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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오전 원내 검진.

출장검진 2차를 나가려다가 오늘 강의록 준비 등 일이 많아서 시간을 좀 절약해보려고 바꾼 건데 오늘따라 왜 이리 수검자가 많은고. 오전 검진 정리되고 나서 확인해 보니, 에개, 53명밖에 안된다. 음... 뭔가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느꼈나 본다. 내 몸이 좀 피곤해서 더 그렇게 느꼈을까? 하여간 입 열기 싫은 날이었는데 억지로 말하려니 혀가 꼬인다. 꼬여.



1. 오늘따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았다. 근무기간이 4년인 회계업무 담당 여성 노동자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바쁠 때 수검자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나도 골치가 아파서 어떻게 좀 넘어가 볼까 했는데,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럴 수가 없더라. 직장내에서의 관계갈등이 심하여 불면증과 우울감이 장기화되는 상황이고 인근 신경외과에서 약물치료를 하지만 좀처럼 좋아지지 않으며 더 이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 없다.

 

  그 환자의 직장은 승용차로 한시간 반 이내의 거리에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없는 곳이다. 전에 그런 이유로 증상을 좀 지켜보자고 했다가 자살한 환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냥 보내지지가 않았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만나서 꾸준히 상담도 하고 약도 타려면 조금 일찍 퇴근한다든가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 회사가 우리가 보건관리를 하는 곳이니 일단 담당 간호사와 다시 상담하고 6개월 정도 꾸준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사측에 권고해보는 방향으로 하자하고 정리.

 

2.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자궁경부암 세포진 검사가 잘 안 되냐. 스펙큘럼이 들어가는 순간 아프다고 신음을 하거나 심하게 몸을 움직이더니 겁이 나서 검사를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한 분은 난생 처음 검사라 하고 한 분은 아이낳고 나서 한 번 검사후 수 년동안 무서워서 안 했다고 한다. 다음에 마음의 준비를 좀 하고 근처 여자 산부인과 선생님 계시는 곳으로 가보라고 하고 그냥 보냈다.  

 

에궁, 세포진 검사를 하면서 자꾸 헷갈린다. 이 검사에 대해서는 페미니스트 내에서도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어쨌든 얼마전 미국 식약청에서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한 백신을 허가했다고 하니, 앞으로 이 백신이 필수 접종이 되어서 자궁세포진 검사는 역사속의 유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가난한 여자들만 다리를 벌리고 눕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인가.

 

3. 절뚝거리며 들어오시길래 물어보니 소아마비라고 하는 50대 중반 남자는 혈압이 좀 높았다. 문진표를 보니 매일 소주 한 병을 마신다. 자세히 물어보니 알콜 중독을 의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고 하루종일 일하고 나면 8시가 다 되는데 그 고단함을 이기기 위해서 매일 술을 먹는단다. 술 딱 끊으면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은 혈압이다, 늙어서 중풍으로 몸져 누우면 수발해줄 사람은 있냐... 그러면서 절주를 권했더니 하는 말, 마누라 있잖아요. 마누라는 안 아프고 언제까지나 돌보아 주는 사람일 것 같은 모양이다.

 

 오래전 읽은 문헌에 의하면 잘 사는 나라에서 의사가 진료중에 건강상태와 연관시켜 생활습관 개선(주로 흡연)에 대하여 간단한 중재를 했을 경우 효과가 있었대나 어쨌다나 한다. 그렇기도 하고 이렇게 사회안전망이 잘 안되어 있는 나라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절주를 권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입을 열면서도 그 효과에 대해서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 술 담배 권하는 사회의 포스를 진찰실에 앉아있는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4. 오늘따라 전화도 여러 번 받았다. 세포진 검사하다가 수검자가 검진결과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전화를 받고 체중조절하고 다시 간기능 검사해보라고 하고,  연구개발직 노동자가 간질로 쓰러졌는데 어찌해야 할 까요 하는 관리자에게 업무를 제한할 근거가 없으며 건강상태를 이유로 권고사직을 할 상황도 아니니 약 잘 먹고 일 하도록 하면 된다고 설명.

 

  전자는 더 궁금해 하는 것을 시간이 없어서 잘라서 끊었는데, 후자는 납득이 안된다고 계속 반복 설명을 요구했다. 한 사람의 고용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담당 관리자가 납득을 못하면 안 되지, 두 세번은 설명했는데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적어두려고  게 몇 개 더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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