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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연수교육

    전공의 연수교육을 하는데 강의 하나 해달라 해서 일찌감치 강의록을 보내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제는 오후 늦게 피곤해서 커피 한 잔 마신 것이 화근이 되어 새벽 4시까지 잠을 못 이루고 이 책 저 책 보다가 겨우 잠이 들었고, 아침에 쿨쿨 자고 있는데 엄마가 깨웠다. 아이 토요일인데 좀 실컷 잘께요 했더니 너 어디 간다며? 앗, 오늘 강의가 있잖아.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기까지 오분도 걸리지 않았고, 가면서 오늘 장소가 어디더라, 음. 연세대인 것 같다 하고 한 참 가다가 건물명을 확인하려고 수련위원 중 하나에게 전화를 걸어 카톨릭대학이란 말을 듣고 허거덕. 택시를 돌려 가까스로 강의 시작 5분전에 도착했다.  이렇게 까지 정신없었던 적은 없는데, 요즘은 날도 덥고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검진이 시작되니 시간있을 때 좀 쉬자 하고 넋놓고 지냈다 보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전 시간 강의가 아직 안 끝났다.  전공의들 분위기를 보니 지루함이 가득하다.   강의를 재미있게 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다.  강의나 작업장 보건교육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일단 내용으로 승부를 건다.   듣는 사람들이 프로인 경우는 내용만 좋으면 전달이 확실하게 되니 걱정이 없지만 듣는 사람들이 열의가 없는 경우엔 좀 더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강의제목은 서비스업의 건강위험요인과 영향. 이런말 하면 웃기지만 강의준비를 하면서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내용이라 흡족했었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멍한 눈을 보면서 그런 착각을 하다니, 내가 진짜 세상 물정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어디가서 이야기해서 흥행 성공이면 상당히 기분이 좋아지는 뻐꾸기에게 오늘 강의의 결과는 저조한 성적.  만성 피로와 귀차니즘에 쩔어 있는 전공의들에게 뭔가를 전달하려면 아마 유명 입시학원 강사 수준의 고급 기술이 필요할 듯.  

 

  최근 듣고 허거덕 했던 이야기중 하나는 어느 대학 전공의들이 다같이 세미나 발표준비를 너무 잘하지 말자, 누구 하나가 잘하면 다들 잘 해야 하니 피곤하다 했다는 것인데, 그 말 듣고 설마했었다.  그런데 다른 대학의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서 음.... 진짜 그런 분위기인가 싶다. 

 

  처음 산업의학 수련과정이 생겼을 때는 나름대로 노동자 건강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는 산업의학을 전공해서 어디에 취직해서 먹고사나도 불투명했고  경제적으로 여유있게 살 수 있다고 기대할 수도 없었다. 한 해에  전국적으로 10명 남짓한 전문의가 배출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전공의 연수때 강의실을 하나 가득 채울 정도로 전공의가 많아졌는데도 당분간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상태가 유지되다 보니, 응급 환자 중환자 없이 낮에만 근무하고 월급도 괜찮은 편한 과로 알려지고 있는 모양이다.

 

   사명감같은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직업 윤리는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데 간간히 각 대학 전공의들의 공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좀 실망스럽다.  교육의 힘을 믿어본다면 교수들이 열심히 하면 달라질 수 있으니 열심히 가르쳐야 하나, 최근 몇 년간의 경험을 보면 내가 가르치는 자로서 그렇게 훌륭하진 않은 것 같다.  멍한 전공의 하나 가르칠 시간에 노동자들과 대화하는 것이 더 즐겁고 보람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  나처럼 지치지 않고 전공의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수련위원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동료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쩄든 빵꾸 위기를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이랑 엄마가 차려준 맛있는 비빔밥 먹고 나니 기분이 아주 아주 좋다.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서 노트북을 꺼내 놓고 오늘은 편안하게 앉아서 논문 초안을 완성해야지, 아 그 전에 블로깅하면서 수다 좀 떨고 워밍업. 랄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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