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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혼식을 준비하는 지난 두 달 동안은 저희들에게
엄청난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수많은 시도 응답과 축복의 만남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 준비로 바쁘냐는 질문에
저희들의 대답은 항상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주셔서 하나도 안 바쁩니다."
너무도 완벽하게 준비해 주신 하나님 덕분에
너무도 한가롭게 매일 기대와 기쁨으로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알게 된 진리는 하려고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우리의 결혼, 우리의 삶,
나아가서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분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결혼은 매일 서로의 탄광에서 하나님께서 숨겨 놓으신 보물을 캐내는 거라고.
때로는 보석이 나오기까지는 흙을 캐내어야 할 때도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반려자에게 무한한 보물을 숨겨 놓으신 줄을 믿기에
기대와 기쁨으로 항상 기도하면서 결혼 생활을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고 서로를 감사할 줄 알고
예수님의 사랑의 편지로 쓰임 받는 부부가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결혼식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혜영과 션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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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은 무슨..
돈이 다 준비해줬겠지..
란 생각이 들었던 내가 불순한 것인지..--;
뭐 암튼 잘 살길 바란다.
1. 국가는 왜 헌법을 어겨가면서 군가산점제를 존속하려 하는가?
- 여성과 군대, 그리고 시민권
1) 군가산점제와 성(性)정치
"헌법소원한 여자들 정신대 보내서 똥꾸녕 찢어지게 고생 좀 시키자"(나우누리 plaza 35492)
"'남자들과는 다른 방법으로도!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그리고 나서 우리에게도 남자들과 같은 보상을 바란다!'라고... 이것이 완전한 남녀평등 아닌가?"(천리안 열린광장 1658)
"여자들을 군대에 보내다뇨... 떡대 있다마난 아들을 군대에 보내면서도 눈물을 흘리시던 부모 님이신데 가냘프고 여린 딸까지 군대에 보낸다면 얼마나 우리 부모님들의 가슴이 찢어지겠습니 까?… 참 제가 정말로 요기 조기 보면서 열받는 건 가산점 폐지나 뭐 그런게 아니구 '그까짓 군 대'니 '나두 갈 수 있음 가겠다'는 식의 일부 몰지각한 여성분들의 문구죠. … 딱 일주일만 데려 다가 한 겨울 새벽에 홀딱베껴서 빵빠레 더번하구 유격이나 시켜줬으면 좋겠군요."(천리안 열린 광장 385)
1998년 10월 19일, 네 명의 이화여대 졸업생들과 신체 장애가 있는 한 연세대 남성이 제대 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제8조 제1항, 제3항 및 동법시행령 제3조가 자신들의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공무담임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해 1999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들을 위헌이라고 판결하였다. 하지만 그 로부터 며칠 후 2000년 1월 7일 국방부와 보훈처는 위헌 결정이 난 [제대군인 지원법] 대신 [제대군인 등 지원에 관한 법률]이나 [특별법] 형태로 관련 법률을 새로 마련하여 임시국회 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군가산점제'를 둘 러싼 그토록 무성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논란은 사이버 테러의 문제에서부터 군대와 국가, 그리고 시민권에 이르는 다양하고 복잡한 층위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 중에서 이러한 논란이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난 곳은 무엇보다도 사이버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헌 판결이 나자마자 수많은 '예비역'들과 '현역'들이 여성민우회와 여성노조를 비 롯한 여성단체의 게시판에 정상적인 논의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욕설들을 갈겨 놓으면서부 터 논쟁은 시작되었다. 그 뒤로부터 각종 사이버 공간은 여성에 대한 파시즘적 발언들로 도 배되었고-그 중에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여자들을 정신대에 보내자"라는 잔혹한 것도 있 다-, 이에 문제 제기하는 이, 특히 그가 여성일 경우에는 살의 등등한 메일들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이러한 폭력은 단지 언어적 측면을 넘어서 실제의 폭력에 대한 위협으로 나타나 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헌법 소원한 여성들에 대한 협박을 들 수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한 집단에 대한 다른 집단의 공격이 이처럼 집요하고 조직적인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 서, 더군다나 공격을 받는 측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이는 가히 파시즘을 방불케 한다.1)
하지만 이 문제는 시시껄렁한 시사토론 꺼리를 넘어서 '여성과 국가'와 '여성의 시민권'에 대 한 다소 심각한 수준의 문제에까지 연루되어 있다. '도대체 왜 국가는 형식적인 수준에서 최 소한의 국민의 기본권리를 명시한 헌법을 어기면서까지 '제대 군인'의 편을 드는가?'
우리는 이러한 총체적인 문제를 '성(性)정치'의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 성의 정치 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이익을 위하여, 혹은 이에 반하여 양성관계를 변화시키려는 정치적 실천'을 의미한다.2)
군가산점제를 둘러싼 논쟁을 '성정치'의 맥락에서 본다는 것은 이것이 '남성, 여성 모두 피해 자이고, 이 문제는 결코 남녀간의 성대결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재고'함을 의미한다. 그야말 로 선정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사이버 토론장에서 이러한 주장이 가장 합리적이었음은 인정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러한 논란의 출발점이 억압적인 군대와 강제징병제의 문제점, 그 리고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체계의 부재라는 국가정책의 문제라는 점에서 그러한 지적은 적 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가산점제 문제가 '성대결'이 아니라는 주장은 논쟁이 '결과적으로' 성대 결로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군가산점 문제가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 문제와도 얽혀있고, 무엇보다도 국가 정책의 실패임에도 불구하고 그 것이 여성 일반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났다는 점,3) 또 그러한 폭력이 무척이나 조직적이었다 는 점,4) 그리고 사이버 공간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남성들의 난동이 결과적으로 국가의 정책 으로 수용되었다는 점등을 살펴 볼 때, 결과적으로 그것은 철저한 '성대결'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군가산점제와 관련된 무수한 논란을 '성정치'의 맥락에서 살펴보려 한다. 그럼으로써만이 이러한 폭력과 국가정책의 함의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시민=유권자=병역을 수행할 수 있는 자=남성'
이를 위해서 먼저 시민권(civil right)의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왜 국가가 같은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이해에 반하여 남성의 이해를 관철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결정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에도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의 기초가 되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정의하는 시 민권은, 애초에 국민의 경계를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우에노 치즈코의 논의에 따르면, 근대 화 프로젝트, 즉 국민을 정의하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지정학적, 인구학적인 배제를 수반한 다. 이는 '우리(국민)'를 정의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너희(곧 국민의 자격이 없는 자, 혹은 다 른 국가의 국민)'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당연하다. 프랑스의 '인권 선언les droits de I'homme et du citoyen'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곧 "그것은 글자 그대로 '남자homme' 및 '시민 citoyen'의 권리에 지나지 않으므로 여성과 노동자가 배제되어 있다."5) 따라서 많은 초기 여 성운동가들은 남성이 전유한 시민의 권리를 여성으로까지 확장하기 위해 시민권 운동, 곧 참정권 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국민 국가'가 군사력과 생산력 증강을 국가 목표로 '국민'을 '인구', 즉 병력과 노동 력으로 환원할 경우 '병역'은 '국민화'의 열쇠가 된다. 그 때 '국민'은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명예를 가진 사람'과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명예를 갖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어, 전자만이 국민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6) 이는 '국민'과 '남성성'의 은밀한 그러나 결정 적인 동맹, 곧 공민성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남성으로 성별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7)
더 나아가 병역은 어느 시대에나 더 가진 자의 몫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테네가 자랑하는 중보병의 주력은 인구의 10%도 안 되는 시민들이었고, 로마군단 역시 로마 시민권 소유자 로 징병이 제한됐다. 국가에서 밀을 배급받아야 하는 무산자들은 군대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8) 현재 한국에서 여성과 장애인도 마찬가지이다. 병역을 수행할 수 있는 이른바 '신 체 건장한 남성'이 아닌 이들은 그야말로 잔여 범주이다.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되지"라 는 말은 어떠한 이론에 기대지 않고도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처음에 인용한 "남자들과는 다른 방법으로도!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이것이 완전한 남녀평등 아닌가?"라 는 주장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시민권이 언제나 국가에 대해 획일적인 방식의 공헌을 해야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한 공헌의 기준은 물론 병역이다. 이 에 따르면 병역, 혹은 병역과 같은 강도의 노동을 수행하지 않은 어린아이나 노인, 그리고 장애인과 여성은 죽었다 깨어나도 '제대 군인'과 같은 권리를 누리는 시민이 될 수 없는 것이다.9)
그리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한국에서 정말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물론 '돈과 빽' 보다 더 좋은 건 없다. 이들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도 사회의 엘리트로서 편안한 삶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 헌법이 규정하는 최소한의 시민으 로서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장애인과 여성은 '헌 법상 보장된 평등권, 공무담임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없다. 곧 '시민 = 유권 자 = 병역을 수행할 수 있는 자 = 신체 건장한 남성'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집권 여당과 정부, 그리고 언론의 태도는 이러한 등식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유효한가를 잘 보여준다. 여당과 정부는 위헌 판결이 난 법조항을 얄팍한 방법을 써서 사실상 존속시키기 로 함으로써 이를 몸소 실천하였다. 이들이 총선 전에 무더기 표를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방 법으로 (지역구도를 이용하는 것 외에) 한국 사회를 포괄할 수 있는 가장 큰 정체성 집단인 '제대 군인'과 '현역군인'에 눈독을 들인 것은 정치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집단인 20대 여성들을 비롯하여 여성 일반의 정치적 목소리는 극 히 미미할 것이고, 몇몇 시끄러운 여성 단체의 소란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 가 흘린 고만한 떡고물에 고통과 치욕의 2년 2개월을 보상할 수 있다고 믿는 제대 군인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갖은 욕설로 알아서 짓밟아 줄테니, 정부와 여당이 이를 통과시키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적당한 때에 전국구 의원의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법안을 통과함으로써 상처받은 여성계를 달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은 적당히 맞장구를 쳐 줄 것이다. 며칠 전 "군가산점 폐지 대구 9급 합격자 모두 여성",10) "군가산점 위헌 판결 장병 사기 저하 우려, 국방부 입장 발표",11) "초등교 임용, 군가산점 폐지로 남자 11명 탈락"12)?/a>?외치던 신문은, 바로 며칠 후 비례 대표제 30%를 통과한 진보적인 법정에 박수를 치고, 새로운 여성 정치 시대가 열렸다고 호들갑을 떨 것이기 때문이다.13)
2. 여성운동의 딜레마
군가산점 논쟁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은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차라 리 남성들과 동등하게 소위 '국방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정당하게 국민 대우를 받자는 것이 고, 다른 하나는 남성이 군대에서 경험하는 억압과 마찬가지로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음을 강조하며 여성들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두 입장은 모두 진정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는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네티즌을 중심으로 하는) 남성들이 주도하는 감정싸움에 즉각적으로 도출된 대응방식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왜 여성은 군대에 안 가는가라는 물음에 온갖 구실로 변명을 해야만 하는 현재와 같 은 문제 설정은 본말이 전도된 것임이 분명하다. 실로 한국사회에서 군대문제는 너무나 많 은 문제들이 중첩되어 있어서 쉽사리 거론하기 힘든 부분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여성과 남성의 대립뿐만 아니라 국가의 보상체계, 분단상황, 억압적인 군대 문화, 군대 중심으로 조 직된 사회 등 결코 단순화하기 힘든 여러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성별적인 관점, 이 번 싸움에서도 불거졌다시피 여성과 남성의 적대, 역시 한국 사회에서 군대 문제를 둘러싼 여러 쟁점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 모든 문제가 복합적이며 사회적 관심도가 깊어질수록, 더 욱 중요하게 요청되는 것은 일부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폐쇄고리를 넘어서는 여성운동의 대 응논리를 만드는 일이다.
1) 여성은 대신 아기를 낳는다?
먼저 여성은 '아이를 낳기 때문에' 군대는 면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방식에 대해 살펴 보자.
그러나 이는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이 남성을 위해서, 나아가 국가를 위해서라는 주장과 역 설적으로 통한다. 역사적으로 국가는 여러모로 여성의 출산을 통제해 온 것이 사실이다. 과 거 정권들에 의해 시행된 가족계획정책이나 피임정책 등은 이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한다. 만 약 여성이 정말로 국가를 위해 혹은 남성을 위해 아이를 낳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강제 징집에 의한 군복무 수행과 마찬가지로 '의무사항'으로 정해진 것인가? 이러한 식의 주장은 이제까지 여성운동의 정치에서 이룬 성과들, 다시 말해 여성의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투쟁 의 성과들을 모두 무화시키는 논리일 뿐 아니라 페미니즘을 '국가'라는 틀 속에 가둬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여성=출산을 위한 존재'라는 논리에 숨어 있는 몇 가지 맹점들을 지적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런 식의 주장은 여성을 다시 자연에 묶어두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여성은 아이 를 낳고 기르는 것이 본질적으로 적합하다는 주장은 여성운동가들이 이제껏 물리치기 위해 노력해온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의 하나이다. 여성은 아이를 낳을 몸이기에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 여성의 음주나 흡연은 아기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 등은 바로 이와 같이 여성 은 본질적으로 아이를 낳기 위한 존재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막 족쇄를 풀어내 고 자신의 몸에 대한 자율성을 찾기 시작한 여성들을 족쇄를 채워 다시 가둘 생각이 아니라 면, 이런 식의 논리는 여러모로 무익한 주장임에 틀림없다.
둘째, 여성의 출산이 국가에 종속된 것이라면, 이는 역으로 출산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정당 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여성의 몸은 국가에 종속된 것인가? 여성이 국민 자격을 얻기 위해 반대급부로 출산의 의무를 다해야 한단 말인가? 이는 극단적으로는 2차 대전 당시 독 일이나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여성들이 담당했던 역할, 즉 충성스러운 제국의 신민(臣民)을 낳아줌으로써 국가에 기여했던 여성들의 역할에 대한 역사적 비판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예를 들어 우에노 치즈코는 2차 대전 당시 가해 국가였던 일본이나 독일의 출산 정책을 검 토하면서 출산이 국가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고 자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발상일수 있는가 를 지적하고 있다. "세계 대전의 막바지에 이르러 나찌는 혼인 연령 남녀비의 불균형으로 '아리아 인종' 여성들에게 결혼 난이 일고 있는 것을 우려하면서 인구증가를 위해 '미혼모'를 권장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친위대와 같은 나찌 엘리트와 미혼 여성의 '불륜을 권장하는' 주 장까지 포함하였다 … 나찌는 '열등인종'을 말살시키기 위해 '죽음의 공장'을 만들었지만 논 리적으로 그들의 우생 사상 배후에는 출산 품질관리를 수반하는 '재생산 공장'의 가능성이 상정되고 있다."14)
2) 차라리 군대를 가겠다
한편 남성 네티즌들의 극성 때문에 일각에서는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여자들도 군대에 가서 이들의 입을 막아버리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제도적으로) 못 가게 해서 안 간 거지, 가기 싫어서 혹은 능력이 모자라서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주장의 대부분은 어떤 진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구차하니 차라리', 혹은 '인간은 모두 출발점이 똑같다. 남성과 여성 모두 인간이다. 따라서 여성 또한 남성과 평등하다.'같은 평등 에 관한 일종의 형식 논리15)를 은연중에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발상이다. 따라서 이러 한 여성들의 주장 또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하나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자. 어쩌면 똑같이 군대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도 같 다. 이 참에 혹독한 훈련을 통해 이제껏 계발된 적이 없었던 (때문에 여성 자신과 사회 모 두가 여성을 약자로 살게 했던) 여성의 육체를 단단하게 만들고, 우리도 군대갔다 왔노라고 큰소리 떵떵 치며 당당하게 살자! 술자리에서도 내가 군대에서 짬밥 먹을 때 얼마나 서글펐 는지 남자 후배들한테 설교도 하고 내가 그때 어떤 숫총각 놈을 따먹었으며 드디어 나도 처 녀 딱지 떼게 생겼다고 떠벌리는 거다. 회사 입사해서는 군대 규율이 온몸에 배어있기 때문 에 상사들에 복종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고, 상사 및 동료들과 '내통'할 수 있는 술자리 에서는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결정적인 얘깃거리인 군대 체험담에 동참하는 거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순진하고 비현실적이며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여성 징병을 외치는 남성들이 자신들의 근거로 강력히 거론하는 이스라엘의 경우를 살펴보자. 먼저 이스라엘이 라는 근거가 제기되는 방식부터 문제 제기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여성들도 군에 가지 않느 냐는 주장은 그녀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남성과 평등한지, 다른 모든 사회에서 자행되는 아 내구타와 같은 가정폭력은 벌어지지 않는지 등과 같은 현실적인 질문들을 모두 은폐한 상태 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질문들이 제대로 답해진 다음에야 비로소 여성의 군 대행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징병 주장들의 배후에는 다만 '그녀들이 군대에 간다'는 '사실'만을 부각시키려는 성급함과 단순함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안타깝게도 군대에 가는 이스라엘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평등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주장보다는 오히려 가정폭력이 심각하다, 여성의 가사노동 전담이 가장 철저하다 혹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불평등의 수준에서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주장이 보다 일반적이다.
또한 이러한 전략은 '군복무'라는 고정불변의 기준에 여성을 끼워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한 계가 분명한 전략이다. 여성의 군대참여를 논하기 앞서 질문해야 할 것은 '군대' 자체가 고 정불변의 기준이냐는 점이다. 이것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수십 년간의 군부 독재를 경험한 바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이었는지 기억하고 있으며, 이 시기를 통해 다져진 군대 문화(절대복종, 상명하달로 표상되는)가 온 사회 곳곳에 스며있으며 청산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불어 우리 사회 어느 부위 어느 조직에서나 지배적인 군대 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간접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소 외되어 왔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따라서 여성이 군대를 가야된다는 주장 역시 올바르 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앞으로 여성운동은 우리 사회의 조직원리로서의 군대 문화 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3. 그렇다면 왜 남성의 폭력은 여성을 향했는가?
군복무 문제에 대해 우리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의 희생이 무척이나 크다는 점이다. 군대라는 것이 사회 전체에서 필요로 하는 공공재(public goods)라면, 그것에 대한 부담과, 그러한 부담에 대한 보상은 국가적인 책임이며, 그것의 결정은 사회적인 합의에 의 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의 그 누구에게라도 그러한 의무를 강요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게다가, 군대에서 개개 사병들에게 요구되는 삶의 질적 수준은, "국민"들에 게 인간이기를 포기하도록 만든다. 우리 사회의 징병제도가 단지 애국심 혹은 민족애의 발 로로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점은, 애초에 군가산점제 논쟁이 제기되었을 때, 많은 남성들이 "군대의 악몽"에 대한 호소의 목소리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런 희생에 대해서는 정당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점, 곧 유린된 청춘 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에 정부가 흘려놓은 고만한 떡고물에 그들이 집착하는 것이다. 하지 만 현재의 상황은 비유하자면 조선시대에 사또와 임금의 부역과 병역에 시달린 수많은 남성 들이 그것에 대한 화풀이로 아내나 지나가는 동네 아녀자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격이다. 문 제는 신분제와 권력이다. 부역의 고통에 못 이겨 그들이 벌여야 하는 것은, 그리고 실제로 벌인 것은 민란이었다.
현재에도 문제는 본질적으로 같다. 요구는 국가에 해야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2년 2개월 동 안 정당한 임금과 경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또 가능한 한 기간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투쟁에 동참할 용의가 있다. 이런 문제 해결은 국가가 해야할 일이다. 국가는 원래부터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에 대 한 해결책의 하나로 내놓은 현재의 군가산점제는 국가 방위라는 공공재에 대한 비용을 비슷 한 연령의 여성들의 희생으로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는 점이 문제다. 그것도 애초부터 기회의 평등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다들 아는 바처럼 평균점수가 거의 비슷한 공무원 시험 에서 가산점은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경우 아무리 시험 성적이 좋다하 더라도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락되기 일쑤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불만이 국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군대에서의 경험 자체가 현재의 군대 체제를 자연적인 것으로 믿게 만들고, 국가에 대 한 비판의식을 거세했을 가능성이 있다.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게 여기는 것이 그것이다. 그 리고 수많은 반공교육과 정신개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군대에 대해 보다 근 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군대를 말 그대로 "국토를 방위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가? 남한 역사상 군대는 폭압적인 정권의 가장 효 과적인 동원수단이었다. 군대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민중들에 대한 물리적인 탄압도구였을 뿐 아니라, 일방적인 상명하복의 논리를 각인시킴으로서 사회적인 문제제기를 할 능력마저 거세시켜 버리는 그러한 공간이었다.
또 하나, 과연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커다란 군대가 필요한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도 "북괴 공산당이 쳐들어오면 어쩔래?"라며 발끈할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러한 반공, 안보의 논리가 어떠한 집단의 이해에 복무하였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우 리 사회 지배 집단의 비민주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상투적인 논리가 아니었던가? 지금까지도 진행되어온 평화군축운동이라던가, 평화협정체결운동 등은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조금 다른 눈을 보여준다. 게다가, 현대전의 개념은 (물론, 이러한 현상이 단지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군축의 가능성을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다.
둘째, 그러나 이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부과했다기보다는 피해의식에 대한 자발적인 합리화 의 과정일 수 있다. 2년 2개월 동안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희생해야되는 상 황에 놓여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경험을 정당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하 여 그들은 실제로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고 믿고, 사나이의 우월감에 도취된다. 그리고 그 시대를 모 맥주 광고처럼 인생의 한창기로 회고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 록 듣는 수많은 무용담이 그것의 증거이다.
셋째, 이러한 객관적인 상황과 주관적인 합리화는,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국 방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자를 자신과 같은 정당하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군대를 다녀와야 인간이 되지"가 그러한 예이다. 그들은 거대한 남성으로서의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군가산점제가 단지 공무원에게 만 적용됨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이 엄청난 일체감과 결속력을 보여준 것은 그다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천리안 열린광장에 올라온 글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방위병, 공익요원, 산업 체, 60만 현역, 예비역, 민방위 할 것 없이 우리의 젊음이 꿈틀거리는 그 군번 하나를 내걸 고.... 여성징병 의무화운동에 서명한다"(천리안, 열린광장 186), "1. 군번: 86-7110**** 2. 성 명: ** 3. 군복무장소: (*** 여단 해안산위) ... 내인생인데... 내인생도 똑같이 소중한데... 누 구 맘대로... 공무원과는 아무 상관없는 저 역시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천리안 열린광장) 군대에 만연하는 포르노, 매춘 등 여성을 비하하는 문화 역시 이에 일조한다.
마지막으로 이는 만연하는 실업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역사적으로 실업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여성혐오증이 만연했다.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시기가 그러 했다. 그리고 IMF 이후 우리 사회 역시 그러하다. 그 때 정부와 자본가, 그리고 남성 노동 자들까지도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극성을 부렸다. 그리고 실제로 대량 여성해고 사태들이 벌어졌다. 따라서 군가산점 문제 역시 여성의 취업기회를 구조적, 그리고 조직적으로 막는 것을 찬성한다는 점에서 실업 시기 이러한 여성혐오증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4. 결론
그리하여 이번 군가산점 문제는 공무원 시험을 앞둔 20대 여성들을 제물로 득표에 눈이 먼 정부와 여당이 벌인 굿에 터프가이들이 놀아난 격이다. 그것은 분명 남녀 대결이 아니었음 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남녀대결, 아니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일방적인 테러로 현상하였으며, 이 글의 목적은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는지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여성운동의 논리가 앞서 언급한 딜레마를 넘어서 그러한 논의의 폐 쇄회로가 시작되고 있는 근본적인 시발점인 군대 제도 자체를 문제삼아야 한다고 본다. 사 회적 합의가 결여된 군대 징집은 정당한 것인가? 남북 평화협정 체결은 (달에 우주정거장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요원하기만 한 일인가? 군대 징집을 통해 국가 가 노리는 것은 사회 통합 유지가 아닐까? 또한 이 과정에서 여성을 배제함으로써 남성 우 위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논의의 닫힌 고리를 넘어 근본적 인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이 문제의 본질이 드러날 것이고 거기서부터 모든 해법을 상상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대안은 많은 여성 단체들이 제안하는 바와 같이 모병제이다. 여기서 우 리가 정부의 정책 관료들이 그러는 것처럼 세련되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출하는 것은 현재로 서는 불가능하다.16) 앞으로 대안을 꾸준히 고민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궁극적으로 해결 은 국가가 해야한다. 문제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정당화되고 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군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그것이 필요한 한에서 의무를 최소화하 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타당한 보상을 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소수를 제외하고 모두가 굶주릴 때,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이들의 떡을 빼앗아 먹는 것은 그리고 애초에 그들이 굶 주린 것은 바로 이들, 곧 사회적 약자들 때문이라고 우기는 것은 파시즘이다. 지긋지긋한 파 시즘의 장단에 더 이상 놀아나지 말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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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
* ManifestoⅡ는 90년대 후반에 서울대에서 대학여성운동을 하던 이들이 졸업 후 작년에 만든 여성운동모임이다.
1) 비슷한 시기에 사이버 공간에서 논란이 되었던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문제나 낙선운동에 대해서도, KBO나 보수 정치권에 대한 공격이 이처럼 원색적이고 파괴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군가산점제를 둘러싸고 이루어진 여성에 대한 테러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이 경우에는 공격받는 측이 사회적 기득권자라는 점에서 군가산점제와는 다소 차원이 다르다.
2) Sylbia Walby, 1988, "Gender politics and Social Theory", Sociology Vol.22 No 2. 이는 한편으로 급진적 페미니즘의 전통적인 입장, 곧 '여성 일반의 공통적 이해'가 존재한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정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낙관적인 동시에 여성 내부의 무수한 차이와 갈등을 봉쇄하는 '보편적 자매애'라는 명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3) 이는 헌법 소원을 한 이들 중 폭력적 언설이 유독 네 명의 여성들과 나아가 그들의 출신학교인 이화여대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4) 우리는 '여성이 군대에 가지 않는 문제'에 대한 집단적 위헌 소송, 민우회를 비롯한 각종 여성단체 사이트의 게시판 도배와 크래킹, 군가산제의 위헌여부를 따지는 헌법 소송을 건 당사자들에 대한 물리적 테러 등을 기억한다.
5) 우에노 치즈코, 앞의 책, 18쪽.
6) 같은 책, 26~27쪽.
7) 이는 프롤레타리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자유주의 사상에서 시민은 '재산을 가진 자'로 정의되었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가 시민이 된다는 것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여성이 시민이 된다는 것만큼 어불성설이 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정치는 이러한 시민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계급정치가 취해온 전략, 곧 근대적 인간을 '노동하는 인간'으로 재정의하는 전략 역시 노동의 범주를 협소하게 정의함으로써 여성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곧 자본주의하에서의 임노동만을 '생산적인 노동'으로 정의함으로써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여성을, 따라서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고 다만 가장의 피부양자로만 위치짓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많은 페미니스트 이론가들과 여성 활동가들은 이러한 생산적 노동의 범주를 확장시키고자 노력해왔다. 대표적으로 레오뽈디나 포르뚜나띠의 {재생산의 비밀}(윤수종 역, 박종철출판사)을 들 수 있다.
8) 김영하, [병역, 성대결이 아니다], 중앙일보 1999년 12월 29일자.
99) 최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실업자 운동에서 우리는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구조적인 실업에 대해 실업자 운동은 앞서 말한 노동의 인간학(각주 8 참조), 곧 '노동하는 자'로서의 인간에 대한 규정을 더욱 확장시켰다. 노동의 인간학은 자칫하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을 권리도 없다'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업자들이 느끼는 인간적인 고통과 자괴감은 여기서 기원한다. 하지만 자본주의하의 구조적 실업으로 인해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자' 역시 동등한 인간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 병역의 의무도 마찬가지이다. 곧 국가에 대해 병역과 동등한 수준에서 '공헌'하지 않는 자 역시 동등한 시민권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10) {중앙일보}, 1999년 12월 30일자
11) {중앙일보}, 같은 날
12) {조선일보}, 2000년 1월 14일
13) 비례대표 여성 30% 할당제는, 이 글이 씌어지고 난 뒤 치러진 4·13 총선에서 각 정당들의 거짓 해프닝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는 '여성의 정계참여'를 여성운동의 진보와 등치시키는 '일부' 여성운동에 주는 교훈이 크다.
14) 우에노 치즈코, 앞의 책, 박종철출판사, 69~70쪽.
15) 이것이 '형식 논리'임은 앞서 누차 얘기된 바대로 현실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 형식 논리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16) 이에 대한 최근 논의는 {여성과 사회} 최근호, 군가산점제 특집 글들을 참조하라.
글로리아가 위장취업하여 알아본 플레이보이 클럽의 웨이트리스 바니걸의 모습에서 예쁘게 웃으며 서 있는 민들레 영토의 도우미의 모습이 겹쳐졌다면 내가 과대망상증일까.
민들레 영토 혹은 공간을 채우는 사랑.
어김없이 한 켠에는 '이달의 도우미'라던지, '미소 천사 도우미'따위의 컬러풀한 글씨들로 그 지점의 도우미들의 한껏 멋진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들은 분홍색의 공주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빨간 머리띠 아니면 작은 반짝이 왕관을 하고는 생긋 웃는 얼굴로 서빙을 하고 음료를 따라준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민토에서 일하는 것이 굉장한 프라이드라고 여겨지고 있다는 것.
'아름다운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문학을 사랑하고 소비문화를 반대한다는 이 거창한 공간에서 일한다는 지적인 충만감과 '그곳에서 일하는 애들은 다 이쁘고 멋지더라'는 나름의 우쭐함 얻고 있는 듯 하다.(이는 민토에서 1년간 일한 적 있는 본인의 동생을 보고 느낀 것이니 다른 도우미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민토의 도우미들이 하나같이 이쁘고 잘생기고 키크고 날씬한건, 우연스럽게도 그런 것일까, '무엇이든지 좋고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설립이념(?)에 따라서인가?
여성의 예쁘고 깜찍한(혹은 섹시하기까지 한) 이미지를 함께 팔아먹는다는 것, 비록 바니걸보다는 그 옷차림에 있어서 덜 노골적이지만 그런 옷차림이 오히려 민토의 주 고객에게 더 잘 '먹히는' 최대의 선택이었던 듯 하다.
더군다나 여성뿐 아니라 남성직원 채용 시 역시 외모를 일순위로 본다는 것이 어쩜 그리 60년대 플레이보이 클럽과 꼭 닮아 있는지!
* 이 글은 헤헤님의 [[펌] 성매매운동의 새로운 모색을 위하여]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성노동자 운동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으나,
성매매가 일단 합의되고 인정되는 '성노동자 운동'에 노파심이 생긴다.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성을 어떻게 서비스로 제공하지?
성과 노동을 어떻게 똑같이 볼 수 있지?!
성적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이 범죄가 아닌 것이 되면, 돈을 주고 성을 사고 팔 수 있게 된다면, 지금의 가부장적 가족구성 체계가 해체될 수 있을까?
성적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이 범죄가 아닌 것, 그러니까 의료나 교육서비스같은 것과 같이 일반화된다면.....?!
포르노의 폭력성과 반여성적 요소가 제거되면 맘껏 포르노를 즐겨도 되는 것인가???
.............내가 너무 무지한 걸까..... 아님 고루한 걸까...
* 이 글은 뻐꾸기님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1. 점심을 먹고 나른하게 뒹굴거리는데 엄마가 부른다.
'이제 슬슬 시작하자~'
어젯밤엔 분명 이번엔 기분 좋게 거들자고 다짐했건만 그소리를 듣자 갑자기 짜증이 확 치민다.
'권태도 있고 아빠도 있는데 왜 나만 불러!'
2. 겨우 동태전에 부침가루 묻혀 풀어놓은 계란에 던져(!)넣으면서 다리며 허리며 아프다 투덜댄다.
제대로 하는것도 없으면서 괜히 엄마를 보며 쉰소리를 해댄다..
'몇일전에 제사 지냈으면서.. 이럴거면 추석때 한꺼번에 하지..!'
기막힌 엄마는 그냥 웃지요.
3. 아빠는 밤을 깐다.
아빠는 밤만 깐다.
아... 이번엔 화투쳐서 딴 돈으로 박카스도 한 박스 사왔다.
4. 엄마 식혜가 너무 달다.
엄마 동그랑땡 너무 짜.
엄마, 고추가 너무 매워..
혜진엄마, 산적 왜이렇게 찔기나
엄마, 호박을 더 얇게 썰어야지.
....
....
- 오늘 하루 종일 엄마가 들은 말들.
5. 나, 무진장 반성하고 있는데, 도무지 개선이 안된다.
이럴 땐 내안의 가부장성을 확인하며 한없이 잔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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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u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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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바다 싶네요...거참...나도 한때 신의 은총이 함께한 어린양이었지만...그때도 저건 오바다 생각했을꺼에요부가 정보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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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저도 상당히 불순한 생각을 하나 보군요... 무신 하나님이... 근데 이 사람들이 누구래요???부가 정보
자일리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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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에 꽁짜표가 생겨서 사색동화 콘서트에 갔었는데, 거기서도 김현철이 "하나님타령"을 하더군요. 에공 나는 왜 그 "하"자만 들어도 오싹해질까나~~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