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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1/04/21
    습작 - 열아홉의 그녀 4
    외딴방
  2. 2011/04/20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3
    외딴방
  3. 2011/04/19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2
    외딴방
  4. 2011/04/19
    습작 - 열 아홉의 그녀 1
    외딴방
  5. 2010/08/25
    추억들
    외딴방

습작 - 열아홉의 그녀 4

" 본관 출입문이 커다랗고 두터운 유리로 되어있는데..."

하면서 그녀는 웃음을 흘린다. 점심시간에 부러 나가서 보니 정말 깨지고 없더라며. 또 쿡쿡 웃는다. 웃겨서라기엔 그 얼굴이 너무나 정에 겨웁다. 딸아이가 사고 친게 너무 귀엽다는 듯? 아니면 좋아하는 아이돌이 개그를 하는게 너무 사랑스러웠다는 듯.

" 얼마나 빨리 뛰어갔는지 유리창을 그냥 통과하고도 하나도 다치지 않았대. "

그 말을 하면서는 조금 걱정도 되었다는 듯 살짝 미간을 굳힌다.

" 믿기 어려운데. 그 두꺼운 유리문을 통과했다고? "

진은 지금 세상에 이런일이? 라는 티비 프로그램 얘기를 하는 거냐는 듯, 중국 오지의 어느 곳에서 일어났다는 사건을 오래 된 신문기사를 증거로 들이댄들 그걸 어찌 다 믿겠냐는 투로 말했다. 사건에 중심을 두면서.

" 그래? 그런가? "

하는 그녀, 사건의 진실 유무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는 옆반의 여자애가 더 중요한 듯한 그녀의 표정. 짧은 고수머리에 마른 체형, 역시나 키가 크고  그늘 없이 밝고 쾌활한 성격이라는 옆반 아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그녀. 남녀공학인 고등학교에서 그녀는 같은 써클의 남자애도, 잘 생긴 상급생 오빠도 아닌 옆반 여자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한 번도 말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냥 지나치며 봤겠지. 복도에서나 운동장에서.

진은 또렷하게 의식하지는 못 했지만 이건 일종의 데자뷰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훔쳐보기를 하듯 눈길 꽂고 있다. 중학시절, 한 번도 같은 반인 적이 없었던  키가 크고 성격 활달한 어느 여자애를 줄곧 쳐다봤던 것처럼. 자신이 아닌 주변의 친구들과 큰 목소리로 말 주고 받으며 휘적휘적 내어달리던, 항상 미소를 흘리고 다니던. 적당히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왜냐하면 가끔 운동장에서 체육시간에 피구나 발야구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늘 가볍고도 우아하게 콤파스를 놀리며 뛰어다니고 있으니. 던져오는 공을 받아 자연스럽게 튕기기도 하면서 제비처럼 허리를 쭉 펴고 던져 올리기도 하는 것을 운동장의 다른 구석지에서, 아이들의 등 뒤에서 어색하니 성겨 선 채로 바라보고는 했을 테니.

" 다 먹었으면 이제 뭐할까? "

진은 속이 틀어지는 걸 느끼며 그녀의 수다를 끊고 나섰다. 잠시 좋아하는 팥빙수를 느긋하게 먹으며 긴장을 풀고 있었던 그녀는 상념이 끊어지는 것에 채 적응을 못 하고 시선을 잃었다. 금방 이제 뭘 해야 하나하는 고민에 빠지기에 쉽지 않은 듯. 얼굴 굳어지는 그녀를 보며 진은 자신이 사실은 냉정한 성격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얘들이 친구 만나서 다들 뭘하며 시간을 보내는 거지. 하는 생각을 그녀는 하고 있는 듯 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하고 수다 떨다가 아쉬운듯 시계를 쳐다보며 교정의 벤치에서 일어나거나 친구네 집 거실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는 경험이 없었던 그녀는. 뭔가 볼일이나 할 일이 있어야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편했기에 기껏해야 숙제나 가사 준비물을 사러 가거나 아니면 같이 시험공부를 한다라고나 해야 친구와의 약속을 잡을 수 있었던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집에서 혹은 거리에서 보내곤 했었다.

" 오늘 피아노 렛슨 취소되었는데, 넌 뭐해? 집에 있으면 나올래? 너네 집이랑 우리 집 중간에 분식점 있지? 거기 팥빙수 시작했더라. "

불쑥 전화를 해 온 진에게 응. 그래. 하고 간단한 답변으로 약속을 잡은 그녀는 분식점으로 넘어오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만 해도 얼떠름한 표정이었다. 통화하고 30분도 안 되어 나온 그녀. 학교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 듯, 하얀 블라우스에 플리이츠 스커트와 그와 같은 패턴의 조끼, 갈색 단화 위의 발목 위로 반접혀진 가로선이 참 단정하다. 벌써 초여름, 반팔에 짧은 스커트의 여자들은 학교 근처에서도 쉬이 볼 수 있었고 아이들은 멋을 안 부려도 편안한 티셔츠나 청바지를 즐겨 입고 있었다. 마치 중세 수도원의 견습수녀를 보고 있는 것 같군. 하는 생각을 하며 진은 자신이 입고 있는 청색의 체크 남방과 블랙 진을 잠깐 내려다 봤다. 운동화, 나이키를 신고 있었다. 흠...동생 이수와 같이 골라왔던 쇼핑품목이었지만 저 애는 횡단 보도 맞은 편에서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한 손을 들어 귀엽게 웃어보이긴 했으나 어색한 품이. 촛점없는 시선으로 그냥 건너다 보는 듯 하지만  아. 폼 나네. 하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학교에서 수다하는 여자애들의  오늘의 가장 큰 화제꺼리였던 사건을 옮기면서 시종 옆에서 줏어들은 이야기인 듯, 간접화법으로 두리뭉실 얘기하면서 정작 주인공이었던 여자애를 묘사하는 데서는 구체적인 걸 보니. 그 외모며 스타일이며 행동거지가 기실 자신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은가. 보이쉬하며 멀대같고 덜렁덜렁 대는 것이.

" 아직 한낮인데 집에 가서 영화 볼까? 비디오 빌려서. "

"  응? 그. 글쎄. "

완전 당황하는 그녀.

" 집에 누구 있는데? "

비디오 보자 해서? 집에 가는게?

" 없어. 엄마는 일 나가셨고. 동생은 맨날 늦게 들어오는데. "

미간 굳히고 있는 그녀.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아무도 없는 집에. 친구네 집인데. 좋다고 벌떡 일어나 놀러가자 해야 하는게 여자친구들 사이의 정석인데.

" 응. 그래. 비디오 가게 어디 있는데? "

말을 하고 있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표정이다.

" 여기서 가다 보면 있어. 시장 끄트머리 쯤에. "

안다는 듯한 표정. 흠. 진은 조금...재미가 동한다.

조금 뒤미처 따라오는 것이 처음 가는 친구집이니 그러하다는 듯의 제스츄어지만 그녀는 모퉁이를 꺽을 지점에서 전혀 망설임이 없다. 저의 집 앞이 시장인데, 옆 동네 시장길을 어찌 이리 잘 아누. 하는 생각이 드는 진. 혼자 재미지고 있다.

" 과자랑 음료수 좀 사 갈까? "

" 별로 괜찮은데. "

" 집에 식빵 밖에 없는데. "

" 식빵? 잼도? "

" 응. "

" 맛있겠다. 식빵에 잼 발라 먹자. "

흐음. 토스트 같은 걸 좋아하시는 군. 맨 달기만 하고 맛도 없구만. 서양사람들의 패스트푸드 같은 걸. 하고 진은 생각했지만 식탁 위에 놓인 2단 짜리 토스트기를 보자 그녀는 어머, 예쁘다. 한다. 아, 그래. 모양새로 먹는 구나. 하고 눈치 채는 진이었다. 엄마가 상차림을 귀찮아 하며 아침, 저녁으로 때우는 걸 보면서는 안쓰러웠는데.

마당의 작은 화단을 보면서도 손질 안된 장미목 몇 그루 있는 것을 보면서도 함박 웃음을 짓던 그녀. 낮은 계단을 몇 개 올라 현관을 들어서면서도 옆으로 이어진 베란다의 빈 공간에 눈길을 준다. 전형적인 단층의 단독주택. 그녀는 지붕이 세모꼴이니 그렇게 경사진 천정이 있는 다락이 있을게 아니냐며 벽면을 휘이 둘러본다.

" 없는데? 다락. "

" 그래? 이상하네. 단독주택들은 모두 있는데. "

초록색 지붕 아래 동그란 창도 있던데. 하는 그녀. 진은 자기도 그걸 밖에서 봐서 알지만 본래 천정 높았던 거실에 빛이 너무 드는게 싫었다던가, 낮게 천정을 다시 치면서 안으로 숨었을 꺼라고 말해 주었다. 한번도 거실의 천정에 대해 생각해 본적 없었지만 지금 지붕과 집의 모양새를 보니 그런 것 같았다. 하, 완전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구만. 하는 생각을 하며 진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집 앞까진 뻘쭘하게 따라오던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놀라움과 미세한 흥분까지 나타내자 진은 저도 따라서 기분이 흔들흔들 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단화를 벗고 얌전히 마루로 올라서며 흘낏 뒤돌아 현관 바닥에 신발들이 가지런한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에도 가슴이 꾸욱 눌러지는 듯 했다. 흰색, 반접은 양말, 자그만한 발이 사뿐히 마룻장을 밟는다. 아, 발...진짜 작다.

운동화보다 단화가 더 작아보이기는 했으나 벗고 보아도 제 발은 발가락도 길어 여자치곤 왕발이라 할 만한데, 이 애는 거의 전족의 중국 여인들 수준이군. 몸이 가벼워 달리기를 잘 했나. 하고 생각하는 진. 중학시절, 400계주를 할 때 제 앞에서 뛰던 그 애가 훌쩍 거리를 띄우고 멀어지던 것을 떠올렸다. 순 악바리라니깐. 그런 생각을 그때에도 했었는데. 지금도 체력장에서는 1등급이라던가. 몹시 뚱뚱했던 학년톱이 시기의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기에 함께 시선을 주었었는데 그런 식이니 공부를 잘 하는 애들도, 못 하는 애들도 그녀를 가까이 하기를 꺼렸던 것 같다. 뭐, 말수라도 많고 좀 편한 표정을 지었으면 괜찮았을텐데. 진은 그러나 혼자 있던 그녀가 왠지 더 기껍게 느껴진다. 지금, 자신이 그녀와 함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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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3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무언가를 나누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다, 그것은 전화왔다고 알려주면서 자리를 비켜주거나 적어도 전화기 앞에서 아이들이 부담없이 머무를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녀의 집에 전화는 가게에 하나 있었고 그것이 브랏찌되어 안집의 거실에 하나 있었다. 그리고 전화는 오직 가게에서 먼저 받아 집안의 어른이 아닌, 조막만한 계집애에게 부러 목청 높여 전화 받아라아 하고 외쳐주고 그러고도 통화시간을 기다려 줄 만큼 아이에 대한 배려를 담은 매개는 아니었다, 그녀의 부모에게 있어서. 무언가를 먹어라. 하는 말은 하루에도 몇 번씩 했고 저 애는 입이 짧아서. 새앙쥐처럼 빼빼 곯아서도 제대로 먹는게 없다고 탄식을 했지만 그 외에 무얼 해 주어야 하는 지에 대해 그녀의 부모는 아무 것도 몰랐다, 정말로. 나중에 아이들을 보살피는 그녀를 옆에서 보면서 그녀의 아버지가 우리는 애들 데리고 놀이터 한 번 갈 줄을 몰랐는데. 하면서 비난인지 한탄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 것처럼.

그녀는 항상 여보세요. 하고 낮고 무감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뭐 해? 하고 물으면 그냥 있어. 하고 밥 먹었어? 하면 응. 하고 바쁘냐 어쩌냐 해도 그냥, 뭐. 하고 짧게 끊어 대답했다. 화제를 잇지 말라는 듯. 용건만 간단히. 하라는 듯. 그 조차도 그녀에겐 여유가 없는 듯 했다. 송화기 너머 전화를 끊으라는 엄마나 아빠의 고함소리가 타 넘었고 수화기를 만지작 거리는 그녀의 불안함이 말끝을 재게 잇는 목소리에서도 느껴졌다. 몇 번인가 전화를 하다가 채 안녕.하지도 못 했는데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를 들으면서 진은 화법을 달리했다. 나야. 하고 말하고 시간 있느냐. 언제 있느냐. 어디로 나올테냐. 거기로 나와라. 몇 시에. 하고 그럼, 이따 봐. 하고 끊었다. 그녀가 숨을 돌리며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는 모습을 상상하니 저도 마음이 놓이는 걸 느끼면서.

그녀는 떡볶이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앞에는 짜장떡볶이가 유행했는데 그녀의 패거리들과 함께 먹노라면 항상 몇 번 들지도 않았는데 젓가락 집을 것이 없다고. 네가 느리니까 그렇지.하고 말 했지만 먹는 걸 보고 있으니 흡사 서른번 씹기 운동을 하는 비만녀와도 같다. 눈치 보는 그녀. 앞사람이 수저를 놓으면 곧 따라 놓는다. 기다려주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듯.

 

" 마저 먹어. "

" 아냐. 다 먹었어. "

" 흠..."

이 애는 매사에 제 욕심을 차리는 법이 없다. 하는건 돌려 말하는 거고 대체로 눈치를 너무 본다. 보통 친구들 사이에서 누가 점잖은 척을 하고 누가 사소한 양보를 하는가. 요리실습을 하면 누구나 도마와 칼을 잡고 싶어하지, 행주를 빨거나 설겆이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작은 키의 아이들을 앞으로 나오라 하여 번호를 정한다 하였더니 1번이 된 아이가 엉엉 울었다던가. 하여 그 자리로 밀려나오면서도 이게 창피해야 하는 일인가 싶었다는 그녀. 그럼 키작은 사람들은 모다 부끄러워하며 기죽어 살아야 하느냐구. 그녀는 세인들의 편견이 잘못된 것이니 그에 휘둘릴 것 없다고.

" 네 말이 맞지만 보통, 그렇게 사람들의 기준을 다 무시하고 살면..."

그녀, 눈을 들고 쳐다 본다. 슬쩍. 금방 시선을 돌리며.

" 외롭지 않아? "

" 잘난 척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녀는 제 말을 다 못 끝내고 진의 외롭지...하는 말 때문인지 허를 찔린 듯 낭패한 표정이 되었다.

" 글쎄... "

그녀는 외로와한다. 그조차 내색을 안 하면서. 세상 만사에 무심한 척을 하며. 네게 내가 무엇을 하였는데. 하고 말하고 싶은 듯. 그나마 꽃이라도 받았으니 상쇄할 수 있겠으나 고백을 하고 1년여가 지난 뒤였으니 의심을 못 버린다. 네가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눈빛.

패거리의 친구들 얘기를 하면서 그녀는 너와 친구하는 것에 별 감흥이 없다 하는 듯하다. 일상의 여자애들은 오며가며 대화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다 떡볶이도 먹으러 가고 집에 와서 전화하면서 수다도 떨고 몇 더 끌어모아 나이트도 가고 그러다가 미팅도 한다는 듯. 학창시절의 친구들이란 그런 것이려니. 반이 갈리고 학교가 달라지면 자연스레 멀어지고 혹여 집이라도 가까우면 가끔 만나 근황을 주고 받기도 하면서. 다들 그렇게 친구를 갖고들 있지 않느냐며. 네가 나를 친구하고 싶어하는 건 의외이나 같은 중학교를 나와 우연히 몇 번 마주치다 몇 마디 얘기 나누다 서로의 집도 그닥 멀지 않고 하니 이리 같이 분식점을 올 수 도 있는 게지. 이렇게 친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얼굴. 글쎄...

진은 조금, 아니 많이 늦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참 지나서도 계속 하게 되었다. 그녀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의 첫 1년 동안 상처를 많이 받은 듯. 세상은 잿빛이며 인생은 절망스럽구나. 감성을 나누고 사상도 나누고 지와 사랑도 나눈다 생각하였던 짝궁이 미련없이 이과를 선택해 가는 것을 보고, 저 이가 어째 저러한가. 나와 함께 철학과 문학을 논했던 이가. 내가 써 보낸 수많은 편지와 거의 일기에 가까왔던 생각의 나눔이 저 이에겐 그저 사춘기의 방황이었을 뿐인가. 나르찌스처럼 데미안처럼 그리고 짜끄 티보처럼 저는 친우를 사랑한다 생각했는데 어찌하여 저렇게 무감할 수 있는가. 제가 알지 못하는 수학 2를 공부하고 그에 몰입하기에는 너무 건조하게 느껴졌던 물리와 화학을 공부하겠다 하는 짝궁을 이해하지 못 하면서 그녀는 내 슬픔에 동조하는 이가 없다. 내 절망에 함께 답을 구하고자 하지 않는 구나. 아직 세계와 인간에 대한 믿음과 진리를 얻지 못 했는데, 어찌 저렇게 구체적인 현실을 바라보고 미시적인 물리의 법칙을 탐구하겠다 하는가. 너는 이과를 가겠다 하나, 나는 그에 동반할 수 없다. 그것이 오히려 더 슬프나, 네겐 나의 동반이 아무러하지도 않구나...

" 여자애들은 보통 문과를 선택하지. 이과에선 남자애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

흠...말하나 마나다. 그녀는 현실의 구조에 관심이 없다. 진은 그녀가 아예 인식을 못 하는 것은 아니나 거기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중요한 것은 그 학문에 몰입할 만큼 애착이나 적어도 취향이 있는가 아닌가이다. 그녀는 물리를 선택했다. 보통의 문과 여자애들이 선택하는 생물이 아니라. 화학이나 지구과학을 쉽게 암기로 편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시준비에서의 효율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나마 물리가 공부할 만 하다하는 그녀는 특히 운동법칙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아인쉬타인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는 잠시 원자의 반감기같은 것을 흥미롭게 들여다보았으나 핵문제와 과학자의 양심에 관한 장이 말미에 나오자 사회적인 문제와 과학의 학문성 같은 것을 고민하느라 더이상 즐겁지 않아졌다 했다.  그녀는 몰입할 수 없었다. 사회적 관계성을 떠난 학문에 대해서도, 예술에 대해서도,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에 대해서도.

그녀가 무엇을 욕구했을까. 보통의 여고생들이 그러하듯 주목받고 싶어했고 인정받고 싶어했으며 또 사랑받고 싶어했다. 청소년들의 심리적 특성, 그대로. 하지만 그걸 표현해 내는 방식은 개개인들의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직설적으로 혹은 은근하게. 외향적이거나 혹은 내성적으로. 그녀는 후자였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주 극단적으로 그러하였다. 때때로 반동형성의 양상으로 나타날 만큼 그녀는 자기 억제의 성향이 강했다. 얼마나 강했냐 하면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잊어버릴 만큼. 그녀는 자신이 아무것에도 욕심이 없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녀를 만나러 온 것이 많이 늦었다고 생각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더이상 누군가를 동경하지 않았다. 사랑한다 느끼지도 않았고 욕심을 가져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한다 해도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혹여 사랑 비슷하게 할 수 있다 해도, 그건 너의 착각이거나 다른 종류의 감성일 것이다. 각각의 개인들은 그 자신의 생이 있으니 자기 앞에 사랑이 필요할 때 사랑하는 것이지 타인을 위하여 사랑하는 것은 아닐찌니. 그녀는 영화나 소설 속의 연인들을 보면서는 음, 그네들 또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궤가 맞아들었을 때 서로를 연인삼은 것 뿐이다. 하고 통찰했다.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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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2

그녀는 열 아홉살이었다. 

입시 스트레스에 치여 지내야 했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두번 째 해에.

1학년 때부터 성적을 강조하는 분위기의 교실에서 혼자 딴짓하기만을 계속 하던 그녀는 전혜린을 함께 읽는 짝궁을 만나 한때 행복했노라 하였다. E.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한 열망을 키웠으며 소유냐 존재냐 혹은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있는 짝궁을 경외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수업시간 중에나 아니나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감상을 짧게 혹은 길게 휘갈겨 쓴 쪽지를 짝궁에게 보내고 또 받으며 사고를 진전시켰으며 점심시간 내내 서로 아무 말 없이도 운동장을 돌며 산책을 계속 하기도 했다. 교환일기, 그걸 쓰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제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랑의 대상이 짝궁이 아니어도, 부드러운 센티멘탈리즘에 빠져 글을 쓰다 보면 제가 사랑에 대해 쓰고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고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한없이 낭만적인 상념에 빠져들고 있었다. 청회색, 그녀는 자신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은 그런 색조로 물들어있었다고 말했다.

- 고등학생이 되면 다를 줄 알았어.

그녀는 열다섯살을 넘긴 중학시절에 사춘기를 졸업했고 인식은 꽃처럼 지평을 넘고자 했다. 사상, 자유, 학문과 사랑,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은 국어선생님과 작문, 세계사, 그리고 지리 선생님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졌으나 교과의 내용과 진도, 시험문제 따위를 통해서는 충족될 수 없었다.

- 국어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학교에 있지 않았을 지도.

그녀는 특히, 2학년이 되어 짝궁이 이과를 택해 다른 반이 되자 더더욱 외로움을 느끼며 그리 말했다. 선생님을 따라 스카우트활동을 했으나 교실보다 더 밀접하고 가까운 교우관계를 형성해야 할 단실에서 그녀는 더 두드러지게 외돌아졌을 뿐이었다.

- 군중 속에 묻혀있으면 말없이 있어도 티가 안 나는데...

그녀는 동급생들이 떠들어대는 어떤 화제에도 동참할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소재에도 그녀는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기에. 티비를 보지 않았으므로 연예인의 이름을 몰랐고, 엄마가 사다 준 시장의 옷 외에는 입어본 적이 없으므로 브랜드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하다못해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상급생 오빠에 대해서도 함께 손 붙잡고 매점을 오가면서 수다하는 친구가 없으니 아는 척할 만한 이름이 없었다.  말참견을 할 수 없으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밖에. 댓거리를 안 하는 그녀에게 아이들은 더 말 붙이지 않았고 떠들고 있는 아이들과 나란히 테를 만들고 있기는 점점 힘든 일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등을 보인 아이들의 테두리 밖에 혼자 앉아 있거나 앉아있다가 창 밖을 보거나 얘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는 하나 못내 궁금증을 못 이겨 아까 읽던 책을 다시 펴 들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떤 아이였느냐 하면,  조용하고 책을 좋아하고 아는게 많은, 한마디로 공부 잘 하고 재수없는 여자애였다. 중학시절부터 고교시절에도 내내.

똑똑한 아이. 라는 레테르는 이미 중학시절에 붙여졌었다. 같은 반이 아니어도 진은 그런 말을 아이들이 아니라 선생님에게서 들었었다. 교무실이나 음악실을 오가면서 선생님들은 아주 유식한 애가 하나 있다고. 수업 중에 나오는 인명이나 지명을 다 알아 먹는 다고. 공부도 잘 하고, 괴테의 소설을 읽고 있던데 아주 문학소녀야. 하면서 문과계열의 선생님들은 수업할 맛이 난다고 하였었다. 덕분에 한때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하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스파르타요. 아테네요. 하고 대답하는게 유행이었다. 

그녀는 소통이 되는 토론식 수업이 가능했다면 학교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녀는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걸 좋아했다. 알고 아는 것을 넓혀가고 넓은 지식의 세계에서 진리를 깊이있게 탐구하고 싶어했다. 세계, 인식, 영원한 것과 삶의 진리, 세계사의 필연과 결론에 대해. 인문계 고등학교란 아마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또 논구하는 곳일 것이다. 그녀는 독일의 짐나지움 혹은 프랑스의 대학과 같은 분위기에서 학문에 몰입하고 싶어했다. 알지 않고서 어른이 되는 것, 사회에 나아가는 것에 대해 그녀는 겁내 했고 경험하기 전에 먼저 인식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한국의 고등학교란 그런 곳이 아니다.

그녀가 성적을 떨어뜨린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어쩌면 그걸 통해 묻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수업을 잘 듣지 않았으나 그건 교과서 몇 페이지의 진도를 나가는 데 40여분의 수업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5분이면 읽을 수 있었고 읽은 것을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부연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범위에 입각하여 공부를 하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무의미하거나 나아가 가식적이고 굴종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성의 없이 시험을 치르거나  답안지를 한 줄로 메꾸었고 한번은 이름만 기재한 빈 답안지를 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담임에게 불려갔고 원하는 내용의 피드백이 아닌 질타와 걱정만 한 아름 듣고 돌아와 이후 선생에 대한 기대를 끊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학교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학교는 어떤 필요가 있는가. 대학을 가기 전에 거쳐가는 기관으로만 존재했다. 그런데 그건 이미 한국의 모든 학생들과 그 부모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걸 부러 깨닫거나 또 절망하는 것은 오직 그녀에게만 새삼스러운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절망했고 몹시 우울해했다. 그녀가 마음 둘 곳 없이 방황을 계속 하면서 그렇게 무미건조한 채 조금씩 웃게 된 것은 그저 실소였으나, 그 미소를 통해 아이들과 친해지게는 되었다. 2학년 시절 한 패의 친구들과 떠들고 웃고 떡복이집이나 나이트를 가게 되는 것. 그 속에서 그녀는 아이들과 친한 척 했으나 그건 그저 1학년 때의 짝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겐 무엇이 필요했을까.

마음을 나누며 동문수학할 벗이 필요했다. 혹은 연인이 필요했을 지도.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그때 열 아홉살의 물 오른 처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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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 열 아홉의 그녀 1

그녀는 열 아홉살이었다.

입시를 칼처럼 목에 걸고 듣느니 네가 몇 점이냐, 보느니 재가 몇 등인가 하는 폴 인 스트레스의 상황이었으나 욕구를 유예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춘향이가 몇 이었고 길동이는 몇 이었으며 또 죽음을 결심한 쥴리엣은 몇 이었나. 고등학교를 이리 규방처럼 옥죄이고 머리로만 공부하라 할 양이었으면 여자들은 좀더 일찌기 취학하여야 했을 것이다. 대학이 길이 아닌 빈궁의 여식들은 상고를 다니며 화장하는 법조차 배운다 하고 음악시간엔 음악을, 미술시간엔 미술을, 그리고 무용을 안 해도 체육복을 터질 듯이 입고 햇살 아래 허벅지를 드러내며 신체활동을 즐긴다는데. 여대생이 되어보지 못 한 박탈감과 소외감을 후일 결혼하고 애 낳고 그 애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가슴 저변에 깔고 살다가 방통대를 기웃거리는 2프로 부족한 현모양처가 될 지 언정, 지금 그네들의 청춘은 자유롭다.

자유를 갈구하는 맘이 그녀를 밤에 나가게 한다.

경제력이 없고 용돈을 받아 늘 주머니가 풍족한 부잣집 딸도 아니었으니 그녀는 밤에 갈 데가 없다. 낮에도 교실에만 있었고. 집에 와서는 제 자그마한 방에 처박히고 싶으나 깔끔하니 치운 책상 위, 빨간 라디오 하나 구석에 놓고 93.1 메가헤르쯔의 에프엠 음악방송을 듣고 싶으나 지 선상의 아리아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고함소리에 떠밀려 집을 나오고 말았다. 아버지는 매사에 성난 고함소리와 욕지기로 제 속의 화를 쏟아내었으나 그걸 쓰레기처럼 뒤집어쓰는 엄마는 속으로 골병이 들고 정신이 피폐해져 갔다. 오늘의 스트레스 지수는 보통에서 약간 상위이긴 하나 폭력이 난무하는 고수위는 아닌 듯 하니, 그녀는 엄마가 매 맞지는 않으리. 허나 저리 정신적 고통과 괴롭힘 당하는 것에서 구해 나올 수 없고 그렇다고 함께 당하고 있을 수도 없으니. 하며 도망치듯 나온 것이다.

- 내가 무어라 했는가. 진즉부터 저런 남편을 버리고 이혼해서 살아도 굶어죽지는 않을테니. 함께 나가자. 하지 않았던가. 그리 하지 않은 것은 엄마이니, 저리 당하고 사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허나, 나는 필히 나갈 것이다.

그녀는 그런 말을 열 서넛 먹은 나이부터 엄마에게 해왔었다. 진지하게, 사정하며, 나중엔 비아냥거리며. 아빠의 손찌검을 피해 올라가 숨은 옥상에서. 쫓아오는 그림자를 피해 타넘은 남의 집 지붕 위에서. 깨어진 유리창 조각들 너머 움추렸던 어느 구석지에서.

울고 울면서 그녀의 눈물은 샘의 바닥을 끌어올리듯 항상 차 넘쳤고 조그마한 슬픔이나 마음의 상처에도 예민하게 연동했으며 그럴 수록 소리 없이 감정을 퇴적시켰다.

 

- 저 애가 낮에도 혼자 산책을 일삼더니.

진은 제과점 안에서 거스름돈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깥 창을 곁눈으로 보면서 행인들은 진열대의 케잌을 보기도 하고 유리에 비치는 제 모습을 확인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바쁘게 홱 지나고는 했다. 하기야 벌써 열 시가 다 되어가니, 귀가길이 아니어도 얼른 볼일을 마치고 돌아가 쉬고 싶어할 만한 때가 아닌가. 집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집이란 그런 곳이니.

쉬고. 쉬면서 먹고. 먹을꺼리를 내 입에 넣는 것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입에 들어가는 걸 보는 것이 더 기꺼운.

- 저 애가 이 밤에 집에 안 있고 뭘 하러?

진열장 안의 케잌을 눈여겨 보는 듯 하나 먹고 싶어 그런 건 아니라는 듯, 금방 고개를 돌리고 휘익 지나가는 그 애의 발걸음은 그러나 별로 빠르지 않았다. 진은 거스름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은 채로 손을 찌르고 다른 한 손에는 식빵 봉지를 들고 제과점 문을 밀고 나와 섰다. 폭좁은 인도를 따라 죽 늘어진 가게들의 조명발에 늦은 밤거리는 어느 때든 상관없이 밝기만 하였다.  길 아래쪽 횡단보도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 애가 보였다. 방금 지나온 제과점 위쪽의 횡단보도가 더 가까웠을 텐데. 진은 그 쪽으로 건너 저의 동네로 돌아갈 것이었으나 동시에 신호를 받는 짧은 두 개의 횡단보도 사이의 거리를 사람들은 곧잘 사선으로 건너기도 하였기에 잠시 그냥 서 있었다.

저 애에게 아는 척을 하기에는 좀. 시간도 장소도 아닌 것 같았으나 무엇보다 그 표정이 아니었다.

- 대체 저 침울함의 정체는 뭐냐...

진은 고고학자의 수수께끼를 감춘 추리소설을 읽을 때처럼 시선을 떼지 않고 주의를 집중했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 같았다. 저 애의 실루엣, 저 표정에서 흐르는 슬픔? 냉소? 허탈감? 산산히 부는 바람 속에서 그냥 스러져 희미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

- 왜 저 애는 항상 혼자 걷고 있는 걸까.

진이 그 애를 눈에 담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의 넓은 교정을 가로 돌며 고등학교의 교사까지 이어지는 야트막한 언덕길을 키작은 꽃나무들 속으로 몸을 숨길 듯 걸어가는 모습에서부터였을까. 안 보이는 한 손에 책을 들고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무심히 지나쳐 붉은 벽돌담의 여고 쪽으로 걷는 그 애는 저는 그 쪽에 볼일이 있어 간다는 듯 하였으나 짧은 점심시간, 걸음은 빠르지 않았었다. 해가 중천에 있던 어느 이른 하교길에서도 그 애는 홀로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진이 방금 헤어져온 아이들과 수다하던 가수의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서 있던 횡단보도를 멀리 두고 차도를 만드느라 쌓아올려진 뚝방길 위쪽으로 발꿈치를 숨기며 멀어지곤 했다. 가방을 멘 어깨가 무겁다는 듯 땅바닥에 붙은 민들레의 그늘 아래로 묻힐 듯 낮고 느리게 사라지는 그애의 혼자 가는 뒷모습이 눈에 남기도 하였다.

사실 남았을 뿐, 기억의 저장창고에서 어느 구석으로 밀려갔는 지 다시 생각하지도 깊이 숙고하지도 않았었다. 중학교를 미련없이 졸업하고 다가오는 여고생활이 기대 반, 짜증 반으로 귀찮게만 느껴지던 겨울, 2월의 그날에도 쵸컬릿만 빼어 식탁 위에 던져 놓은 채 진은 메모하는 걸 잊은 스냅사진들이 아랫 서랍 어딘가에 있다는 걸 가끔 떠올렸을 뿐, 그애의 혼자 걷던 실루엣도 선물상자 속의 편지도 차가웠던 손가락의 감촉도 하나로 꿰어 인식하지 못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가슴에 뭐가 걸려있는 듯 답답증을 느끼기는 하였는데, 그게 뭔지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기도 했으니, 그건 엄마가 혼자 있는 뒷모습을 발견하는게 잦아지면서 자꾸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식사준비에만 소흘해 진 것이 아니라 엄마는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것 같았다. 진은 식탁 위에 놓여진 잼이 조금씩 주는 것을 보며 식빵을 사 오겠다고 밤 늦었는데 뭐하러. 하는 엄마의 끊어지는 목소리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길 건너 제과점까지 부러 길게 걸어 나왔다.  행인도 많이 줄어든 골목길을 지나 혼자 걸으며 생각이 많아지고 있던 열 여섯의 여고 1년생. 진이 가진 레테르였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왜 사람들은 혼자 걸으며 혹은 혼자 오도카니 식탁 앞에 앉아 혼자 만의 생각에 골몰하게 되는 걸까. 진은 저 자신이 그러고 있는 적이 많아지는 걸 미처 인식하지 못 한 채, 엄마를 생각하다가 또 그애를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저는 항상 친구들과 함께 있었는데. 둘러싸이듯 교실에서 거리에서 집에서도 늘 전화를 받으며 친구들 속에 있느라 그 무리들 너머에 또 다른 아이들이 있으나 역시 그네들도 누군가과 함께 웃거나 떠들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춘기라 그런가 보다. 하고 진은 선생님들이 소녀시대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그 애를 휙 밀어놓았다. 동생도 사춘기고 여고의 동급생들도. 색기를 더해가는 정원도. 사춘기의 소녀들이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다.

- 근데 저 애는 왜 맨날 혼자 저러구 다니냐구. 세상 고민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어깨 무거운 듯, 엄마의 등 돌린 모습에서 처음엔 화가 나고 속이 상하다가 나중엔 그 어깨가 미동도 없이 결연히 굳어지는 것을 보며 함께 마음이 다져지고 있던 진이었다. 엄마는 이혼을 할 것이고 또 취직을 할 것이었다. 그리고 어쪄면 처음으로 자기만의 길을 가게 될 것이었다. 결혼하고 거의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마흔의 나이에.

그 불혹의 나이에 세상을 처음 맞닥뜨리는 소녀처럼 결의를 다지고 있는 엄마는 안쓰럽기도 하고 또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진은 가족이 있던 없던, 그 가족이 남편이던 자식이던 자신의 생은 결국 혼자 만들어가는 것인가보다. 싶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왜 나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 하는 걸까. 하고 진은 오래 고뇌하게 되었다.

- 저 애가 저렇게 혼자 가다가 어느 순간 무너지지 않을까.

진은 그애가 주고 간 선물 상자를 서랍 어디에 두었더라. 하는 생각을 하며 횡단보도와 횡단보도 사이의 거리를 사선으로 건너 집으로 돌아왔다. 그애가 어둠 속을 가르며 네거리의 어느 쪽인가로 사라지는 것을 먼 눈으로 보고 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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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들

궁색했던 집.

항상 결핍을 느꼈던 어린 시절로 추억된다.

그 집이 있는 동네, 삼십년 전의 장위동이다.

벗어나기 위해 어른이 되고 싶어했던 십대를 벗어나자 마자

미친듯이 거리를 누볐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니, 단지 쏘다니고 싶어서 그러나 데먼스트레인션에 참여하고 있다는 훌륭한 이유 속에 숨어서.

 

집은 홈도 아니었고 하우스도 되지 못 해서 나는 가정이나 가족의 진정한 뜻을 사전적 의미 이상으로 실감해 보지 못 했다.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지를 묻는 톨스토이를 의아하게 쳐다보면서 교도소의 독방 만큼의 사적 공간도 없는 초라하고 위험한 사춘기를 보냈다.

사흘이 멀다 하고 고함 소리 속에서 매맞는 엄마와 함께 귀뚤귀뚤 귀뚜라미 우는 연탄보일러가 있는 지하실에 숨어서 어둠과 벌레들로 인한 공포를 아빠보다는 낫게 여겼던 어린 시절이 지금은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초록색 기와지붕 얹힌 작은 단독주택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집, 아이들을 돌보지 못 하고 아빠와 가게에서 장사하기에 바빴던 엄마를 기다릴 수 없어 서툴게 라면을 끓여주던 오빠와 그 때도 말 안 듣고 늘 빗나가기만 했던 귀여운 구석 없는 남동생 사이에서 나는 성 역할 사회화가 잘 안 되던 아이였다. 줄창 혼자 놀고 혼자 싸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책만 읽었었다. 일어설 수 없이 천정 낮은 다락에 혼자 숨어 만화책을 보다가 다락의 작은 유리창을 깨고 아빠한테 뺨을 맞았던 일-아빠는 단지 깜짝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 때렸다고 나중에 말했다, -컴컴하고 무서웠던 지하실,  늘 속 시원히 말대꾸 하고 더 시원하게 두들겨맞았던 엄마가 답답하기만 했던 일 그런 류의 기억들이 그 낡은 단독주택을 보면 생각난다. 그 집 주인이 구청의 지원금을 받고 담장을 허물어 그 비좁은 마당을 드러내 놓고 있기에 그 집의 추억은 더욱 잘 생각킨다. 그 지하실의 입구가 마당의 작은 베란다 아래로 음험한 그늘 속에 숨어서 나를 내다 보곤 한다. 그 집 앞을 지나는 게 너무나 싫다.

 

이십대의 중반을 넘기지 않고 나는 집을 나왔다. 몇 번의 가출 경험이 있기에 스물 다섯의 가출은 거의 완벽한 출가, 아니 분가 아니 자주독립의 수준이었다. 모아놓은 돈은 없었다. 그러나 내 가출의 이유를 너무나 잘 이해하는 오빠가 모아놓은 돈으로 허름한 월세방을 얻을 수 있었다. 오빠는 나의 몇 번의 다짐에 잘 부응하여 평소의 오빠 답지 않게 엄마아빠의 우격다짐에도 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전의 가출에서 있는 곳을 추적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오빠를 완벽히 내 편으로 만든 것 만으로 내 독립된 생활이 지속될 수 있슴에 놀라워했다. 그 후로  장위동에 다시 돌아가는 일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었다.

그 집 앞을 지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온다. 어린이집을 갈 때는 차량을 이용하지만 올 때는 피아노 학원을 들러 오기 때문에 아이들을 직접 데리고 그 집 앞을 지나 조그마한 빌라인 우리 집으로 돌아온다.

이 동네가 철거되길 기다리며, 철거시에 받을 이런 저런 이득을 건져보고자 주민등록의 실제 거주자임을 지키기 위해 장위동으로 돌아와있기 때문이다.

결국 궁색함이 나의 가정에서도 이어지기 있다는 말이다.  내 궁색함은 내가 남편으로 삼은 이의 지독한 가난과 그 가난에 습성화된 궁색함에 강화되고 더욱 강제되고 있다.

이렇게 몇 푼을 위하여 몇 년을 궁색한 동네에서 살 필요는 없는데....나의 아이들에게 나와 똑같은, 내유년의 궁색함이 여기 저기 묻어있는 낡은 동네에서의 생활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아니 더 나빠졌고 이건 우리가 이 동네를 떠나기 전까지 개선될 수 없는 생활환경이다. 철거예정지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천을 건너 야산으로 놀러다녔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자동차들 사이를 갈짓자로 걸어야 하는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서울의 변두리, 아이들은 놀 곳이 없다. 나도, 우리 아이들도.

한글도 모르던 나이 때부터 만화방을 들락거렸다고 엄마는 나중에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책이 있는 곳이 거기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그리고 우리 삼남매가 언제 집에 맘 편히 있을 수 있는 날이 있었냐고 속으로 뇌까렸다.

 

두 칸의 점포 안 쪽에는 두 개의 방이 있었다. 아니 거실처럼 쓰는 가게에서 바로 이어지는 작은 방 안쪽으로 길고 좁은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다. 거실방엔 티비가 있었고 밥을 먹는 곳이자 엄마아빠가 잠자는 곳이었다. 다른 하나의 조금 더 큰 방이 오빠와 남동생이 쓰는 방이었으므로, 나는 엄마아빠가 잠자는 방 안쪽의 기다란 방에서 혼자 자야했다. 오빠는 고등학생, 나는 중학생이었다. 삼남매가 한 방을 쓸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고 엄마아빠의 잠자리 옆에서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어린애도 아니었던 나는 내 방이 너무나 갖고 싶었다. 그 사무치던 욕구, 그 결핍과 단지 불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가난에 대한 분노는 사춘기시절 내 방을 갖지 못 함으로써 뼈에 사무치도록 각인되었다. 가난이 싫고 미웠고 저주스러웠다. 궁색함도,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근검절약도, 촌지를 받으며 대학을 가야한다고 너불대는 고등학교의 담샘도 증오스러웠다.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의 반감은 대학을 들어가자 마자 나를 데모꾼으로 만들었다. 자구발 하나만 읽고도 나는 완벽히 맑스주의자가 되었다. 이미 사춘기를 지나 십대말에 이르렀을 때 가난이라던가 가정의 누추함이라던가 불행한 가족관계라던가 하는 것에 영향받고 휘둘리는 것을 모면하고 다소 위험하긴 했지만 빗나가지 않고 무사히 성장했던 나는 사회과학과 내 개인사를 혼동하진 않았다. 그러기엔 나의 인문학적 소양이 너무 깊었다. 고교시절 실존주의에 심취했던 내게 꼬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 쉬웠다고나 할까.... 고교시절 제 2의 성을 읽으면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나는  사회과학세미나 써클에서 경제학, 역사학을 다 보고 정치사회학을 공부할 때 쯤 곁다리로 본 여성학 텍스트에서 시몬느 보봐르를 만나는 것에 너무 익숙해있었고, 고교시절 존경하는 선생님이 당신의 캐비넷을 열고 빌려준 마가렛 미드의 문화인류학관련 서적을  읽었던 내게 가족의 기원을 공부하는 것은 인식의 나선형 발전구조를 몸소 체험하는 형국이었다. 맑스주의는 내 유년의 결핍을 사회구조적으로 밝혀주었고 60년대 이농한 도시빈민이었던 내 아빠의 굶주림과 공포와 분노, 그리고 가부장적 폭력의 연원을 밝혀주었다. 이해했으므로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았다. 다만 비판적이 되었다. 나는 매우 비판적이었고, 이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으로서도 여성으로서도 제대로 올곧게 살아갈 수 없었으므로, 그 토대를 만드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내 삶의 내용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운동...십년에 걸친 내 운동이 패배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동지들을 잃지 않았다면 아주 작은 조직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다면 내가 장위동으로 돌아올 일은 절때 없었을 터인데....

길을 잃고 돌와왔다. 마뜩챦은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그 점포의 방들은 다 없어졌지만, 그 가게의 한 켠에서 엄마아빠는 일흔의 나이에도 가게를 지키고 있다. 달리 할 것이 없으므로 말 그대로 지키고 있다. 못 먹고, 못 입고, 죽도록 고생만 하면서도 골병이 들도록 두들겨맞았던 엄마는 제대로 거동을 못 하신다. 가게에 커다란 평상을 놓고 거기서 먹고 자고 하신다. 그 가게의 위 층에 방 3개와 너른 거실이 있는 살림집이 있지만 엄마는 언젠가부터 그 이층으로 가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 하게 되었다. 근검절약의 최후단계에 이르러서 엄마는 그 축저된 돈을 사용할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나는 분노한다. 내 엄마의 생을, 내 엄마에게 자신의 분노를 쏟아부었던 아빠를, 그 가게를 아침마다 가는 것이 또 하나의 고통이다. 내 아이들의 어린이집 차량이 엄마아빠의 그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가게 앞에 서기 때문이다. 나의 궁색한 집이 있는 골목 안쪽까지 어린이집 차량이 들어오기엔 여기저기 처박혀있는 자동차들이 너무나 많은 철거예정지구이다, 장위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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