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봉희 방송사 비정규직지부장 보직해임 논란

2006/08/03 22:42

주봉희 방송사 비정규직지부장 보직해임 논란
사, "회사 간부, 노조위원장 안돼"…노 "명백한 노동탄압"
 
KBS비지니스가 출자한 (주)KBS방송차량서비스사(사장 박성희)가 주봉희 언론노조 방송사 비정규직지부장에 대한 관리장 보직해임 인사를 단행, 논란이 되고 있다. 방송사 비정규직지부는 “이번 보직해임은 주 지부장의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인사로, 명백한 노조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주봉희 언론노조 방송사 비정규직지부장. 
ⓒ 매일노동뉴스
2일 방송사 비정규직지부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회사는 공문을 통해 주봉희 지부장에게 “회사에서 ‘관리장’ 직을 수행하고 있어 노조위원장을 겸임할 경우, 노동관계법 위반 소지와 회사 경영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합리적 해결을 위해 답변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봉희 지부장이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자, 나흘 후인 28일 보직을 해임했다.

주봉희 지부장은 “2004년부터 노조위원장과 관리장직을 겸임해 왔는데 이제 와서 이를 문제 삼아 보직해임을 한 것은 명백한 노조활동 탄압이며 그 배후에 KBS 본사가 있다”고 주장했다. 주 지부장은 최근 KBS 노사가 한미FTA 현수막 설치-철거로 다툼이 벌어지자 연대투쟁 차원에서 동참했다가 KBS 노무관리팀과 직접적인 마찰을 겪었다. 주 지부장은 “이 때문에 KBS가 나서 지부장의 노조활동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KBS방송차량서비스사 박성희 사장은 “주봉희씨는 회사의 간부로 노조위원장 활동이 노동관계법에 저촉될 소지가 다분해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해왔다”며 “KBS 본사 개입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박 사장은 “최근 ‘한미FTA 현수막 사건’ 등 대외적으로도 불미스러운 일들이 불거져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방송사 비정규직지부는 “관리장 역할은 단순한 차량배치일 뿐, 인사권 등 관리자 업무가 아니”라며 “부당전직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 등 법적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해 당분간 이를 둘러싼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미영 기자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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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계 올리는 글

2006/07/27 11:24
동지들께 올리는 글

 
 계속되는 무더위와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의 노고에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찬사를 보냅니다.

 지금 우리 노동조합은 사측으로부터의 심각한 도전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난 4월 KBS비즈니스로부터 파견 형식을 빌려 본사(방송차량서비스)
관리팀장으로 근무 중인 유호 팀장 임명 이후 경영개선이란 미명하에 갖가지
악랄한 방법으로 우리 비정규노동자의 마지막 남은 피 한 방울까지도 쪽쪽 빨아
수익을 극대화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KBS와 KBS비즈니스에 잘 보여서 목숨부지 내지는 출세하려는 의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3년간 임금동결 요구, 3년간 인원 10% 감축 요구, 연차유급휴가보상수당
미지급(근로기준법 위반), 주5일제에 따른 토요근무제도 일방적 변경
시도(임협․단협 위반), 김성권 조합원 임금체불(근로기준법 위반, 사측의
경영상 오류로 인한 부담을 조합원에 전가), 2004년 발생한 시간외 수당 소급 분
지급 지연(근로기준법 위반), 여비․출장비 축소 요구 등등이 그것입니다.
정말로 치사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존경하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극빈생활을 하는 가난한
비정규(불안정)노동자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저렇게까지 얼굴에 철판 깔고 뻔뻔한 행태를 자행하는 회사는 인간
거머리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유호 팀장의 연봉은 약 8천 5백만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받아야 할 돈이 팀장 연봉으로 지급되고 있겠죠.
KBS와 총액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적자를 예방하려면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우리에게 고통전담을 요구하면서, 정작 그 한정된 회사 예산으로 팀장 연봉과
성과급까지 챙겨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2005년 임․단협 투쟁에서 조합원 동지들이 목숨 걸고 투쟁해서 쟁취한
피맺힌 돈이 유호 팀장에게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동지들은
동의하십니까?
팀장 연봉에 값하려는 일련의 경비절감 행태는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합니다.

 그러나 사측은 그것도 모자라서 아예 우리 노동조합에 무조건적인 투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발가벗고 항복하라고 강요합니다.
 KBS분회가 어떤 노동조합입니까?
단군 이래 최고의 악법, 파견법 하에서 피눈물 삼켜가며 머리 터져가며, 이빨
부러져가며 여기까지 지켜온 노동조합입니다.
 그 선봉에 주봉희 위원장이 있었습니다.
 박성희 사장은 7월 24일자 공문을 통해 주봉희 위원장을 협박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습니다.
위원장과 관리장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최후통첩을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엄연히 노동조합의 조직․운영에 개입하여
노동조합을 와해하려는 사측의 의도는 가히 기상천외하기까지 합니다.

 노동조합은 동지들의 뜻대로 운영하는 것입니다. 사측의 뜻대로 흘러가도록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들 손으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으로 온건히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가 사측의 사악한 의도에 온몸으로 투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봉희 위원장에 대한 조합원 동지들의 평가는 서로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사측이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번 투쟁은 「인간 주봉희」가 아니라 우리의 「지부 위원장」을 지키기 위한
동지들의 역사적인 투쟁이 되는 것입니다. 감히 단언하건데 여기서 우리의
위원장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사측의 다음 목표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KBS분회입니다.
KBS분회를 공중분해 시키기 위한 사전 공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지들이 하나로 단결하여 우리 노동조합을 온 몸으로 지켜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노동조합의 제반사항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해야 합니다.
사측의 의도대로 관철되는 그 순간 우리는 죽음 그 자체입니다.
올해 임금협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받아야만 하는 개, 돼지만도 못한 암흑의 세상만이 우리를
기다릴 뿐입니다. 단 한걸음만 물러나도 천길 암흑의 낭떠러지입니다.

 회사는 오래전부터 치밀하고 잔인하게 노조와해 공작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런 식으로 마각을 드러낸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
 절대 사측 논리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집행부의 의지는 단호합니다. 믿어주십시오. 승리하겠습니다.
끝까지 오직 투쟁! 투쟁! 투쟁!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사비정규직지부 KBS분회장 박철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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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2001년.생각난다

2006/07/01 00:10
비정규직철폐와 정리해고분쇄를 위한 전국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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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봉희 | 방송사 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단결·연대·투쟁·승리로 뭉친 전국순회투쟁단

비정규노동자들로 구성된 전국순회투쟁단은 방송사비정규직, 한국통신계약직, 인사이트코리아, 볼보코리아, 이랜드노조 등 붙박이 비정규노조원들로 이루어졌다. 투쟁단은 투쟁팀·연대팀·승리팀·단결팀 등 4개조로 나누어졌으며 각 팀마다 학생연대팀 또한 자발적으로 투쟁대오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실제 투쟁계획에서 투쟁일정과 시간 등에서 미숙한 점이 현장에서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했다.

방송사 비정규직팀은 투쟁팀으로 합류해 전북지역과 광주지역을 목표로 시작된 3박4일간의 현장투쟁을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외치고 뛰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전주 114안내국이었다. 새벽 눈보라 속을 가르며 힘찬 시동을 걸었지만,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비정규조합원이 아니라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이었다. 우리 또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북본부에서 새벽부터 우리들을 맞이하느라 전북본부 본부장과 조직부장들이 방송차량을 대기시켜놓고 후위에 오들오들 떨고있는 모습에 우리는 다시한번 아랫배에 힘을 주고 대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주에서의 첫집회여서 그런지 동지들의 모습이 조금은 움츠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자세가 역력히 보였다.

처음 방송을 잡은 것은 투쟁팀 대오를 이끌고 있는 한통계약직 팀장이었지만, 새벽잠을 설치고 4시간동안 달려온 탓에 여독이 풀리지 않은 듯 힘있는 한통비정규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필자는 대오에서 뛰쳐나와 마이크를 잡고 거침없이 토해내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양산하는 김대중정권 퇴진하라! 비정규직 완전철폐 정규직화 쟁취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맺힌 한과 피눈물나는 지난 세월, 노동자 속에서 노동자계급을 다시 양산하는 현실에 굴욕감과 처절함, 뱃속의 허전함도 잊은 채 우리는 뭉쳤고 또한번의 동지애를 확인하며 외쳤다. 비정규직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더많은 비정규노동자들을 만났어야 했다

아침 출근하는 전주시민들은 묵묵히 우리들을 지켜보며 침통한 얼굴로, 걱정스런 모습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한 60대노인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니, 젊은이, 우리 선생님이 댁들한테 크게 잘못한 게 있남? 어렵게 대통령 됐는디 자꾸 물러나라면 워뜩혀 이 사람들아! 그리고, 비정규가 뭐여, 그것도 회사여? 비정규회사가 망한겨? 전화국하고 합작했남? 전화국 앞에서들 지랄하게, 잉? 시끄러워 못살겠네."
그렇다. 대다수 국민들과 노동자들은 그 분이 영원한 선생님으로 남길 원했고,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속에 맺혀있길 간절히 바랬는지도 모른다. 세명의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모진 고문과 탄압은 그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뻔한 세월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민주화의 상징으로 영원한 선생님이기를 원했는지 모른다. 1992년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기사가 생각난다. 모든 정치의 원동력은 서민과 노동자와 국민 속에서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지의 말씀. 이는 작금을 살아가는 비정규노동자들과 갈수록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는 지금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점심시간이 훨씬 넘게 전주 114안내국 앞에서의 집회는 114안내동지들과의 결합이 실패로 돌아갔다. 강인한 인내력과 투지넘치는 학생연대 동지들에게서 미래의 노동자 희망을 얻을 수 있었고, 공부하는 학생의 탈에서 벗어나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을 투쟁으로 각인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대견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참으로 흐뭇한 마음으로 뭉클한 가슴들을 접할 수 있었다.
다만, 전국순회현장투쟁단의 이름과 걸맞게 짜임새 있는 계획과 좀더 많은 비정규투쟁사업장을 방문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타격투쟁 또한 한국통신에만 국한된 투쟁이어서 불만이 없지 않았다. 전주에서의 일정 또한 여성노동자대회, 전주화성섬유, 동산사내하청 등 비정규관련단체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갖는 데 할애했어야 했다.


비정규직 완전철폐의 그날까지

특성상 지역 비정규노동자들과 충분한 토론과 현장상황을 좀더 적확히 파고들어 비정규노동자들의 연대와 동질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시간 또한 부족한 것이 흠이다.
군산의 개정병원 동지들, 2년이 넘도록 힘겹게 싸우는 여성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다. 한시간 남짓한 연대집회는 개정병원 동지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아쉬움만 남겨주고 말았다. 군산 노동부 앞마당의 집회는 대우차동지들과 개정병원 동지들 그리고 현장투쟁단 등 합동연대집회 후 거리행진을 하며 정규직, 비정규직이 한마당을 이루었다. 이 끈끈한 연대집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실망하게 만들고 말았다. 마무리까지 함께 해주기를 원했던 군산 개정병원의 동지들이 아쉬워하며 우리들의 등뒤에서 끝까지 서서 떠나는 우리를 지켜보는 모습.

그 모습은 안타까움에 비정규들만의 아집과 고집을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군산에 왔으니 바다구경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군산시내에서 선전전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물론, 후자는 끝까지 이 곳에서 남아 마무리집회를 하길 원했지만, 결국 전국순회투쟁단은 아름답지 못한 모순을 남기고 말았다.
광주에서도 대우캐리어동지들과의 만남 역시 그 지역의 노동자들을 흥분하게 만들었고, 그들은 기대감으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그렇지만, 결국 시간관계상 30분집회에 사내하청 동지들과 대화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민주노총에서 주관을 했건 공공연맹에서 주관을 했건, 계획과 예산, 시간일정 등 충분한 검토 없이 출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전북본부와 광주본부 등 관계자들의 심적 고충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잠자리에서 식사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전북본부장님과 관계자 그리고 광주지역 본부장님께도 감사의 말씀드리며 다음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다시한번 힘찬 투쟁의 정신으로 전남·북지역의 비정규동지들과 함께 외칠 것이다. 비정규직 완전철폐, 정규직화 쟁취하자! 노동자해방 쟁취하는 날까지 투쟁!

방송사 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 주봉희
2001년03월31일 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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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 생활수기 공모전 공지
운영자  2006-03-23 16:19:51, H : 305, V : 0
- Download #1 : 060323_01.jpg (75.5 KB), Download : 7  



제1회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 생활수기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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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셋 달린 개구리 사진이 해외 네티즌 사이에서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문제의 개구리가 발견된 것은 2004년의 일. 영국의 BBC를 비롯한 세계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는데, 개인 블로그가 활성화된 요즘 뒤늦게 '인터넷 화제'로 급부상한 것이다.

섬머셋 웨스턴슈퍼메어에서 머리 셋 개구리가 발견되었으며, 주변에 있던 아동들이 개구리의 기괴한 모습에 놀라는 바람에 큰 소동이 벌어졌다는 게 2004년 3월 5일 BBC의 보도.

언론은 환경 오염의 결과 대단히 희귀한 기형이 발생했다는 전문가 의견도 전했다.

'머리 셋 개구리' 사진은 네티즌들을 크게 놀라게 만들고 있는데, 당시 개구리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상자 속에 가둬놓았던 개구리가 뚜껑이 열리는 순간 달아나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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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고싶지않은세월~2001년

2006/03/20 17:07
'파견.용역 노동자 노동권 쟁취와 간접고용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 50차 수요집회 열어

출처: 참세상뉴스


9월26일은 1년동안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앞에서 '파견.용역 노동자 노동권 쟁취와 간접고용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파철)가 수요집회를 해온 지 1년이 된 날이다. 이날 수요집회는 단순히 50차, 1년차의 의미가 아니라 비정규 투쟁의 새로운 결의를 내오는 자리로 자리매김 되었다. 또한 하반기 투쟁계획을 선포하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정규직 사업장들이 수백일 이상 투쟁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전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가 되었으며, 주5일제 도입을 빌미로 한 노동기본권 말살 또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50차 수요집회는 50차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다. 이날 50차 집회에는 방송사비정규직, 한통계약직, 린나이 등 비정규직 노동자와 파철에 함께 하고 있는 단체등 150여명이 모여 진행하였다.

어김없이 울려 퍼진 "죽여! 밟아 묻어! 씨발! 개새끼야!"
50차 수요집회에도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한 맺힌 뒷구호가 울려 퍼졌다. 집회가 열리는 장소 뒷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는 음악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음악회 관계자는 50차 수요 집회의 방송차 소리가 크다고 음악회가 끝나고 나서 집회를 하면 않되냐고 한다. 주변 빌딩에서 왔다는 사람은 시끄러워서 업무를 볼 수 없다고 집회를 방해 한다. 하지만 나이든 노동자가 자신의 머리를 삭발하고 머리꼭대기에 파견철폐라는 염색을 할 만큼 생존의 문제는 너무나 절박한 문제였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외치는 뒷 구호 "죽여!밟아 묻어! 씨발! 개새끼야!"는 그들의 한이 서린 뒷 구호이기에 그들의 투쟁을 함께 하지 않고서는 이해 할 수 없는 구호이다.

이날 집회에는 민주노총 미조직 특위, 노동자의 힘(준), 인권운동 사랑방, 사회진보연대, 민중의료연합등의 파철 참가 단체들이 모두 나와 향후 투쟁을 함께 결의 하였다. 박문진 민주노총 미조직 특위 위원장의 대회사는 의미가 깊었다. "50차 집회를 준비하며 머리띠를 찾으면서 자신을 반성 하였습니다. '참 오래간만에 머리띠를 묶고 나서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1년 투쟁을 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하반기에는 반드시 지긋한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꼭 승리 하겠다는 결의 자리로 수요집회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수요 집회는 그런 의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매주 있는 안정적인 선전 선동의 공간인 것이다.

또한 머리를 깍고 머리꼭지 한가운데 '파견철폐'라는 염색으로 얼굴보다는 머리가 더욱 알려져 얼굴 없는 투사라 불리는 방송사 비정규직 '주봉희' 위원장의 투쟁사는 더욱 절절하다. "더러운 굴종의 세월을 끊어 버리고 내 자식에게는 더 이상 이 더러운 세상을 물려주지 않을때 진정한 노동세상은 올 것입니다." 라는 마지막 발언은 이미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편하게 세상을 살기보다는 한 목숨이라도 기꺼이 바쳐서 노동해방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다. 그의 의지 속에는 "남산타워에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면 대통령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모두 깨알같이 보인다"는 자신의 발언처럼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강철같은 결의가 담겨 있었다.

이날 파철의 50차 수요집회는 이재웅 민주노총 서울본부 위원장의 격려사, 학습지 산업노조의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권 쟁취,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의 하반기 투쟁 승리 결의, 민중가수 연영석의 공연, 이종회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의 하반기 비정규직 철폐.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국적/ 사회적 투쟁 선포, 평등노조 임미령 위원장의 결의문 낭독등의 식순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집회가 끝나고 파견철폐 공대위 사무실에서 이날 집회 사회를 진행한 진재선 집행위원을 만나 수요집회와 파견철폐 공대위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 보았다.

수요집회는 어떤 기획을 가지고 시작 되었습니까?
작년 6월말쯤 파견법에 의해 2년이상 된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대량 해고에 대한 대응 속에서 파철이 건설 되었습니다. 그해 여름을 경과 하면서 방송사, 대생, 사내하청, 이랜드 투쟁등이 있어 왔지만 7.8월 지나면서 동력이 소진 되어 갔죠. 대량해고 문제로 6월달 반짝 이슈화 되긴 했지만 가을부터 이슈화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파견법 문제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철폐'를 안정적인 공간을 통해 정기적인 사업으로서 이슈화 시키기 위해 수요집회가 제안 되었으며 아이디어는 민가협 등의 목요집회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 시기에도 여름 동안 단위 사업장 노조의 투쟁일정에 참가하는 것을 중심으로 연대해 나가면서 활동을 해오기는 했지만 수요 집회는 노동조합의 투쟁공간으로서 안정화 시키고 보다 확장시켜 나가기 위한 기획이었습니다.

파철이 꾸려지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사회진보연대의 불안정 노동팀에서 파견문제를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 대응을 중심으로 제안 되었습니다. 작년 6월3일 비정규 영세, 여성 노동자 대회 즈음 각 단체에 제안하였고 그 집회 때 공개적으로로 유인물을 통해서 제안 하였습니다. 3번에 걸친 준비 회의 기간을 거쳐 6월26일 첫 결성식을 과천 노동부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집회 형식으로 가졌습니다.

비정규 노동센터 워킹보이스도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데 파철이 워킹보이스와 어떤 활동의 차이가 있는지?
워킹보이스는 작년 상반기에 비정규직 관련해 만들어진 최초의 단체입니다. 비정규직 지원등 많은 활동을 한 부분은 높이 삽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차별철폐에 방점을 맞추는 활동을 하지만 그 논리가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기는 어렵기도 하고 비정규직 싸움의 현실적 가능성을 고려하여 임시직을 인정하는 속에서 차별철폐를 주되게 사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정규직 철폐만 주장하는 것은 투쟁방향으로 옳지 않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워킹보이스 외에 비정규공대위라는 것이 있는데 공대위의 경우 작년 상반기에 경실련이 제안 했었습니다. 민주노총과 제 시민 사회 단체에 제안되었는데 몇몇 단체들의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공대위는 주로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것을 중심으로 사업을 잡아 갈려 하였으나 이에 대한 입장차이가 존재하였습니다. 공대위는 주로 비정규직 입법 청원, 켐페인, 기자회견, 1인시위 등 시민운동적 방식으로 활동을 사고하였습니다. 또한 작년 국감때는 입법안을 가지고 논쟁이 있기도 하였는데 계약직, 파트타임, 특수고용의 문제에서는 크게 입장차가 없었으나 파견용역, 간접고용의 문제에 있어서는 쟁점이 갈라 졌습니다. 이때 쟁점은 '파견법 폐지'냐 '파견법 개정'이냐 였으며 결론은 파견법 관련 해서는 비정규 공대위 명의로 입법안을 내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다른 사안들 역시 국회가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요.

이런 과정속에서 파견문제를 중심으로 전선을 확장하고 연대 투쟁을 해나가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파철을 준비 하게 된 것입니다. 민주노총 상집에서 비정규 공대위와 파철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파철에 대한 참가논의가 되어 민주노총 미조직 특위가 파철에 참가하고 있구요. 비정규 공대위는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참가 하고 있습니다.

50차까지 수요집회를 진행해온 성과가 있다면
첫번째는 꾸준히 비정규직 문제를 알려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두번째는 초기에는 각각의 주제를 잡아나가면서 즉 사내하청문제, 시설, , 계약직, 특수고용문제들의 주제에 맞게 잡고 풍부하게 만들어 나가려 했습니다. 각각의 영역들에 대해 수요 집회를 준비 하면서 대응해 나가면서 관련 사업장에 결합하는 계기, 반대로 관련 사업장은 수요집회에 참가하면서 선전선동의 공간을 활용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가져갈 계획입니까?
파철 평가를 하면서 내용적인 부분과 조직적인 평가를 하였습니다. 내용적인 평가의 내용은 비정규직 투쟁이 구조조정 문제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평가 속에서 비정규 투쟁을 전반적인 구조조정저지 투쟁으로 만들어 내지 못한 자기 반성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 속에서 초기에는 파견철폐투쟁을 중심으로 갔으나 올해부터는 구조조정 저지 투쟁의 과정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배치해 나가고 있습니다.

조직적인 평가는 파철 자체에 대한 평가인데 현 구조가 참가단체 담당자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와 단체 파견자로 구성된 집행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많은 공대위 참가 단체가 있지만 현실은 집행위원회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집행위원들의 움직임이 공대위 집행위원으로써의 움직임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단체로 인식되어 지고 혼재되어 있는 거죠. 이런 두가지 측면이 발전적으로 분리 확대되어질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서 '비정규연대'를 구상하였습니다. '비정규 연대'는 활동가 단체 네트워크로써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파철은 향후 보다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확대가 아닌) 비정규 연대는 파철과는 달리 집회등으로 대변 되는 사업 보다는 회원들간의 소통과 입장을 마련하는 월례 포럼등의 사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또한 위원회 사업이 중심이 됩니다

비정규 연대의 위원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
조직, 정책, 교육, 법률 위원회 등 4가지 위원회가 있는데 조직위원회는 비정규직 조직화, 정책위원회는 장기적인 비정규직 투쟁방향과 조직화 모델 생산, 교육위원회는 비정규직 사업장에 대한 효과적 교육체계와 내용을 만들며, 법률위원회는 법률주체들이 모여 법적대응과 노동법개악 저지등을 고민하게 됩니다. 비정규 연대를 정리하자면 대중 사업보다는 제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입장, 내용, 교육, 법적 대응을 각 위원회 체계를 통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주변에서는 '그게 그거 아니냐?' ' 파철이 전화하는 거냐?' '공존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질문들을 하시는데 분명 질적인 차이가 존재 합니다.


기사입력날짜 : 2001 년 09 월 2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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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 수의 비밀~어렸을적 생각이 떠올라~

2006/02/01 22:35

지루한 6개월간의 조근 집회 ~조합원간의 잡디 잡디한 갈등 후회~견적이 나오지 않는

 

혼자많의  번민~고뇌~아무리 처묵어도 배만 부르고 가슴속 한구석은 텅 비어 있어

 

꾸역 꾸역 아무리 처 묵어도 마음이 부르지 않는다

 

심장은 그 무엇을 향해 튀어 오르는데 주머니 속 손목아지 나올줄모르고

 

떨구어진 모가지는 자라 모가지인데

 

갈비뼈 후벼파는 너의 심사는 누구의 죄인가

 

어제도 그제도 찿아오는 동지의 쇤 목소리 나더러 어쩌라고 이리도 성화인가

 

내 어머니 악 소리에 세상나올때

 

젤 먼저 맛이한건 탁 한 공기였네

 

한숨이였네 숫가락 하나 더~~생겼다고~

 

푸~~~~~~~우~~곰배발~긴~담배연기 였지

 

한숨~반~ 걱정~반 난 그래도

 

숨을 쉬는 인간이기를 갈망했지

 

이제~~숨이~갓빠오네~

 

점 점 이 하얀 이끼들이 몰려오네~

 

충열된 눈 깔속에 세상을 묻고

 

핏기가 말라오는 등짝은 가려워 오고 내 손목아지

 

비틀어져 긁을수 없어

 

옜날 아주 옜날 울 아버지 옥 수 수 잡수시고

 

옥수깡 똥구멍에  마당 빛자루 싸리나무 꺽어넣어

 

등 짝을 .후비신다...어~시원하다.

 

난 그 래도 혼자가 아니라고 늘 말씀하신다

 

이 놈이 효자여~~마누라~대신 ~

 

등짝 글거 준다고 ``

 

난~~~~~~~~~오늘 ~~부자집~돌~

 

담 벼락에 등짝을 비벼대며``````

 

워~~

이눔의 돌멩이가~~

 

효자구먼~나두 버~얼~써~

 

오십 줄이 넘어 서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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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비연 이남신 부위원장 후보 출사표 기호 5번

2006/01/27 14:24
제 목 : [웹자보 1호] 전비연 이남신 부위원장 후보 출사표



위 웹자보를 퍼나르실 때는 아래 소스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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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로 바꿔서 사용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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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는 사건들

2006/01/18 16:34

88718
 기소이유서3. 주봉희 위원장

 글쓴이 : 대외협력실
 등록일 : 2004-11-24   10:16:16      
   

릴레이 기소인터뷰 1.
노무현 정권은 김선일이라는 우리 노동자를 죽였다.
방송사 비정규 노조 위원장 주봉희

거리에서 그를 처음 본 건 4년 전이었다.
2000년 근로자 파견법의 시행으로 KBS는 276명의 파견노동자를 해고시켰다. 비정규직 철폐투쟁, 파견, 간접고용, 불안정 노동이라는 단어가 아직 낯설었던 그때, KBS의 부당한 해고에 반대하는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자 투쟁의 새로운 물꼬를 터 냈다.
그 후 3년이 흘렀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파견법 철폐"를 머리에 물들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삭발한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구호를 만들어 붉게 물들인 모습으로, 그리고 홀로 '방송사 비정규직노조' 깃발을 들고 있는 그 모습으로 말이다.



2004년 가을, 정부는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을 입법예고하고 있다. 파견노동자와 기간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라지만, 실상은 파견노동을 완전히 합법화하고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직화 하겠다는 사실상의 노동법 개악이다. 국회앞 차가운 길바닥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이 진행되고 있고,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자 대회를 앞둔 11월 11일, 또다시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찾아갔다. 노동자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터인 남한사회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2000년 해고에서부터 2004년 복직에 이르기까지 정말 지난한 싸움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000년 7월 1일부터 파견법이 시행되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대한 법률'이 결국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맨몸으로 거리에 내모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방송 3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해 몇 만 명이 해고를 당했고 당시 저도 10년 넘게 KBS에서 일하다가 해고되었으니 어이가 없었죠... 파견법에는 "2년에서 하루가 지나면 정식으로 고용한 것으로 본다."라는 필요악 조항이 있어요. 이를 피해가기 위해서 사측은 2년에서 단 1초가 지나지 않고 바로 파견노동자를 해고해버리지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파견노동자들의 조직이라고 하는 것이 2년을 주기로 조직되었다, 해고되면 한판 싸웠다가, 또 그렇게 없어지면 다시 처음부터 조직해야 하고..그런 거예요

파견노동자의 삶이란..앵벌이나 다름없지요..

이 땅의 파견노동자는 사회의 최하 빈곤층입니다. 텔레마케팅, 사무보조, 카메라 보조 등 특별한 기술도 없는 최하위직 노동입니다. 힘도 없고 돈도 안되는 직업으로 연명해야 하는 사람들이죠, 일용직으로 고용되는 직종은 거의 다 파견업종입니다. 그러니 자본가들이 가장 손쉽게 갖다 쓰고 바로 해고시켜버릴 수 있죠. 지난 6년동안 노동조합이 있었다가 없어지고..위력적인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면서 얼마든지 해고시킬 수 있었죠. 저임금으로 사용하고 짤라버려도 누구하나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 정권과 자본은 이거다 싶은 거죠.

휴일도 없이 일해봤자 100만원 저금은 꿈도 못 꿉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 교육비와 먹고사는 기본만 해도 빠듯합니다. 그렇게 2년을 살아서 돈을 모으지도 못하고 2년이 지나면 가차없이 쫓겨나는 것이죠. 게다가 용역회사에서는 40에서 많게는 50%의 이익을 떼어먹죠, 2년 동안 사장 얼굴도 모르고 쫓겨나고요.
파견노동자는 앵벌이나 다름없습니다.

- 2000년 투쟁을 조직하고 싸워왔던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해고되기 3일전에 노동조합을 결성했어요, 노동조합 활동은 딱 하루 했구요, 바로 그 다음날 쫓겨났지요..제가 10여년을 비정규직으로 일했는데 파견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업체가 바뀌어도 고용승계는 조건없이 계속 이어져왔었어요, 근데 파견법이 시행되지 마자 2000년 5월, 6월에 두 번 해고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KBS 257명, MBC 165명 SBS 425명을 해고하였어요.
쫓겨난 그날부터 싸우기 시작했지요.
3개월 정도 같이 싸우다가 내가 동지들을 등 밀어서 보냈어요. 그 사람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거든요. 투쟁하면서 조합비를 걷을 수조차 없었으니까요. 임금의 1%의 조합비를 내는 것이지만 워낙 열악한 임금에 그 돈을 쓸수가 없었습니다.
혼자 남아서 혼자 깃발들고 싸웠습니다. 겨울에 세차장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벌어서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2002년도에 또 한 차례의 해고가 있었습니다. 함께 싸우고 또 흩어지고. 작년 6월 20일, 조합원이 한명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 조직화에 들어갔습니다. "2년 뒤에 쫓겨나나 지금 쫓겨나나 마찬가지니 싸우자고.."

-홀로 남아 투쟁을 계속해야겠다는 의지, 어떻게 이를 추동할 수 있었는지요. 과거에 노동운동의 경험같은 것은 있으셨는지.

나를 계속 싸우게 한 것은 "파견법'. 그 자체였습니다.

노동운동 경험은 거의 전무했습니다. 홀로 남아 투쟁하고 이를 계속해야 겠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은 파견법 때문이었습니다. 1998년도에 양대노총이 합의해버린 파견법. 그러나 이제는 결국 양대노총의 운동이 오히려 이것으로 인해 공격받게 되어버린 파견법..저는 도대체 이 법안에 합의했는지 정말 원망스러워요. 이 법은 두 얼굴을 쓰고 있어요. 파견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자를 죽이는.. 그런 생각을 했지요. 내가 없어지면 이 파견법의 실체에 대해 알려낼 수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주목을 받기 위해 모든 집회에 쫓아다니고 별의 별짓을 다했지요. 머리에 글씨까지 써가면서 말이죠.

-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보호입법안, 파견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고 3개월간 휴지기간을 두어 어느 정도 파견노동자 해고를 제어할 수 도 있다는데.

기업 사장들이 짱구랍니까? 3개월 계약직 임시직 쓰면 되지.. 누가 그걸 지킵니까?

지금 정부의 파견법 개악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해요..특히 민주노총역시두요. 노동현안으로 불거지는 모든 불법파견문제의 원조는 파견법에서 불거집니다. 금호타이어, 현대자동차 등 모든 것들이요 파견을 쓰자니 2년 이따가 해고시켜야 하고 공장은 가동시켜야 하고 그래서 불법고용이 이루어지고 결국엔 파견법 개악의 요구로 모아지고... 지금 정부가 내놓은 안은 파견기간을 3년으로 늘리겠다는 것인데 어차피 해고되는 건 똑같습니다. 3개월 동안의 휴지기간을 둔다는 건 3년 동안 고용하면 3개월 동안은 그 자리에 고용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규정이고 그래서 기업들이 해고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데, 어느 기업 사장이 짱구랍니까? 3개월 계약직 임시직을 쓰면 되는 거지. 3개월 지나면 다시 파견노동자 쓰면 되는 건데.. 더구나 지금의 노사정위 안은 정부안보다 더 후퇴한 안이예요. 3년 후가 문제라면 3년 안에 기간제 폐지를 하겠다는 거죠.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은 전쟁이다. 인간답게 노동하며 살아갈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이 땅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의 문제와 오늘 하루도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이라크 민중들의 삶의 문제는 동일한 입장에 서있다.


"내가 복직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동지들이 한달에도 몇 차례씩 해고되고 있고 SBS, MBC에는 아직도 파견문제가 심각합니다. 파견노동자의 불안정한 삶이 지속되는 한 계속 싸워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1979년도에 쿠웨이트에서 건설 일용직으로 일해본 적이 있어요. 사우디, 이라크도 수시로 다녔었죠. 그 곳, 참 평화로운 곳이었어요. 당시 후세인 정권 하였는데,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정이 많고 양순한 사람들..전쟁이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역사가 깊고 그에 대한 자존심이 무척 강한 곳이예요. 미국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면서 침공했지만 그것은 석유를 위한 시나리오에 불과한 것이죠. 노무현 정권이 파병을 한 것은 그 더러운 침략에 말려든 것이고 이건 마치 우리나라가 남의 나라에 내정간섭을 하는 것이예요.

노무현 정권은 김선일이라는 우리 노동자를 죽였다.

"이라크는 한국의 많은 건설노동자들이 진출해있는 곳이고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죠, 우리가 왜 미국과 공범이 되어야 합니까? 이라크는 엄연히 주권이 있는 국가예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동포를 죽이면 우리가 가만있지 않을 것처럼 그들도 역시 저항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결국 노무현 정권은 김선일 이라는 우리 노동자를 죽였어요, 파병결정만 하지 않았으면 김선일은 죽지 않았어요. 정부는 파병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이라크 재건에서 건설업체 등을 따낼 수 있다는데 오히려 지금 파병 때문에 외국의 건설업체들이 다 철수하고 있지 않느냐구요.. 미국은 자기나라에 경제상황이 안 좋으면 꼭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예요. 파라과이, 아프가니스탄이 그랬다. 쿠웨이트의 경우, 이라크가 침공했다지만, 자신의 나라 실업률의 증가했고 그 만큼 무기를 생산해서 이윤을 남기려 했던 것이죠. 다른 나라들 다 파병철회를 했는데 우리는 대체 뭘 바라면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라크 인들을 치료하고 도로 닦고 집지어주는 역할을 한다지만 월남전 때 우리가 처음 비둘기 부대를 보냈지만 결국 미국의 요구에 의해 베트남 민중을 학살하는 전투병이 투입된 거잖아요. 이라크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은 결국 전투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파병을 반대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라크에서 피를 흘리고 있습니까? 철군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고립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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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 이유서


평화를 사랑한다더니 국민이 죽어가는 것을 방치한 죄
억압받고 소외되고 그늘진 국민들을 보호한다더니
이라크와 안면식두 없는 우리들의 아들딸들을 죽음의 사지로 내몰아 버린 능력불능대통령령을 행사한 죄
국민과 합의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음에도
이라크파병은 국민합의없이 거부권이 있음에도
강행방침발표에 불상한 노동자를 처참하게 살해당하도록 방치하고 방조한 죄
하여~~노동자의 진정한 양심으로 그대들을 전범으로 고발하노라~~~~~퉤~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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