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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훈의 『영국정치와 국가복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701135914
박근혜·유시민…'복지 한국' 만들 정치인은? (프레시안,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2011-07-01 오후 6:15:58)
[프레시안 books] 고세훈의 <영국 정치와 국가 복지>
근래 한국에서 복지 국가 논의가 활발하다. 불과 2, 3년 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의 변화이다. 먹고 사는 게 힘겨운 대한민국 시민들의 좌절과 이를 극복하려는 열망이 '복지 국가'라는 상징물로 드러나고 있다. 나는 이제 복지 국가가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자주 갖는 질문은 '어떤 복지 국가'보다는 '어떻게 복지 국가를 이룰 것인가'에 있다. 외국의 복지 국가 형성사에 관심이 가는 이유이다.
고세훈의 <영국 정치와 국가 복지 : 신(New)자유주의에서 신(Neo)자유주의로>(집문당 펴냄)를 읽었다. 이전에 고세훈이 펴낸 <영국 노동당사 : 한 노동 운동의 정치화 이야기>(나남출판 펴냄)를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1900년 창당된 영국 노동당이 10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19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의 '우 클릭'에 대한 비판서 성격을 지닌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고세훈의 학문적 열정과 꼼꼼함에도 놀랐지만, 독자 눈으로 쓰인 자상한 서술 덕택에 영국 노동당 100년을 한 권의 책을 통해 한눈에에 파악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고세훈은 <복지 한국 미래는 있는가>(후마니타스 펴냄)를 통해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시장 자체의 민주화'가 필수적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학자이다. 영국 정치와 한국 복지 국가에 깊은 통찰을 지닌 학자가 낸 '영국 복지 국가'에 관한 책이니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제목이 익숙하지 않다. 근래 논의되는 '복지 국가'가 아니라 '국가 복지'였다.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그 취지를 곧 이해했다. 이 책이 주목하는 열쇳말은 '복지'라기보다는 '국가'이다. 고세훈은 복지 정책을 상위 범주인 국가 개입주의의 일환으로 파악한다. 영국에서 전개된 국가 개입의 논리 속에서 '복지' 정책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복지 국가가 다양한 이념과 전통을 지닌 정치인, 정당 간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발전되어 온 역사적 결과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에 당연히 복지 정책뿐만 아니라 노동, 조세, 고용, 금융 정책 등이 포괄적으로 다루어지고, 그만큼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특정 시기, 특정 정당의 국가 개입 정치가 주요 내용을 차지한다.
이 책이 다루는 시기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부터 2010년까지 약 200년이다. 영국 자본주의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던 빅토리아 시대는, 국가 개입주의가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19세기 내내 개인의 삷과 행동을 가능하면 내버려둬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당시를 지배했던 벤담주의자들은 분배 혹은 빈자를 위한 국가 개입은 잔여적이고 최소 국가적이어야 한다고 여겼다. 이들이 주도해 도입된 1834년 수정국빈법도 구호 대상자의 생활수준은 최하층 독립 노동자의 생활수준보다 언제나 낮아져야 한다는 '열등 처우' 원칙을 제도화한 것이었다. 빈자가 구빈소를 안락한 피난처로 간주하는 것을 막고 자조(自助)의 길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계속될 수는 없었다. 19세기 말, 영국 국민들의 전반적 빈곤화가 진행되었다. 당시 조선업주이면서 기독교인이었던 부스(Booth)의 조사에 따르면, 런던 인구의 30퍼센트, 특히 노년 인구의 45퍼센트가 심각한 빈곤 상태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보어 전쟁(1899~1902년)에 참여한 군인들의 절반이 신체와 건강상의 결합이 있어 '제국 군대'로서 부적격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빈곤이 주로 개인 성품의 결함에서 비롯된다는 시대적 신화가 서서히 무너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문제 해결자로 나설 수 있는 주체는 국가뿐이었다. 당시 영국 자유당을 중심으로 국가의 역할을 주목하는 신(New)자유주의가 등장했다. 드디어 영국에서 국가 개입주의가 선보인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신(New)자유주의에서 신(Neo)자유주의로'인 까닭이다.
당시 신(New)자유주의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장 만능 신(Neo)자유주의와 한글 번역이 동일하지만, 내용은 정반대이다. 신(New)자유주의는 비록 시장을 중심에 두지만 개인 외부에 존재하는 '사회'의 역할을 주목했다. 이들에게 사회 개혁은 단순히 사회 안정 차원을 넘어 사회의 고유한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의 재발견의 의미를 지닌다. 국가 예산을 사회 개혁의 주된 도구로 삼고 토지와 소득에 대한 증세 정책을 통해 국가의 역할을 강화했다.
이는 1906년 자유당이 집권하면서 최고봉에 도달했다, 노동당 역시 창당 6년 만에 29명의 의원을 배출하며 자유당 정부를 지원했다. 처음으로 영국은 지주나 귀족이 지배하지 않는 정부를 갖게 되었고, 사회 입법 제정. 어린이 구호 조치, 노령 연금, 근로자 보호법, 건강 보험과 실업 보험, 노동조합법 개혁(노동조합 파업의 면책권 보장), 최저임금법 제정 등이 이루어졌다.
마침내 1923년 노동당이 집권했다. 노동당은 출발부터 강력한 국가 개입주의를 노선으로 표방했다. 여기에는 영국의 '자생적 사회주의'인 페이비언주의(Fabianism)의 영향의 컸다. 페이비언주의는 점진적 이행 원칙을 지니고 있었지만 강력한 국가 개입주의를 지니고 있었다. 노동당은 1918년 '생산, 교환, 분배의 공공 소유'를 당헌에 채택하는 사회주의 정당임을 천명했다.
비록 노동당이 1923년, 29년 두 차례 집권 시기에 소수 정부의 한계, 경제 공황 등으로 강력한 사회주의 개혁을 수행하지는 못했지만, 1934년 노동당이 발행한 가장 사회주의적인 정책 문건으로 평가되는 '사회주의와 평화를 위하여'를 마련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노동당 정부에 의해 수행될 청사진을 준비해 두었다.
1945년 집권한 노동당은 대대적인 국유화와 복지 정책을 추진했다. 노동당 정부는 중앙은행, 통신, 항공, 전력, 석탄, 가스, 철도와 도로 교통, 철강업 등 총 12개 주요 기간 산업을 국유화했는데, 그 결과 영국은 1970년대까지 서구에서 가장 국유 기업이 많은 나라가 되었다. 특히 영국 국민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민의료체계(NHS)가 1948년 7월 영국의사협회 소속 의사 90퍼센트의 보이콧이라는 저항을 피해 도입되었다.
사실 사회주의 지향 정당으로서 노동당의 행보는 예견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가 주목할 대상은 영국 보수당이다. 전간 대부분 기간을 집권했던 보수당의 노선도 국가 개입주의였다. 전쟁이라는 상황적 조건이 크게 작용했지만, 보수당의 노선은 온건적 보수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1924년 보수당 정부 재무장관이던 윈스턴 처칠은 다양한 사회 입법을 추진하며 이를 '국가 원조(state aid)의 앰뷸런스'로 불렀다. 실제 영국 복지 체계의 기틀이 된 '베버리지 보고서'도 1943년 보수당 전당 대회에서 기본 골격의 수정 없이 통과되었다. 앞서 1926년에는 BBC, 중앙전력청, 런던교통공사 등을 출범시켜 전후 노동당 정부가 실행한 국유화 조치들을 오히려 선제적으로 진행했는데, 이 때 국유화는 이념에 의하기보다는 실천적 필요에 의해서 추구된 것이었다.
고세훈은 이를 '지금 여기서의 정치'를 강조하는 영국 보수주의 전통이라고 평가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이미 영국 정치에서는 국가 복지를 향한 '합의'가 존재했었다고 정리한다. 전후에도 보수당 정부(1951~63년)는 노동당 정부(1945~51년)가 국유화시켰던 산업 정책과 복지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는 '합의 정치'를 보여주며 '국가 개입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면에서 고세훈은 영국의 복지 국가는 특정한 이념보다는 영국 특유의 국가주의적 전통의 산물이라고 평가하는 듯하다.
사실 이러한 합의주의를 가능케 했던 배경으로 잊지 말아야할 점이 '영광스러운 30년'으로 불리던 전무후무한 경제 호황이다.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이라는 조건에서 보수당의 온건주의와 노동당의 진보주의가 '합의주의' 정치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영국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영국이 1976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아야하는 상황까지 내몰렸고, 이러한 과정에서 1979년 마거릿 대처가 수상으로 취임했다. 자유 시장에 대한 종교적 근본주의를 기초로 보수당의 온정주의, 영국 정치의 합의주의, 국가 개입의 복지 정책 등을 전면 부정한 대처 정부의 등장으로 영국 정치에서 국가 개입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Neo)자유주의가 대세로 등장했다.
소신 정치를 선언한 대처 정부는 공공 지출 삭감, 감세, 민영화, 탈규제, 노조 권한 축소 등을 강행했고, 복지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고세훈은 대처 정부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어떤 해에도 복지의 양적 규모가 축소된 적은 없었다고 강조한다. 복지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존재하였기에 이른바 '복지의 정치적 불가역성'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 여건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무려 8개 복지 관련 입법을 통해 복지 급여의 수혜 요건이 강화되었고, 노동 시장의 유연화와 더불어 영국 사회의 빈부 격차도 심화돼 갔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무려 18년간의 보수당 정부 통치를 깨고 1997년 참신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다. 노동당 정부 역시 2010년까지 14년이나 장기 집권했다. 대처 정부가 기존 국가 개입주의의 틀을 깨려했다면, 반대로 노동당 정부는 다시 국가 개입주의를 복원하려 노력했을까?
고세훈은 이에 대해 무척 비판적이다. 1999년 펴낸 <영국노동당사>에서 밝혔던 우려를 결국 확인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블레어 정부가 내건 '제3의 길'은 국가 개입주의 퇴조 경향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이 생산과 고용뿐만 아니라 재분배의 기제로 부상했다. 그래서 고세훈은 마음속에 두었던 말을 맺음말에서 적는다.
"국유화와 같은 직접적인 수단은 물론이고, 노조 운동이나 조세를 통한 재분배마저 포기된다면, 이제 평등의 실현을 위해 노동당에 남아 있는 수단은 무엇이며, 거기에 사회주의 혹은 사민주의라고 이름 붙힐 만한 것은 무엇인가?"
하지만 고세훈은 세계화 담론이 아무리 융성해도, 오랜 세월 축적된 국가 복지의 제도적 유산이 일거에 철회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지난 200년간 영국 정당 정치가 국가 복지를 둘러싸고 보여주었던 존재와 생성 간의 역동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복지 정책이 구현되기 위해선 정치가 관건이다. 대한민국에서 복지 논란이 한참이고, 정치권이 누구보다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무상 급식, 반값 등록금 등 특정 부문에 대한 민심의 요구를 뒤늦게 수용하는 모양새에 머물고 있다. 복지 정책을 포함하는 국가 운영 모델에 대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프로그램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 아마 고세훈은 영국 사례를 통해 이것을 대한민국에 요청하고 싶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복지 국가로 나갈 수 있을까에 관심을 지닌 사람에겐, 영국 복지를 정태적인 제도론적 접근이 아니라 복지 정책이 추진된 정치 과정을 다루는 이 책이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85973.html
영국 복지 열쇳말 ‘국가 개입주의’ (한겨레, 최원형 기자, 20110705 20:24)
영국은 이른 산업혁명을 이뤄냈지만, 한편으로 빈곤과 실업 등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일찍부터 머리를 싸맸다. 이 때문에 ‘복지’에 대한 영국의 국가적 경험과 고민은 갖가지 복지담론에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해왔다.
영국 사회정책 전문가인 고세훈 고려대 교수(공공행정학부)가 최근 펴낸 <영국정치와 국가복지-신(New)자유주의에서 신(Neo)자유주의로>는 18세기 말부터 최근까지 영국이 겪었던 그런 경험과 고민을 풀어서 쓴 책이다. 책머리에서 “영국 정당정치에 나타난 복지사상과 정책을 국가 개입주의라는 일종의 ‘포괄’ 개념의 맥락에서 살펴봤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 지은이는 영국 복지의 열쇳말을 ‘국가 개입주의’에서 찾는다. 사회보장과 같은 직접적인 복지정책뿐 아니라 노동, 조세, 고용, 정책, 외환이나 금융정책 등 경제정책 전반적인 영역에서 국가가 어떤 논리를 갖고 포괄적으로 개입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영국의 튼튼한 정당정치의 역사와 함께 각 정당이 구현한 정책에 밑바탕이 됐던 벤담주의, 신(New)자유주의, 구(舊)토리주의, 페이비언주의, 대처의 신(Neo)자유주의 등의 사상적 흐름을 갈래별로 짚었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국가와 같은 사회제도의 기능을 강조했던 벤담주의에서 보듯이, 영국의 자유주의에는 국가 개입적 요소가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것이 지은이의 평가다. 20세기 초 빅토리아 말기에 자유당 정부가 추진한 신(New)자유주의적 국가복지 정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입법 제정, 어린이 구호 조치, 노령연금, 건강보험, 실업보험 등이 대표적인 성과라 한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자유당은 자유주의의 주류로 자리잡지 못하고 노동당에게 당원들을 내줬고, 신(New)자유주의적 전통은 노동당의 사민주의자들에게로 넘어갔다. 1923년 처음으로 집권한 노동당은 영국의 ‘자생적 사회주의’인 페이비언주의에 기대어 강력한 국가 개입주의를 펼쳤다. 노동당 집권 시기의 보수당 역시 ‘온정적 보수주의’ 전통이 남아 있기에 국유화 등 노동당의 강력한 국가 개입주의에 함께 호응하는 등 ‘합의 정치’를 보여주기도 했다고 본다.
영국의 복지 역사에서 가장 큰 이행이 있었던 시기는 영국이 구제금융을 받을 만큼 경제가 악화됐던 1970년대 후반이라고 볼 수 있다.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가 수상으로 취임한 뒤 펼친 정책은 기존의 국가 개입을 긍정하는 전통적 합의 정치를 전면 부정하는 시장 만능주의였다. 신(Neo)자유주의라 불리는 이러한 노선은 국유화된 산업을 민영화하고 공공 지출의 대폭 삭감, 감세, 탈규제 등을 추진했다. 이는 빈부의 상대적 격차가 증가하고 빈곤층의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18년 보수당 집권을 깨고 ‘제3의 길’로 등장했던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 역시 그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지은이는 “오랜 세월 축적된 국가복지의 제도적 유산은 일거에 철회되지 않는다”며 영국 국가복지가 정당정치 속에서 꾸준히 역사적으로 흘러온 맥락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정치는 갈수록 비대해져 왔지만 그것은 조야한 권력의지의 난투였을 뿐”인 한국의 상황에 대해 경고와 교훈을 함께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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