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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2

그녀는 열 아홉살이었다. 

입시 스트레스에 치여 지내야 했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두번 째 해에.

1학년 때부터 성적을 강조하는 분위기의 교실에서 혼자 딴짓하기만을 계속 하던 그녀는 전혜린을 함께 읽는 짝궁을 만나 한때 행복했노라 하였다. E.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한 열망을 키웠으며 소유냐 존재냐 혹은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있는 짝궁을 경외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수업시간 중에나 아니나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감상을 짧게 혹은 길게 휘갈겨 쓴 쪽지를 짝궁에게 보내고 또 받으며 사고를 진전시켰으며 점심시간 내내 서로 아무 말 없이도 운동장을 돌며 산책을 계속 하기도 했다. 교환일기, 그걸 쓰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제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랑의 대상이 짝궁이 아니어도, 부드러운 센티멘탈리즘에 빠져 글을 쓰다 보면 제가 사랑에 대해 쓰고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고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한없이 낭만적인 상념에 빠져들고 있었다. 청회색, 그녀는 자신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은 그런 색조로 물들어있었다고 말했다.

- 고등학생이 되면 다를 줄 알았어.

그녀는 열다섯살을 넘긴 중학시절에 사춘기를 졸업했고 인식은 꽃처럼 지평을 넘고자 했다. 사상, 자유, 학문과 사랑,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은 국어선생님과 작문, 세계사, 그리고 지리 선생님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졌으나 교과의 내용과 진도, 시험문제 따위를 통해서는 충족될 수 없었다.

- 국어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학교에 있지 않았을 지도.

그녀는 특히, 2학년이 되어 짝궁이 이과를 택해 다른 반이 되자 더더욱 외로움을 느끼며 그리 말했다. 선생님을 따라 스카우트활동을 했으나 교실보다 더 밀접하고 가까운 교우관계를 형성해야 할 단실에서 그녀는 더 두드러지게 외돌아졌을 뿐이었다.

- 군중 속에 묻혀있으면 말없이 있어도 티가 안 나는데...

그녀는 동급생들이 떠들어대는 어떤 화제에도 동참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소재에도 그녀는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기에. 티비를 보지 않았으므로 연예인의 이름을 몰랐고, 엄마가 사다 준 시장의 옷 외에는 입어본 적이 없으므로 브랜드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하다못해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상급생 오빠에 대해서도 함께 손 붙잡고 매점을 오가면서 수다하는 친구가 없으니 아는 척할 만한 이름이 없었다.  말참견을 할 수 없으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밖에. 댓거리를 안 하는 그녀에게 아이들은 더 말 붙이지 않았고 떠들고 있는 아이들과 나란히 테를 만들고 있기는 점점 힘든 일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등을 보인 아이들의 테두리 밖에 혼자 앉아 있거나 앉아있다가 창 밖을 보거나 얘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는 하나 못내 궁금증을 못 이겨 아까 읽던 책을 다시 펴 들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떤 아이였느냐 하면,  조용하고 책을 좋아하고 아는게 많은, 한마디로 공부 잘 하고 재수없는 여자애였다. 중학시절부터 고교시절에도 내내.

똑똑한 아이. 라는 레테르는 이미 중학시절에 붙여졌었다. 같은 반이 아니어도 진은 그런 말을 아이들이 아니라 선생님에게서 들었었다. 교무실이나 음악실을 오가면서 선생님들은 아주 유식한 애가 하나 있다고. 수업 중에 나오는 인명이나 지명을 다 알아 먹는 다고. 공부도 잘 하고, 괴테의 소설을 읽고 있던데 아주 문학소녀야. 하면서 문과계열의 선생님들은 수업할 맛이 난다고 하였었다. 덕분에 한때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하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스파르타요. 아테네요. 하고 대답하는게 유행이었다. 

그녀는 소통이 되는 토론식 수업이 가능했다면 학교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녀는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걸 좋아했다. 알고 아는 것을 넓혀가고 넓은 지식의 세계에서 진리를 깊이있게 탐구하고 싶어했다. 세계, 인식, 영원한 것과 삶의 진리, 세계사의 필연과 결론에 대해. 인문계 고등학교란 아마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또 논구하는 곳일 것이다. 그녀는 독일의 짐나지움 혹은 프랑스의 대학과 같은 분위기에서 학문에 몰입하고 싶어했다. 알지 않고서 어른이 되는 것, 사회에 나아가는 것에 대해 그녀는 겁내 했고 경험하기 전에 먼저 인식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한국의 고등학교란 그런 곳이 아니다.

그녀가 성적을 떨어뜨린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어쩌면 그걸 통해 묻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수업을 잘 듣지 않았으나 그건 교과서 몇 페이지의 진도를 나가는 데 40여분의 수업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5분이면 읽을 수 있었고 읽은 것을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부연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범위에 입각하여 공부를 하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무의미하거나 나아가 가식적이고 굴종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성의 없이 시험을 치르거나  답안지를 한 줄로 메꾸었고 한번은 이름만 기재한 빈 답안지를 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담임에게 불려갔고 원하는 내용의 피드백이 아닌 질타와 걱정만 한 아름 듣고 돌아와 이후 선생에 대한 기대를 끊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학교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학교는 어떤 필요가 있는가. 대학을 가기 전에 거쳐가는 기관으로만 존재했다. 그런데 그건 이미 한국의 모든 학생들과 그 부모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걸 부러 깨닫거나 또 절망하는 것은 오직 그녀에게만 새삼스러운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절망했고 몹시 우울해했다. 그녀가 마음 둘 곳 없이 방황을 계속 하면서 그렇게 무미건조한 채 조금씩 웃게 된 것은 그저 실소였으나, 그 미소를 통해 아이들과 친해지게는 되었다. 2학년 시절 한 패의 친구들과 떠들고 웃고 떡복이집이나 나이트를 가게 되는 것. 그 속에서 그녀는 아이들과 친한 척 했으나 그건 그저 1학년 때의 짝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겐 무엇이 필요했을까.

마음을 나누며 동문수학할 벗이 필요했다. 혹은 연인이 필요했을 지도.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그때 열 아홉살의 물 오른 처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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