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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 노래

" 나는 독신주의자야. "

 

그애는 자신없이 말했다. 결혼이란 남과 여의 제도적 결합이니, 이를 좋다할 것인가 싫다할 것인가. 진은 끌듯이 물었다.

 

" 왜? "

" 나를 받아줄 남자는 없을 것같아서, 말하자면 피동적 솔로이스트지. "

" 고등학교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과선배가 맨날 밥 사준다고 쫓아다닌다며? "

" 나를 모르고 접근하는 것뿐이야. 알고나면 도망갈 꺼야. "

 

허나 그애는 알게 하고 싶지도 않은 듯, 누구와도 길게 만나지 않았다. 인사치레의 관계 이상 무엇도 함께 하기를 원치 않는 그애가 그나마 얘기하는 사람들은 동아리에서 세미나를 같이 하는 선배들과 동기들이었다. 조금 잘 생긴 과의 학생회장과 문학써클의 키 크고 우수에 찬 표정의 한,두명의 남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긴 했다.

 

" 시를 쓰는 사람들은 어째 하나같이 여리여리한 걸까? "

" 그래, 얼굴 허옇고 손가락 가늘고 목소리는 낮고 부드럽지. "

 

진은 거기다 안경까지 쓰면 완전.

 

" 브나로드야! "

 

하하하. 같이 웃었지만 진은 사실 러시아의 지식인운동도, 김기진의 시도 알지 못 했다. 그애가 읽고 있는 책은 대체로 역사책류였지만 가끔 소설을, 더 가끔 시집도 있었고 한번인가 펼쳐놓은 페이지를 읽어보았지만 뭐.

 

카페-의자에 겉터 앉아서

희고 흰 팔을 뽐내어 가며

<우 나로-드!>라고 떠들고 있는

60년 전의 노서아 청년이  앞에 있다.

 

그 시를 읽고 있었던지 그 애의 표정은 어두웠고 비감에 차 있었다. 물론 우리가 그때 아담한 까페에 앉아있긴 했었지만, 민들레찻집이라는 조그마한 걸이팻말처럼 정말 테이블이 두 세개 밖에 없는 그것도 학교 담장 아래 쓰러질 듯한 단층주택의 주차장을 개조한, 그런데에서 김치볶음밥을 먹는게 뭐 그리 부르조아틱하진 않을터인데.

 

" 대학을 다닌다는 것이 부끄러워. "

" 나두."

 

그애는 얼굴을 들고 빤히 쳐다보았다. 진은 음. 하고 신음을 삼켰다. 그애는 5월을 지나면서 무척 진지해지고 있었다. 두꺼운 한국현대사를 1권, 2권, 3권까지 읽어내더니 다음권이 안 나온다면서 비평잡지를 사 보기 시작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끌어대며 대화를 잇곤 하던 그애에게 익숙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카프라던가 OSS요원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봤자 그애에게 심중의 공감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런 진을 그애는 사랑했다.

 

"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대학을 다녀야지. 너는 왜..."

 

그애는 도중에 말을 끊었다. 작년 수험생 시절, 엄마보다 담임보다 더 화를 냈던 것은 그애였다. 왜 피아노과를 안가고 음교과냐구, 바로 옆에 있는데 굳이 그럴게 뭐냐구, 나중엔 난 사범대 얘들은 다 싫어해! 라고 소리치기까지 했다. 하긴...사대 분위기가 좀 실용적이긴 하지, 반권위주의를 기치로 하는 그애의 컨셉엔 안 맞기도. 하지만 그애는 사범대로 가는 긴 계단을 좋아했다. 그늘도 지고 낙엽도 지고 바람도 땅 가까이 포복하듯 불고 가는 언덕 아래 사범대 앞의 계단에서 쇼팽의 에튀드를 들으며 진을 기다리는 날도 있었다.  

 

" 음악을 듣고 있는게 좋아. 주변에 무엇이 있던, 말 거는 이 없이 내버려둬 준다면... "

 

그애의 빨간 스테레오카셋트는 아직은 책상 위 한 구석을 지키고 있었고, 93.1 메가헤르쯔의 클래식이 계속 흘러나오는 한은 대학생이라는 그애의 신분이 유지될 것이었다. 아무리 백수의 탄식을 저를 향해 읊으며 괴로워한다 해도, 페미니즘의 끝을 이어 독신의 생애를 예감한다 해도 갓 스물의 그애가 바람부는 계단에 앉아 읽던 책을 덮고 녹턴을 듣고 있는 동안에는 진의 노래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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