에 관해

공개 결정문을 발표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인내심을 갖고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었는데...

안타깝고도 분노스럽게도 가해자 박모 씨는 대책위와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평택 미군기지 반대 활동을 재개하고, 부채 상환 약속까지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사건을 외부에 공개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키고 해결 노력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로서 제명조치도 취하게 되었어요.

 

결정문 속에 저희의 고민이 담겨져 있습니다.

공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인권운동사랑방 드림

 

====================================================================================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박○○

성폭력과 신뢰파괴 사건에 대한 결정문



1. 사건의 인지와 추후 경과


1) 2006년 2월말 피해여성은 과거 연인사이였던 박○○이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뒤, 알고 지내던 인권운동사랑방 일부 활동가들에게 박○○이 가한 과거 성폭력 사건과 부채문제를 알려왔습니다. 그러나 당시 피해여성이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를 원치 않아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박○○은 개인 사정을 이유로 인권운동사랑방 내부 팀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지 않았고, 그러다 얼마 후 평택 미군기지 반대운동에 결합해 왔습니다.


2) 박○○이 피해여성이 원치 않는 접촉을 취하는 등 문제가 계속되자, 2006년 7월 말 인권운동사랑방 A와 B 활동가는 피해여성의 동의를 얻어 박○○에게 문제 해결을 비공식적으로 요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A와 B가 8월 4일 박○○을 만나 △피해여성에 대한 접근 금지 △부채 해결 △운동과 관련된 모든 활동의 즉시 중지 등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박○○은 A와 B의 요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으나, 헤어진 뒤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활동을 지속하였습니다.


3) 2006년 8월 10일 인권운동사랑방은 피해여성의 동의를 얻어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박○○ 성폭력 및 신뢰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를 구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박○○의 주요 가해행위가 자원활동을 시작하기 전의 일이지만 자원활동을 계속하는 동안에도 피해여성을 괴롭히는 행위가 지속되었고, 그러면서도 인권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운동의 가치에 정면 배치되는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대책위는 A와 B 활동가, 인권운동사랑방 성폭력반대위원회 위원 1인, 그리고 피해여성의 대리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4) 대책위는 박○○의 활동을 우선적으로 중단시키는 것이 피해여성의 인권 회복과 제2, 제3의 유사 피해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대책위의 존재 자체가 박○○을 자극하여 피해여성에게 추가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 대책위가 박○○에게 공식 대응하기보다 평택미군기지 반대운동 관련 단체 C에 ‘박○○이 운동을 지속해서는 안될 사정이 있으므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피해여성이 사건의 내용이나 신원 노출을 우려하여 C에 사건 내용을 자세히 설명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C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활동 중단 요구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답변했고, 대책위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5) 이후 박○○은 자신을 찾아온 대책위 위원 B에게 과거 A와 B 활동가와의 약속을 이행할 계획도 없고 피해여성과의 개인적 문제인 만큼 제3자가 나설 이유가 없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대책위는 11월 3일 박○○에게 대책위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알리고 대책위의 <서면요구서>를 전달하였습니다. 박○○은 처음에는 대책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다가 서면으로 답변하겠다고 돌아섰다가 다시 말을 바꾸어 서면 답변 요구를 거부하였습니다. 이에 대책위는 피해여성의 동의를 얻어 사건 공개를 결정하고 11월 27일 박○○에게 이 사실을 ‘최후 통보’하였습니다. 그러자 박○○은 대책위에 <서면답변서>를 보내며 대책위와의 면담에도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6) 12월 7일 대책위와의 만남에서 박○○은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며 △활동 중단 △일정한 해결과정을 거치기 전까지 활동 재개 금지 △부채 상환 △성폭력 가해자 교육프로그램 이수 등과 같은 대책위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7) 12월 15일 박○○은 하던 활동을 일단 중단하였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둘러대며 부채 상환 기일을 계속해서 미루어왔습니다. 그러다 2007년 2월 17일 박○○이 대책위와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평택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몰래 재개하였음을 목격하였습니다. 이에 대책위는 일방적인 합의 파기와 해결 약속 불이행에 경종을 울리고자 사건 공개와 요구사항을 공개적으로 제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 사건 개요


가해자 박○○와 피해여성은 2003년 2월경 알게 된 후 8월부터 연인관계로 발전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박○○의 신뢰 파괴 행위로 인해 수차례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였고, 2004년 중 피해여성과 헤어진 뒤부터 2006년 7월까지 피해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지속하였습니다. 피해자가 이사를 가고 연락을 끊은 뒤인 2005년 10월 경, 박○○은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을 시작하여 2006년 3월까지 활동을 계속했고, 이후에는 개인적 차원에서 평택운동에 참여해 왔습니다.


1) 무단 주택침입, 접근, 위협


피해여성은 신뢰를 파괴하는 박○○의 행위로 인해 수차례 헤어지자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면 박○○은 늦은 밤 피해여성이 혼자 사는 집을 찾아와 대문을 넘어 현관 앞에 기다리고 있거나 문을 열어달라며 현관문을 두드려 동네를 시끄럽게 만드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피해여성은 주위의 시선 때문에 결국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 없었고, 박○○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방문을 잠금 채 밤새 무서움에 떨거나 박○○을 돌려보내기 위해 달래는 일을 수시로 반복해야 했습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피해여성이 경찰에 신고하자 거친 욕을 내뱉고 돌아기도 했습니다. 피해성이 너무 힘들어 망치로 자기 집 물건을 깨며 죽겠다고 위협한 후에야 피해자의 집을 무단으로 찾아오는 일이 뜸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편지,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피해자의 “출근길을 지켜보았다”거나 “미안하다” 등의 내용을 간혹 알려 피해여성을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또 한 번은 피해여성의 집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출근하는 피해여성과의 만남을 시도하였고, 이 때 피해자는 핑계를 둘러대어 박○○을 따돌린 후 도망쳤습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피해여성은 결국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이사를 간 후에도 박○○은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피해여성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2006년 7월에는 심지어 피해여성의 직장까지 찾아가 몰래 피해여성의 퇴근하는 모습을 엿보기도 했고, 피해여성의 결혼 소식을 접하고 난 뒤에는 ‘나는 스토커가 아니야 ㅋㅋ’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피해여성을 섬뜩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2) 신뢰 파괴 행위와 부채 상환 불이행


피해여성이 박○○과 헤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금전적 부채 문제였습니다. 2004년 2월 경 박○○은 하던 공부를 계속하겠다며 피해여성으로부터 약 150만원을 빌려갔습니다. 하지만 피해여성이 확인한 결과 박○○은 학원에 등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피해여성의 명의를 무단 도용하여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요금을 납부하지 않거나 피해여성의 카드를 몰래 꺼내가 현금을 무단 인출하는 등의 문제가 계속 발생해 부채가 수백만 원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박○○은 계속 갚겠다는 이야기만 반복했을 뿐 부채 상환을 위한 성실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적반하장 격으로 자신이 학원비를 먼저 빌려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피해여성이 먼저 빌려준 것이기 때문에 갚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3. 사건에 대한 판단과 피해여성에 대한 공감


성폭력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 불균형으로 인해 비롯되는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일컫는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이러한 광의의 성폭력 개념에 비추어볼 때, 가해자 박○○이 피해여성과의 관계에서 3년 넘게 저질러온 행위는 성폭력이자 피해자와 운동에 대한 중대한 신뢰 파괴 행위라고 판단됩니다.


[스토킹에 의한 성폭력]

- 가해자 박○○은 자신의 잘못으로 피해여성과 연인관계가 끝난 후에도 공포스러운 상황을 조성하면서 피해여성의 의사에 반해 일방적인 접촉을 반복적으로 시도했습니다. 특히 혼자 사는 피해여성의 집 대문을 넘어 현관 앞에서 기다린다든지,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어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도록 만든 행위는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안녕을 위해하는 엄청난 공포와 고통을 가져다주는 폭력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망치를 들고 내 집 물건을 부수며 죽어버리겠다고 한 뒤에야 느닷없이 나타나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피해여성의 고백에서는 출퇴근길 내내 조마조마 걸음을 옮기고 박○○이 나타나면 밤새 공포에 떨어야 했던 피해여성의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또한 박○○은 일방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내 피해여성의 삶을 위축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같은 행위는 피해여성에게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강제로 떠올리게 만들고 삶의 안정성을 해치는 폭력입니다.


[부채문제와 성폭력과의 연관성]

- 박○○은 피해여성의 의사와 무관하게 부채를 발생시켰고, 피해여성이 박○○의 형편을 감안하여 빌려준 돈마저 여러 이유를 둘러대며 갚지 않았습니다. 특히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혼자 자취하는 피해여성의 집에 자꾸만 머무르려 하면서 피해여성으로 하여금 하숙비와 학원비를 빌려줄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은 여성의 특수성을 ‘이용’한 채무관계 발생이라고 봐야 합니다. 또 박○○의 반복적인 스토킹 행위는 피해여성에게 신체적, 심리적 공포를 느끼게끔 만들었고 이로 인해 피해여성이 돈을 돌려받는 것을 포기하고 연락을 끊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고려할 때, 박○○의 부채 관련 행위 역시 성폭력과의 연장선 속에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환경적 성폭력]

- 박○○은 이후 피해여성을 통해 알게 된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하였고, 여러 인권단체가 참여한 평택 미군기지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해 왔습니다. 피해여성이 가해자의 활동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도 평택 집회 때였고, 그 후 자신의 지인들과 박○○이 운동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피해여성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과거 박○○과의 관계가 지인들에게 알려질까 불쾌감과 위축감, 심지어 두려움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평택운동은 피해여성은 물론, 이 사건을 알고 있는 피해여성의 지인들과 여성활동가들에게 적대적인 공간으로 다가가기에 이르렀습니다. 가해자인 박○○은 평택운동을 통해 활발하게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간 반면, 피해여성은 오히려 운동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이 같은 조건은 피해여성을 더더욱 위축시킨 환경적 성폭력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4. 징계 결정과 그 이유


1) 사건 공개


대책위와 피해여성은 그 동안 인내심과 신뢰를 갖고 사건 해결 노력을 촉구하고 박○○의 약속 이행을 기다리고 지원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박○○은 이러한 기대를 배반하고 부채 상환 일정을 연거푸 연기하는 것은 물론 몰래 활동을 재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같은 행위가 자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행위가 피해여성에게 준 고통이 얼마나 큰지 전혀 공감하지 못했으며, 이 사건의 해결이 운동의 전제이자 또 하나의 중요한 운동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됩니다. 대책위는 가해자 박○○의 안이한 인식과 회피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으며, 박○○의 잘못을 이번에도 용인할 경우 제2, 제3의 피해자가 거듭 발생할 수 있음을 감안하여 이 사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사건의 공개를 통해 가해자는 물론 운동사회 전반이 성폭력 감수성을 높이고 여성인권 보장의 중요성을 성찰하고 환기하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합니다.


2)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자격 박탈


대책위는 박○○이 피해여성의 고통을 야기하고 대책위와의 신뢰를 일방적으로 저버린 행위에 분노하며, 그 행위의 심각성에 비추어 인권운동사랑방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더 이상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인권운동사랑방 ‘성 차별금지 및 성 폭력사건 해결을 위한 내규’(2006년 3월 11일 개정, 아래 내규)에 따라 박○○의 자원활동가로서의 자격을 박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5. 사건 해결을 위한 요구


사건 공개나 제명 조치는 결코 사건의 ‘해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건의 공표와 제명이라는 징계 조치는 피해여성의 인권 회복을 위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다할 것을 다시금 재촉하기 위함입니다. 가해자 박○○은 지난해 12월 대책위와의 만남과 서면답변서를 통해 약속했던 바를 이행해야 할 책임을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하나, 즉시 운동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피해여성의 고통을 치유하고 운동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우선해야 합니다.


둘, 더 이상 변명만 앞세우지 말고 부채의 일부라도 즉시 상환하십시오. 대책위는 이미 2개월이 넘게 사정을 감안해 기다려 주었지만, 지금까지 단 한 푼의 부채도 상환하지 않은 것은 의지가 없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셋, 성폭력 가해자 교육을 위탁 교육기관과의 날짜 협의를 거쳐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시작해야 합니다. 대책위와의 일방적 약속 파괴는 그만큼 가해자에게 교육이 절실하게 요청됨을 확인시켜 줍니다. 교육 이수는 피해여성이 아니라 박○○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과정인 만큼 교육비용은 응당 본인 스스로 마련해야 합니다.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또한 사건 공개를 이유로 대책위나 피해여성에게 불이익을 초래하는 행위를 추가로 자행할 경우에는 법적 조치 등을 강구할 수 있음을 함께 경고합니다.



2007. 2. 27

박○○ 성폭력 사건과 신뢰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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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글

  • 등록일
    2007/02/22 23:58
  • 수정일
    2007/02/22 23:58

설특집 술과 얘기 : 남자 성토대회로 바뀌다

  • 등록일
    2007/02/16 17:46
  • 수정일
    2007/02/16 17:46

http://metalunion.nodong.org/new/maynews/readview.php?table=newspaper&item=1&no=2967

 

금속노조 신문에서 퍼온 겁니다. 떡하니 블로거진에 걸려 있어서 혹시 오해하실까봐^^

물론 아래 일부 따 놓은 내용은 제가 주의깊게 본 부분이었지요.


갑자기 남자 성토대회로 바뀌다

민세원 저도 결혼했는데 애기는 없어요. 애기가 있으면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투쟁하면서 여성학에 대해 관심이 생기더라구요. 집안일에 대해 남자는 도와주고, 여자가 다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윤종희 남자들은 도와준다며 선심 쓰듯이 얘기하죠. 같이 직장생활하면 가정이 공동의 생활공간이고 공동분담해야 하는데. 사회의 문제인 것 같아요.

민세원 노조 하면서 문제의식을 많이 느꼈어요. 여자들은 밖에서 일하다 집에 오면 또 노가다를 해야죠. 꼭 돈을 버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회활동을 하면 서로 분담해서 해야 하는데.

윤종희 우리가 직장에서 사회에서 불합리한 것과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 내에서도 끊임없이 싸워서 가정의 민주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하고 있는 사람이 권리를 찾는 거죠.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겠죠.

이세규 결혼 전에는 아내를 많이 도와줬는데 투쟁하면서 줄어들었어요. 새벽에 들어가니까 애 재우거나 청소하는 것 정도를 해주고 있어요.

윤종희 거 봐요. 도와준다고 하잖아요. 언어에서 정서가 나타난다니까요. 애 재우고, 설거지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이건 서로가 분담해서 해야 할 부분이에요.

이세규 집사람에게 해달라고 해서 안해주면 내가 해서 먹어요.

윤종희 남자는 해주는 거 먹어야 하는 거다, 배려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는 의식이 배어있는 거예요. 우리가 보고 배우고 자란 게 그것이었죠. 저도 초등학교 6학년과 7살짜리 둘이 있어요. 연대투쟁 다니니까 늦게 집에 들어가요. 남편은 하숙집이냐고 하는데, 아침에 밥이 없으면 밥을 해놓고 나와야 하고, 모처럼 휴일이 생기면 그 때부터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러면 잠잘 때가 돼요.

그래도 아직 일할 게 남아 있으면 갑자기 스트레스가 몰려와요. 너는 니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우리한테는 피해를 준다고 얘기하는데 너무 힘들죠. 우리 50이 넘은 아주머니들 금속노조가 3개월 동안 금속최저임금인 83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는데도 결합을 못해요. 허리병이 심각하게 와서 앉지도 못하니까.

민세원 여성들이 신체적으로 남자들보다 약해서 허리나 관절에 병이 있거나 산부인과적 질환이 당연하게 생기더라구요. 수술받은 사람도 있고. 심신의 병을 준 것에 대해서는 정말 용납이 안되요.

윤종희 우리 아줌마들 반드시 보상받자 그랬는데. 인혁당 보상 받으면 뭐할 거예요. 죽은 사람 살려내면 보상이 되겠지만. 우리 투쟁하는 노동자들 당하는 현실이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여성들은 연거푸 술잔을 비우며 남자들을 맹렬히 성토했다. 말한 그대로 다 옮기기 힘들 정도로. 90년대 초 박노해 시인의 ‘이불홑청을 꿰매면서’라는 시가 떠올랐다. 20년이 지났는데 참 바뀌지 않았다.

여성들의 맹렬한 분노와 비판을 받고 있던 이세규 부장이 “상급단체가 똑바로 했으면 이런 거 안 생겼죠”라며 화제를 돌렸다. 이 때부터 상급단체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원망과 분노가 쏟아졌다.

 

기륭이 결혼 잘 이뤄지기로 유명해요. <레디앙>의 ‘연대투쟁은 사랑을 싣고’ 기사에 난 것처럼 두 쌍이 결혼했어요. 한 명은 신한발브 조합원이었고 한 명은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조합원이었어요. 둘 다 연대투쟁 하다가 눈이 맞았죠.

근데 현대하이스코는 순천이잖아요. 결혼하기 전에는 서울에 집 마련해서 활동할 수 있게 한다고 하더니 임신하니까 방 빼서 순천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분회장이 지침을 내렸죠. 투쟁 끝날 때까지 연애 못한다고.

이세규 하이닉스도 반이 총각인데 아직 한 쌍도 연결이 안 됐어요. (하이스코보다)거리도 가까우니까 예외로 해줘요. 조합원 데려가지 않을 테니까.

윤종희 안돼요. 일단 연애하면 여자들이 무조건 불리해요. 투쟁 끝날 때까지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했어요. 근데 이번에 42살 언니가 결혼해요. 거기는 남자가 우리 지역이고 항상 연대하러 오니까 예외로 인정해줬죠.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는 분이예요.



투쟁이 삶이 된 이들의 삶과 투쟁

[설특집 술과 얘기] 3~4일이면 끝날줄…몸으로 느낀 '연대감'


설 연휴를 사흘 앞둔 13일 저녁 6시 서울 영등포의 한 허름한 술집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인 하이닉스, 기륭전자, KTX 조합원이 술잔을 마주잡았다. 창밖에는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길거리로 쫓겨난 지 얼마나 됐냐는 물음에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100일, 200일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잊어버렸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비정규직 3사 중에서 KTX 승무원이 가장 ‘쫄따구’로 350일째 싸우고 있다. 2005년 8월 공장에서 쫓겨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540일로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2004년 12월 25일 직장폐쇄로 10년 넘게 일하던 공장에서 쫓겨난 하이닉스매그나칩 하청노동자들은 ‘최고참’으로 자그마치 780일이다. 모두 합치면 4년 8개월, 1,650일이다.

KTX 승무원들은 민족의 명절인 설날을 길거리에서 보낸다. 기륭전자는 벌써 두 번째고, 하이닉스는 공장 앞에서 차롓상을 차리는 게 세 번째다. ‘지긋지긋하다’는 말도, ‘끈질기다’는 말도, 그 어떤 단어도 이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맛있는 거 시키라고 하자 기륭전자 윤종희 조합원이 맥주와 훈제치킨, 그리고 닭도리탕을 주문했다. 하이닉스 하청지회 이세규 교육부장(35)이 “우리 조합원들은 라면 먹고 있는데 나만 맛있는 거 먹으면 미안하잖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8명의 조합원들과 서울에 올라와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먹고자면서 하이닉스 채권단 은행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투쟁의 힘은 먹는 거다. 먹는 거 아끼지 말자”

윤종희(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37) 기륭이 유명하잖아요. 먹는 거 아끼지 말자. 투쟁의 힘이 먹는 거다. 안 먹으면 못 싸운다. 이런 신조로 살아요. 삼겹살도 장난 아니게 먹어요.

민세원(철도노조 KTX여승무원지부장, 34) 저희 승무원들도 못 말려요.

윤종희 우리 조합원들 민주노총 위원장 이취임식 때 조금 늦게 갔는데 마치 우리가 돈 낸 것처럼 먹었어요. 고기를 배터지게 먹고도 냉면을 꼭 먹어요. 근데 우리만 먹은 게 아니라 KTX도 그렇게 먹었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조합원들 초기에 돈도 없고 상황도 어려우니까 잘 안 먹었어요. 2005년 8월 55일간 현장점거하고 있을 때 굶거나 김밥에 라면이나 먹거나 그랬죠. 근데 이젠 안 그래요.

작년에 비정규직들이 9박 10일 공동투쟁 했었잖아요. 한명숙 국무총리 집 앞에서 한국합섬 동지들이 요리를 했는데 정말 맛있었거든요. 근데 KTX 동지들이 안 먹는 거예요. 우리가 노숙자냐면서.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죠. 아직 정신을 못차렸다고.

민세원 철딱서니가 많이 없었죠.

윤종희 기륭전자도 KTX하고 비슷한 나이의 '아가씨'들이 많잖아요. 근데 KTX 동지들이 경계하고 많이 못 섞이는 것 같았어요. 공장에 다녔던 사람하고 대학 나와 어렵게 공채로 들어간 사람하고 차이가 있었던 것 같더라구요. 근데 최근에는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이제 노동자의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라구요.

“1년 싸워도 제대로 못 싸우면 불량감자 돼요”

민세원 1년 가까이 싸웠는데 과연 노동자 계급의식을 갖고 있는 건가 그런 고민이 돼요. 제대로 의식을 갖추면 투쟁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불량감자가 안 나오는데 복직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돼요. 그래서 많이 발전하고 성장했는데도 항상 아쉬운 게 있는 것 같아요. 계속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간부들이나 조합원들은 많이 지쳐있는데 저는 새해 들어서 수배생활을 끝내고 대외활동을 시작했잖아요. 조합원들 ‘언니만 3월 1일이다’ ‘혼자 1년 전이다’ ‘혼자 신났다’고 얘기해요. 우리는 에너지가 다 고갈되었는데 혼자 그런다고. 작년에 못한 부분을 많이 채우려고 해요. 외부에 있는 동지들과 연대사업도 잘 하려고 하구요.

윤종희 그런 에너지를 나눠주면 되죠. 다행이네요. 한 명이라도 에너지가 남아있으면.

민세원 그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세규 우리도 지회장이 1년 살고 나왔어요. 조합원들을 1년 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한참 싸울 때를 생각하니까. 조합원들 많이 지쳤는데 지회장이 나와서 활기차게 활동하니까 좋은 것 같아요. 조합원들이 믿고 갈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

민세원 9개월 반 동안 못 움직이다가 움직이니까 스트레스가 안 싸여요. 매일매일 즐겁고. 물론 정치적인 판단을 해야 하니까 머리가 아프죠. 우리은행 사례를 대대적으로 키우는 걸 보면 앞으로 예상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구요. 이철 사장도 철도노조 집행부가 바뀌어서 교섭도 해야 할 테고. KTX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결에 포함되어서 해결되지 않으면 시간이 길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에요.

윤종희 요즘 뭐해요?

민세원 새마을호 승무원들이 노조에서 농성하고 있고, 우리는 서울역 바깥에서 나팔차로 방송하고 퇴진 서명 받고 집회하고, 공개토론회 하고, 사실 공세적이기보다는 유지하는 차원의 활동을 하고 있어요.

설 연휴 끝나고 나서 판단해봐야 할 것 같아요. 내일 보자고 해서 만나기로 했어요. 떠보기만 할 것 같은데, 새마을호 여승무원들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어서 설 끝나고 나면 철도공사도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자존심 안 구기고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겠죠.

이세규 하이닉스 우의제 사장이 이천공장 유치 안되면 중국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충청권으로 확정되면서 입지가 좁아져 사의를 표명했어요. 겉으로는 후임자를 위해서 그랬다는데 정치적 압박으로 그런 것 같아요.

윤종희 대표이사가 바뀌면 변화가 생기겠네요.

이세규 회사 내부 인물 중에 생기겠죠. 2~3명이 물망에 오르고 있고, 3월 주주총회도 예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1인 시위 하고 있죠.

“투쟁 오래되면 초등학생처럼 되는 것 같아요”

먹는 얘기를 좀 하나 했더니 어느새 다시 ‘공장’ 얘기로 빠져들었다. 좀 가벼운 얘기를 더 하고 싶어서 술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민세원 술 마시면 금방 빨개지지만 오래 마실 수 있어요. 몸에서는 안 받는데 좋아서 먹는, 안 좋은 사례죠. 스트레스 받고 미쳐버릴 것 같으면 술이 땡겨요. 그것도 밤에.

조합원이 380명 있을 때나 280명 있을 때나 80명 있을 때나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단체생활 오래 하다 보니까 우리가 초등학생이 되가는 것 같아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을 때 혼자서 먹을 때도 있죠. 혼자 마시면 캔 하나 마셔도 벌개져서 취해요.

윤종희 오래되면 초등학생화 되어서 그런 게 아니고, 집에서도 가족끼리는 쉽게 얘기하고 상처를 주는 것처럼, 평소에 항상 같이 있고 너무 잘 알아서 상처도 많이 주고 그러는 것 같아요.

민세원 그런 것도 있지만 이런 거 없으세요? 누구는 주어진 일정과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데 누구는 뺀질거리고 안 아픈데 아프다고 하고 맨날 놀러가는 것 같고. 한마디로 얄미운 거죠.

윤종희 감정의 골이 생기죠.

민세원 피해의식이 생기고 자기 고통이 제일 큰 것 같고 배려를 못하고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요. 파업 초기에는 별 문제가 없다가 지금은 그런 것 같아요.

이세규 조합원들은 간부들이 고생하는 걸 알면서도 안 보이면 논다고 생각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는 거 알면서도 안 보인다고 불만 토로하고 그러죠.

민세원 저도 수배되고 있을 때도 빽빽하게 일을 했지만 같이 경험하고 같이 경찰이랑 대치해보고 추운 데 농성해보고 그러지 못해서 무늬만 지부장 아닌가 이런 회의도 많았어요. 조합원들은 간부들에게 동질감을 원하는 것 같아요.

이세규 투쟁이 길어지면서 자신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동지애가 상실되는 거잖아요. 남들하고 얘기할 때는 내가 제일 힘든 게 되어버리고 나랑 같이 안하면 나쁜 놈이 되고.

윤종희 저는 간부들이 진짜 고생하는지 안하는지 조합원들이 가장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걸 느껴요.

이세규 그걸 격하게 표출하는 조합원들이 있는 거죠.

윤종희 출근투쟁 나왔다가 싸워서 울면서 가버리기도 하죠.

이세규 우리는 2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조합원들이 있어요. 동생들하고 형님하고 막말이 오가는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가 서로 미안하다고 화해하고. 우리는 다 남자밖에 없어서 그래요.

장기투쟁의 고통과 아픔들

윤종희 장기투쟁하면 진짜 정신질환 생기겠어요.

민세원 그 부분 때문에 용서를 못하겠어요. 우리 조합원들 긴 시간 동안 정신질환과 신체질환이 많이 생겨서 용서가 안 된다. 그래서 보상까지 받아야겠어요. 몸 힘들도 마음 힘들고. 정말.

윤종희 아픈 거 다 투쟁으로 인한 산재 줘서 정말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심리상담도 받고 그랬는데 투쟁 오래하면 불안하고 스트레스 엄청나죠. 가족들하고도 트러블도 생기고.

이세규 큰애가 다섯 살이고 작은 애는 이제 돌잔치 했어요. 큰애가 높은 데만 보면 올라가서 ‘투쟁’ 하고 외쳐요. 얼마 전에는 싸우다가 머리를 다쳐 여덟 바늘 꿰맸는데 비디오로 피 흘리는 걸 찍었거든요. 근데 애가 그걸 봤어요. 그리고는 “경찰 때려죽이겠다”고 하는 거예요. 정말 속상했어요.

윤종희 애들이 공포스러워해요. 코오롱에서도 애들이 아빠 연행돼가는 모습 보면서 경찰 다 죽여버리고 싶다고 했대요. 그래서 판사가 애들 돌보라고 내보내줬다는 얘길 들었어요.

장기투쟁에는 가슴아프고 속상한 얘기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 해 12월 <레디앙>에 ‘연대투쟁은 사랑을 싣고’라는 기사로 연대하면서 만난 기륭전자 조합원 두 명의 결혼 얘기가 실렸었다.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로 옮아갔다.

기륭 42살 언니까지 세 명이 결혼하다

민세원 우리 조합원 한 명이 경찰과 3월 3일 결혼을 해요. 파업하기 전에 소개로 만났는데 파업하면서 남자친구가 출동해 서로 대치하는 상황도 있었대요. 서로 “내 눈에 띠지 말라”고 그러면서 연애를 계속 했는데 남자친구가 불만을 많이 들어주고 그래서 결국 결혼까지 가게 됐어요. 경찰 조사 받다가 연애한 조합원도 있었는데 파업대오에서 이탈해 나갔어요.

윤종희 기륭이 결혼 잘 이뤄지기로 유명해요. <레디앙>의 ‘연대투쟁은 사랑을 싣고’ 기사에 난 것처럼 두 쌍이 결혼했어요. 한 명은 신한발브 조합원이었고 한 명은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조합원이었어요. 둘 다 연대투쟁 하다가 눈이 맞았죠.

기륭이 결혼 잘 이뤄지기로 유명해요. <레디앙>의 ‘연대투쟁은 사랑을 싣고’ 기사에 난 것처럼 두 쌍이 결혼했어요. 한 명은 신한발브 조합원이었고 한 명은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조합원이었어요. 둘 다 연대투쟁 하다가 눈이 맞았죠.

근데 현대하이스코는 순천이잖아요. 결혼하기 전에는 서울에 집 마련해서 활동할 수 있게 한다고 하더니 임신하니까 방 빼서 순천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분회장이 지침을 내렸죠. 투쟁 끝날 때까지 연애 못한다고.

이세규 하이닉스도 반이 총각인데 아직 한 쌍도 연결이 안 됐어요. (하이스코보다)거리도 가까우니까 예외로 해줘요. 조합원 데려가지 않을 테니까.

윤종희 안돼요. 일단 연애하면 여자들이 무조건 불리해요. 투쟁 끝날 때까지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했어요. 근데 이번에 42살 언니가 결혼해요. 거기는 남자가 우리 지역이고 항상 연대하러 오니까 예외로 인정해줬죠.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는 분이예요.

“우리는 투쟁 중에 애들이 많이 생겼어요”

이세규 우리는 투쟁 중에 애들이 많이 생겼어요. 투쟁하다 새벽에 들어가니까.

윤종희 하이닉스 투쟁이 길어진 이유가 다 있었네요.

이세규 아니 그게 아니고…

민세원 그런 에너지 있으면 투쟁하는 데 써야죠.

이세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민세원 아니요. 농담이예요.

이세규 애가 생긴 집이 많은 건 아니구요, 한 대 여섯명 되는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투쟁을 빨리 승리로 끝내야겠다고 다짐하죠.

민세원 스트레스 더 받는 거 아닌가요?

이세규 애를 보면서 웃게 되고 스트레스도 풀리고 그래요.

윤종희 우유값도 없는데 스트레스 더 받지요.

이세규 애도 눈치가 있으니까 뭐 사달라는 말을 잘 안하는데, 다른 애들하고 비교할 땐 좀 마음이 아프죠. 애가 뭔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니까. 애한테는 학교 들어가면 해준다고 약속해요.

민세원 우리는 대부분 미혼이잖아요. 근데 부모님이 경제력이 없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왜 이렇게 부모님이 다 편찮으신지. 20대인데도 생계문제가 힘든데 하물며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투쟁을 이어나가는지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요.

전기 수도 끊기고, 압류되고,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움들

이세규 우리가 투쟁기금으로 받는 게 30~40만원이예요. 다른 조합원들은 낮에는 투쟁하고 야간에 주유소나 택배회사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근데 저는 전에 몸을 다친 적이 있어서 택배 하루 나가서 5만8천원 갖다주고 일주일을 앓아누웠어요. 아내가 돈 걱정 하지 말고 싸우라고 했어요. 가족들 형제들에게 빌려서 버티고 그랬죠. 장가를 잘 갔어요.

윤종희 진짜 장가 잘갔네요.

이세규 아내는 일을 계속 다녔어요. 낮에는 애 보고 밤에는 빵집, 산후조리원 알바 하고 피곤한데도 내색도 안하고.

민세원 진짜 훌륭하네요.

이세규 우리 조합원들 집회나 투쟁 때문에 주말에도 일을 못하니까 아내가 주말에 일을 나가서 돈을 벌어와요.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어요.

윤종희 가정이 파탄난 상황이네요.

이세규 이혼상황까지 간 조합원도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한 조합원은 집에다 2년만 싸우고 그만두겠다고 약속하고, 하루도 안 빠지고 나왔어요. 근데 약속했던 시간이 지나서 이제 안 나와요. 서로 연락은 하고 있지만 정말 가슴 아프죠. 대부분은 아내가 남편을 믿고 따라줘서 버티고 있어요.

윤종희 저도 상당히 어려워요. 남편이 한국타이어 다니다가 IMF 터지면서 미용사 일을 배웠어요. 1년은 한푼도 못 받았고, 이후에는 30~40만원 받으면서 3년을 보냈어요. 그리고 가족들에게 돈을 빌려서 미용실을 차렸고 벌써 이 일을 한 지 8년 정도 됐는데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50만원 가져와요.

지난 번에 집에 갔는데 전기가 안 들어오는 거예요. 정전됐나보네 했는데 다른 집은 불이 켜져있고. 밖에 나갔더니 전기공급 중단 예고통지서가 붙어 있었어요. 돈 생각하면 이 투쟁을 지속할 수가 없죠. 이걸 망각하고 살아야죠.

갑자기 남자 성토대회로 바뀌다

민세원 저도 결혼했는데 애기는 없어요. 애기가 있으면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투쟁하면서 여성학에 대해 관심이 생기더라구요. 집안일에 대해 남자는 도와주고, 여자가 다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윤종희 남자들은 도와준다며 선심 쓰듯이 얘기하죠. 같이 직장생활하면 가정이 공동의 생활공간이고 공동분담해야 하는데. 사회의 문제인 것 같아요.

민세원 노조 하면서 문제의식을 많이 느꼈어요. 여자들은 밖에서 일하다 집에 오면 또 노가다를 해야죠. 꼭 돈을 버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회활동을 하면 서로 분담해서 해야 하는데.

윤종희 우리가 직장에서 사회에서 불합리한 것과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 내에서도 끊임없이 싸워서 가정의 민주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하고 있는 사람이 권리를 찾는 거죠.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겠죠.

이세규 결혼 전에는 아내를 많이 도와줬는데 투쟁하면서 줄어들었어요. 새벽에 들어가니까 애 재우거나 청소하는 것 정도를 해주고 있어요.

윤종희 거 봐요. 도와준다고 하잖아요. 언어에서 정서가 나타난다니까요. 애 재우고, 설거지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이건 서로가 분담해서 해야 할 부분이에요.

이세규 집사람에게 해달라고 해서 안해주면 내가 해서 먹어요.

윤종희 남자는 해주는 거 먹어야 하는 거다, 배려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는 의식이 배어있는 거예요. 우리가 보고 배우고 자란 게 그것이었죠. 저도 초등학교 6학년과 7살짜리 둘이 있어요. 연대투쟁 다니니까 늦게 집에 들어가요. 남편은 하숙집이냐고 하는데, 아침에 밥이 없으면 밥을 해놓고 나와야 하고, 모처럼 휴일이 생기면 그 때부터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러면 잠잘 때가 돼요.

그래도 아직 일할 게 남아 있으면 갑자기 스트레스가 몰려와요. 너는 니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우리한테는 피해를 준다고 얘기하는데 너무 힘들죠. 우리 50이 넘은 아주머니들 금속노조가 3개월 동안 금속최저임금인 83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는데도 결합을 못해요. 허리병이 심각하게 와서 앉지도 못하니까.

민세원 여성들이 신체적으로 남자들보다 약해서 허리나 관절에 병이 있거나 산부인과적 질환이 당연하게 생기더라구요. 수술받은 사람도 있고. 심신의 병을 준 것에 대해서는 정말 용납이 안되요.

윤종희 우리 아줌마들 반드시 보상받자 그랬는데. 인혁당 보상 받으면 뭐할 거예요. 죽은 사람 살려내면 보상이 되겠지만. 우리 투쟁하는 노동자들 당하는 현실이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여성들은 연거푸 술잔을 비우며 남자들을 맹렬히 성토했다. 말한 그대로 다 옮기기 힘들 정도로. 90년대 초 박노해 시인의 ‘이불홑청을 꿰매면서’라는 시가 떠올랐다. 20년이 지났는데 참 바뀌지 않았다.

여성들의 맹렬한 분노와 비판을 받고 있던 이세규 부장이 “상급단체가 똑바로 했으면 이런 거 안 생겼죠”라며 화제를 돌렸다. 이 때부터 상급단체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원망과 분노가 쏟아졌다.

이제는 상급단체 성토대회

윤종희 회사가 다 해고시킨다고 했을 때 우리는 세상과 격리된 채 공장점거농성을 55일간 했어요. 근데 상급단체에서 단 한차례도 회사와 면담을 하지 않았죠. 가장 빨리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서 명분도 좋았어요.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이 하이닉스나 하이스코처럼 투쟁했으면 우리는 이미 해결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이스코는 광주전남 지역 전체가 나서서 싸워 승리를 만들었고, 하이닉스는 금속노조 전체가 집중해서 싸웠죠. 기륭은 집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작년 5월 노조설립 1년을 맞으면서 간부들이 단식을 했고, 처음으로 금속노조 이름으로 집회를 했어요. 금속노조를 움직이려면 단식이 필요하다고 해서 한 거에요. 조합원들 1년 맞으면 힘들기 때문이었죠. 근데도 금속노조 간부들보다 장기투쟁 사업장이 더 많이 왔어요.

하이스코는 기륭 보면서 답답하다고 그래요. 1천명이 모인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얘기하는데 우리 조합원들은 500명만 모여도 너무 좋다고 해요. 비정규직 문제 사회적 문제잖아요. 금속노조, 민주노총이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 다들 알고 있어요. 이 투쟁을 금속노조가 어떻게 책임지고 갈 것이냐인데.

우리는 인원이 적으니까 금속노조 대의원을 한 명도 낼 수 없어요. 우리 얘길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없는 거죠. 그래서 투쟁할당제라고 해서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은 한 명이라도 배정해달라고, 장기투쟁 사업장의 목소리를 대의원들이 들을 수 있게끔 해달라는 거예요.

민세원 투쟁할당제 좋네요.

윤종희 진짜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이 우리 문제로 안고 갈 수 있다는 결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금속노조는 노조-지부-지회의 체계인데 우리는 분회에요. 분회는 회의체계도 아니어서 얘기할 구조가 안돼요. 오히려 기업별 투쟁할 때보다 더 힘들다는 얘기도 있어요. 산별이란 게 힘이 넓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형식적인 것으로만 되어 가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민세원 저도 산별이라는 게 투쟁하려는 노동자들의 권한은 축소시키고 간부들의 권한을 확대시키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금속노조 막강한데 왜 해결 안돼나

윤종희 물론 다른 연맹의 투쟁사업장들은 금속을 막강하다고 하죠.

민세원 막강해요? 근데 왜 해결이 안돼요?

윤종희 올바른 산별노조는 아직 아무 것도 없잖아요. 이것을 누가 할 것이냐, 열심히 투쟁하고 있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부터 진정한 산별노조를 만들어가야죠. 위에서부터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노력들이 산별을 만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막 시작인데 이런 것들이 다양하게 논의되고 토론되면서 만들어가면 된다고 봐요.

장기투쟁사업장 생계문제가 심각한데 민주노총 조합원들 매달 1천원씩만 내면 다 먹여살리고도 남잖아요. 근데 50억 기금 모금도 안됐어요. 비정규직 투쟁을 내 투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남의 일이라고 바라보는 거예요. 비정규직들이 나서서 우리 문제를 같이 알려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우리만 싸우면 해결될 수 없다는 생각해요. 작년 하이스코 동지들이 양재동 120m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달려가서 울면서 그 자리에 있었어요. 내 거점만을 지킨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적 문제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민세원 해결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윤종희 기륭을 해결하는 순간 전체가 다 바뀌는 거예요. KTX가 공공부문의 선례가 되는 것처럼. 정부와 자본의 입장에서 그렇죠. 그래서 뭉쳐서 싸워서 하는 거죠. 노동부장관 집도 찾아가고, 면담도 요구하고 같이 투쟁을 해보자는 거예요.

민세원 상급단체는 기존 정규직 노조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죠. 정규직 조합원 비위 상하면 안될 것 같고, 그래서 파업 하다가 KTX 여승무원만 남겨두고 끝내고, 임금인상 때도 KTX 버리고. 그게 현실인가 싶어요. 민주노총 대부분이 정규직인데 거기에 맞추다보니까 비정규직은 제낄 수밖에 없고.

상급단체는 기존 정규직 노조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죠. 정규직 조합원 비위 상하면 안될 것 같고, 그래서 파업 하다가 KTX 여승무원만 남겨두고 끝내고, 임금인상 때도 KTX 버리고. 그게 현실인가 싶어요. 민주노총 대부분이 정규직인데 거기에 맞추다보니까 비정규직은 제낄 수밖에 없고.
노동자가 하나라고 외치지만 하나가 아니라는 걸 계속 느끼고 있어요.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문제라는 걸 공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집행부를 탓하기 전에 전체 노동자가 바뀌어야 해요. 집행부도 중심이 선 집행부가 되어야 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게 민주노총 지도부가 해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필요하다면 우리들이 같이 다니면서 해야겠죠.

윤종희 우리만큼 우리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없어요. 하이닉스 동지들이 요구해서 금속노조도 영구적립금을 털어 비정규직 생계비를 지원하게 됐어요. 정규직 동지들이 자기 밥그릇 지키려는 것도 있지만 비정규직을 외면할 수 없는 게 있고, 노동조합이 양심이 있기 때문에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해요.

“보여주기식 일회성 집회는 아무 도움 안돼”

이세규 전술적인 부분에서 미스가 많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우리나 하이스코 같은 투쟁이 기륭한테 갔으면 빨리 끝났을 것이고, 우리는 1~2천명이 계란이나 던지고 가두행진을 하는 건 도움이 별로 안돼요. 실천할 수 있는 투쟁이 배치되어야 회사가 느끼는 압박이 크죠. 규모있는 집회도 10여차례 이상 했는데 보여주는 일회성 집회가 대부분이었어요.

총연맹 차원에서 보면 다 지원을 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집중적인 지원을 통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을 만들어 선례를 남긴다면 좋을 것 같아요. 선례가 생기면 자본도 버티는 게 쉽지 않겠죠.

윤종희 레이크엔사이크 CC 사업장 연대투쟁을 갔을 때 손가락 짤리고 실명위기까지 갔는데 그걸 뚫고 들어가서 교섭 물꼬가 트였어요. 내 사업장 해결해달라는 게 아니라 어느 사업장이든 승리하는 걸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제네들 힘은 위력적이구나 그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이세규 자본은 연대의 힘이 더 잘 되고, 노동자들은 결정적 순간에 잘 안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산별노조로 더 크게 늘어났지만 내부적으로 단결이 안되면 걱정이죠. 내 차례가 밀리더라도 이길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서 선례를 만드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닭도리탕과 공기밥이 나왔다. 맥주 500을 서너잔씩 들이켰는데도 모두 밥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술자리 좌담’ 시작할 때 얘기했던 것처럼 다들 잘 먹었다. 먹어야 싸우고 잘 먹고 잘 싸워서 꼭 정든 일터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이 밥 풀 하나 남지 않은 밥그릇에 담겨있는 것 같았다.

“경찰과 법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30년 넘게 믿었는데”

윤종희 항공사 스튜어디스 했던 사람이 KTX에 많이 왔다는 뉴스를 봤는데 그게 민 지부장이었네요?

민세원 철도공사가 항공사 출신이 수십명이 몰렸다고 그랬어요. 근데 KTX 개통하고 3월까지 계속 저한테만 언론사 인터뷰를 시키는 거예요. 알고봤더니 저밖에 없었어요. 잘 이용당했죠. 사실 이 싸움 하기 전에는 사회정치적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아버지 사업 망해서 돈 벌려고 항공사 들어갔고, KTX에도 오게 됐죠.

근데 여기서 너무나 노골적인 착취가 이뤄지니까 상식 선에서 싸움을 시작했어요. 하청은 아무 권한이 없고 알고 보니 원청 문제였고, 알고 보니 정부 문제였어요. 처음에는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정말 힘들었어요. 용역깡패나 경찰도 충격이었죠. 경찰과 법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30년 넘게 믿고 살아왔는데.

그 분노가 너무나 큰 것 같아요. 이렇게 올인하고 노력해도 안되면 이 더러운 나라 떠나야 겠다는 생각까지 들지만 그것도 어려운 일이고. 유신정권이니 독재정권이니 이런 시대보다 더 끔찍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종희 단병호 의원실에서 설문조사를 한 적 있는데 10년 동안 임금을 쓰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다 정규직이었다가 비정규직이 되었는데 10년 전의 임금하고 지금하고 똑같거나 줄어들었어요. 그거 보면서 진짜 우울해지더라구요.

이세규 저도 처음 들어왔을 때 2천3백 받았는데 10년 지나서 2천 넘는 사람이 없었어요.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본급이 올라가면 그걸 수당으로 메꾸면서 오히려 임금이 줄어든 거죠.

윤종희 기륭은 64만원 받고 살았고 개․돼지 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죠. 그 분노를 참지 못했어요. 여기서 지면 어디 가서 살 수도 없겠다 싶었죠.

“3~4일이면 끝날 줄 알았어요”

민세원 두 달이면 끝나겠지 다 그렇게 얘기했는데.

이세규 우리는 3~4일이면 끝날 줄 알았어요. 생산 지원부서고 회사가 24시간 돌아가니까 우리가 파업하면 엄청난 생산손실을 입게 되거든요. 근데 너무 정석으로 했어요. 부분파업 먼저 하고, 전면파업하고. 회사가 준비를 했죠. 한방에 파업을 했으면 바로 끝날을 텐데.

우리는 3~4일이면 끝날 줄 알았어요. 생산 지원부서고 회사가 24시간 돌아가니까 우리가 파업하면 엄청난 생산손실을 입게 되거든요. 근데 너무 정석으로 했어요. 부분파업 먼저 하고, 전면파업하고. 회사가 준비를 했죠. 한방에 파업을 했으면 바로 끝날을 텐데.
민세원 기회를 놓치고 나면 계속 길어지는 것 같아요. 강금실 선본 점거했을 때 해결하지 못하니까 9월까지 왔고, 불법파견 해결하지 못하니까 지금까지 왔고, 이제 공공부분 비정규직 대책에 포함되지 않으면 기약이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요.

이세규 그걸 기대하다가 안되면 더 실망감이 들어요. 우리가 그걸 두 번 세 번 겪다가보니까 길어지고 힘들어졌어요.

정말 이제는 끝났으면 좋겠는데, 언제까지 이 싸움을 계속 해야 하나 싶었을까? 민세원 지부장은 술을 들이켰다. ‘최고참’ 하이닉스 이세규 부장과 기륭 윤종희 조합원은 조금 여유로웠다. 장기투쟁의 선후배가 술잔을 부딪히면서 서로를 위로했고, 취하기 시작했다.

오랜 투쟁의 순간들 중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와 가장 기뻤을 때를 얘기해보기로 했다.

가장 힘들었을 때와 가장 기뻤을 때

이세규 우리 조합원들이 가족들까지 야유회를 한 적이 있었어요. 부인들이 서로 얘기하고, 애들까지 데리고 가서 물놀이 하고 그랬는데 정말 좋았죠. 그리고 투쟁 1년, 2년 됐을 때 투쟁문화제를 한 것도 기억에 남구요.

민세원 100일도 아니고 1년, 2년이라니.

이세규 경찰들과 싸우고 우리 조합원들이 다치고 그랬을 때가 가장 힘들었죠. 저는 사진을 찍으니까 밖에 많이 있었는데 우리 조합원들을 둘러싼 전투경찰들이 바퀴벌레로 보였어요. 같이 싸워야 하는데 못 싸우고 사진을 찍고 그럴 때 마음이 아팠죠.

윤종희 그거 써먹을 데가 제일 많아요.

민세원 그게 굉장히 중요한데 잘 안되더라구요.

이세규 3년 싸운 게 사진이 6만장 정도 되요. 동영상도 100여개 되고, 영상작업하는 컴퓨터가 100기가인데도 부족하다니까요.

윤종희 그게 역사예요. 잘 기록해둬요.

이세규 2005년 8월 KBS하고 싸워서 열린채널에서 우리 얘기가 방영됐어요. 회사가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했는데 통과가 됐죠. 다른 사업장에서 교육자료로 쓴다고 달라고 하기도 하고.

민세원 중고등학생들에게 투쟁영상을 방송하는 날이 올까요?

윤종희 그런 날이 온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100명만 조직하면 끝난다고 했는데 10분간 200명이 노조에 가입했어요. 못생겼다고 짤리고 잡담으로 짤리고, 아파서 쓰러졌는데 병원에 입원시키고 해고시키고, 늘 해고의 공포에서 사는 노동자들의 분노였죠. 근데 이게 시작이고 모든 공장으로 확산되고 있어요.

아이 낳았다고 500만원을 전달한 한 대학원생

민세원 그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거죠.

윤종희 절망의 끝에 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죽느냐 아니면 떨쳐일어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죠. 우리 조합원들 대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기륭투쟁 승리해서 금강산 여행가자. 정규직화 쟁취했어 금강산 여행가자. 이런 구호를 외쳤어요.

얼마전 서울대 대학원생이 애를 낳았다면서 500만원을 가지고 왔어요. 우리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 투쟁을 하는 게 우리 아이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전해줬어요. 이 투쟁이 그만큼 상징성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끼리 싸우다 지쳐 포기하고 힘들고 그랬는데 많은 곳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500일 넘게 갈 수 있었던 게 그거였죠.

이세규 같이 싸우는 입장에서 남자들도 못하는데 여성 동지들이 그렇게 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해요. 저는 조합원들에게 싸움을 즐기라고 얘기해요. 내 가족을 위해서 내 자신을 위해서 내가 즐기면서 해야지 끝까지 갈 수 있지, 남을 위해 한다면 어느 순간 그 사람 때문에 못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민세원 저는 수배로 갇혀있어서 조합원들하고 좀 다를텐데, 1년 가까이 싸워서 인권위 결정이 났을 때 정말 기뻤죠. 조합원들 너무 좋아했어요. 처음으로 얻어냈다는 게. 근데 그게 약발이 없어서 그렇죠. 개인적으로는 지난 12월 마지막주 금요일 수배 풀리고 나서 1년 만에 처음 집회 나갔을 때 좋았어 울었어요.

조합원들 끌려나가고 연행되고 경찰서에 갇히고 그 충격과 고통으로 힘들어하고 있는데 나는 수배라고 지켜보기만 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또 380명 전 승무원이 소중하고 다 제자리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상을 보면서 예전에는 같이 구호를 외치고 있던 떠난 동지를 동지들이 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고 눈물이 났어요.

한사람 한사람 기억이 나고. 그 친구들 투쟁을 포기하고 나간 이후에 어디를 전전하고 있을지, 후회하면서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속상한 거죠.

이세규 이걸 그만두고 나가서 잘되면 기분이 좋을텐데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 보면 마음이 아프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윤종희 대우자동차 끝까지 싸워서 정리해고당한 노동자들은 다 복직했는데 스스로 싸움을 포기하고 명예퇴직한 사람들이 지금 GM대우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현대자동차도 그랬고. 포기하면 끝이죠.

“맨날 언론에 나는 KTX가 부럽다”

하이닉스는 지금까지 11명이 구속됐고, 불구속으로 기소돼 집행유예를 받은 조합원이 70명이며 손배가압류가 80억이다. 기륭은 2명이 구속됐고, 54억 손배가압류를 맞았다. KTX는 연대투쟁을 했던 정규직 2명이 구속됐지만 비정규직은 아무도 구속되지 않았다. 3억 6천만원의 손배가압류만 있다. 더해 보니 세 사업장의 손배가압류가 138억이었다.

많은 투쟁사업장들은 KTX 여승무원들을 부러워했다. 자기들은 죽어라 싸워도 언론에 나오지 않는데 KTX는 언론에 많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민세원 지부장은 “20대 여성들이 대부분이고, 언론이 선정적으로 다뤄서 KTX가 많아 언론에 나온 것 같다”면서 “주요 일간지에서는 삭발했다 점거했다 연행됐다 이런 것밖에 없었고 인터넷신문에서 주요하게 다뤄줬다”고 말했다.

어쨌든 부러운 건 사실이다. 하이닉스 이세규 부장은 “하이닉스는 중앙 언론은 물론 광고를 꽉 잡고 있는 지역 언론에도 우리 투쟁은 실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민세원 정규직인 철도노조도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지난 5월 15일 해고된 뒤 석달 동안은 실업급여로 살았고, 양말 재정사업으로 두 달 정도 살았고, 비정규직 기금과 cms로 지금은 버티고 있죠.

윤종희 정규직이 훌륭하게 지원했다고 생각해요. 코오롱이나 한국합섬 이런 동지들은 금속으로 가고 싶다고 얘기해요. 우리도 금속노조가 83만원씩 3개월동안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어 여러 가지로 큰 힘이 되고 있거든요.

연대투쟁과 초심이 중요하다

이세규 조합원들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으면 안했다고 얘기해요. 사실 억울해서 시작했고, 앞으로 생길 비정규직 사업장들 위해서라도 승리해야겠다고 버티고 있죠. KTX라도 빨리 끝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세원 나이, 투쟁여건 모든 게 천차만별인데 차이를 극복하고 동지로 느낄 수 있다면, 비정규직이 비전과 희망이 있다면 좋겠어요. 끊임없이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하지만 힘든 게 많아요. 오늘 자리는 매우 뜻있는 자리였어요. 그동안 대외활동을 못해 배울 기회도 없었는데 소중한 자리였다고 생각해요.

윤종희 오늘 우리 조합원들 대우자동차판매와 우진에 연대투쟁을 했어요. 처음에는 우리도 사람 없는데 왜 가냐고 했죠. 근데 연대투쟁을 열심히 다니면서 어려움을 보고 함께하고 이 사람과 하나구나 이런 걸 보면서 바뀌었어요. 몸으로 부딪히면서 바뀐 거죠.

민세원 처음 우리가 싸울 때 연대하는 동지들이 없어서 우리 조합원들 불만이 많았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구요. 내부에 폐쇄적인 분위기도 있었구요. 이제는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윤종희 기륭이 연대 참 잘 한다는 얘기 들어요. 싸울 곳이 여러군데 있어도 다 보내니까. 그래서 우리 집회 한다고 하면 정말 많이 와요. 조합원들은 우리가 이렇게 발로 뛰었을 때 다른 동지들이 달려오는 거라고 느끼죠.

이세규 저는 초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왜 이 싸움을 했는지, 10년 15년 일하면서 내 스스로 느껴서 했기 때문에 시작했고, 결과가 어떻든지간에 우리가 초심을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얘기를 조합원들과 같이 해요.

민세원 달별로 사진을 찍어놓고 그 때를 회고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변질되면 안되니까.

이세규 내가 어려웠을 때 도와줬던 사람들 생각하면 포기하지 못하잖아요.

6시 30분부터 시작한 술자리 대화가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이세규 부장이 “오늘 자리 너무 좋은데 컴퓨터 끄고 본격적으로 한 잔 하면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한국사회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인 노동자들의 ‘취중진담’을 더 기록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트북을 내려놓고 술잔을 잡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과 회한과 절망, 그리고 기대와 희망의 이야기들은 자리와 차수를 옮겨가며 새벽까지 계속 계속됐다.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2007-02-15 10: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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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징병제 폐지를 이야기하자

  • 등록일
    2007/02/09 11:26
  • 수정일
    2007/02/09 11:26

 

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08/20070208/20070208131500.html

 

노무현 정권이 내놓은 군복무단축정책은

2+5로 표현되듯이 '노동력활용' 목적 + 표심잡기라고 본다.

(왜 표심잡기냐고? 2006년 입대자들까지도 '혜택'을 준다는데 그건 표심 잡기가 아니고 뭐겠냐)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보고 나면 좀더 생각이 정리가 되겠지만,

모병제/대체복무제가 '대안'일 수 있을지는 아직 좀더 생각해 봐야겠다.

다만, 징병제 폐지는 분명한 요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알게 모르게 군대는 사회 곳곳에 파고들어 있고,

남성 노동자들 대부분도 어떤 식으로든 군복무를 앞두고 있거나

군복무를 해 왔다.

 

중요한 이슈에 대한 태도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한데

시간이 별로 없어서. 겪으면서 생각해 봐야될라나 싶군.

 

 

 



지난 2월 5일, 참여정부는 ‘병역제도 개선 방안’을 핵심으로 한 ‘비전2030 - 인적자원 활용 전략’을 발표했다. 일찌감치 ‘병역제도 개선’을 공공연하게 주장해왔던 정부가 병역의무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여 현행 체제의 문제점들을 매듭짓겠다는 의지를 드디어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개선안은 새로운 문제점들을 양산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선안에 ‘사회복무제 도입’이 포함된 것은, 그동안 병역거부운동 진영에서 주장해온 대체복무제 도입의 의미와 입지를 상당히 축소시키는 것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새롭게 시행될 병역제도에 맞서 이제는 징병제 폐지-모병제 도입에 대해 다시 논의를 시작하고 준비할 때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개선안은 그동안 제기된 문제점들을 뛰어넘고 있나

‘비전2030’ 전략은 인적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년 빨리 5년 더 일하기(일명 ‘2+5’)‘ 방안으로 학제 개편, 실업계 고교 특성화, 군복무 기간 단축, 퇴직연령 연장, 임금 체계 개편, 고령자 유리제도 마련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발표된 안의 핵심은 사실상 ‘병역제도 개선’이었다. 군복무 및 병역제도를 효율적으로 바꾸어 보다 일찍 사회에 진출(또는 적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병역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12월 말부터 노무현 대통령 및 정부의 발언이 있어 왔다. 또한 2005년부터 제기된 ‘21세기 선진 정예국방을 위한 국방개혁 2020’의 일환 속에 놓여있던 계획이기도 하다. 군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군비증강으로 귀결시키고 있는 ‘국방개혁 2020’이었기에 이번 개선안도 사실상 얼마나 달라질까 하는 불신도 있었지만 한편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프랑스식, 독일식 운운하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군 개혁 및 병역제도 개혁은 오랫동안 한국 국민이 요청해온 것들이었고, 소위 ‘비국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사안이었다. 그래서 관련 사안들이 포함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1년 이상 준비했다는 이번 개선안은 실망을 넘어 황당함마저 준다. 그야말로 한국 국민을 ‘인적 자원’으로 보고 제대로 ‘활용’해 보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군복무 기간을 6개월 단축하고, 전·의경 등 전환복무제를 폐지하고, 사회복무제를 도입·확장하겠다는 것은 분명 현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선안의 전체적인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본다면 더욱 강력하고 광범위한 강제징집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며, 더욱 강한 국가 중심적 인적 자원 관리 제도를 설치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선안을 예외없는 병역의무 부과, 군복무 기간 6개월 단축, 유급지원병제 실시, 전환복무제(대체복무제) 폐지, 사회복무제 도입 등으로만 정리해서 본다면 잘 된 개선안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래서 그동안 시민사회와 인권·평화운동이 제기해왔던 문제점들 뿐만 아니라 보수진영에서 제기해왔던 문제점들도 한꺼번에 뛰어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기득권 계층과 고위직 관리들의 병역비리 문제, 전·의경 복무자의 인권침해 문제(시위 진압에 강제동원 문제, 노동력 착취 등), 복무의 형평성 문제, 복무자의 인권 문제, 병역의무에서 배제된 ‘비시민’의 시민권 문제,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문제, 안보 영역의 확장 문제, 소외된 계층의 보호 문제 등 마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듯한 인상마저 심어준다. 면제자를 최소화시키고 병역의무를 모두에게 동일하게 지우는 방식은 그간 병역기피와 형평성 훼손을 우려해온 사람들의 지적까지 해결한다.

그러나 이 안은 일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지만, 더 많은 부분에서 문제들을 양산하는 안이 아닐 수 없다.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도 강제징집

발표된 개선안에 따르면, 대체복무제라 불리는 전환복무제(전경, 의경, 해경, 경비교도대, 의무소방 등 1~3급 현역을 전환한 복무제)를 전면 폐지하고 사회복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사회복무제는 현행 병역 처분 4급자(보충역)와 5급자(제 2국민역)가 담당하게 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병역 처분 5급을 받아 사실상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들도 사회복무제를 통해 무조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것이 ‘예외 없는 병역의무’의 핵심이다.

사회복무제도의 기본방향과 운영원칙을 보면, 예외 없는 병역의무이행 체계를 정립돼 사회활동이 가능한 모든 병역의무자는 병역의무를 이행하도록 하고 현역복무를 하지 않는 사람(4급, 5급자)은 모두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복무하게 된다고 한다. 마치 새로운 복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회복무제 도입은, 그동안 공익근무 등을 통해 복무했던 4급자에게는 별반 달라지는 것이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복무 부적합자로 처분된 사람(5급자)에게는 강제 복무를 부여받는 일이다. 국방부와 병무청이 제시하고 있는 사례에서도 보듯, ‘손가락 장애나 인공 눈을 시술한 사람 등’은 사회생활이 가능함에도 그동안 군복무 면제 처분을 받아 국민들에게 병역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가 아니면 손가락이 없더라도 복무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오랫동안 신체등급 5급(제 2국민역) 처분은 병역기피의 창구로도 이용되어왔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되면 강제징병에 몸으로 기피해온 사람들은 6급자로 판명될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나 장애가 있지 않는 한 더 이상 빠져나갈 길이 없게 된다. 병역기피를 원천 봉쇄하는 새 개선안은 이렇게 의무복무의 형평성을 되찾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형평성에 맞는 일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병역 처분 5급은 기관지 천식,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질환을 가지고 있거나 상대적으로 경미한 신체 장애, 정신병적 장애, 주요 우울장애, 기분장애, 신경증적 장애, 생리적 장애 및 신체적 요인과 연관된 행태증후군(소위 성주체성 장애 포함)이 있는 사람에게 해당됐다. 즉 공익근무(4급)에도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복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는데 이들 모두가 이제 사회복무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약자로, 그동안 국가와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인간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그대로 노출되어 왔었고 자기 돈 들여 각자 알아서 생활해왔다는 사실은 삭제되어 버렸다.

차별받아왔던 이들에게 중증장애인시설, 양로원 같은 사회시설에서 의무적으로 봉사하도록 하는 사회복무제도는 그동안의 차별을 감추는 한편 더욱 차별하는 제도가 될 수 있다. 이 제도 도입의 취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이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돌보는 구실을 하기를 기대받는 제도일텐데, 정작 목적은 병역의무이행의 강화였던 것이다. ‘21세기 선진 정예 국방을 위한’, ‘인적 자원 활용 전략’이라는 개혁안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 그 취지는 선진 강군과 국가 인적 자원 효율화에 따른 재편일 뿐임을 보여준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예외없는 병역이행으로 병역의 사회적 형평성 제고와 사회통합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병역제도를 개선하면 정예강군 육성과 국가경쟁력 강화, 선진복지사회 구현은 물론 국방개혁 2020, 비전 2030의 성공적 추진을 뒷받침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좀더 앞선 시기에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은 ‘병역면제에 대한 형평성을 감안해 사회복무제 도입을 깊이 있게 검토중’이라며 독일의 사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상 군면제제도를 없애자는 취지라며 아예 거동을 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면 신체상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병역을 이행하게 될 거’라고 덧붙인 것처럼 정작 발표된 안은 독일의 대체복무제와 비교하기조차 무색할 정도이다.

이는 군복무로 국민의 위계를 가려왔던 현 징집제도를 바꾸는 것일 수는 있지만, 그동안 열등한 국민일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해서도 모두 징집함으로써 복무 자체는 희생이 아니라 누구나 해야 하는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예외 없는 병역의무, 완벽한 병역기피 차단이라는 구호 아래 실시될 이러한 강력한 강제징집제도는 ‘힘도 빽도 없는’ 사람들이 군대 간다는 피해의식은 제거할지 모르나 더욱 강한 국민동원체제에 길들이게 하는 방안이지 않을 수 없다.

병역거부자는 처벌도 받고 사회복무도 해라

한편 병역거부자들은 오랫동안 대체복무제 개선을 이야기해왔다. 징병제가 부여하는 군복무는 결국 살상훈련을 강제로 받는 것이며 전쟁을 준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군인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병역거부자들은 이런 평화주의 신념을 지키는 대신 실형을 사는 법적 처벌도 감수했는데, 동시에 독일이나 대만의 경우처럼 대체복무를 통해 감옥에 가지 않고 의무를 이행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현행 대체복무는 4주간의 군사훈련을 필수적으로 마쳐야했기 때문에 병역거부자에게는 제도 개선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병역거부운동 진영은 대체복무제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병역거부자의 감옥행만이라도 막아보자는 의미도 있지만,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군복무제와 함께 가동되기 때문에 두 시스템 간 경쟁이 일어나고 자연스럽게 인력 확보를 위해 제도 개선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또한 사회적 보호 장치가 미약한 한국 사회에서는 긴급하게 요청되는 제도이며 국가 안보의 개념을 확장해 강한 군사주의를 일정정도 깰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대체복무제도 도입은, 군사력을 통한 국가안보 확보와 국가수호의 군인 역할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탈군사화된 사회를 구성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열망이 반영된 듯 발표된 ‘병역제도 개선안’에는 사회복무제가 도입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병역거부자들이 사회복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고려되지 않았다. 독일을 비롯한 외국의 사회복무제 및 대체복무제도는 사실 병역거부자들에게 군 복무 대신에 부과하는 사회 근무 형태로 도입된 것임에도 한국 정부는 일부러 무시한 것이다. 그동안 병역거부자에 대해 구제조치를 하라고 헌법재판소의 권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유엔의 권고 등이 줄기차게 있어 왔지만 민주화 운동을 계승한다는 참여정부에서조차 보기좋게 배제된 것이다. ‘병역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인정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이번 복무제도 개편안에서도 배제’했다고 밝혔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사회 복무를 하도록 합법화하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병역 기피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병역제도 개선안은 '특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둔 것이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에 “병역이행의 형평성에 어긋나는 특례는 인정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즉, 이들에게 사회복무를 허용하면 “병역제도 근간을 깨고 형평성 문제도 생기기 때문에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사회복무제 도입의 모델로 삼았던 독일의 경우는, 1956년에 '양심에 기초해 무기사용과 관련된 병역의무를 거부한 사람은 대체복무를 요구받게 된다'고 명시했었다.

결국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적, 법적 처벌은 지속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논리에 따르면 병역거부자들을 정신질환자 내지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경우로 취급해 5급 또는 6급 처분을 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까지는 1년 6개월 이상 실형을 살고 나오면 징집에서 면제되는 제 2국민역(5급)으로 편입되었는데, 새 제도가 시행되면 징역을 살고 5급으로 재처분되어도 다시 징집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현행 병역 처분에서는 6개월 이상 1년 6월 미만의 징역 실형선고자 및 1년 이상 징역 선고자 중 집행유예된 자는 4급 처분을 받아 보충역으로 복무하고, 1년 6개월 이상 징역 실형선고자는 5급 처분을 받아왔다. 따라서 병역거부자는 이제 6개월 이상 실형을 살거나 1년 이상 실형선고와 함께 집행유예를 받아 4~5급이 되어야지만 그나마 사회복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 제도 시행에 의해 병역거부자는 처벌은 처벌대로 받고 다시 사회복무를 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대부분 병역거부자들은 1~3급 현역 판정을 받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4급자가 되어 사회복무를 하는 것인데, 이런 경우라 해도 전과자가 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여성은 이중 노동을 해라

개선안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군가산점제 확대 관련 논쟁에서 이미 격렬하게 제기되었던, 여성의 병역의무 부과와 관련된 문제이다. ‘병역제도 개선안’에는 ‘고아, 혼혈인, 귀화자 및 여성도 본인 희망시 사회복무 기회를 부여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열등 국민으로 취급받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사회복무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병역의무 여부에 따라 위계화되었던 국민 등급을 해소해 보려는 것일까.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었던 불평등과 국민 위계 문제를 의식했다는 이 방안은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사회복무제 도입·확장’은 ‘여성 징집’을 거론할 여지를 확 열어놓고 있다. 그동안 군복무를 이행한 남성들의 피해의식이 고스란히 비복무자 여성에게로 향했던 것을 본다면 사회복무제를 통해 여성도 똑같이 국가에 봉사하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국가에 대한 봉사 기여를 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맥락에서는 국가통제도, 사회관리도, 강력 징병제도도 정상적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반복해서 낳는다. 성별, 학력, 성정체성, 장애유무, 혼혈 여부 등에 따라 병역의무가 차등적으로 주어졌던 현실은 그동안 남성 중심적, 비장애인 중심적 국민 개념을 만들어왔지만, 여성을 비롯해 의무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이같은 의무를 부과한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복무제가 도입된다 해도 ‘목숨을 걸고 국가를 지키는 의무’는 비장애 남성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와 관련한 문제에서 성별 질서가 강하게 자리한 한국 사회에서는 전사회적으로도 성별 질서를 정상가동하게 한다.

사회복무제에 여성의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그동안 병역의무에서 배제되어 사회적 의무를 방기하는 존재로 지탄받곤 하는 여성들에게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한다. 성별화된 질서에서 여성에게도 사회복무를 요구하는 것은 열등 국민이라는 존재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기보다 여성들의 ‘비국민’ 위치를 정당화시킬 우려가 있다. 이러한 형식적 평등화는 이미 성별화되어 있는 사회질서에 이중 노동을 부과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병역의무를 지어주는 것으로 남녀가 평등해질 수 있다는 것은 가부장제 현실을 무시하는 것으로, 사회에서 차별은 차별대로 받고 복무는 복무대로 하는 이중 노동을 부과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여성들에게 강제 징집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군복무든 사회복무든 병역의무가 남성 국민의 의무로 자리하는 상황에서는 여성들에게 사회적 의무로 강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사적 영역’을 담당하고 있어야 할 여성들의 위치가 정립돼 있는 사회에서 공적 의무 이행보다 사적 의무 이행이 더 강조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국민의 자격이 무엇이고 국민이 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더욱 봉쇄당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은 실질적 평등화는커녕 남성/여성 역할을 더욱 고정·강화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회복무를 하는 여성을 치켜세우는 방식으로 복무하지 않는 여성들을 향해 더욱 의무 방기자의 혐의를 덧씌우게 할지 모르며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비국민’의 위치에 가두게 할 것이다. 

이처럼 이 개선안은 여성에게 사회복무 이행의 부담만을 가중시킬 뿐, 차별을 없애기 위한 방안이 아니며 오히려 차별을 가중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진정한 개선안이 되려면 ‘징병제 폐지’를 목적해야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병역제도 개선안’에 징병제 폐지가 포함되어 있어야 했다. 사회복무제 도입은 국방의 의무 또는 병역 의무를 확장시키게 했으나 징집제도 자체가 양산하는 문제들을 질문할 수 없게 한다. 예외 없는 병역의무 부과는 형평성을 높이고 병역제도 개선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이 될 수는 있겠지만, 한편으로 ‘국가를 지키는’ 의무를 더욱 광범위하게 부여함으로써 국방 자체에 대한 의문은 더욱 어렵게 만들고 강한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를 정상유지시키는 토대를 형성하게 할 것이다.

이 개선안이 ‘군복무 기간 단축’이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군축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군축운동은 너무 군복무 기간 단축으로만 바라본 경향이 있었는데, 이 경향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부는 병력 감축을 내세우면서 군비증강을 꾀하는 놀라운 기획을 보여줬다. 종합적으로 더욱 강력한 국가 강제징집제도를 실시하겠다는 이번 계획안은 고도의 사회통제 전략이며 인적 관리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개선안이 되려면 ‘징병제 폐지’를 목적으로 준비되어야 했다.

그동안 병역거부운동은 군인이 될 것을 거부하며 군사력에 기초한 국가안보와 군대 역할에 대해 문제제기해왔고 징병제도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해왔다. 동시에 군대 내 폭력구조와 군인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귀기울여 왔다. 국방논리에 맞서 평화주의 가치를 설명하고 일관되게 전쟁에 반대해왔다. 한편 대체복무제를 통한 병역의무 이행을 요구하면서 징병제의 탈군사화를 노리기도 했지만 ‘국민의 의무’ 자체를 의문시하지는 못했고 이미 ‘비국민’의 위치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지도 못했다. 물론 병역거부운동은 평화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음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는 자체 고민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를 극복하는 실천을 모색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동안 집중해왔던 대체복무제 도입 운동은 사회복무제 도입으로 그 의미가 상당히 퇴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된 지형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던지는 실천이 요청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운동이 징병제의 문제에서 출발했던 만큼 이제 다시 징병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징병제는 많은 문제점이 있는 제도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보수적 국방논리에 따라 봤을 때도 비효율적이고 ‘나쁜’ 제도이다. 각종 인권침해를 비롯한 기본권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며 군사 문화의 사회 확산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군사주의 사회체제를 작동시키는 동력 기능을 한다. 또한 병역의무를 둘러싼 차별을 만들어내고 사회의 위계화를 조장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도 언젠가는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가야한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한다.

징병제 폐지는 현실적으로 모병제(지원병제) 도입을 필연적으로 요청하는 주장이다. 다른 단계가 있을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국적 국방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 군대를 해체하고 지역통합적 군대 창설도 방안이 될 수 있겠지만 역시 단계론적 접근 속에서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징병제 폐지 - 모병제 도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징병제 존속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북한의 위협 및 주변 강대국의 위협이라는 것도 이제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다자적-포괄적 안보 협력 체제가 안착된 상황에서 일국적 차원의 징병제 존속은 합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이 먼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군축의 모범을 보인다면 높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병제라고 해서 평화주의 입장에서 인정할 수 있는 제도는 아니다. 모병제 하 군대라 하더라도 여전히 전쟁을 염두한 군사조직이며 얼마든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모병제 자체도 이러한 의미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 맥락을 무시하고 주장할 수는 없기에 지금 한국사회에서 어떤 변화를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모병제 도입은 징병제가 가지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징병제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쉽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모병제 도입은 탈군사화로 가는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병제가 도입되면 군대는 더욱 첨단화되고, 국민으로부터 분리되어 민간 개입 및 통제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징병제를 유지한다고 군대의 첨단화를 막을 수 있는지, 민간 통제를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민간 개입은커녕 종속되어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군 첨단화는 군 발전 과정, 현대화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징병제도가 존속된다 해도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아직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재원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환기에 국방-안보-군사주의에 대응하는 평화운동의 흐름은 생겨나야 한다. 한국사회 평화 실현을 위한 실천은 징병제 폐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만들어가는 것에서도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 : 강인화, [한국사회의 병역거부운동을 통해 본 남성성 연구]

2007년 2월 7일

염창근 / 이라크평화를향한연대·평화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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