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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1:3-8
3. 그리스도께서는 신적인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영광과 선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분을 우리가 알게 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4. 이것으로 그리스도는 아주 소중하고 중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이 약속을 통해 여러분이 세상의 파괴적인 정욕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은 최선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선을, 선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7.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8. 이런 것들은 넉넉히 갖춘다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더욱 풍부해 질것입니다.
9. 그러나 이런 것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앞 못보는 소경이며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해진 것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거룩한 성도들(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에게는 하나의 주어진 사명이 있다.
그것은 거듭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주님앞에 설때까지
자신이 영적성장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살아있는 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계속하여 자라고 성장한다.
어른은 성장이 멈춘 상태라고 할수 있으나,
육체적인 성장은 멈추었어도,
정신적인 성장이나 영적인 성장은 계속적으로 자라가야 한다.
성장은 인간생활의 자연적인 활동이다.
성장발육이 되지 않는 것은 성장저해 증후군에 빠지며 성장하지 않고 나이만 먹어간다.
아이어른은 성장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나이는 어른인데 자라지를 않아 아이의 상태의 몸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성장저해증후군은 비단 육체의 일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나 영적인 현상에도 같은 현상들이 일어난다.
영적인 성장에도 제대로 성장하지 않으면, 영적저능아의 증후군에 시달린다.
영적인 아이의 상태에서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늘 기대어 살아가는 영적인 지체아들이 있다.
특히,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가는 신앙생활에는
영적인 지체아의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이 I.Q, E.Q, S.Q. 등 인간의 자체능력의 기능의 지수들이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야 비로소 어른으로서 성숙한 사회적인 존재로 생활 할수 있다.
아이큐는 지능적인 활동으로 이성적인 기능이 자라게 된다.
이성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는 사고능력이나, 문제해결의 능력을 개발한다.
이큐는 인간의 감성의 차원에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을 개발하며,
인간과 인간사이에 전자파와 같이 흐르는 감정적인 흐름을 파악하여,
그 감성의 영향력을 배워가는 능력이다.
에스큐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파악하여,
사람들과의 교제나, 사회생활에 적응해가는 능력을 개발한다.
사실 가장 인간에게 중요한 능력은 Spirituality Quotient (S.Q.: 영성지수)이다.
그것은 영적인 기능의 자질로, 영적인 센스나, 영감있는 능력을 개발하며,
영적인 능력도 인간의 영적인 세계의 감지하는 능력이나,
영적인 세계와 교류하며, 현상세계에 영향을 주는
영적인 존재와의 접촉이나 교제하는 능력의 자질을 개발한다.
이 자질은 그 방향성이 중요하다(영적인 세계로 나아가는 데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세계가 인간의 경험과 이성의 판단의 경지를 넘어가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의 부르심에 의해 택함을 입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은
그와 함께 신의 능력안에 참여하는 권한과 능력을 부여받는다.
크리스챤들은 그들의 성품이 인간의 성품에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권리를
예수, 신의 아들, 즉 하나님을 통해 얻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온 인간의
신의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 부름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생명이며, 그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살리는
생명을(운명적인 죽음의 세계에서 부활하는 생명을 얻는,
불안의 고통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좌절과 절망의 상태에서 회복시켜주는) 가지고 있다.
그안에서 사람들은 생명을 발견하고 얻고,
생명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간다.
경건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간의 가장 최고의 고상한 성품이다.
경건에의 순례는 하나님의 거룩의 속성을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인간이 도달할수 있는 신의 경지에 나가는 길의 과정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가며,
그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잃었던 인간의 온전한
것들(이상적이고 성장하는 자아에서 오는 믿음, 소망, 사랑등 )을 회복하는
자기 성품 개선내지는 자기 완성 개발의 지속적인 일생의 과정이다.
이렇게 사람이 자신을 개선하고 개발하는 것은
자기가 만들어져 가는 것이 결국 자신의 자신됨의 결과를 낳는다.
그 결과는 인생의 일생의 과정의 결과로,
자기가 가야할 영원한 미래의 상태나 위치를 결졍해준다.
그것은 인간에게 더없는 영광이며,
자신이 도달해가는 미래에 갖추어야 하는 진정한 선한 자신의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약속을 주셨다.
그것은 세상사람들이 이세상에 썩어질 육신의 것에서
썩지 아니할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늘의 권한을 허락하시며,
잃어버힌 사람들의 명예와 영광을 회복시키신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죄의 후손으로 죄와 죽음의 그늘에서
살아가도록 되어있는 운명에서 벗어날길이 없다.
아무리 도의 철학이나 지식의 방법으로 혹은 도덕이나 수양의 능력으로
그러한 인간의 굴레(죄와 죽음의 속박)를 벗어나게 할수는 없다.
다만 그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점점 죽이며,
파괴케하는 세상의 영에 의해,
절망스런 상태에서 연명하며 살아가는 길밖에 없다.
그런 인생은 소망도 없고, 가능성도 없는 자신안에 갇혀
절망과 탄식의 자리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인간의 굴레들을 벗을 길을 마련하여 놓으셨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은 인생들의 속박을 풀어내어,
자유롭게 하늘에의 영광에 동참하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사람들은 그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부여받아,
그안에 있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여, 하늘의 영광에 오르게 된다.
이길은 하나님의 생명을 품고 그것을 가꾸고 성장시키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자라고 성장하듯,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인 생명이 자라간다.
성장의 엔진을 달고, 지속적으로 자기변화와
자기 성장을 그분(예수)의 도달한 상태에 까지 목표를 향하여 부단히 진행한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생명의 날의 풍성을 위해 열심히 주어진 일들을 하는 것이다.
그 분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는 것의 목적이 분명하고,
자신이 해야 할일에 대한 자기사명이 투철하여,
그들은 무엇이든지, 그들 자신을 통하여,
자신들을 영광스러운 자리로 초정하여
그의 아들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스럽게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어지는 것을 원한다.
고로 그들 자신이 할일의 목표가 구체적으로 분명하고,
그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게 된다.
하나님의 길은 차선이 아니라, 항상 최선의 길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최선의 것을 이루어 가신다.
그러하신 주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도 당연히 최선을 향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믿음은 잃어버린 인생의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주고,
더 나아가 하나님안에 있는 인생들을 영화롭게 하는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맺고, 그를 따르고 신뢰하게하는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은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하여, 자신을 살리고,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과의 연결고리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로 이루어졌으며,
그분이 약속하신 것들을(인간의 회복과 영광의 자리,
그리고 영생과 축복의 권한등) 바라보며,
그것들을 우리 손안에 넣을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믿음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모든 일들과 경험들을 합력하여,
가장 좋은 상태의 선을 이루어 내는 것을 바라본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때에,그것을 기대하시며,
각 사람을 인도하신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선은
원래 하나님이 사람들을 지으셨을때에 보시기에 좋았던
온전하고 완벽한 상태의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사람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의 모습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선의 상태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이상적인 선을 바라보고,
자기가 하는 일에 아름다운 선을 이루어가려고 한다.
선을 이루어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궁구하는 여러가지 길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을 가게 된다.
그 길을 바로 가려면, 정확한 안내를 받아야 하며,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올바른 지식이 요구된다.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영생의 생활은 그를 알고
경험하는 지식의 성장에 따라 그분이 부여하신 생명의 풍성을 얻을 수 있다.
그 지식은 계시로 알려진 내용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그 계시의 말씀의 의미와 능력를 깨닫고 체험케 하도록 사람들에게
그 지식의 빛으로 조명해주시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다 유용한 것이 아니다.
개중에는 우리를 그릇되게 인도하는 거짓된 지식도 있으며,
사람들을 허왕되게 하는 어리석은 지식도 있으며,
지식은 지식을 추구하는 방향성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하며, 어리석게도 하기 때문이다.
지식을 따라 행하는 일에는 질서가 있으며,
조절된 태도에 의해 좌우되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원자폭탄의 힘을 만들고 생산하는 과학적지식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종교성에의 인도와 안내를 받아야
파괴적이지 않고 유용하게 쓰여질수 있다.
영적생활에도 무모한 영적인 세계의 지식추구는
때로는 위험할수 도 있다 (이상한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경우나
사람의 생명에 도움이 안되고 해로움만을 주는 헛된 영적인 정보).
지식을 얻고 지혜로와 지려고 하는 인간의 시도는
원래 선악과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절제는 질서를 따라 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지식추구에는 절제를 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고 한다.
우리들 주변은 요즘 많은 지식이나 정보의 홍수에서 지내고 있다.
우리가 접한 지식들은 우리의 두뇌에 각인도 되기전에
새로운 지식에 의해 우리의 두뇌의 수천억의 두뇌세포에 저장되곤한다.
지식도 정제된 그리고 절제된 지식이 필요하다.
무분별한 지식추구는 사람을 혼란케하고, 피곤하게 한다.
지식이 다 좋은 아닌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사람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더럽게 하는 지식도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자주 인내하기 힘든 일을 만난다.
함부로 운전하다든지, 새치기를 하는 경우, 혹은 신호위반,
그리고 다른 차량이 진로를 방해했을때에
바로 우리의 성질을 표현하여, 상대방에게 불쾌한 감정을 표하곤 한다.
그런 경우에 절제와 인내가 필요할 때가 많다.
사람을 절제하게 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은
인내를 가져야 할 일에도 잘 적응하게 한다.
인내는 절제된 사람을 통해, 모든 일에 인내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나, 일을 추진하는 것에나, 공부를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사람이 자신을 통해 이루려는 업적은
인내를 갖지 않고서는 성취할수 없다.
꾸준히 착실하게 무슨일이든 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자신을 가질수 있다 .
왜냐하면 힘들고 참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지의 활용을 통해 인내를 갖고서 일을 대하기 때문이다.
인내할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질수 있으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인생안에서 인내의 법을 배우고,
모든 일에 그 열매를 거둘수 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경건의 생활에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믿음을 이끌어주는 지식도 가져야 하며,
선을 이루고저 하는 향한 열정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조절할줄하는 절제와 인내하며,
일을 성취할수 있을때에 참 경건에 이를수 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면
신앙인의 성품속에는 이런 여러요소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사람다와 질수 있으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때에,
사람의 생명과 인격의 존귀함을 알고
한 사람 한사람의 가치성을 알고, 사람들을 정중히 대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누구나
자신안에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인간의 속성은
가장 인간을 고상하게 하며, 가치있고 품위있게 한다.
이런 영적인 성품들을 사람들 속에 충분히 개발하면,
그 성품들은 더 자신을 성장하고 성숙시키는 길로 나가게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자기 이상이 있으며, 자기 목표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신앙인의 믿음의 주이며, 도달해야 할 목표이다.
그는 온 세상인들의 흠모의 대상이다.
요즘은 세상에서는 신문지상을 통해 접하는 뉴스를 통해,
윤리나 도덕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며,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옳은 사람이 되라는 도덕군자들의 철학이나
인생의 가르침의 지식에 대한 능력을 상실해 가는 세태에 살고 있다.
사람이 사람이 되신 예수를 항상 생각하고 바라보면,
그는 자기 자신을 참 인간됨을 만들어 갈수 있으며,
그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질의 참된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세상에 많은 지식중에 자신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는 지식은
예수를 알아가는 지식이다.
예수는 만물의 주인이며, 만물의 중심이며, 모든 인생들의 중심에 존재하신다.
그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오며,
우리의 가치를 높이며, 나중에는
결국 우리 자신들을 영광스럽게 할 놀라운 정보인 것이다.
인생의 방향성을(빛으로 나아갈것인지, 아니면,
어둠안에 그대로 주저 앉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회색지대에 머물러 살고 싶은지, 즉 대략 3가지 갈랫길이
인생들 앞에 놓여있는 것같다) 아직 설정하지 못하고,
인생의 시작과 끝과 과정을 모르고,
돌고 돌아가는 지구처럼, 계속하여 방향도 없도 진행도 없이 살아간다면,
아직 그들은 자신의 위치와 방향성 설정에 고심을 해야 할 것 같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길잡이가 필요하다.
그들이 지팡이를 의지하는 것은
그것이 그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도록 의지할수 있기 때문이다.
빛이 비치는 밝은 세계로 나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둠을 그리워하며, 회색지대에 빛과 어둠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경우는
자신의 영적인 현주소(하늘에 속했는지 아니면 땅에 속했는지)가
어디에 있는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경우에 영적인 성장동력엔진(회개나 자기결단등의 충격요법)을 발동하여,
자신을 앞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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