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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는 노동인권 이야기

 

함께 나누는 노동인권 이야기



(참고) 이 글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기획된 노동인권 관련 강좌의 교안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1. “니 삼촌처럼 되야”

 

내가 청소년들을 상대로 노동인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대학생들은 몇 번 해보았지만요.  그래서 사실은 부담스럽습니다.  내가 요즘 학생들의 정서와 생각 이런 것에 많이 둔해졌잖아요.  게다가 오늘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은 공부와 일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라 들었어요.  아직 어린 나이에 일을 하면서 공부도 한다는 것이 정말 만만찮은 것이겠지요.  여러분 나이에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약간의 경험만 맛봤을 뿐이지요.


나는 중학교 때 신문배달을 잠깐 해보았고요, 대학교 때서야 몇 가지 일을 해보았어요.  삼촌 따라다니면서 타일 붙이는 보조일(데모도라고 했지요), 신문배달, 술집 서빙 일을 좀 해 봤고 학교 내에서 아르바이트도 좀 했어요.  그 때 노동인권이라는 말이 있기나 했겠어요.  이 말은 생각나네요.  삼촌 따라서 일을 하는데 한 번은 서울 강남에 사시는 부잣집 당숙 댁의 화장실 타일을 붙였어요.  당숙모가 삼촌 안 보이는 결에 얘기하시더군요.  “광복아!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공부 안하면 니 삼촌처럼 되야”  내 삼촌이 지금도 타일을 붙이니까 족히 35년 이상을 “타이루 공부”를 하신 거죠.


내가 “타이루 공부”라고 했지만 생각보다 무거운 말이지요.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좋은 과를 나와, 출세까지는 아니라도 돈 많이 벌고 편안을 누리는 것이 이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적인 삶이고 부모님들 소망이잖아요.  그래서 밤낮으로 공부 공부 목을 매잖아요.  이런 사회에서 학생들한테 타일 붙이는 일도 공부라고 하면 내 자식 신세 망치려 한다며 맞아죽기 딱 좋겠죠.


“니 삼촌처럼 되야”


20여 년 전에 귀로 흘러 들어왔던 이 말 한 마디가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요.



2. 상식을 의심하자


말 나온 김에 “돈” 이야기를 한 번 하죠.  우리나라 버스 기사와 의사의 월급 차이가 얼마인지 아세요?  버스 기사 월급이 도시와 시골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월 170만 원에서 270만 원 정도 되요.(서울은 좀 더 많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의사 월급이요, 내 아는 사람이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데 오래 되지 않았거든요, 1,000만원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죽으라고 공부하라는 이야기의 뜻을 아시겠죠?


그런데 말예요.  의사와 버스 기사의 월급이 이렇게 차이나는 게 과연 상식에 맞는 것일까요?  인권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를 나는 상식을 의심해보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혹시 의사와 버스 기사의 월급이 같으면 안 될까, 이게 상식일 수는 없을까요?  성인들한테 이렇게 물어보면 대개는 황당해 해요.  이미 이 사회에 넋까지 맡긴 탓이죠.  그런데 실제 이런 나라가 있어요.  그것도 기업 활동의 자유가 보장된 자본주의 나라에서죠.  주로 북유럽 나라인데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이런 나라들이예요.


이런 나라들은 의사와 버스 기사 뿐 아니라 많은 직종의 임금이 거의 같거나 비슷해요.  의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나라들은 병원을 경영하는 의사가 없어요.  국가에서 월급을 주죠.  90% 이상이 공공병원이에요.  의료비는 자기 부담률이 5% 정도라고 하니 거의 전액이 무료라고 해요.  우리나라 같은 건강보험도 없다고 해요.  그러니까 의료비를 아예 국가에서 대주는 거죠.  교육비도 대학원까지 전부 무료랍니다.  상상이 잘 안 가지요?


그럼 여기서 궁금한 것 하나.  도대체 그 많은 돈(국가 재원)은 어디서 나는 걸까?  두어 달 전에 인터넷 보니까 유럽 어느 나라에서 부유층의 교통 범칙금이 7,000만원이 나왔다고 소개하더군요.  그런데 몇 년 전에도 우리나라 일간지에 비슷한 사례가 소개된 적이 있었어요.  스웨덴의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볼보사의 부회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신호위반으로 교통 딱지를 끊겼는데요. 얼마 후에 과태료가 1억 2천만 원이 나왔다 하더라고요.  정말 “억” 소리가 나오지 않나요?  바로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 그 돈을 전 국민의 사회복지로 돌려준다, 이것이 그 사회를 움직이는 룰이었어요.  상상이 안 가지요?


또 궁금해지는 것.  도대체 의사와 버스 기사가 월급이 같으면 누가 의사 되려고 하나?  부자라고 세금 그렇게 많이 매기면 부자들이 가만히 있나?  이 질문은 나도 그 나라에 안 살아봐서 잘 몰라요.  이것은 가치관의 차이지요.  돈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면 당연히 의사 되려는 사람 없고 부자들의 집단적인 저항이 만만치 않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가치관은 오로지 개인의 가치관이 아니라 개인이 거스르기 어려운,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말한다는 것이 중요해요.  “그 가치관이 무엇이냐” 인데 그들 사회와 동떨어진 상식을 가진 우리 사회의 잣대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요.


다만, 우리가 상식이라 생각했던 것이 상식이 아닐 수도 있는 그런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상식들을 끊임없이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3.  “인권”을 잣대로 상식을 의심해야


그러면 무엇을 기준으로 상식을 의심할 것인가?  “인권”을 잣대로 삼아야 해요.  사람 사이에서 맺는 모든 관계에서 “인권”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지요.  인권은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을 집약해서 표현한 것인데 상대방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관계가 어떻게 되겠어요?  파탄나는 것이죠.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이냐 아니면 관계가 파탄날 것이냐, 그 사이에 “인권”이 있는 거지요.


“인권”을 정의하자면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말하는 것이에요.  대표적인 것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제한받지 않을 권리(자유권이라 하지요),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생존권이라 하지요)가 있고 이러한 기본권을 평등하게 누릴 권리(평등권이라 하지요)가 있지요.  이러한 기본권은 체제와 이념을 떠나서 모든 나라에서 헌법을 통해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기본권리 즉, 인권인 것이지요.


다시 북유럽 나라로 가 보지요.  스웨덴의 전체 노동조합 조직률이 80% 정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외국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률도 80% 정도가 된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를 겨우 넘고,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잖아요.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60%를 차지하는데 그 중 노동조합 가입 또는 조직률이 2.5% 정도예요.


여기서 북유럽 사회에 뿌리내린 가치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요.  직업별로 임금의 격차가 거의 없다는 것은 모든 노동은 동등한 가치가 있으므로 직업의 종류에 따라 그 가치를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교육·의료·사회복지를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또 갖고 있다는 거고요,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다 또 이주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높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가 자신의 권리를 옹호·증진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단결할 권리를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주노동자라 하여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함께 하고 있다는 거지요.  이게 모두 인권으로 통하잖아요.  즉, 이 나라들은 인간의 기본권인 인권을 개인이 돈을 많이 벌어 혼자만 축적할 자유보다 더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제 인권을 소중히 생각하는 가치관이 사회를 어떻게 다르게 만드는지 알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인권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나라 경제의 건강한 발전에도 기여를 해요.  직업에 귀천이 없고, 교육, 의료가 무상이니 사교육비, 의료비가 들 일이 없어요, 노후보장이 잘 되어 있어서 노후 대비를 위해 아등바등 돈을 모을 필요가 없어요.  소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얘기죠.  경제가 건실하게 돌아간다는 얘기지요.


인권이 존중되면 투기를 할 수 없어요.  부동산 투기를 한다는 것은 돈 많은 부자가 인간의 삶에 중요한 땅과 집에 거품을 불어넣어서 돈을 갈취하는 거잖아요.  미국이 그거 하다 이 모양 된 거지요.  인권이 존중되면 투기가 용납되지 않지요.  따라서 경제가 투기와 같은 거품에 의지하지 않고 탄탄하게 돌아갈 수 있지요.


인권이 존중되면 음습한 데서 모사를 꾸미는 일이 허용될 수 없지요.  로비가 없어진다는 거예요.  기업의 로비가 통하지 않으므로 비자금을 조성할 필요가 없어요.  삼성 보세요. 회사 돈 수천억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도 이건희 감옥에 안 가잖아요.  일반 직원이 천만 원 정도를 횡령하면 감방 살아야 되요.  이게 우리나라예요.  로비가 통하지 않으니까 수천억이 되는 회사 돈을 빼돌릴 이유가 없어요.  그 돈이 기술투자 이런 데로 가지요.  그러니까 경제가 탄탄하게 유지될 수 있지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 만고의 진리예요.  이 속담의 핵심은 “열을 관계 맺는 하나를 잘 보자” 이거지요.  그 하나가 바로 인권이에요.  모든 것이 인권으로 통해요.  그러니까 인권을 잣대로 상식을 의심해보아야지요.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나라는 위아래앞뒤 전부가 후진 나라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4. 노동인권의 핵심은 노동=인권


이제 노동인권 얘기를 해 보지요.  노동인권은 노동에 인권이 스며든 것을 말하지요.  가만 생각해보면 절묘한 만남이에요.  노동하면 어감도 딱딱하죠, 그 어감 속에 망치, 삽, 철골구조물, 공장, 용접기 이런 것들이 떠오르지요.  사실 심각한 편견이기는 하지만요.  반대로 인권은 부드럽잖아요.  너무 말랑말랑해서 어디라도 스며들 것 같지 않나요?  완고해 보이는 노동 속에 보드라운 인권이 스며들었으니 절묘한 만남이지요.  마치 생명을 품을 수 없을 것 같은 바위에 풀씨가 스며들어 풀꽃이 돋아난 모양이지요.


내 취미가 암벽등반인데요 가장 경이로울 때가 바위에 풀이 돋은 것을 볼 때죠.  들여다보면 그 약해 보이는 풀이 사실은 얼마나 강인한가 이걸 떠올리게 되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 완고해 보이는 바위의 속이 얼마나 여렸으면 풀씨가 스며들어 풀이 돋아나겠어요?  바위가 제 속에 풀씨를 품을 만한 속내를 갖고 있었던 거죠.  노동인권이 그렇습니다.  노동은 강한 것 같으면서 한없이 부드러워요.  인간이 있기 때문이지요.  인간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 이것이 노동이지요.  거꾸로 인권은 부드러우면서도 한 없이 강한 것이에요.  인권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예요.  그 권리를 억압하는 자가 있다면 투쟁해야지요.  노동과 인권이 만난 것은 이렇게 바위가 풀씨를 품은 것 같은 절묘한 만남이지요.


이제 핵심을 이야기 하지요.  원래 노동 옆에 인권을 붙일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노동이 인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왜 인권을 갖다 붙여 놓았나?  노동에서 인간을 빼고 상품을 넣었기 때문이에요.  이것을 “노동의 소외”라고 표현해요.  노동인권이 가는 길은 상품이 된 노동을 인간의 노동으로 회복하는 길이고, 그 궁극은 “노동=인권”이 되는 것이지요.  그만큼 노동인권은 인간의 삶에서 매우 귀중한 것이고 때문에 세계 모든 나라의 헌법에서도 노동인권을 인간의 기본권의 하나로 명시해두고 있지요.


노동인권의 일반적인 내용은 크게 노동할 권리,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으며 노동할 권리, 노동자가 자신의 존엄을 높이기 위해 단결하여 투쟁할 권리가 있고요,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이것을 확인하고 있어요.  헌법을 보면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사실 오늘의 주제가 노동법을 중심으로 청소년의 노동인권을 말하는 것인데요, 법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많이 했네요.  내가 법에 관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정리해 볼께요.  법은 모르면 찾아보고 물어보면 된다.  인권을 모르면 법을 찾아볼 생각도, 물어볼 생각도 못한다.  법만 알면 법만 논한다.  인권을 알면 세상을 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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