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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사이에 두고

          창을 사이에 두고


에프엠 클래식 음악을 켰다 라트라비아타1)의 네 번째 막이 시작되고 로맨스 여주인공의 죽음은 오래된 관습이다 열린 창을 사이에 두고 비는 낮은 곡조를 써 내려간다 꼭 단조의 음표 같다 비욜리타2)의 죽음을 예감한 나직한 노래, 알프레도3)가 비감하게 화답하는 노래, 또 화답하여 창 밖 골목에선 세 주인공이 늦은 무대를 막 올렸다 야 이 개새끼야 빨리 안 갔다 와 이 아빠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이 쌍놈의 새끼야 빨리 갔다 와 빨리, 아이 울먹이는 소리에 더하여 철퍽- 철퍽- 철퍽- 한 옥타브 쯤 아이의 음정이 올라가고 방 안에선 비욜리타의 슬픈 곡조가 너무 느려 이대로 멎을 것만 같다 그만 좀 때려 그만 좀, 말로 해 말로, 빨리 갔다 와 빨리 더 맞기 전에, 엄마 역인 듯 자지러지는 소리 너 새끼야 이리와 봐 니가 아빠 힘든 거 알어 이 새끼야 개놈의 새끼야 이 나쁜 놈의 새끼야 놔 놔 저 새끼를 그냥, 아이가 술을 사러 가는 장면인 듯 비는 막간에도 나직한 곡조를 쓰느라 여념이 없다 주인공의 죽음은 대개 사랑의 완성을 위한 배려이긴 하나 때론 상투적이다, 알프레도는 마지막 작별의 노래를 들려주는데 이를테면 연인에게 바치는 슬픈 화해의 악보라고나 할까, 미안하다 때려서 미안하다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어 이 아빠가 술 좀 먹었다 좀 먹고 싶었다 미안하다 아빠도 힘들다 참 힘들다 잦아들었던 아이의 음정이 클라이맥스로 접어들면 골목길 세 주인공의 무대도 내릴 때가 된 것이다, 악보 같은 창을 사이에 두고 비는 다독 다독 다독 다독 저러다 밤새 긴 곡을 남기겠다

 

1) 베르디의 오페라, 우리나라에서는 "춘희"라는 번안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2) 라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이다

3) 라트라비아타의 남주인공, 비욜리타의 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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