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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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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8/25
    혜정의 친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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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0/08/25
    혜정의 친구들
    외딴방

추억들

궁색했던 집.

항상 결핍을 느꼈던 어린 시절로 추억된다.

그 집이 있는 동네, 삼십년 전의 장위동이다.

벗어나기 위해 어른이 되고 싶어했던 십대를 벗어나자 마자

미친듯이 거리를 누볐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니, 단지 쏘다니고 싶어서 그러나 데먼스트레인션에 참여하고 있다는 훌륭한 이유 속에 숨어서.

 

집은 홈도 아니었고 하우스도 되지 못 해서 나는 가정이나 가족의 진정한 뜻을 사전적 의미 이상으로 실감해 보지 못 했다.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지를 묻는 톨스토이를 의아하게 쳐다보면서 교도소의 독방 만큼의 사적 공간도 없는 초라하고 위험한 사춘기를 보냈다.

사흘이 멀다 하고 고함 소리 속에서 매맞는 엄마와 함께 귀뚤귀뚤 귀뚜라미 우는 연탄보일러가 있는 지하실에 숨어서 어둠과 벌레들로 인한 공포를 아빠보다는 낫게 여겼던 어린 시절이 지금은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초록색 기와지붕 얹힌 작은 단독주택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집, 아이들을 돌보지 못 하고 아빠와 가게에서 장사하기에 바빴던 엄마를 기다릴 수 없어 서툴게 라면을 끓여주던 오빠와 그 때도 말 안 듣고 늘 빗나가기만 했던 귀여운 구석 없는 남동생 사이에서 나는 성 역할 사회화가 잘 안 되던 아이였다. 줄창 혼자 놀고 혼자 싸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책만 읽었었다. 일어설 수 없이 천정 낮은 다락에 혼자 숨어 만화책을 보다가 다락의 작은 유리창을 깨고 아빠한테 뺨을 맞았던 일-아빠는 단지 깜짝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 때렸다고 나중에 말했다, -컴컴하고 무서웠던 지하실,  늘 속 시원히 말대꾸 하고 더 시원하게 두들겨맞았던 엄마가 답답하기만 했던 일 그런 류의 기억들이 그 낡은 단독주택을 보면 생각난다. 그 집 주인이 구청의 지원금을 받고 담장을 허물어 그 비좁은 마당을 드러내 놓고 있기에 그 집의 추억은 더욱 잘 생각킨다. 그 지하실의 입구가 마당의 작은 베란다 아래로 음험한 그늘 속에 숨어서 나를 내다 보곤 한다. 그 집 앞을 지나는 게 너무나 싫다.

 

이십대의 중반을 넘기지 않고 나는 집을 나왔다. 몇 번의 가출 경험이 있기에 스물 다섯의 가출은 거의 완벽한 출가, 아니 분가 아니 자주독립의 수준이었다. 모아놓은 돈은 없었다. 그러나 내 가출의 이유를 너무나 잘 이해하는 오빠가 모아놓은 돈으로 허름한 월세방을 얻을 수 있었다. 오빠는 나의 몇 번의 다짐에 잘 부응하여 평소의 오빠 답지 않게 엄마아빠의 우격다짐에도 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전의 가출에서 있는 곳을 추적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오빠를 완벽히 내 편으로 만든 것 만으로 내 독립된 생활이 지속될 수 있슴에 놀라워했다. 그 후로  장위동에 다시 돌아가는 일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었다.

그 집 앞을 지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온다. 어린이집을 갈 때는 차량을 이용하지만 올 때는 피아노 학원을 들러 오기 때문에 아이들을 직접 데리고 그 집 앞을 지나 조그마한 빌라인 우리 집으로 돌아온다.

이 동네가 철거되길 기다리며, 철거시에 받을 이런 저런 이득을 건져보고자 주민등록의 실제 거주자임을 지키기 위해 장위동으로 돌아와있기 때문이다.

결국 궁색함이 나의 가정에서도 이어지기 있다는 말이다.  내 궁색함은 내가 남편으로 삼은 이의 지독한 가난과 그 가난에 습성화된 궁색함에 강화되고 더욱 강제되고 있다.

이렇게 몇 푼을 위하여 몇 년을 궁색한 동네에서 살 필요는 없는데....나의 아이들에게 나와 똑같은, 내유년의 궁색함이 여기 저기 묻어있는 낡은 동네에서의 생활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아니 더 나빠졌고 이건 우리가 이 동네를 떠나기 전까지 개선될 수 없는 생활환경이다. 철거예정지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천을 건너 야산으로 놀러다녔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자동차들 사이를 갈짓자로 걸어야 하는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서울의 변두리, 아이들은 놀 곳이 없다. 나도, 우리 아이들도.

한글도 모르던 나이 때부터 만화방을 들락거렸다고 엄마는 나중에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책이 있는 곳이 거기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그리고 우리 삼남매가 언제 집에 맘 편히 있을 수 있는 날이 있었냐고 속으로 뇌까렸다.

 

두 칸의 점포 안 쪽에는 두 개의 방이 있었다. 아니 거실처럼 쓰는 가게에서 바로 이어지는 작은 방 안쪽으로 길고 좁은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다. 거실방엔 티비가 있었고 밥을 먹는 곳이자 엄마아빠가 잠자는 곳이었다. 다른 하나의 조금 더 큰 방이 오빠와 남동생이 쓰는 방이었으므로, 나는 엄마아빠가 잠자는 방 안쪽의 기다란 방에서 혼자 자야했다. 오빠는 고등학생, 나는 중학생이었다. 삼남매가 한 방을 쓸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고 엄마아빠의 잠자리 옆에서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어린애도 아니었던 나는 내 방이 너무나 갖고 싶었다. 그 사무치던 욕구, 그 결핍과 단지 불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가난에 대한 분노는 사춘기시절 내 방을 갖지 못 함으로써 뼈에 사무치도록 각인되었다. 가난이 싫고 미웠고 저주스러웠다. 궁색함도,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근검절약도, 촌지를 받으며 대학을 가야한다고 너불대는 고등학교의 담샘도 증오스러웠다.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의 반감은 대학을 들어가자 마자 나를 데모꾼으로 만들었다. 자구발 하나만 읽고도 나는 완벽히 맑스주의자가 되었다. 이미 사춘기를 지나 십대말에 이르렀을 때 가난이라던가 가정의 누추함이라던가 불행한 가족관계라던가 하는 것에 영향받고 휘둘리는 것을 모면하고 다소 위험하긴 했지만 빗나가지 않고 무사히 성장했던 나는 사회과학과 내 개인사를 혼동하진 않았다. 그러기엔 나의 인문학적 소양이 너무 깊었다. 고교시절 실존주의에 심취했던 내게 꼬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 쉬웠다고나 할까.... 고교시절 제 2의 성을 읽으면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나는  사회과학세미나 써클에서 경제학, 역사학을 다 보고 정치사회학을 공부할 때 쯤 곁다리로 본 여성학 텍스트에서 시몬느 보봐르를 만나는 것에 너무 익숙해있었고, 고교시절 존경하는 선생님이 당신의 캐비넷을 열고 빌려준 마가렛 미드의 문화인류학관련 서적을  읽었던 내게 가족의 기원을 공부하는 것은 인식의 나선형 발전구조를 몸소 체험하는 형국이었다. 맑스주의는 내 유년의 결핍을 사회구조적으로 밝혀주었고 60년대 이농한 도시빈민이었던 내 아빠의 굶주림과 공포와 분노, 그리고 가부장적 폭력의 연원을 밝혀주었다. 이해했으므로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았다. 다만 비판적이 되었다. 나는 매우 비판적이었고, 이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으로서도 여성으로서도 제대로 올곧게 살아갈 수 없었으므로, 그 토대를 만드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내 삶의 내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운동...십년에 걸친 내 운동이 패배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동지들을 잃지 않았다면 아주 작은 조직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다면 내가 장위동으로 돌아올 일은 절때 없었을 터인데....

길을 잃고 돌와왔다. 마뜩챦은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그 점포의 방들은 다 없어졌지만, 그 가게의 한 켠에서 엄마아빠는 일흔의 나이에도 가게를 지키고 있다. 달리 할 것이 없으므로 말 그대로 지키고 있다. 못 먹고, 못 입고, 죽도록 고생만 하면서도 골병이 들도록 두들겨맞았던 엄마는 제대로 거동을 못 하신다. 가게에 커다란 평상을 놓고 거기서 먹고 자고 하신다. 그 가게의 위 층에 방 3개와 너른 거실이 있는 살림집이 있지만 엄마는 언젠가부터 그 이층으로 가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 하게 되었다. 근검절약의 최후단계에 이르러서 엄마는 그 축저된 돈을 사용할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나는 분노한다. 내 엄마의 생을, 내 엄마에게 자신의 분노를 쏟아부었던 아빠를, 그 가게를 아침마다 가는 것이 또 하나의 고통이다. 내 아이들의 어린이집 차량이 엄마아빠의 그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가게 앞에 서기 때문이다. 나의 궁색한 집이 있는 골목 안쪽까지 어린이집 차량이 들어오기엔 여기저기 처박혀있는 자동차들이 너무나 많은 철거예정지구이다, 장위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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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의 친구 이야기

혜정의 두번 째 이야기

이렇다 할 친구도 없이 여름이 갔다.

아니 마뜩치 않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을 함께 했던 새로운 친구를 한 명 사귀긴 했다.

그건 그 친구를 사귄거라기 보다 이미 다른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그네들 속에 있느라 자신과의 하교길을 함께 하지 않는 초등학교 시절의 단짝친구와 균형을 맞추는 의미에서 혜정도 다른 이와 함께 한 것 뿐이었다.

그니가 내게 이 정도밖에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그보다 넘치게 사랑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기울어지는 것은 위험했다. 그건 스스로를 상처내는 길이다. 그니에게 있어 내가 적당한 친구인 것처럼 나에게도 그니가 그 정도의 무게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혜정은 그니처럼 다른 친구를 사귀었고 그 애는 혜정을 단짝처럼 대하진 않았어도 꽤 절친한 친구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해 주었다. 화장실을 함께 가거나 교실을 벗어나 이동하는 주 1회의 예배시간, 체육복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가면서 곁에 붙어 함께 수다를 떠는 것 등등... 여자아이들에겐 일거수일투족에  의사를 주고 받고 혹은 목적없이 말들을 주워섬기면서 걸음걸음에 적어도 팔짱을 끼지는 않아도 팔꿈치를 스치며 동행하는 친구가 늘 필요했다. 그것이 보기에도 좋았고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 애는 같은 분단이었고 한 줄씩 돌면 바뀌는 오른쪽 짝궁이었다. 청소시간 사건 후 왼쪽 짝궁은 더 이상 친해지지 않았고 그 애는 그애의 친구들과 혜정은 오른 쪽 짝궁과 의자를 끌어당겨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애는 착한 아이 같았다. 혜정이 상위권 그룹인데 비해 그애는 중하 정도의 성적을 가지고 있었고 비교적 비슷한 성적군의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교실분위기 속에서 그 애는 혜정과 친구하기를 기꺼워하는 듯 했다. 그리고 혜정은 뚜렷한 특징 없는 그 애를 그저 그렇게 친하게 지냈다.

그 우정은 한 철도 가지 못 했다. 어느날 그 애와 함께 하교하기를 그만 둔 후, 혜정은 혼자 긴 뚝방 길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버스를 타도 30분, 걸어서 가도 30분 정도 걸리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그 절반 이상이 차도와 개천을 따라 이어지는 뚝방이었고 그 길은 불안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걷는 사람들이 계속 눈에 보이는 반면,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가까이 올 때까지는 알 수 없었으므로 혜정은 맘껏 공상의 나래를 펴고 혼자 골몰하며 걸을 수 있었다.

단짝을 잃어버린 후 혜정은 말할 사람이 없었고 비판하지 않는 마음으로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열 서넛 아이들의 일상과 질투, 시샘, 성적이야기 등등을 의미없이 뇌까리는 그 마음 선한 오른쪽 짝궁을 혜정은 경멸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가 없었다. 어느날 일방적으로 외면한 것처럼 되어버린 오른 쪽 짝궁을 혜정은 아주 나중에서야 다소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오래 추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새로운 생활에 끝내 적응하지 못 한 혜정은 혼자 만의 생각과 시간과 생활을 이어나갔다. 점심밥은 어찌어찌 뒤에 앉은 아이와 먹기도 했지만 대부분 혼자서 쉬는 시간을 맞이해야 했다. 45분의 수업 사이에 있는 10여분의 쉬는 시간, 그 시간은 쉬는 시간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아우성으로 수업시간이 채 끝나기 전에 시작되었고 다음 수업 종이 치고도 한참을 웅성거림 속에서 연장되었다. 매 교시 마다의 그 시간들, 그 시간들에 혜정은 하릴 없는 사람처럼 멀뚱거릴 수 가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도 쉬는 시간 마다 책을 보는 습관이 있던지라 혜정은 쉬는 시간마다 소설책을 꺼내 읽어나갔고 소설을 읽는 사이 사이 수업에 열중했다. 문제는 책을 조달하는 것의 어려움이었다. 초등학교는 교실마다 학급문고가 있어 교실 뒤쪽의 긴 책장에 수 백권의 책이 있었다. 늘, 계속 계속 책을 읽고 있는 혜정에게 초등학교시절 아이들은 학급문고의 책을 거의 다 읽은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중학교에는 책이 없었다. 적어도 교실엔 없었다. 이 멋진 기독사립학교는 여중과 여상, 여고가 함께 있었고 붉은 제복과  견장의 금술을 휘날리면서 행진하는 고적대를 자랑했지만 도서실은 여고 교사의 한 쪽 귀퉁이에 있는 것을 사립학원의 모든 학생들이 함께 이용하고 있었다. 사실 주이용자는 여고생들에 국한되는 수준이었지만. 혜정은 도서실을 드나들면서 책을 빌리고 갖다주느라 분주했다. 온 아이들이 우루루 하교하는 시간을 피해 도서실에서 사씨남정기며 구운몽에 이르는 온갖 종류의 소설책을 읽다가 저물녘이 되어서야 혼자 너무 어두워지지 않은 뚝방길을 걸어 근자에 읽은 소설을 떠올리며 공상에 잠겨 집으로 걸어가곤 했다.

루이제 린저의 "슬픔이여 안녕" 때문에 혜정은 슬픈 마음을 계속 계속 유지하며 말없는 소녀로서의 중학교 1학년 생활을 지속해 갔다. 읽을꺼리를 찾다가 주워든 하이틴 소설에서는 모래밭의 사금파리만큼 어쩌다 한 번 심금을 울리는 러브스토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정서를 갖고 마음 속에서 조금씩 자라는 그 애에 대한 생각을 되새김질했다. 그냥 생각만 하고도 만족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단짝친구는 더이상 단짝이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동창생으로서 가끔 교실을 오갔다. 아니 여전히 혜정이 그니의 교실을 찾아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갈수록 가져오지않은 교과서를 빌리거나 체육복을 빌리러 내왕하는 수준으로 변해갔지만 그니의 교실에서 윤진의 모습을 보는 것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니의 반과 혜정의 반은 같은 시간대에 체육수업이 있었고 초등학교 동창생이 아닌 윤진의 모습을 찾고 나면 혜정은 계속계속 그의 모습을 주시했다. 그를 볼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혜정은사립기독학원의 모든 학생들이 다 한 곳으로 모이는 주 1회의 예배시간에 강당으로 가기 위해 교실을 일찍 나섰고 혜정의 교실보다 강당에 가까운 초등학교 동창의 교실에서 윤진이 나오는 것과 마주치기 위해 애썼다. 그보다 약간 뒤의 행렬에 있어야 그를 마음 놓고 바라볼 수 가 있었으므로.

키가 큰 그는 행렬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사람좋은 미소를 띠고 아이들 속에 있었고 결코 혼자 있거나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그의 찰랑거리는 단발머리,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안제리크에서 나오는 중세 유럽의 공자들처럼 보이는 단발머리, 그린 듯 단정한 눈썹, 큰 키에 돋보이는 날씬한 다리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하고나 잘 웃고 잘 어울리고 호쾌한 그의 풍모에 혜정은 날로 날로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와 같은 반이 아니어서 자연스럽게 친할 수 없는 운명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초등학교 동창생은 날이 갈수록 속물처럼 되어가서 그런 애와는 친구가 되지 못 하고 늘 허섭한 여자애들과 수다만 떨고 있었다.

아, 그 애는 왜 그 눈을 휘 둘러보아 나를 발견하고 말 걸어주지 않는 걸까....

바보같은 왕자님처럼 멀리있는 인어공주를 결코 발견하지 못 하고 그는 늘 눈앞에서 와글대는 여자아이들하고만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슬픔은 마치 자신의 운명이라는 듯, 혜정은 슬픔과 사랑의 정서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가을을 보내고 포근한 겨울을 맞이했다.

이 사랑을 어찌해야 할까....

혜정은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윤진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쳤다.....

 

 

 

 

 

 

 

 

음...............삘 받아서 좀 끄적여 볼까 했더니 귀가하시는 자녀님들땜에 더이상 못 버티겠네....젠장.....

근데  이건...동화라기 보다 청소년 소설인가....자전적 성장소설이랄까....근데 대사가 너무 없어서 원 당췌 흥미유발이 안 될 것 같네....합평회에 들고 나가면 사람들이 전부 수필 쓰냐고 할 것 같은데....

어케 대사와 사건을 집어넣어서...기승전결을 만들어서 소설처럼 만드나....아니...동화처럼 만드나....큰 일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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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의 친구들

옛날 옛날에

바닷가 작은 마을에

이녹 아덴이라는 아이가 살았습니다....

 

이건 꽤 어린 시절에 들은 이야기이다.

책도 읽었지만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분명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마 6학년 때 였을 것이다.

나의 6학년은 꽤 괜찮았나보다. 50명은 기본으로 넘는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에서 작지도 않은 6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담임선생님이 내겐 있었다. 아, 내가 57번이었다. 근데 키순은 아니었을것이다.

.

유년시절의 기억이 그닥 또렷하지 않은데 6학년 담임선생님이 여자였고 비교적 좋아했었고 (열두살 이후로 좋아했던 선생님은 한명 혹은 두명 뿐이다, 오히려  나는 선생님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졸업할 때 석별이란 노래 때문인게 크긴 하지만 무척 울었던 걸 보면 6학년 담임샘을 싫어하진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아니 나에게 있어선 국민학교인 그 시절에  아이들이 1년 내내 하루종일 보고 있어야 하는 선생님은 담샘 뿐이었으니 담임선생님을 좋아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인생이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추단하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6학년의 기억은 그것 뿐이다. 이녹 아덴을 들은 것.

친구들이라 하면, 단지 만화를 같이 좋아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조금 나눴을 뿐인 동급생이 하나 있었고, 별로 중요치 않은 친구가 하나쯤 더 있었던 것 같고, 매우 '중요한 타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벗이 한 명 있었다.

벗! 열 두살 즈음부터 그 친구를 알았고 사귀었고 그미에게 편지를 쓰면서 벗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었다.

그애는  열 두살부터 중학시절까지의 일기장에 거의 매일처럼 등장하는 친구였다.

 

 

혜정이가 학교 가는 날이다.

그냥 학교 가는 날이 아니라  중학교 입학하고 처음 등교하는 날이다. 바로 어제 입학식을 하고 담임선생님과 배정된 반의 교실만 보고 그냥 왔으니 수업을 받고 점심을 먹고 6교시가 끝나는 오후 세시까지 계속 있어야 하는 학교생활은 오늘부터 시작이다. 화요일인 오늘과 내일은 6교시지만 목요일은 7교시까지 있어서 네시나 되어야 교실에서 나올 수 있다. 

혜정은 한없이 우울했다. 오후 3시나 4시까지 자신이 들어간 반의 교실에서 나올 수 없다니...교실은 그냥 감옥의 다른 이름 같았다.  그 중에서도 독방이나 다름없는 지독한 외로움과 슬픔과 기댈 곳 없이 막막한 공간이었다.

 

'6학년 때도 그애와 함께 있을 수 없어서 슬펐는데 중학교가 같은 곳으로 배정되어 뛸듯이 기뻐했던게 얼마전인데 이게 뭐람...1학년의 반이 왜 이리 많은거람....아이들은 왜 이리 많담.....왜 그애와 같은 반이 되지 못했을까...'

 

운명은 자신을 비켜가고 있다는 생각에 혜정은 너무나 우울했다.  중학 3년동안 그애와 같은 반이 될 날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2학년 때는 될 꺼라는 생각이 확신처럼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1년이나 남았다. 앞으로 1년 이라는 긴 시간을 그애 없이 학급 생활을 해야 한다는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그애의 마음이 내 곁에 있을까...'

 

왜 이런 생각을! 혜정은 도리질을 쳤다.

작년에도 같은 반이 아니었지만 매일 만났고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늘 함께 했고 거의 매일처럼 그애의 집에 들러 더 머물렀으며 일요일에도 곧잘 그애의 집을 찾아 함께 지내지 않았던가.

문득 지난 주 일요일에 그애의 집에서 함께 먹었던 맘모스빵이 생각났다. 달콤한 사과잼이 숨어있는, 보솜한 소보루가 듬뿍 얹어진 커다란 맘모스빵은 가로세로 네모지게 등분하여 그애와 나와 그애 오빠가 함께 먹고도 충분하여, 남은 걸 다시 봉지에 넣어 샛노란 금색테이프로 다시 잘 묶어 봉해졌었다. 그애의 집에서 우유 한 잔과 혹은 그냥 보리차 한 잔과 함께 먹는 맘모스빵은 정말 맛있었고 또 평화로왔다.

그애의 집은 학교와 혜정의 집 사이에 있었다. 말하자면 혜정에게는 학교를 가거나 오는 길에 지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혜정은 아침이면 조금 일찍 나와 가능하면 그애의 집 앞에서 그애를 기다리는걸 좋아했다. 시간은 조금 일찍이어야 그애가 대문을 나오지 않았거나 아담한 그집 대청마루에서 신을 찾고 있거나 하는 짧은 시간을 골목께에서 기다리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혜정은 그 역할을 아주 좋아했다.

어쩌다가 그애의 집에 도착했는데 이미 학교에 가 버린 후 일 때도 있었다. 그땐 너무너무 속상했다.  그애가 먼저 가 버린 걸 나무라진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한 번 외에는.

혜정은 그러나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거꾸로 혜정의 집이 학교와 그애의 집 사이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결코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특히 아침 등교시간에는 더욱이나.

중학생들은 한껏 폼을 재며 버스정류장에 옹기종기 모여 서서 웅성댔고 생전 처음 입는 교복들을 어색함도 없이 언니오빠들 사이에서 언제부터 중학생이었던 양 익숙하게 입고 나래비 서서 버스에 올라탔다.

혜정은 혼자 버스를 타고 혼자 어색함과 민망함으로 상기된 얼굴을 창 쪽으로 돌리고 섰다. 여중이 있는 곳은 버스로 네 정거장 정도였다. 다섯 정거장까지 가는 버스를 타면 교문 바로 앞에서 내릴 수 있지만 기다릴 여유가 없는 상급생들은 학교 어귀의 큰 길에서 지나가버리는 버스를 타고 갔다가 내리자마자 교문까지 냅다 뛰었다. 교문에는 지각과 용모단정을 체크하는 학생지도부 선생님과 완장을 두른 깔끔외모의 선도부가 있었다. 때문에 걸릴 만한 뭔가를 숨긴 이들은 최대한 많은 인파가 교문을 통과하는 시간을 이용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혜정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버스가  지나는 길에 있는 또 하나의 중학교, 그 남자중학교의 학생들이 함께 버스를 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익숙해지지도, 관심도 가지 않는 이 오빠들이 마냥 눈에 가싯거리였다. 뭐 글타구 누가 눈길 하나 주는 것도 아니긴 했지만.

남자도, 여자도, 사람도 많은 것이 싫은 건지도 몰랐다. 혹은  혜정은 그냥 그애와 함께 할 수 없는 이 삼십여분의 등교시간이 하냥 싫고 또 싫었다.

쉬는 시간마다 단짝친구를 찾아 그애의 교실에 가게 될 것 같았다. 그애의 교실은 불행히도 복도의 맨 끝에 있었고  혜정의 교실은 반대편 끝이었다. 그나마 같은 1층에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을까, 2층에도 1학년의 11반과 12반이 있었다. 그 옆으로 2학년 교실이 이어지는 2층에 갈 일은 없었다. 혜정은 같은 초등학교에서 올라온 아이들을 자기 교실에서 몇 명 발견하긴 했다.  아니 그네들이 서로 아는 척하며 물어보고 대답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저절로 알게 된 것에 불과했다. 혜정 자신이 아는 얼굴은 없었다. 친해보자고 인사하는 친구도 없었다. 혜정은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초등학교 내내 담임선생님의 통신란에 써 있었던 대로 침묵과 작은 목소리로 하는 최소한의 대답으로 중학교 시절을 시작하고 있었다. 3월, 이 다사로운 삼월의 하루 하루를 혜정은 단짝친구를 자주 볼 수 없음에 슳어하며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유년의 행복은 일찍 끝났다. 그 삼월이 다 가기 전 어느날이었다.

 

혜정은 다 친해지지 않은 옆자리의 짝궁과 수업 종료 후 청소시간을 함께 하고 있었다.  옆자리 짝궁은 혜정 이외에도 초등학교 동창이거나 한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벌써 친해진 같은 분단의 아이들과 수다를 떨면서 칠판을 지우고 있었다. 혜정은 자신이 속한 칠판 앞 교단 구역을 쓸고 대걸레를 찾아서 닦으려고 했다. 짝궁도 함께 속한 구역이었다. 분단의 다른 아이들은 각기 자신의 짝궁들과 함께 책상들이 즐비한 1분단 구역, 2분단 구역, 3분단 구역...그리고 교실 뒤쪽 구역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짝궁들과 함께, 같이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있는 아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칠판을 지우면서 낙서를 하고 지우개를 던지고 분필가루를 사방에 흩날리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이 바로 청소를 담당하는 분단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혜정은 그네들을 한심하게 생각했고 쉽게 경멸했으나 오래 생각키지는 않았다. 빨리 청소를 끝내야 귀임의 반에 갈 수 있다는 생각 뿐이었다. 아까 쉬는 시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우연하고도 다행히도 그애도 오늘 청소당번이었다. 혜정은 청소를 다 해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청소검사를 다 맡아야만 교실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바로 그 하나의 이유 때문에 청소시간을 마냥 자유시간인 양 허비하고 있는 아이들이 미웠다. 밉고 미웠지만 구역마다 청소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짝궁없이도 거개 끝내가고 있었기 때문에 무시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분단장이 빨리 담임선생님한테 가서 청소가 끝난 사실을 알리고 담임이 교실을 한번 둘러보러 오거나 아니면 그대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만 떨어지면 그 뿐이었다.

 

" 야, 이 지우개도 좀 털어와."

 

짝궁은 대걸레를 빨러 교실문을 향하는 혜정의 등 뒤에서 소리쳤다.

혜정은 내가 왜 ! 하고 속으로 외쳤다. 미간을 찌푸리며 뒤돌아보았지만 그닥 친하고 싶지 않은 짝궁에게 할 말은 아무것도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 너도 칠판 담당이쟎아, 내가 지웠으니까 니가 털어오라구. "

 

혜정은 뭐라 뭐라 조목조목 할 말이 많았다. 칠판은 이 교단 구역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구, 여길 다 쓸고 닦고 있는 내가 안 보이냐구, 내가 허리 굽혀 먼지 속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우리반의 2개 밖에 없는 대걸레를 교실 뒤쪽 구역의 아이가 가져가기 전에 교실 중간구역을 맡은 아이들한테서 받아오느라  얼마나 힘들게 눈치를 봤는지...얼른 빨아와서 얼른 닦고 가야 하는데...지는 한 것도 없으면서... 이 모든 말이 목구멍 안에 걸려 있었다.

 

" 야아...이거 가져가라니깐..."

 

짝궁은 힐끗 보고 다시 뒤돌아가려는 혜정의 등을 향해 지우개 하나를 가볍게 던졌다. 교실 문을 나가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혜정의 목 뒤를 스쳐간 지우개 덩어리는 가속도가 붙어 교실 문을 막 들어오는 윤 진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 어 ! 어...어어엇...!"

 

윤진은 키가 컸다. 지우개를 피하려던 윤 진의 어깨 즈음이 혜정의 코에 콱 받혔고 혜정은 아픔과 함께 그 곳이 코라는 사실, 코가 벌개져 우스울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솟았다. 왜 이렇게 억울한 지 모르게 눈물이 샘솟았다. 순식간에 아이들이 와 하고 몰려들어서 더 창피했다.

윤 진은 괜찮으냐고 물었고 짝궁은 지우개를 가슴에 안은 채 다가와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주워대며 당황해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혜정이 우는 모습에 깜짝 놀라 어떻게든 이 말수 적은 동급생을 위로해 주고 싶어했다.

 

"흑...흑흑흑..."

 

혜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이들의 팔 사이를 빠져나가 그 길로 자신의 단짝친구네 반으로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고 싶었지만 눈에 띌까봐 빠른 걸음으로 막 걸어갔다. 머릿속은 오직 그애를 만나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나는 이렇게 힘든 일을 겪고 있다고, 내게 이런 일이 생겼다고 호소하면서 혜정은 단짝친구의 위로를 받고 싶었고 사건을 공유하고 싶었고 그래서 보고하러 간 거였다.

 

'우리는 그날 그날의 모든 일을 서로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6학년 시절 같은 반이 아니어서 우리는 매일매일 쪽지를 썼고 쉬는 시간마다 쪽지를 교환했으며 처음 친구가 되었던 5학년 때의 같은 반 때보다 더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고 서로에게 할 말이 넘치지 않았던가.'

 

이런 정도의 큰 일은 당연히 단짝 친구가 먼저 알아야 했고 바로 그애로부터 먼저, 가장 크게 위로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길지도 않은 복도의 끝에 있는 그애의 교실까지 가려면 건물의 중앙에 있는 현관 홀을 지나야 했고 거기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많이 집중되는 것 같아서 혜정은 눈물이 멈추지 않아 더욱 벌개지고 있는 얼굴을 푹 숙이고 한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휙 지나갔다. 윤 진이 그 뒤를 따라 가고 있었다.  혜정의 단짝친구네 반 아이인 그애는 혜정의 반으로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러 오곤 했었다. 오늘도 청소시간이 어찌되었는지,  저의 친구를 보러 들어오다가 혜정과 맞부딪힌 것이었다. 키가 큰 윤 진은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남의 반 교실도 서슴없이 들어오곤 했다. 혜정이 늘 단짝친구네 반의 교실 뒷문께에서 뒷쪽에 앉거나 서 있는 누군가에게 예의바르게 누구 좀 불러줄래 하고 말하던 것과 달리.

단짝친구는 늘 자기 자리 근처에서 별로 떠나지 않은채 주위의 아이들과 떠들고 있었다. 교실 뒷문 쪽에 가까이 앉는 날이 아니면 혜정으로서는 목소리를 크게 내어 친구를 부르기가 어려웠지만, 키가 큰 윤 진은 어쨌든 뒷쪽에서만 맴돌았고 자주 혜정이의 부탁을 받게 되었으며,  받지 않아도 뒷문에서 빼곰히 고개를 내민 혜정을 볼 때면  큰 소리로 혜정의 친구이름을 불러제꼈다. 그애는 보지 않아도 반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으리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혜정의 관심은 자신의 단짝친구 밖에는 없었다. 혹은 단짝친구가 있기 때문에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그 애를 좋아할 필요가 없었다.

 

윤 진의 반은 청소를 끝내고 담샘이 검사하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혜정의 단짝친구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기다리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애는 어쩌면 그리도 빨리, 그리도 많은 아이들을 친구로 사귈 수 있었을까...혜정은 그애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떠들고 있는데 자신이 불쑥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불편했다. 자신의 울어서 벌개진 얼굴, 벌개진 코, 흐트러진 앞머리에 가려졌지만 눈물이 그렁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단짝친구만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불편하고 분했다. 자신이 왔는데 왜 그애는 뛰어나와 맞이해 주지 않는 걸까. 혜정은 여느때와 달리 교실의 뒷문께에서 멈추지 않고 친구를 발견하자 바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놀라고 있는 그애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계속 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다른 아이들이 보는게 싫어서.

아이들은 갑자기 휙, 울면서 들어와  딘찍친구의 품에 안기는 혜정의 모습에 깜짝 놀라는 듯 했다. 그리고 뒤미처 들어온 윤 진이 상황을 설명하자 많이 아프냐고 걱정스레 물었다.

아픔 따위, 눈물 따위 그애를 둘러싸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 마자 단번에 잊어버렸고 그쳐버렸다.

혜정은 더 이상 자신의 단짝친구가 자신 만의 친구가 아니라는걸 뼈저리게 절감했다.

이 다사로운 봄날, 제 인생의 처음 사랑이 속절없이 허물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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