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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신자유주의, 어디로? 대한민국의 미래 정치 모델을 찾아서' 공동 토론회(2012.5.25)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_facebook.asp?article_num=60120526222717
끝물 신자유주의, 그 너머엔… (프레시안, 김덕련 기자, 2012-05-27 오전 10:23:12)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새사연, '신자유주의 이후' 공동 토론회
2008년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이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거론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과 세계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는 아직 안갯속이다.
2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104호에서 이 문제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이 '포스트-신자유주의, 어디로? 대한민국의 미래 정치 모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공동 주최한 토론회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과 정태인 새사연 원장이 발표하고 김기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자, 전창환 한신대 교수, 최태욱 한림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사회는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이 맡았다.
홍기빈 "신자유주의, 인위적 정치경제 모델의 하나에 불과"
홍 소장은 '세계 경제의 위기와 정치경제 모델의 교체 : 한국의 선택은?'이라는 주제에 대해 발표했다. 홍 소장은 신자유주의를 "정치경제 모델"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를 "자연적 질서"로 이해하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의 주장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신자유주의는 나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유한하며,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정치경제 모델의 하나에 불과하다."
홍 소장은 자본주의의 변화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폈다. "19세기 자본주의는 자연적인 작동 법칙에 따라 경제가 굴러가도록 내버려두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였다. 정치와 경제를 서로 분리된, 완전히 구조가 다른 것으로 파악했다."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국제적인 금 본위제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박살이 났다." '거대한 전환'의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대공황을 거치면서 사람들에게 분명해진 명제가 있다. 우선 자본주의를 이대로 내버려두면 산업 생산의 조직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경제학 논리에서는 자꾸 이 이야기가 빠지는데, 민주 사회에서는 정치경제 체제가 (대중으로부터) 정당성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삶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1930년대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산업 생산의 조직과 정당성 확보. 이 두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도의 인위적인 질서를 새로이 창출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합의"가 만들어졌다고 홍 소장은 말했다. 홍 소장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참정권의 폭발적 확대와 맞물려 진행됐다고 말했다. "민주주의가 전면적으로 확장되는 순간이 오면 정치 질서와 무관한 경제 질서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정치경제 모델이 1970년대 들어 쇠퇴하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다.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는 산업 생산의 조직과 정당성 확보라는 두 과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었을까?
첫 번째 과제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해법은 자본 시장과 금융 시장에 최대한의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거칠게 비유하면 고스플란(옛 소련의 국가계획위원회) 같은 위치를 지구적인 자본 시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금융 시장과 자본 시장에서 최대한 규제를 없애고 지구적으로 통합하면 가장 합리적인 가격 산정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통용됐다."
홍 소장은 정당성 확보 문제와 관련해 "계속 간과됐으나 하나의 정치경제 모델로서 신자유주의를 떠받친 대단히 중요한 장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가계 부채를 증가시키고 이를 자산 시장으로 환수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가계 대출로 조달한 자금은 급박한 소비의 필요를 충당하고 남은 금액만큼 자산 시장으로 환수됐다. 가계 부문에서 유입되는 대규모 자금으로 자산 시장 규모가 확대될 뿐만 아니라, 자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전체 모델에 선순환 구조를 마련했다. 자산 가격의 지속적 상승은 가계 대출을 통해서나마 자산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다."
1970년대 이전이라면 공공 지출을 통해 사회 구성원에게 돌아갔을 혜택이,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에서는 금융 기관에 이자를 내고 사적으로 거래해 조달하는 서비스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홍 소장은 이를 "사유화된 케인즈주의"라고 불렀다.
자산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이들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는 "조세 감면으로 행복한 상류층과 포트폴리오를 통해 미래를 도모하는 일부 중산층의 적극적 지지를 얻으면 될 뿐"이었다. "하층 계급의 분노는 대출로 막으면 되고, 노조와 좌파 세력이 거의 와해됐으니 조직적인 반란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었다."
홍 소장은 2008년 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이 근본부터 무너져가고 있다고 봤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에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는 생각인데 누구도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신자유주의는 히스토리(history)가 됐다. 산업 생산의 조직, 대중의 정당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먹힐 수 없다."
금융 시장과 자본 시장에 무제한의 자유를 주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산산조각 나면서 "지적 기초"가 무너진 데다,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제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성 문제와 관련해 홍 소장은 지난해에 진행된 '점령하라(occupy)' 운동에 주목했다. 홍 소장은 이 운동을,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역사적 블록'에서 가장 중요한 우군이 신자유주의에 등을 돌렸음을 드러낸 사건으로 해석했다.
"이 운동에 참여한 미국인은 압도적으로 백인이 많았다. 대체로 대학 교육을 받은 중산층이었다. 이들이 외친 건 '부동산 대출, 대학 학비 대출 때문에 죽을 맛인데 자산 가격이 하락하니 어떻게 미래를 도모하라는 것이냐'였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미국 백인층에서 거의 날아갔다."
홍 소장은 이러한 세계사적인 전환기를 맞아 한국에서도 새로운 정치경제 모델을 구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홍 소장은 하나의 정치경제 모델을 구성하는 여러 정책과 제도들 사이의 상호보완성을 강조했다.
정태인 "양극화 추세 못 꺾으면 보편 복지 불가능"
홍 소장에 이어 정 원장이 '지속가능한 사회국가의 가치와 전략'에 대해 발표했다. 정 원장은 성장에 관한 국가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수출을 늘려서 파이를 키우면 구성원이 모두 잘 살게 된다는 '흘러내림 효과(trickle-down effect)'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미 증명됐기 때문이라는 것.
정 원장이 제시하는 대안은 소득 주도 성장 전략이다. "바깥으로부터(수출 주도), 위로부터(흘러내림 효과)" 성장을 추동하는 방식에서 "안으로부터(내수와 사회적 경제), 아래로부터(차오름 효과)" 성장하는 것으로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 원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소득 불평등이 심해졌는데 이는 임금과 생산성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1980년대까지는 생산성과 실질임금이 거의 같은 속도로 늘어났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생산성은 과거와 같은 비율로 증가하는데 비해 실질임금 상승 기세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생산성과 임금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2분의1로 결정하는 것이 소득 주도 성장 전략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생산성 향상에 상응하는 실질임금 상승이 거시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끈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조직률, 단체협상 적용률을 높이는 것도 소득 주도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제시했다.
소득 주도 성장 전략은 정 원장이 제시하는 거시 정책의 세 축 중 하나다. 나머지 둘은 재벌 체제 개편과 자본 통제다. 정 원장은 특히 자본 통제와 관련해 동아시아 공동의 토빈세(외환거래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토빈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 원장은 가라앉은 세계 경제를 회복시키는 전략에서도 동아시아가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동아시아는) 2000년대에 이르러 세계 제조업을 제패했다. 그 힘이 동아시아의 대규모 무역 흑자, 4조 달러에 이르는 외환 보유고를 낳았다. (……) 동아시아 협력은 역내 외환보유고 공동 관리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 이 중 최소 1조에서 2조 달러는 중국의 내륙, 북한, 몽골, 나아가서 동시베리아 개발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 부흥을 통해 세계 경기를 진작한 마셜플랜처럼 동아시아를 스스로 개발하면서 세계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
이러한 거시정책과 함께, 미시경제 차원에서 정 원장은 중소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지역사회에 뿌리를 둔 사회적 경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원장은 이러한 총체적인 전환 없이는 현재 "국민적 합의"인 복지국가도 불가능하다고 봤다. 정 원장은 특히 "시장에서 진행되는 양극화 추세를 꺾지 못하면 보편 복지는 불가능하다"며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던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2004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이 두 가지 지시를 내렸다. 하나는 양극화를 교정할 정책을 내놓으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부의 정책들 중 서로 부딪히는 건 없는지 분석하라는 것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는 '지금 정책 기조대로 가되 (양극화를 줄일) 보완책을 만들면 된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나와 이정우 교수는 정책 기조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졌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때 복지 지출은 늘었지만 시장에서 진행되는 양극화 추세가 그보다 컸다. 그 결과 불평등지수가 더 나빠졌다. 핵심 과제는 시장에서 이뤄지는 양극화를 막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한미FTA까지 했다."
전창환 "월스트리트 주도 금융 자본주의, 쉽게 목줄 끊기지 않을 것"
토론자로 나선 전창환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운명'에 관해 홍 소장과 다소 견해를 달리했다. "'신자유주의는 히스토리가 됐다'고 했는데, 비틀비틀하면서 꽤 갈 여지가 있다. 2008년에 위기를 겪었지만, 신자유주의는 히스토리로 가는 중이라고 본다."
전 교수는 2008년 위기 이후 월스트리트의 거대 금융 기관들의 수익성이 생각보다 빨리 회복됐다는 데 주목했다. 거대 금융 기관들이 어마어마한 로비 자금을 뿌리며 월스트리트 규제 법안을 무력화하는 등 금융 자본주의 개혁에 불리한 정치 지형이 형성됐다는 점도 눈여겨봤다.
또한 전 교수는 "미국이 월스트리트 금융만으로 이뤄졌다고 보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의 증권화, 극단적인 시장주의, 단기 수익 극대화와는 체질적으로 다른 금융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전 교수는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신용조합과 협동조합 조직의 금융 기관을 그 사례로 제시하며, "월스트리트 금융만 존재했다면 2008년에 망가졌을 때 미국 금융 시스템이 훨씬 큰 타격을 받았을 텐데, 신용조합 등이 범퍼 역할을 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고령화 추세로, 노후 생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월스트리트 금융 기법을 원하는 수요자가 꽤 탄탄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이런 사항들을 고려해볼 때 "월스트리트가 주도하는 금융 자본주의가 쉽게 목줄이 끊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금융과 관련해 전 교수는 "금융은 그동안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영역"이라며 "금융 민주화 작업을 시민운동, 노동운동 쪽에서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 제안했다.
전 교수는 정 원장이 제시한 동아시아 협력 방안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표했다. 이 대목에서 전 교수는 13개국(한국, 중국, 일본, 아세안 10개국)이 2000년에 "동아시아 역사상 최초의 금융 통화 협력"인 치앙마이 협정을 체결했지만, 2008년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 회원국들은 이 협정을 적극 활용하는 대신 미국 연준에 손을 내민 것을 그 사례로 제시했다.
다른 토론자인 최태욱 교수는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형 조정시장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기준 당선자는 투기자본 규제를 통한 금융 공공성 강화,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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