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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필요한 사람

      오늘 원내검진의 최대 중환(?).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들어오는 중년 남자.  과거 검진기록을 보니 불면증 호소외에 별다른 게 적혀있지 않다.  이야기를 하면서 누군지 알았다.  작년에 검진할 때 정신신경계 증상에 모두 동그라미를 쳤던 사람이다.  아, 맞다. 검진결과는 특별히 나쁜 것이 없었는데 얼굴엔 행복하지 않다고 쓰여 있었지. 긴 대화를 하느라 적을 짬도 없었던 것이다.  오늘은 얼굴색도 더 좋지 않고, 기억력저하 집중력 저하가 더 심해져서 주변에서도 뭐라 한다고 한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그냥 보내기는 찜찜했다.  

 

    민간 연구기관인 이 회사는 대부분의 노동자가 석박사학위 소지자.  연구비 수주를 위해 경쟁도 치열하고 프로젝트 마감엔 잠 못자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함께 온 다른 사람은 일년전에 신입사원일 때는 혈압이 정상이었는데, 오늘은 140/94. 그런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얼마전   홍실이한테 받은 편지에 대한민국에 편하게 먹고 노는자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구절이 있었던 것처럼, 과로는 우리 사회의 풍토병이다.

 

    지난 번 검진이후에 자기 자신을 위해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 골프를 시작했는데, 그것도 억지로 해보기는 하지만 도통 흥미를 느끼거나 즐거움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다.  웬만하면 거의 하지 않는 가정생활에 대한 질문을 했더니, 집에 가면 더 긴장을 한단다.  부인이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 마음 편할 날이 없다고 한다.  회사에서는 프로젝트 때문에, 집에서는 부인과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 때문에 긴장을 해야 하다니, 불쌍타, 쩝.  부인이야기를 들어보면 부인은 아마 일만하는 남편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최소한 일년이상 지속되는 우울증상이라.....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스트레스에 대한 생리적인 검사도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정신과 진료를 좀 보시는 게 좋겠다 하고 우리 동네에 평판이 좋은 정신과 의사를 소개했다. 좋은 직장에서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잘 나가는' 중년 남자인지라 자신의 약한 모습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도 고개를 끄덕인다.  내년 검진때는 몸도 마음도 조금 더 편해져서 만나자 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한편  내년에도 내가 이 자리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젠 좀 그만하고 싶다.  과연 편하게 일하고 먹고 살 수 있는 직장이 있을까마는 일단 장거리 출퇴근을 계속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번역작업하는데 집중이 안되어 블로그에 들린 것이었는데, 쓰다보니 이 사람 모습에 내 모습이 겹친다.   지난 두 달 동안 두 사람 몫의 일을 했더니 몸이 별로 좋지 않다.  다음 주 부터 두 달간은 일 거들어 줄 사람이 파견을 오니 좀 나아지긴 할 거다.  일단 오늘은 더 일하지 말고 쉬었다가 퇴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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