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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징병제 폐지를 이야기하자

  • 등록일
    2007/02/09 11:26
  • 수정일
    2007/02/09 11:26

 

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08/20070208/20070208131500.html

 

노무현 정권이 내놓은 군복무단축정책은

2+5로 표현되듯이 '노동력활용' 목적 + 표심잡기라고 본다.

(왜 표심잡기냐고? 2006년 입대자들까지도 '혜택'을 준다는데 그건 표심 잡기가 아니고 뭐겠냐)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보고 나면 좀더 생각이 정리가 되겠지만,

모병제/대체복무제가 '대안'일 수 있을지는 아직 좀더 생각해 봐야겠다.

다만, 징병제 폐지는 분명한 요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알게 모르게 군대는 사회 곳곳에 파고들어 있고,

남성 노동자들 대부분도 어떤 식으로든 군복무를 앞두고 있거나

군복무를 해 왔다.

 

중요한 이슈에 대한 태도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한데

시간이 별로 없어서. 겪으면서 생각해 봐야될라나 싶군.

 

 

 



지난 2월 5일, 참여정부는 ‘병역제도 개선 방안’을 핵심으로 한 ‘비전2030 - 인적자원 활용 전략’을 발표했다. 일찌감치 ‘병역제도 개선’을 공공연하게 주장해왔던 정부가 병역의무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여 현행 체제의 문제점들을 매듭짓겠다는 의지를 드디어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개선안은 새로운 문제점들을 양산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선안에 ‘사회복무제 도입’이 포함된 것은, 그동안 병역거부운동 진영에서 주장해온 대체복무제 도입의 의미와 입지를 상당히 축소시키는 것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새롭게 시행될 병역제도에 맞서 이제는 징병제 폐지-모병제 도입에 대해 다시 논의를 시작하고 준비할 때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개선안은 그동안 제기된 문제점들을 뛰어넘고 있나

‘비전2030’ 전략은 인적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년 빨리 5년 더 일하기(일명 ‘2+5’)‘ 방안으로 학제 개편, 실업계 고교 특성화, 군복무 기간 단축, 퇴직연령 연장, 임금 체계 개편, 고령자 유리제도 마련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발표된 안의 핵심은 사실상 ‘병역제도 개선’이었다. 군복무 및 병역제도를 효율적으로 바꾸어 보다 일찍 사회에 진출(또는 적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병역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12월 말부터 노무현 대통령 및 정부의 발언이 있어 왔다. 또한 2005년부터 제기된 ‘21세기 선진 정예국방을 위한 국방개혁 2020’의 일환 속에 놓여있던 계획이기도 하다. 군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군비증강으로 귀결시키고 있는 ‘국방개혁 2020’이었기에 이번 개선안도 사실상 얼마나 달라질까 하는 불신도 있었지만 한편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프랑스식, 독일식 운운하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군 개혁 및 병역제도 개혁은 오랫동안 한국 국민이 요청해온 것들이었고, 소위 ‘비국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사안이었다. 그래서 관련 사안들이 포함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1년 이상 준비했다는 이번 개선안은 실망을 넘어 황당함마저 준다. 그야말로 한국 국민을 ‘인적 자원’으로 보고 제대로 ‘활용’해 보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군복무 기간을 6개월 단축하고, 전·의경 등 전환복무제를 폐지하고, 사회복무제를 도입·확장하겠다는 것은 분명 현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선안의 전체적인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본다면 더욱 강력하고 광범위한 강제징집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며, 더욱 강한 국가 중심적 인적 자원 관리 제도를 설치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선안을 예외없는 병역의무 부과, 군복무 기간 6개월 단축, 유급지원병제 실시, 전환복무제(대체복무제) 폐지, 사회복무제 도입 등으로만 정리해서 본다면 잘 된 개선안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래서 그동안 시민사회와 인권·평화운동이 제기해왔던 문제점들 뿐만 아니라 보수진영에서 제기해왔던 문제점들도 한꺼번에 뛰어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기득권 계층과 고위직 관리들의 병역비리 문제, 전·의경 복무자의 인권침해 문제(시위 진압에 강제동원 문제, 노동력 착취 등), 복무의 형평성 문제, 복무자의 인권 문제, 병역의무에서 배제된 ‘비시민’의 시민권 문제,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문제, 안보 영역의 확장 문제, 소외된 계층의 보호 문제 등 마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듯한 인상마저 심어준다. 면제자를 최소화시키고 병역의무를 모두에게 동일하게 지우는 방식은 그간 병역기피와 형평성 훼손을 우려해온 사람들의 지적까지 해결한다.

그러나 이 안은 일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지만, 더 많은 부분에서 문제들을 양산하는 안이 아닐 수 없다.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도 강제징집

발표된 개선안에 따르면, 대체복무제라 불리는 전환복무제(전경, 의경, 해경, 경비교도대, 의무소방 등 1~3급 현역을 전환한 복무제)를 전면 폐지하고 사회복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사회복무제는 현행 병역 처분 4급자(보충역)와 5급자(제 2국민역)가 담당하게 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병역 처분 5급을 받아 사실상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들도 사회복무제를 통해 무조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것이 ‘예외 없는 병역의무’의 핵심이다.

사회복무제도의 기본방향과 운영원칙을 보면, 예외 없는 병역의무이행 체계를 정립돼 사회활동이 가능한 모든 병역의무자는 병역의무를 이행하도록 하고 현역복무를 하지 않는 사람(4급, 5급자)은 모두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복무하게 된다고 한다. 마치 새로운 복무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회복무제 도입은, 그동안 공익근무 등을 통해 복무했던 4급자에게는 별반 달라지는 것이지만 신체적, 정신적으로 복무 부적합자로 처분된 사람(5급자)에게는 강제 복무를 부여받는 일이다. 국방부와 병무청이 제시하고 있는 사례에서도 보듯, ‘손가락 장애나 인공 눈을 시술한 사람 등’은 사회생활이 가능함에도 그동안 군복무 면제 처분을 받아 국민들에게 병역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가 아니면 손가락이 없더라도 복무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오랫동안 신체등급 5급(제 2국민역) 처분은 병역기피의 창구로도 이용되어왔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되면 강제징병에 몸으로 기피해온 사람들은 6급자로 판명될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나 장애가 있지 않는 한 더 이상 빠져나갈 길이 없게 된다. 병역기피를 원천 봉쇄하는 새 개선안은 이렇게 의무복무의 형평성을 되찾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형평성에 맞는 일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병역 처분 5급은 기관지 천식, 류마티스 관절염 같은 질환을 가지고 있거나 상대적으로 경미한 신체 장애, 정신병적 장애, 주요 우울장애, 기분장애, 신경증적 장애, 생리적 장애 및 신체적 요인과 연관된 행태증후군(소위 성주체성 장애 포함)이 있는 사람에게 해당됐다. 즉 공익근무(4급)에도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복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는데 이들 모두가 이제 사회복무를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약자로, 그동안 국가와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인간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그대로 노출되어 왔었고 자기 돈 들여 각자 알아서 생활해왔다는 사실은 삭제되어 버렸다.

차별받아왔던 이들에게 중증장애인시설, 양로원 같은 사회시설에서 의무적으로 봉사하도록 하는 사회복무제도는 그동안의 차별을 감추는 한편 더욱 차별하는 제도가 될 수 있다. 이 제도 도입의 취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이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돌보는 구실을 하기를 기대받는 제도일텐데, 정작 목적은 병역의무이행의 강화였던 것이다. ‘21세기 선진 정예 국방을 위한’, ‘인적 자원 활용 전략’이라는 개혁안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 그 취지는 선진 강군과 국가 인적 자원 효율화에 따른 재편일 뿐임을 보여준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예외없는 병역이행으로 병역의 사회적 형평성 제고와 사회통합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병역제도를 개선하면 정예강군 육성과 국가경쟁력 강화, 선진복지사회 구현은 물론 국방개혁 2020, 비전 2030의 성공적 추진을 뒷받침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좀더 앞선 시기에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은 ‘병역면제에 대한 형평성을 감안해 사회복무제 도입을 깊이 있게 검토중’이라며 독일의 사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상 군면제제도를 없애자는 취지라며 아예 거동을 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면 신체상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병역을 이행하게 될 거’라고 덧붙인 것처럼 정작 발표된 안은 독일의 대체복무제와 비교하기조차 무색할 정도이다.

이는 군복무로 국민의 위계를 가려왔던 현 징집제도를 바꾸는 것일 수는 있지만, 그동안 열등한 국민일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해서도 모두 징집함으로써 복무 자체는 희생이 아니라 누구나 해야 하는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예외 없는 병역의무, 완벽한 병역기피 차단이라는 구호 아래 실시될 이러한 강력한 강제징집제도는 ‘힘도 빽도 없는’ 사람들이 군대 간다는 피해의식은 제거할지 모르나 더욱 강한 국민동원체제에 길들이게 하는 방안이지 않을 수 없다.

병역거부자는 처벌도 받고 사회복무도 해라

한편 병역거부자들은 오랫동안 대체복무제 개선을 이야기해왔다. 징병제가 부여하는 군복무는 결국 살상훈련을 강제로 받는 것이며 전쟁을 준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군인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병역거부자들은 이런 평화주의 신념을 지키는 대신 실형을 사는 법적 처벌도 감수했는데, 동시에 독일이나 대만의 경우처럼 대체복무를 통해 감옥에 가지 않고 의무를 이행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현행 대체복무는 4주간의 군사훈련을 필수적으로 마쳐야했기 때문에 병역거부자에게는 제도 개선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병역거부운동 진영은 대체복무제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병역거부자의 감옥행만이라도 막아보자는 의미도 있지만,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군복무제와 함께 가동되기 때문에 두 시스템 간 경쟁이 일어나고 자연스럽게 인력 확보를 위해 제도 개선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또한 사회적 보호 장치가 미약한 한국 사회에서는 긴급하게 요청되는 제도이며 국가 안보의 개념을 확장해 강한 군사주의를 일정정도 깰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대체복무제도 도입은, 군사력을 통한 국가안보 확보와 국가수호의 군인 역할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탈군사화된 사회를 구성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열망이 반영된 듯 발표된 ‘병역제도 개선안’에는 사회복무제가 도입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병역거부자들이 사회복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고려되지 않았다. 독일을 비롯한 외국의 사회복무제 및 대체복무제도는 사실 병역거부자들에게 군 복무 대신에 부과하는 사회 근무 형태로 도입된 것임에도 한국 정부는 일부러 무시한 것이다. 그동안 병역거부자에 대해 구제조치를 하라고 헌법재판소의 권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유엔의 권고 등이 줄기차게 있어 왔지만 민주화 운동을 계승한다는 참여정부에서조차 보기좋게 배제된 것이다. ‘병역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인정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이번 복무제도 개편안에서도 배제’했다고 밝혔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사회 복무를 하도록 합법화하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병역 기피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병역제도 개선안은 '특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둔 것이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에 “병역이행의 형평성에 어긋나는 특례는 인정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즉, 이들에게 사회복무를 허용하면 “병역제도 근간을 깨고 형평성 문제도 생기기 때문에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사회복무제 도입의 모델로 삼았던 독일의 경우는, 1956년에 '양심에 기초해 무기사용과 관련된 병역의무를 거부한 사람은 대체복무를 요구받게 된다'고 명시했었다.

결국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적, 법적 처벌은 지속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논리에 따르면 병역거부자들을 정신질환자 내지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경우로 취급해 5급 또는 6급 처분을 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까지는 1년 6개월 이상 실형을 살고 나오면 징집에서 면제되는 제 2국민역(5급)으로 편입되었는데, 새 제도가 시행되면 징역을 살고 5급으로 재처분되어도 다시 징집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현행 병역 처분에서는 6개월 이상 1년 6월 미만의 징역 실형선고자 및 1년 이상 징역 선고자 중 집행유예된 자는 4급 처분을 받아 보충역으로 복무하고, 1년 6개월 이상 징역 실형선고자는 5급 처분을 받아왔다. 따라서 병역거부자는 이제 6개월 이상 실형을 살거나 1년 이상 실형선고와 함께 집행유예를 받아 4~5급이 되어야지만 그나마 사회복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 제도 시행에 의해 병역거부자는 처벌은 처벌대로 받고 다시 사회복무를 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대부분 병역거부자들은 1~3급 현역 판정을 받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4급자가 되어 사회복무를 하는 것인데, 이런 경우라 해도 전과자가 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여성은 이중 노동을 해라

개선안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군가산점제 확대 관련 논쟁에서 이미 격렬하게 제기되었던, 여성의 병역의무 부과와 관련된 문제이다. ‘병역제도 개선안’에는 ‘고아, 혼혈인, 귀화자 및 여성도 본인 희망시 사회복무 기회를 부여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열등 국민으로 취급받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사회복무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병역의무 여부에 따라 위계화되었던 국민 등급을 해소해 보려는 것일까.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었던 불평등과 국민 위계 문제를 의식했다는 이 방안은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사회복무제 도입·확장’은 ‘여성 징집’을 거론할 여지를 확 열어놓고 있다. 그동안 군복무를 이행한 남성들의 피해의식이 고스란히 비복무자 여성에게로 향했던 것을 본다면 사회복무제를 통해 여성도 똑같이 국가에 봉사하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국가에 대한 봉사 기여를 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맥락에서는 국가통제도, 사회관리도, 강력 징병제도도 정상적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반복해서 낳는다. 성별, 학력, 성정체성, 장애유무, 혼혈 여부 등에 따라 병역의무가 차등적으로 주어졌던 현실은 그동안 남성 중심적, 비장애인 중심적 국민 개념을 만들어왔지만, 여성을 비롯해 의무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이같은 의무를 부과한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복무제가 도입된다 해도 ‘목숨을 걸고 국가를 지키는 의무’는 비장애 남성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와 관련한 문제에서 성별 질서가 강하게 자리한 한국 사회에서는 전사회적으로도 성별 질서를 정상가동하게 한다.

사회복무제에 여성의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그동안 병역의무에서 배제되어 사회적 의무를 방기하는 존재로 지탄받곤 하는 여성들에게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한다. 성별화된 질서에서 여성에게도 사회복무를 요구하는 것은 열등 국민이라는 존재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기보다 여성들의 ‘비국민’ 위치를 정당화시킬 우려가 있다. 이러한 형식적 평등화는 이미 성별화되어 있는 사회질서에 이중 노동을 부과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병역의무를 지어주는 것으로 남녀가 평등해질 수 있다는 것은 가부장제 현실을 무시하는 것으로, 사회에서 차별은 차별대로 받고 복무는 복무대로 하는 이중 노동을 부과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여성들에게 강제 징집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군복무든 사회복무든 병역의무가 남성 국민의 의무로 자리하는 상황에서는 여성들에게 사회적 의무로 강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사적 영역’을 담당하고 있어야 할 여성들의 위치가 정립돼 있는 사회에서 공적 의무 이행보다 사적 의무 이행이 더 강조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국민의 자격이 무엇이고 국민이 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더욱 봉쇄당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은 실질적 평등화는커녕 남성/여성 역할을 더욱 고정·강화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회복무를 하는 여성을 치켜세우는 방식으로 복무하지 않는 여성들을 향해 더욱 의무 방기자의 혐의를 덧씌우게 할지 모르며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비국민’의 위치에 가두게 할 것이다. 

이처럼 이 개선안은 여성에게 사회복무 이행의 부담만을 가중시킬 뿐, 차별을 없애기 위한 방안이 아니며 오히려 차별을 가중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진정한 개선안이 되려면 ‘징병제 폐지’를 목적해야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병역제도 개선안’에 징병제 폐지가 포함되어 있어야 했다. 사회복무제 도입은 국방의 의무 또는 병역 의무를 확장시키게 했으나 징집제도 자체가 양산하는 문제들을 질문할 수 없게 한다. 예외 없는 병역의무 부과는 형평성을 높이고 병역제도 개선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이 될 수는 있겠지만, 한편으로 ‘국가를 지키는’ 의무를 더욱 광범위하게 부여함으로써 국방 자체에 대한 의문은 더욱 어렵게 만들고 강한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를 정상유지시키는 토대를 형성하게 할 것이다.

이 개선안이 ‘군복무 기간 단축’이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군축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군축운동은 너무 군복무 기간 단축으로만 바라본 경향이 있었는데, 이 경향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부는 병력 감축을 내세우면서 군비증강을 꾀하는 놀라운 기획을 보여줬다. 종합적으로 더욱 강력한 국가 강제징집제도를 실시하겠다는 이번 계획안은 고도의 사회통제 전략이며 인적 관리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개선안이 되려면 ‘징병제 폐지’를 목적으로 준비되어야 했다.

그동안 병역거부운동은 군인이 될 것을 거부하며 군사력에 기초한 국가안보와 군대 역할에 대해 문제제기해왔고 징병제도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해왔다. 동시에 군대 내 폭력구조와 군인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귀기울여 왔다. 국방논리에 맞서 평화주의 가치를 설명하고 일관되게 전쟁에 반대해왔다. 한편 대체복무제를 통한 병역의무 이행을 요구하면서 징병제의 탈군사화를 노리기도 했지만 ‘국민의 의무’ 자체를 의문시하지는 못했고 이미 ‘비국민’의 위치에 놓여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지도 못했다. 물론 병역거부운동은 평화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음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는 자체 고민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를 극복하는 실천을 모색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동안 집중해왔던 대체복무제 도입 운동은 사회복무제 도입으로 그 의미가 상당히 퇴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된 지형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던지는 실천이 요청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운동이 징병제의 문제에서 출발했던 만큼 이제 다시 징병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징병제는 많은 문제점이 있는 제도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보수적 국방논리에 따라 봤을 때도 비효율적이고 ‘나쁜’ 제도이다. 각종 인권침해를 비롯한 기본권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며 군사 문화의 사회 확산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군사주의 사회체제를 작동시키는 동력 기능을 한다. 또한 병역의무를 둘러싼 차별을 만들어내고 사회의 위계화를 조장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도 언젠가는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가야한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한다.

징병제 폐지는 현실적으로 모병제(지원병제) 도입을 필연적으로 요청하는 주장이다. 다른 단계가 있을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국적 국방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 군대를 해체하고 지역통합적 군대 창설도 방안이 될 수 있겠지만 역시 단계론적 접근 속에서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징병제 폐지 - 모병제 도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징병제 존속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북한의 위협 및 주변 강대국의 위협이라는 것도 이제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다자적-포괄적 안보 협력 체제가 안착된 상황에서 일국적 차원의 징병제 존속은 합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이 먼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군축의 모범을 보인다면 높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병제라고 해서 평화주의 입장에서 인정할 수 있는 제도는 아니다. 모병제 하 군대라 하더라도 여전히 전쟁을 염두한 군사조직이며 얼마든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모병제 자체도 이러한 의미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 맥락을 무시하고 주장할 수는 없기에 지금 한국사회에서 어떤 변화를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모병제 도입은 징병제가 가지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징병제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쉽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모병제 도입은 탈군사화로 가는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병제가 도입되면 군대는 더욱 첨단화되고, 국민으로부터 분리되어 민간 개입 및 통제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징병제를 유지한다고 군대의 첨단화를 막을 수 있는지, 민간 통제를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민간 개입은커녕 종속되어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군 첨단화는 군 발전 과정, 현대화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징병제도가 존속된다 해도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아직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재원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환기에 국방-안보-군사주의에 대응하는 평화운동의 흐름은 생겨나야 한다. 한국사회 평화 실현을 위한 실천은 징병제 폐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만들어가는 것에서도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 : 강인화, [한국사회의 병역거부운동을 통해 본 남성성 연구]

2007년 2월 7일

염창근 / 이라크평화를향한연대·평화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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