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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

왜 공통점으로 느껴지는 지?

상실의 시대를 언젠가 우연히 본 후 소설을 봐야 겠다 싶었던 차에 역시 우연히( 이경우 볼꺼리를 찾다가 쉽게 선택하게 되었다는 의미) 읽게 되었는데 걍 하룻밤에 다 봤다. 흠. 뭐...하루끼, 유명할 만 하네.

소설 속의 등장인물 중 한명이 독서함에 있어 죽은 지 삼십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안 본다기에 슬쩍, 난 봐 줬다, 하루끼. 하고 생각했는데 그건 걍 워낙 베스트셀러 어쩌고 하는 현대문학을 별로 신용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하루끼가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해 한 말과 같다. 검증되지 않은 작품을 읽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ㅋ

한 사나흘 두고 다시 읽어보았는데 트란 안 홍의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에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인지된다... 뭐...정서적으로 나는 69년 즈음의 일본에서 그냥...막 상실감을 몽환적으로 느끼고 있는 대학생에게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와타나베가 동경대학이라던가 외무성이라든가 그런 출세주의에 관심이 없었다 해도 말이다. 그 시대는 좀더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었던가? 68혁명의 소식이 들렸을 것이고 전공투가 분전하고 있었을 텐데. 물론 와타나베의 눈에 비친 운동권학생들이 허구적이고 또 비겁한 모습을 보였다 했을지라도. ( 생각건대 타인의 허물이 나의 부족함을 상쇄시킨다고 느끼는 것은 그의 말 마따나 자신에게 관대한 처사일 것이다. )

어쨌든 소설 한 권에서 죽음이 네 번이나 나온다는 것에, 그것도 등장인물들이 그 죽음에 꼬리를 잇는 충격과 후유증을 보인다는 것에 참으로 '상실감'을 아니느낄 수 없다. ( 기즈끼의 죽음, 그 이전에 있었던 나오코 언니의 죽음, 소설 중간의 미도리 아버지의 죽음, 소설 후반의 나오코의 죽음...음....장례식장에 계속 서 있는 기분이다. ) 마지막 장면인 공중전화부스 안에서의 외침은 거의, 뭉크의 외침을 떠올리게도 하는. 자아상실의 위기? 시대의 무게에 눌려 있는? 절망과 회한의 분위기. 참.

 

근데, 왜 나는 천원도 아니고 만원이나 들여 집에서 죽때리며 시청하신 엄태웅, 한가인의 건축학개론에서 저 소설을 떠올리는쥐? 아, 누구는 수지...의 영화라고도 하더만. ( 사실, 난 수지...를 잘 모르는 관계로...한가인도 말죽거리잔혹사에서밖에 못 봤고, 그저 엄태웅이 맘에 들어 봤다, 저 선덕여왕에서부터 시라노연애조작단을 거쳐 최근 종영된 적도의 남자까지 본 김에. 그래서 알게 되었는데 엄태웅이 좋은 이유는 끝까지 화내지 않고 목청을 돋우다가도 말끝은 확 떨어지는 것 때문이다. 나는, 부드러운 남자가 좋다. ㅋㅋㅋ )

근데 건축학개론도 곱씹어 생각하면 영 재수...쩐...다. 뭐시냐 긍께 한가인이 키크고 잘 생기고 돈 많은 건축학과 선배같은 남자만 좋아하고 아나운서 시험에 떨어질 것이 예상될 만큼 돈 잘 벌 것같은 직업을 못 가지면 적어도 돈 잘 버는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대학 1학년생이었는데...주인공남자애는 그녀가 순결을 버린 것 같으니깐 포기했고 이후에 다시 만났지만 의사남편과 이혼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 위자료 챙기는데 열심인 것을 보고 별로, 다시 대시할 마음도 안 생겼다. 뭐 이런...? ( 뭐... 내가 좀 부정적이고 냉소적인거겠지만...난 음치라 기억의 습작인가 하는 음악에도 별로 가슴 시리지 않아서리...첫사랑 어쩌고 하는 감성에는 영 필이 안 온 관계루.)

 

게다가 난 왜 건축학개론 영화보면서 그 대학시절 나오는 모습에서, 남자주인공과 양서연이 만나는 장면에서 와타나베와 미도리가 만나는 걸 떠올렸는지? 일주일 간격으로 본 소설과 영화라서 그런가? 대학 1학년생, 남자애는 적당히 가난하고 여자애는 아버지가 병들어서 곧 죽거나 죽게 된다. 그리고 여자애는 부자가 되고 싶어하거나 암튼 그런 것에 예민하다. 이 두 남녀 대학생은 똑같이 시대의 문제엔 관심이 없거나 직면하지 않는다. 흠....2012년에 개봉된 건축학개론의 현재시점에서 15년 전이면 90년대 중반인가? 5월투쟁이나 대학생분신행렬이 있었던 즈음에서 별로 멀지 않은 데, 하긴 90년대 학번들은 뭘 모르는 시대니깐, 참...건축학개론 듣는 학생들의 모습은 평화롭기도 하더라...암튼, 두 소설과 영화가 십오년쯤 전을 회상하는 것도 그렇고 그 시대가 운동의 끝물인 것도 그렇고 두 남녀 대학생의 연애, 할까 말까 하는 그 분위기도 그렇고 비슷하게 느껴진다. 건축학개론 작가가 상실의 시대를 감명깊게 본 거 아닐까? ㅋㅋ

암튼 스무살짜리들이란.

그렇게나 풋풋하다는게 참.

요해가 안 가는 군.

하긴 지금 조카들 나이가 그 정도 되다 보니 증말 어려보이긴 하다. ( 그려, 나는 신사의 품격을 수놓고 있는 꽃미남들과 동년배다....갸들도 어려보인다...)

우리들의 80년대는 무척...특이하여서...스무살엔 인생을 걸고 세상을 어떻게 엎어야 하나, 뭐 이딴 걸 고민했었는데. 그 때 속썩이던 민족주의 어쩌고 하는 자들이 불혹넘은 나이에 머리끄덩이 잡으면서 난장치는걸 보니 역시 뽑지 못 한 쭉정이가 그예 농사를 망치는 구나 싶다. 불쌍한 우리의 영원한 소수파들, 대체 우린 언제 볼키( 다수파 ) 가 되나. 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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