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의 이슈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과거이고 현재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의 이슈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과거이고 현재이다



- 이 글은 지난 9월 25일 개최된 전국화학산업노동조합연합 간부수련회의 강의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얼마 전 흥미진진하게 읽은 BIG HISTORY(거대한 역사)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여러 과학적인 증거를 취합하여 추정한 지구의 나이를 대략 45억년이라고 하는데) 지구의 나이를 하루 24시간으로 보고 자정에 지구가 시작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최초의 단세포 동물은 새벽 4시쯤에 나타났고 최초의 바다 식물은 저녁 8시 30분쯤에 출현했다.  동물과 식물이 육지로 올라온 시각은 밤 10시쯤이다.  그리고 공룡은 밤 11시가 되기 직전에 나타나서 밤 11시 39분쯤 멸종했다.  인간이 나타난 것은 밤 11시 58분쯤이다. 농업이 시작되고 도시가 건설된 시각은…… 자정에서 불과 몇 초 전이다.”


자신의 현재 혹은 어떤 특정 문제를 위와 같이 과거로부터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때론 깊은 성찰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어보려는 이야기 즉, 최근 현안이 되고 있는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금지와 관련된 사안도 그렇습니다.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 문제를 과거로부터 들여다보면 그 속에 우리 사회의 본질이 담겨 있는데 그것은 곧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뒤틀린 걸을 걸어왔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돌아볼 기회도 가질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나마 한국의 노동법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미군정기를 지나고 1948년에 한반도 남쪽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데 그 때 제헌의회가 소집됩니다.  제헌의회에서 제헌헌법을 제정하지요.  제헌헌법에서 보장한 노동권 중에 지금보다 진보적인 측면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근로자의 이익균점권'이라는 것이 있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요.(물론 5.16 쿠데타 이후 삭제됩니다)  제헌헌법에서는 개별 노동자의 노동권 뿐 아니라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도 보장하고 있습니다.


제헌헌법이 제정된 후 노동법이 제정되어야 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지요.  인류가 전쟁을 치른 역사 이래 1,2차 세계대전을 제외하고 국지 전쟁에서 가장 많은 인명이 살상된 비극이었습니다.(사망자 245만명, 참고-베트남전 사망자 120만명)  그 때문에 1953년이 되어서야 노동법이 제정되었어요.  당시 노동법으로는 현역 군인 등 일부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공무원과 교사의 노동3권을 금지하고 있지 않았어요.  물론 독소조항도 있었지만 군사독재만큼은 아니었지요.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승만 정권을 물러나게 한 역사적인 4.19 혁명의 성과를 이어가지 못 하고 곧바로 5.16 군사쿠데타를 맞게 됩니다.  한국은 분단과 전쟁이라는 큰 고통과 함께 군사 정권의 등장이라는 예상치 못한 경험을 갖게 되었는데 이후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무려 30년 이상 지속되었지요.  분단, 전쟁, 군인정권을 통과하면서 한국은 일반 서구와는 다른 사회적으로 매우 뒤틀린 제도와 의식을 형성하게 되지요.  이런 비정상적인 경험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의식의 측면으로나 큰 불행이었습니다.


5.16 쿠데타 이후 군사 권력이 주도하여 노동자들의 집단적 권리를 제약합니다.  노동법을 손질하여 노동조합 활동과 쟁의행위를 제한하고 공무원의 단결권을 배제하였지요.  이 때 매우 중요한 법 규정이 하나 마련되었어요.  바로 복수노조 금지와 관련된 최초의 법률 조항이지요.  1963년 노동조합법에 노동조합의 정의규정을 두면서 “조직이 기존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추가한 것입니다.  이 조항이 1987년까지 그대로 유지되었고 오히려 1987년도에는 복수노조 금지의 범위가 더 확대되지요.  다시 1970년대 10월 유신을 거치면서 또 한 차례 노동법이 바뀌고 노동조합 활동이 제약됩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암울한 시기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때에도 노동자들의 저항은 끊이질 않았어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청계피복노동조합 결성, 동일방적 노동자들의 투쟁들이 이어지고 특히 유신 말기의 YH 노동자들의 투쟁은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또 긴 암흑의 시기가 도래합니다.  이 때 노동법은 또 난도질당하지요.  법에 의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일반적인 노동조합 형태인 산업별 노동조합이 부정되고 기업별 노조를 결성하도록 강제되었습니다.  사업장에서 30인 이상 또는 5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노동조합을 결성하도록 하였습니다.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 신설되고 근속기간 1년 미만인 경우 노동조합 임원으로 피선되지 못 하도록 제한하였습니다.(대학생들의 위장취업 때문이었지요)  또한 공기업과 방위산업체, 공익사업체 등의 쟁의행위가 제한되었지요.  이러한 법 조항들은 모두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해괴한 조항들이었는데 모두가 노동조합 운동이 권력을 위협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과 7,8,9월 노동자 투쟁은 수십 년 간 권력을 유지해 온 군사정권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변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정권의 입장에서도 일정 부분 노동조합 운영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7년 11월 노동법 개정 때에 이러한 요구가 부분적으로 반영되었지요.  그런데 복수노조와 관련한 중요한 법조항 하나가 삽입됩니다.  즉,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과 조직대상을 같이 하거나 그 노동조합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전의 “노동조합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과 조직대상을 같이” 하는 경우까지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부정한 것입니다.  단체 설립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 이런 조항을 두었을까요?  그것은 1987년 7,8,9월 노동자 투쟁을 겪으면서 군사 정권의 입장에서 노동자 집단을 그냥 놓아둘 경우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에 더하여 7,8,9월 투쟁의 주역들이 당시 어용노조로 평가받았던 한국노총을 대신하여 새로운 노동조합 단체를 결성할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또 한 번 정권과 노동자들의 대 격돌이 있었어요.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여당의 주도로 새벽에 노동법이 날치기 통과되었습니다.  전국에 총파업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노동자와 여기에 호응한 국민적인 저항에 밀려 김영삼 정부는 날치기 통과한 노동법을 무효로 하고 1997 3월 국회에서 새롭게 노동법을 제정하게 되지요.


이 때 제정된 노동법은 이전 군사정권에서 손질한 노동법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제도가 도입되었어요.  정리해고제 법제화,  노동시간의 유연화(탄력적 근로제 등) 그리고 파견근로제가 법제화되었습니다.  대신에  악법으로 지탄받던 조항이 폐지되거나 완화되었는데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삭제하기로 한 것이라거나(다만 기업 단위의 복수노조는 2001.12.31까지 금지) 노동조합 정치활동을 허용한 것이라거나 3자 개입 금지 조항을 완화한 것이 그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쟁의행위를 위축시키기 위한 조항(예 : 대체근로 허용)이 신설되기도 합니다.  이 때 매우 중요한 조항이 하나 신설되었지요.  바로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이 신설된 것이지요.(이 조항 역시 2001.12.31까지 유보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이전의 군사정권 때의 노동법 개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동문제를 시장 문제로 접근한 최초의 시도입니다.  또 한편으로 군사 정권에서 만들어진 독소조항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조건에 놓였는데 특히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세계적으로도 지탄의 대상이 되었기에 폐기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지요.  그런데 복수노조 금지 조항의 폐지는 정권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자본의 입장에서는 매우 치명적일 수 있었습니다.  사업장 단위에서 자유롭게 다수의 노동조합이 결성될 수 있다는 것은 자본의 입장에서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그 때 내놓은 카드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이었어요.  이것은 실로 절묘한 카드라고 할 수 있었어요.  사실 세계에서 법으로 명문화하여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ILO(국제노동기구)에서도 한국에게 그것은 노사가 자율로 결정할 문제이지 법으로 강제할 문제가 아니라고 권고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중요한 변화는 수십 년 간 군사정권이 권력을 움켜쥐었고 자본은 오히려 그 조력자의 역할을 했던 것인데 군사정권의 퇴조 이후 짧은 순간에 자본이 권력의 중심에 섰으며, 노동법의 개정에도 자본이 직접적인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노동시장 유연화 제도 도입이 그렇습니다.  특히 자본은 자신의 가장 약한 곳인 복수노조 금지 조항 삭제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노동조합의 가장 약한 곳인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도입하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한 것입니다.  만약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이 신설되지 않았더라면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진즉에 폐기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자본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으나 한국은 외환위기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폭풍에 휘말리면서 또 다시 정상적인 자본주의 성장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반공을 명분으로 모든 희생을 강요하였던 우리나라는 이제 IMF 시절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IMF를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비정규직이 확산되었고, 가난한 자와 부자의 격차가 심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급격히 쇠퇴하였으며 노동법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정리해고의 요건을 완화하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비정규직법을 제정하는 등 갈수록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있으며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더욱 더 유연화해야 한다며 그런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도 복수노조 금지 조항 삭제와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은 그것이 미치는 파장 때문에 몇 차례 시행이 유보되었는데 13년이 지나는 2010년 그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를 해 보지요.  복수노조 금지 조항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은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해괴한 조항입니다.  그 해괴한 조항의 시행을 둘러싸고 노사정이 모두 시끄럽습니다.  세계 보편적 기준대로라면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삭제하기로 한 대로 시행하면 되고 임금 지급 문제는 노사가 자율로 할 것이지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므로 그냥 노사에 맡겨두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슈가 될까요?  바로 우리 사회가 지나온 고통스럽고 뒤틀린 역사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졌습니다.  분단과 전쟁과 군사정권을 거쳤는데 그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반공사상과 억압이 정당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동법을 비롯한 군사정권의 폭압적인 제도는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기는 불가능하였고 이것은 우리 민중의 승리요 힘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군사정권이 거머쥐었던 권력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오지 못하고 시장(즉, 자본)으로 급격히 이동하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고통을 맞이하게 되면서 빠른 속도로 신자유주의의 한 가운데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우리나라 노동법의 역사는 한국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의 핵심이 바로 복수노조 금지와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문제에 대한 지금의 이슈는 우리의 고통스럽고 뒤틀린 역사의 과거이고 현재인 것이지요.


잠깐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하는 정부의 주장을 보겠습니다.  세계의 보편적인 자본주의 사회인 유럽의 경우 산별노조 체제와 기업 내 종업원평의회(또는 직장위원회)의 이원 구조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산별노조 상근자들은 산별에서 채용하므로 당연히 산별노조에서 임금을 지급합니다.(그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업원평의회는 노조는 아니지만 사실상 기업 내 노조의 역할을 하면서 기업 내 근로조건 개선과 경영참가를 위해 산별노조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종업원평의회 전임자는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수십 년 간 군사정권이 기업별 노조를 강제하느라 산별노조와 종업원평의회 제도를 정착시킬 수 없었던 우리나라 노동조합 더러 이제 와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세계의 글로벌 스탠더드라면서 이것을 법제화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거짓말이고 세계에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명문으로 법제화하고 있는 나라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의 연혁을 더듬어보면서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업별 의식을 극복하고 사회 연대 의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업별 의식은 군사정권 시절에 매우 부당하게 강요된 것이지요.  사실상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의 근간에는 이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군사독재가 물러가고 시장독재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지금 과거에 강요받았던 기업별 의식을 가지고서는 절대 엄혹한 노동환경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장이 독재적인 방식으로 지배를 하고 있고, 승자 독식의 사회가 만연하고 있고, 사교육비·의료비 등이 임금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기업 내 임금 인상에 매달리면서 사회의 보편적인 복지 확대 혹은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나몰라라하는 것은 결국 이길 수 없는 도박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편하더라도 끊임없이 이 사회의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연대해야 하고, 함께 힘을 모아서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업별 노조 의식을 가지고는 절대 우리는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가 가르치고 있는 궁극적인 과거와 현재의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