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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일상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것도 딸려오게 하는 일은 흔하디 흔하다. 오죽하며 끼워팔기로 내는 순익이 본품의 그것보다 더 많다는 말이 있을까. 정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인은 그래서 딸려온 원두커피 박스 안의 비스켓을 튿어 금장 접시에 담아 내어놓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손님들은 대접받는 다는 기분을 더욱 한껏 느끼며 잘 차려입은 양장 위로 과자가루가 떨어지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비싸 보이는 비스켓 하나를 꼭 집어들곤 하였다. 그리고 어지간해도 협상이 인연끊을 만큼의 결렬로 끝나는 일도 없게 되었다. 회사 입장으로선...하면서 예인을 향해 호감어린 미소를 지어보이는 영업팀장들은 꼭 다음 약속을 남기곤 했다. 그래 그러니까...

예인은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도 이혜정 작가 자체로 예인엔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긴 그런 타산이 다 무엇일까. 오직 냉정한 비즈니스로 이 감독을 영입한 것도, 아니 기획사 자체를 차려낸 것도 아니었으니 세세한 자기합리화까진 필요 없을 것이다. 결국 인생은 제가 원하는 대로 틀어가게 되는 법이다. 그녀가...

본 건물은 금연건물입니다. 라는 표지가 입구와 계단 층마다 붙어있었다. 그렇다고 주로 촬영현장으로 쓰이는 스튜디오들 안에서 금연을 지키게 하기는 어렵다. 카메라에 냄새가 담기지는 않으니...자고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스모킹이라는 영화제목까지 나왔겠는가. 그렇다 해도 예인은 하얀 빵모자와 돗트프린트의 쉬폰스카프가 어울리는 그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잘 연상이 되지 않았다. 저기, 복도의 끝에 화재대비용으로 설치된 발코니에 한쪽 어깨가 보이는 것이 분명 그녀일 것이라고 확신을 해도 말이다. 그녀를 지키듯 발코니로 나가는 문 한 가운데 서서 역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은 선배이다. 그녀의 어깨 높이에 머리가 있는 것을 보니 발코니 바닥에 쭈구리고 앉아있는 것이 틀림없다. 오피스텔 안에도 작지만 베란다가 있는데. 예인은 왜 그들이 굳이 저기 나와 있는 지를 모르겠어서 잠시 멈춰 서 있었다. 복도의 반대쪽으로 갈까. 아님 주거용 오피만 있는 탑층에 제가 올 일이 없는데 마주치면 난처하니 얼른 도로 내려갈까....하지만 발코니에 나와 앉은 그들은 뒤를 돌아보거나 금방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녀가 의자에 앉아 있는 것 같으니, 그건 일부러 집 안에서 들고 나왔다는 것일테니...

예인은 항상 그녀를 볼 때마다 뭔가 속이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낯빛이 비교적 희거나 화색이 돌때도 그녀는 표정이 가볍지 않았다. 이십대의 그 거리에서도 그늘없이 쨍한 여름태양 아래서도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기거나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사십대의 지금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안고 있는 것처럼 웃어도 다 웃지 않은 채 입꼬리를 내리고있는 것이다. 그리고 담배도 끊지 않은 것이다. 이십여년을 계속한 흡연으로 안색은 늘 산화아연의 파우더를 칠한 듯 창백하다. 담배 끄트머리에서 고개를 내민 손톱, 반이 잘려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잘못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부식하듯 떨어져나가고 있는 손톱, 얇고 하얀 핏기라곤 찾을 수 없는. 그 얼굴, 귓볼, 목덜미 어디  한 곳에서도 불그레한 생기라고 찾아볼 수 없었다. 헤어용 오일을 사용한 듯 차분히 가라앉은 머리카락조차 윤기없이 바삭해 보였다. 그녀는 전반적으로 비타민이 부족하다. 혹은 영양결핍이다. 푸석해 보이는 피부. 그렇게나 건조해 보이는 입술. 예인은 그녀의 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감독의 시선을 되짚어 따라가 보기도 했다. 그 눈, 고정된 시선의 강한 눈빛. 그 속에 담겨있는 게 무얼까. 욕망?  글쎄.

이십년 전보다 훨씬 불건강해보이는 애인을 바라보는 눈길 속에 담긴 것이 연민인지 애틋함인지, 조금은 변질된 분노나 고통어린 애증인지 알 수 없다. 따로이 가정을 갖고 있는 그녀를 소위 직장을 매개로 하여 다시 만나고 있으면서 불붙을 지도 모르는 애욕을 경계하기에 선배의 눈빛엔 너무나 열정이 없다. 선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예인은 선배가 피아노를 칠 때도, 노래를 할 때도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두문불출하고 있거나 작품을 다시 해석하면서 연인에 대한 감정을 새로 돋는 신록처럼 화면 가득 펼쳐 보일 때도 항상 열정을 갖고 있었다.  오랫동안 찾던, 그리하여 갈구하던 애인을 다시 만났으면 상황과 조건이 어떻든 기뻐하거나 적어도 생기가 돌아야 하는 거 아닐까. 예인은 선배가 날이 갈수록 처지고 또 느려지고 있는 것엔 그녀가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발코니에서 나와 복도로 들어오는 그녀의 발걸음은 어찌나 느리고 기운이 없는지. 불현듯 그녀가 지체장애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힘없는 시선, 시계에 들어오는 사람이 아는 얼굴이라는 것을 나중에 인식하는 듯 표정이 느리다.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그제야 함께 시선을 드는 선배, 똑같이 힘아리 하나 없는 얼굴에 활기없는 몸짓, 저게 감독의 얼굴인가? 선배의 사랑은 선배에게 독이 아닌가.

그런 문장을 만들어놓고 흠칫 하고 있는 예인에게 그녀가 손짓을 한다.

" 여기 오신 거죠? 저 가는 참인데, 감독님도 잡아 줘요. 배웅나온다 해서 말리는 중이거든요. "

" 이 작가님, 왜 벌써 가요. 아직 한 낮인데. 애들 올 때 안 되었쟎아요? "

" 금요일이라 장 봐야 해요. 나중에 애들만 두고 나갔다 오기 뭐 해서. 감독님, 쓸데없이 따라온다해서 떼는 중이에요. 요즘은 동네마트도 다 배달해 주거든요. 우리가 뭐 자취하는 대학동기들도 아니궁. "

" 아, 그거 저번에 대본에서 본 거 같은데. 이번 작품 하시는 유선생님이랑 같이 작업하세요? 대본 바뀐대서 유선생님 댁에 가신 줄 알았더니. "

" 예인이 너, 나 만나러 온거야? 그럼 좀 안에서 기다리구. 밑에까지만 내려갔다 올테니. "

그녀를 대신해 말을 친 선배는 그껀은 나중에. 라고 흘리며 그녀와 함께 엘레베이터를 타러 간다.

" 어, 아냐. 그럼 같이 내려가서 커피숖 가지 뭐. 그냥 딴 생각하다가 올라와버려서 짐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

그녀는 연신 한 쪽 손을 내 저으며 따라오지 말라 한다. 커피숖 가라구. 저는 엘리베이터 더 타구 내려가서 지하철 연결통로로 나갈 꺼라구.

" 작가님은 왜 차 안 갖구 다니세요? "

" 글쎄요. 워낙 잡념이 많아서랄까..."

얼버무리듯 말하는 그녀. 운전하면서 신경 곤두세우는게 싫다고. 공주님 체질이라 기사대동하지 않으면 자가용 못 탄다고 농담하면서 떠난다. 아쉬운 듯 그녀를 보내는 선배. 하지만 표정은 왠지 더 어둡다. 다른 걱정이 있는듯.

" 커피 안 마셔? "

예인은 후발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연일 좌석을 메우고 있는 고급 커피전문점의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 계속 마셔서. 너 괜찮으면 맥주 마실래? "

" 웬일이야? 선배가 나한테? 맨날 문전박대하더니. "

벌써 몸을 일으키며 예인은 자리를 옮길 준비를 한다.

" 여기 호프집은 분위기 쫌 그런데. 선배, 그냥 바로 가자. 내 친구 하는 데 가까이 있거든. 근데 배도 고프고..."

그러고 보니. 하면서 선배도 맞장구를 친다.

" 계속 커피하고 담배만 해서. 요기 될 만 한거하구...병맥주 먹자. "

예인은 이게 선배의 대산가 싶어 고개를 들고 마주 바라보았다.

" 왜 그러니? "

" 선배, 좀 이상하네. "

" 뭐가? "

" 날 너무 가깝게 대하네. "

"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대표 대접해달라구? "

" 학교 때부터 쫓아다녔는데 그렇게 곁을 안 주더니, 요즘 왜 이래. 늙었나? "

병맥주를 컵을 달래서 따라 마신다. 선배, 폼 안 나는데..

" 폼 잡고 사는 거 힘들어서 늙는다. 너라도 나 좀 쉬게 해 주라. "

예인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예 묻고 있었다.

" 애인 만나서 즐거운 줄로 알고 있는데. 의외의 대사네? 오늘도 땡땡이 치구 오피에 쳐 박혀 놓구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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