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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술 뜨는 일

밥술 뜨는 일


밤 12시 다 되어 전화가 울렸다. 잘 못 보던 번호다.

“오빠 저 00예요.  그런데 오빠라고 해도 되나?”

“그럼 오빠라고 해야지. 근데 애가 다 컸으니 나도 ##엄마라고 해야겠네?”

00의 남편은 노동조합 위원장이다.  한 달 째 회사에서 철야농성 중이다.

“근데 제가 오랜만에 오빠한테 전화해서 이런 말하기가 그런데...”

“그러니까... 그게...”

“그게... 저... ##아빠가 위원장이니까 이번 정리해고 명단에 들어가지는 않겠죠?”

“##아빠가 위원장인데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것 알면서도 너무 걱정되어서요, 제가 너무 이기적이죠?”

나는 머뭇거리고, 위로랄 것도 격려랄 것도 없는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말을 꺼내놓고는

금방 후회하고 만다.

밥술 뜨는 일에 무슨 말이 찬밥 한 덩어리만 하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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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부재가 아니고 무뎌져 가는 것이 아닐까

소통의 부재가 아니고 무뎌져 가는 것이 아닐까



술을 사양하지 못 하는 성격이라 이 술자리 저 술자리 가리지 않고 참석하는 편인데요, 보통 술자리가 물이 오르면 저마다 조직 내의 문제를 지적하고 진단을 합니다.  내가 술자리에서 빠짐없이 보는 풍경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소통의 부재다” 혹은 “소통이 문제다”  그러나 나는 이 진단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소통”이라는 말이 몇 년 새 유행어가 되어 버렸는데 이명박 씨도 그 깨우침을 얻었는지 “소통”하는 것도 경지에 이른 듯싶습니다.  “중도 실용”과 “서민 행보”를 언론을 이용해 적절하게 구사를 하는데 예를 들면 재래시장에 가서 오뎅을 입에 가져가는 장면이 크게 나온 적이 있지요.  그런데 제법 효과가 있습니다.  놀랍습니다.  이명박 씨가 깨달음을 얻은 그 “소통”이란 친절한 언론을 통한 적당한 립 서비스, 이런 정도가 아닐까요.


“소통”이라는 용어는 내가 알기로 애초 이 사회에 넘쳐나는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화두로 던져진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단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절, 생태·생명과 산업문명과의 단절 그 밖에 우리를 둘러싼 벽을 허물기 위한 진지한 성찰의 과정에서 “소통”을 화두로 던졌습니다.


그런데 몇 년 새 “소통”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더니 우리들 안에서 “소통의 부재”, “소통의 문제”에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이때부터 생기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오히려 진지한(솔직하고 구체적인) 성찰을 가로막는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내가 지나쳤다.  너 감정이 많이 상했겠구나” 이렇게 얘기하면 될 일을 “문제의 원인은 소통이야” 이렇게 얘기를 하니 상한 감정이 풀릴 리 없고 그러니 진짜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통의 가장 빈번하고 일상적인 모습이 바로 의사소통일 것입니다.  의사소통의 유형만 해도 조직 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간의 의사소통이 있고, 조직과 조직 간의 의사소통을 더하면 훨씬 복잡해집니다.  의사소통의 방법만 해도 마주보고 하는 말, 전화로 하는 말, 회의, 공식적인 문서, 비공식적인 글, 몸짓, 표정 그 밖에도 많은 행위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의 상처, 오해, 생각의 차이, 미움과 분노와 증오, 불신, 무관심, 편애 그 밖에 많은 모양의 갈등과 단절이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 내부의 의사소통조차 매우 복잡 미묘한 것이며 여기서 생기는 장애를 치유하는 과정도 적지 않은 공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다 대고 “소통의 부재”, “소통의 문제” 단 한 마디로 정리해버리므로 그 다음에 할 일이 없어지곤 합니다.  그저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자 라고 말할 밖에요.


나는 문제가 있으면 그 원인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문제가 생기도록 나는 어떤 잘못을 했고, 또 상대방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지 솔직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의 부재”, 이 한 마디로 적당히 버무려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무뎌짐”을 경계할 일이라고 봅니다.  내부에서조차 “소통”이라는 용어가 범람하는 걸 보면 혹시 내가 나도 모르게 더 무뎌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불편하더라도 우리의 심성과 자세는 근본을 향하여 늘 솔직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이것은 마치 신영복 선생이 말한, 극점을 향해 떨림을 멈추지 않는 나침반의 바늘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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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의 이슈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과거이고 현재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의 이슈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과거이고 현재이다



- 이 글은 지난 9월 25일 개최된 전국화학산업노동조합연합 간부수련회의 강의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얼마 전 흥미진진하게 읽은 BIG HISTORY(거대한 역사)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러 과학적인 증거를 취합하여 추정한 지구의 나이를 대략 45억년이라고 하는데) 지구의 나이를 하루 24시간으로 보고 자정에 지구가 시작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최초의 단세포 동물은 새벽 4시쯤에 나타났고 최초의 바다 식물은 저녁 8시 30분쯤에 출현했다.  동물과 식물이 육지로 올라온 시각은 밤 10시쯤이다.  그리고 공룡은 밤 11시가 되기 직전에 나타나서 밤 11시 39분쯤 멸종했다.  인간이 나타난 것은 밤 11시 58분쯤이다. 농업이 시작되고 도시가 건설된 시각은…… 자정에서 불과 몇 초 전이다.”


자신의 현재 혹은 어떤 특정 문제를 위와 같이 과거로부터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때론 깊은 성찰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어보려는 이야기 즉,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금지와 관련된 사안도 그렇습니다.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 문제를 과거로부터 들여다보면 그 속에 우리 사회의 본질이 담겨 있는데 그것은 곧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뒤틀린 걸을 걸어왔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돌아볼 기회도 가질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나마 한국의 노동법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미군정기를 지나고 1948년에 한반도 남쪽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데 그 때 제헌의회가 소집됩니다.  제헌의회에서 제헌헌법을 제정하지요.  제헌헌법에서 보장한 노동권 중에 지금보다 진보적인 측면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근로자의 이익균점권'이라는 것이 있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요.(물론 5.16 쿠데타 이후 삭제됩니다)  제헌헌법에서는 개별 노동자의 노동권 뿐 아니라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도 보장하고 있습니다.


제헌헌법이 제정된 후 노동법이 제정되어야 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지요.  인류가 전쟁을 치른 역사 이래 1,2차 세계대전을 제외하고 국지 전쟁에서 가장 많은 인명이 살상된 비극이었습니다.(사망자 245만명, 참고-베트남전 사망자 120만명)  그 때문에 1953년이 되어서야 노동법이 제정되었어요.  당시 노동법으로는 현역 군인 등 일부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공무원과 교사의 노동3권을 금지하고 있지 않았어요.  물론 독소조항도 있었지만 군사독재만큼은 아니었지요.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승만 정권을 물러나게 한 역사적인 4.19 혁명의 성과를 이어가지 못 하고 곧바로 5.16 군사쿠데타를 맞게 됩니다.  한국은 분단과 전쟁이라는 큰 고통과 함께 군사 정권의 등장이라는 예상치 못한 경험을 갖게 되었는데 이후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무려 30년 이상 지속되었지요.  분단, 전쟁, 군인정권을 통과하면서 한국은 일반 서구와는 다른 사회적으로 매우 뒤틀린 제도와 의식을 형성하게 되지요.  이런 비정상적인 경험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의식의 측면으로나 큰 불행이었습니다.


5.16 쿠데타 이후 군사 권력이 주도하여 노동자들의 집단적 권리를 제약합니다.  노동법을 손질하여 노동조합 활동과 쟁의행위를 제한하고 공무원의 단결권을 배제하였지요.  이 때 매우 중요한 법 규정이 하나 마련되었어요.  바로 복수노조 금지와 관련된 최초의 법률 조항이지요.  1963년 노동조합법에 노동조합의 정의규정을 두면서 “조직이 기존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추가한 것입니다.  이 조항이 1987년까지 그대로 유지되었고 오히려 1987년도에는 복수노조 금지의 범위가 더 확대되지요.  다시 1970년대 10월 유신을 거치면서 또 한 차례 노동법이 바뀌고 노동조합 활동이 제약됩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암울한 시기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때에도 노동자들의 저항은 끊이질 않았어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청계피복노동조합 결성, 동일방적 노동자들의 투쟁들이 이어지고 특히 유신 말기의 YH 노동자들의 투쟁은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또 긴 암흑의 시기가 도래합니다.  이 때 노동법은 또 난도질당하지요.  법에 의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일반적인 노동조합 형태인 산업별 노동조합이 부정되고 기업별 노조를 결성하도록 강제되었습니다.  사업장에서 30인 이상 또는 5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노동조합을 결성하도록 하였습니다.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 신설되고 근속기간 1년 미만인 경우 노동조합 임원으로 피선되지 못 하도록 제한하였습니다.(대학생들의 위장취업 때문이었지요)  또한 공기업과 방위산업체, 공익사업체 등의 쟁의행위가 제한되었지요.  이러한 법 조항들은 모두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해괴한 조항들이었는데 모두가 노동조합 운동이 권력을 위협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과 7,8,9월 노동자 투쟁은 수십 년 간 권력을 유지해 온 군사정권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변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정권의 입장에서도 일정 부분 노동조합 운영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7년 11월 노동법 개정 때에 이러한 요구가 부분적으로 반영되었지요.  그런데 복수노조와 관련한 중요한 법조항 하나가 삽입됩니다.  즉,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과 조직대상을 같이 하거나 그 노동조합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전의 “노동조합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과 조직대상을 같이” 하는 경우까지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부정한 것입니다.  단체 설립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 이런 조항을 두었을까요?  그것은 1987년 7,8,9월 노동자 투쟁을 겪으면서 군사 정권의 입장에서 노동자 집단을 그냥 놓아둘 경우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 더하여 7,8,9월 투쟁의 주역들이 당시 어용노조로 평가받았던 한국노총을 대신하여 새로운 노동조합 단체를 결성할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또 한 번 정권과 노동자들의 대 격돌이 있었어요.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여당의 주도로 새벽에 노동법이 날치기 통과되었습니다.  전국에 총파업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노동자와 여기에 호응한 국민적인 저항에 밀려 김영삼 정부는 날치기 통과한 노동법을 무효로 하고 1997 3월 국회에서 새롭게 노동법을 제정하게 되지요.


이 때 제정된 노동법은 이전 군사정권에서 손질한 노동법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제도가 도입되었어요.  정리해고제 법제화,  노동시간의 유연화(탄력적 근로제 등) 그리고 파견근로제가 법제화되었습니다.  대신에  악법으로 지탄받던 조항이 폐지되거나 완화되었는데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삭제하기로 한 것이라거나(다만 기업 단위의 복수노조는 2001.12.31까지 금지) 노동조합 정치활동을 허용한 것이라거나 3자 개입 금지 조항을 완화한 것이 그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쟁의행위를 위축시키기 위한 조항(예 : 대체근로 허용)이 신설되기도 합니다.  이 때 매우 중요한 조항이 하나 신설되었지요.  바로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이 신설된 것이지요.(이 조항 역시 2001.12.31까지 유보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이전의 군사정권 때의 노동법 개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동문제를 시장 문제로 접근한 최초의 시도입니다.  또 한편으로 군사 정권에서 만들어진 독소조항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조건에 놓였는데 특히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세계적으로도 지탄의 대상이 되었기에 폐기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지요.  그런데 복수노조 금지 조항의 폐지는 정권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자본의 입장에서는 매우 치명적일 수 있었습니다.  사업장 단위에서 자유롭게 다수의 노동조합이 결성될 수 있다는 것은 자본의 입장에서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그 때 내놓은 카드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이었어요.  이것은 실로 절묘한 카드라고 할 수 있었어요.  사실 세계에서 법으로 명문화하여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ILO(국제노동기구)에서도 한국에게 그것은 노사가 자율로 결정할 문제이지 법으로 강제할 문제가 아니라고 권고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중요한 변화는 수십 년 간 군사정권이 권력을 움켜쥐었고 자본은 오히려 그 조력자의 역할을 했던 것인데 군사정권의 퇴조 이후 짧은 순간에 자본이 권력의 중심에 섰으며, 노동법의 개정에도 자본이 직접적인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노동시장 유연화 제도 도입이 그렇습니다.  특히 자본은 자신의 가장 약한 곳인 복수노조 금지 조항 삭제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노동조합의 가장 약한 곳인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도입하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한 것입니다.  만약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이 신설되지 않았더라면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진즉에 폐기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자본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으나 한국은 외환위기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폭풍에 휘말리면서 또 다시 정상적인 자본주의 성장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반공을 명분으로 모든 희생을 강요하였던 우리나라는 이제 IMF 시절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IMF를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비정규직이 확산되었고, 가난한 자와 부자의 격차가 심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급격히 쇠퇴하였으며 노동법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정리해고의 요건을 완화하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비정규직법을 제정하는 등 갈수록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있으며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더욱 더 유연화해야 한다며 그런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도 복수노조 금지 조항 삭제와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은 그것이 미치는 파장 때문에 몇 차례 시행이 유보되었는데 13년이 지나는 2010년 그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를 해 보지요.  복수노조 금지 조항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해괴한 조항입니다.  그 해괴한 조항의 시행을 둘러싸고 노사정이 모두 시끄럽습니다.  세계 보편적 기준대로라면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삭제하기로 한 대로 시행하면 되고 임금 지급 문제는 노사가 자율로 할 것이지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므로 그냥 노사에 맡겨두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슈가 될까요?  바로 우리 사회가 지나온 고통스럽고 뒤틀린 역사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졌습니다.  분단과 전쟁과 군사정권을 거쳤는데 그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반공사상과 억압이 정당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동법을 비롯한 군사정권의 폭압적인 제도는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기는 불가능하였고 이것은 우리 민중의 승리요 힘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군사정권이 거머쥐었던 권력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오지 못하고 시장(즉, 자본)으로 급격히 이동하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고통을 맞이하게 되면서 빠른 속도로 신자유주의의 한 가운데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우리나라 노동법의 역사는 한국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의 핵심이 바로 복수노조 금지와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문제에 대한 지금의 이슈는 우리의 고통스럽고 뒤틀린 역사의 과거이고 현재인 것이지요.


잠깐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하는 정부의 주장을 보겠습니다.  세계의 보편적인 자본주의 사회인 유럽의 경우 산별노조 체제와 기업 내 종업원평의회(또는 직장위원회)의 이원 구조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산별노조 상근자들은 산별에서 채용하므로 당연히 산별노조에서 임금을 지급합니다.(그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업원평의회는 노조는 아니지만 사실상 기업 내 노조의 역할을 하면서 기업 내 근로조건 개선과 경영참가를 위해 산별노조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종업원평의회 전임자는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수십 년 간 군사정권이 기업별 노조를 강제하느라 산별노조와 종업원평의회 제도를 정착시킬 수 없었던 우리나라 노동조합 더러 이제 와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세계의 글로벌 스탠더드라면서 이것을 법제화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거짓말이고 세계에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명문으로 법제화하고 있는 나라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의 연혁을 더듬어보면서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업별 의식을 극복하고 사회 연대 의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업별 의식은 군사정권 시절에 매우 부당하게 강요된 것이지요.  사실상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의 근간에는 이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군사독재가 물러가고 시장독재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지금 과거에 강요받았던 기업별 의식을 가지고서는 절대 엄혹한 노동환경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장이 독재적인 방식으로 지배를 하고 있고, 승자 독식의 사회가 만연하고 있고, 사교육비·의료비 등이 임금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기업 내 임금 인상에 매달리면서 사회의 보편적인 복지 확대 혹은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나몰라라하는 것은 결국 이길 수 없는 도박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편하더라도 끊임없이 이 사회의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연대해야 하고, 함께 힘을 모아서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업별 노조 의식을 가지고는 절대 우리는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가 가르치고 있는 궁극적인 과거와 현재의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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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가소로운 일

 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가소로운 일



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를 두고 언론이 호들갑이다.  아예 조선일보는 1면 톱기사로 실었다.  가소로운 일이다.  달은 보지 않고 손끝만 보는 형국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KT노조의 집행부가 인권을 유린받고 있는 자기 조합원들을 어떻게 방치해 왔는지 조합원들의 기초적이고도 기초적인 인권의 문제에 얼마나 목석처럼 둔감했는지.  심지어 충북의 어떤 지부장은 오랜 기간 동안 인권을 유린당하고 끝내 해고되었다가 부당해고로 판정받아 복직한 조합원이 해고 당시 그 구제를 받으려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였을 때 회사를 위해 이 조합원이 구제불능이라는 진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중앙노동위원에까지 가서 확정된 판정문을 보면 구제불능은 그 해고노동자가 아니고 장기간 인권을 유린하였던 회사이었다.


KT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로 민주노총이 성찰하여야 할 문제와 조합원들의 인권이 유린되도록 방치하여 온 KT노조 집행부의 문제는 그 근본이 다르다.  KT노조의 집행부가 오래도록 방치하여 온 인권유린의 한 실상을 내가 그 해고노동자로부터 사건을 위임받아 진행하였기에 잘 알고 있다.  2009년 1월인가(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KT 관련 문제로 충청리뷰라고 하는 지역신문에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이 생각나서 찾아보았다.



누가 KT의 소름끼치는 실험을 멈출까?


(이 글은 충청리뷰에 실린 칼럼입니다)


1963년 미국에서 “기억력에 관한 실험”을 한다는 광고를 내고 20대에서 50대까지의 평범한 사람들 40명을 모집하여 실험이 실시되었다.  그들이 하는 역할은 칸막이 너머 학생이 문제를 못 맞힐 경우 벌로 전압 버튼을 누르는 일이다.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15V씩, 450V까지 전압을 높인다.  칸막이 너머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 발로 칸막이를 차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300V를 넘어서자 그 소리도 잦아들었다.


실험 결과 놀랍게도 전압을 올리라는 주최 측의 명령을 거부한 사람은 300V로 올라갈 때까지 35%에 불과하고 65%가 450V까지 전압을 올렸다.  사실 전압 버튼은 가짜였고, 비명을 지른 학생들도 연출한 것이었다.  실험을 주관한 학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인성이 아무리 정의로운 것이라도 만약 옳지 않은 권위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그들 역시 인간의 야만성과 비인간적인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KT의 비인간적인 노무관리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의 최근 증언은 소름을 돋게 한다.  여성노동자를 회사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굳이 바깥의 8m 높이의 전신주를 타게 하고, 그것을 못 타겠다고 하면 업무를 거부하였다 하여 업무촉구서를 발부하고 근무가 끝났는데도 몇 달간 밤11시까지 남아서 자습을 시키고는 시험을 치르라고 한다.  남아서 자습을 안 하면 업무촉구서가 날아온다.


고객이 회사에 전화해서 불편을 호소하는 일이 어디 한 둘일까마는 꼭 업무촉구서를 발부하는 대상이 있다.  몇 차례 누적되면 경고장을 준다.  자체 회의도 참석 못 하게 하거나 심하게 따돌림을 한다.  이들 중에는 수면제를 복용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이들이 있다.


한 남성노동자는 노동조합 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경력이 있는데 먼 지방으로 발령을 받았다.  거기에서 얼마 있다 또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냈다.  그 때 맡겨진 일이 20여 년간 개통업무를 하던 것을 빼앗고 상품을 판매하는 영업 일이었다.  연고가 없는 곳에서 해보지 않은 상품판매를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항변하면 업무촉구서가 날아온다.  고향 친척을 동원해 겨우 상품을 판매한다.


업무가 저조하다고 또 늦게까지 남아 자습을 하라고 하고, 혼자서 시험을 보라 한다.  첫 목표가 70점이다, 목표를 달성하면 80점 그 다음에는 90점을 달성하란다.  그 남성 노동자가 몇 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회사를 복귀해야 하는데 책임자가 “당신 혼자서 이 보이지 않는 실체를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느냐, 다른 업무로는 복귀 못 시키고 상품판매해라”라고 하더란다.


이런 일을 당한 이들이 전국에 수두룩하고, 충북에도 여러 노동자들의 사례가 알려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뭔가 비정상적인 대우를 받는 것으로 생각만 하였지 그것이 중앙에서 기획된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였다.  그런데 각 개인에게 발부된 업무촉구서, 경고장, 집단적인 왕따 하는 것들이 모두 중앙에서 기획하여 각 지역으로 내려 보낸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관리SOP’라고 붙여진 그 프로그램에 의하면 조기에 퇴직시킬 대상자를 특별관리 대상으로 선별하여 그들을 퇴출시키기 위한 ‘개인별 시나리오’를 작성토록 하여 업무지시서, 업무촉구서, 주의/경고장을 순차적으로 발부하도록 하고 있고, 만약 그 대상자들이 일을 잘할 경우 취약한 업무를 부여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결국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퇴직하도록 만들거나, 증거자료를 모아 해고의 사유로 삼거나 징계를 하고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내도록 하고 있다.


이토록 무서운 일들이 KT 안에서는 각 지사장들과 팀장들에 의하여 아무런 저항 없이 시행되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그 팀장들은 마치 450V까지 매 15V씩 전압을 올리라는 지시를 따라 온순하게 그 지시에 복종하는 실험 참가자들 같지 않은가?  실제 실험에서 학생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연출된 것이지만 지금 KT가 벌이고 있는 실험 대상자인 노동자들은 미쳐가고 있고 죽어나가고 있다.  누가 이 잔혹한 실험을 멈추게 할 것인가?


참고로 한마디 더 하겠다.  팀장 중의 한명이 퇴출 대상자를 특별 관리하라고 상부로부터 지시를 받았는데 하필이면 그 대상자가 고등학교 후배였다고 한다.  그래서 도저히 퇴출 프로그램을 그 후배에게 제대로 가동을 못했는데 그 후배와 함께 다른 지역으로 전보발령을 받았다.  그 팀장은 지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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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사이에 두고

          창을 사이에 두고


에프엠 클래식 음악을 켰다 라트라비아타1)의 네 번째 막이 시작되고 로맨스 여주인공의 죽음은 오래된 관습이다 열린 창을 사이에 두고 비는 낮은 곡조를 써 내려간다 꼭 단조의 음표 같다 비욜리타2)의 죽음을 예감한 나직한 노래, 알프레도3)가 비감하게 화답하는 노래, 또 화답하여 창 밖 골목에선 세 주인공이 늦은 무대를 막 올렸다 야 이 개새끼야 빨리 안 갔다 와 이 아빠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이 쌍놈의 새끼야 빨리 갔다 와 빨리, 아이 울먹이는 소리에 더하여 철퍽- 철퍽- 철퍽- 한 옥타브 쯤 아이의 음정이 올라가고 방 안에선 비욜리타의 슬픈 곡조가 너무 느려 이대로 멎을 것만 같다 그만 좀 때려 그만 좀, 말로 해 말로, 빨리 갔다 와 빨리 더 맞기 전에, 엄마 역인 듯 자지러지는 소리 너 새끼야 이리와 봐 니가 아빠 힘든 거 알어 이 새끼야 개놈의 새끼야 이 나쁜 놈의 새끼야 놔 놔 저 새끼를 그냥, 아이가 술을 사러 가는 장면인 듯 비는 막간에도 나직한 곡조를 쓰느라 여념이 없다 주인공의 죽음은 대개 사랑의 완성을 위한 배려이긴 하나 때론 상투적이다, 알프레도는 마지막 작별의 노래를 들려주는데 이를테면 연인에게 바치는 슬픈 화해의 악보라고나 할까, 미안하다 때려서 미안하다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어 이 아빠가 술 좀 먹었다 좀 먹고 싶었다 미안하다 아빠도 힘들다 참 힘들다 잦아들었던 아이의 음정이 클라이맥스로 접어들면 골목길 세 주인공의 무대도 내릴 때가 된 것이다, 악보 같은 창을 사이에 두고 비는 다독 다독 다독 다독 저러다 밤새 긴 곡을 남기겠다

 

1) 베르디의 오페라, 우리나라에서는 "춘희"라는 번안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2) 라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이다

3) 라트라비아타의 남주인공, 비욜리타의 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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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상품

 파생상품


1.


한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다.  제대혈(태아에게 채취한 혈액)을 보관하는 A업체가 있다.  그 업체에게 또 다른 업체인 B가 인력을 파견한다.  그 여성 노동자는 B에게 1년 계약직으로 고용되었다.  그런데 이 여성 노동자는 산부인과 병원 C에 가서 거기에 상주하면서 산모들에게 제대혈이 좋은 점을 홍보하고 산모와 제대혈 보관 계약을 성사시키는 일을 한다.  이 여성 노동자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으려면 계약도 많이 성사시켜야 하지만 병원으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들어야 한다.  이 여성 노동자는 본연의 일인 계약을 성사시키는 일도 하지만 각종 병원일도 한다.  병원도 이 여성노동자가 병원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물론 월급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여성은 누구로부터 업무를 통제받고 있는가.  A인가 B인가 C인가.  얼마 전 A 업체가 C 병원에서 철수하였다.  업체 B는 더 이상 일이 없다는 이유로 이 여성 노동자를 해고하였다.  이제 이 여성 노동자는 누구를 붙잡고 일자리를 달라고 호소하여야 하는가.  A인가 B인가 C인가.


2. 


고속도로 휴게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휴게소는 원래 도로공사가 직접 운영을 하였다.  그러다 외환위기 때 외부업체에 관리를 위탁하기 시작했다.  도로공사 소속 노동자는 전부 휴게소 소속으로 신분이 변경되었다.  휴게소는 다시 코너별로 쪼개서 임대를 줘버리고 휴게소 소속 노동자들의 고용주는 개인사업자인 코너 입점업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각 코너는 대개가 5인 미만이 일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거의 모든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해고가 자유롭고 퇴직금, 모든 법정수당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휴게소에서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100여명이 근무를 하지만 이들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므로 퇴직금을 청구할 곳이 없다.  도로공사도, 휴게소도, 입점업주도 퇴직금을 줄 의무가 없다.


3.


파생상품(派生商品, derivative, derivative securities), 주식과 채권 같은 전통적인 금융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새로운 현금흐름을 가져다주는 증권을 말한다.  일반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것도 가능하다.  파생상품의 주요목적은 위험을 분산·감소시키는 헤지기능이나, 레버리지(적은 돈으로 큰 이익을 남기는 것)기능, 파생상품을 합성하여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내는 기능들이 있다.  이 기법에 금융자본의 탐욕이 스며들어 서민들의 주택을 가지고 각종 파생상품을 조합하여 팔고 또 그것을 조합하여 다시 팔기를 거듭했고 자본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폭발하였다.  집값을 갚을 수 없는 서민들은 거리로 나앉았다.  미국이 그렇다.


4.


기업이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은 경영환경으로부터 위험을 분산·감소시키려는 것이 중요한 목적의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파생상품과 닮았다.  시간이 흐르자 각종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조합하여 비정규직 한 명이 간접고용직이면서 거기서 한 번 더 간접 고용되고 그것도 모자라 계약직으로 채용되는 이중 삼중의 비정규직 굴레를 쓰고 있다.  합성(조합)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파생상품과 닮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탐욕적이다.  위험을 분산·감소시키는데 목적이 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위험은 사회 전체를 위협한다.  그 점에서 또 파생상품과 닮았다.  잔인하고 야만스럽고 고통스럽다.  그리고 끝내 폭발할 것이다.  이것도 파생상품과 닮았다.  그러나 그 때에 이르러 얼마나 더 아플 것인가.  지금도 이렇게 아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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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을 논하는 아줌마들

 최저임금을 논하는 아줌마들



내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법 강좌에 강사로 참가하고 있다.  이 분들의 연령은 40~50대가 대부분이고 간혹 30대가 있다.  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서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듯이 내가 물어보면 아줌마들이 답하고, 또 아줌마들이 물어보면 내가 답한다.  대화 도중에 비정규직 문제와 최저임금의 문제는 열띤 토론이 된다.  그 중에 얼마 전 강좌 때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   올해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얼마죠?

-   시급으로 4,000원이예요.

-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   (별 싱거운 강사 다 보겠네 라는 표정으로) 아니 교재에 있잖아요?

-   아, 그렇군요.  근데 이 4,000원을 월로 환산하면 80만원이 좀 넘죠.  이거 가지고 먹고 살 수 있어요?

-   (진짜로 싱거운 사람이네 표정이 계속된다) 이거 가지고 어떻게 먹고 살아요?

-   근데 이거 비싸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 아시죠?(이 때 다 예??? 하고 답한다)

-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아니 누가 비싸다고 그래요?

-   일단 사업주야 그렇다 치고요 혹시 노동부장관이 비싸다고 계속 얘기한 건 아세요?

-   (완전히 경악하는 표정이다) 정말이예요? 아니 노동부장관이 어떻게 비싸다고 할 수가 있죠?

-   정말이예요. 최저임금이 사업주한테 너무 부담된다고 계속 얘기를 했고요, 정해진 최저임금을 내리기는 어려우니까 최저임금 제도를 바꾸자고 하지요.  어떻게 바꾸자고 한 거냐면요, 최저임금이 감액되는 수습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자고 하고요, 식대비와 기숙사비 같은 숙식비용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자고 하지요, 그리고 60세 이상 고령자들에겐 최저임금을 감액하자는 내용도 있고요

-   (그 때 한 마디씩 한다) 그게 최저임금 내리자는 게 아니고 뭐예요?  아니 세상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   또 있어요.  최저임금을요 지역별로 차등해서 적용하자는 내용도 있어요.  이게 다 노동부에서 주장했던 거고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겠다고 지금 계류 중에 있어요.

-   (아줌마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와!!! 그러면 충북은 최저임금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다른 아줌마가 말한다) 어떻게 되긴요 전국에서 제일 적겠네. 강원도나 제주도나 충북이나

-   (나도 심각해졌다) 이거 국회에서 통과 안 되도록 우리가 관심을 많이 가져야 되요. 그리고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 6월에 결정되는데 해마다 여기 계신 분들하고 똑같은 분들이 서울로 올라가서 최저임금 결정하는 데 앞에서 시위하거든요.  내년 최저임금 결정하는 것도 관심을 가져주어야 되요.

-   (아줌마들 한마디씩 한다) 노동부장관 이름부터 바꿔야겠네 기업부장관으로. 장관하고 국회의원부터 최저임금 갖고 살라고 해야 돼.  시위 언제 해요 나도 가야 되겠어요.


※  참고로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우리나라 노동법이 근로자를 과보호하고 있다고 연일 주장해 왔는데 이를테면 작년 10월 7일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최저임금이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가파르게 올라갔다”며 “최저임금이 오히려 근로자의 고용에 어려움을 야기한다.”고 발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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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 무상교육은 정책이 아니고 인권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정책이 아니고 인권



무상의료를 받을 권리, 무상교육을 받을 권리, 배부른 자 옆에서 굶지 않을 권리가 인간이 날 때부터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인가 아니면 국가가 헌법이나 법률에 의하여 보장할 때에 비로소 권리가 되는 것인가.  말장난 같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만약 국가 정책의 문제가 아니고 인권의 영역이라면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의 이름으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인권이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해서 인권인지, 왜 날 때부터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지 도무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구에 몇 남지 않은 원주민 공동체를 통해서 설명할 길이 보였다.


호주의 원주민 공동체에 관하여 쓴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을 보면 그들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매우 지혜롭고 인류가 가야 할 미래에 대해서도 혜안을 갖고 있다.  책 중에 지금 인류의 모습에 절망하여 공동체 스스로 아이 낳기를 포기한 채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지기로 결심하였다는 이야기가 슬프다.


그들 속에는 의술인이 있다.  누군가 다치거나 아프면 그가 치료를 해준다.  당연히 무료다.  무언가 대가를 받고 치료를 하는 일은 죄악이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학교라는 것은 따로 없지만 모두가 차별 없이 어른들로부터 살아가는 법과 지혜를 물려받았다.  그들 공동체 속에서는 먹을거리가 생겼을 때 누구 한 명만 배불리 먹고 다른 사람은 굶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모든 먹을 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모습이다!


우리가 돈을 내고 교육받고 돈을 내고 치료받고 배부른 자와 굶는 자가 나뉘는 세상에 살고 있어 이것이 전부인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시간은 인류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받을 권리, 함께 먹고 살 권리를 누려온 시간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 시간이 하도 길어 인간의 유전자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 틀림없다.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것들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책임지는 것, 이것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그 자체이다.  우리는 매우 자연스럽지 못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던 것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던 상태, 너무나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상태, 그래서 자연스러운 상태를 회복하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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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닿는 소소한 것들

 

발에 닿는 소소한 것들


깡통을 차 보았다 노숙하던 소리, 한뎃잠 자던 소리들이 발밑으로 모여들었다


풀섶에 들었다 풀이 쓸릴 때마다 어머니 키질하는 소리, 보리 이는 소리가 수런거렸다


맨발을 내밀어 보았다 눅눅한 것이며 까칠까칠한 것이며 콕 찌르는 것이며 시간이 갈수록 알싸해지는 것이며 발에 밟히는 소소한 것들이 말을 붙여 왔다


너무 오래 발을 꾹 닫고 걸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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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오주석 선생의 글을 보며 나를 깨우친다

 

고 오주석 선생은 미술사학자이었다.  사람은 진국에다 두주불사였다 하고, 김홍도를 알기 위해 그 분이 일가를 이루었다는 거문고를 배웠다 하고, 옛 그림을 제대로 알자고 주역과 한국사상과 인문학을 두루 꿰었다고 한다.  100년에 한 번 나올 재목이라는 상찬이 괜한 말이 아닐 성 싶다.


선생은 글을 써 놓고도 수십 번을 고쳐 다듬었다고 한다.  옛 그림에 혹여 누가 될까 조심한 터이겠고 나 같은 문외한도 알아먹기 쉽게 쓸 요량이었다.  그래서 그 분의 글은 실감나고 손바닥을 절로 치게 하고, 모르게 웃음을 짓게 한다.  선생의 글밭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를 깨우칠 수 있어 행복하다.  그중 김홍도의 씨름을 해설한 글을 다시 꺼내 읽는다.

 

 

 

김홍도의 「씨름」 (오주석)

   

씨름판이 벌어졌다. 여기저기 철 이른 부채를 든 사람들을 보니 막 힘든 모내기가 끝난 단오절인가 보다. 씨름꾼은 샅바를 상대편 허벅지에 휘감아 팔뚝에만 걸었다. 이건 한양을 중심으로 경기 지방에서만 하던 바씨름이다. 흥미진진한 씨름판, 구경꾼들은 한복판 씨름꾼을 에워싸고 빙 둘러앉았다. 누가 이길까? 앞쪽 장사의 들배지기가 제대로 먹혔으니 앞사람이 승자다. 뒷사람의 쩔쩔매는 눈매와 깊게 주름잡힌 양미간, 그리고 들뜬 왼발과 떠오르는 오른발을 보라, 절망적이다. 게다가 오른손까지 점점 빠져나가 바나나처럼 길어 보이니 이제 곧 자빠질 게 틀림없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기술은 왼편으로 걸었지만 안 넘어가려고 반대편으로 용을 쓰니 상대는 순간 그쪽으로 낚아챈다. 이크, 오른편 아래 두 구경꾼이 깜짝 놀라며 입을 딱 벌렸다. 얼마나 놀랬는지 그림 속 왼손, 오른손까지 뒤바뀌었구나. 순간 상체는 뒤로 밀리고 오른팔은 뒷땅을 짚었다. 판 났다! 이들 구경꾼 위쪽에 짚신과 발막신이 보인다. 짚신 주인은 아마 소매가 짧은 앞사람이고, 비싼 발막신 주인은 입성 좋은 뒷사람일 게다. 오른쪽 위 중년 사내는 승자 편인지 입을 헤벌리고 좋아라 몸이 앞으로 쏠리며 두 손을 땅에 댔다. 그 옆의 잘생긴 상투잡이는 털벙거지를 앞에 놓았으니 마부인가 보다. 저렇게 누워 있는 걸 보면 씨름판은 시작한 지 퍽 오래되었다.


다음 선수는 누구일까? 왼편 위쪽, 부채로 얼굴을 가린 어리숙한 양반은 아닐 성싶다. 갓도 삐뚜름하고 발이 저려 비죽이 내민 품이 좀 미욱스러워 보인다. 그 뒤 의관이 단정한 노인은 너무 연만하시니 물론 아니고, 옳거니, 그 옆의 두 장정이 심상치 않다. 갓을 벗어 나란히 겹쳐 놓고 발막신도 벌써 벗어 놓았다. 눈매가 날카롭고 등줄기가 곧으며 내심 긴장한 듯 무릎을 세워 두 손을 깍지낀 채 선수들의 장단점을 관찰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선수 두 사람의 초조함과는 무관하게 엿장수는 혼자서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먼 산만 바라본다. 엿판에 놓인 엽전 세 냥이 흐뭇해선가…….


공책만한 종이 위에 모두 스물두 사람을 그렸는데 인물은 아래보다 위에 더 많다. 구도가 가분수니까 씨름판의 열기는 저절로 우러난다. 그런데 구경꾼은 모두 위에서 내려다본 시각으로 그렸고 씨름꾼만 아래서 치켜다본 모습이다. 그렇다! 위에서 보고 그렸으면 난쟁이처럼 왜소해졌을 것이다. 화가는 구경꾼들이 앉아서 바라본 시각을 그대로 옮겨왔다. 그래서 그림 보는 이가 씨름판에 끼여든 듯 현장감이 살아난다. 한 번 더 그림을 휘 둘러보니, 아니, 여자가 하나도 없다! 모두 춘향이처럼 창포물에 머리감고 그네를 타러 갔나 보다. 작은 그림이지만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찬찬히 바라보면 옛적에 내외하던 풍습까지 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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