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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일상

예인은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할 수 없지. 머릿속에서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라는 문장이 떠 올랐다. 눈을 부릅뜨고 현실을 직시하구...

그녀는 선배의 애인이다.

두루뭉실하니 산발한 머리가 보였다. 가까이 갈수록 갈색으로 보인다. 염색했나. 얼굴을 들고 쳐다본다. 빛에 반사되어서일까 은빛으로 희끗희끗하다. 뒤로 손을 돌려 머리를 동여묶으며 일어서는 여자. 키도 작네.

누구? 하는 얼굴로 인사를 할까 말까하는 표정으로 엉거주춤. 소심한 에이형이군.

시선을 맞추는 것에 응하며 눈인사를 한다. 먼저 입을 떼지는 않을 품새.

" 안녕하세요? 작가님이시죠? "

" 아, 네...안녕하세요. 별루 작가는..."

수줍게 웃으며 슬쩍 몸을 돌린다. 자긴 별로 잘난 사람 아니라는 듯?

" 취재중이시라구요? "

" 네에...저기 같이 하는 분 있는데, 이 윤정 작가님이라구...그 분이 다음 작품 기획하시는 거구요. 전 참고로요. "

" 같은 팀 아니세요? "

" 아, 그렇긴 해요. 근데 전 아직 보조 수준이라. "

" 데뷔하셨쟎아요. "

" 네? "

그녀는 깜짝 놀라며 쳐다본다. 자기 작품을 봤다는 거에?

" 작년 연말에 청소년 프로그램 하신 걸로 아는데요? 제목이....뭔지 모르겠네. 직접 본건 아니라서. "

" 아, 네에. 뭐...그냥... "

스스로 말해 줄 생각은 없는 듯. 완전...내성적인 성격이구만.

예인은 이 여자가 선배의...하는 문장으로 머릿속이 꽉 찬 채, 자신의 표정이나 말투를 인식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선배의 발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 어, 선배. 작가님, 소개 좀 시켜 줘. "

그녀의 표정이 변했을까? 뒤통수가 쭈볏쭈볏...그녀의 얼굴이 선배의 눈 속에 담겼다.

" 혜정아, 쉬는 시간이야. 밥 먹게. "

" 응...아니. 저기.. "

하면서 예인과 이감독을 번갈아보는 여자. 예인은 소개시켜주기를 기다리는 청부업자같다.

" 선배, 작가님이랑 친하다며? 나두 같이 가. 나, 작가님들하구두 친해야 한다구. "

" 알쟎아. 이혜정작가님, 그리구 여긴 예인 엔터의 장예인사장님. 밥은 저기 오시는 이윤정작가님이랑 해. "

" 왜? 다 같이 가지. "

그녀의 손을 잡고 앞장서서 가는 이감독의 뒤에서 예인은 차마 졸졸 따라갈 수가 없어 명랑하게 말했다.

" 응? 뭐야, 장 대표? 점심 먹으러 가는거야? "

해죽해죽 웃으며 다가와 팔짱을 끼는 이윤정, 예인은 이작가와 대학동창이라는게 별루다. 선배와 함께 다닌 대학이 아닌, 나중에 편입한 예전이었기에.

 

테라스가 넓은 이태리 레스토랑이었다. 창가로 자리잡았다. 이감독이 그녀를 에스코트한다. 의자를 빼주며. 돌아와서 마주 앉는다. 뒤따라 들어오고 있는 예인과 이윤정작가를 신경쓰고 있는 건 물론 그녀이다. 선배작가를 쳐다보며 합석을 권유해도 될지, 그냥 눈인사만 할지 방황하고 있다. 똑바로 다가오고 있는 예인의 걸음걸이에 표정이 정리되는듯.

" 이작가님, 이쪽으로 오세요. 저기 대표님랑. "

"  감독님. 우리 같이 앉아도 되죠? "

" 선배, 이런데 좋아했어? 언제는 맨날 국밥만 먹더니. "

예인이 옆에 와 앉자 이감독은 할 수 없이 건너편으로 앉는 이윤정감독에게 어서 오세요. 한다.

" 뭐 시켜? 파스타? 스파게티? 선배, 느끼한 거 잘 못 먹지 않아? "

그녀가 옆으로 메뉴판을 밀어준다. 

" 비프스테이크도 있어요. "

" 아냐, 나는 점심 간단한게 좋아. 파스타 어때? 감독님은 뭐 좋아하세요? "

" 혜정아, 뭐 먹을꺼야? "

" 응..."

이윤정은 슬쩍 메뉴판을 다시 밀어준다. 슬쩍 사시를 뜨며.

" 아뇨, 이윤정 작가님, 보세요. 전 맨날 먹는거 있어요. "

" 이혜정 작가님이 맨날 먹는게 뭔데요? 나두 그거 먹을까 봐. "

" 에, 그냥 파스탄데요. "

그녀는 이윤정 작가가 까르보나리를 시키자 오늘은 저도 그걸로 하겠단다.

" 왜? "

" 이윤정작가님 따라 하고 싶으니까? "

웃으며 애교떨 듯 선배작가를 쳐다보는 그녀. 점점 수선을 피우며 말이 많아지는 이윤정 옆에서 그녀는 희미해진다. 그녀를 따라 까르보나리를 시키는 선배, 그녀처럼 해물을 추가한다. 예인은 똑같이? 아님 이윤정처럼 그냥 크림으루?

" 전 비프 줘요. 많~이. 느끼하신분들 한 점씩 뺏어먹어야 하니깐. "

화기애애하게 웃음꽃이 피는 점심자리인데 선배는 별로 웃지 않는다. 불청객이 싫다는 듯.

그녀는 조금씩 천천히 먹는다. 느끼함을 덜려는 지 중간 중간 해물을 먹으며. 선배가 조개에서 살만 꺼내어 그녀의 접시 위에 놓아준다. 짐짓, 못 본체 했지만 이윤정 작가는 너스레를 떨며 어머! 애지중지한다더니 정말이네...

그녀는 불편한 표정으로 애써 웃음을 지어보인다. 선배의 눈길이 그제야 이윤정에게고 가 꽂힌다.

" 우린 식사 오래 하는데, 다 먹었으면 먼저 가지? "

" 커피 마실꺼니깐 괜찮아. 누가 뭐랬다 그래. 천천히 드셔들. "

이윤정은 혜정을 돌아보며 감독의 눈치를 보듯 흘끗거리며 여전히 너스레 떨듯 떠들어댄다.

그녀는 식사를 다 하지 않고 밀어둔다.

" 빵이랑 같이 먹게 우리도 커피 시키자. "

선배는 말은 안 하지만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예인은 애써 무시했다. 우린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함께 밥 먹고 있는 거라구...누가 누구랑 데이트하는데 끼어든게 아니구...

빵도 조금씩 먹는 그녀. 커피도 홀짝 거린다. 아...저거 성격인가. 예인은 궁싯궁싯 심술이 난다.

" 진짜 오래 드시네. 말씀도 별로 안 하시면서. "

예인은 시계를 쳐다보며 현장 들어갈 때 되지 않았냐구 걱정스레 이감독을 쳐다보았다.

그래. 하는 선배. 이윤정을 향해 그만 떠들고 일어서죠. 한다. 농담으로 받아야지한는 얼굴로 마주 보는 이윤정.

" 응, 그래. 오늘 또 촬영이 많은 편이죠? 오늘 내일쯤엔 인터뷰 들어갈까 했는데... " 표정이 일그러지며 감독을 바라본다. " 감독님, 인터뷰도..."

" 오늘 촬영 끝이에요. 배우들이랑 스탭들 시간 많으니깐 인터뷰 하세요. "

벌떡 일어나더 테이블을 한 바퀴 돌아 예인과 이윤정을 지나쳐 그녀의 뒤로 간다. 의자 빼 주러.

" 가자. "

" 응. 같이 가야지. "

" 촬영 끝이라니깐. 인터뷰하는데 방해하지 말구 퇴근해. "

" 왜에에? "

예인은 이윤정과 함께 식당을 나오며 저만치 앞서 걷는 이감독과 그 애인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 야, 장사장 !  저거 뭐니? 이감독이랑 재, 애인사이라더니 정말 그런거야?

" 언닌, 재...가 뭐야... "

" 어머, 재, 나한텐 까마득한 후배야. 겨우 작년에 데뷔해서 울 회사 들어온지 한 달 밖에 안 되었어. 내가 델구 다녀주는 거나 마찬가진데...근데 앤, 묻는 말엔 대답 안 하구? 이 감독 태도 봤지, 삐져서 계산도 안 하구 가는거. "

" 원래, 계산은 사장이 하는 거야. "

" 애 좀 봐? 넌 질투도 안 나? 너 이감독 쫓아다녔잖아. 아니 지금도 쫓아다니구 있지. 근데 이감독은 맨날 재만 챙긴다, 애... "

" 언니, 그만 해. 언니네 팀인데, 호칭이 그게 뭐야. 나이도 있는 사람을. "

이윤정은 갑자기 멈춰선다. 이미 저만치 가서 행인들 사이에서 뒷모습도 찾기 힘들어진 이감독 옆의 그녀를 가리키며.

" 너보다 나이 많지? 얼굴도 네가 훨씬 더 젊고 예쁘다. 키도 작고, 화장은 저게 뭐 하다 말았냐...볼꺼 없는데..."

예인을 곁눈질하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게 뭘까.

" 근데 너하고는 딴판으로 귀염성있지? 친절하구. 착하구. 예쁘구. "

" 언니...재...좋아했어? "

" 아이, 뭐, 사람 괜찮다구. 누가 이감독처럼..."

황급히 입을 다무는 이윤정. 잽싸게 예인을 훔쳐본다. 못 본 척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예인. 그들이 간 거리 속으로 시선을 둔 채 속으로 되뇌었다.

알 놈은 다 아는군. 그녀는 선배의 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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