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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이 영화를 보라, 고미숙

이 영화를 보라

고미숙

그린비 2008.06.10

 

 

 

 

대학 시절이었다. 현대문학을 가르쳐주시던 교수님이 한 날은 영화를 이야기하셨다. '붉은 수수밭', 이 영화에 숨겨진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코드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를 3시간 동안 하셨는데, 그때 우리 과 여학생들 교수님에게 뿅~하고 가버렸다. 교수님은 단숨에 꽤 많은 펜을 확보하게 되었다. 영화를 안 만들어도 영화평만 잘해도 누군가를 '뿅'가게 할 수 있다. ^^

 

1200만 관객을 동원한 대박작 '괴물'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한다. 위생권력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에도 재현되는, 그래서 더욱 실감나는 분석이었다.

'황산벌'은 무거운 대서사를 표준어를 폭력적 언어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된 효과에 대한 설명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국어생활을 가르치면서 표준어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고미숙의 '황산벌' 평을 곁들여 얘기하게 된다.

'음란서생'에 대한 아쉬움에 대한 서술에서 보여주는 고미숙의 예리함과 '음란서생'의 줄거리가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를 설명해내는데서 다시 한번 고미숙의 예리함을 보게 된다.

'서편제'는 수업을 하면서 제법 많이 써먹고 있다. 우리 선생님들과 하는 독서모임 오선지(오래도록 선생하려면 책을 읽자)의 취지가 직접적으로 와닿는 영화 분석이었다. 안타깝게도 서편제가 오래된(?) 영화이다보니 비디오를 구하지 못해 학생들에게는 '천년학'을 대신 보여주고 있다.

'밀양', 이 책에서 언급한 영화 중에 유일하게 보지 않은 영화다. 우선 영화부터 봐야겠다.

'라디오스타',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영화다. '혼자 빛나는 별이 없다'는 압축적 아포리즘적인 언사가 마음을 더욱 끌었던 영화이다. 명절 때마다 반복해서 몇 번을 봤었던 그 영화. 영화 분석도 잔잔하지 좋았다.

 

고미숙의 날카롭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 아줌마의 글을 읽다 보면 '뿅'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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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시인을 따라 찾아 떠나는 예술 여행-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곽재구

시인의 눈으로 봐서 어디인들 예술적이지 않을까마는, 곽재구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이 책의 제목대로 사람이 있는 풍경이며 풍경으로 비롯된 사람의 예술적인 이야기이다.

미조포구에서 곽재구는 아마도 첫사랑인 듯 싶은 여인(소녀?)을 떠올린다. 누구에게나 그림같은, 동화같은 첫사랑이 있기 마련이지 않나. 그런 기억을 아름다운 포구에서 떠올리는 곽재구는 어떤 마음일까?
"사랑한 다음에 남은 적막처럼 / 내 저 깊숙한 휴식처로부터 / 달콤하게 머문, 희미한 포구의 불빛처럼 스러진 그대 곁으로 / 난 엉금엉금 기어오르나니......"


섬진강에서 역사의 아픈 흔적도 만나고, 전설만이 되어버린 화개장터, 평사리의 돌담길... 곽재구는 이 때마다 시를 읊조린다.
"돌각담 길에 들면 /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 저렇듯 예쁜 돌각담 길 내어 주며 / 끊어진 세상의 길을 잇는 듯 싶습니다."

미당을 찾아 선운사에서 질마재로 넘어서는 곽재구는 미당의 반역사적 행위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미당의 시만을 얘기한다. 처음 안 사실은 미당의 '자화상'에 "애비는 종이었다"는 문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당의 집은 최소한 자신의 동네에서는 제일 부자였단다. 그런데, 왜 '자화상'이지?

이 글을 읽으면서야 금강을 찾으며 당연 신동엽이 떠올라야 문학하는 사람이겠지 싶었다. 그런데 난 '금강'을 갈 때면 기껏 금강휴게소밖에 안 떠오르는 속물이니... 신동엽의 시와 신동엽을 기억하는 이들을 찾아 신동엽을 재구성하는 이런 사람이 금강 여행의 가이드라면 '관광'도 품위가 있을 듯 싶다.

공재 윤두서와 다산 정약용. 잘 알려진대로 공재는 다산의 외가쪽이다. 고산 윤선도도. 다산의 외가가 남인 계열이었다. 영산포에서 공재와 다산의 흔적을 찾아간다. 공재와 다산의 일화들도 간간히 이야기하는 곽재구의 박식함이라니...

김환기 - 잔남 신안군 기좌도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진도 소리를 찾아서 곽재구는 두 번의 기행문을 싣고 있다. 두번째 기행문이 씻김굿이 주된 내영이라면 첫번째 글은 진도 사람들에게 소리가 일상임을 만남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난 첫번째 기행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통영, 많은 예술인을 배출한 정말 말 그대로 예향이다.

박인환,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교통사고로 죽은 아내와 자식을 따라 자살해버린 남편, 시인이기도 했다는데.. 잘 모르겠다.

천관산에서 회진 포구까지... 이청준의 <눈길>의 배경이 되었다는 진목 마을의 돌아가는 길을 찍은 사진만으로도, 집도 없으면서 돌아서는 소설 속의 어머니의 발길이 그려진다.

서역으로 가는 길...

박달재에 가면 이철수의 집이 있다는데,,, 작년에 박달재를 갈 때 한번 찾아볼 걸 그랬다. 올해 증평의 한 갤러리에서 이철수의 판화 전시를 봤는데, 이철수의 판화는 곽재구의 표현대로 '화엄으로 가는 은밀한 꿈'이 딱이다. 품위 있는 달력의 그림만으로 쓰이기는 아깝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내가 제일 먼저 미술품 하나를 구입한다면 이철수의 판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시인을 따라간 기행은 흥청거리지는 않았지만, 많이 아주 많이 낭만적이었다. 그래서 시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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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라'를 읽고 "아, 이 작가 대단한 사람이다" 싶었다. 추석 동안 심심할 것을 예상하고 재미난 책을 고르려다 보니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예상대로  재밌다. 코믹 액션 영화를 한 편 본 듯한 가벼움이 몸도 마음도 가뿐하게 해 준다.

 

'남쪽으로 튀어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도 이상향으로서의 '섬'이 등장한다. 나는 오쿠다 히데오가 내세우는 이 '섬'과 홍길동의 율도국이 닮았다 생각한다. 무릉도원과 같은 고립무원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알베르 카뮈의 '티파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어느 세대나 그런 '섬' 하나는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삶의 힘이 되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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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칼의 노래, 김훈

김훈의 '자전거 여행'과 '밥벌이의 지겨움'을 그의 표현력에 혀를 내둘렀었다. 어쩜 같은 장면을 보고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가 하면서 말이다. 그의 표현은 결코 화려한 수사에 의지하지 않고 응시와 관찰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뒤늦게야 읽은 그의 소설은 대서사의 굵직한 선의 느낌이 아니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시대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무기력한 만큼 격력하게 비분강개했다."

=>정말 그렇다. '비분강개'는 무력한 자의 정서일 뿐이다. 방책이 있는데, 굳이 비분강개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겠는가 말이다.

 

"칼을 빼자 햇빛이 튕겨져 나갔다."

=>김훈은 이 표현이 갑작스레 떠올랐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몇 번이고 칼을 빼들거나, 그 장면을 깊이 응시하고 관찰했을 것이다. 글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응시하고, 오래도록 다듬어져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가...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다."

=>교직 10년에 여차한 이유들로 힘겨웠고, 지금도 여전히 힘들지만, 전환, 새로운 다른 것을 해보려는 버둥거림은 어쨌든 나의 삶이고 의지이다.

 

"먼 수평선 쪽에서 비스듬히 다가오는 저녁의 빛은 느슨했다. 부서지는 빛의 가루들이 넓게 퍼지면서 물 속으로 스몄고, 수면은 스치는 잔바람에 빛들은 수억만 개의 생멸로 반짝였다. 석양에 빛다는 먼 섬들이 어둠 속으로 불려가면 수평선  아래로 내려앉은 해가 물 위의 빛들을 거두어 들였고, 빛들은 해지는 쪽으로 몰려가 소멸했다."

=>해지는 바다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김훈의 힘인 것 같다.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응시'에 의해 획득한 생경한 표현,하지만 이 표현은 단지 '표현'이라는 의미에만 멈추지 않는다. '칼의 노래'에서 충무공은 당대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영웅'은 아니었다. 스스로 '죽을 만한 자리'를 찾아야했을 정도로 상황에 끌려다녀야 했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런 인식에서인지 작가는 배경 표현은 주로 '피동적 표현'으로 이뤄지고 있다. '빛'은 '해'에 의해 거둬지는 것이다. 충무공은 '빛'이었고, 임금은 '해'였다. 빛은 해에 의해 거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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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청춘, 덴데케데케데케

아시하라 스나오 지음 / 이규원 옮김

성장 소설이다. 밴드를 결성하고 연습하고 고딩시절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청소년기의 수줍음과 그 때의 순수함이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려진다. '그놈의 멋있었다'식의 성인에 대한 모방적 로맨스가 없어도 청소년 문학이 의젓한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일본이란 사회가 갖는 우리와 같은 굴절된 입시제도가 소설의 마지막에서 방황을 잠시 하게 하지만, 밴드 친구들과의 공유와 나눔으로 잘 이겨낼 것임을 예상토록 하며 소설은 마친다(길이 끝나자 길이 시작되 듯이).
청소년 문학으로 학생들에게 권장할 만한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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