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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H 콜의 <영국 노동 운동사> 서평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1005115002
"노동 운동은 망했어!" "아니, 이제 시작!" (프레시안, 양솔규 진보신당 경남도당 당원, 2012-10-05 오후 6:57:36)
[프레시안 books] G. D. H. 콜의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조지 더글러스 하워드 콜 지음, 김철수 옮김, 장석준 감수, 책세상 펴냄)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장(場)에는 '전설'로 불리는 사람이나 작품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신비주의'적이며 관음증의 욕망을 배가시킨다. 영국의 역사학자 조지 더글러스 하워드 콜(G. D. H. Cole) 역시 그러했다. 수많은 역사책들의 문헌 해제에 자주 등장하는 이 요상한 이름의 역사가는 그러나 '참고 문헌'을 벗어나 자신의 진면목을 알몸 그대로 드러내는 기회를 한국에서만큼은 좀처럼 잡지 못했다.
오래된 저서의 일부만이 번역되어 있고(<사회주의 사상사Ⅰ>(1987년)), 미국의 사회학자 라이트 밀즈가 펴낸 <마르크스주의자들>(한길사 펴냄, 1982년)에 단편적인 글 하나가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이 책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 역시 1980년에 선보였다가 사라진 지 오래다. 오죽하면 몸이 달아오른 이 번역본의 감수자 장석준은 출간되지도 않은 책에 대한 서평을 2월에 썼겠는가?
돌이켜보면, 콜만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위대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톰슨이 1963년에 발간한 기념비적 저서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창비 펴냄) 역시 출간된 지 37년이 지난 2000년에 번역되었고, 콜의 선배들이었던 페이비언주의자 시드니 웹과 베아트리스 웹 부부의 1920년 저작 <영국 노동조합 운동사>는 무려 70년이 지난 1990년에 겨우 번역되었다.
한국의 지적 풍토는 냄비와 같아서, 유행에 따라 쉽게 불붙었다 꺼진다고들 말한다. 마르크스주의 바람이 한 번 불었다가, 포스트주의 바람이 한 번 불고, 비판 이론은 한 물 가고, 발전주의 이론이 훑고 간다. 한 번 바람이 불 때 주요 저작이 전부 소개되면 좋겠지만, 바람의 주기는 그러기에는 너무 짧다.
무슨무슨 주의와 분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자기 분야를 진득하게 소개하는 학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밀턴 프리드먼이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꾸준히 소개하고 한국 사회에 적용하고 있는 뉴라이트 자유기업원이 그래도 낫다고 해야 하나?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르겠다. 특히나 노동 운동사, 사회 운동사는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맞이한 깜짝 특수가 지나간 후 때 이른 조락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나마 영국의 경우에는 톰슨과 웹 부부의 책, 고세훈의 <영국노동당사>(나남출판 펴냄) 등 몇 권 책이 번역되어 나와 있지만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웨덴, 미국 등 서구의 주요 노동 운동의 역사와 시스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너무 없다. 서구 이외의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의 번역을 계기로 콜의 다른 저서, 예를 들어 <협동조합의 한 세기>, <길드 사회주의 재론>, <일반 노조의 시도> 등도 번역되었으면 좋겠고, 아돌프 스터름탈의 책과 같이 세계 노동 운동사의 지적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대체 노동조합 내셔널센터의 자원은 다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목마른 사슴들은 많은 듯한데, 정작 자기 먹을 우물 팔 시간과 여력은 없는 것일까?
아돌프 스터름탈이 쓴 명저 <유럽 노동 운동의 비극>(황인평(황광우) 옮김, 풀빛 펴냄, 1983년)의 문헌 해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국 노동 운동에 관한 '가장 간결한' 역사는 G. D. H. Cole의 <A Short History of the British Working Class Movement>."
그 '간결한' 책이 바로 이번에 재출간된 765쪽짜리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이다. 결코 '간결'하지 않으나 '간결하다'고 소개되는 이 책에는 절대로 '간결'하지 않은 영국 노동 운동의 지난한 투쟁과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 산업 혁명, 차티스트 운동과 1848년 세계 혁명, 1880년대의 사회주의 운동의 분출, TUC(British Trades Union Congress)와 노동당의 창당과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과 짧은 전간기 등, 숨가쁘게 달려온 노동 운동의 역사가 자본주의의 선두 주자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 속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영국 노동 운동의 온건함과는 다른 격렬함과 혁명적 열기도 있다. 또 경제 투쟁이 가로 막혔을 때, 정치 투쟁의 외피를 두른 차티스트 운동이나, 반대로 노동 정치가 효력이 없자 경제 투쟁으로 전환하는 노동자들의 '본능적 기민함'은 가히 19세기 '집단 지성'의 힘을 보는 듯하다.
콜은 영국 노동 계급 운동을 굵직한 사건들을 경계로 해서 몇 개의 시기로 나눈다. 그 기준은 자본주의의 성격 변화와 이에 맞춰 달라져 온 노동 운동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먼저 1789년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을 거쳐 1848년으로 이어지는 1단계이다. 이 시기는 "과거를 회고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장래를 기대한 만큼이나 과거를 회고"하는 시기였다. 말하자면, "노동 운동은 힘이 너무 미약했던 반면에 자본주의의 상승하는 힘은 너무나 강했던" 시기였다.
콜은 이러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압축한다. "가장 근본적인 면에서 차티스트 운동에 이르기까지, 차티스트 운동을 포함하여 모든 노동 계급의 운동은 농민 운동이었다."(177쪽) 미국의 사회학자 비버리 실버 식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거대하고 격렬한 소요를 '폴라니식 노동 소요'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상승하는 힘'은 곧바로 빅토리아 시대의 중기라 일컬어지는 2단계를 지배한다. 1848년부터 1880년에 이르는 2단계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황금 시대'였다. 이 시기에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견고하게 발전하고, 운동은 온건화된다.
3단계는 1880년대에 사회주의의 교리가 노동 계급에 폭넓게 수용되면서 시작된다. 노동 운동은 점점 더 미숙련 노동자층에게 받아들여지고, 점차 노동 정치 운동의 독자성이 발현된다. 러시아 혁명과 양차 대전 시기인 4단계에 와서 영국 노동 운동은 일국 차원에서 벗어나 국제화되기 시작한다. 또 전쟁이 가져온 기술적, 사회적 변화로 인해 노동 계급 내부의 막대한 변화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여성 노동의 전면적 등장과, 미숙련 노동의 전면화가 이에 해당한다.
자본주의 전 시기에 걸쳐 영국 노동 운동은 자신의 '연합적 힘'(에릭 올린 라이트)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켜 왔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힘이 항상 노동 계급의 승리를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가령 1926년 총파업의 패배와 1931년 2차 노동당 정부의 붕괴와 이어진 선거 패배는 비록 금본위제의 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지만, '연합적 힘'이 자신의 목적을 정교히 하지 못한 탓인 것도 분명했다.
수사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외칠 수는 있으나, 노동 운동의 몸통 역시 고전적 자유주의에 맞춰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2차 노동당 정부를 스스로 붕괴시키고 노동당을 탈당한 램지 맥도널드와 필립 스노든은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거부하고 고전적 자유주의를 고수하고자 한 단순한 반동적 대행자에 불과했을 뿐이다.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게 자신의 '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모든 나라, 모든 시기의 노동 운동의 과제일 것이다.
페이비언주의는 영국의 사회주의의 대명사이다. 이 사상은 영국 노동당을 넘어 영국 국가와 사회 제도와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시드니 웹과 베아트리스 웹 부부, 버나드 쇼를 비롯한 페이비언들은 존 케인스, 윌리엄 베버리지 등과 폭넓게 교우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영국식 판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영국 사회주의자들에게 페이비언주의를 넘어서는 것은 숙명과도 같았을 것이다. 콜은 <페이비언 사회주의>라는 책을 낸 바 있으며, 에릭 홉스봄의 박사 논문도 <페이비언주의와 페이비언들>이었다. 콜의 부인인 마거릿 콜은 <베아트리스 웹과 시드니 웹> 전기를 썼다.
콜에 대해 '페이비언의 재갈'을 문 '볼셰비키의 영혼'이라고 한다.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에는 '볼셰비키의 영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페이비언의 구심력에서 벗어나려는 여러 가지 언급들을 제시한다. 사회주의의 불가피성 못지않게 점진주의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페이비언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의 '직접 행동'과 '혁명적 열기'를 배격한다.
웹 부부와 쇼와 같은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은 정치적 민주주의가 자동적으로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로 이어질 것이라 봤다. 그들에게 의회 민주주의는 필수적이었고, 점진주의와 합헌주의는 당연한 구성물이었다. 그래서 콜은 페이비언협회에 대해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 자유롭게 사유하는 단체"라고 말한 바 있다.
콜은 페이비언들과는 다르게 미국으로부터 역수입된 산업별 노동조합 운동이나, 생디칼리즘, 길드 사회주의를 중요하게 다룬다. 콜은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끄는 권력이 위치하는 곳을 산업 현장에서 찾았다. 따라서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노동 정치 운동 뿐만 아니라,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주체들이 참여하는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운동이 필수적인 것이다.
콜은 페이비언의 엘리트주의 역시 넘어서고자 했다. '물처럼 차가운 시드니 웹'과는 달리 콜의 가슴은 불처럼 뜨거웠으며, '방만 깨끗이 청소'하고자 한 게 아니라, '영혼의 창문을 열고자' 했다. 콜은 영국 사회주의에 짙게 스며든 그 페이비언주의를 넘어서고자 한 것이었다.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는 그래서 "노동조합이란 임금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 생활 제 조건을 유지 또는 개선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항상적(恒常的)인 단체"라고 정의한 웹 부부의 <영국 노동조합 운동사>와는 다르다. 웹 부부에게 노동조합은 그 성격상 경제주의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하지만 콜은 "노동 운동은 노동조합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자기 신뢰와 단결을 배우는 학교"로 본다. "본질적으로 노동 계급의 정치 조직은 노동조합 운동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콜은 영국 노동 운동을 노동조합 운동에 한정시키지 않는다. 노동 정치 운동과 협동조합 운동 역시 노동 운동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협동조합 운동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있지는 않다. 콜은 "세 날개"(674쪽)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서술에 있어서는 "양 날개"에 치중하고 있다. 그 이유는 현실에서의 협동조합 운동은 발전 과정에서 변혁성이 거세되고 독립성이 강화되면서 '양 날개'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그가 협동조합 운동을 경시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공통의 필요에서 발생했으며 동일한 계급에 의존"하지만 "그들의 이념과 열망을 각기 다른 입장에서 표현하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힘'의 중요한 일부인 것이다. 따라서 콜에게 있어 세 날개는 "분리할 수 없는 한 줄기의 운동"(23쪽)이다.
콜의 책은 톰슨의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과 같은 명확한 역사 이론을 토대로 집필된 역사서는 아니다. 세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진 영국 노동 운동에 대해 1789년 이후부터 1947년 무렵까지 전반적으로 평이하게 서술한 통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 지식이 많지 않은 역사 비전공자들이 보기에는 콜의 책이 훨씬 쉽다. 웹 부부와 톰슨에 비해 더 긴 시기와 더 많은 주제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콜의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를 읽다보면, 톰슨이 상정한 '노동 계급 형성'의 시기인 1780~1832년이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톰슨은 영국의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가진 하나의 계급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루면서, 그 시기를 대략 1780~1832년으로 보고 있고, 자신의 저서도 그 시기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콜이 묘사한 이 시기 노동 계급은 '낡은 정신'을 간직한 과거의 계급에 불과하며, 톰슨이 마지막으로 다루었던 1832년의 선거법 개정의 결과도 "오히려 노동자들은 선거권을 빼앗겼고 주인이 정치권력을 단단히 거머쥐었"다고 본다. 영국의 역사가 홉스봄 역시, "톰슨이 영국 사회에 노동 계급이 등장한 시기를 19세기 초로 설정한 것은 옳았"지만 "노동 계급은 톰슨의 책이 이야기를 끝맺은 지 한참 후까지도 실질적으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홉스봄은 콜이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시기, 즉 "'전통적인' 노동 계급이 출현한 시기가 1880년대 훨씬 이전이 아니라, 그 다음 20~30년 사이"였다고 보는 것이다.
홉스봄의 말대로 노동자 대중들은 활동가들의 의식과는 다르며 활동가들의 기대에 맞추어 살지 않는다. 영국 노동 운동이 위기에 봉착하고, 사회주의자들이 때때로 절망적인 상황을 개탄할 때, 노동 운동의 지도자들이 두려움 속에서 노동 계급을 '지도'와 '통제'에 가두고자 할 때 오히려 영국 노동 계급은 다른 '길'을 만들었고, 다른 '성격'을 창조했으며 무엇보다 '용기'를 내었다.
언뜻 모순적으로 보이고, 때때로 이기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태도와 선택을 토대로 해서 사회주의도, 창조적이고 전복적인 에너지도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결코 간략하지 않은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에는 승리의 영광도, 패배가 남긴 상처도 모두 들어 있다. 하지만 상처는 교훈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새로운 길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몸으로 체화시켜 켜켜이 쌓아 온 영국 노동 운동의 우여곡절을 여기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오래된 콜의 저서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우리가 바라보는 시간의 지평을 더 넓게 잡는 교정의 기회라는 점을 기억해두자. 이 '시간 지평'의 교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는 절망벽'에 대해 '낙관적 태도'로 마주할 수 있다.
지금은 비록 한국의 노동자 정치 운동이 좌초한 것으로 보이고, 노동 운동의 상급 조직들은 계급 조직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포기한 듯이 보이며, 현장의 열정과 에너지는 소진한 것처럼 보이는 현재. 당이든, 노동조합이든, 협동조합이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운동이 단 한 번도 자신의 '장기 전략'에 대해 토론하고, 수립하고, 실천해 본 적이 없는 '전략 부재'의 한국 노동 운동의 역사.
그러니까 '집단적 행동'으로서의 운동은 없고, 분파 운동과 고립된 싸움과 패배로 점철되어 생긴 아픈 상처가 남은 몸. 노동 계급의 보편적 의제인 '노동 시간 단축'과 '교대제' 문제조차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사가 비공인의 패턴 교섭(pattern bargaining)으로 해결해 버리고 마는, 비정규직 문제 역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이 과도한 대리전을 치르면서 총자본의 탄압이 집중되고 노동의 연대는 기업의 벽에 가로막히고 마는, 그래서 노동 시장의 안과 밖 양쪽 모두 현대자동차 사측이 주도하는 현대 공화국, 삼성 공화국, 자본주의 공화국의 극단적 노동 배제의 시대에 전망은 어디에 있으며, 희망의 근거가 어디 있느냐고 묻게 되지만 말이다.
운전을 할 때 시야를 어디에 두느냐가 운행 안전에 매우 중요하다. 너무 가깝게 시야를 두게 되면, 굴러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 보이고 위험해 보이기 마련이다. 콜의 저작을 읽으면서 우리 시대의 인식 지평을 좀 더 넓고 멀리 둔다면, 비록 한국 노동 운동이 마주한 현실이 척박해 보이고, 조급해지는 마음을 조금은 더 정교하고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흔히들 '장사 하루 이틀 하나?' 라고 말한다. 기나긴 자본주의 역사만큼이나 긴 영국의 노동 운동의 역사가 우리를 위로해 주는 방식은 아래의 영화 대사와 같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도저한 낙관이었다. "결국 다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지 않다면 아직 때가 아닌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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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추종하는 빨갱이? 좌파 살길은 '녹색'뿐! (프레시안,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 2012-02-03 오후 6:09:05)
[장석준의 '적록 서재'] G. D. H 콜의 <영국 노동 운동사>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파산 금융사들을 사실상 국유화하는 조치를 단행하자 공화당 진영에서는 "이것은 금융 사회주의"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통령(조지 부시)이 네오콘 공화당원이고 재무장관(헨리 폴슨)이 월가의 은행가인데도 이들의 위기 처방에는 "사회주의"라는 딱지가 붙었다. 20년 전 사망을 선고받은 '사회주의'가 투기로 돈을 날린 백만장자들의 생명줄로 참으로 기이하게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미국 정부의 은행 구제 조치를 "사회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둔 것은 국가의 경제 개입이다. 이들에게는 사적 자본이나 시장 경쟁에 맡겨야 할 일에 국가 기구가 나서는 것이 곧 '사회주의'다. 즉, 이들에게 '사회주의'는 그냥 '국가주의'라고 해도 상관없는 물건이다.
꼭 미국의 골수 공화당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구 위 대다수 생활인의 상식 속에서 '사회주의'는 곧 '국가주의'다. '사회주의'라고 하면, 남한 사람은 국가 최고 권력자를 예배 대상으로 삼는 이웃 체제를 떠올릴 것이고, 중국 사람은 공산당 국가 관료의 훈시를 연상할 것이다. 또 동유럽 사람은 20여 년 전 일당 독재 시절을 기억할 것이며, 서유럽 사람은 아직 남아 있는 복지 국가의 여러 법제들을 떠올릴 것이다. 공통의 열쇳말은 결국 '국가'다.
물론 지난 30여 년간 인류 사회의 풍향계가 지나치게 '시장' 쪽으로 쏠려 있었기에 요즘은 이런 식의 '사회주의', 즉 '국가주의'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서구 신자유주의 비판자 가운데는 과거 한국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는 스탈린주의 국가와 신자유주의 시장이 결합된 중국 모델이 비슷한 시각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가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일 수는 없다. 시장주의, 국가주의 모두 우리가 깨어나야 할 악몽들이다. 은행가들이 지배하는 체제만큼이나 정치국원이 지배하는 체제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실 신자유주의가 이토록 무소불위의 지배력을 갖게 된 것도 그 전의 중앙 집권형 계획이나 복지 관료제의 경험들이 결코 유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30여 년간 시장주의는 이러한 국가주의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연료 삼아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이다.
'국가'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 길드 사회주의
이 대목에서 우리는 상식에 반하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사회주의가 과연 국가주의일 뿐인 것인가? 사회주의의 그 '사회'가 '국가'로 대체되거나 환원될 수 있는 것인가? 애당초 사회주의자들이 그렇게 생각했을까? 사회주의 운동이 그런 걸 실현하자고 분투했던 것일까?
정색을 하고 들여다보면, 금세 전혀 다른 그림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마르크스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가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 선언>에서 궁극적인 이상으로 내세운 것은 '자유인들의 연합'이었다. 이 '연합(association)'은 자본주의 기업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국가 관료 기구도 아니다. 마르크스, 엥겔스가 굳이 '연합'이란 말을 쓴 것은 바로 이 두 지배적인 조직 형태와는 다른, 삶의 조직화 형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비롯한 1세대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맞선 대안에 '국가주의'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은 '사회'주의이든가 아니면 '코뮌(commune)'주의('공산주의'로 불만족스럽게 번역되는)였다. 여기에서 '사회'와 '코뮌'은 모두 <공산당 선언> 속의 '연합'과 비슷한 함의를 지닌다. 미래의 주역은 '사회'나 그 미래형인 '코뮌'이지 '국가'는 아니다. 비록 사회가 때로 국가를 통해 대변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독자적인 실체다.
다른 누구보다도 이런 맥락에서 '사회'를 강조한 사상가는 칼 폴라니다. 그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홍기빈 옮김, 길 펴냄)에서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허구의 장막을 뚫고 점차 그 육중한 실체를 드러내는 주인공이 바로 이 '사회'다. 그런데 폴라니는 이러한 '사회'의 발견을 오롯이 한 선구적 사상가이자 실천가의 공적으로 돌린다. 그는 클로드 생시몽, 샤를 푸리에와 함께 흔히 유토피아 사회주의의 세 거장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로버트 오언이다.
"그 누구보다도 산업 사회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깊이 파고들었던 이는 로버트 오언이었다. 그는 국가와 사회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고드윈처럼 국가에 대해서 편견을 품는 일도 없었지만 그것이 수행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기대하는 법도 없었다. 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을 피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개입이라면 얼마든지 국가에 기대했지만, 사회를 조직하는 일 자체를 국가에 기대하는 법은 결코 없었다. 국가라는 정치적 메커니즘도, 또 기계라는 기술적 도구도 가장 핵심적인 현상이 무엇인지를 꿰뚫어보는 그의 혜안을 가리지는 못했다. 그 핵심적인 현상이란 바로 사회라는 것이었다." (<거대한 전환> 366쪽)
그런데 폴라니만큼이나 이런 측면에서 오언에 주목한 또 다른 위대한 사회주의 사상가가 있다. 그는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경제학자이고 정치, 사회학자이며 역사가인 (그리고 심지어는 추리 소설 작가이기도 했던) 조지 더글러스 하워드 콜(G. D. H. Cole, 1889~1959년)이다.
콜은 '길드 사회주의'의 주창자였다. 우리에게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김명환의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 : 길드 사회주의>(혜안 펴냄)가 유일한 우리말 소개서다!), 길드 사회주의는 폴라니에게도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안토니오 그람시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같은 당대 일급 사회주의자, 노동 운동가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유럽 대륙에서 노동자 평의회를 중심에 놓고 혁명을 바라보던 로자 룩셈부르크, 구스타프 란다우어 등의 흐름을 영국의 풍토에서 전개한 이들이 콜을 비롯한 길드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길드 사회주의는 한 마디로 사회가 (국가가 아니라) 길드들(guilds)로 실체화되는 사회주의다. '길드'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좀 낯설다. 아마 인터넷 게임을 즐겨 하는 분들에게나 귀에 익을 것이다. 이것은 본래 서구 중세의 수공업자 조합을 일컫는 말이다. 길드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기업과 구별되며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조합과도 다른 '생산자 조합'을 가리키기 위해 이 '길드'라는 오래된 단어를 재활용했다.
콜의 경우, 필요한 것은 생산자 조합만이 아니었다. 소비자 조합도 중요했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길드들을 통해 대중의 이해가 조직으로 실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콜의 길드 사회주의에서 경제 전반을 조절하는 것은 국가 기구가 아니라 이들 길드 사이의 협력과 협상이다. 기존의 국가 기구는 오히려 이제까지의 그 배타적인 권력 중 상당 부분을 길드와 같은 자발적 결사체들에 이양해야만 한다.
콜의 길드 사회주의가 의도한 것은 로버트 오언이 발견한 '사회'의 의미를 가장 충실히 구현한 사회주의였다. 이후의 사회민주주의나 스탈린주의가 지향한 사회주의가 대체로 '국가 중심 사회주의'라 할 수 있다면, 콜의 이상은 '사회 중심 사회주의'였다. 국가 기구라는 단일한 대리 조직이 아니라 다양한 결사체들로 실체화된 역동적 사회 자체가 주역이 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또한 '다원적 사회주의'이자 '복합적 사회주의'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마치 시장/국가의 이분법에 갇혀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정말 시장주의와 국가주의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반복하는 것이 인류 역사의 숙명인 것일까? 시장주의 아니면 그 대안은 국가주의뿐이며 따라서 불만이 있더라도 시장의 자유에 만족하라는 서구 경제학자의 협박이나 아니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화 모델을 받아들이라는 중국 공산당 관변 학자의 궤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오언과 콜을 비롯한 고전 사회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사회 중심 사회주의', 좀 더 정확히 말해 본래의 사회주의는 이 답답한 이분법의 세계를 거부한다. 전복되어야 할 것은 진짜 주인공이 주인공으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시장/국가의 이항 대립 세계 그 자체다. '사회'를 육화(肉化)하라! '사회'의 능력을 배양하라! '사회'에 권력을!―애초 모든 운동의 출발점이었던 메시지, 그리고 다름 아닌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영국 노동 운동사>로 읽는 콜의 메시지
안타깝게도 콜의 수많은 저작들 중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얼마 안 된다. 특히 길드 사회주의를 직접 다룬 저작들은 소개된 적이 없다. 다만 그가 만년에 집필한 역사서들 중에 번역된 것이 조금 있다. <영국 노동 운동사>(김철수·김천우 옮김, 광민사 펴냄, 1980년)도 그 중 하나다.
콜은 역사가로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방대한 분량의 <사회주의 사상사>(국내에는 1권만 번역돼 나왔다. <사회주의 사상사 1>(이방석 옮김, 신서원 펴냄, 1992년))는 제2차 세계 대전 무렵까지 전 세계 사회주의 사상의 전개에 대한 정리로는 독보적인 저작이다. 그밖에도 그는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를, 때로는 노동당을 중심으로, 때로는 노동조합 혹은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여러 저작을 통해 다뤘다. 또 자신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로버트 오언이나 차티스트 운동가들에 대한 전기도 집필했다.
콜이 자신의 독창적 사상을 직설적으로 풀어낸 저작을 우리말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대로, 우리는 <영국 노동 운동사>를 통해 그의 문제의식을 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콜은 단지 냉정한 사가(史家)의 자세만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는 영국 노동 운동의 참여자 중 한 사람으로서 역사 서술 안에 논쟁적 평가를 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영국 노동 운동사> 안에서 길드 사회주의 시절부터 쭉 이어지는 콜의 사상의 편린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이것은 이 책을 읽는 이중의 즐거움이다. 사실 노동 운동의 발전 정도에 비해 국내에는 외국 노동 운동의 역사가 풍부히 소개되어 있지 못하다. 서점에든 도서관에든 각 국 노동 운동사 관련 책자가 별로 없다. 따라서 콜의 <영국 노동 운동사>는 가장 긴 산업 자본주의의 역사를 지닌 나라의 노동 운동에 대한 거의 유일한 우리말 읽을거리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독서의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이에 더해 영국 노동 운동을 쟁점 삼아 사상가 콜과도 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한국의 노동자나 진보적 독자라면 가장 먼저 놀랄 것은 이 책이 '영국 노동 운동사'이되 '영국 노동조합 운동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상식에 따른다면, '노동 운동'은 곧 '노동조합 운동'이다. 좁은 의미의 '노동조합 운동', 즉 작업 현장의 노동자 조직화와 경제 투쟁 그리고 단체 협상이다.
그런데 이 책이 다루는 것은 그런 의미의 노동조합 운동의 범위를 넘어선다. 노동자 정치 운동을 다루고, 생산 및 소비 협동조합을 다룬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상호부조 조직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어떤 역사적 국면에서는 노동조합보다도 정치 운동이나 협동조합이 더 중요한 배역을 맡는다. 실제로 영국 노동 운동이 그렇게 발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발전의 전체상을 애써 강조하려는 콜의 시각이 책 전반에 뚜렷이 새겨져 있는 탓도 크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노동 운동의 여러 부문이 결코 서로 다른 주체들의 분업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동일한 노동자들이 어떤 때는 노동조합의 투사로 나서기도 했고 어떤 경우는 차티스트 운동의 활동가가 되기도 했으며 협동조합의 선구자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이것들은 한 운동의 여러 얼굴들이었다.
영국 노동 운동의 초기 단계에 노동 운동의 이러한 성격을 상징하던 인물이 위에서 언급한 로버트 오언이다. 오언의 평전을 따로 쓰기도 했던 콜은 <영국 노동 운동사>에서도 그를 중요한 비중으로 다룬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영국 노동 운동의 여러 중요한 장면들에 마주하게 된다.
가령 오언의 영향 아래 추진된 일반 노동조합 운동이 그러한 사례다. 직업별 노동조합 특유의 분파주의에 찌들었다는 영국 노동 운동에 대한 일반적 평가와는 사뭇 달리 이 당시 영국 노동 운동은 20세기 초의 산업 노동조합처럼 최대 다수 노동자의 조직화를 원칙으로 일반 노동조합(general union)을 건설하려 했다. 그 시도는 1834년 전국노동조합대연합(Grand National Consolidated Trades Union)의 건설로 결실을 맺었다. 아쉽게도 이후 직업별 노동조합의 원심력에 다시 길을 내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노동조합이자 동시에 오언적 사회주의의 실험장이기도 했던 1830년대의 건축노동자조합 역시 흥미로운 사례다. 건축노동자조합은 건설업의 모든 숙련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도급을 독점하려 했다. 이를 통해 십장들(현대식으로 말하면, 파견 업체)의 중간 착취를 배체하려 했고 조합원들 사이에서 소득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 여기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건설업 방면의 생산자 조합, 즉 '길드'로 발전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 포부는 분명히 있었다. 역시 채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초기 영국 노동 운동에서 노동조합, 협동조합, 공제 조직 그리고 정치 운동은 서로 확연히 구분되지 않은 채로 거대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서로 얽혀가며 노동 계급의 '사회'를 구성하고 실체화해갔던 것이다.
콜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처럼, 오히려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와 노동조합이 체제 내 시민권을 확보하면서 이런 전통이 다분히 퇴색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영국에서는 한국 노동 운동에 비해 한층 다채로운 모습이 유지된다. 가령 소비 협동조합이 여전히 활기를 띠며 상당한 규모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콜과 함께 영국 노동 운동의 역사를 읽어내려 가면서 우리는 노동 운동의 과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21세기 한국 노동 운동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새롭게 성찰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높여서 임금을 더 받아내는 것만은 아니다. 또한 노동자 정당의 의석을 늘리거나 제도 권력에 참여하는 것만도 아니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더 중요한 다른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들일지 모른다. 풀뿌리 노동 대중의 '사회'를 만들고 거기에 형체들을 부여하며 그 지적, 도덕적 헤게모니를 확장하는 일, 이것이 노동 운동의 필생의 과제일 것이다.
노동 운동의 '녹색화'의 의미
1987년 민주화 투쟁과 함께 등장한 민주 노동조합 운동도 이미 장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민주 노동조합 운동 1세대가 벌써 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노동 대중의 '사회'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 실체가 모호하다. 존재하는 것은 단지 상층의 교섭이나 가끔의 파업 때에만 눈에 띠는 기업별 노동조합들뿐이다.
이 땅에도 또 다른 형태의 자생적 대중 조직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 시대부터 협동조합들이 있었고, 전통적인 계에서 발전한 공제 조직들도 있었다. 한데 이것이 1차로는 해방 공간의 좌파 탄압 과정에서, 2차로는 박정희식 산업화 과정에서 박멸되고 말았다. 흔히들 새마을운동이 그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자생적 결사체들마저 국가 권력 망 안에 모두 흡수되었다.
요즘은 주로 생태 운동 쪽에서 협동조합이나 대안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노동 운동은 노동조합, 협동조합은 녹색 운동' 식의 도식이 상식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건강한 상식은 아니다. <영국 노동 운동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협동조합이나 대안 공동체는 노동 운동의 또 다른 얼굴들이다. 단지, 한국의 노동 운동이 이것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 운동을 비롯한 전통 좌파 진영은 분명 '녹색화'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환경 의제를 좀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풀뿌리 '사회'의 재건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좀 더 근본적인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노동 운동 태동기의 그 생명력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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