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습작 - 너를 위하여 2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말한다.

- 네가 하지 못 한다는 것을 알아.

옆얼굴을 보인 채, 괜찮아. 하고 말하는 듯 했지만 그러진 않았다.

- 쟝, 네겐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지. 싱글맘이고 연계가 많은 친족들이 주변에 있고 네가 할 수 만 있다면 돌봐드리고 싶은 홀어머니들도 있지. 네가 생계지책이자 의미를 갖고 있는 낮의 직업도 있는데, 주변을 챙기고 아이들을 건사하면서 그 틈바구니에서 애착할 만한 여가를 내기는 어렵고 또 가능하지도 않지.

 

" 오히려 내가 그애를 챙겨주어야 해. "

그녀가 그렇게 지칭하는 것을 보자, 이제 거의 다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진의 머리를 스쳐갔다.

" 근 열흘을 아이들을 챙길 시간이 없어 '방치'하고 있다고 말하기에 내가 봐줄까? 했지만... "

그녀는 자신이 그럴 필요가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고 한 번 말해봤다고. 역시나 지척에 사는 친지들이 있으니. 하는 대답을 들었다고. 언제부터였을까. 그의 가족들을 질투의 감정으로 표상하게 된 것은.

" 같은 동네에 살면서 자주 왕래하고 싶었지만 역시 같은 동네에 사는 친족들이 있어서. "

한때는 같은 건물의 아래위층으로 살면 누구보다 더 자주 내왕하며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 나아가 한 집에서 살고 싶어하기까지 했었지. 혜정, 너는.

진은 그녀가 마저 하지 않은 말을 혼자 들은 듯이 생각을 이어갔다.

- 네가 그런 순진한 꿈을 꿀 때에 쟝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 그애는 자신에게 손 내미는 사람들의 손을 일일이 다 잡아주느라고, 특별히 나한테만 오래 머무를 수가 없어. 왜 그러겠어. 내가 그에게 무어라고. "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지, 그가 자신을 만나 좋았던 것이 무엇이었을 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 오래는 아니었지만.

" 게다가 그애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야. 그 자신도 말했지만. 타인에게 자기를 투영하거나 혹은 의존하지 않으니까. 상대방을 인정하고 적절한 관계를 맺고 가능한 선린우호적으로 유지, 발전시켜 나가지. "

" 적절하다는 표현은 모호한데? "

진은 마치 상담자라도 되는 양, 내담자에게 생각을 명료화시켜보라고 주문했다.

" 예를들면, 현성은 짤렸어. "

" 뭐라고? "

" 현성이 지지부진하게 하소연만 계속하면서 제 이기심을 숨기는 것을 눈치챘을꺼야. 그애는 현성에게 자신으로서는 해 줄 말이 없다고 말했대. 그래서 현성은 더 이상 그애에게 상담하는 걸 포기했고. "

혜정은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 현성은 어째서 그 애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고 객관적인 조언을 잘 해 주는가고 내게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건 그애의 탓이 아니라 현성이 잘못된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뭐...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거지. 좀 비겁하기도 하고, 부르조아적 이데올로기에...속물적이라서. "

그녀는 하하. 하고 웃는다.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경멸한다는 표현을 할 때에는 늘 그렇듯이. 악의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해.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다.

" 적어도, 물론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애에게 있어 현성보다 내가 더 호감가는 사람이라는 것이지. 뭐..."

금방 다시 풀이 죽는 그녀.

" 주변의 여러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더 그런 건 아니지만. "

진은 그녀를 위로하듯 말했다.

" 특별해. 특별히 더 자주 연락하고 다른 친구들을 거의 못 보고 있어도 너만을 달을 넘기지 않고 만나려고 애쓰쟎아. "

위로가 되진 않았을 것 같다.

" 달을 넘기지 않고. "

그래...하고 그녀는 지난 몇 개월 간의 줄다리기를 끝내기 위해 자신이 한 일은 그저 줄을 놓아 버린 것 뿐이었으며, 그 결과 달에 한 번 정도는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료히 했다.

" 나는 그애의 친족들보다 더 가깝지 않아. 물적 거리로나, 감정적 유대로나, 때론 관념적 의식으로도. "

그녀는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더 구부린다는 듯이 덧붙였다.

" 그애는 맑시스트가 아니야. 어쩌면..."

- 천막에서의 나는 그애가 투쟁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틈틈이 가족들과 주변을 챙기기 위해 외출하는 것을, 정세를 분석하고 판단할 수 없어 고뇌하는 내 앞에서 다른 이야기, 어머니의 생신이라던가 누구가 어때서 무슨 일이 있어서...뭐라고 말하고 있는 그애의 얼굴을 보면서 그래서, 그래서 넌 안되겠다는 거구나. 넌 할 말이 없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애에게 그래, 그렇구나. 하고 대답은 해 주었지만 그건 다 너의 사생활이다. 왜 너는 이 투쟁의 와중에서 동지인 내게 그런 얘기를 하는 거니. 하는 속말을 했었다.

" 어쩌면 처음 그애에게 호감을 느꼈던 투쟁의 시기에서부터 나는 그애의 가족들을 질투했었는 지 모르지만. 그 때부터 항상 그애가 맑시스트가 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작업을 했지만 그애는 그렇게 되지 않았어. 마치, 언어를 배우는 아이들의 시기가 있는 것처럼, 이십대가 지난 사람들에겐 의식화가 안되는 것 같아. "

물론 시대의 영향도 있지. 하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리고 뭐 이 나이가 되어선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냐는 표정으로 그녀는 한숨을 쉬며 단언했다.

" 그애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아. "

그애가 곁을 주지 않고 자주 만나 함께 하지 않고 일상의 동행이 되지 못 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다. 진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있으랴. 진에게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 그애가 애착하는 성격이 아니므로 내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말은 할 필요 없어.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 하고, 받지 못 하기 때문에 나 또한 주지 않겠다 해서 뭐가 잘못이야. 그애에게나, 남편에게나. "

사랑받는다는 느낌없이 상대를 계속 생각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건 그저 생각의 테 안에 있을 뿐, 교환을 통해 실재하는 사랑이 될 수 없으므로.

- 나는 슬프고 그리하여 불행하다. 하는 생각을 갖고는 일상이 너무 힘들다. 하는 그녀.

" 괜찮아. 그애는 바쁘고, 바쁜 와중에 내게 전화를 하고 언제쯤 만나자 하고 기약을 해 주니. 내가 그만큼의 의미로 그애에게 있으니. 남편이 그렇듯, 그애가 내 일상의 동행이 되어 늘 재미진 말만 곁에서 해 주겠다 하지 않는다 해서 버려버릴 순 없쟎아. "

- 그정도의 거리와 관계를 두고 그네들과 소통하겠다. 하는 그녀.

" 너를 사랑한다고 할꺼야. 그...는. 말로나...행동으로나. "

그녀는 한 번 치어다 보았지만, 곧 고개를 돌린다. 무심하고도 냉정한 낯빛으로.

" 나는 사랑하지 않아. 그애도, 남편도. "

- 내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시간 나면 하고 마는. 여유가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나를 내처두고 내게 보답받기를 바랬더냐. 내가 서운타. 하고 몇 수 십번을  호소했건만 응분의 행위를 보여주지 않았는데, 내가 그걸 덮고 여전히 연인으로, 아내로 있을 줄 알았더냐. 네가 그리 자신만만하더냐. 내가 그리 얕보이더냐...

 

" 내가 다시 그애와 자는 일은 없을꺼야. "

남편에게 그랬듯, 그녀는 정서가 없으므로 몸을 함께 하지 않으리라 하였다.

쟝은 이런 그녀의 변화를 알까. 알아챘을까? 아마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