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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모델 - 최연혁의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810120958
'아메리칸 드림'? 아니 '스웨디시 드림'! (프레시안, 신필균 복지국가 여성연대 대표, 2012-08-10 오후 5:30:52)
[프레시안 books] 최연혁의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2011년 이래 복지 논쟁이 가열되면서 그 중심에는 항상 스웨덴이 있었다. 따라서 스웨덴의 사회, 복지에 관한 서적들이 많은 관심 속에 출간되었다. 최연혁의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쌤앤파커스 펴냄)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최연혁은 25년간 현지에서 살면서 스웨덴의 정치, 사회, 노동 시장의 역학 관계를 연구하며 다른 한편 한국과의 비교 정치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1930년대 이후 스웨덴의 정치가 일구어온 골고루 잘사는 나라, '복지 국가'의 실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추구해야할 국가상을 제시 한다.
이 책은 도서관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쓰인 것이 아니라 정치인 및 다양한 사람과의 개별 인터뷰와 생활의 실제 체험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가지기 힘든 많은 사람들에게 소중한 간접 체험을 제공한다.
이 책의 영문 제목인 "스웨디시 드림(The Swedish Dream)"이 시사하는 것은 과거 가난한 유럽인과 또 많은 한국인이 아메리칸 드림을 따라 미국을 갔던 것과 달리 이제는 스웨덴 복지 국가를 미래의 대안으로 즉 '스웨덴과 북유럽을 롤 모델'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 복지 국가의 실상이 어떠냐를 생생히 소개하는 것과 아울러 저자의 가장 큰 관심은 이것이 가능했던 동인을 찾는데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저자는 무엇보다 스웨덴의 정치 문화에서 이것이 연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성숙한 공직 사회
빈한한 농경 사회에서 풍요하고 민주적인 산업 사회와 복지 사회를 이룬 스웨덴의 근대 역사는 말할 나위 없이 세계의 근대화 가운데 가장 뚜렷한 성공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복지 국가가 스웨덴을 이룬 두 축은 성공적인 경제 성장과 아울러 노사 관계를 위시한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주의의 성장과 발전이다. 정치학자인 저자는 이 중에서 특히 스웨덴 정치 문화의 투명성, 탈권위주의에 주목하고 있다.
"특권의식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살인적인 업무 때문에 힘들어서 국회의원 못하겠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으며, 그 결과 점점 높아지는 정치인 이직률이 고민"(9쪽)이라는 사실은 한국의 정치현실과 지극히 대조적이다. 정치인, 선출직 공직자가 국민위에 군림하는 "정치 계급"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오히려 사적 이익과 사생활을 희생하는 태도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많은 신생국 민주주의에 귀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 개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스웨덴 의회주의의 건강함에서 깊은 자극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정치 제도의 문제이며 그러한 제도를 선택하는 것은 국민의 몫임을 강조하고 싶다. 스웨덴 정치인은 세계에서 일하는 시간이 가장 김에도 불구하고 개인 보좌관이 한명도 없을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다. 국민 소득 4만 달러 국가인 스웨덴 국회의원의 연간 급여는 우리 돈으로 1억 원을 약간 넘는 수준이며 단 하루를 근무해도 나오는 의원 연금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한국 국회의원이 누리는 각종 특권 역시 꿈같은 이야기이다.
깨끗하고 투명하며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정치와 공직 사회에 대한 신뢰가 존재하였기에 스웨덴 시민이 세계 2위의 높은 세금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복지 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정치와 공직 사회의 특권, 권위주의, 낭비를 폐지하고 혁신하려는 노력이 수반될 때에 복지를 위한 증세라는 구호는 강한 지지를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암시를 얻을 수 있다.
스웨덴에서 정치인이 어떻게 발굴되고 성장하느냐를 보여준 것도 시사점이 크다. 특별한 사람이나 경력이 아니라 소박하고 성실한 보통 시민이 정치인으로 대성할 수 있고 또 그러하기에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소박하고 성실한 보통 시민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이 반드시 보고 배워야 할 성숙한 정치 문화라 할 수 있다.
사회적 조합주의
스웨덴 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인 합의주의에 관한 소개가 새로운 것은 아니나 이 책에서 언급한 '하르프순드 협의 민주주의'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주 목요일 총리가 주도하여 정치인, 재계와 노동조합의 지도자가 만나는 이 자리에서 주요 사회적 현안에 관한 사회적,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사회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된 것 역시 우리가 심사숙고해야 할 점이다.
과연 어떻게 대화와 소통을 통하여 사회적 합의 문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가? 여야, 노사가 서로를 적으로 상정하는 듯한 한국의 대결적 사회 문화를 협의적 혹은 합의적 문화로 전환하기 위해 스웨덴식 협의주의와 합의주의 문화는 중요하게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산업 사회의 초기에 유럽 대륙의 어느 국가에 못지않은 격렬한 계급 대립의 시기를 거쳤지만, 스웨덴은 살트셰바덴 협약(1938년)과 렌-마이드네르 모델(1951년)을 통해 노사 간 그리고 노동자 내부에서의 이해관계를 사회적으로 조정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만남, 소통, 이해를 통해 공동의 이익을 창출해 내는 스웨덴의 갈등 해결과 이해관계의 조정 방식 뒤에는 기회의 평등을 뒷받침하는 보편적 교육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기업에 관한 태도에서 한국과 스웨덴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이러한 사회 제도가 만들어 낸 문화에서 연유한다고 보겠다.
스웨덴 복지 국가는 노동조합총연맹(LO) 같은 노동조합과 대기업이 같이 사회적 존중과 신뢰를 누리는 가운데에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자산의 형성에는 국민의 삶을 가장 중요시한 현명한 정치인들의 거중 역할이 있었음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유토피아 스웨덴?
스웨덴은 우리에게 부럽고 바람직한 많은 사례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 사회에도 문제점, 갈등,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이 책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과 실상"을 소개하려는 것이라면, 복지 제도가 개개인에게 전달되기까지 갈등, 진통, 후유증을 달리 받아들인 시민의 이야기도 때론 약이 될 때가 있다. 현재 스웨덴이 당면하고 있는 갈등과 고민 그리고 이에 관한 토론을 소개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20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스웨덴은 노동자 계급의 빈곤 해소와 각종 사회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보편적 복지 국가의 건설을 이루었다. 그러나 현대 스웨덴은 1990년대 이래 세계화, 유럽화 그리고 정보화 시대의 변화 속에 놓여 있다. 이 와중에 과거 복지 국가의 건설기에 볼 수 없었던 이민자의 대량 유입과 다문화 사회의 갈등, 산업 구조의 재편에 따른 사회 구성의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가 스웨덴 모델이라고 칭하는 사회 정책들은 대부분 산업화 과정에서 만들어졌으며 이 정책들은 당시 사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를 해결한 국가적 수단이며 목표였다. 여기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시대에 따라 사회 문제는 변화하며 사회 정책 또한 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를 공유하며, 때론 제한된 자원 속에서 문제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진통을 극복하는 내용이 소위 '스웨덴식 방식'의 특성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 해결 방식(예를 들자면, 2000년의 연금 개혁)이 많은 다른 나라에서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스웨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정치권뿐만 아니라 각종 시민 단체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사회적 자본'(시민·사회단체의 네트워크)이 가장 잘 형성된 나라 중 하나이다. 스웨덴의 사회 보장 제도는 저자가 비유한 "마라톤 완주를 도와주는 작은 물컵"(33쪽)이상의 국가 운영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라는 제목이 뜻하는 바와 같이 한국의 미래를 구상하는데 좋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저자가 정치인, 기술자, 청년 사업가 등 스웨덴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의 생애 과정 인터뷰 방법론을 택함으로써 한국의 다양한 독자는 이 책을 쉽고 편하게 대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복지 국가와 스웨덴에 관한 이해와 토론의 대중화에 대한 하나의 귀중한 기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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