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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중

     오늘이 손석희의 시선집중 10주년이란다.  아침 6시에 동서울발 천안행 버스를 탔는데 손석희가 10년전 했던 오프닝 멘트가 비장하게 나왔다.  엠비씨에서 아침 방송용으로 뽑았다는 설이 있다며,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돌아왔다던가.  그 뒤로 십년을 한결같이 새벽을 지켰다니, 대단하다.  애청자들과 생방송이었는데, 그 중의 한 명은 새벽 여섯시에 출퇴근을 하는 교대근무 노동자라 했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40분 동안 늘 곁에 있어주어서 좋았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새벽에 일 시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 두 가지.

 

   언젠가 추석이었는데, 할 일이 너무 많아 애들이랑 남편이랑 시골에 두고 나 혼자 먼저 올라왔다. 몇 시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새벽이었다.  당시 산동네에 살았는데, 그 오르막길을 천천히 걷는 작은 그림자. 종이 박스를 주으러 다니는 할머니였다.  명절 새벽에 캄캄한 길을 걷는 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짠했고, 그 모습이 뇌 속에 깊숙히 박혔다.

 

    거리환경미화원에 대한 조사를 하러 다닐 때 이야기.  젋은 노조위원장이 그러더라.  "우리 형님들 진짜 불쌍해요. 사람들은 우리가 돈 많이 번다고 부러워하는데, 저녁밥 먹자마자 8시에는 자야 2시에 나올 수 있거든요.  한 달에 두 번 쉬니까 친척집 경조사 같은데도 못 다니고, 그저 일만 해요. 돈은 마누라랑 자식들이 쓰지요". 그들의 근무시간은 원래 4시-8시, 2시-6시. 이른바 분할 근무.  하지만 실제로는 2시경부터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이상하게도 낮에도 충분히 쉬지를 못한다고 했다.  대부분 나이가 많았으나 최근에 100;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젊은이도 한 두 명 있었다.  그들을 운이 좋다고 해야 할 것인가?

 

    뻐꾸기, 진짜 아침 잠 많다.   5시반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생활을 하게 될 줄을 몰랐다.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궁시렁 궁시렁 거리는 날도 있는데, 오늘이 그 날이었다.  아침에 문밖에 나가 그 시간에 배달된 우유를 집으면서, 이걸 배달하는 이는 몇 시에 나왔을까 생각하니, 다들 그렇게 사는데 투덜대지 좀 말자 쪽으로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그렇게 집을 나서 손석희가 10년전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괴롭지만 열심히 해보겠다 하는 말을 들으니,  그는 몇 시에 잘 까 궁금해졌다.  난 아홉시 반이면 잠자리에 들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날 맥을 못 춘다. 오늘이 그날.  우리 과 직원들도 다들 저녁 밥 먹으면 금방 잠자리에 든다. 오늘 아침에 한 간호사는 10시 이후에 하는 드라마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나도 저녁에 무슨 일이 있으면 다음 날은 거의 죽음이다.  그래서 절대로 저녁 일정을 만들지 않는데, 그러다 보면 누굴 사적으로 만나는 일은 일년이 가도 한 번 있을까 말까.  마음은 발레오 공조 코리아 노동조합 행사에도 가보고 싶고, 류미례의 <아이들>도 보러 하고 싶지만 감당이 안된다.  그런데 최근 직원들과 회식을 몇 번 했더니, 완전 맛이 갔다.

 

      우리 출장팀이 꼭두새벽에 나가는 경우는 대부분 교대근무를 하는 곳인데, 인원수가 많지 않아 두 번 나가기 어려운 곳.  밤 근무 마치고 나가는 사람들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이다.  교대근무가 아니더라도 제조업은 보통 8시에는 일을 시작하니 그 시간에 맞춘다.   아무리 생각해도 컴컴할 때 일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병적이다.  어쩔 수 없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밤에 일을 해야 하는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지금 밤 근무 하는 사람들의 일중에 몇 펴센트나 될까?

 

  내가 나인투화이브로 일하려면 대부분의 사람이 아침 잠 푹자고, 불가피하게 밤 근무 하는 사람들에겐 충분한 휴식이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내가 하는 일을 바꾸고 나라도 아침 잠 푹자면서 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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