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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삥 뜯지 마라.

 초등 고학년이 초딩 저학년을 또는 중딩이 초딩, 고딩이 중딩을 삥 뜯으면 난리가 난다. 갈취니 폭력이니 험악한 말을 갈기며 비난하거나 욕한다. 그리고 색출에 나선다. 상납과 삥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학교와 지역 사회는 온 힘을 다한다.


올 연말까지 최저생계비 시급 3,480원(2008년 1월부터는 3,770원), 근로 시간 밤 10시까지. 연소자(청소년) 근로에 대한 최소한의 규정이다. 그 외 근로계약서나 보호자 동의서 등의 서류적 절차와 연속 근로에 따른 유급 휴일 등의 법적 조건이 명시되어 있으나 아직 그것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최소한 줄 돈은 주고, 연소자니만큼 그에 따른 약간의 돌봄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사회적 동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급 3,000원을 주면서 생색내고, 12시, 새벽 1시까지도 일시키면서 세상이 다 그렇단다. 보다 못해 화가 나서 노동부 연소자 근로담당관에게 전화를 한다. 조치를 취해달라는 간단한 요구를 한다. 홈페이지는 통해 진정서를 접수시켜 달란다. 뭐 절차야 그게 맞겠지만 진정서가 접수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은 연소자에 대한 보호의 의무를 ‘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발상 아닐까? 진정으로 연소자의 근로에 대한 보호의 의지가 있다면 10시 이후에 음식점을 한번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연소자(청소년)들이 일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살짝 물어보라. 시급 얼마 받느냐고. 그리고 현장을 가벼운 시선으로 돌아보라. 연소자임을 확인케 하는 근로계약서를 계시하고 있는지. 노동부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하기야 직무유기가 노동부의 특기이기도 하니.

연소자를 채용하여 부리는 어른들도 그렇다. 고딩이 중딩을 삥 뜯는 것을 봤을 때 느끼는 분노를 자기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자기가 하는 것은 언제나 로맨스이다. 지역 사회도 그렇다. 시에서는 업종별로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안다. 연소자들이 주로 일하는 업종 담당자들에게 연소자 근로 채용시 유의사항이라도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번도 그런 교육이나 내용을 전달 받은 바가 없다고 말하는 사장님들 말이 거짓일까 머리가 나쁜 것일까?


연소자(청소년)에게도 노동의 권리가 있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헌법(제11조 모든 국민은 차별받지 않는다.)에서부터 보장되어 있다. 그런 연소자들이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하도록 해줘야지. 이왕이면 국민된 대우를 받으면서 말이다. 힘의 우위에 선 어른들에게 삥 뜯기지 않으면서 헌법적 권리를 누리게 해야지 않나. 그리고 그런 연소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삥 뜯는 이들에게 비난하고 욕하는 사회적 공감과 분위기가 필요한 것 아닌가? 좀더 관심 갖고 힘내서 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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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강산무진-허무에 대한 덤담한 고백이라 느낀다.

김훈 저 | 문학동네 |
   

 

김훈을 읽으면 제일 먼저 그 표현에 깜짝 놀란다. 어쩌면 이런 표현이 나올 수 있는가 싶다. 그의 수사는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그 디테일은 화려함이 주는 불명료함을 단숨에 넘어서 명징한 이미지로 떠오르게 한다.

 

자본주의를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저 '사실'로만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는 그의 책 <자전거여행>에 실린 이순신의 태도와 닮았다. 사실만이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이데올로기와 주장은 사실의 왜곡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허무하다. 객관과 거리감이 주는 허무가 절망은 아니니 그를 비관적이라 말할 수는 없고, 그저 사실로만의 인정은 '젊은 시인'의 기침을 너무도 무의미하게 해버리니 참으로 난감하다.

 

그럼에도 난 이 책을 강추한다. 세태소설보다도 더 세태를 적확하게 묘사해내는 그의 탁월한 능력도 능력이거니와 그가 보여주는 표현의 수사만으로도 감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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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서울, 놈현스럽다... 찌라시

양산에서

버스가 막혔다. 청소차로도 막고, 소방차로도 막고, 심지어 레카로도 막았다. 차량과 차량 간격을 좁디좁게 잘도 막았다.


경찰이 버스키도 빼갔단다, 몰래.

버스를 돌려달라는 민중대회 참가자들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찰과 밀고 당기고 결국 실랑이가 붙었다. 우여곡절끝에 남양산 나들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들목을 점거했다. 듣자니 전국이 다 그런 상황이었다. 길이 막힌 시민들은 민중대회 참가자들에게 항의했다. 여성농민분이 고함을 쳤다.

"좀 참아라, 우리는 다 죽게 되어도 지금까지 참았다."

 

서울에서

서울시청 앞 광장은 전경버스로 빽빽히 둘렀고, 보호되었다. 시위대는 결국 도로로 내려 앉았다.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몇 만인지 알 수 없는 시위대는 민중대회를 치뤘다. 지하철의 공용 화장실은 초만원이었고 2~30m 줄을 서서 볼일을 봤다. 거리행진을 했다. 경찰 헬기가 떠서 선무방송과 사진채증을 열심히 하고 다녔다. 시위대는 경찰헬기를 향해 주먹을 먹이거나 손을 흔들었다.

 

놈현스럽다?

무리하게 막지 않았다면 전국의 고속도로와 나들목이 몸살을 앓았을까?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개방했다면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했을까?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결사의 자유는 2007년 대한민국에는 없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서 판만 키우고 본전도 못 찾는다는 말을 2007년 대한민국에서는 '놈현스럽다'라고 말한다던가. 혹자는 '좌측 깜박이는 넣고 우회전하는 잘못된 습관'을 '놈현스럽다' 한다던가.

 

찌라시

"언제까지 서울 도심을 폭력 시위대에 내주어야 하나"

"불법 시위에 빼앗긴 서울의 휴일"

입에 올리기도 덕적스런 '조~일보', '동~일보'는 폭력, 불법 등의 단어를 써가며 연일 민중대회를 '씹었다'. 이토록 시민과 공공의 이익에 열을 내시는 분들이 왜 삼성과 BBK 앞에서 그토록 초라해지는지. 삼성의 핵심은 불법비자금이 있다는 사실이고 불법적이었다는 것이다. BBK의 핵심은 횡령이 있었다는 것이고 모 후보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에 대해 '법대로'를 주장하고 목청을 높일 수 있어야 진정한 언론이다. 하지만 '조~'와 '동~'은 사실을 외면하는데 그치지 않고 '물타기'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들을 '찌라시'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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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최척전, 우연으로 엮은 해피엔딩의 소망

황혜진 글/박명숙 그림 | 나라말 (전국국어교사모임) |
   



고전은 재밌다.

우연의 연속이 거슬리는 것을 현대소설의 시각에서 재단하지 않기만 하면 우연이 가져다 주는 해피엔딩의 인간적 소망을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다.

정유재란으로 인한 최척 가족의 헤어짐과 이국에서의 만남, 그리고 귀향...

누구나가 그러한, 보편적인 행복 추구에 공명할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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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인간연습-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 연습
조정래 저 | 실천문학사 | 2006년 06월

 

 

 

 

 

나는 여전히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한 얘기를 한 인물은 이름 없이 나오는 출판사 사장이다.

 

"냉전시대를 통해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한테 안 먹히려고 사회복지제도를 얼마나 강화시켜왔어. 만약 그런 노력 하지 않고 돈 놓고 돈 먹기로 자본가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더라면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가 더 먼저 무너져버렸을 거다."

 

정말 그랬을 것이다. 연금을 비롯한 각종 사회복지제도는 반공이 국시로 떠받들어지던 비이성의 시대인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졌다. 수정자본주의란게 결국 사회주의적 이념의 자본주의적 수용이 아닌가 말이다.

 

조정래는 인간의 삶을 연습이라 적고 있는데,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연습이라... 그럼 결국 우리에게는 여전한 실전이 남겨진 것이란 건가? 언제 그 실전을 치르는 것인지.

 

난 이 글을 읽으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이 생각이 났다. 더이상 기대를 가질 수 없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세상을 찾아나선 파피용호의 1세대들은 그들의 신념대로 절제하며 이상적 사회를 유지해갔다. 그러나 그 떠남을 통한 새운 세상을 해 향해한 혁명의 1세대들이 다 잊혀지기 전에 떠나온 지구와 다르지 않는, 아니 그보다 더 험난한 세상이 이어졌다.

공산당 1세대의 희생과 순수함이 무너진 얘기를 조정래를 호치민 평전을 번역하는 윤혁을 통해 말하고 있다.

 

"호치민은 죽기 전에 유서를 네댓 번 고쳐 썼다. 그런데 처음부터 불변이었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시체를 꼭 화장시켜서 재를 전국의 중요한 장소 며 군데에 뿌리되, 그 뿌린 장소를 사람들이 모르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호치민의 지극한 조국 사랑을 나타낸 것인 동시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자신에 대한 정치적 영웅화를 경계한 것이었다. 또 하나는, 해방을 맞게 되면 그동안 수많은 고난을 치러낸 인민들을 위하여 인민 생활을 향상시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호치민 주석을 충실히 뒤따른다고 공언한 당 간부들은 첫번째 유언을 거역했듯이 두번째 유언도 거역하고 말았다."

 

사회주의의 몰락이 어쩌면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성찰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원래가 본능적이고 악마적이어서 사회주의적 이상이 실현되기에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타락한 인간을 타락한 채 내버려둘 수 없었던 중국의 문화혁명의 시도는 나름의 의의가 있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는 결과로 과정을 재단하고 승과 패로 나누기에, 결국 사회주의는 제도적 현재적 실패뿐만 아니라 이념적 실패도 인정하고 새로운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거름이라도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는 비인간적이며 야만적이기에, 게다 최근의 신자유주의의 흐름은 그 야만성과 비인간성, 비이성적임을 통렬하게 드러내기에 어쩔 수없이라도 사회주의에서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강아지똥'이 되는 사회주의의 양분을 이 책은 '인간'이라 말한다. 인간됨의 철학이라... 인간에 대한 탐구가 지금까지 어디 정답이 있었던가.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학 5년 동안 좌파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져왔고, 지금 교단에서도 사회주의적 교육에 대해 가끔 생각하는 나는 어쩌면 '인간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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