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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이었다. 현대문학을 가르쳐주시던 교수님이 한 날은 영화를 이야기하셨다. '붉은 수수밭', 이 영화에 숨겨진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코드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를 3시간 동안 하셨는데, 그때 우리 과 여학생들 교수님에게 뿅~하고 가버렸다. 교수님은 단숨에 꽤 많은 펜을 확보하게 되었다. 영화를 안 만들어도 영화평만 잘해도 누군가를 '뿅'가게 할 수 있다. ^^
1200만 관객을 동원한 대박작 '괴물'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한다. 위생권력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에도 재현되는, 그래서 더욱 실감나는 분석이었다.
'황산벌'은 무거운 대서사를 표준어를 폭력적 언어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된 효과에 대한 설명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국어생활을 가르치면서 표준어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고미숙의 '황산벌' 평을 곁들여 얘기하게 된다.
'음란서생'에 대한 아쉬움에 대한 서술에서 보여주는 고미숙의 예리함과 '음란서생'의 줄거리가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를 설명해내는데서 다시 한번 고미숙의 예리함을 보게 된다.
'서편제'는 수업을 하면서 제법 많이 써먹고 있다. 우리 선생님들과 하는 독서모임 오선지(오래도록 선생하려면 책을 읽자)의 취지가 직접적으로 와닿는 영화 분석이었다. 안타깝게도 서편제가 오래된(?) 영화이다보니 비디오를 구하지 못해 학생들에게는 '천년학'을 대신 보여주고 있다.
'밀양', 이 책에서 언급한 영화 중에 유일하게 보지 않은 영화다. 우선 영화부터 봐야겠다.
'라디오스타',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영화다. '혼자 빛나는 별이 없다'는 압축적 아포리즘적인 언사가 마음을 더욱 끌었던 영화이다. 명절 때마다 반복해서 몇 번을 봤었던 그 영화. 영화 분석도 잔잔하지 좋았다.
고미숙의 날카롭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 아줌마의 글을 읽다 보면 '뿅'간다.
'남쪽으로 튀어라'를 읽고 "아, 이 작가 대단한 사람이다" 싶었다. 추석 동안 심심할 것을 예상하고 재미난 책을 고르려다 보니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예상대로 재밌다. 코믹 액션 영화를 한 편 본 듯한 가벼움이 몸도 마음도 가뿐하게 해 준다.
'남쪽으로 튀어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도 이상향으로서의 '섬'이 등장한다. 나는 오쿠다 히데오가 내세우는 이 '섬'과 홍길동의 율도국이 닮았다 생각한다. 무릉도원과 같은 고립무원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알베르 카뮈의 '티파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어느 세대나 그런 '섬' 하나는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삶의 힘이 되리라는 것...
김훈의 '자전거 여행'과 '밥벌이의 지겨움'을 그의 표현력에 혀를 내둘렀었다. 어쩜 같은 장면을 보고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가 하면서 말이다. 그의 표현은 결코 화려한 수사에 의지하지 않고 응시와 관찰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뒤늦게야 읽은 그의 소설은 대서사의 굵직한 선의 느낌이 아니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시대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무기력한 만큼 격력하게 비분강개했다."
=>정말 그렇다. '비분강개'는 무력한 자의 정서일 뿐이다. 방책이 있는데, 굳이 비분강개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겠는가 말이다.
"칼을 빼자 햇빛이 튕겨져 나갔다."
=>김훈은 이 표현이 갑작스레 떠올랐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몇 번이고 칼을 빼들거나, 그 장면을 깊이 응시하고 관찰했을 것이다. 글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응시하고, 오래도록 다듬어져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가...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다."
=>교직 10년에 여차한 이유들로 힘겨웠고, 지금도 여전히 힘들지만, 전환, 새로운 다른 것을 해보려는 버둥거림은 어쨌든 나의 삶이고 의지이다.
"먼 수평선 쪽에서 비스듬히 다가오는 저녁의 빛은 느슨했다. 부서지는 빛의 가루들이 넓게 퍼지면서 물 속으로 스몄고, 수면은 스치는 잔바람에 빛들은 수억만 개의 생멸로 반짝였다. 석양에 빛다는 먼 섬들이 어둠 속으로 불려가면 수평선 아래로 내려앉은 해가 물 위의 빛들을 거두어 들였고, 빛들은 해지는 쪽으로 몰려가 소멸했다."
=>해지는 바다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김훈의 힘인 것 같다.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응시'에 의해 획득한 생경한 표현,하지만 이 표현은 단지 '표현'이라는 의미에만 멈추지 않는다. '칼의 노래'에서 충무공은 당대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영웅'은 아니었다. 스스로 '죽을 만한 자리'를 찾아야했을 정도로 상황에 끌려다녀야 했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런 인식에서인지 작가는 배경 표현은 주로 '피동적 표현'으로 이뤄지고 있다. '빛'은 '해'에 의해 거둬지는 것이다. 충무공은 '빛'이었고, 임금은 '해'였다. 빛은 해에 의해 거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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