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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러제조회사, 검진 두 번째 날

뻐꾸기님의 [동네 의사로 산다는 것] 에 관련된 글. 

  오늘은 검진 초반에 노조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지난 주 검진에 왔던 사무장은 생활습관이 건전하고 검사결과도 다 좋아서 별 할 이야기가 없었는데 이제 겨우 서른 살인 지회장은 혈압이 어찌 그리 높은 지...... 오늘 혈압만으로 보면 약을 먹어야 하는 기준에 해당하는데 지난 일년간 건강상담기록을 보니 좀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간기능이 약간 떨어져 있고 나머지는 괜찮았는데 오호,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단다. '지회장 보다 낫네'했더니 '지회장은 정말 너무 바빠요'한다. 

 

  용접작업을 하는 문화부장은 그만두고 대의원한다는 데 집행부시절보다 더 바쁘다고 살짝 투덜대었다. 담배도 안 피우는 양반이 기침이 좀 심해서 폐기능 검사를 했는데 괜찮아서 추적관찰하기로.

 

  산안부장은 올해도 계속 한단다. 처음엔 진짜 어리버리 아무것도 몰라서 대화가 잘 안되었는데 이제는 산안공부도 많이 하고 경험이 쌓여서 베테랑급 산안부장이 되었다. 일단 본인의 건강문제부터. 오른 쪽 어깨가 아픈지 5개월이 되었다는데 이학적 검사를 해보니 근막통증후군, 작업조정하고 물리치료하고..... 

 

  오후에 다른 일이 있어 1시까지 끝내려고 했는데 사측 담당자가 꾸물럭거리고 협조를 안 해주어 결국 3시가 넘어서 끝났다. 마지막에 짜증이 나는 걸 참고 업무일지를 앞에 놓고 설명과 당부를 했다.

 

  이 담당자는 별명이 왕삐짐이. 재작년에 피부질환 직업병 유소견자 나간 거 가지고 나한테 집요하게 따지고 괴롭혀서 한동안 서로 피해다녔었다. 그러다가 오랜 비혼 생활을 접고 결혼을 한 뒤로 이제는 신경질을 잘 안낸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조심스럽다. 언제 삐질 지 모른다.

 

  신혼재미가 어떠하냐 물으니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부인께서는 학원강사이므로 일주일에 세 번은 매우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자기가 밥하고 설겆이 하느라 죽을 맛이다, 하고 징징 거리는 척 하는데 얼굴을 보니 아주 예뻐졌다.

 "그래? 그렇게 힘들면 물르고 싶지 않나?" 했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낮춘다.

 "아니, 그건 아니고.... 빨래하고 청소 안 하는 것 만해도 감지덕지요, 헤헤"

 

 신혼재미 자랑에 기분이 좋은 틈을 타서 몇 가지 당부사항을 다짐받았다. 약한 거 부터.

 

첫째, 사무작업자중에 CRT 모니터 쓰는 사람들이 한 구석에 놓고 쓰는 경우에 목, 어꺠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고 LCD 모니터도 그렇게 쓰는 사람들이 많더라. 작업환경 좀 바꾸어 주고, 홍보 좀 해라.

 

둘째, "정밀 검사가 필요한 요통 환자 한 명, 일시적 작업전환과 물리치료가 필요한 외상과염 환자 한 명(이주노동자)이 있는데 신경 좀 써주라."  그랬더니 근골격계질환 예방 및 관리 사업이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흥분을 한다. 

 

 그래,그래, 당신도 효과가 있어야 일할 맛이 날테니 사업효과평가를 위한 조사를 한 번 하자, 했더니 좋다고 한다. 안 그래도 검진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작업조정과 의학적 치료의 결과도 좋아진 사례도 꽤 되고, 할 만한 조치는 다 했는데도 증상이 해결 안되는 사람도 있어서 권고할까 생각중이었는데. 잘되었다.

 

 담당자는 설문조사를 하고나서 증상 관리를 위해 개인적인 노력을 안 하는 작업자들에 대한 상담과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문을 했다. 초점이 좀 다르긴 하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흔쾌히 동의했다. 

 

세째, "***공정에 장갑을 일주일에 두 번 교체한다는데 제품에 묻은 금속가공유때문에 생긴 접촉 피부염으로 일년째 고생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 공정에 보호장갑을 원활하게 지급해 달라. 작업특성을 다시 점검해보아야겠지만 하루에 한 켤레는 필요하지 않겠냐."

 

 그랬더니 이런 중차대한 문제는 해당부서장 소관이니 다음 방문때 직접 미팅을 주선하겠다고 한다. 어이구. 무슨 안전관리자가 보호구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해서 나더러 직접 이야기를 하라고 하나. 순간 좀 짜증이 났지만 꾸욱 참았다.

 속으로 '안되는 걸 어쩌겠어?'하고 겉으로 웃으면서 "그래, 그럼 내가 이야기 하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부서장하고 먼저 이야기를 한 번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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