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9/10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0/27
    밥술 뜨는 일 (2)
    조광복
  2. 2009/10/13
    호죽노동인권센터 소식지 제29호
    조광복
  3. 2009/10/12
    소통의 부재가 아니고 무뎌져 가는 것이 아닐까
    조광복
  4. 2009/10/07
    호죽노동인권센터 소식지 28호
    조광복

밥술 뜨는 일

밥술 뜨는 일


밤 12시 다 되어 전화가 울렸다. 잘 못 보던 번호다.

“오빠 저 00예요.  그런데 오빠라고 해도 되나?”

“그럼 오빠라고 해야지. 근데 애가 다 컸으니 나도 ##엄마라고 해야겠네?”

00의 남편은 노동조합 위원장이다.  한 달 째 회사에서 철야농성 중이다.

“근데 제가 오랜만에 오빠한테 전화해서 이런 말하기가 그런데...”

“그러니까... 그게...”

“그게... 저... ##아빠가 위원장이니까 이번 정리해고 명단에 들어가지는 않겠죠?”

“##아빠가 위원장인데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것 알면서도 너무 걱정되어서요, 제가 너무 이기적이죠?”

나는 머뭇거리고, 위로랄 것도 격려랄 것도 없는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말을 꺼내놓고는

금방 후회하고 만다.

밥술 뜨는 일에 무슨 말이 찬밥 한 덩어리만 하랴 싶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호죽노동인권센터 소식지 제29호

 

     
 

밤이 깊을수록 더욱 빛나는 노동인권의 새벽별이 되겠습니다.

2009.10.13

 
    홈페이지로 이동
     
    지난소식지 보기
     
    상담게시판
     
    공개자료실
     
     
 

아이들을 위한 시

 
     
   
 




                               도종환


이 아이들의 가슴속에
무슨 꽃이 피고
어떤 나무가 자라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이 아이들이 좋다

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바람이 불고
어떤 구름이 지나가고 있는지
나는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안아주고 싶다
작고 죄없는 이 아이를

이 여윈 아이들의 깊은 곳에
어떤 하느님이 계시고
어떤 기도가 흘러 나왔는지
나는 듣지 못하였다

그래도 나는 바란다
눈동자가 까만
이 아이들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서귀포 모래밭 순비기 꽃보다
더순한 빛깔이 그들에게서 나오고
천년을 사는 사오댄 나무보다
더 오래가는 생명이
그들에게서  시작되므로.
 

 
   
 

아이들이 일제고사 반대 체험학습을 간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0교시, 강제 보충수업, 야간학습, 휴일 강제수업, 방학 강제수업으로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학교의 성적 부진아 퇴출작전은 너.무.도. 비인간적입니다. 아이도, 부모도 너.무.나. 비참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슨 꿈을 꾸는지, 어떤 기도를 하는지, 가슴속에 무슨 꽃을 피우고, 어떤 나무가 자라는지 궁금하기는 한지요. 잘난 어른들이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의 가슴속에 피는 꽃과 나무를 생매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합니다.

호죽노동인권센터


 
   
 

1. 상담사례

 


① **노조 : 건설기계노동자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 법에서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임금을 받지 못하여 사업주의 재산을 가압류하려고 하는데 이 경우 권리분배는 어떻게 되는지요?
- 권리의 순위에 의해서 분배되는데요, 사업주가 채용한 노동자들의 임금, 담보가 설정된 채권 등보다 순위가 밀리게 됩니다.

② **노조 : A회사와 B회사가 서로 통합하게 됩니다. 이 때 임금 등 근로조건도 하나로 통합되는 것인지요?
- 꼭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이미 별개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적용받아 왔기 때문에 과거의 임금과 근로조건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③ 이**님 : 도로공사 터파기 작업 중 매몰사고로 늑골이 골절당하는 재해를 입었습니다. 휴업급여와 치료비 전액을 지급받았고, 장해는 남지 않았는데 회사에 추가로 재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나요?
- 장해가 남지 않다면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일을 하지 못한 기간에 대한 임금전액을 청구하려면 회사의 과실이 100%이어야 하는데 회사 과실을 100% 인정한 사례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④ **노조 : 산별노조 지역본부장 선거를 하는데 각 사업장 중 조합비를 납부할 때 조합원 숫자를 축소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이 때 규약에 의해 실제 신고한 숫자만큼만 투표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요?
- 축소시킨 행위에 대하여 제재를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선거권은 개인의 권리이므로 개별 조합원이 소정의 절차에 따라 조합비를 납부하였다면 개인의 투표권을 제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⑤ ***님 : 회사의 관리자가 다른 직원을 부추겨서 왕따시키고 있는데 대응방안은?
- 민형사적인 문제를 검토해야 합니다.  왕따 자체를 처벌대상으로 삼은 법 규정은 없고 그 과정에서 폭행, 모욕, 명예훼손 등의 사실이 있을 경우 형사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만약 정신적인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그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입증 자료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⑥ 1년 7개월 전에 힘든 일을 하던 중 허리디스크가 발병하였으나 자비를 들여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얼마 전 퇴직하게 되었는데 산재처리가 가능할지요.
- 산재보험급여를 청구할 수 있는 시효는 3년입니다. 지금이라도 요양급여청구를 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업무와 재해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자료들을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⑦ 임금체불로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하자 회사가 애초 근로계약서에 기재한 임금보다 더 주겠다고 말하고는 1년 동안 매월 50,000원 더 지급하여 왔는데 지금 와서  반환하라고 합니다.  그럴 수 있는지요?
- 노동자가 임금체불 진정을 한 경우 회사는 계산 등의 착오로 더 지급된 임금을 반환할 것을 그 노동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법원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님의 경우 단순한 계산 착오의 문제가 아니므로 회사는 님에게 반환청구를 할 수 없습니다.

⑧ 회사가 30일 전에 해고예고를 하지 않고 20일 전에 예고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10일치 해고수당만 주겠다고 하는군요. 가능하나요?
- 근로기준법은 30일 전에 해고예고를 하지 않을 경우 30일 분의 통상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님의 경우도 회사는 30일 분 통상임금 전액을 지급하여야 합니다.

 
 

2. 법률지원 활동

 


① 조** (KT) 부당징계구제신청 이유서 준비
② 김** 외(쌍용자동차) 부당해고구제신청 이유서(2) 준비
③ 이** 요양신청 서면제출
④ 남**(00금고) 부당해고구제 재심신청 이유서 제출
⑤ 정**(00노조) 임금체불 진정 출석조사
⑥ 차운매(이주노동자) 임금사건 출석조사 외 다수의 임금사건 지원
⑦ **노조 부당노동행위 고소사건 이유서 제출
⑧ **노조 여성조합원 임금검토안 법률의견(안) 제출
⑨ 오** 요양행소 추가서면 제출

 

 
 

3. 노동인권 활동

 


① 노동인권교육활동
- 청주여성인력개발센터 노동법교육
- 충북대학교병원 직장내성희롱예방교육

② 홍보 및 연대활동
- 일제고사 대비에만 올인하는 충북교육 파행 규탄 기자회견
- 충북교육바로세우기 지역주민선언 기자회견
- 일제고사폐지 전국시민모임 기자회견
- 고정진동목사님 추모사업회 준비모임
- 충청타임즈 상담글 기고



 

 
   
 

소통의 부재가 아니고 무뎌져 가는 것이 아닐까

 
                             호죽노동인권센터 공인노무사 조광복

술을 사양하지 못 하는 성격이라 이 술자리 저 술자리 가리지 않고 참석하는 편인데요, 보통 술자리가 물이 오르면 저마다 조직 내의 문제를 지적하고 진단을 합니다.  내가 술자리에서 빠짐없이 보는 풍경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소통의 부재다” 혹은 “소통이 문제다”  그러나 나는 이 진단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소통”이라는 말이 몇 년 새 유행어가 되어 버렸는데 이명박 씨도 그 깨우침을 얻었는지 “소통”하는 것도 경지에 이른 듯싶습니다.  “중도 실용”과 “서민 행보”를 언론을 이용해 적절하게 구사를 하는데 예를 들면 재래시장에 가서 오뎅을 입에 가져가는 장면이 크게 나온 적이 있지요.  그런데 제법 효과가 있습니다.  놀랍습니다.  이명박 씨가 깨달음을 얻은 그 “소통”이란 친절한 언론을 통한 적당한 립 서비스, 이런 정도가 아닐까요.

“소통”이라는 용어는 내가 알기로 애초 이 사회에 넘쳐나는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화두로 던져진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단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절, 생태·생명과 산업문명과의 단절 그 밖에 우리를 둘러싼 벽을 허물기 위한 진지한 성찰의 과정에서 “소통”을 화두로 던졌습니다.

그런데 몇 년 새 “소통”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더니 우리들 안에서 “소통의 부재”, “소통의 문제”에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이때부터 생기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오히려 진지한(솔직하고 구체적인) 성찰을 가로막는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내가 지나쳤다.  너 감정이 많이 상했겠구나” 이렇게 얘기하면 될 일을 “문제의 원인은 소통이야” 이렇게 얘기를 하니 상한 감정이 풀릴 리 없고 그러니 진짜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통의 가장 빈번하고 일상적인 모습이 바로 의사소통일 것입니다.  의사소통의 유형만 해도 조직 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간의 의사소통이 있고, 조직과 조직 간의 의사소통을 더하면 훨씬 복잡해집니다.  의사소통의 방법만 해도 마주보고 하는 말, 전화로 하는 말, 회의, 공식적인 문서, 비공식적인 글, 몸짓, 표정 그 밖에도 많은 행위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의 상처, 오해, 생각의 차이, 미움과 분노와 증오, 불신, 무관심, 편애 그 밖에 많은 모양의 갈등과 단절이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 내부의 의사소통조차 매우 복잡 미묘한 것이며 여기서 생기는 장애를 치유하는 과정도 적지 않은 공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다 대고 “소통의 부재”, “소통의 문제” 단 한 마디로 정리해버리므로 그 다음에 할 일이 없어지곤 합니다.  그저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자 라고 말할 밖에요.

나는 문제가 있으면 그 원인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문제가 생기도록 나는 어떤 잘못을 했고, 또 상대방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지 솔직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의 부재”, 이 한 마디로 적당히 버무려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무뎌짐”을 경계할 일이라고 봅니다.  내부에서조차 “소통”이라는 용어가 범람하는 걸 보면 혹시 내가 나도 모르게 더 무뎌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불편하더라도 우리의 심성과 자세는 근본을 향하여 늘 솔직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이것은 마치 신영복 선생이 말한, 극점을 향해 떨림을 멈추지 않는 나침반의 바늘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설노동자의 우울한 추석

             
                          건설노조 충북건설기계지부장 이용대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며칠 앞 둔 9월 중순 어느날 지회장동지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협력사가 거액의 부도를 내고 책임자가 사라져버려 그동안 죽어라 일했던 임금을 못받게 되었다는 전화였다.불야불야 현장을 찾아가 원청소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자기들은 이미 하청사에 지급했으니 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눈앞이 깜깜했다.

수많은 조합원동지들의 절망과 분노에 일그러진 얼굴들이 주욱 스친다. 집회 신고도 내고. 회의도 소집해서 8일동안 노숙을 진행하면서 온갖 방법을 찾아다녔다. 어찌어찌해서 추석전날 그나마 일부분 지급을 받아 동지들을 해산시키고 지부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의 가을 하늘은 왜그리 청명하고 맑은지 돌아오는 차안에서 함께했던 동지들에게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보듬어 주었다. 이렇듯 우리 건설노동자들의 현실은 언제나 앞이 안보이는 불확실의 나날들이다.

특수고용노동자!
그 ‘특수’가 우리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목을 조여온지 오랜 세월. 그래서 우리는 그 특수를 떼어버리고 그냥 노동자로 살아보려고 몇년 전 노동조합으로 뭉친 것이다. 노동조합으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많은 불합리한 문제들을 대정부 투쟁을 통해 많이도 바꾸어 냈다. 확실한 단결의 성과였다. 그후도 우리는 멈출 수가 없기에 전국건설노동조합이라는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지역에서 현장에서 정말이지 많은 투쟁을 전개했다.

아들뻘 되는 현장관리자가 “어이 김씨”라고 부르면 됐던 우리였는데... 부족한 일자리에 넘쳐나는 장비들로 동료들과 일자리를 놓고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해야 했던 우리였는데... 아직 그 구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수많은 투쟁으로 현장은 몰라보게 개선됐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탄압과 억압을 온몸으로 받아가면서도 노동조합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낀다.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자마자 우리 건설노동조합을 불법이라구 몰아 붙이면서 시정명령이라는 것을 몇차례 보내왔다. 지금까지 별 문제없이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교섭에 성실히 임하던 자본과, 정권이었는데 말이다. 우리뿐만 아니고 같은 구조인 화물연대에도 같은 이유로 시정명령을 보내오면서 민주노총안에서 새로운 투쟁의 핵으로 자리한 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와해시키려는 가증스런 음모를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있다.

건설노동자들의 체불역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과 맞물려있기에 언제나 해결이 어려운 것이다. 일반노동자들처럼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면 노동부라는 관변단체에 진정도 하고 조정도 신청하면 그나마 수월케 해결을 할수 있는 길도 있건만 우리는 그저 단결해서 투쟁하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이땅 몇 안되는 정말로 특수한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이곳 저곳에서 체불과 악습적인 관행에 맞서 적들의 온갖 가증스런 탄압을 받아가며 하루 하루 힘겹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간악한 자본 역시 그동안 우리의 투쟁력을 인정키는 죽도록 싫었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노동자들의 요구를 개선 하는 척 해왔었는데 친기업정부의 작태를 힘삼아 이제는 공공연히 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예전의 영화를 찾아보려고 또 다시 썩은 권력을 업고 날뛰기를 시작했다.

우리 건설노동조합 안에는 덤프,굴삭기,타워,토목건축,전기원,등 이땅에 필요한 모든 사회시설들을 건설하고 설치하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지낼수 있게 하는 정말로 필요한 일들을 하는 노동자들로 가득 차 있다.그러한 막강한 힘과 능력을 가진 노동자들이 뭉치고 단결하는 것이 적들에게는 결코 유익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적들의 탄압은 날로 드세지고 무자비해지고있다.

그리고 너무나도 편향된 법 집행을 일삼고 점점 원칙마저 잃어가고 급기야 이성 마저 잃어가면서 탄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몇 년전 여름 포항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법을 지켜달라며 외치던 건설노동자인 하중근열사를 우리가 보는 앞에서 전경의 날선 방패로 머리를 가격해 죽여놓고도 지금껏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는 것이 이정권의 현실이다 그뿐이랴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건설노동자들을 민중들을 태워죽이고 찍어죽이고 해도 지금껏 이정권은 그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참으로 개같은 세상이다.

특수고용노동자, 비정규직, 정규직 할 것 없이 이 땅에서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민초들의 삶이 벼랑 끝에 걸려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별 중하지도 않은 것에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속히 개선되어져야 할 것들이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역시 계속단결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 힘을낼것이다.추석지내고 바로 6일부터는 제천동지들이 가열찬 투쟁을 전개한다. 진천 역시 못다받은 임금을 받기 위해 투쟁을 전개 할 것이다. 충북지부 역시 그런 동지들과 함께 힘을 모을 것이다. 우울하고 씁쓸한 시국이지만 그래도 곳곳에서 노동해방 쟁취를 향한 건설동지들의 힘찬투쟁이 있기에 이 땅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찾아오는 명절에는 체불임금 걱정없는 그저 소박하고 평범한 그런 명절이 될수 있게 앞으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 투쟁을 힘있게 진행 할 것이다. 우리보다 더 열악한 많은 소규모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우리 건설노조를 보면서 '하면 된다!'는 희망을 갖도록 앞장서서 투쟁 할 것이다.



 
   
 

부당징계와 부당발령으로 민주노조운동을 절대 막을 수 없다!

 

 

                                                           KT민주동지회 의장 조태욱

내가 KT에 입사한지 20년이 지난 시점에 회사는 그 동안 근무지였던 인천에서 삼천포로 9.30일자로 발령냈다. 인사발령 이유는 징계체임발령이다. 지난 7.9.과 8.31.에 회사는 감봉1월과 감봉6월의 징계처분을 하였다. 그 동안 활동과 투쟁속에 해고를 포함한 징계를 수차례 당했지만 이번처럼 두달에 걸쳐 연속해서 징계를 받고 체임발령 받기는 처음이다.

징계혐의의 주요내용은 2008.12월에 치러진 노조선거에 회사가 불법적으로 지배개입한 행위에 대한 노동청의 조사에 외출과 공가를 제출하고 출석한 것을 무단지참 및 무단결근처리하고 감봉1월의 징계를 하였으며, 2009.7월 KT노조가 민주노총에서 탈퇴하는 조합원총회 소집공고를 했을 때 노조사무실 방문을 원천봉쇄당하고 기자회견을 한 것에 대해 제출된 연차휴가를 역시 무단결근 처리하고 감봉6월의 징계를 하였다는 점에서 징계혐의와 내용이 황당하기 짝이없다.

어찌보면 국가기간통신산업체인 KT에서의 민주노조의 싹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MB정권의 노동정책이 그대로 투영되어 집행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일단 저질러 놓고 "부당하면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라(몇년이 걸리든)"는 것이 이제는 MB정권의 노동정책의 전형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고민되는 지점이 생겼다.
그 동안 10년 이상 계속된 부당노동행위와 관련된 법적싸움을 지속하는데 있어 일정하게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법적다툼은 우선 작년도 노조선거와 관련된 선거무효소송이 서울고등법원에 계류중이며, 선거지배개입 관련 부당노동행위 건은 서울고등검찰청에 게류중이고, 동진주지사 공개투표 건은  부산고등검찰청을 거쳐 대검찰청 재항고를 앞두고 있으며, 인사고과 D등급에 따른 근속승진 6회누락 중 5회째 누락건은 대법원 상소를 앞두고 있으며, 6회째 누락건은 중노위와 행정법원에서 일부승소(2009.7.1)하였으나 회사가 이행치 않아 지노위 구제신청을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또한 이번에 징계사유가 된 무단결근관련 건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계류중이며, 또 다른편으로는 노동청 진정을 거쳐 행정심판위원회에 계류중이며, 부당징계(감봉1월,6월) 건은 이미 인천지노위에 접수된 상황이다. 이 중에서 변호사에게 의뢰한 선거무효소송 빼고는 모두 내가 직접 법적투쟁을 진행시키고 있는 상태이다.

이 시점에서 문제는 내가 개인이 아니라 KT전국민주동지회 의장직을 책임있게 수행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다. 조직활동을 총괄하며 법적투쟁을 동시에 직접 수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 나타난 것이 호죽노동인권센터의 조광복 노무사이다. 이럴때 상황을 아마도 '구세주가 나타났다' 라고 표현하는가 보다. 호죽노동인권센터는 이미 충북의 한미희 조합원 파면 사건 때 모든 것을 걸고 함께 연대하여 승리로 이끈 경험있는 노동인권단체로서 KT민주동지회와는 이미 수차례 연대활동속에 상호신뢰하는 관계이다.

조노무사는 곧바로 부당발령 구제신청서를 인천지노위에 접수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이번 사건에 결합하게 되었다. 물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무리하게 노동탄압에 골몰하는 MB정권과 그 하수인들의 불법부당행위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탄압에 저항하는 주체로서 노동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이다.

불패의 승리역사를 일구어 나가는 호죽노동인권센터와 KT전국민주동지회의 연대는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될 것이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미평동 35-17번지 2층 호죽노동인권센터 공동대표 조순형. 이정훈.
Tel : 043) 286-9596, Fax : 043) 286-9598,http://www.cbnodong.org/hojuk/hojuk.ht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소통의 부재가 아니고 무뎌져 가는 것이 아닐까

소통의 부재가 아니고 무뎌져 가는 것이 아닐까



술을 사양하지 못 하는 성격이라 이 술자리 저 술자리 가리지 않고 참석하는 편인데요, 보통 술자리가 물이 오르면 저마다 조직 내의 문제를 지적하고 진단을 합니다.  내가 술자리에서 빠짐없이 보는 풍경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소통의 부재다” 혹은 “소통이 문제다”  그러나 나는 이 진단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소통”이라는 말이 몇 년 새 유행어가 되어 버렸는데 이명박 씨도 그 깨우침을 얻었는지 “소통”하는 것도 경지에 이른 듯싶습니다.  “중도 실용”과 “서민 행보”를 언론을 이용해 적절하게 구사를 하는데 예를 들면 재래시장에 가서 오뎅을 입에 가져가는 장면이 크게 나온 적이 있지요.  그런데 제법 효과가 있습니다.  놀랍습니다.  이명박 씨가 깨달음을 얻은 그 “소통”이란 친절한 언론을 통한 적당한 립 서비스, 이런 정도가 아닐까요.


“소통”이라는 용어는 내가 알기로 애초 이 사회에 넘쳐나는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화두로 던져진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단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절, 생태·생명과 산업문명과의 단절 그 밖에 우리를 둘러싼 벽을 허물기 위한 진지한 성찰의 과정에서 “소통”을 화두로 던졌습니다.


그런데 몇 년 새 “소통”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더니 우리들 안에서 “소통의 부재”, “소통의 문제”에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이때부터 생기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오히려 진지한(솔직하고 구체적인) 성찰을 가로막는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내가 지나쳤다.  너 감정이 많이 상했겠구나” 이렇게 얘기하면 될 일을 “문제의 원인은 소통이야” 이렇게 얘기를 하니 상한 감정이 풀릴 리 없고 그러니 진짜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통의 가장 빈번하고 일상적인 모습이 바로 의사소통일 것입니다.  의사소통의 유형만 해도 조직 내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간의 의사소통이 있고, 조직과 조직 간의 의사소통을 더하면 훨씬 복잡해집니다.  의사소통의 방법만 해도 마주보고 하는 말, 전화로 하는 말, 회의, 공식적인 문서, 비공식적인 글, 몸짓, 표정 그 밖에도 많은 행위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의 상처, 오해, 생각의 차이, 미움과 분노와 증오, 불신, 무관심, 편애 그 밖에 많은 모양의 갈등과 단절이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 내부의 의사소통조차 매우 복잡 미묘한 것이며 여기서 생기는 장애를 치유하는 과정도 적지 않은 공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다 대고 “소통의 부재”, “소통의 문제” 단 한 마디로 정리해버리므로 그 다음에 할 일이 없어지곤 합니다.  그저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자 라고 말할 밖에요.


나는 문제가 있으면 그 원인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문제가 생기도록 나는 어떤 잘못을 했고, 또 상대방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지 솔직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의 부재”, 이 한 마디로 적당히 버무려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무뎌짐”을 경계할 일이라고 봅니다.  내부에서조차 “소통”이라는 용어가 범람하는 걸 보면 혹시 내가 나도 모르게 더 무뎌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불편하더라도 우리의 심성과 자세는 근본을 향하여 늘 솔직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는데 이것은 마치 신영복 선생이 말한, 극점을 향해 떨림을 멈추지 않는 나침반의 바늘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호죽노동인권센터 소식지 28호

 

     
 
홈페이지
 
 

고향 잘 다녀오십시오.

 

 낼 모래면 추석입니다. 연휴의 반은 막히는 도로에 헌납하더라도, 기꺼이 우리는 고향 앞으로 전진입니다. 뭐 좀 궁핍해졌더라도, 해고당해 서럽더라도 고향에 갑니다. 버선발로 맞아주실 부모님 뵈러 갑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 받으러 어머니께 갑니다.

다녀오면, 세상에서 제일 장한 아들,딸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낼 자신도 생길겝니다. 어머니 뵙고 오면, 뭐 좀 궁핍하고 해고당해 서럽더라도 잘 견뎌낼 수 있을겝니다. 어머니께서 낳으실 때부터 우리는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고향 잘 다녀오십시오. 가슴속 가득 에너지 채워 오십시오.

                                                                              호죽노동인권센터

 

Infomation

 
상담게시판
 
공개자료실

<호죽노동인권센터의 활동현황 9월 15일부터 9월 28일까지>

 

 
1. 상담 중 특기사항

① 김**님 : 회사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2개월 임금삭감, 그 후 유급휴업을 실시하면서 임금의 50%만 지급하겠다고 하는데.
② 김**님 : 얼마 전 시골가스충전소에 취업. 2개월정도 근무하였는데 사업주가 친척을 쓰겠다며 해고함. 구제 방법이 없는지.
③ 이**님 : 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 노동부 조사결과 사업주의 일부 죄 인정 결과가 나옴. 회사는 불복하겠다고 하는데 향후 어떻게 되는지.  
④ 청**님 : 연차휴가를 국경일에 사용하도록 해도 무방한지.
⑤ 제**님 : 건설현장 노동자인데, 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아 요양신청을 함. 그러나 불승인결정이 나올 듯. 향후 이의신청 방법은.
⑥ 김**님 : 부당해고구제신청 중입니다. 실업급여 수급이 가능한지요. 부당해고구제신청 접수증을 고용지원센터에 제출하면 구직활동 의무가 면제된다고 하는데 그런지요.
⑦ 이주여성노동자 :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해 출국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같이 근무하는 이주노동자들 모두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함.
⑧ 이**님 : 지난 4월 화상으로 치료 중. 공상처리하고 회사에서 이때까지 치료비 전액을 부담.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회사에서는 미루고 있어 산재처리를 하려고 함. 본인이 해야 된는 것인지.
⑨ 망인의 처 : 10일정도 경영상의 이유로 휴업하던 중 배우자가 자택에서 뇌지주막하출혈로 사망했는데 유족급여를 청구했으나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부지급처분을 받았고 심사청구도 기각되었습니다.  재심사청구 준비 중 다른 지역의 노무사에게 착수금 350만원 지급하고 일을 맡겼습니다.  업무상재해로 인정될 수 있는지요?
⑩ 김**님 : 월 급여를 백만원받기로 하고 일했는데, 아무래도 최저임금에 미달된 것 같습니다. 오후 10시까지 근무한 날도 많고, 토요일도 계속해서 근무했는데 매월 백만원만 받았습니다. 최저임금 미달은 아닌지요.
⑪ 김**님 : 주40시간제 사업장인데요. 회사에서는 1년이 안되어 연차휴가가 없다고 하는데 맞는지요.

2. 상담 및 법률지원활동
 ① 조** (KT) 부당징계구제신청
 ② 김** 외(쌍용자동차) 부당해고구제신청 이유서 제출
 ③ **노조 부당노동행위 고소사건 서면지원
 ④ 이** 요양신청
 ⑤ 남**(00금고) 부당해고구제 재심신청 이유서 제출
 ⑥ 정**(00노조) 임금체불 진정 출석조사
 ⑦ 전**(00노조) 부당징계구제신청 심문회의
 ⑧ 이** 외 (00병원) 임금사건 및 도산등사실인정신청 출석조사
 ⑨ 차운매(이주노동자) 임금사건 출석조사 외 다수의 임금사건 지원


3. 노동인권활동
  ① 노동인권교육활동
- 청주여성인력개발센터 노동법교육
- 충북대학교병원 직장내성희롱예방교육
- 아파트관리종사자의 노동권보호 (교육)
- 화학연합 간부수련회 간부교육

  ② 홍보 및 연대활동
- 경제위기 하 여성노동의 위기와 대안모색을 위한 토론회
- 고정진동목사님 추모사업회 준비모임
- 충청타임즈 상담글 기고
- 충북교육바로세우기 지역주민선언 기자회견
- KBS라디오 인터뷰 : 임금체불 노동자 관련

 

용산국민법정에 참여해 주십시오.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의 이슈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과거이고 현재이다

 

 
                                                                호죽노동인권센터 노무사 조광복

- 이 글은 지난 9월 25일 개최된 전국화학산업노동조합연합 간부수련회의 강의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얼마 전 흥미진진하게 읽은 BIG HISTORY(거대한 역사)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러 과학적인 증거를 취합하여 추정한 지구의 나이를 대략 45억년이라고 하는데) 지구의 나이를 하루 24시간으로 보고 자정에 지구가 시작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최초의 단세포 동물은 새벽 4시쯤에 나타났고 최초의 바다 식물은 저녁 8시 30분쯤에 출현했다.  동물과 식물이 육지로 올라온 시각은 밤 10시쯤이다.  그리고 공룡은 밤 11시가 되기 직전에 나타나서 밤 11시 39분쯤 멸종했다.  인간이 나타난 것은 밤 11시 58분쯤이다. 농업이 시작되고 도시가 건설된 시각은…… 자정에서 불과 몇 초 전이다.”

자신의 현재 혹은 어떤 특정 문제를 위와 같이 과거로부터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때론 깊은 성찰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어보려는 이야기 즉,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금지와 관련된 사안도 그렇습니다.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 문제를 과거로부터 들여다보면 그 속에 우리 사회의 본질이 담겨 있는데 그것은 곧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뒤틀린 걸을 걸어왔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돌아볼 기회도 가질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나마 한국의 노동법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미군정기를 지나고 1948년에 한반도 남쪽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데 그 때 제헌의회가 소집됩니다.  제헌의회에서 제헌헌법을 제정하지요.  제헌헌법에서 보장한 노동권 중에 지금보다 진보적인 측면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근로자의 이익균점권'이라는 것이 있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요.(물론 5.16 쿠데타 이후 삭제됩니다)  제헌헌법에서는 개별 노동자의 노동권 뿐 아니라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도 보장하고 있습니다.

제헌헌법이 제정된 후 노동법이 제정되어야 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지요.  인류가 전쟁을 치른 역사 이래 1,2차 세계대전을 제외하고 국지 전쟁에서 가장 많은 인명이 살상된 비극이었습니다.(사망자 245만명, 참고-베트남전 사망자 120만명)  그 때문에 1953년이 되어서야 노동법이 제정되었어요.  당시 노동법으로는 현역 군인 등 일부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공무원과 교사의 노동3권을 금지하고 있지 않았어요.  물론 독소조항도 있었지만 군사독재만큼은 아니었지요.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승만 정권을 물러나게 한 역사적인 4.19 혁명의 성과를 이어가지 못 하고 곧바로 5.16 군사쿠데타를 맞게 됩니다.  한국은 분단과 전쟁이라는 큰 고통과 함께 군사 정권의 등장이라는 예상치 못한 경험을 갖게 되었는데 이후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무려 30년 이상 지속되었지요.  분단, 전쟁, 군인정권을 통과하면서 한국은 일반 서구와는 다른 사회적으로 매우 뒤틀린 제도와 의식을 형성하게 되지요.  이런 비정상적인 경험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의식의 측면으로나 큰 불행이었습니다.

5.16 쿠데타 이후 군사 권력이 주도하여 노동자들의 집단적 권리를 제약합니다.  노동법을 손질하여 노동조합 활동과 쟁의행위를 제한하고 공무원의 단결권을 배제하였지요.  이 때 매우 중요한 법 규정이 하나 마련되었어요.  바로 복수노조 금지와 관련된 최초의 법률 조항이지요.  1963년 노동조합법에 노동조합의 정의규정을 두면서 “조직이 기존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추가한 것입니다.  이 조항이 1987년까지 그대로 유지되었고 오히려 1987년도에는 복수노조 금지의 범위가 더 확대되지요.  다시 1970년대 10월 유신을 거치면서 또 한 차례 노동법이 바뀌고 노동조합 활동이 제약됩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암울한 시기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때에도 노동자들의 저항은 끊이질 않았어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청계피복노동조합 결성, 동일방적 노동자들의 투쟁들이 이어지고 특히 유신 말기의 YH 노동자들의 투쟁은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또 긴 암흑의 시기가 도래합니다.  이 때 노동법은 또 난도질당하지요.  법에 의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일반적인 노동조합 형태인 산업별 노동조합이 부정되고 기업별 노조를 결성하도록 강제되었습니다.  사업장에서 30인 이상 또는 5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노동조합을 결성하도록 하였습니다.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 신설되고 근속기간 1년 미만인 경우 노동조합 임원으로 피선되지 못 하도록 제한하였습니다.(대학생들의 위장취업 때문이었지요)  또한 공기업과 방위산업체, 공익사업체 등의 쟁의행위가 제한되었지요.  이러한 법 조항들은 모두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해괴한 조항들이었는데 모두가 노동조합 운동이 권력을 위협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과 7,8,9월 노동자 투쟁은 수십 년 간 권력을 유지해 온 군사정권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변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정권의 입장에서도 일정 부분 노동조합 운영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7년 11월 노동법 개정 때에 이러한 요구가 부분적으로 반영되었지요.  그런데 복수노조와 관련한 중요한 법조항 하나가 삽입됩니다.  즉,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과 조직대상을 같이 하거나 그 노동조합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전의 “노동조합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과 조직대상을 같이” 하는 경우까지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부정한 것입니다.  단체 설립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 이런 조항을 두었을까요?  그것은 1987년 7,8,9월 노동자 투쟁을 겪으면서 군사 정권의 입장에서 노동자 집단을 그냥 놓아둘 경우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 더하여 7,8,9월 투쟁의 주역들이 당시 어용노조로 평가받았던 한국노총을 대신하여 새로운 노동조합 단체를 결성할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또 한 번 정권과 노동자들의 대 격돌이 있었어요.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여당의 주도로 새벽에 노동법이 날치기 통과되었습니다.  전국에 총파업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노동자와 여기에 호응한 국민적인 저항에 밀려 김영삼 정부는 날치기 통과한 노동법을 무효로 하고 1997 3월 국회에서 새롭게 노동법을 제정하게 되지요.

이 때 제정된 노동법은 이전 군사정권에서 손질한 노동법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제도가 도입되었어요.  정리해고제 법제화,  노동시간의 유연화(탄력적 근로제 등) 그리고 파견근로제가 법제화되었습니다.  대신에  악법으로 지탄받던 조항이 폐지되거나 완화되었는데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삭제하기로 한 것이라거나(다만 기업 단위의 복수노조는 2001.12.31까지 금지) 노동조합 정치활동을 허용한 것이라거나 3자 개입 금지 조항을 완화한 것이 그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쟁의행위를 위축시키기 위한 조항(예 : 대체근로 허용)이 신설되기도 합니다.  이 때 매우 중요한 조항이 하나 신설되었지요.  바로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이 신설된 것이지요.(이 조항 역시 2001.12.31까지 유보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이전의 군사정권 때의 노동법 개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동문제를 시장 문제로 접근한 최초의 시도입니다.  또 한편으로 군사 정권에서 만들어진 독소조항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조건에 놓였는데 특히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세계적으로도 지탄의 대상이 되었기에 폐기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지요.  그런데 복수노조 금지 조항의 폐지는 정권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자본의 입장에서는 매우 치명적일 수 있었습니다.  사업장 단위에서 자유롭게 다수의 노동조합이 결성될 수 있다는 것은 자본의 입장에서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그 때 내놓은 카드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이었어요.  이것은 실로 절묘한 카드라고 할 수 있었어요.  사실 세계에서 법으로 명문화하여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ILO(국제노동기구)에서도 한국에게 그것은 노사가 자율로 결정할 문제이지 법으로 강제할 문제가 아니라고 권고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중요한 변화는 수십 년 간 군사정권이 권력을 움켜쥐었고 자본은 오히려 그 조력자의 역할을 했던 것인데 군사정권의 퇴조 이후 짧은 순간에 자본이 권력의 중심에 섰으며, 노동법의 개정에도 자본이 직접적인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노동시장 유연화 제도 도입이 그렇습니다.  특히 자본은 자신의 가장 약한 곳인 복수노조 금지 조항 삭제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노동조합의 가장 약한 곳인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도입하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한 것입니다.  만약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이 신설되지 않았더라면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진즉에 폐기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자본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으나 한국은 외환위기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폭풍에 휘말리면서 또 다시 정상적인 자본주의 성장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반공을 명분으로 모든 희생을 강요하였던 우리나라는 이제 IMF 시절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IMF를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비정규직이 확산되었고, 가난한 자와 부자의 격차가 심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급격히 쇠퇴하였으며 노동법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정리해고의 요건을 완화하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비정규직법을 제정하는 등 갈수록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있으며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더욱 더 유연화해야 한다며 그런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도 복수노조 금지 조항 삭제와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은 그것이 미치는 파장 때문에 몇 차례 시행이 유보되었는데 13년이 지나는 2010년 그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를 해 보지요.  복수노조 금지 조항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해괴한 조항입니다.  그 해괴한 조항의 시행을 둘러싸고 노사정이 모두 시끄럽습니다.  세계 보편적 기준대로라면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삭제하기로 한 대로 시행하면 되고 임금 지급 문제는 노사가 자율로 할 것이지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므로 그냥 노사에 맡겨두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슈가 될까요?  바로 우리 사회가 지나온 고통스럽고 뒤틀린 역사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졌습니다.  분단과 전쟁과 군사정권을 거쳤는데 그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반공사상과 억압이 정당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동법을 비롯한 군사정권의 폭압적인 제도는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기는 불가능하였고 이것은 우리 민중의 승리요 힘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군사정권이 거머쥐었던 권력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오지 못하고 시장(즉, 자본)으로 급격히 이동하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고통을 맞이하게 되면서 빠른 속도로 신자유주의의 한 가운데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우리나라 노동법의 역사는 한국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의 핵심이 바로 복수노조 금지와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문제에 대한 지금의 이슈는 우리의 고통스럽고 뒤틀린 역사의 과거이고 현재인 것이지요.

잠깐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하는 정부의 주장을 보겠습니다.  세계의 보편적인 자본주의 사회인 유럽의 경우 산별노조 체제와 기업 내 종업원평의회(또는 직장위원회)의 이원 구조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산별노조 상근자들은 산별에서 채용하므로 당연히 산별노조에서 임금을 지급합니다.(그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업원평의회는 노조는 아니지만 사실상 기업 내 노조의 역할을 하면서 기업 내 근로조건 개선과 경영참가를 위해 산별노조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종업원평의회 전임자는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수십 년 간 군사정권이 기업별 노조를 강제하느라 산별노조와 종업원평의회 제도를 정착시킬 수 없었던 우리나라 노동조합 더러 이제 와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세계의 글로벌 스탠더드라면서 이것을 법제화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거짓말이고 세계에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명문으로 법제화하고 있는 나라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의 연혁을 더듬어보면서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업별 의식을 극복하고 사회 연대 의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업별 의식은 군사정권 시절에 매우 부당하게 강요된 것이지요.  사실상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의 근간에는 이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군사독재가 물러가고 시장독재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지금 과거에 강요받았던 기업별 의식을 가지고서는 절대 엄혹한 노동환경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장이 독재적인 방식으로 지배를 하고 있고, 승자 독식의 사회가 만연하고 있고, 사교육비·의료비 등이 임금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기업 내 임금 인상에 매달리면서 사회의 보편적인 복지 확대 혹은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나몰라라하는 것은 결국 이길 수 없는 도박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편하더라도 끊임없이 이 사회의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연대해야 하고, 함께 힘을 모아서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업별 노조 의식을 가지고는 절대 우리는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가 가르치고 있는 궁극적인 과거와 현재의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 복수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시행을 앞두고 노사정과 노사 주요 단체들이 18일 국회 대회의실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전국농협노조 보은분회 노동탄압을 고발하다

 


                                                          전국농협노동조합 충북본부장 김원만

전국농협노조 보은분회는 농협노조의 역사 상 충북 최초의 농협조조 이다 2001년도 설립하여 8년이 넘은 노동조합으로,
조합원 가입 대상 총85명(비정규17명)중 85명 전원가입으로 노동조합 가입율 100%를 자랑하며, 또한 비정규직도 전원 가입하여 정규직과 함께 투쟁하고 있는 조직이다.

보은분회는 2003년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꾸준히 보충교섭 및 임금교섭을 쟁취하여 왔으며, 임금체계의 성과급 전환과 주5일 근무에 따른 연월차 휴가보상금 지급 축소 및 휴가사용 촉진제,임금 피크제 도입 등에 맞서 꾸준히 투쟁한 결과 모든 것들을 막아내고 호봉제 사수 및 임금피크제, 휴가사용 촉진제 저지, 비정규직의 무기계약 전환 저지, 비정규직 고용유지 확보, 비정규직 성과급 확보 등을 단협으로 쟁취 하였고, 현재는 98~99년 IMF당시 비정규직으로 희생되었던 동지들을 정규직으로 재 전환하는 등 많은 투쟁들을 전개 하여왔다.

이런 과정 속에 보은농협은 2007년 새로운 조합장이 당선되게 된다. 신임 조합장은 당선 되자마자 직원들은 일명 “도둑놈”들로 치부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을 노골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농협은 농민 조합원들의 실익을 극대화 하기위한 하나의 운동체 성격을 가진 “협동조합”이다. 그러하기에 모든 경영이 투명하여야 하고 합리적이며 객관적이어야 한다. 또한 조합장은 농민조합원에 의하여 뽑힌 민선 조합장으로서 협동조합 경영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현 조합장은 독선과 독단으로 보은농협의 경영을 좌지우지 하며, 마치 재벌기업의 총수인 것 처럼 보은농협을 뒤 흔들고 있다. 적자가 예상되는 대도 불구하고, 하루에 1억5 천만원 이나 되는 예산을 들여 농민 조합원에 대한 환심 사기 식의 체육대회를 한다하고, 직원들의 의견이나 제안을 전혀 무시한 체 무리한 사업을 추진하여, 경영을 악화 시키고 있다. 이에 노동조합에서는 의견을 모아 입장을 전달키 위해 인터넷 농협노조 충북본부 카페에 설문을 진행하였고, 이를 전달하려 하였다.

이를 알아차린 조합장 및 사측 경영진은 보은분회 조합원의 아이디와 미밀번호를 이용하여 홈피에 접속하여, 노동조합 활동의 일부인 여론수렴과정에 대하여 개인 및 농협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묻겠다는 등의 협박을 가해 왔다. 뿐만 아니라 업무시간 외로 이루어진 노동조합 교육시간에 찾아와 누구 허락을 받고 노동조합 교육을 하느냐는 등 어처구니 없는 행태를 자행하였다.

조합장은 각 사업장 마다 출근시간 전 조기출근을 강요하여 직원회의를 소집하여, “농협의 직원으로 농민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조합장의 지시를 따라 달라,조합장의 지시를 어기면 농협외의 업무(노조활동)에 대하여 농협을 벗어난 것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급여 지급 시 그만큼을 삭감할 것이다” 라는 등 협박을 가하며 자기의 행위를 정당화 시키려 하였다.  

노동조합이 사측의 불합리한 행위에 대하여 계속하여 지적하고, 행동하려 하자 이번에는 노동조합 충북본부를 맞고 있는 본부장에 대하여, 사전에 한 마디 말도 없이 부당전보를 시키기 까지 하였다.
보은농협 사측의 이런 상식 이하의 행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노동조합을 와해 시키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 노동자들 더욱 단련시켜 뭉쳐지고 강하게 만들 것 이다.

농협노조 보은분회 동지들은 앞으로 사측의 노동조합 탄압 행위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 지더라도 결코 흔들림 없이 민주노조를 사수 하는 것이 즉 우리의 생명임을 안다. 이번일로 모든 조합원이 노동조합의 소중함을 더욱 공감하였고, 결코 지지말자 다짐하였고, 사측의 악날함에 치를 떨었다. 농협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너무 선하고, 순했다. 이제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을 것이다. 부당함에 목소리를 낼 것이고, 우리의 권리에 행동할 것이다.



 

전국농협노조충북본부 홈피에서

 

 안녕하세요?

 


                                                                 비정규직노동자   박  희 숙

저에 사례가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저는2008년 모회사에 구인광고를 보고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비정규직이였지만 1년후에 정규직전환이 가능하다고 하였고 제가평소에 관심을갖고 있었기에 남다른노력이 최선에 선택이라 생각하였기에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법이라는게 사람마져 우습게 만들더군요. 회사에 문제점을 개선 시키고자 건의 사항이 결국 해고에 사유가 되었고 저를 해고 시키고자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은지 영업장 폐쇠를 하더군요.?

엄마들이 직업 전선에서 일 하고자 하는 이유는 적은 돈 이지만 아이들에 교육비에 도움이 될까하고 정직하게 근무 하고자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부당 하다고 생각 되는점도 많이참고 어려움속에서도 근무를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도 기업에 직간접 소비자 입니다. 기업들이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노동자를 노동에 수단으로보고 즉 기업에 목적이 “이윤창출” 에있다고 하지만 부당한 이득에 대해서는 근로자들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거죠? 왜냐하면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인 우리들에 몫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6개월 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고 자꾸만 늘어 나는 비정규직 화를 보면서 가슴이 아파옵니다. 우리는 우리에 자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고 있죠? “직업에 귀천은 없다며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어떠한 직업에 종사 하던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노력한 댓가는 주어지기 마련이고 그게아닐때는 노동에댓가를 정당하게 요구해야하고 자신에 권리는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역시 처음에 해고 통지를 받고 더러워서 그만 둘려고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억울하게 그만두신 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일 망설임 끝에 호죽인권위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근로기준법및 노동법에 관하여 자세히 알고 싶었으며 노동법을 던중 호죽을알게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억울한것은 비정규직이지만 계약기간마져 지키지않고 최소한에 기본이되는 근로계약서 마져 무시한다는 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웃소싱회사 역시 근로자에 억울한 점은 알지만 회사로써도 어쩔수 없다는 소리만 하더군요 자신들에 근로자 마져 보호 할수 없는 회사에서 근로자를 고용하고 소위전문인재를 파견한다고 합니까? 그러한점을 이용하는 대기업에 횡포를 그냥볼수만은 없었기에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비정규직에 문제는 일상화 되었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들을 정리하여 조광복 노무사님을 찾아 갔습니다. 그곳에는 저와 같은 민원일 들로 바빠보였으며 그 바쁜틈에도 나에 일인양 많은도움을 주셨습니다. 이분들이 뒤에 계셨기에 저역시 이번에 승리로 이끌어 낼수 있었으며 계약기간 불이행 임금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어머님들 자신에 부당한 대우나 근로에 부당성이 있다고 생각 되시면 호죽에 문을 두드리세요. 항상 여러분에 인권을 대변해 주시는 호죽노동인권센터와 민주노총이 여러분에 대변인이 되어주실겁니다.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 고통입니다.
  땀을 흘릴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것은
  ...... 죄악입니다.
 

 

궁금한소식 전합니다.

 

* 공무원노조 탄압 규탄 기자회견
- 2009.9.29. 오전 11시 한나라당사앞
- 연대부탁드립니다.

* 충북교육바로세우기 지역주민선언
- 서명 부탁드립니다.
- 학교에서 일제고사 성적올리기에 혈안이되어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뭘 배우라는 건지.

* 노동악법 개악저지 투쟁 선포 결의대회
- 일시 : 2009.10.10. 오후 3시
- 장소 : 상당공원

* 단양버스 노동탄압 여전합니다.
- 단양버스노동조합은 미치도록 투쟁하고 있습니다.
- 지지와 격려 부탁드립니다.

* KT민주동지회 힘내십시오.
- 조**동지 부당징계구제신청 위임받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 노동조합 선거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 지지와 격려 부탁드립니다.

* 청주대시설분회 조합원 임금사건 진행중입니다.
-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적극 나섰습니다.
- 연세드신 조합원의 눈물섞인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 일하면 언제든 임금은 주겠지 했지. 산떠미같은 일을 보고 어떻게 안할 수가 있어."


 


후원계좌 알려드립니다.
401821-51-001634 / 농협
호죽노동인권법률센터

 

충북 청주시 상당구 흥덕구 미평동 35-17번지 2층 호죽노동인권센터 공동대표 조순형. 이정훈.
Tel : 043) 286-9596, Fax : 043) 286-9598,http://www.cbnodong.org/hojuk/hojuk.ht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