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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필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라는 말이 있다.
이말에 따라 사람들은 무엇에 대한 필요를 통해,
자신의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는 것으로 추구하며,
그 필요성은 자기발전과 사회발전을 의한 좋은 동기부여를 하게된다.
사람은 자기 필요를 따라 살다보면,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게되며,
자신의 필요를 의식하여 살았기에,
그 필요의식를 좇아, 자신이 가져야 할 분명한 이유를 확신하게 하며
그 의식을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도록 가능하게 한다.
또한 그 필요의식을통해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명분을 가지고하고,
무엇이든지 그 필요를 이룰 일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를 하게 한다.

인간이 사는 사회에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사회적인 동기부여를 하고,
그 동기부여를 통해 사회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여
감추어진 것을 발견하고 혹은 새로운 것을 발명을 하게되어,
인간 사회의 발전과 성장을 이루어 온것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50년이상전에 동족간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으로 온국토가 폐허가 되어,
당시에 살고 있는 한국의 국민들이 가장 삶의 환경에 대한
모든 필요에 대한 절박한 경험을 하였다.
배고픔과 헐벗음과 파괴와 피폐한 환경등 사람들이 살긴 힘든 시대를 거쳐 오면서,
국민들의 마음속에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려는 발전과 성장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가 일어나,
짧은 기간에 국가적으로 혹은 개인의 삶의 조건이나 사회의 환경등에 놀라운 발전을 이룩해 왔다.

이 사회적인필요나 국가적인 필요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
옛날 60,70년대의 필요는 잘살아 보세라는 명제로 주로 물질적인 경제적인 부와
잘사는 삶의 양적인 성장환경을 만드는 일에 주력하였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의 필요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좀더 사회나 세계에 대해 국가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영향을 주며,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대에 살면서,
잘살아보는 일에 대해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정신적인것과 정서적인 (문화활동의 수준높이기나, 혹은 사회보장이나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적인요구나 사회체제의 긍정적인 변화)
잘사는 일을 실제적으로 얻고 살려는 필요를 추구하는 세대일 것이다.
그 두시대의 사람들의 필요는 이렇게 다르다.
그리고 각 시대에 맞는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일이 정부나 개인이나,
그 시대에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쓰임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을 6,70년대처럼 사는 것은 넌센스일 것이나,
어려운 시절에 살았던 고생하는 정신으로 산다면,
오히려 삶의 질을 잘 높이며,
보다 더 발전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을 위해 살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

개인의 필요의식도, 어릴때와 청소년기의 때와 성인이 되어
장년의 필요와 노인의 시기에 따라 각기 다르며,
그리고 각시기의 강한 필요의식은 그시기마다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며, 동기부여하며,
그시기안에서 자기성장이나 발전을 가져올수 있다.
인생의 지혜중에 하나가 각시기에 가장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
그필요를 좇아 집중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그 필요에 충족하고자 하는 것일것이다.
그 시기에 자신의 필요에 민감한 만큼 그 시기를 충실하게 살아갈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에게 지금 남은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삶을 정리하는 쪽으로 살라고 말하면,
아직 삶을 펼쳐보지도 못한 그들을 모욕하는 것일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기를 그렇게 거꾸로 살아가는 지혜에는 역설적인 면도 있다.
노인이 젊은이처럼 살려고 하면 더 자신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그리고 몸을 튼튼히 하려고 열심히 운동하여 뒤받침된 그 건강한 몸으로,
무엇이든지,새로사는 것처럼 젊고 건강하게 생활하게 된다.
예를들면 노인이 대학교에 들어가 노인 대학생처럼 사는 경우일것이다.
이렇듯이 젊은 노인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있게 삶을 살아갈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반면에, 젊은이가 노인처럼 삶을 아주 소중하게 얼마남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다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소중한 일을 더 많이 하면서 살아갈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순간마다, 여러가지 환경의 삶을 통해 각자의 필요의식를 느끼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시인 필요에 민감한 사람이 있는데,
그 필요는 쉽게 이루어져야 할 필요이다.
그 일시적인 필요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람의 생존에 요구되는 일시적인 필요에 따라, 필요한 물질을 구하며,
여러가지의 생활의 필요를 얻으려하며,
그 당장에 필요한 것을 얻은 것에 만족하려고 한다.
그런사람에게는 더 이상 자신에게 보다 나은 발전에 대한 기대나 동기를 갖게 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필요일 것이다.
사람의 가치나 삶의 의미보다는 일시적인 효과적인 결과에 매말리며,
그것을 자신의 삶의 필요를 그 일시적인 것에만 극대화하려는 경우이다.

단순한 일시적인 필요를 넘어서는 것은
자신의 성장이 나 발전의 필요을 따라 장기적인 필요를 따라 사는 경우이다.
그 장기적인 필요의식은 많은 세월을 기다리며 준비하여,
그필요를 채우려는 동기로 인하여, 자신에게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하여,
자신의 성장이나, 발전을 이루어 간다.
어릴때에 어렵게 자란 사람들중에, 어릴때부터 장기적인 필요의식에 대해,
눈을 뜬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환경이나 처지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공부에도 전념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필요의식가운데에 자신의 노력이나 성취를 통해 성장이나 발전을 이루게 된다.

사람이 사는 데에 무엇이 필요한가? 의식주의 문제인 일차적인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기본적이면서 절박한 필요라 할수 있겠다.
산 입에 거미줄칠정도가 되어버리면,
사람의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먹을 것만 찾아가게 된다.
단지 그들의 생존을 위한 음식을 얻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이부분은 어느 사회이든지,
그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의 어느 필요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에만 매달려 사는 것도,
사람을 그것을 넘어서는 사람들 자신들의 필요에 눈을 뜨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물학적인 요구만 추구하는 인생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것만 가지고 살면, 사람의 삶이 천박하여,
자신의 삶을 낭비만 하는 무의미한 인생에 지나지 않게 된다.

먹는 것이 해결되면, 사람들은 집을 갖추고,
자신의 소유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다. 집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옷은 유행을 좇아 무엇을 사서 입을까 신경을 쓴다.
사람들 사이에 자신을 나타내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어,
특히 외모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좁은 땅에서는 사람들이 더 심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사람들 만나는 일로 자신의 드러나는 모습에 신경을 쓴다.
이런 필요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자신의 수입을 소비하며,
거기에 충족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필요를 채워가고 있다.
그렇게 외모관리에만 신경을 쓰다보면,
진정한 자신의 필요를 채울 기회를 소홀히하여,
자신의 삶을 충실과 진정으로 체워줄 내면의 정신적인 필요나, 영적인 필요를 멀리하게 된다.

그 다음단계의 필요는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만족해지려는 필요로,
정신적인 필요를 위해,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정신적인 노동을 통한 자기의 필요에 부응하려 한다.

더 나아가 정신적인 필요에는 여러가지 사람에게 필요한 요구들이 있다.
자신의 생존에 대한 안정을 얻으려는 소속감의 요구가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소속감은 가정을 통해 얻게 된다.
경제적인 동기에 의한 여러 단체나,사업체나, 자발적인 동기에 의한 사회기관이나,
종교기관에 소속하는 것이나, 동호인모임이나, 친우모임등에 참여하여 그 필요를 채운다.

그리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자기자신에 대한 인정을 받으려는 필요를 또한 가지고 있다.
이 필요는 다른사람과의 관계에서나,
혹은 자신의 일들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동기로, 자신의 유일성과 객체성을 인정받으려 한다.
이 필요는 자신의 삶의 필연적인 동기를 부여하여,
무엇에든지, 자신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하여,
거기에 자신의 생활의 의미와 삶의 만족감을 얻게 한다.
이 자기인정을 받으려는 필요의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기가 소속한 곳에 필요한 영향을 주기도 하고,
그 단체나 기관을 발전시키는 역활도 하게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이 하는 일들이나,
삶의 과정을 통해 지속적인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필요가 있다.
자기 성취를 얻으려면 자신의 삶속에 있는 장기적인 시간과 지속적인 자기노력의 투자와,
그것을 얻으려는 단계마다의 과정들이 있다.
단기적인 성취하고자 하는 일들이 있는가 하면,
장기적인 성취를 얻으려는 일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일들중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내가 이루어야 할 성취적인 일들을 갖고 사는 것이
인생을 길게 그리고 흔들림없이 살아갈수 있을 것이다.
자기 성취에 대한 강한 동기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분야에서나
혹은 자신들이 속한 모든 곳에서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며,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필요의식이 되어 자신의 삶을 보람있고 가치있게,
그리고 생산적인 인생을 만들어 간다.

언제나 사람은 가장 고상한 필요를 따라 살아야 할 명제가 있는 것은
사람이 육체적인 몸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고,
이 몸안에 담고 있는 영혼이나 생명의 가치
(이 가치는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는 온천하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있어야 온 천하도 있기 때문이다) 가
너무 소중하기에 그 영혼이나 생명의 필요에 강한 반응을 보일 동기부여가 있는 것이다.

이 영적인 필요는 일시적이지 않으며, 어리석지도 않으며,
인생을 약화시키지도 않으며, 인생을 헛되게 낭비하지도 않게 한다.
그리고 영적인 필요는 가장 인간적이며, 신앞에 갖추어야 할 사람됨의 도리의 필요이다.
영적인 필요를 제치고, 육체적인 필요나,
정신적인 필요를 아무리 따라가도 사람은
자기자신의 생명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고,
자신의 전체적인 삶의 필요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이렇듯 사람에게 필요한 영적인 요구는 평생 사람을 만드는 작업이며,
결국 신앞에서 자신을 구원할 명제의 필요이다.
사람이 신으로부터 나와서 신에게로 돌아갈 운명이라면,
사람은 자신의 소속감이나, 인정감이나, 성취감이 그안에서 만 영원한 가치가 있으며,
그리고 그 필요안에서 자기인생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신은 사람의 마음깊은 곳에 그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영혼의 욕구를 심어 놓았다.

사람이 신을 떠나 살수 없는 것이
신을 없다고 부정하는 무신론자의 의식속에
신의 의식이 뚜렷이 부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신은 자신에게 부정된 존재이나,
그 신은 엄연히 그 사람의 인생중심에 자리잡고 있어,
신에 대한 그릇된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모든 일에 대해 자신의 판단을 흐리게 하며,
쓸데없고 무익한 일로 자신의 낭비를 만들게 되어,
자신의 진정한 필요를 무시하고 살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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