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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3:1-2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말은 인생의 입에서 가장 자주 나와야 할 말이다.
인생은 언어사용의 존재이다. 무슨 말을 사용하는 가에 따라,
그사람의 인생과 삶을 이야기할수 있다.
인간이 신을 말하며, 그분을 찬양하며,
그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존귀하게 하는 것은
신이 인간을 언어적 존재로 세우시고,
그 언어를 통해 인간과 대화하기를 원하셨다.
원래 인간의 언어적 구조인 구음이 하나였다.
바벨탑까지 쌓아 놓은 인간의 교만과 자위권남용으로 인하여,
신은 인간의 언어를 헤쳐놓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언어는 하나로 통하며,
다양한 인종의 언어라 할지라도,
인간은 누구나 공통의 구조적인 언어시스템을 소유하고 있으며,
인간의 언어적 시스템이
신과의 대화를 통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어질수 있다.
신은 인생을 지으시고 기뻐하셨다.
그는 인생들이 신을 향해,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허용하였으나,
원래 신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알려진 신은
그의 이름을 통해, 자신의 성품이나 본질을 계시한다.
신의 가장 신다운 이름은 스스로 있는자,즉 자존자이다.
신이 스스로 계시는 분이다.
누구의 필요나, 동기가 아니라, 신자신이 스스로 존재하신다.
모든 만물의 존재나 모든 인간존재의 원인은 바로 신에게 있다.
인간의 존재의 근원이 신에게서 오므로,
신의 이름은 인간의 존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신의 이름이 그의 성품과 본질을 보여주므로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살펴볼수 있다.
신의 이름이 다양함은 인간의 현실과 경험세계에 대해,
어느 상황이나, 형편에라도 인간을 대면할수 있으며,
인간이 경험하는 현실로 신이 존재할수 있다는 말이다.
신의 이름은 기묘자라, 그가 행하시는 일은 인간이 다 이해할수 없고,
다만, 추측하고, 상상할 뿐이나,
신의 역사는 확실한 현실이며, 신의 오묘한 세계이다.
인간이 풀수 없는 수수께끼나, 해결할수 없는 문제는 신의 손안에서 해결된다.
신의 이름은 모사라, 아무리 인간이 지혜를 발휘하고,
재간을 부리고, 전략을 세울지라도,
신의 지혜나 전략에는 미치지 못하며,
진정 지혜를 구하고, 모략을 구하며, 지략을 구하려면,
신의 지혜의 세계을 이해해야하며,
신의 지혜의 힘을 빌어야 할 것이다.
신의 이름은 상담가이다.
그는 영원한 카운셀러이다.
그가 모든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풀어주는 선생이며,
난제를 극복할 조언을 줄수 있는 조언자이다.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나, 자신에 대한 깊은 무의식의 세계나,
무궁무진한 두뇌의 세계안에도,
신의 손길이 미쳐있고,
인간이 개발하지 못한 곳에 신의 지혜가 널려있다.
이지혜 또한 그를 상담가로 모신 인생이 발견할 것이다.
신의 이름은 전능자라,
그는 천지를 만들고, 온 만물을 유지하며,
관리하는 전능한 능력과 권세를 갖고 있다.
모든 힘이나, 권세는 그에게서 나온다.
그가 할수 있는 하나님으로 인간을 일하게 하시며,
인간에게 모든 힘을 공급한다.
호흡하는 자마다 그신의 호흡케 하는 힘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신의 기운이 임하여, 인생이 호흡하며, 힘을 얻고 삶을 살아간다.
그 신이 존재하기에
인생은 존재하고 활동한다. 그리고 그 분을 찬양한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신을 두려워 하며,그분의 존재를 인정하며 사는 자에게는 인생의 복이 있다.
복의 근본은 만물을 있게 한 신에게 있으며,
그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이시다.
그는 신을 모시고 살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신의 자신에게 내려준 분복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신이 원하는 뜻을 이루기를 원하고 있다.
신이 명한 바를 크게 기뻐하며,
그신의 명령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렇듯이 그 의인은 신을 두려워 하며,
신이 정한 인생의 이치를 무시하지 않고, 하늘을 거역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의인의 삶을 통해 그자손들에게도 복이 된다.
좋은 부모가 좋은 인생을 사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들, 정신적인것, 물질적인 것, 생활적인 것 등을 자녀들이 받는다.
그 자녀들은 부모들이 쌓아놓은 귀한 것들을 더 발전시켜,
세상에 더 강한자, 혹은 영향을 주는 자로 살아가게 된다.
악인의 자손들보다 의인의 자손들이 더 잘되어 가는 것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혹은 개인의 족보사를 통해, 알수 있다
(미국의 두가문의 이야기: 조나단 에드워드의 가문의 자손들중 많은 학자, 정치가, 문벌이 좋은 자손들이 나왔으나, 당시에 도둑질을 하던 자의 자손의 가문에는 강도, 살인, 도둑, 사회적인 부랑아등이 여러세대를 두고 나왔다)
환영받는가운데, 온가족이 기다리는 축복속에 태어난 아이는 행복할 것이다.
좋은 환경가운데에서 자란 사람은 자신에게 복이다.
부모들이 좋은 교육을 해주고, 자기가 발전할 수 있는 여건속에서 살게되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서도 자신을 잘돌보지 않고, 게으르다든지,
마음을 못되게 먹고 살게되면,
자신의 인생이 악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며,
결국에는 망신당하는인생으로 바꾸어 질수 있다.
바다밑 흙속에 묻혀있는 조개속에 진주같이
힘들고 어려운 생활현실에서 굴하지 않고,
부지런히 자신을 갈고 닦아, 자수성가하거나,
오히려 인생반전의 산 증거로 어려운 가운데에서
자신의 삶을 활짝 펼친 사람들의 삶들도 있으며,
그들 가운데에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도 오히려 의연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돕는 인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같은 인생의 동료로서 그들에게 더 많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민심이 천심이다 라는 말처럼,
선거때마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투표를 할 후보들을 생각한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나온다. 그것처럼
인심도 천심이다. 사람이 옳게 마음먹고 살면 옳은 일이 생기고,
악한 마음을 먹고 살면 악하고, 안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며,
인생들 자신이 마음을 먹은대로 자신들의 생각이나 비전을 가꾸고 일구어 갈 것이며,
그것이 자신의 삶을 만들것이다.
결국에는 자신이 만들어 온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인생의 주인에게 보상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운명의 행운이 인간의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행운을 기대하며, 토정비결을 보며, 그날의 운수를 쳐다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향하여, 잘되기를 바라지만,
실상은 인간의 삶은 신과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신이 인생들에게 일정한 분복을 주면,
그것은 마치 재능이나 재물을 맡는 자처럼 자기관리를 잘하여,
자신이 신으로부터 받은 그것을 통해 더 많이 남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에 까지 도움을 주며,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복이며, 자신의 행복이다.
인생은 울면서 왔다가 생활하면서,
울게 되는 현실에, 찌들려 지내다, 한번 얼굴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인생을 활짝 펴보지 못하며 지내다,
생활의 제한이나, 염려에 울다가 지쳐,
한없는 인생의 한을 남기고, 애처로운 가족들의 통곡속에서 생을 마감하다면,
참으로 슬픈인생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절호의 기회로 알고,
신의 명하는 바를 이루며,
어두움가운데에서 빛이 비쳐지는 역경속에서
오히려 생산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들의 삶은 자신에게 축복이 되며,
자손에게 유익이 되며,
또한 그사람들의 삶은 명예로와 질것이다.
영성개발의 심리에 대한 책으로,
영성과 심리학을 접목하여,
영적구도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인성개발의 지침으로
영적원리에 대한 심리적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영성생활이란 하나님의 내면의 부르심에 대해 응답하는 사람들의 모든 활동이나,
자기개발의 추구이다. 사람은 신비한 경험으로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유한한 인생이 무한하신 하나님과의 접촉을 통한 교류에 의해 영적생활을 인도 받는 것이다.
크리스챤의 영적생활에는 하나님자신을 알아가는 것과,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삶을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
그리고 하나님의 성육화된 말씀을 통한 깨달음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다.
인간의 영성개발은 인간발달에 있어,
영적인 가치들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해가는 즉 되어가는 존재에 대한 자기발달이해인것이다.
그리스도안에서 자유롭게 된 자신이 과거의 잘못으로 벗어나며,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해가는 영적인 단계를 밟아 가는 것이다.
성장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정화되어짐과, 조명되어짐과,
그리고 일치되어 가는 과정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매일의 자기성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라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영성개발은 인간 발달의 단계에서
생겨나는 중요한 사건이나, 경향들을 통해, 형성되어진다.
어린시절에는 신뢰하는 것을 배우고, 자율성과 주도적인 능력을 개발하는 특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실패하게 될때에,
다음단계에 가서, 감정적인 불안정이나, 혹은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게 된다.
그 다음단계에는 독립적인 인격으로 발전하는 단계로,
이 단계에서 실패하면, 대인관계에서 부끄러움을 자주 느끼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쉽게 의심이 생긴다.
그래서 나중에 무가치한 것들이나, 두려움 같은 것을 자주 느낀다.
영성개발에도, 이런 경향들에 영향을 받아,
영적인 성장에 죄책감에 시달리며,
정신적인 자기 파괴적인 인격소질을 통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나 어린시절에 건강한 어린아이로 자라난 경우는
창의성이나, 개인의 인격성이 발달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다음세대에 대한 책임의식과 관용심으로 발전하게 된다. 물론 자신의 영적인 성장도 성숙한 인격형성과 함께 지속적인 건강한 자기발달을 가져온다.
아이들이 경쟁하는 상태에 빠지거나,
자신의 소질이나, 필요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상태에
(자신의 개성에 대한 확신감을 갖게하지 못하는 경우) 놓여지며, 열등감에 시달리게 된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지나친 스포츠나 아카데믹한 성취에 자기가 내몰리게 될때에 치우친 자기발달에 빠지게 된다.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나중에 그들의 영적인 추구의 생활에도, 조화롭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치우친 영성의 특성을 갖기 쉽다 (이성의 역활이 약화된 신비주의중심, 희생과복종등 의지적이지 않은 기복주의중심, 전혀 의지와 감성에 영향을 주지못하는 이성중심적인 신앙관등이다.
반면에 건전한 영성은 지,정,의지적인 조화를 가진 성서적인 신앙관)
복잡한 문화와 사회구조적인 시스템에서,
청소년들은 전반적으로 건강한 영적인 발달을 이루는 것은
어린 시절에서 성년으로 자라는 과정에 중요하다.
청소년시기에 도달해야 하는 인간의 특질은 사회안에서
자신의 독립심이나, 자기를 스스로 돕는 능력이나,
자기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기에 제대로 인격이 발달되지 않으면,
그들은 방향감각상실, 오락에 빠지는 자기태만,
삶의 권태나, 자기증오나 죄책감, 그리고 자기파기적인 경향에 빠지기 쉽다.
에릭슨은 청소년의 중대한 갈등은 자기정체성과 자기역활혼돈이라고 한다.
이 청소년시기에 처음과 끝이 모두 영동적인 영적이고
종교적인 발달을 이룰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그 시기는 종교적인 전환이나, 거듭남이나, 자기변화를 통해 개종을 이루기 쉽다. 앞으로의 장년의 영성의 기반을 이루는 기간이다.
반면에, 이시기는 종교적으로 건전하게 발달하지 않으면
(이것은 어느 특정한 종교적인 이해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안에 있는 종교성으로서의 일반적인 성품을 이야기하는 것임) ,
영적인 무관심에 빠지기도 하며, 비도덕적인 일에 관심을 갖고,
더나아가 비양심적인 악한 행위에 빠지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그런 경우에 종교적인 무관심이나, 반 종교적인 사상에 심취하기도 한다.
청소년시기에, 처음부터 천천히 진행되어가면서 도달하는 마지막단계까지 발전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친밀함이다.
이것은 앞으로 성년인생의 안정된 서로 상부상조하는 인간관계로 발전하여,
그 친밀함을 통해 보다 강화된 사회성을 갖게 된다.
여기에서 친밀함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소외적인 성품이 되어,
모든 인간관계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며,
이성을 사귀는것이나, 결혼하는 연령도 늦어지게 된다.
성적인 친밀감은 모든 장년의 생활에 중요한 부분으로 영향을 미친다.
낭만적인 사랑에 치나친 추구는 자칫, 성적인 사랑의 만족을 구하는 경향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그럴때에는 정신적인 사랑을 구하며,
성적인 것만 추구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이성간에 서로 정서에 호소하는 친밀함을 구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비정서적인 성적인 추구에 빠져,
비정상적인 성적관계(난잡한 성행위, 동성애, 음란적인 성적인 추구나 방종)를 추구하게 된다.
친밀함은 젊은 성년들에게 중요한 품성이며, 관심의 대상이다.
이 친밀함은 영적인 발달에도 영향을 준다.
다른 사람과의 친밀함을 추구하는 것은 독자적인 개성있는 인격으로서,
다른 사람과의 보다 깊고, 넓은 인간관계를 가질수 있는데,
이것이, 영적인 세계에서 신을 진지하게 추구하며,
신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밀도있게 성장하며,
폭넓은 영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갖게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영성개발의 영적인 깊은 단계에 까지 이르게 한다.
Groeschel, Bebedict J. "Spiritual Passages: the Psychology of Spiritual Development" 중에서
해마다 미국의 명절인 추수감사절때마다, |
시편 109편 1-4
오 하나님, 내 마음을 정하였나이다. 나의 영광과 함께 당신을 기뻐하며, 노래하기로,
여기 시편의 시인은 자신이 고백하는
신에 대한 믿음과 그분을 높이고저하는 일편담심의 마음이 표현되어지고 있다.
이렇듯이 신앞에서 인간이 소중한 것은
그가 바로 인간이 신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신에 대한 변함이 없는 생각과 마음을 갖는 것이다.
신은 변함이 없다. 그가 말씀하신 것은 이루어지며,
그가 생각하신 바는 실현되어진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조석으로 변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며, 태도이다.
때로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가지 관점을 갖지 않고,
너무 자주 인간의 생각과 태도가 바뀐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나, 자신에 대한 생각에서도, 변화무쌍한 마음이다.
그런데 여기 시인은 그는 변치 않는 마음으로
신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다해 그분을 섬기고, 찬양하는 태도로 일관하리라,
자신의 마음가짐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영화스러움이나,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신을 향한 정성과 열정을 쏟아,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성호를 높이리라고
신에 대해 자신의 감사의 고백을 노래하고 있다.
이것이 자신의 삶을 통하여, 어떠한 경우에서든 변치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한가지 관점,
즉 신에 대한 자신의 변치않는 충정과 열정의 생각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마음 먹은 것이 너무 자주 바뀌어 지는 경험을 한다.
좋은 의도로 뜻을 세우고, 그것을 평생실천의 동기부여로 세우고 나갈때에,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뜻에 대해,
딴지를 걸면, 쉽게 그것을 포기하기 쉬어진다.
그리고 주변의 환경이나 상황이 자신의 옳은 뜻을 관철하지 못하게 할때에,
쉽게 좌절에 빠지거나,
복잡한 생각에 의해 혼란된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신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 중에 신을 모시고 섬기고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으나,
그상황으로 인하여, 자신의 믿음이나, 생활태도를 점검할수 있게 된다.
내가 믿고 추진하는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다림의 태도가 필요할때에, 자신에게 다짐할 필요가 있다.
신을 믿고 따르다 실망할때에 좌절하지 말고,
그분을 계속따르는 것은 그가 신실한 분이며,
그의 자비는 하늘보다 높기에, 그분의 생각을 측량할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은 때로는 신을 섬기는 사람자신의 믿음과 태도를 테스트를 하기를 원하기도 하고,
어느 상황에서도 신자신에 대한 변치않는 일관된 태도의 사람의 마음을 기뻐한다.
사람이 지속적으로 신을 따라감은 그의 자비로움이
사람의 생각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무한한 요소가 있어,
그의 무한한 자비는 인간을 인도하기에 충만한 그의 마음을 담고있다.
신의자비는 하늘들보다 드높다.
신의 자비는 온우주에 편만하며, 충만함이 넘침을 보여주고 있다.
신의 자비는 우주의 구석구석을 두루 비쳐주며,
온우주에 모든 곳에 미치고 있으며,
그의 사랑의 손길은 우주의 조화와 질서가운데에, 뼏쳐있다.
그가 그의 손길로 우주를 붙들고 있으므로,
우주는 안전하게 항해하며, 우주안에 있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삶을 살수 있다.
신의 자비가 한순간이라도 미치지 않는다면,
이세계는 순식간에 혼돈과 무질서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신의 자비가 멈추는 때가 있음을 신의 말씀이 계시하고 있다.
그때에는 인간세계에 대한 신의 심판이 행해지는 때이다.
그때는 천체도, 온 세계도, 혼란속에 머물것이다.
신의 자비는 잠시 우주에서 심판으로 대처될 것이다.
그것은 잠깐이지만,그분의 자비는 영원하다.
그의 진리는 하늘 구름에 닿는다.
이것은 신에 대한 진실의 말씀이 결국,
사람으로 하여금 신에게 도달케하는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지는 변할수 있음을 그분의 말씀(성경)에서 알려주고 있듯이,
온 우주가 변하는 순간에도,
그분의 하신 말씀은 변함이 없이 그분의 계획과 생각을 이룰것이며,
그분의 뜻이 결국 영원히 세워 질 것이다.
그분의 말씀이 하늘 구름에 닿음은
그분의 뜻이 그분의 말씀안에서 다 이루어짐을 암시하고 있다.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인간이 사는 이세상안에도 결국 온전히 이루어 질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신의 말씀을 의존하는 근거인 것이다.
시편 107편8-10
신에게 감사하는 것은 그가 선하시며, 자비로우시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들을 보실때에, 자비와 선하심으로 살피신다.
그리고 엄마가 자녀들을 돌보듯 하는 것 이상으로 인생들을 돌보신다.
인생의 광야길에서 험악한 일을 만나,
어찌할줄 몰라 할때에,
하늘에 계신 그분은 은밀하게 그 인생들을 도우신다.
그분은 선하시고 착하신 분이시다.
뭇 인생들에게 무시당하지만, 그는 끝까지 참으시고,
그 인생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오늘도 아침에 눈을 떠 밖을 바라보면,
환하게 비쳐오는 그 따스한 햇빛속에서 신의 선하심과 자비를 맛본다.
모든 만물을 향해 골고루 비쳐주는 햇빛은 누가 만드셨나?
저절로 그해가 생겨서,
이지구를 비추게 하고 있는가?
햇빛의 온기와 그 에너지를 힘입지 않고,
흑암가운데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따스한 봄날의 햇빛은 더욱 인생들을 사랑으로 감싸고 있다.
인생들이 그신을 향해 감사할 것은
인생들을 내신이가 그이기에,
그가 계시므로 내가 있게 되었으므로,
그의 존재하심을 감사드린다.
그는 그가 행하신 많은 일들이
우리인생들의 앞서 이루어진 것들을 인하여 감사드린다.
드높은 창공에 펼쳐진 아름다운 구름송이를 바라볼때마다,
창조주의 솜씨를 노래한다.
구름넘어 있는 신비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신의 신비로움과 그의 세계의 오묘함에 놀라,
그분의 영화로움에 덩달아,
우리 인생들도, 그의 영광가운데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으니,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의 영광안에 있는 인생의 광명은
아무리 험한골짝같은 인생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그분이 나의 인생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손길을 느끼면,
그 모든 어려움도 감히 감당할수 있음은
그의 함께하심과 인도하심을 감사드린다.
그는 지금도 사랑의 눈으로 인생들을 바라보면서,
신을 구하는 심령들을 바라보며 만족해 하신다.
그 많은 인생들 가운데에,
신을 구하는 구도자들의 심령을 바라보는 기쁨은
한 영혼의 신에게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향해,
그의 보좌에 온주변에 있는 천상의 존재들과 함께 즐거워 하신다.
그 가련하고 배고픈 심령들을 바라보시면서,
그는 그들의 굶주림과 갈급함을
그의 충분한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의 은총으로 채우신다.
그들은 어두움에서 신음하고 죽음의 골짜기에서 나온 자들로
인생길에서 깊은 좌절과 절망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생의 깊은 절망과 고통의 수렁에서 허덕이며 헤매다가
신을 찾아 그를 만나,
그에게서 그 은혜와 축복의 깊은 맛을 맛본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도리어 그것을 통해 신에게로 다가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도리어 기뻐하고 있는 심령들이다.
배고픈 심령, 인생을 두고 한탄하는 심령을
지금도 신은 부지런히 찾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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