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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아랑의 왜

작가는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어떤 자료를 모으고 어떻게 분석하고 어떤 상황을 설정하고 선택하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아랑의 전설과 현대의 박과 영주의 치정 살인사건을 병치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건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소설을 생산해내는 작가의 역할과 그것에 동의해가는 독자의 몫이다.

특이하다면 특이하고, 추리소설류라고 하면 추리소설일 수도 있겠다 싶다.
특이함만으로도 재밌게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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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달콤한 나의 도시

드라마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 최강희가 주인공이었다는데...보지는 못했다.

 

읽는 내내 사랑을 생각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랑하는 것이 사는 것'인지 '사는 것이 사랑하는 것인지' 가물가물한 나이에 새삼 사랑을 생각했다.

살면서 과연 이어지는 '설렘'을 간직할 수는 있는 것일까? 밋밋한 일상이 어느 순간 설렘을 대신하고 있는 때에 추체할 수 없는 '설렘'이 다가온다면, 삶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일상의 밋밋함이 주는 안정을? 설렘인 안겨주는 삶의 열정을?

 

벌써 가물가물해지는 소설의 줄거리보다, 마흔 즈음의 나이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읇조리게 해서 좋았다고 하면 너무 소설을 작위적으로 읽은 것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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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정말 재밌게 읽었다. 반나절이면 충분히 읽을 만큼....

성장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청소년 문학이란 이름에 걸맞게 속도감과 재미가, 그리고 그 설정이 너무도 재미있어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토리)'가 될 뻔한 완득이를 세상으로 불러낸 담임 똥주.

부자 아버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에 분개해 이주노동자를 위해 싸우는 담임 똥주.

전 재산을 털어 그들의 쉼터인 '교회'를 사들이 담임 똥주.

'연탄 한 장' 같은 인물이었다 싶다...

 

어떤 글을 읽든 사람은 자기 처지에서 읽나 보다. 완득이보다 담임인 똥주가 눈에 더 들어 오는 것은 내가 교사이기 때문이리라 싶다.

 

똥주는 반 학생들의 잘못에 처분을 내린다. 99대 집행유예 1년.. 체벌을 할부로!

예전 매를 들 때 할부로 때려본 기억이 있긴 한데, 집행유예를 내려본 적은 없다. 담임을 하게 되면 집행유예 선고를 해야겠다.

 

나는 어떤 선생이었을까? 문득문득 궁금해진다.

며칠 전 내 싸이에 아마도 올해 26쯤 된 졸업생이지 싶은데, 오랜만에 들러 글을 남기고 갔다. 졸업하고 원주인가에서 물리치료사를 하고 있다고 들었었다.

 

저희 보건의료노조도 내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가요..
의료기관 민영화라는 말도 안되는 얘기가 나오더니 결국엔 이렇게 됐네요^^;;
갑자기 선생님이 궁금해져서 찾아왔더랬어요^^

학교다닐 때는 나이를 먹고 아는 것이 많아지면 편안해지는 줄 알았어요.
근데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한해한해 지날수록 점점 더 상황은 힘들어지기만 하고 부조리한 것만 눈에 보이고 그러네요....
어디를 봐도 모순덩어리고..;;;
의료기관의 파업은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협상이 잘되면 저희처럼 아직 기반이 약하고 불안정한 고용자들이 조금은 발을 붙일 수 있을테니까 많이 이해해주셔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너무 이기적으로 보일까봐서요^^;
아침부터 신세한탄을 해버렸넹ㅎ;;
좋은 하루 되세요,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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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닥쳐라, 세계화



反세계화 투쟁이, 과거의 회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걱정이 단지 걱정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또한 반세계화 투쟁이 초국적자본의 착취에 대한 저항 투쟁이지 결단코 토착자본의 지역적 착취구조에 대한 지지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걱정도 걱정만 아닌 것이다.

요즘 내나름의 화두는 '국가주의'이다. 이 책은 '민족', '국가', '민족국가'에 대한 우려는 얘기한다고 나는 대략 이해한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에서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아나키스트의 절망적(?) 선택에 공감하였듯이, 소통과 연대를 줄창 주창하는 엄기호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소통과 연대가 '나'와 뜻이 맞는 또다른 '나'와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말에, 서글프게도 나는 '나'와 같은 '나'의 집합인 '나들'에 있었다는 뼈아픈 각성을 하게 된다. 나는 나 아닌 '너'와는 소통도 연대도 하지 않았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다 그랬다.
민노당의 우파는 '끼리끼리' 모여 그들만의 '명박산성'을 쌓은 것처럼, 그래서 그렇게 '진보의 희망'이 무너져내렸던 것처럼, 지금 진보의 위기는 '소통과 연대'의 부족인 것이지 않은가 생각한다.
미시적인 것의 문제와 거시적인 문제를 수사적 수준에서 말하여 있어 보이게 할 수 있을 텐데, 엄기호는 시작에서 책의 끝에 이르기까지 경험과 인터뷰, 활동을 통해 '땅을 딛고' 얘기한다. 그 얘기의 자락에서 나는, 천편일률적인 하나의 잣대가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이 엄기호의 생각이라 판단한다.
反세계화 투쟁이 '구호'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공간과 그 사회의 특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에 맞는 그리고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사람과 기대, 또 다양한 무엇들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편견 없이!


"닥쳐라, 세계화"란 제목을 보고 우리 집 꼬마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책에 욕이 적혔다는 것이다. 욕할 수밖에 없는 '세계화'라고 말해주면서, 나 역시 갸웃거린다. 내 또래인 필자의 경험과 생각에 시샘과 더불어 고마움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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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이 책의 저자는 부산대 강명관 교수이다. 예전에 강명관 교수의 짧은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매우 마음에 들어 이 분 글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지가 꽤 된 듯하다. 나의 게으름으로 이제서야 한 권을 읽었다. 오랜 시간 벼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저자의 박식함도 박식함이지만, 고전의 글을 대하는 그의 가치관과 철학이 현재진행으로 읽히기에 더욱 좋았다.

 

정도전의 조선 건국의 구상이 그의 정적이었던 태종에 의해 실현되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도 재밌었거니와, 세계 최초라는 우리의 금속활자가 서양의 금속활자만큼 문명의 발달에 기여하지 못한 이유가, 도서의 대량생산을 위한 것이 아닌 사대부만을 위한 소량의 생산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처음 듣는 새로운 앎이었다.

'책읽는 바보'가 조선에 이토록 많았다는 것이 책이 주변에 그렇게 널려 있어도 욕심껏 읽어내려하지 않는 나의 게으름을 부끄러워 마땅하다.

'책'이란 것이 꼭 출세를 위한, 성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지평을 넓히는 것임을 조선의 '책벌레'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세삼 우리의 교육을 돌아보게 한다. 교과서에 나와야만 유명해지는 잘못된, 명백히 잘못된 이 독서 문화는 새삼 교육하는 자로서의 반성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은 과거를 포기하면서, 또는 유배를 가서 그 학업을 이뤘다는 얘기는, 나는 그렇게 읽었다. '출세의 욕심'을 버리면 '공부'가 된다는 것으로......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제목만 알았던, 교과서에 나왔기에 무작정 외우기만 저자와 저작들의 대략의 내용이나마 주워듣게 된 것도 읽는 내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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