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인생의 복은 자신의 생활철학에서 온다

시편1편1:1-8

1. 복있는 사람은 악한 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죄인들을 본받지 않으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고
2.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며 그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이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과실을 맺고
그 잎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하는 일마다 다 잘될 것이다.
4.그러나 악인들은 그렇지 않으니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뿐이다.
5.그러므로 악인들이 심판날에 무사하지 못하고 죄인들이 의로운 자들 가운데 서지 못할 것이다.
6. 의로운 사람의 길은 여호와께서 지키시나 악인의 길은 파멸에 이를 것이다.

소문만복래라는 말은 사람이 웃음으로 사는 경우에
그곳에 복스러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믿는 것이다.
인생의 복은 대개 자신의 보는 인생의 관점에 따라 달리 생각해볼수 있지만,
대개 형통하는 삶은 복받은 삶이고, 반대로,
자신의 인생이 역경이나, 고통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의 가시밭길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복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에 더 가치있고 유용하다.
복은 수단보다는 목적에 치중하면 얻어질수 있다.
복은 의에서 오는 것이지 악에서 오지 않는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이가 의로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 화가 임한다.
그리고 의를 행하는 자에게 복이 임한다.

하늘나라는 축복의 나라이며, 지옥은 저주의 나라이다.
인생들이 지금 살고 있는 지상은 사는 과정을 통해서,
장차 영원한 댓가를 받을 것을 바라보며,
인생이 저주와 축복을 함께 경험하는 곳이다.

흔히 행복한 사람은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
자기안에서 자신의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며.
반면에, 곤고한 사람이란 자신안에 갈등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불만과 불안, 불평속에 살고 있다.
이렇듯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그 정체성이란 두가지로 대표적으로 생각하며 사는 데
하나는 자신이 복받은 사람으로 여기고 사는 것이며,
또 하나는 복은 커녕, 자신이 저주받았다고 여기는 채로 살아가는 자이다.
그 정체성이란 언제든지 자신안에서 개선하며 살수 있다.
그러나 그 정체성은 인생전반에 있어서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인생이 누리는 복은 악에서 오지 않고, 의에서 온다.
그 복은 의의 생활철학에서 온다.
즉 복있는 사람은 올바른 생활철학을 갖고 살고, 그의 삶이 올바르게 되니,
그는 자신의 의로운 길에서 인생의 복들(장수, 형통, 자족,덕행,영향력) 을 받게 된다.

사람의 생활철학은 사람이 쓰는 언어에 대한 자신의 개념설정에서 온다.
무슨 말을 듣는가에 따라, 그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습성에 영향을 준다.
자신의 생활태도에 영향을 주는 타인의 말을 잘들어야 한다.
옳은 조언을 찾아가는 것은 지혜자의 일이다.
악한 친구의 꾀임에 빠지거나, 악한 자의 유혹에 이끌리면, 패가망신하기가 일수 이다.
자신이나 남에게 죄를 짓는 자들은 항상 그 마음속에 악에 대한 유혹이 있으며,
죄를 범할 것을 생각한다. 범죄인들은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 뉘우침이 없으면,
계속해서 가중되는 죄를 범한다.
가중범죄에 대해 더 가혹한 형벌이 있다.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을 가리켜,
성경은 그를 어리석은 인생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의 존재를 비웃는 일을 통해
인생들은 점점 악해져 가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자신의 주변의 삶에 악의 조장이나, 죄악의 흔적이나,
어둠세력들(타락한 영들)의 영향들이 나타나
자신을 더럽게 만들어 가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이며,
자신이 그의 엄정한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다.
자신의 인생이 복이 있으려면,
먼저 죄와 악을 행하는 태도나 환경에서 벗어나는 일이 우선이다.

고로 의의 하나님으로부터 인생의 복이 온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야야 할 것이다.
그는 만물을 창조하고 난후에, 인간들을 이땅에 살게 하여,
그의 혜택안에 살도록 하였다.
그는 지금도 세상을 유지하게 하며,
그 세상속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
하늘을 무시하고 역천하는 사람치고 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하늘은 인간이 마땅히 살아야할 가르침을 전하고 있고
그것을 얻으면 그에 댓가를 인생들이 받기 때문이다.
고로 주님의 가르침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복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그의 말씀은 진리이며 생명이며, 소망이 된다.
그래서 그 말씀을 받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복을 낳으며,
그 말씀들이 자신에게 복있는 생활철학을 살게 한다.

하나님의 법은 사람을 유익하게 위해 주어진 것이다.
사람이 그 법을 따르면 살길이 열린다.
생명을 얻게하며,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사람에게 주신 그의 법은 그의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그 법을 통해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보여준다.
사람이 그 법을 지키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이 된다.

하나님의 법인 그의 말씀에는 하나님자신의 정체감이나, 임재하심이 있다.
그의 말씀을 신언으로 들려지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그 말씀을 받은 사람에게 있으며,
그 말씀이 자신의 마음속에 신언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안에 현상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한 숨결과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단계에 이르기 위해, 그저 말씀을 읽거나, 듣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을 품는 것이란 마치 닭이 달걀을 품고
생명의 소중한 탄생을 기다리듯 자신의 마음속에 그 말씀의 임하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즉 자신의 마음속에 말씀의 육체화(성육신화: 말씀의 실현화)를 묵상의과정을 통해
그것을 기대하 며 그 실현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이들은 그 법을 늘 생각하며, 그 법안에서 사는 법을 배운다.
그 법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자신의 삶의 철학으로 삼으며 살때에, 인생이 살아야 길이 보인다.
그 가르침의 진리들을 품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일에 올바른 선택과 지혜로운 결정을 하며 살게 된다.

하나님의 법을 묵상하고, 그것을 따라 사는 이들은 자신들의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며, 자기가 심은 일들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일을 하는 목적이나, 동기나,과정을
주님이 주시는 말씀안에서 형성하기 때문이다.
열매를 거두려면, 뿌려진 씨가 좋고, 그것을 뿌린 밭이 좋은 밭이고,
그것을 잘 가꾸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과 같은 자신을 잘 가꾸어 준다.

무슨일을 해도 건강한 씨처럼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지면,
그것은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리든지, 든든한 사람이 되며,
그리고 자신이 심겨진 환경들을 바꾸는 능력을
말씀의 지혜와 능력을 통해 공급받는다.
그리고 때를 따라 적당한 시기에 자신과 자신이 하는 일을
가꾸고 돌보는 노력을 하면,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일의 결과인 열매가 나타난다.

인생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대로 거둔다는 이치안에서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삶의 열매를 가져온다.
똑같은 나무를 심어도, 열매의 많고 적음은 농사짓는 모든 일의 결과이다.
인생은 이땅에 심겨진 씨이며,나무처럼, 자신을 통해 열매를 거두어 들인다.
그 열매를 거두게 하는 것은 전혀 사람농사를 행하시는 농부의 손에 달려있다.
그 농부는 모든 인생농사에서 유능한 사역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농부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농사가 풍작이 되기도 하고 흉작이 되기도 한다.

인생농사를 짓는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고,
그의 손길을 무시하고 사는 것이 악이다.
그의 길은 인생들이 의의 길에서 발견할수 있다.
인생의 삶안에서 옳음을 좇아가고, 바름을 위해 살려고 하면, 그를 만날수 있다.
하나님이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그의 존재를 거부하고,
그의 가르침과 제시하는 길을 무시한다.
고로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악한 일만 거두게 되는 것은
죄악도 뿌린대로 거두어 지는 것이 인생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악을 행하며,
악인은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며, 주변을 어지럽게 한다.
충실한 알곡이 거두어지고, 열매를 거두는 일이 이루어질때에,
바람에 나는 겨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모든 것을 어지럽게 할 뿐이며,
수고한 만큼 댓가를 가져올수 없는 공허와 요란함과 낭비만이 있을 뿐이다.
이땅에서 선을 이루기는 쉽지 않으나, 악을 행하기는 쉬운 길이다.
악인이 뿌린 어둔 일로 인하여 세상은 점점 어려운 세상이 되어간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통해, 사람들은 악인과 선인의 삶의 차이를 판단하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배운다.

악을 조장하는 인생들은 결국 자신이 저지른 일들의 댓가를 받으며,
자신이 뿌린 악의 열매를 자신이 거두게 되어,
그 사람들에게 그들을 붙들어 매는 구속과 거기에 따르는 형벌의 심판이 있을 뿐이다.
악인이 아무리 선한 척, 백노가 노니는 곳에가 있는 까마귀처럼
아무리 선한 포장으로 자신을 뒤집어 썼어도,
결국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고로 자신이 까마귀에서 백노로 신분변화
(자기갱신, 자기회개, 자기변화)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인생의 열매는 옮고 의로운 길에서 얻을수 있다.
의인의 길은 바른 길이며, 인생이 마땅히 가야할 길이다.
의의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이 바른 길인가?
인생에서 바른 것은 인간다운이의 모습을 가지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 하나님이 될수는 없다.
이 말은 결코 자신스스로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 해결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절대자 하나님앞에서 그를 통해 이땅에 태어났으며,
자신의 가는 인생의 길을 통해, 인생문제를 해결받아야 할 존재이다.

죄인의 길은 죄를 짓는 법범자의 삶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무엇이 죄인가? 죄의 기준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 악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길을 따르는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그 길을 저버리고 살아갈때에, 죄의 길에 들어서기 쉬운 것이다.

의인의 삶은 하나님이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심판에 이르게 하신다.
하나님은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돌보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시간을 두고, 인생들이 행한 일에 보응을 하신다.
이세상에서 받지 못한 인생들은 시간을 넘어가는 영원을 향해,
그들에게 합당한 댓가와 보상을 얻게 하신다.
때로는 의인이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은 시간속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에게
이해할수 없는 삶의 모순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나님은 인생에 대한 평가(심판)와 보응을
결코 이 시간적인 선상에 있는 세상에만 국한해 놓지 않으셨다.
오히려 시간을 넘어가는 영원한 세계에 더 중점을 두고
인생들을 다스리며, 훈련하며, 인도하신다.

악인은 당대에 자신의 생이 끝난다는 생각을 갖고 살기 때문에
죄와 악을 쉽게 행한다.
그러나 그 자신이 저지른 결과가 앞으로 자신이 겪어야 할 영원한 장래에
보응받는 형벌을 생각하면,
감히 그 죄와 악을 안고 그대로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