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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35-40
35. 그들중에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36. “선생님, 모세의 법중에 가장 큰 계명은 어느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37.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38. “이것이 제일 중요한 계명이다.
39. 그 다음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40.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은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님의 교훈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교훈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자녀로 삶을 살아가는 중심계명이다. 이 계명은 성경의 전체의 가르침을 반영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의 삶의 계율이다.
사랑의 계명은 하나님과 사람을 잇는 가교의 계명이며, 인간사회를 구원하는 신의 의지의 반영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사람을 사랑하사 그들로 하여금 그의 사랑안에서 새롭게 그들의 잃어버린 지위와 권세를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사랑의 계명은 그의 삶의 정신에서 나오는 교훈이다. 그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사랑의 정신으로 그가 수행하신 사명을 감당하셨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가를 보면 알수 있다. 교회공동체나 신앙적인 모임안에 이 사랑이 존재하고 있을 때에 그곳은 그의 나라의 실현을 이루어 가는 것이며, 인간관계의 이상적인 분위기를 세울수 있을 것이다.
율법학자는 율법을 정통하였던 사람들로 그들은 항상 율법을 생각하며, 연구하며,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율법의 핵심의 의미를 소홀히 하여, 그법에 매여 법으로 이웃의 모든 행위를 판단하는 역활을 하였다. 이 본문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율법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 학자들이 율법의 눈으로 인류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그리스도를 시험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라고 할수 있다.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그들의 모든 생활이 근간이 되는 율법을 통해서만 자신들의 종교와 윤리의 기준을 세운다고 생각한다. 고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은 자신들의 삶의 기준을 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율법을 실천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 율법의 본질적인 진위를 모르고 피상적인 이해와 형식적인 법적용에 머물러 있다. 고로 그들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의 성품과 속성의 근저는 그 사랑하심에 있다. 그는 사람을 향해 그 사랑의 화신으로서 사람에게 다가 오신다.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인간구원의 근간을 이루며, 하나님의 자기의지의 표상으로 인간이 하나님에게 다가갈수 있는 그의 성품이며, 그의 속성의 본체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땅에 오셨다. 그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길을 보여주셨다. 그의 생애 그 자체는 하나님 사랑의 화신으로서 사셨으며, 그의 삶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향한 지극한 삶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시고, 그 길을 보여주셨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나 삶의 표현방식은 하나님 사랑에 도달하면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갖게 되며, 가장 고상한 사람의 성품에 도달한다. 사람이 갖고 있는 영이나 혼이나, 마음이나 정신이나 생각에 있어, 하나님사랑하는 표현이 나타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형상과 그의 선하신 뜻이 실현되는 것이다.
인생이 힘쓰고 애써야 할 일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알고, 터득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인간구원이나 승리의 보장을 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가르침이나 생활이나, 삶의 흔적들이 오직 그 계명 즉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의지와 정신의 실현에 있으셨다.
주님은 강조하신다. 하나님 사랑하는 계명이 제일 근본이 되며 사람을 사람답게 하며, 가장 고귀한 존재로서의 사람을 세우는 것임을 알려주신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그의 성품을 부여받은 존재로 이세상에 태어났으며,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속에는 자신 스스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이나 표본을 따르지 않고 자기 중심의 세계를 추구하려는 시도에 의해 그 하나님의 수준을 벗어나, 어리석은 사람의 그릇된 길에서 방황하며, 자기혼란안에 빠져 버렸다.
사람이 원래 하나님이 만드시고 원하시는 위치로 돌아가는 길은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는 의지와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의 생활이나 삶의 평생의 과정이나 흔적들은 그 계명의 실천과 그 실천안에 있는 인간의 자기사명과 자기 수행을 진행할 때에 사람은 자기가 가야 할 바른 길을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웃도 그의 모습안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아, 그의 돌보심과 주관하심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웃의 모습안에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의 이메지를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며, 이웃을 바라보는 눈이 사랑의 하나님의 관점을 통해 바라볼때에 그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랑의 하나님의 대상이 되며, 이웃도 바로 그의 사랑의 대상인 것이다.
이웃의 모습안에서 자신과 비슷하며 자신을 반영하는 속성이나 자신과 똑같은 인간의 성품을 가진 사람들의 형상을 본다. 고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태도의 연장으로 바라보게 되며, 자신을 사랑하고 애착하듯, 이웃을 향한 자애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웃은 바로 나 자신의 연결고리로 이어진 하나님의 지으신 창조세계안에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안에서 이웃은 나 자신과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 공동운명체의 부분이며, 함께 그의 형상을 받고 나눈 혈연이며, 글로발 가족의 한 일원 인 것이다. 고로 이웃사랑의 범위나 실천적인 영향력의 대상은 민족이나 국가의 테두리를 벗어나 확대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사회를 향한 뜻과 의지의 실현이 율법을 통해 계시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주시는 율법은 인간의 삶을 보호하며, 인간사회안의 사람들사이의 상호 합리적인 관계와 질서있는 생활의 기준의 법으로 제시되며, 그 율법의 중심에는 십계명이 있다. 그 십계명의 정신에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율법을 받은 인간사회는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사회를 향하여 계속하여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세우신 법을 지키도록 하셨다.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사회에 알리시며,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인도를 받는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은 그의 백성들을 돌보며 인도하시는 큰 테두리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계명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사랑하는 것과 이웃사랑하는 것을 배웠다. 개인의 역사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각자 개인의 삶을 통해서 그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을 원하신다.
말라기 4: 1-6
말라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무관심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잘못된 성전예배와 성도의 의무에 대해해서 언급하며,
그리고 하나님께 잘못된 태도를 갖고 있는 죄를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서 노예생활을 한 이후에
그들의 죄는 주로 영적인 게으름이나 혹은 안일하게 편하게 믿는 편리주의입니다.
이런 불신안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하였습니다.
이 예언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에 있는 계약관계에서 오는 축복에 대해
백성들이 하나님앞에서 계약 충실을 지킬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불성실한 신앙생활에 대해 말라기는 백성들의 사고방식을 새롭게하며,
그들의 잃어버린 소망을 다시 세우게하며,
계약백성으로서의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 절에 하나님의 날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정하시는 날은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인생의 시간도 심판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인생에게는 또한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2에 지금은 구원의 때요, 은혜받을 만한 때요,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이 시작하는 때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나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다고 합니다.
2절에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백성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이름을 경외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경이러움과 두려움을 갖으며,
그리고 순종하는 자세를 통해 지속적인 믿음안에서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들에게 치료와 회복이 일어나며, 생활에 활력을 얻습니다.
2절에 그들에게 의의 태양에 대해 언급합니다.
페르샤에서는 날개가 달린 태양신을 숭배하였다.
그들은 축복과 보호를 주는 신으로 생각합니다.
의의 태양은 주님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 23:5,6/ 다윗의 후손가운데에 한 의로운 자를 일으킬 것이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불러질 것이다.
시편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태양이시요 방패이시며 우리에게 은혜와 영광을 주시고
올바르게 사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는 분이십니다.
의의 태양이 내안에 떠오르게 하려면
즉 자신의 마음이나 인생안에 의의 태양이신 주님이 높임을 받고
들림을 받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안에서 의의 태양이 떠올라야 합니다.
그러러면 예수님을 믿되 이렇게 믿는 것입니다.
1. 선택의 기준에 있어서 /
마태 6: 24, "사람이 두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우선순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예수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누가 복음14: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3. 주님과의 관계성립에 있어서는 /
요한 1: 12, "영접하는 자 그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4. 주님과의 교제에 대해서는 /요한 15:4, 포도나무비유에서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고 합니다.
5. 주님을 믿되 그분을 늘 바라보는 법칙으로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 2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고 합니다.
6. 자신의 신앙의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
마가복음 8: 3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합니다.
7. 마지막으로 그분을 깊이 생각하는 묵상의 축복을 통해
의의 태양이신 주님이 내안에서와 생활을 통해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3:1 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치유의 광선이란 말은 빛의 유익에 대한 것으로,
태양의 영향력으로 만물에 생동함이 오며, 활기참이 옵니다.
태양의 광선은 비쳐주는 곳마다, 살아 숨을 쉬며, 활동을 하며 생기가 있게 됩니다.
주님의 치유의 사역을 받은 사람의 상태는
본문의 송아지처럼우리안에 갇혀있던 송아지가 넓은 열린 들에 내놓아
막 뛰어다니듯이 축복이 옵니다. 그 송아지에게 자유와 만족의 기쁨속에 뛰어다닙니다.
그것은 자유롭게 들판에 나다닐수 있다는 .자유의 행복입니다.
현재 자신의 상태가 즐겁습니다.
그리고 들판에 나가 마음껏 풀을 뜨고 다닐수 있는
미래에 대한 만족감과 거기에 대한 기대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 5, "그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합니다.
그는 생명의 빛입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앞에 죽은 목숨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빛의 역활은 어두움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 빛은 어둠속에 있는 나를 치료하는 광선입니다.
그리고 나를 새롭게 하는 광선이며, 구원의 빛입니다.
예수님이 내안에 오시기 전에는 우리는 갈길을 알지 못하는 어둠에 처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빛입니다.
그분은 영원한 진리를 갖고 와서 나에게 인생의 가야할 길을 알려주셨으며,
모든 눌림이나 억압에서 인간을 자신을 자유하게 하는 진리를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 6, "어두운데서 빛이 비치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아직도 어둠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이렇습니다.
고린도후서 4: 4, "그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예수님은 모든 인생에 대해 소망의 빛으로 다가 오십니다.
절망속에 있는 인생들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소경 바디매오은 거지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남에게 구걸하며, 구차하게 살던 그에게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그의 소경을 고쳐주어, 바디매오는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요한복음 9: 5, "내가 이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나면서 소경이 된 사람에게 실로암못가에서 씻으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1: 9-10, "낮이 열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사람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
이사야 57: 19, "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두 고칠 것이다"라고 합니다.
2절의 본문에 나오는 광선은 날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시편91:1, 4, 날개아래에 모으는 닭이 날개로 그 새끼를 모으듯이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아 주십니다.
이사야 30:26, "여호와께서 자기백성의 상처를 싸매시고
고치시는 날에 달이 해처럼 밝을 것이며, 햇빛은 7배나
더 밝아 7일 동안의 광량에 맞먹는 빛을 낼 것이다."
이사야 52:5,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의 질병에서부터 마음의 병을 고치며,
그리고 육체의 병도 고치십니다. 더더욱 망가진 인간성을 회복합니다.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며,
자신 자신이 건강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회복이 되어,기쁘고 행복한 생활을 하게 합니다.
주님의 치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또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치료의 축복이 나타납니다.
성도가 주님의 치유를 받으려면
믿음의 용어에, 춧쯔파라는 말은 이디쉬어의 속어로서,
‘강심장, 철면피’ 라는 뜻이다.
“어떤 행동에 있어서 극단적인 확신”을 의미합니다.
그 믿음이 흔들림이 없는 확신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8: 43- 48에 혈루증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낫는 다는 믿음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그 여자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인하여 부정하였으며,
그래서 예수님을 만지는 것은 율법을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은밀히 만지기로 작정하고, 그 여자는 치유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있는 질병은 크게 네가지 질병의 유형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 질병들을 치유하십니다.
1)영의 질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죄로 인해 영혼이 병이듭니다.
영의 치유는 회개를 통해 치유가 이루어 집니다.
죄에 대한 회개는 영혼의 치유를 가져옵니다.
주님은 여러곳에서 사람들을 치유하실때에 동시에 죄에 대한 용서를 선포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중풍병자가 친구 4사람에 의해 들려왔을때에,
주님은 네 죄사함을 받았으니라 선포하셨습니다.
2)감정의 질병이 있습니다.
이 질병은 때로는 영적인 병을 일으키기도 하며, 또한 육체적인 질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감정적인 상처로 인하여 발생합니다.
예를 들면, 분노로 인하여 상한 감정과 정서적인 문제를 겪습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원수를 용서함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습니다.
어떤 여인이 늘 몸에 병이 있는데,
병원에 가면 원인을 모르는데, 기독교 상담가에서 상담을 받다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오래전에 그여인이 이웃집여인에게 깊은 상처를 받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에 붙잡혀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그것을 용서해주자. 그 병에서 고쳐 졌습니다.
누가복음7: 44-50에,
시몬의 집에 들어가신 예수님에게 발에 향유를 부으며, 머리로 씻엇습니다.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주님에 대한 사랑은 자신을 새롭게 하는 치유의 능력이 됩니다.
그녀의 상처받은 과거와 자아가 고쳐져 새로와 졌습니다.
주님을 통한 자신에 대한 치유은 영적인 건강과 생활의 회복입니다.
또한 하나님앞에서 의를 회복케하는 능력을 갖었습니다.
의외로 신앙인들에게 우울증의 현상들이 있습니다.
생활에서 오는 염려, 불안이나 근심이 신앙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며,
웬지 모르게 자신안에 병든것처럼 마음의 슬픔에 빠지는 일입니다.
고로, 영혼의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요한복음17: 13 주님의 기쁨이 저희 안에 있게 기도하십니다.
내가 주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을 피하여 우물가에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여인은 예수님을 통해
그녀는 놀라운 영혼의 기쁨을 받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3)육체적인 질병입니다.
흔히 말하는 몸의 병으로 질병의 원인이나 혹은 사고로 병이 발생합니다.
의사들은 육체적 질병의 50 %가 내적인 스트레스와 긴장에 의해 생긴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4:24에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자, 귀신들린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를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몸의 질병에 대해 주님에게 치유를 위해 간청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병의 치유는 지금도 일어남을 믿습니다.
4)귀신들의 속박에서 오는 질병이 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갇힌 영혼들을 구출하는사역을 해야 합니다.
귀신의 영향에서 오는 질병으로 극단적인 정신적인 병들이 해당됩니다.
이런 병에 대한 치유는 능력치유입니다.
귀신의 세력을 물리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그 세력을 물리칠 능력을 주셨습니다.
누가 복음9:1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주님은 그들에게 병을 고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니라 하시니라" 고 기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과 그의 하수인들인 귀신들의 인간을 괴롭히는 것을 없애기 위해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 일서 3:8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은 마뒤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주님의 치유를 통해 사람들은 영적으로 회복되고,
망가진 인생들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육체적 치유뿐아니라 또한 영적인 치유를 얻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영적인 자유와 행복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는 은혜입니다.
결론.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여러분에게
주님은 여러분의 마음과 생활속에서 의의 태양으로 떠올라,
날마다 치료의 광선을 발하십니다.
여러분은 우리안에 갖혀있었던 송아지가 그 얽매임에서 풀어나 자유를 얻어 기뻐하는 것처럼 ,
날마다 여러분에게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치료와 마음의 치료
그리고 몸의 치료를 통해 자유와 축복을 받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사야 31: 1-9 |
한인이민자들은 이민의 생활의 안정을 추구한다.
그들의 이민의 삶은 한마디로 모판에 갖다심은 볍씨들과 같이
한민족으로서 동질성의 하나의 문화의 토양에서 자라난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하는 이질적인 문화안에서 총력을 다해, 성공적인 이민 생활을 기대하며
그들의 삶의 뿌리를 새로운 문화적인 토양에서 내리고,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인 구조들이 공존하는 생활현장에 자신들의 정체감을 바로 알고,
그 정체감안에서, 자신들의 생존의 터전이 내려지기를 기대한다.
영적인 욕구충족:
성도들 자신이 영적인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영적인 바람은 자신들의 영성이 뛰어나기를 바람.
목회자가 어떻게 성도들의 영적인 충족을 채월줄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영적인 욕구는 그들의 정체감과의 관련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아상의 정립이나,
가치관 정립그리고 자기실현에 대한 기대와 목표그리고 구체적인 단계별 연습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반복적인 영적인 생활을 통해, 자기변화를 이루어가면,
영적인 욕구의 만족을 얻으며, 그안에서 자기정체감을 갖기를 원하며,
자기안정에 기여되기를바란다.
내면의 변화기대:
자신들이 사는 삶의 현장에 부딪치는 갖가지 문제중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이 변화하는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다.
내면의 변화는 가치관과 영적인 감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내면의 변화는 내면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과,
자신의 생각패턴이나 가치관의 시스템의 조직적인 교육이나
변화를 추구하는 상담의 단계를 거쳐야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그들에 대한 목회는 그들이 당면하는 가족간의 관계와
이민생활의 여러가지 이슈에 대한 조언이나,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의 내면에 있는 정서적인 것이나
문화적인 스트레스에 대한 것들을 다루어 내면의 안정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한인문화의 정립
미국과 한국, 동서양의 가치관의 중립지대에서 한인만이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다문화권이면서, 주류문화에 대한 부속문화권적인 현상아래에 머물러 있다.
미국문화의 거대한 영향권안에서 한국인의 정서와
생활양식의 전통을 따르는 이율배반적인 구조안에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이중적인 구조안에서의 자기들 나름의 문화적인 토양을 세워가도록
교회와 그의 사역들은 그들이 함께 만나며, 어울리며,
독특한 자신들의 표현을 할 수 있는 문화의 장으로서의 역활이나
이민사회나 문화양식에 구심점으로서 기여를 바라는
그들의 기대를 이끌어 주는 주도적인 위치가 되도록 활동의 목표를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생활의 향상: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의 모든 면에 있어서,
전진과 성장을 통해 개선되어지기를 기대한다. 조언을 얻고자 하는 바램:
그들은 인생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상담과 지혜를 얻고자 기대한다.
영적감동을 받고자 하는 목마름: 자신들을 육체적인 편함보다는 영적인 도전을 받기를 원한다.
새로운 메시지를 얻으려는 기대감: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삶의 철학이나
인생의 변치않는 원리를 갖고 적용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그들이 터득한 영과 육의 이중구조안에서의 영적 우선주의의 삶과
미국문화와 한인전통의 통합적인 구조안에서
이민자로서의 건강한 생활이 형성되어가는 것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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