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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03
    <중덴> 론리 너무하다!!!(6)
    제이리
  2. 2006/04/01
    <옥룡설산> 완전히 퍼지다(6)
    제이리
  3. 2006/04/01
    <호도협> 결국 가긴 갔다(7)
    제이리
  4. 2006/04/01
    <리장>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4)
    제이리
  5. 2006/03/15
    <따리> 티벳가는 일행을 만나다(10)
    제이리
  6. 2006/03/14
    <징홍> 조짐이 이상하다(4)
    제이리
  7. 2006/02/22
    <므앙씽> 므앙씽 가는 길은 멀다(13)
    제이리
  8. 2006/02/22
    <농키아우> 시간을 죽이다(5)
    제이리
  9. 2006/02/22
    <루앙프라방> 여기는 라오스가 아니다(6)
    제이리
  10. 2006/02/22
    <폰사완> 항아리 평원을 가다.(2)
    제이리

<중덴> 론리 너무하다!!!

 

리장에서 퍼진 이유야 그저 쉬고 싶었다는 것이 가장 크겠지만 다음 일정이 엄두가 안 났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추위와 더불어 고도와의 힘겨운 싸움 역시 조금 뒤로 미루거나 아님 피해갈 방법이 없을까 하는 맘도 컸었는데 결국 여러 가지 고민 끝에 그냥 원래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나란 인간도 꽤 융통성이 없는 것이 매번 고민은 하지만 나중에 보면 꼭 원래 루트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여튼 중덴은 무지하게 춥다는 여러 여행자들의 조언에 따라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두꺼운 것들은 죄다 꺼내 입고 버스를 탄다. -다행히 겨울옷은 징홍에서 태국으로 내려간 세아이 엄마에게 미리 얻어둔 게 있었다는- 리장에서 중덴까지는 4시간.. 두시간 정도는 제법 봄 들녘이 이어지더니 호도협 입구인 처우터우를 지나자마자 황량한 겨울 풍경이 이어진다.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중덴의 티벳식 사원식 송찬림사(송짠린쓰)


티벳식 기도 깃발인 타르초가 보이기 시작한다


송짠린쓰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 점심 공양하러 가신단다.


버스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괜히 왔나 싶은 게 풍경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도무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중에 봄빛은 하나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자 버스는 여지없이 중덴 터미널에 도착한다. 듣던대로 중덴의 날씨는 꽤 쌀쌀하다. 그래도 한참 추울 때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3월 중순까지 눈이 내린다는 소문에 비하면 견딜만한 정도다. 일단 다음 행선지인 샹청 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아침 7시 반에 한대 있단다. 론리에는 삼사일에 한대씩 있다고 되어 있는데 그새 변했는지 매일 있는 모양이다. 배낭을 메고 택시를 세워 론리 숙소편 젤 앞줄에 나와 있는 친절하고 깨끗하다는 티벳 호텔로 가자고 한다. 말이 호텔이지 저가의 도미토리도 있는 곳이다. 다행히 기사가 그 곳을 알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택시를 내리고 보니 황당 그 자체다. 호텔에 들어서니 방은 거의 삼사십 개는 되어 보이고 식당이며 카페 간판은 보이는데 도무지 사람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리셉션에도 아무도 없다. 뭐 여행자 거리도 아닌 것 같은데 나가서 다시 택시를 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핼로우 하고 인사를 한다.


다행히 영업은 하는 모양인데 이렇게 손님이 없다니.. 그새 사람이 그리워진 나로서는 우울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4인실 도미토리에 짐을 풀어도 손님은 달랑 나 하나다.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식당을 기웃거려 보니 아까 인사하던 그 친구가 식당은 영업을 안하니 나가서 먹으란다. 다행히 근처에 가격은 좀 비싸지만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눈에 뛴다. 조금 더 나가볼까 했지만 썰렁한 거리 풍경에 질려 그저 밥만 먹고 돌아온다. 론리에는 공용 욕실이 깔끔하고 저녁 8시 이후엔 더운물도 나온다고 되어 있는데 게스트하우스 사상 처음 보는 문 없는 화장실에, 수도 꼭지하나 덜렁 있는 샤워실에, 더운물은 밤 10시 이후에나 나온다고 하니 도무지 씻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간신히 이만 닦고 방에 들어오니 그나마 전기장판이 위안이 된다. 생각 같아서는 내일 당장 중덴을 뜨고 싶지만 담부터 가야 하는 곳이 거의 이 수준이거나 이것보다 나쁠 것이 뻔한데 싶어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뭐 모든 여행기에 나와 있듯이 중덴은 중국 정부가 <샹그릴라> -뭐 이상향, 그런 뜻인데 제임스 힐튼이라는 작가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배경이 된 곳이라고 우기는 모양이다- 라고 개명하고 대대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힘쓰는 곳이라는데 샹그릴라는 커녕 을씨년스럽기가 무슨 유령의 도시 같다. 옥룡설산에서 만났던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티벳의 험준한 여러 도시들을 거쳐 중덴에 도착하면 마침내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그때야 비로소 샹그릴라로서의 중덴의 참맛을 알 수 있다는데 티벳의 험준한 도시는 커녕 따리와 리장의 아기자기한 고성을 거쳐 온 나로서는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 이야기이다. 


중덴에도 규모는 작지만 고성이 있긴 하다


누구말대로 할머니들이 관광 자원이다. 고성 앞 광장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민속춤을 추시는 할머니들


담날도 거의 씻지도 못한 채로 시내로 나선다. 이 동네 아저씨들 머리가 떡져 있다고 은근 흉봤더니 남의 일도 아니다. 아시다시피 내 머리 하루만 안감아 주면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데다 날도 추워 이불 속에서 비비고 잤더니 뭐 거의 이 동네 아저씨 머리와 별다를 바가 없다. 에고..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앞으로 남 흉보지 말아야겠다 싶다. 중덴에서 유일한 볼거리인 티벳식 사찰인 송찬림사에 들렀다가.. 중덴 시내를 걸어서 한 바퀴 돌고.. 아직 남아 있다는 구시가지를 돌아보니 얼추 하루가 간다. 다음 행선지인 샹청도, 리탕도 여기 보다 환경이 나쁘면 나빴지 좋을 리는 없는데 그렇담 머리는 언제까지 떡져서 다녀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렇다고 얼음짱같이 찬물에 머리 감을 엄두는 전혀 나질 않는다. 물론 더운물이 나온다는 밤 10시 이후까지 기다릴 생각은 더더욱 안난다.


고민하고 있는데 미용실이 눈에 뛴다. 그래,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으면 되는구나 생각하다가 내친 김에 아마추어의 손길이 완연한 머리를 나름 프로에게 맡겨보기로 한다. 일단 말이 안 통하니 손짓으로 감고 자르려고 한다 했더니 알아듣는다. 일단 머리를 감겨 주는데 샴푸를 머리에 바르더니 머리 밑을 확실히 손톱으로 문질러준다. 그것도 매우 여러 번 꼼꼼히.. 손톱으로 머리 밑을 문지르면 피부가 죄다 상한다는데.. 그래도 시원은 하다만 우리나라 미용계 인사가 알면 기절할 일이다. 그 다음 커트에 들어가는데 이 꽃미남 되다만 남자 미용사 조금만 잘라달라는 사인을 조금만 남기고 다 잘라달라는 소리로 알아들었는지 성큼성큼 가위질이다. 후회가 몰려온다. 그냥 감기만 할 걸 어쩌자고 이 시골 프로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단 말인가^^ 그래도 이 친구 이 가위 저 가위 심지어 이 면도기 저 칼까지 동원해 공을 들인다. 원래 머리 자를 때는 안경을 벗는 법이라 내 머리 몰골이 어찌 되어 가는지 과정은 보이지 않는데 여튼 이 친구가 이리 공을 들이니 맘에 안 들어도 웃어줘야지 굳게 다짐한다. 막상 안경을 쓰니 헉!! 이건 완전히 <영구업따>다. 그러나 어쩌랴 머리야 자라는 거고.. 억지로 웃어준다. 머리감고 깍은 값이 6원, 우리 돈으로 780원이다. 에구 가격대비 화낼 계제도 아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뭐 어제와 그대로 아무도 없다. 그리고 여전히 춥다. 론리 숙소편 첫줄에 있으면서도 도무지 손님이 안 드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여전히 도미토리는 내 싱글룸이다^^ 앞으로 여정이 만만치 않으니 일찍 자두어야 할 텐데 잠은 오지 않고 밤만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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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설산> 완전히 퍼지다

 

두 번째 오는 이 곳은 비교적 익숙하다. 아래층에 방하나를 잡고 짐을 푸니 맘이 편해진다. 호도협에 가서 씻지도 못했는데 욕조에 더운 받아 누워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한국에서도 안 밀던 때도 밀고^^ 한식으로 된 저녁도 먹고, 맥주까지 한 잔 하니 기분이 알딸딸하다. 하지만 저번에는 뭔가 해드리러 온 거였고 이번엔 그냥 신세를 지는 셈이니 밥상 차리기며 설거지 등등을 열심히 한다. 참 그러고보니 설거지 해 본 것도 무척이나 오래간만이다. 문씨 아저씨도 거의 서너달을 이 인적도 없는 곳에서 공사하느라 지치셨는지 이런 저런 말씀이 많으시다. 그저 말동무도 되어 드리고 하면 되겠다 싶다.

 

별로 하는 일이 없는데도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가끔 리장에 가서 시장을 보거나 하는 정도가 고작인데도 어느새 삼사일이 지나 있다. 컴퓨터가 24시간 되니 메신져나 하려고 간만에 접속을 해 봐도 온라인 되어 있는 인간 하나가 없다. 별 수 있나.. 네이트 온으로 문자를 날린다. 메신져에 접속해라 오바!! -참 좋은 세상이긴 하다^^- 결국 별 방법을 다 써 메신져로 수다도 떨고 간만에 이런 사이트 저런 사이트 웹서핑도 하고 밀린 메일 답장도 쓰고.. 그러다 보니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것이 그저 연락도 못 할 상황일 때는 오히려 그러려니 싶은데 조금씩 관계의 끈이 닿으니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싶은 게 두고 것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더라는 얘기다. 한국에 잠시 다녀올까.. 아니면 북경에 가서 김과장 아니 김차장이랑 수다라도 떨고 올까.. 아니 그냥 티벳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바꿔 먹는다.



객실, 컴퓨터도 있다 물론 인터넷도 된다.


설거지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 부엌 겸 거실


삼사일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한다. 컴퓨터가 되고 나서 다음 카페에 아직 오픈은 안 했지만 그래도 지나는 사람들은 들르시라는 글이 올라간 탓일까.. 이전부터 아는 동생이라는 한국인 가이드가 데리고 온 손님 7명을 필두로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심심하지는 않아 좋은데 조금 애매한 처지가 된다. 이곳은 산 속이라 따로 밥 사먹을 곳도 마땅치 않은데다 쥔장 성격에 밥 사먹으라고 내보내지도 못하니 그저 삼시 세때 다 밥을 해 먹여야 하는데 요리는 쥔장이 하지만 객식구 주제에 두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처지라 이것저것 거들고 설거지까지 하다보면 도대체 내가 여행자인지 이곳 복무원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주일쯤 지나니 슬슬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무지 개인적인 여유는 없어지고 점점 복무원화되어 가는 내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다.


주인장이 스님들을 따라 호도협으로 떠난 어느날 그래도 떠나기 전에 신세는 갚아야지 싶어서 한글XP 까는 작업을 시작한다. 혹시 하는 마음에 쥔장방 컴퓨터는 그냥 둔 채로 내가 묵고 있는 방부터 포맷을 시작한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 XP포맷하는 거 구경만 했지 직접 해보는 건 처음이다. 일단 포맷하는 것 까지는 성공했는데 복사판 한글XP CD가 말썽이다. 프로그램을 한참 깔다가 무슨 파일인가를 찾을 수가 없다고 버틴다. 네이버에 물어보니 대충 CD가 불량이라는 답변이 나온다. 여기가 한국이라면 한글XP CD구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마는 헉 여기는 중국인 것이다. 컴퓨터는 이미 포맷되어 버렸는데 프로그램은 안 깔리고 이런 난감할 데가 어디 있냐 말이다. 할 수 없이 이곳저곳을 뒤져 보니 한글 XP CD 하나가 더 나온다. 이걸로 다시 깔아보니 애도 또 무슨 파일인가가 없단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파일이 없다는 대목마다 CD를 번갈아 넣어주니 알아서 프로그램이 깔아진다.



숙소에서 바라본 옥룡설산


숙소 앞의 호수, 물막이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가 완료되면 숙소 앞에 제법 큰 호수가 생긴다고 한다.


여튼 우여곡절 끝에 한글XP를 깔고 나니 이제 대충 신세는 갚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설거지하기 싫어서^^ 내려간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그저 오늘 내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엔 감기가 온다. 열심히 다닐 때는 감기도 안 들더니 막상 쉬니까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별 수 없이 며칠을 더 보내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어느 날 짐을 싼다. 이런저런 고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원래 가려고 했던 루트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며칠 쉬면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마치 처음 떠나는 길처럼 발걸음이 무겁다. 결국 삼주 만에 리장을 떠난다. 믿거나 말거나 여행자들의 전설에 따르면 삼주 안에 못 떠나면 석달 이내엔 못 떠난다는데 간신히 기간 안에 떠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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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협> 결국 가긴 갔다

 

<낭만일생>으로 다시 돌아오니 채 풀지도 않은 짐이 그대로 방에 놓여 있다. 다행히 옆 침대는 그대로 비어 있다. 잠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여주인인 승경씨가 방을 좀 옮겼으면 하고 찾아온다. 커플이 한 방에 묵을 예정이니 옆방 침대로 옮겨 달라는 부탁이다. 그러마 하고 옮겨보니 그 비구니 스님과 한 방이다. 그 사이 호도협에 다녀오셨단다. 스님과 하루밤을 묵은 뒤 스님은 루구호로 떠나시고 표준방으로 방을 옮긴다. 원래 도미토리로 지은 곳이 아니라 씻는 것이 영 불편한데다 승경씨가 가격도 조금 낮춰 줘 그냥 며칠 편하게 지내자 하는 맘으로 옮긴 것이다. 그날 저녁 게스트하우스로 한 쌍의 남녀가 찾아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둘도 그냥 어딘가에서 만난 사이일 뿐 커플은 아니다. 호도협 같이 갈 일행을 찾으러 왔다는 거다. 둘이 가면 되겠구만.. 그건 좀 그런가 싶어 새로 들어온 커플에게 물어보니 이미 다녀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밖에 없다. 하긴 나도 호도협에 가긴 갈 예정이다. 단지 언제 갈지 결정을 안했을 뿐이다^^ 언제 갈 거냐고 물었더니 내일이나 모레 아무 때나 좋단다. 그래 이 기회에 갔다오자 싶어 다음다음날 떠나기로 약속을 한다.


다음날 호도협에 같이 가기로 한 일행 중 중 남자가 숙소를 낭만일생으로 옮긴다. 혹시 숙소를 옮기게 되면 같이 방을 쓰자고 했던 여자는 그냥 원래 숙소에서 묵겠다고 한다. 방값이 조금 부담되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다. 간만에 혼자 방을 쓰니 그 편안함이 돈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날 은행 관련 일처리를 부탁하려 메신져에 들어갔다가 결국 문제가 생긴다. 은행 문제를 부탁하기엔 내 후임인 명희가 제격이라 명희에게 뭔가 부탁을 하고 난 뒤 인사말로 결산은 잘했냐고 물으니 결산 서류를 좀 봐달라고 한다. 잔액이 딱 떨어지게 안 맞는다는 거다. 일단 파일을 받아 봐도 잘 모르겠다. 이 복잡한 숫자들을 이전에는 어찌 맞췄단 말인가^^ 결국 하루종일 메신져로 이야기를 해봐도 이 서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결산 제출을 하루 이틀 미뤄보라고 하고 다음날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여행하고 처음으로 밤새 액셀과 씨름을 한다. 결국 답이 나온다.


답은 나왔지만 아침에 명희와 얘기도 해야 하고 잠도 거의 못자 도저히 호도협을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7시 30분에 어디서 만나기로 한 것 외엔 묵고 있는 숙소도, 이름도 모른다. 7시 반에 약속 장소로 나가 사정을 설명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늦게 잠든 탓인지 눈을 떠보니 벌써 8시다. 그래도 다른 일행이 있으니 괜찮겠지 했는데 아침에 나가보니 웬걸 그 남자, 재철씨도 약속장소에 안 나갔단다. 둘이 서로 황당해한다. 이 친구, 일행 찾으러 일부러 한국인 게스트하우스까지 왔는데 이렇게 바람맞다니 무척 황당했겠다 싶다. 미안하지만 방법이 있나.. 그저 잘 다녀오겠거니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다시 한나절을 메신져와 씨름을 하고 나니 겨우 그럭저럭 결산 문제는 해결이 된다. 호도협 일정이 이렇게 어긋나 버리고 나니 그저 숙소에서 빈둥거리는 것 외에 별로 할 일이 없다. 낮에는 여주인인 승경씨와 농담 따먹기나 하고 밤에는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과 술이나 마시고 그도 심심하면 방마다 설치되어 있는 DVD나 보거나 장기 체류자에게서 빌린 스피커로 음악이나 들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 모두들 궁금해 하실 장기 체류자는 그새 어떤 중국 여인네에게 낚이셨다고 하니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기로 한다.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며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렇게 이삼일을 보내고 나니 어느 날 저녁 승경씨가 미안한 듯이 말을 건넨다. 언니가 언제까지 있겠다는 말을 안해서 방예약을 모두 받아버렸다고.. 그래서 내일 하루는 옆집에서 묵을 수 없겠냐며 미안한 표정이다. 순간 기분이 상한다. 미리 언제까지 묵겠냐고 물어보지도 않아 놓고 묵고 있는 방을 옮기라니.. 뭐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짐 한번 싸는 건 쉬운 일인가.. 사실 그것보다 정붙이고 있던 곳에서 버림받은 것 같은 마음이 더 크다. 그냥 홧김에 내일 방 빼겠다고 말하고 방으로 올라와 버린다. 그리고 나서 짐을 싸려 하니 마음이 영 편하지가 않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차피 내일은 방이 없다니 호도협이나 다녀오기로 한다. 호도협은 어차피 1박 2일 코스이다. 그 다음 일정은 다음에 결정하기로 하고 아침 일찍 짐을 맡기고 호도협 가는 버스를 탄다. 막상 버스표를 끊고 보니 돈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난다. 원래 일정에 없던 일을 하면 꼭 이런 일이 생긴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은행을 들러 봐도 아침이라 그런지 ATM기는 사용이 되질 않는다.


버스를 타고 처우터우 호도협 입구에서 학생증을 내미니 다행히 반액할인이 된다. 앗싸.. 그래도 가지고 있는 돈은 80원 정도 밖에 없다. 하루밤 방값이랑 세끼 식사, 리장으로 돌아가는 차비까지 그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산속이라 물가가 비쌀텐데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래도 어찌되겠지 하며 호도협으로 들어서는 산길로 접어든다. 이미 들어 왔던 대로 마부 하나가 뒤따라 붙는다. 호도협은 28밴드로 불리는 약 1시간 30분에 이르는 산길을 제외하면 비교적 평탄한 굽이길인데 이 곳에서 말을 타게 하기 위해 거의 두어 시간을 마부가 뒤따라 붙는다고 한다. 뭐 초기부터 표적이 된 모양인지 그리 많지 트레킹족들 중에 유독 내 뒤만 졸졸 따라온다. 그래 뭐 상태로 봐서 표적을 잘 찍긴 했는데 미안하다. 돈이 없다^^ 하며 그냥 걷는다. 누구는 말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거슬려 나는 스테파니야.. 저건 목동의 방울소리고.. 하는 최면을 걸기도 했다는데 아무도 없는 산길에 마부라도 따라와 주니 차라리 안심이 된다.



호도협 입구에서 본 금사강


저 말이다. 저리 앞서가다가도 어디선가 보면 옆에 다가와 있다.


점심을 먹은 곳인 나시객잔, 반대쪽에서 오면 여기서 자게 될 지도 모르겠다.


두 시간쯤 산길을 오르니 점심을 먹는 장소인 나시객잔이 나온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볶음밥 하나를 시키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탁자에 놓인 콜라 하나를 집어 든다. 아무리 산 속이지만 설마 콜라 하나에 20원이야 받겠어 하는 맘이다. 다행히 볶음밥과 콜라를 합쳐서 10원이 나온다.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서니 그때부터 28밴드가 시작된다. 나를 따라 오던 마부는 그새 중국인 관광객 4명 중 하나를 싣고 저만치 앞서간다. 이제 말을 탈래도 돈도 없고 말도 없다^^. 냅다 걷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한 삼십분을 헐떡이며 걸어가니 말을 타고 가던 일행이 쉬어 가는 곳이 보인다. 잠시 쉬었다 다시 말타는 일행보다 먼저 길을 나선다. 저만치에서 말을 타고 오는 일행이 보인다 싶더니 이내 나를 앞지른다. 말에 타고 있던 중국 아저씨 하나가 걸어가는 나를 보더니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하는 말이 니가 말보다 낫단다. 얼떨결에 쎄쎄 해놓고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말이야 말뼉다구야 싶다^^. 다시 한 시간여를 부지런히 올라가니 정상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대충 내리막길 내지는 평지다. 까마득한 협곡을 아래에 두고 부지런히 걷는다. 이제 미부도 따라오지 않고 모두들 어디에 갔는지 앞뒤를 둘러봐도 나 혼자다. 세 시간여를 걸으니 숙소로 점찍어 둔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보인다.


아래쪽으로 까마득한 협곡이 보인다.


실처럼 보이는 것이 길이다.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 이른바 중도객잔이다.


게스트하우스는 다행히 도미토리가 있는데다 가격도 10원이라는 감동적인 수준이다. 이 정도면 대충 돈이 없어서 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낭패는 없겠다 싶다.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에 있으니 아침에 버스에서 만났던 일행들이 속속 도착한다. 그러면 그렇지 니들이 가면 어딜 가겠냐 싶은데도 이상하게 트레킹 도중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하긴 굽이굽이 산길이니 조금씩만 떨어져 있어도 인적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프웨이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에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 티나객잔에 도착한다. 보통 이곳에서 다쥐꺼지 트레킹을 계속하면 2박 3일 일정이 된다는데 뭐 2박 3일까지는 엄두가 안나 그냥 버스를 타고 리장으로 돌아온다.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폭포. 지금은 건기라 그렇지만 우기 때는 저길 어찌 지나가나 싶다.


리장에 도착하자마자 은행에 들러 돈을 찾는다. 돈을 찾고 나니 안심이 된다. 그리고 잠시 고민에 빠진다. 짐을 맡겨 두었으니 낭만일생에 들르긴 해야 할텐데.. 오늘은 늦어서 어디 다른 도시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는 일도 내키지는 않는다. 그냥 하루밤 더 묵는 수밖에.. 짐이 거기에 있으니 일단 낭만일생으로 가 본다. 승경씨도, 원래 호도협에 같이 가기로 했던 재철씨도 심지어 앤디도 보이질 않는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장기체류자에게 물어보니 어제 문씨아저씨가 내려와 모두들 술한잔하고 한밤중에 옥룡설산으로 올라갔단다. 그래.. 옥룡설산에 가도 되겠구나 싶다. 혹시나 하고 받아두었던 번호로 전화를 해보니 오늘 사람들과 함께 내려 올테니 기다리고 있으란다. 그래 그럼 옥룡설산에나 가서 며칠 쉬었다 가야겠다 맘을 바꿔 먹는다. 아직 중덴으로 올라갈 준비는 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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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

 

리장에 도착하고 이틀간은 비교적 정상적인 여행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벌써 기억이 아득하다^^. 티벳까지 동행하기로 한 친구가 이전에 가본 적이 있다는 나시족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그간 한국인 숙소를 다니며 늘어졌던 맘도 조금은 긴장이 살아나는 것 같은 게 웬지 거리도 새롭게 보인다. 리장은 들은 대로 한옥을 연상시키는 집들이며, 미로 같은 골목길 그리고 그 옆을 흐르는 수로들만으로도 맘을 빼앗길 만한 도시다. 그러나 그 골목길이 전부 상점으로 변해있고 어느 골목이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으니 누구 표현대로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재앙이 된 도시라는 감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체 관광객이 붐비는 메인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70년대 도시 변두리에서 보았음직한 골목길이며 집들, 시장을 만날 수 있으니 어디서나 발품은 조금 팔고 볼 일이다^^



언덕 위에서 본 리장고성


이층 객실에서 내려다 본 게스트하우스 마당, 이 지역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집을 개조한 것이다.


도착한 날 오후부터 동행한 친구가 이 길로 가면 이전에 보았던 어디가 나올 것 같은데.. 해가며 헤매는 통에 골목 구석구석을 몇시간 누비고 다니다 시장통에 앉아서 저녁을 먹는다. 당근 술이 빠질 리 없다. 둘이서 서너 병 먹어 주고 나서야 저녁 식사가 끝난다. 근데 이 친구 보기보다 말이 좀 많다. 주로 자기 옛날 여행담이 주 레파토리인데 사실 남의 여행 이야기처럼 지겨운 게 어디 있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행기를 매번 읽어주시는 여러분들도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긴 한다. 뭐 대략 사진만 보시는 분들도 많다는 사실도 알고는 있다^^- 슬며시 술 먹는 일이 고문이 된다. 담날도 고성 주변이며 리장 신시가지를 돌아다니는 걸로 하루를 마감한다. 이제 다음날이면 리장을 떠나 중덴으로 움직일 차례인데 문득 내가 이렇게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장에서 며칠 더 있고 싶기도 하고 호도협도 다녀오고 싶고.. 하는 맘이 다시 고개를 든다. 게다가 따리에서 만난 노과장 왈 리장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체류자가 하나 있는데 매우 괜찮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지 않았냐 말이다^^


사실 티벳 가는 길이란 게 이 친구를 따라 간다고 해서 육로로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같이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게다가 같이 다니는 일이 썩 즐거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밤에 다시 맥주를 마시다가 혹시 육로로 못가면 어떻게 갈 꺼냐고 물었더니 이 친구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단다. 대책이 없다ㅠㅠ. 실제로 공안에 잡혀서 되돌아 나오는 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런 생각을 안 해봤다는 건 무슨 오기란 말인가.. 그랬더니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몬살아.. 그래도 만에 하나 걸리면 어쩔 거냐고 했더니 꺼얼무로 돌아서 들어갈 거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못 들어갈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이다. 혹시 문제가 되면 그 다음 루트도 나랑은 다르다. 어떻게 하나.. 어떤게 잘하는 결정일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리장에 며칠 더 있겠다고 한다. 다행히 쉽게 받아들인다.


리장의 골목길


담장너머 봄꽃이 환하다


길에서 만난 꼬마, 지가 모델인 줄 안다^^


다음날 중덴으로 떠나는 그 친구를 보내고 한국인 여자 승경씨와 대만인 남자 앤디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낭만일생>으로 방을 옮긴다. 해발이 비교적 높다는 리장에서도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을 배낭을 메고 오르니 숨이 턱에 까지 찬다. 이곳은 도미토리가 주가 아니라 욕실이 딸린 소위 표준방이 주가 되는 곳인데 욕실 없는 트윈방 두개를 그냥 침대당 20원을 받고 내주고 있다. 방하나를 다 쓰고 싶으면 나머지 침대 가격까지 내면 되는데 이 비수기에 손님이 들까 싶지도 않아 그냥 침대 하나만 쓰기로 한다. 사실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라고는 하지만 주인이 늘 붙어 있는 것도 아니라 주로 중국인 복무원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 복무원들 중 영어가 가능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게 현실이라 이 정도 이야기를 하려면 온갖 손짓과 발짓이 동원되어야 하는 바 이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막 짐을 풀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운영하는 카페에 앉아 있는데 따리에서 만났던 비구니 한 분이 들어온다. 함께 온 일행이 이전 따리에서 넘버3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시던 문씨 아저씨다. 셋이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새로 만든 옥룡설산 밑 게스트하우스 이야기가 나온다. 따리의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하고 새로 만든 이 게스트하우스는 아직 오픈은 하지 않은 상태로 공사를 마치고 인터넷은 깔았는데 다음 카페에 글이 써지질 않으신단다. 지금은 중문 XP가 깔려 있는데 한글 XP로 바꾸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함께다. 쿤밍에 있는 동생들에게 부탁했는데 공사기간 넉달이 지나도록 한 놈도 안 온다고 속상해하신다. XP는 몰라도 다음 카페에 글 정도는 쓰게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지금 당장 같이 올라 가자신다. 비구니 스님도 좀 도와드리라고 역성이다. 뭐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옥룡설산에 가보겠냐 싶어 짐은 게스트하우스에 둔 채로 따라나선다. 도대체 장기 체류자 얼굴은 언제 본단 말이냐^^


옥룡설산


옥룡설산 아래 호수


리장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옥룡설산은 한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산으로 멀리서도 그 위용이 한눈에 드러난다. 입장료가 120원이라는데 문씨 아저씨의 차를 타고 올라가니 무사통과다. 매표소를 지나 20분이나 달렸을까.. 드디어 게스트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게스트 하우스라기 보단 무슨 펜션 같다. 도미토리가 아니라 개별 방에 욕실, 방마다 컴퓨터까지 설치되어 있는 최고급 숙소다. 방에 있는 전면 유리창을 통해 호수며 멀리 설산이 한 눈에 보인다. 배낭여행하는 학생들이 묵기에는 좀 고급 숙소다 싶은 느낌이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바쁘게 움직이는 배낭여행객들보다 그저 며칠 조용히 쉬었다 가는 사람들이 묵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만든 곳이란다. 언제 오픈하시냐고 물어보니 공사하느라고 너무 지쳐서 쉴 때까지 쉬다가 내키면 하시겠다는데 글쎄.. 그게 언제일지는 모를 일이다.


다음 카페에 글이 안 써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방화벽 때문에 activ-x라는 프로그램이 안 깔려서 그런 건데 방화벽을 몇 개 낮추고 프로그램을 내려받으니 해결이 된다. 내친김에 한글XP까지 깔까 하다가 혹 깔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이 산중에 AS부를 데도 없는데 하는 생각에 그냥 두기로 한다. 저녁을 거하게 얻어먹고 담날은 차로 옥룡설산 아래 산길을 따라 따쥐까지 다녀온다.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기는 했어도 산 중턱에 있는 마을 어귀마다 복숭아꽃을 환하게 피워 올린 나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봄날을 실감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낸다. 결국 하루만 자고 내려가려 했던 것이 이틀이 된다. 며칠 더 머물고 가라시는 걸 짐이 아무것도 없어서요.. 했더니 그럼 리장에 며칠 묵다가 오고 싶으면 전화를 하면 데리러 오시겠단다. 말씀은 고맙지만 뭐 그럴 일이 있을까요..하는 맘이었지만 그저 네.. 하고 대답은 해놓고 리장에서 호도협이나 갔다가 중덴으로 올라가야지 하는 맘으로 다시 리장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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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리> 티벳가는 일행을 만나다

징홍에서 따리까지는 버스로 18시간이 걸린다. 다행이라면 앉아가는 버스가 아니라 누워 가는 버스라는 점일텐데 이 또한 단점이 있으니 지독한 발냄새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버스를 경험해 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인데다 심지어 강제로 양말을 나눠 주기도 한다는 주인장의 언급까지 고려해 보면 그 정도가 보통은 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조금 가라앉은 것 같은 체기가 버스에 오르니 좀더 심해진다. 뭐 발냄새는 각오를 한 탓이지 아님 후각이라는 게 워낙 금새 익숙해지는 탓인지 그저 견딜만하다. 버스를 탄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정상적으로 도착한다 해도 담날 아침 10시 30분 도착 예정이다. 열여덟 시간을 내리 잘 수는 없으니 해가 질 때까지는 창밖이나 바라보기로 한다. 그저 배가 지금보다 더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저녁도 굶고 아침도 굶고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버스는 연착없이 터미널에 도착해준다.

 

이놈의 따리행 버스는 예외없이 따리가 아닌 근처에 새로 생긴 신도시인 샤관에 사람을 내려주는데 샤관이냐고 물으니 기사는 따리라고 박박 우긴다. 그래 행적 구역상 여기도 따리인가 보다 그냥 수긍해 주기로 한다. 미리 알아둔 대로 터미널 앞에서 4번 버스를 타고 40분쯤 가니 따리 고성이 나온다. 이곳에서도 역시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인 넘버3를 찾아간다. 이 곳에서 10년간 넘버3를 경영하던 문씨 아저씨는 게스트하우스를 처분하고 리장 근처의 옥룡설산으로 거처를 옮기셨다고 하고 이곳은 제임스라는 한국 아저씨가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새로 오픈 했다는 숙소는 두 달이 채 안 지나서 그런지 다녀 본 어느 곳 보다 깔끔하다. 비록 도미토리이긴 해도 공용 욕실 등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침대도 개인등이며 칸막이 등이 달려 있어 사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는 점도 맘에 든다. 게다가 침대에는 전기장판도 깔려 있다. 그래 이제 더운 곳에서 추운 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이제 티벳 올라가는 길에 들어서면 훨씬 더 추워질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아닌 게 아니라 한낮을 제외하고는 제법 추운 기운이 느껴진다.

 

도미토리 한구석에 짐을 풀고 나니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나무야>에서 만났던 쿤밍에서 차공부 한다던 원섭씨와 리장으로 떠났던 화사동료 세 명이 따리로 내려온 것이다. 이삼일만에 다시 만나니 십년지기라도 만난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삽겹살을 구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결국 따리에서도 그냥 뒹굴거리다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담날은 원섭씨가 한국에서 찻집을 내는데 필요한 소품이 필요하다고 해 따라 나선다. 따리를 중국의 인사동이라고 표현한 누구의 글이 떠오른다. 잠시 다녀 본 따리 시내는 인사동 같기도 하고 그냥 거대한 영화세트장 같기도 하다. 대체 사람들은 어디 사는 거야.. 투덜거리며 온통 상점뿐인 거리를 헤집고 다닌다. 그래도 여기는 리장보다는 나아요. 같이 따라 나선 회사 동료 셋 중 청일점인 노과장의 말이다. 리장은 여기보다 사람도 더 많고 상점도 더 많고 진짜 영화세트장 같다니까요.. 한다. 뭐 그래도 도시는 예뻐요. 하는데 웬지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귀찮아서 사진도 안 찍었다. 올릴 사진이 없다ㅠㅠ

 

이틀이 지나고 다시 모두들 다음 도시로 떠난다. 그래도 따리 뒤에 있는 창산은 한 번 올라 줘야지 싶어 그냥 하루를 더 머물기로 한다. 창산은 해발이 사천미터가 넘는다는 따리 북쪽에 있는 산인데-하긴 따리 자체의 해발이 이천이 넘는다- 대부분 꼭대기까지 가기보단 산중턱에 나 있는 긴 산책로를 한 번 걸어주는 것으로 트레킹을 마감한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는데다 그걸 타기 싫으면 말을 타고 오를 수도 있고 일단 올라가기만하면 11km에 이르는 등산로가 아니 산책로가 완전히 포장되어 있어 비오는 날도 문제없이 갈 수 있다는 쉬운 코스이다. 숙소에 같이 묵었던 한국인 몇몇과 산을 오른다. 말타는 게 걷는 거 보다 더 힘들다는 소문도 있고 해서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탄다. 그리고 쭉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산 위에서는 따리 시내뿐 아니라 멀리 얼하이 호수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내려오는 길은 그냥 걸어서 내려온다. 이곳 따리의 산은 진달래며 민들레가 벌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 완연한 봄산이다.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논밭에도 푸른색의 채소며 노란 유채가 한창이다. 아.. 서울도 봄이겠구나 잠시 아득해진다.


 창산의 운유로, 평탄한 길이다.


창산에서 내려다 본 따리, 멀리 얼하이 호수가 보인다.


벌써 봄꽃이 피기 시작한다.

 

트레킹을 하고 내려와 내일은 리장으로 가야지.. 하고 있는데 한국 남자 하나가 체크인을 한다. 마침 내 옆 침대다. 어디서 오셨어요? 했더니 쿤밍에서 오는 길인데 티벳가는 길이란다. 아싸!! 나랑 행선지가 같은 사람을 드디어 만난 거다. 어떻게 가실건데요? 했더니 그냥 버스타고 간단다. 거기 퍼밋 없이는 육로로 못가잖아요? 했더니 그래도 그냥 갈 거란다. 안되면 트럭 히치라도 할 거란다. 잘 됐다 싶어 같이 가자고 한다. 그 친구도 흔쾌이 오케이다. 다만 자기는 이전에 운남을 두 번이나 여행해서 따리니 리장은 그냥 지나가는 길이라 리장에 그리 오래 머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요. 그럼 리장에서 이틀만 자고 가죠 한다. 아.. 호도협도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은 들지만 지금같은 비수기에 티벳 가는 일행을 만나기는 쉽냐 말이다. 게다가 이 친구.. 술 무척이나 좋아한단다. 따리도 안들리려다 한국사람하고 술이나 마실려고 들렸다니 말 다했다^^. 저녁에 같이 술 한잔하고 다음날 따리를 떠난다. 이 친구 덕에 따리에서는 그래도 사흘 밖에 안 머물렀다. 병이 나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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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홍> 조짐이 이상하다

 

징홍에 있는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 <나무야>에 짐을 풀고 나니 갑자기 맥이 풀린다. 집이 나갔다고는 하지만 몇 가지 처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는데다 만약 한국에 가면.. 하고 마냥 미뤄두었던 일들도 이것저것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도무지 그 일들이 뭔지도 잘 정리가 안되는 게 머릿속만 복잡하다. 다행히 숙소에는 성수기가 지나서인지 아님 징홍이 운남의 주요 여행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여행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며칠 복잡한 맘이며 지친 몸이나 추슬러야겠다 싶어 하루 이틀을 게스트 하우스에서 빈둥거린다. <나무야>의 여주인인 선영씨가 가져다 놓은 구슬 꿰는 일이나 거들며 수다나 떤다. 역시.. 단순노동이 체질인 듯 구슬만 꿰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그래도 어디론가 움직여야지 싶어 가방 깊숙이 넣어 두었던 론리 플레닛 쪼가리-분철했다^^-를 다시 꺼내 징홍과 징홍 주변의 갈만한 곳을 살펴봐도 그리 내키는 곳이 없다. 마침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는 프로그램 중에 주변의 소수 민족인 하니족 마을에 다녀오는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같이 가겠느냐고 누가 물어온다. 옆방에 묵고 있는 아이 셋과 함께 여행하는 일가족의 아빠다. 사실 고산족이나 소수민족 투어는 더이상 가보고 싶은 맘은 없지만 그냥 일반적인 투어 프로그램이 아니라 숙소 스탭인 하니족 친구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라는 점과 숙소 주인인 선영씨가 소수 민족을 돕고 있는데 그 마을로 간다는 점 등에 마음이 끌려 다녀오기로 한다.

 

담날 아침 일찍 나서보니 옆방의 부부와 아이 셋, 나랑 같은 방을 쓰던 청도에서 유학하고 있는 여학생 둘, 그리고 회사에서 연수차 북경에 왔다가 여행 중인 회사 동료 셋 그리고 주인인 선영씨까지 모두 12명이나 되는 대부대다. 여느 투어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대중 교통수단을 타고 움직인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가서 근교 도시인 멍하이로 다시 멍하이에서 하니족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어느 산길에 내려 30분을 걸어가니 드디어 마을이 보인다. 그냥 마을이다. 맘이 놓인다. 최소한 소수 민족 마을을 빙자한 관광지는 아닌 듯싶다. 그저 어릴 적 외가집에나 가듯 마중 나온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선다. 중국의 마을들은 지붕이 기와라 그런지 그냥 우리나라 어느 시골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하루를 묵었던 하니족 마을의 숙소


마을 전경

 

프로그램도 소박하다. 마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마을 어귀 뒷산에서 참게를 잡으러 간다. 제법 큰 개울인가 했더니 조그만 실개천이다. 그래도 아이들 셋은 신나게 논다. 참게를 잡아다가-뭐, 우리는 한 마리로 못잡고 주인 아주머니와 그 딸래미가 다 잡긴 했지만- 장작불에 구워서 대나무밥이랑 역시 대나무통에 삶은 계란과 함께 먹는다. 참게 밑에 깔아 함께 구운 돌미나리의 향이 향긋하다. 논밭이 눈앞에 펼쳐진 전경이며 야트막한 산들이 그저  우리나라 어느 교외에 하루쯤 나들이 나온 것만 같다. 저녁에는 숯불을 피워 구운 돼지고기와 함께 맥주며 중국술인 바이주가 한순배씩 돈다. 사람들과도 적당히 친해지고 그래.. 한국 사람들하고 트레킹을 하니 이런 게 좋구나 싶은 맘이 든다.


굽기 전 참게


대나무밥을 만드는 주인 부부

 

그리고 나선 다시 게스트 하우스에서 뒹굴거린다. 떠나야 하는데 웬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제법 친해진 일행들은 아침마다 오늘도 안 나가요? 하며 놀리는데 아.. 예.. 뭐 별로 갈 데도 없고.. 하면서도 뭘 하는지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결국 유학생 친구둘이 쿤밍으로 떠나고, 회사 동료 셋이 리장으로 떠나고, 일가족 다섯이 태국으로 떠난 뒤에야 슬슬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리로 가는 버스를 끊어 놓고 잠이 들었다가 한밤중에 잠이 깬다. 머리가 어질어질한게 뱃속이 울렁거린다. 저녁에 먹은 사발면이 잘못된 모양인지 속이 영 거북하다. 후레쉬를 꺼내들고 배낭 어딘가에 넣어둔 소화제를 꺼내 먹고 다시 잠을 청한다. 아침에 일어나도 상태는 그대로다. 전날 체크인한 한의대생 친구가 이리저리 맥을 집더니 체한 것 같다더니 양약으로는 안된다며 한방 소화제를 사다 준다. 역시 룸메이트는 잘 만나고 볼일이다^^ 결국 따리가는 버스를 하루 연기하고 선영씨가 끓여준 죽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결국 징홍에 8일이나 머무른 셈이다. 여행하고 처음으로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채 그 도시를 떠난다. 여행하기 전 1년 4개월을 여행하고 돌아 온 하우아시아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한달, 6개월 그리고 1년 되는 때가 고비라고.. 한번씩 내가 뭐하러 여행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무기력해지는 시기가 그때인데 그때는 빨리 환경을 바꿔주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여행 시작한지 어언 6개월이 되어 간다. 돌이켜보면 베트남 넘어가기 전 쿤밍에서 내가 뭐하는 짓이지.. 하며 꽤나 우울했던 것도 여행 시작하고 약 한달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게 장기여행 증후군인가 싶으면서도 설마.. 하며 버스를 탄다. 


하니족 마을에서 찍은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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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앙씽> 므앙씽 가는 길은 멀다

 

보트를 타고 농키아누로 나와 기다리고 있는 트럭 버스를 탄다. 최종목적지는 라오스 최북단에 있는 므앙씽이라는 곳이지만 일단 당일에 도착은 어려울 것 같고 루앙남타에서 하루밤을 보낸 뒤 다음날 아침 일찍 므앙씽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러나 농키아누에서 루앙남타로 가는 버스 역시 없다. 일단 우돔싸이로 가서 갈아타야 한다는데 루앙남타도 거의 저녁이나 되야 도착할 것 같다. 우돔싸이행 트럭버스는 농키아우나 므앙응오이에서 지내다 나온 서양 여행자들로 가득하다. 한동안 서로의 여행루트를 묻는 여행지 질문들이 오가고 이런저런 수다가 계속된다. 뭐 나름대로 유쾌하게 우돔싸이까지는 무사히 도착한다. 우돔싸이에서도 두어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여행자가 루앙남타행 버스로 갈아탄다.


갈아탄 버스는 트럭 버스가 아니라 조그만 미니버스이다. 루앙남타까지는 다섯시간 가량 걸리는데 점심도 거르고 달려온 여행자들은 빵이며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들고 버스에 오른다. 현지인들이 먼저 예닐곱명 자리에 앉아 있어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서양애들은 보조 의자나 바닥에 앉거나 두어 명은 서서 간다. 우돔싸이에서 오는 중에 나름 친해진 인간들이 대놓고 떠들기 시작한다. 우돔싸이에서 오는 버스야 전부가 여행자였으니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여긴 현지인들도 잇는데 좀 심하다 싶다. 그 중에 맥주를 마시는 일행이 생기더니 아예 버스가 설 때마다 맥주를 더 사온다. 버스는 점점 소란스러워 가고 급기야 몇몇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비틀즈까지는 그래도 들어주겠는데 미국 군가로 추정되는 노래를 부를 때는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이 새끼들은 무슨 여행자 버스타고 투어가는 줄 아는 모양이다. 한국말도 열 번도 미친놈들을 중얼거렸지만 차마 영어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아 분을 삭히고 있는데 듣다 못한 영국인 아저씨 하나가 일어나 한 소리한다. 이건 현지 버스고 여긴 현지인들도 타고 있다. 현지인들을 존중한다면 이제 조용히 해라. 탈 때부터 계속 떠들고 노래 부르고 이래서 되겠냐 뭐 이런 소린데 아 이걸 내가 알아듣다니 대견하다. 근데 거기까지 하고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니네 미국인들은.. 하며 오버해 버리신 거다. 결국 열받은 미국애하고 둘이 싸우는 통에 버스는 더 소란스러워져 버렸으니 에구 내 팔자야..



므앙씽 가는길


아침 먹고 출발한 게 아홉신데 루앙남타에 도착한 건 밤 아홉시다. 그새 먹은 거라곤 우돔싸이 정류장에서 바게뜨 하나 사 먹은 게 고작인데도 피곤해서 그런지 입맛도 없다. 루앙남타 터미널에서 에라 인간들아 제발 내일 므앙씽에서는 보지 말자하며 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잡는다. 도무지 아무 것도 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다행히 숙소에 따뜻한 물이 나와 샤워를 하고는 그대로 뻗어 버린다. 그래도 아침엔 일찍 눈이 떠진다. 배가 몹시 고프다. 잽싸게 아침을 먹고 므앙씽행 버스를 탄다. 라오스에서 가게 되는 마지막 도시다. 므앙씽에서 이틀쯤 머물다가 다시 루앙남타로 내려와 중국 국경을 넘는 것이 라오스의 마지막 일정인 것이다.


그러나 므앙씽에 도착하자마자 막막한 느낌이 든다. 도대체 여기에 왜 왔단 말인가.. 아름답다는 경치는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나마 므앙응오이는 앞에 강이라도 있고, 방갈로에 해먹이라도 있었건만 여긴 그냥 조그만 마을이다. 주변엔 순 논들 천지고.. 논이라면야 한국에서도 수없이 봐오지 않았냐 말이다. 그래도 행여나 무척 재밌거나 무척 아름다운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 대충 투어리즘 오피스에 가 봐도 고산족 마을로 가는 트레킹 프로그랜 이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이제 고산족도 싫고 트레킹은 더더욱 싫다^^. 뭐 특별하게는 마을에 사우나가 두어 곳 잇는 모양인데 한국에서도 답답해 못 들어가는 사우나를 이 더운 나라에 까지 와서 갈 수야 없지 않은가 말이다. 므앙씽에 이틀쯤 머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음날 중국으로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그래도 왕창 남는 오후 시간에는 밀린 라오스 여행기나 정리한다. 그나마 낮에도 전기가 들어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숙소 옥상에서 본 므앙씽 전경


저녁 무렵의 시장 앞


다음날도 고된 여정이다. 아침 7시경에 일어나 터미널까지 걸어가 8시 출발인 루앙님타행 트럭버스를 탄다. 므앙씽에서 루앙남타까지 버스로 2시간-이라지만 중간에 버스가 고장나 40분을 지체해 2시간 40분 걸렸다-, 계속해서 루앙남타에서 국경도시인 보텐까지 역시 2시간-이라지만 역시 비포장과 포장이 이어지는 도로를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며 2시간 30분은 달려야 한다-, 라오스 국경을 넘어 트럭을 타고 다시 중국 국경 도시인 모한으로 이동, 입국절차를 마치고 다시 기다리고 있는 멍라행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이라지만 중간의 도로 공사 구간에서 차를 막아 2시간 걸렸다-, 다시 멍라에서 징홍행 버스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북부터미널로 이동해 징홍행 버스를 타고 4시간 30분을 달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이다. 시차 1시간을 제외하더라도 대충 13시간 가량 걸린 셈인데 차와 차의 연결 시간이 촉박하여 거의 하루종일 굶고 다녔다는 거 아닌가-그나마 게스트하우스에서도 너무 늦어 식사는 안 된다는ㅠㅠ-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열 몇 시간씩, 것도 말이 버스지 실제로는 ㅠ트럭 뒤에 앉아 덜컹거리고 다니다 보니 삭신이 쑤신다. 다행히 징홍에 도착해 확인한 메일에는 집이 나갔다는 반가운 소식이 와 있다. 한국에 갈 거라 생각했다가 못가게 되서 서운한 맘은 들지만 이래저래 번거롭지 않게 된 셈이다. 이곳 징홍에 있는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에 여장을 풀었으니 어디 가서 마사지나 받으며 한 며칠 쉬었다가 천천히 북부로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젠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되니 갑자기 마음이 느긋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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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키아우> 시간을 죽이다

 

<몇 년 전 왕위앙이 그랬듯 여행자의 입과 입을 통해 아름다움이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흐드러진 자연을 보는 일 이외에는 별 것이 없는 이곳은 라오스 북부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트레블 게릴라에 나온 농키아누에 대한 설명이다. 자연을 보는 일 외에는 별 것이 없는.. 헉 무서운 말이다. 그야말로 아무 할 일이 없는 곳이라는 뜻인데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인다. 특히 다음 행선지인 므앙씽도 <평화롭고 조용한 자연 풍경만큼이나 아직은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므앙씽은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면 순박함과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라는 표현으로 봤을 땐 할 일 없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인데 심심하다고 죄 피해간다면 바로 중국으로 넘어가야 할 판이다. 그래 내가 또 언제 라오스에 오겠어.. 하며 하루쯤 심심함을 견뎌 주기로 한다.


농키아우는 사실 농키아우와 므앙응오이를 합쳐서 편하게 부르는 말인데 므앙응오이는 농키아우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쯤 더 들어가는 곳에 있다. 아침에 루앙프라방에서 출발하여 농키아누에 도착하니 12시경이다. 므앙응오이로 가는 배는 2시에나 있다니 잠시 농키아우를 둘러보기로 한다. 뭐 흐드러진 자연이라더니 그저 대성리 비슷하다. 갑자기 무지 심심할 거란 예감이 확 들면서 그나마 전기가 들어온다는 이 마을에 그냥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둘러 게스트 하우스 몇 군데를 둘러본다. 경치가 가장 좋다는 선셋게스트하우스는 이미 풀이다. 방갈로를 더 짓는지 하루종일 전기톱 소리와 망치 소리가 요란한데도 풀인걸 보면 론리의 힘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대체 농키아우까지 와서 하루 종일 전기톱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심정은 뭔지 궁금하다^^. 그 옆에 있는 파라다이스뱀부 방갈로에 가 본다. 위치 좋은 방갈로는 4불이고, 2불짜리 방은 발코니도 없이 어두침침하다. 게다가 방안에 전기 코트도 없다. 그냥 므앙응오이로 가자고 맘을 바꿔 먹는다. 



므앙응오이 가는 길


므앙응오이의 방갈로


점심을 먹고 므앙응오이로 가는 배를 탄다. 주변 경관이 대성리 버전에서 내린천 버전으로 바뀔 무렵 배는 므앙응오이에 닿는다. 강가로 난 언덕 위로 방갈로가 즐비하게 서 있다. 중심거리가 300미터가 안되는 동네에 게스트하우스가 18개나 있다니 그럴 만도 하다. 배에서 내리자 동네 꼬마란 꼬마는 다 모여 든다. 이 동네 꼬마치고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애가 없다는데 말솜씨도 어른 찜쪄먹는다. 어디서 왔냐고 일일이 물어보고 그 나라말로 인사하고 방의 종류부터 가격까지 일사천리로 내뱉는다. 이 동네 방갈로는 대충 2불 정도인 모양이다. 한 꼬마를 따라 어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또 다른 꼬마가 1불짜리 방 있단다. 잠시 혹 했으나 싼 게 비지떡이다 싶어 그냥 앞서가는 꼬마를 따라 들어간다. 앞에 강도 흐르고, 방은 방이 분명하고, 발코니도 있고, 발코니에는 해먹도 걸려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 그래 방갈로가 다 그렇지 뭐 하면서 그냥 묵기로 한다. 짐을 풀고 300미터가 안되는 거리를 걷고, 이른 저녁을 먹고 나니 해가 진다. 어라.. 전기 코드는 없어도 전기가 들어오네.. 그럼 인도가이드북이라도 읽을까 하는데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발전기가 꺼진다. 시간을 보니 7시 42분, 그냥 잠을 청한다.



숙소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당연하게도 다음날 아침에는 일찍 눈이 떠진다. 일찍 잔 탓도 있지만 곳곳에서 울어대는 닭울음소리 때문이라도 더는 잘 수 없을 것 같다. 이곳 날씨는 북부라서 그런지, 강가라서 그런지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함을 넘어 제법 추운 기운이 느껴지는데 해만 뜨면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지는 그야말로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날씨다. 제법 쌀쌀한 아침 기운을 느끼면서 시간 죽이기에 들어간다. 아침을 먹고 조금 쉬다가 닭들이 잠잠한 틈을 타 한숨을 더 자준다. 그리곤 해먹에 누워 전자 사전에 있는 테트리스-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오락이다, 오델로, 지뢰찾기 등등의 게임이 더 있으나 할 줄을 모르니 그림의 떡이다-를 두어 시간 한다. 열두시 반이 조금 넘어 있다. 그리곤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다시 해먹에 누워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한글 서적인 인도가이드북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그도 지치면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들으며 한국에 남아 재미나게 놀고 있을 인간들 생각에 잠시 빠진다. 그러다 잠시 존다. 이제 네 시다. 좀만 버티면 된다. 다시 300미터의 거리를 걷고 이번엔 강변도 한 번 걸어준다. 움직였으니 샤워를 하고 다시 이른 저녁을 먹는다. 다시 해가 진다. 최후의 보루인 노트북을 켠다. 배터리 수명이 다할 때 이것저것 정리하니 한시간반 가량이 지난다. 다시 발전기가 꺼진다. 어둠 속이다. 오늘은 어제처럼 쉽게 잠이 들질 않는다. 낮잠을 너무 잔 탓이다. MP3 배터리가 다 할 때까지 음악을 듣는다. 시계는 어느새 10시를 넘어선다. 그래도 잠이 안 온다. 미치겠다. 다시는 전기 안 들어오는 곳에는 들어가지 말아야지 다짐하다 잠이 든다.


므앙응오이의 중심거리


므앙응오이 강변


다음날 하루에 한 번 있다는 배를 놓칠세라 일찌감치 짐을 싼다. 이틀 만에 나간다니 주인 아줌마가 서운해한다. 하긴 나처럼 삼시 세때 꼬박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먹는 착한 손님이 어디 있단 말이냐^^ 저기 전기만 들어와도.. 할 수도 없어 그냥 웃는다. 아침을 먹고 계산서를 받아든다. 이곳은 보트를 타는 것 외에 따로 도망갈 방법이 없어서인지 방값이며 음식값을 나갈 때 한꺼번에 계산한다. 이틀자고, 다섯끼 먹고, 커피도 마시고, 쉐이크도 마시고 -맥주는 안 마셨다. 화장실 갈 일이 꿈만 같아서- 총 합계가 89,000낍이다. 뭐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8,900원 되겠다. 광화문에서 스파게티 한 그릇 먹을 돈으로 이틀을 자고 먹고 마신 셈이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여튼 배를 타고 나오는 맘이 날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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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 여기는 라오스가 아니다

 

비엥싸이 가는 것 보다 약간 낫다 뿐이지 루앙프라방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라오스 북부는 온통 산악 지형인지 도무지 평평한 도로가 보이질 않는다. 끊임없이 비오는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버스는 그래도 8시간 만에 루앙프라방에 도착한다. 루앙프라방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두 번째 오는 도시가 조금이라도 맘이 편한 이유는 그나마 지리를 좀 안다는 건데 그전에는 여행자 버스를 타고 와 게스트하우스 골목에 내렸던 탓에 터미널에 내리니 똑같이 낯선 곳이다. 여러 명이 같이 타는 트럭 버스가 다운타운까지 만낍-천원-에 간다며 말을 건네 온다. 루앙프라방의 크기나 론리의 지도에 따르면 시내와 그리 먼 곳 같지는 않는데 도무지 흥정이 되질 않는다. 그래, 200원 깍아서 부자되겠냐 싶어 그냥 올라탄다.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멀지 많은 강가에 차를 세워 준다. 거리가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이전에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가 괜찮았던 것 같아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 본다. 게스트 하우스는 그대로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방값이 10불이란다. 분명 3년-햇수로 3년이지 만으로 2년 조금 더 된 것 같은데-전에 4불 하던 곳이었는데.. 그나마 풀이란다. 주변 게스트하우스도 거의 마찬가지다. 강가에 있는 집들은 죄다 10불이고 어떤 곳은 15불까지 부른다. 태국을 제외하고 다녀본 중 최강의 가격이다. 에효.. 그나마 뒷골목을 뒤져 6불짜리 방을 찾아낸다.



해가 지는 메콩강


루앙프라방에 오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건 강변에 즐비한 레스토랑에서 맥주나 마시면서 해지는 모습이나 한가하게 바라보는 일이었다. 비엔티안에도 강 주변에 맥주집이 있긴 하지만강폭이 넓은 탓인지 건기인 이즈음에는 물도 잘 보이지 않는데다 뭐랄까 분위기가 매우 로컬스러운데 반해 루앙프라방은 제법 노천카페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여튼 첫 날은 강변에서 맥주나 한 잔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술값은 그리 많이 오르지 않은 것 같다^^. 막상 다음날이 되니 별 할 일이 없다. 주변에 있는 땀짱 동굴이니 꽝씨 폭포니 하는 곳은 이미 다녀 온 곳들이고.. 뭘 할까 고민하다 막상 루앙프라방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라는 데 사원이라고 씨엥통 하나 밖에 안 다녀왔다는 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드디어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뒤져보니 론리에도 워킹투어라는 하루 코스의 사원 답사 프로그램이 제시되어 있다. 론리의 지령에 따르면 아침에 시장을 구경하라는데.. 음 이전에 봤으니 생략! 글구 지금은 아침도 지났잖아.. 하면서 시장 다음으로 가라는 두 개의 사원을 둘러본다. 이 두 사원을 보고 나니 사원에 흥미가 완전히 사라진다. 뭐 별로 오래 된 것 같지도 않은데 양식이나 특징은 잘 모르겠고 아무런 감흥이 없더라는 얘기다. 에이.. 사원 구경은 포기하고 강변을 따라 시내를 한 바퀴 걷는다.


메콩 강변의 카페

 


승복이 널려 있는 사원 앞마당


다시 오후가 고스란히 남는다. 인터넷이나 하고 점심을 먹어도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이번엔 시내 한복판에 있는 왕궁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전에 왔을 때 시간이 없어 못 가본 곳이다. 그때는 그걸 못 보고 가야 하는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는데 막상 시간이 이리 많이 남는데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미적미적 거리다 들어간 왕궁박물관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1975년 라오스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설 때 까지 존재했다는 씨사봉 왕가의 유물이 전시된 곳이다. 하긴 그때까지 여기가 왕궁이었고 거기에 집기며 옷, 유물들을 전시해 두었으니 박물관이라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여튼 아직까지 왕이 있는 태국이나 캄보디아를 제외하면 미얀마나 베트남은 식민지시절 이전에 이미 왕가가 무너진 반면 1975년까지 왕이 있었던 탓인지 비교적 궁전의 형태나 집기들도 온전하고 심지어 왕실 일가의 가족사진도 걸려 있어 이 사람들 지금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프랑스쯤으로 망명해서 잘 먹고 잘 살지 싶은데.. 아닌지도 모르겠고..   



루앙프라방 강변


한때는 왕궁이었으나 지금은 박물관인 왕궁박물관


저녁에는 야시장이나 둘러본다. 이 야시장은 주변의 고산족들이 만들 수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곳으로 베트남의 박하 시장, 치앙마이의 나이트 바자와 함께 본 중에는 규모도 있고 제법 눈길이 가는 물건들도 많은 곳이다. 아.. 혹시 한국에 가야 한다면 선물을 사야하나 싶어 유심히 이것저것 살펴본다. 역시 시장 구경은 살 거라는 마음이 있을 때 해야 더 재미있는 법이다. 한참을 둘러보다 문득 돈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태국에서 밧을 남길 때 딱 라오스에서 쓸 돈 정도만 남겨 낍으로 환전했던 것이다. 달러도 재환전하기가 번거로워서 미얀마에서 쓰고 남은 얼마 안 되는 돈만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는데다 여기는 ATM도 안되는 나라가 아닌가.. 그래 아직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데 선물은 무슨.. 무겁기만 하고.. 꼭 사야 되면 중국 가서 사면 되지 뭐.. 하면서도 몇 가지 물건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루앙프라방 야시장

 

갑자기 시장 구경이 재미없어져 밥이나 먹으러 간다. 반찬 이것저것 골라 밥 위에 얹어 먹는 시장통의 500원짜리 밥집에 앉으려는데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한다. 방콕의 한국인 숙소에서 잠시 스친 어린 여학생이다. 여행 올 때 같이 태사랑에서 만난 일행과 일정이 안 맞아 헤어지고 혼자 다니고 있단다. 마침 내 다음 행선지인 농키아누에 다녀왔다고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맥주나 한잔 할래요? 했더니 맥주 좋아하는데 돈이 없단다. 쇼핑이 취미라 이것저것 너무 많이 사는 통에 한달 일정에 13일밖에 안 지났는데 지금 얼마 밖에 안 남았다며 이걸로 캄보디아까지 갈 수 있을까요? 되묻는다. 지금처럼 다니면 될 것도 같은데.. 했더니 안돼요, 50불은 남겨서 리바이스 청바지랑 사 갖고 가야 되는데.. 한다. 귀엽다. 그냥 맥주 한 잔 사주겠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가끔 단기 여행자들에게 맥주 한 잔씩 얻어먹은 기억은 나는데 여행 다니면서 누구한테 뭐 사준 적도 없는 것 같다. 일차를 하고 강변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번에는 자기가 산단다. 돈 없다며? 하며 그냥 맥주값을 낸다. 즐겁게 수다를 떨다가 느즈막히 숙소로 돌아와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담배갑에 돌돌 말린 2000낍짜리 하나가 들어 있다. 화장실 간 사이 그 친구가 넣어 두었나 보다. 거듭 귀엽다. 이름은 송아나, 86년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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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사완> 항아리 평원을 가다.

 

미얀마에서 태국에 도착한 날이 1월 30일 월요일. 태국으로 넘어오면서 그 다음날인 31일에 중국 비자를 신청하고 비자를 받는 대로 라오스로 넘어가 한 열흘 라오스 북부를 둘러본 뒤 중국으로 들어가면 대략 2월 중순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기간이라면 대충 춘절도 끝나 있을 거고 혹 2월 말에 한국에 들어가더라도 한 보름쯤 운남을 둘러 볼 시간적 여유도 있을 거란 계산도 함께 해 둔 터였다. 하지만 중국의 춘절 기간엔 대사관도 쉰다는 생각은 왜 진작 못했던 것인지 그 사실을 비자 받으러 방콕주재 중국대사관까지 가서야 깨닫는다. 중국대사관은 2월 6일에나 문을 연단다. 결국 방콕에서 6일이나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라오스로 넘어와 다시 비자를 받기까지 4일을 빈둥거리니 비엔티안을 떠나는 날이 이미 2월 10일이다. 라오스 북부를 열흘 만에 둘러본대도 중국에 들어가는 날은 20일 전후, 대충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간다 해도 2월 말까지 징홍-다리-리장-중덴의 운남 여정은 도무지 견적이 나오질 않는다.


그래도 뭐 어찌 되겠지.. 하며 중국 비자를 받아들자마자 떠날 준비를 한다. 일반적으로 라오스 북부는 방비엥을 지나 루앙프라방을 둘러보고 훼이싸이를 거쳐 태국으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루트는 삼년 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번에는 동북부로 방향을 잡는다. 폰사완.. 항아리 평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항아리 평원이란 폰사완을 중심으로 몇 군데 지역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돌항아리들이 널려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큰 것은 6톤이나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약 2000년 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은 하고 있지만 그 용도나 쓰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모양인데 곡식을 저장하는 것이라는 설에서 술을 빚었던 것이라설, 제의적인 목적에서 사용되었으리라는 설까지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어 자칭(?)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이런 돌항아리들이 널려 있다.


비엔티안에서 폰사완까지는 버스로 약 10시간 가량 걸리는데 이상하게도 밤버스가 없어 아침 일찍 버스를 탄다. 대충 서너 시간을 지나니 밤버스가 없는 이유를 짐작하게 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한계령 올라가는 듯한 길을 거의 예닐곱 시간을 간다. 뭐 계속 올라가는 건 아니고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데 처음 두어 시간은 경치에 정신이 팔려 아무 생각없이 가다가 서너 시간이 지나니 녹초가 된다. 말은 VIP버스지만 90년대 우리나라에서 굴러 다녔을 좌석버스는 이미 그 수명은 지난 듯 하다. 결국 폰사완을 30km 남겨두고 버스가 선다. 라오스 남부에서 한 번, 미얀마에서 한 번, 이번이 세 번째다. 누군가의 여행 무용담 중에 라오스에서 차가 퍼져 외딴 마을에서 하루밤 묵었는데 경치가 끝내줬다나 어쨌다나 하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지만 글쎄 외딴 마을에서 밤을 새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도 별 수 있나.. 뭐 차 없으면 도리 없지.. 약간 불안한 맘으로 기다리는데 이삼십분이 흐르고 누군가, 어디선가 기름을 사와서 채워 넣으니 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아니, 무슨 버스가 기름도 안 넣고 다니냔 말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 운행하는 렌트카도 아니고 하루 한번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로컬 버스가 이래도 되는지 어이가 없다.


여튼 아침 7시 30분에 떠난 버스가 폰사완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5시 10분. 론리 지도에는 터미널이 바로 시내 중심가에 있었는데 그새 이전을 했는지 게스트하우스까지는 4km가 넘는다며 무료 픽업이니 제각기 자기 게스트하우스로 가자는 호객꾼들이 즐비하다. 픽업이 무료라지만 그게 진짜로 무료겠는가, 픽업타고 가면 3불짜리 방이 4불짜리로 변신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결국 1불내고 툭툭 타고가 3불짜리 방에 묵나, 무료 픽업타고 가 3불짜리 방 4불에 묵나 그게 그거니 좀 더 편한 쪽을 택하는 거다. 버텨봐야 득 될 것도 없어 가격이 적당한 한 곳을 찍어 따라 나선다. 뭐 방은 싼 방이 으레 그렇듯 상태는 썩 좋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에 싸고 좋은 방이란 없는 법이다^^. 내친 김에 다음날 항아리 평원 투어까지 신청해놓고 나니 주위가 어느새 어두워져 있다. 



폰사완 가는길. 굽이굽이 고개길이다.


폰사완은 라오스의 씨엥쾅이라는 지역에 있는 곳인데 이 씨엥쾅이란 지역은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집중 폭격을 받았던 곳이라고 한다. 언젠가 보았던 TV다큐멘터리-제목도 잊혀지지 않는다. <폭탄의 땅 라오스>였다네-에서 본 바에 의하면 이곳이 그 유명한 호치민 레일의 중심지였다는데 미군이 이곳을 차단하기 무려 600만 톤 이상의 폭탄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지형이 산인데다 우기가 되면 거의 정글로 변하는 이곳을 공격하는 데는 폭격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는데 그 당시 거의 10여 년간 폭격이 지속되었다니 그 참혹함이야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참혹함은 당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후유증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그 많은 포탄 중에 수많은 불발탄들이 아직도 곳곳에 묻혀 있어 땅을 개간할 수도, 건물을 지을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개발은 늦어지고 라오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 속하는 이곳 주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발탄을 파내거나 폭탄의 잔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일 년에도 수십 명씩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불발탄이 터져 팔다리가 잘리거나, 실명이 되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그나마 폰사완 시내는 관광지라 특별히 다른 곳과의 차이를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폰사완 주변에 있다는 항아리 평원은 현재 갈 수 있는 곳만 사이트1, 사이트2, 사이트3의 세 개의 지역으로 구분해 놓았는데 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지역이 불발탄이며 지뢰를 제거해 안전한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가이드북 등에서는 그 지역 내에서도 일정한 거리 안에서만 움직일 것을 경고해 두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항아리 평원 내에도 곳곳에 폭탄이 터진 자리가 아직 메워지지 않은 채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 규모가 가장 크다는 사이트1을 먼저 방문한다. 모두 334개의 정체모를 돌항아리가 널려 있다는 곳이다. 큰 것이 6톤이라는 얘기지 보통의 것들을 까치발을 하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어쨌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고 인공적인 구조물임은 분명해 보이는데 그 목적이 무엇이었던 간에 이거 만들고, 나르느라고 힘없는 사람 꽤나 죽어나갔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 그런 생각은 왕창 큰 구조물들-그것이 사원이거나 파고다거나 아님 왕궁이거나 간에-을  대하면 늘 드는 걸 보면 아마 전생에 이거 만드는 사람이었지, 만들라고 시킨 사람은 아니었던 듯 싶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 이제 잡초만 무성하다.


원래는 항아리에 뚜껑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어지는 사이트2와 사이트3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사이트2에서 사이트3까지는 산등성이를 따라 약 한 시간 걸으면 갈 수 있다는데  가이드 겸 운전기사 왈 걸어가고 싶은 사람은 걸어가도 좋단다. 20대로 보이는 프랑스 청년 둘이 걸어가겠다고 나선다. 시간은 오전 11경, 잠시 고민하다 이럴 때 잘못 걸으면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냥 차에 올라탄다. 이제 자중해야 하는 나이인 것이다^^. 사이트 세 개를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4시간 남짓.. 크게 특별한 볼거리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세 사이트를 오가면서 보는 주변의 경관은 라오스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풍경을 보여주는데 풀 한포기없는 붉은 평원이 저 멀리 산 밑까지 이어지는 특이한 모습이다. 그렇다고 사막은 아닌 것이 제법 붉은 황토빛 흙으로 덮여 있는데 왜 풀이 안 자라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사이트2와 3을 잇는 고개길


부서진 항아리 사이로 나무가 자란다.


항아리 평원 투어를 마치고 나니 딱히 할일이 없어 그냥 짐을 싼다. 원래 다음 행선지는 폰사완에서 동북쪽으로 더 들어가야 하는 생각했던 비엥싸이라는 곳이었다. 뭐 라오스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휴양지라나 하는 곳인데 이곳을 가려면 네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남능이라는 곳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쌈느아라는 곳까지 네다섯 시간을 간 뒤, 다시 트럭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들어가야 한다기에 그냥 포기한다. 새로운 휴양지 아니라 뭐래도 이제 하루 열 시간 이상 낮버스 타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들어가기면 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되짚어 나와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도무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루앙프라방으로 향한다. 폰사완을 떠나는 날 아침에는 건기임에도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버스터미널에는 아.. 저거 아직도 굴러다니나 싶은 버스가 서 있다. 그 버스란다. 에휴..  그래도 오랜만에 비 오는 걸 보니 운치 있네 해가며 창가에 기대 음악을 들으며 주접을 떠는데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창가에 고여 있던 빗물이 내 자리로 왕창 흘러든다. 인생이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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