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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노동 관련 프레시안 기획기사 (2012년 10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0926174333
아이는 '20만원짜리', 노인은 '100만원짜리'? (프레시안,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2012-09-28 오전 7:49:49)
[돌봄노동 연속기고·①] 바우처 제도의 그림자
2006년 이후 한국 사회 복지제도 중에서 사회서비스제도는 두드러지게 확대됐다. 사회서비스인 전자바우처의 제공대상은 2008년 약 60만 명 미만에서 지난해 약 140만 명으로 3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정부 재원의 경우 같은 기간 약 2850억 원에서 7707억 원(보육의 아이사랑바우처 제외)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용자와 재원 규모의 적정성을 논외로 한다면,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제도의 수치적인 발전 전망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회서비스가 확충된 이후 '서비스 공급구조의 시장 편향성' 문제, 그에 따른 결과로서 '서비스 질적 제고의 한계'와 '돌봄노동자의 노동문제' 등은 지속되고 있다.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와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관련 정책에 전향적인 개혁의지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다만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사회서비스에 대한 '공공성' 확대가 거론될 뿐이다.
그러나 선거 이후 새 정권은 사회서비스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하는 데 소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미 형성된 시장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충돌하고, 경직된 국가재정운용은 팽창된 복지담론에 미치지 못하며, 사회서비스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들의 의식도 낮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근본을 바꿀 만큼의 절박성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그냥 묻어 두기에 적당히 괜찮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사회서비스, 특히 돌봄서비스는 우리 사회가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형태로 실현되는 대표적인 제도이다. 한 사회의 돌봄서비스 수준은 그 사회가 사람의 가치를 어느 정도 존중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바로미터다. 이에 필자는 사회서비스의 시장화 문제가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훼손하는 가를 살펴보고 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사회서비스란 개인이나 사회 전체의 복지 증진이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사회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이다. 대표적인 서비스 영역은 사회복지(보육, 아동/장애인/노인 등 요보호자에 대한 돌봄), 보건의료(간병, 간호 등), 교육(방과 후 활동, 특수교육 등), 공공행정 등이다. 영역은 구분되지만 사회서비스는 포괄적으로 돌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사회서비스는 돌봄서비스의 다른 이름이다.
전통적으로 아동이나 노인에 대한 돌봄은 주로 가정에서 여성이 담당해왔다. 하지만 고령화, 가족구조의 변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대와 같은 사회·경제적 구조변화는 사회적 돌봄의 필요를 대두시켰다. 돌봄에 대한 책임도 개인의 영역에서 사회적 영역으로 서서히 전환되고 있다. 그런데 돌봄이 사회적 책임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돌봄의 가치'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가정에서 수행됐던 돌봄의 가치는 특정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 즉 돌보는 사람의 이해와 목적을 위해 돌봄의 대상자인 아동이나 노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돌봄의 가치는 '타인지향적'이다. 그러므로 개인이 수행하던 돌봄을 사회적 돌봄으로 바꾸려면, 행위의 동기가 '자기지향적' 요소보다는 '타인지향적'으로 실현되도록 체계화해야 한다.
그런데 보육시설이나 요양시설이 개인의 재산권을 근거로 설립되고 운영된다면 돌봄의 가치는 자기지향적 요소로 지배될 수밖에 없다. 돌봄서비스에서 이윤이 중요한 동기로 작동하면 돌봄의 가치는 시장적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아동, 노인, 장애인과 같은 요보호자들은 대상화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대상화된 시장으로 가족을 진입시켜야하는 딜레마에 노출된다.
돌봄서비스는 전자바우처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바우처제도란 일종의 쿠폰제도로, 이용자가 특정 사회서비스를 이용할 때 드는 비용을 정부가 대납하는 제도다. 대표적인 전자바우처 사업은 노인돌봄, 가사간병도우미, 산모신생아도우미, 장애인활동보조, 아이돌보미, 지역사회서비스 투자 등이다. 이러한 다양한 바우처사업은 생활시설, 재가, 그리고 보육시설의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복지서비스질은 정부가 현금지급 방식인 바우처사업의 대부분을 민간기관에 떠맡기면서 나아지지 않았다. 생활시설의 대표적인 사례인 노인요양시설의 경우를 보자. 최근 사설 노인요양기관이 급격히 늘어났고 시설들 사이에서 노인을 유치하려는 경쟁도 치열해졌지만, 서비스 수준은 시설마다 천차만별로 다르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은 시설에서 자신의 권익을 스스로 지키기 어려운 구조에 처하기 때문이다. 결국 노인들에 대한 서비스 수준은 가족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시설의 운영방침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한국에서 3등급 판정을 받은 노인들이 생활시설에 들어가는 경우가 20%나 늘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사실 국제적으로 노인에 대한 서비스는 시설보다 재가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추세다. 이는 노인이 그동안 향유해왔던 삶의 터전에서 살게 하되,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자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생의 마감이 아니라, 생이 지속되는 생활의 지원이 서비스의 중요한 가치인 셈이다.
그런데도 노인들의 시설 입소가 늘었다는 사실은 노인 스스로가 자녀의 부담을 덜거나 가족 내 갈등을 피하기 위해 시설에 입소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노년의 삶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의 목적과 다르게 오히려 당사자의 복지를 왜곡시켰다. 이 구조를 단절할 수 없다면 결국 개인과 사회가 노인부양의 책임을 사설시설에 맡긴 형국이 된다. 이것을 이용권 강화라고 볼 수 있을까?
노인, 장애인, 산모,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재가서비스의 현실은 어떨까. 재가서비스는 가정으로 파견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실제 서비스의 내용과 수준을 측정하기 어렵다. 특히 독거가구에서 이용자와 제공자 사이의 서비스 기준에 대한 이해가 다를 때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2인 이상 가구의 경우,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가 가족중심의 서비스로 이전되는 문제가 생긴다. 장애인 활동보조의 경우 시간의 제한에 따른 욕구불충분이 문제가 되고 있다.
끝으로 0세부터 취학 전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보육시설의 경우를 보자. 보육서비스는 아동의 욕구보다는 부모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며, 대상자인 아동에 대한 권익은 보육교사 및 원장에 의해 대리된다. 문제는 정부가 공공보육시설을 만드는 대신, 민간시설에 보육료를 지원하는 보육정책을 펼친다는 점이다.
시설운영과 관련된 이해당사자가 영유아들의 건강한 양육을 위해 투명하게 운영된다면 스스로 대변될 수 없는 영유아의 욕구달성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설이 재산권을 근거로 한 자기지향적 가치로 돌봄을 제공하고, 이러한 구조에서 영유아는 시설 수입구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질 낮은 급식, 아동에 대한 방치 및 학대, 부당 수입 등은 일부 비상식적인 원장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구조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의 인권이나 가치가 제도 운영에 중요 변수가 될 수 있을까?
전자바우처는 돌봄서비스의 가치를 자기지향적 요소로 확정되는 데 기여했다. 전자바우처 도입을 위한 강력한 논거는 '개인의 서비스 선택권 강화'와 '공급자 간 경쟁 유발을 통한 서비스질 및 효용성 제고'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바우처 도입에 대한 논의는 매우 편향적이었다. 정부는 바우처도입을 통해 기존의 관료적인 공급자중심구조가 개혁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또한 제도의 확장을 꾀하면서도 공적 공급구조에 대한 계획 없이 이용자의 선택권만을 부각시켰다. 그 결과 바우처는 사회서비스 공급구조를 시장화시키는 데 매우 효율적인 수단이 되었다.
지난 2010년 말을 기준으로 전체 전자바우처 사업 제공기관 4831개소 중 국가기관 및 지자체 기관은 단 3곳에 불과하다. 영리기관은 1300개소(27%)이고, 개인소유의 기관수는 1058개소에 이른다. 정부가 공공기관 대신 민간기관에 사회서비스사업을 떠맡긴 셈이다. 아직은 비영리기관이 주로 전자바우처 사업을 제공하지만, 비영리기관 역시 더 이상 비영리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문제는 바우처사업의 민간 위탁이 정부의 주장대로 '시장 경쟁을 통한 서비스의 질적 제고'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난립한 민간기관들은 제한된 이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편법을 활성화시켰고, 서비스의 직접제공자인 돌봄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심화시켰다. 특히 노인요양기관의 경우 이러한 폐해가 심화되어 이용자의 가족까지 다양한 편법에 협조하거나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공급구조에서 돌봄의 대상자는 수입원으로써 '20만 원짜리 아이'부터 '100만 원 이상의 노인'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 어떤 제공주체도 노골적으로 대상자를 '돈'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겉으로는 복지를 내세워 스스로를 속이면서 안으로는 기관의 유지와 수익확보를 위한 고민에 골몰하게 된다. 시장에 돌봄을 내던지는 순간 이러한 현실은 예견됐고, 정부는 차후적인 평가인증 수준으로 문제를 수습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이미 포화상태인 민간시장구조를 바꾸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이를 뒤집어 본다면 수익적 개념으로 접근되는 아이들과 노인에 대한 가치전환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돌봄서비스 공급자들은 정부의 지침대로 사회서비스 시장에 진입했다. 그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유의미하지 않다. 다만 우리의 아이들과 노인들을 그렇게 돌보게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재고되어야 할 시점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0926182941
"60만원 주고 100만원어치 서비스 기대한다?" (프레시안,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2012-10-01 오전 11:06:50)
[돌봄노동 연속기고·②] 돌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
요양보호사 및 간병인, 각종 서비스의 돌보미, 장애인 활동보조인, 보육교사…. 열악한 처우에도 돌봄서비스가 제공되는 배경에는 서비스의 직접제공자인 돌봄노동자들의 눈물이 있다.
우리사회는 이들에게 적정한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 근거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비전문성을 내세운다. 하지만 최소 2시간에서 최대 24시간 타인의 가족을 돌보는 일이 과연 비전문적인가? 여성들이 영유아를 24시간 전담해서 돌보면 심각한 우울증에 노출된다. 또한 노인성 질환을 앓는 어르신이나 장애인을 집에서 돌보는 경우에도, 전적으로 이 돌봄을 담당하는 가족 구성원은 심리적, 육체적 어려움에 노출된다. 더욱이 맞벌이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요즘 누군가 가정의 돌봄을 지원해줘야 한다. 그 일을 사회적으로 수행해주는 이들이 바로 돌봄노동자들이고,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우리를 대신해서 돌봄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들어 돌봄영역에서 높은 이직률, 구인의 어려움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반적인 노동시장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드러나면 노동조건 개선 등이 추진되는데, 제고될 조건에 대한 검토보다는 독일이나 일본에서처럼 해당 노동에 대한 이주노동력 활용이 조심스럽게 언급되기도 한다.
아이들을 돌봐주고, 어르신을 보호하고,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일에 우리 사회는 최저임금수준만을 유지함으로써 이 일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물론 임금구조에서 여성노동자의 노동시장 임금이 낮기 때문에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전체 여성노동자의 임금수준의 제고가 필요하지만, 돌봄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역시도 중요하다. 60만 원의 급여를 제공하면서 100만 원 이상 서비스를 기대한다는 것이야말로 시장원리에서 철저하게 벗어난다. 돌봄노동자가 생활임금을 보장받고 고용안정이나 노동권의 측면에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러한 모든 관행이 시장에 맡겨지면서 당연시되어 왔다. 이것이 당연하다면 돌봄노동자에게 서비스 질적 제고를 위한 그 어떤 요구도 부적절하다.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족을 잘 돌봐주기 바라는 것은 매우 모순적이다.
돌봄서비스는 감정과 육체 모두가 소비되는 노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측정에 어려움이 있고, 노동강도 역시도 보이는 것만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이들이 먹고살기 위한 노동쯤으로 우리 사회의 돌봄을 담당하게 되는 것과 최소 생활임금 수준은 보장된 상태에서 우리들의 가족을 담당하는 것은 질적으로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돌봄노동자의 처우개선은 우리 사회의 인간적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매우 명확한 명분을 갖고 있다.
최저 출산율과 최고 자살률, 이 두 가지 지표는 한국사회 삶의 지표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준거이다. 사람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적극적인 개선 방안이 중요하다. 이는 비단 몇 가지 복지제도를 도입하거나 개선하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성찰의 시작은 아마도 '사람의 가치'와 '행복에 대한 가능성'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노동력을 가진 사람들에게조차 생존을 위해 필요한 보상이 부여되지 않는 노동정책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권리까지도 제한한다. 또한 현재의 노력이 내일의 희망으로 연결되는 경로가 차단된 구조에서 위험에 노출된 인간의 선택은 극단적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환경은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만약 자살률이 낮아지고, 출산율이 제고된다면 공포로 이슈화된 노령사회에 대한 이미지는 장수사회라는 긍정성으로 전환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전환을 위해 사회서비스는 긍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아이들을 키우는 어려움과 암담한 노인과 장애인의 삶 등에서 인간의 가치 제고를 원칙으로 누구의 희생이나 착취를 근거로 하지 않는 사회적 책임형태로 돌봄노동이 수행될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는 재편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재편되어야 할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돌봄의 가치는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타인지향적 요소로 유지되어야 한다. 타인지향적 가치가 사회에서 실현되기 위해서 공급구조의 개선과 전달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공급구조에서는 당장 시장질서 전체를 재편할 수 없다면 로드맵을 세워 개인의 재산권에 근거하지 않는 형태의 공급형태로 시장으로 재편돼야 한다. 지자체 직영형태와 비영리 민간형태가 대표적이다. 바우처 중심의 전달체계로 제도의 수용성은 높아졌지만 변화된 복지의식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바우처 전환 이후 급여에 대한 이용자의 책임의식이 문제되고 있고, 이용자 선택의 부정적 요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에 바우처 만능주의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제기한다.
둘째, 제도의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 수급층을 볼 때 보편적 성격이 가장 강한 보육지원 및 노인장기요양 이외의 사업에서는 소득 및 건강상태가 수급권을 결정하고 수혜층은 여전히 잔여적인 수준이다. 이렇게 볼 때 일반 시장에서 구매력이 떨어지는 가구이거나, 소득부족의 이유로 양벌이 형태의 가구 등은 그들이 원하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의 이해에 근거한 서비스를 제공 받게 된다. 즉 소득 수준에 따른 돌봄 영역의 계층화가 사회서비스 제도화로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서비스의 포괄성을 높일 수 있는 수급조건의 완화와 점진적인 보편주의가 고려될 수 있다.
셋째, 일자리의 양적 창출로서가 아닌 타인지향적 돌봄을 수행하는 일자리로서 돌봄 일자리를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취업 취약계층이나 중장년 여성노동층을 대상으로 나쁜 일자리를 수용하고 일하도록 강요해 왔다. 그러나 돌봄노동자들은 가족을 대신해서 요보호 가정의 돌봄을 담당한다. 이들의 가치가 소중하고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돌봄 노동자의 노동의 가치에도 이러한 의미가 투영되어야 한다. 이것은 일자리의 질적 개선을 통해 가능하고, 이를 통해 전 사회적으로 인간의 가치는 제고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사회서비스가 시행된 지 5년이다. 구조적 개혁이 이미 불가능하다는 식의 태도와 접근은 요보호 대상자들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위의 세 가지 요소를 바로잡는 필요성과 명분은 이미 충분하다. 사회적으로 형성될 타인지향적 돌봄의 실현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인간의 가치는 상당히 제고될 것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0930171923
"노인을 2500만 원에 팔아넘기는 '현대판 고려장'" (프레시안, 요양보호사 무명씨들, 2012-10-02 오전 7:48:40)
[돌봄노동 연속기고·③]요양보호사들이 말하는 돌봄 노동과 요양원 이야기
요양보호사들이 모여 현장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는 언제나 뜨겁다. 교육자리 건 다른 활동 자리건, 모였다 하면 언제나 현장 이야기로 빠지고 만다. 기관장이나 어르신 보호자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 그들에게는 해봤자 소용없는 이야기, 자식이나 친구들에게도 자존심 때문에 차마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지만, 협회 회원인 동료 요양보호사들 앞에서라면 얼마든지 털어놓을 수 있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는 끝이 없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털어놓으랴? 이 자리마저 없다면 요양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어디 가서 풀 수 있겠는가? 그녀들의 끝없는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엮어 보았다.
우리 요양보호사들은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요. "중고령 여성노동자들의 좋은 복지 일자리"라는 정부의 말에 우린 모두 속았어요. 그냥 노인만 돌보는 일이라면 괜찮겠어요. 그런데 온갖 일들을 다 시켜요.
재가 요양보호사들에게 김장이나 된장, 고추장을 담아 자식들에게 택배를 부치라고 하거나, 마늘 까기 같은 그 집의 부업꺼리, 심지어 밭일까지 시키기도 해요. 시설은요. 10년 넘게 일해 웬만한 간호사 신출내기보다도 우리가 더 전문성이 있어도 "아줌마, 이거 해, 저거 해"라고 부려먹으려고만 하죠. 그러니 우리를 "요양보호사"라고 제대로 부를 리가 없습니다.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방문 요양보호사는 가사도우미나 파출부로 소개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이런 부당노동 요구에 대해 센터장에게 불만을 이야기 해봤자 더 화만 나요. 대상자(등급 받은 노인)를 놓칠까봐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반응입니다. 이런 일을 거부하려면 당일 해고를 각오해야 합니다.
사설 요양시설에서는 꼼수가 난무합니다. "본인부담금(전체 서비스 비용의 15~20%를 본인이나 가족이 부담)을 면제해주며 대상 노인이나 가족을 유인하는 불법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센터장은 한 달에 90시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어르신을 70시간만 돌보고, 실제로는 90시간 근무일지를 쓰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받은 20시간의 부정 수가로 본인부담금을 면제해 주는 것이죠. 국민이 내는 사회보험금을 떼어먹는 짓이자, 내 노동시간을 줄여 내 임금을 깎아 먹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환자에게 더 잘하고 싶은데 사설 요양기관에서는 돈을 아끼기 위해 기저귀도 하루에 세 번만 갈라 쓰라고 하질 않나, 반으로 잘라 쓰라고 하지 않나…. 그러면서 퇴직금을 주기 싫어 가족이랑 센터장이랑 짜고 11개월 만에 문자로 해고 통보하는 건 다수예요. 내가 지금까지 환자를 열심히 돌본 건 도대체 무엇인가 싶어요.
안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센터장은 요양보호 대상자로 등급 받은 노인들 어디 없나 찾아보라고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등급 노인 한 명당 요양보호사에게 10만 원, 가족에게 10만 원을 주는 곳도 있어요. 요양등급을 받기 위해 공단 심사원이 집에 오는 날에는 노인에게 수면제 등 약을 먹이는 가족들도 있고, 일부러 치매나 인지능력 장애로 보이게 하려는 온갖 속임수를 센터장이 가족이나 노인에게 미리 교육을 시키기도 합니다. 시설도 마찬가지에요. 시설장은 시설을 넘기면서 노인 한 명당 2500만원에 팔아넘기기도 해요. 요양 서비스의 질이나 노인들의 돌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우리는 우리대로 하루종일 일하다 보니 그 분들을 돌보는 요양서비스의 질이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 혼자 30~40명 노인들을 다 상대하다보면 진이 빠지거든요. "노인 2.5명당 요양보호사 1인"이라는 규정은 서류상의 지침일 뿐입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다 보면, "아 나는 늙기 전에 빨리 죽어야지." 이런 생각까지 들어요. 정말 현대판 고려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노인들이 딱하고 안타깝죠.
정부에서 관리한다하지만 미리 알려주고 오는 그런 정기 평가는 하나 마나예요. 게다가 방문 요양보호사 분들은 정부에서 관리한답시고 RFID라는 전자 시스템으로 출퇴근 감시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게 아무 효과가 없어요. 멀쩡한 어르신들에게 수면제 먹여가며 요양 서비스 등급을 받으려 하거나, 70일 근무했는데 90일 근무했다고 근무일지를 조작해서 돈 떼먹는 센터장을 제대로 잡아내느냔 말이죠. 게다가 RFID 시설의 교체비용도 우리가 다 내야 합니다. 우리 감시하자고 만든 제도의 기기를 우리가 내면서 효과는 없는 셈이죠.
그런데도 우리 요양보호사들은 하루 12시간 혹은 하루종일 일해야만 12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답니다. 시설에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에게는 월 2회 정도 외출만 허용하고, 재가 요양보호사 분들에게는 24시간 입주 근무를 시킵니다. 그래야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다른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은 모두 단절됩니다. 이게 사람이 할 일인지 한숨만 나옵니다.
추석 명절에는 온 가족이 다모여 쉬는데, 그럴 수가 없어요. 무조건 일해야 하죠. 수당도 꿈도 못 꾸죠. 쓸쓸하게 자식들도 없이 요양원에서 홀로 있는 노인들 옆에서 지켜드리자는 마음으로 일하는 거죠. 이제 명절에 못 쉬는 건 괜찮아요. 제발 딸 결혼식이나 가까운 친척이 상을 당했을 때 대체인력이 없으니 동료 요양보호사들 눈치 봐야 하는 것만이라도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너무 미안하니까 제 돈으로 대체인력 넣고 나서 쉬었어요.
8시간 노동이요? 길게 일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12시간, 24시간 맞교대를 해야 겨우 120만 원을 버는데, 8시간 노동을 하면 월급이 얼마나 줄어들까요? 8시간 노동이 아니라 8시간으로 생활임금을 보장해야 합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12시간, 24시간씩 돌보는 일을 하다 보니 우리는 1년 정도 일을 하고나면 모두 골병이 들어요. 그런데 전혀 산재 인정이 안 됩니다. 규정대로 한다면 둘이서 같이 노인 한명을 씻겨야 하는데 그런 걸 지키겠어요?
그렇게 혼자서 열심히 돌보는데도 치매도 아닌 멀쩡한 노인들이나 가족들이 대놓고 무시하고 도둑 취급하면 정말 속이 상해요. 노골적으로 성희롱할 때는 정말 말할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죠. 그래서 이야기하면 "싫으면 관두라"는 식이에요.
우리가 노인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만큼 우리도 그들을 돌보는 노동자로서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우리는 환자를 돌보는 돌봄 노동자이자, 요양보호사에요. 우리와 마주치는 센터장, 시설장, 환자, 환자 가족들 그리고 사회가 우리를 그렇게 봐주길 바랍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1004190410
"아이 하나도 키우기 힘든데 20명을 돌보니…" (문경자 어린이집 교사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보육협의회, 2012-10-05 오전 8:15:32)
[돌봄노동 연속기고·④] 아이들의 또다른 부모, 보육교사의 현실
숨 돌릴 틈이 없다.
보통의 직장인들은 출근하면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혹은 차 한 잔과 함께 업무파악을 시작한다. 그러나 보육 교사들은 작업복인 앞치마도 걸치지 못한 채 아이들을 받기 시작한다. 먼저 내원한 아이의 상태를 살피다 정신없이 오전 차량반에 탑승해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가량을 보조석에 앉아 아이들을 데리러 다닌다. 어린이집에 도착하자마자 오전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점심시간에 아이들을 하나하나 챙겨가며 밥을 먹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 한 명씩 양치를 시키고 나면 점심시간도 일만 하다가 훌쩍 넘어가버린다. 그렇게 낮잠을 재울 시간이 다가오면 옷을 갈아입히고 이부자리를 봐준다. 아이 하나하나를 재우고 나면 그날의 일지를 또 하나하나 작성해 집으로 보내줘야 한다. 아이들이 떠나고 아이들이 있었던 공간을 치우고 장난감들을 소독하고 나면 하루가 훌쩍 가버린다. 우리에게 휴게시간은 없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보통 육아는 전쟁이라 한다. 가정에서 부모 한 명이 아이와 1:1 상황에서도 너무나 힘들어하는데, 우리는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만 4~5세는 교사 한 명이 아이들 20명을 봐야 하고, 만 3세는 교사 한 명이 15명, 만 2세는 7명, 만 1세는 5명, 만 0세는 3명을 봐야 한다. 그리고 이 기준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있지도 않은 유령교사를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이 허위로 보고하면 두 몫을 한 명이서 해야 하니 더 죽을 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교사들은 오래 버티지 못해 현장을 떠나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아이를 돌보는 일이라 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단지 노동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값어치 있고 또 가장 귀중한 일이다. 그런 일들을 하는 우리는 제대로 된 대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하루 10시간 가까이 초과노동을 하고도 수당을 받아본 적도 없고, 그나마 국공립이나 사회복지법인시설일 경우는 호봉으로 인정해주지만 전국 95% 이상의 민간어린이집에 고용된 교사의 급여는 매년 최저임금수준으로 맞춰지는 게 현실이다.
어린이집 운영시간은 07:30~19:30인 12시간이지만 8시간 근무를 위해 탄력근무나 2교대를 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에 나오는 주 40시간제가 적용되면서도 정작 어린이집에선 영유아보육법의 운영시간을 따르라 한다. 우리도 하루 중에 휴식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갖고 싶다. 하지만 어린이집에는 휴게공간이 없다. 휴게시간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휴게시간이 노동시간 안에 포함되는 것도 아니다. 월급 이외의 어떠한 수당지급도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노동강도만 점점 더 해져 갈뿐이다.
보육교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싶다.
어린이집은 행사가 많다. 각종 행사들을 준비하는 날이면 그날은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또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린이집 내부 시설을 정리하는 준비를 하는 날에도 야근을 한다. 물론 수당은 없다. 오로지 자부심 하나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린이집 반을 운영해야 하는데 차량운행에 동승자까지 하라하고, 행정업무에 청소에 모든 잡무까지 다 맡겨버리니 자부심 하나만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무상보육, 좋은 어린이집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로부터 결정된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이부자리를 봐주고, 아이들 하나하나를 살피는 것은 보육교사들이다. 점심시간에 제대로 밥도 못 먹고 조금의 쉴 틈도 없이 교사 한 명이 여러 명의 아이들을 감당하는 상황은 아이들과 보육교사 모두에게 가혹하다.
게다가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이 전권을 지닌 상황에서는 어린이집 교사들은 언제나 파리 목숨이다. 비리가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하기 위해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도 말하지 못한다. 비리를 이야기하는 순간 그 보육교사는 다시는 그 어떤 어린이집에서도 일하기 힘들다.
그러니 예산을 늘린다 해도 원장들의 배만 불려주지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하기 위한 서비스의 질은 좋아질 리 없다. 낮은 임금을 받아가며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버티는 것도 정말이지 힘든 일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만족스럽지 않은 정책은 즉각 수정되어야 한다. 행복하게 자랄 권리와 행복하게 일할 권리는 다르지 않다. 결국 같은 이야기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1011161149
"다치고 임금 밀리고 잘려도 하소연 못하는 우린…" (프레시안, 심옥섭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인천지부 지부장, 2012-10-12 오전 8:04:22)
[돌봄노동 연속기고·⑤] 가사노동자도 노동자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 회원들은 서비스가 필요한 개별 가정에서 가사관리, 재가보육, 산후관리 등의 돌봄서비스를 지원해주는 일을 하는 가사노동자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에서 우리와 같은 가사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돌봄노동이 사적 공간인 개별가정에서 이루어져 국가의 개입이 어렵고 그 계약관계가 불분명하다며 가사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사노동자도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명확한 노동자입니다. 우리의 노동을 통해 우리의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수행하는 가사노동은 사람을 돌보고, 다음날의 건강한 노동력을 재충전할 수 있도록 가정을 돌보는 귀한 노동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가사, 보육, 간병 등 돌봄서비스 영역에 종사하는 가사노동자는 약 50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에 따라 돌봄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가사노동자의 규모는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제도화된 영역을 제외한 30만 명에 달하는 비공식 부문 가사노동자는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고용불안, 산업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일하다 다쳐도 자비 들여 치료하는 가사노동자
작년에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인천지부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어 회원 중 일부가 사대보험에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한 회원이 고객집 세탁실에서 빨래와 청소를 하다가 미끄러 주저앉으면서 꼬리뼈에 금이 가서 입원과 통원치료를 하면서 다섯 달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회원도 고객 집에서 달인 간장을 들고 가다가 작은 돌에 걸려 넘어졌는데 엄지발가락에 쇠심을 박는 수술을 하고 넉 달간 입원과 통원치료를 한 끝에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두 회원은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치료와 휴업급여가 나와 큰 걱정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산재보험 가입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대다수의 회원은 병원비와 생활비 걱정에 하루하루가 불안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렇듯 동일한 돌봄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더라도 어떤 사업에 참여하느냐에 따라 법적 지위가 달라지는 것이 대한민국 가사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동일한 노동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노동자간의 형평성 문제를 만듭니다.
가사노동자들은 업무 특성상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겪습니다. 특히 일하는 과정에서 높은 곳을 청소하다 떨어져 다치거나 깨진 유리에 베이는 등 업무상 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우리 가사노동자들은 다치면 자비를 들여 치료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임금이 체불되어도 가사노동자들은 고객의 눈치만 살펴야 하는 처지로 어디에도 우리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곳은 없습니다. 왜? 대한민국이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 정부, ILO 가사노동자협약 찬성표 던지고도 비준 안 해
고령화, 핵가족화, 여성의 사회진출 등 현대 사회의 필요에 의해 가사노동자는 필연적으로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어지간한 사람은 하지도 못할 어렵고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 사회는 왜 이토록 기본적인 보장마저도 인색하단 말입니까? 저소득층에게는 여러 지원책들이 있지만 가사 노동자들에게는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조차도 없는 것입니까?
인천지부 회원 중에는 조건에 걸려 저소득층에는 해당 안 되지만 한 달만 수입이 없어도 당장 생활이 어려운 여성 가장이 전체 회원의 1/3 이상입니다. 홀로 벌어서 자녀를 키우고 모든 생활을 책임지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파서 일을 하기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병원과 일터를 같이 다니는 힘든 상황에서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천지부는 예비사회적기업 기간이 종료되어 그나마도 보장받았던 사대보험이 자격이 상실됩니다. 앞으로 일하다 다칠 경우에 어떻게 할지 대책이 없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우리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우리에게 산재와 고용보험만이라도 보장하도록 법을 개정하기를 촉구합니다. 더불어 작년 ILO 가사노동자협약에 찬성표를 던진 대한민국이 빠른 시일 내에 ILO 가사노동자협약을 비준하여 건강한 가정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여성가장들이 우뚝 설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어주기를 촉구합니다.
가사노동자들도 법의 둘레 안으로 들어가 '어엿한 노동자'로서 다른 노동자들처럼 차별없는 노동권, 산재·고용보험 등 사회보장권을 인정받는 노동자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모든 법적 보호에서 소외되어 온 가사노동자들의 한결같은 염원입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1015144413
간병노동은 허드렛일? 분비물제거·영양주입까지… (프레시안, 진영 연세대학교 4학년, 2012-10-16 오전 8:10:40)
[돌봄노동 연속기고·⑥] 간병노동자, 병원이 직접 고용해!
대학교를 다니면서 청소노동자들을 만나고, 그녀들의 투쟁에 연대한 경험들은 나의 대학생활을 좀 더 성숙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현장활동 기간에는 청소노동자 일일체험도 해보면서 수업시간에 배울 수 없는 가치들을 배울 수 있었다.
작년 돌봄노동자 대회에 참석했을 때, 간병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들으면서 청소노동자들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청소노동자만큼 익숙한 직종은 아니었지만, 친숙했다. 궁금했고 알고 싶었지만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돌봄노동자 대회를 계기로 기회가 생겼다. 대학생과 간병노동자의 만남이라는 기획으로 간병노동자와 직접 인터뷰도 하고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우리는 당연하게 취재에 동행했다.
평일 점심시간에도 대학 병원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병원 내에 있는 직원식당 앞에서 인터뷰를 약속한 간병노동자 두 분을 만났다. '학생들과 인터뷰가 있어서 얼른 식사하고 오겠다'고 말하고 나왔다면서 걸음을 재촉하셨다.
"나는 2인실 병실에서 루게릭 환자를 간병하고 있고, 이쪽 간병사님은 6인실에서 파킨슨 환자를 간병하고 있어요."
자리를 잡고서 인사를 나누는데, 간병노동자들의 자기소개는 이름이나 경력보다도 간병하고 있는 환자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루게릭 환자를 간병하고 있는 이혜선(가명) 씨는 간병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째라고 하셨다. 10년 전 남편이 실직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파킨슨 환자를 간병하는 김정규(가명) 씨도 경력 10년이 넘은 베테랑 간병노동자였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처음 간병일을 시작해서 오랫동안 근무하셨고, 중간에 잠깐 개인 간병 일을 하다가 몇 해 전 이 곳 대학병원에 왔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사이 식사가 끝났고, 병실로 이동했다.
간병 노동은 허드렛일? 수십가지 전문성 갖춰야
간병노동자는 맞벌이, 육아 등의 문제로 가족들이 간병할 수 없는 환자가 있을 때, 대신하여 환자를 간병하고 보살펴주는 노동자다. '환자의 수발을 든다'고 단순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간병노동자가 하는 일이나 역할은 생각보다 꽤 많았다. 간병인협회에서 제시하고 있는 간병노동자의 역할만 해도 십여 가지가 넘는다. 식사 및 간식 수발, 환자의 심상정리 정돈, 의복 교체, 대소변 수발, 운동 및 목욕, 환자 이동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을 돕는 일부터, 정맥주사 및 유치도뇨관의 상태 관찰·기록, 기관지절개의 경우 분비물 제거, 위관영양주입 등 간호사가 할 법한 치료 보조는 물론이고, 환자의 말벗이 되어서 대화를 나누고 위로와 안정을 주는 역할도 한다.
"하루 일과는 간병하는 환자의 증상이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일어나면 가장 먼저 식전 약을 투여해요. 기관지에 걸린 가래나 침을 석션으로 빼드리고, 용변 처리하고, 세면하고 나면 아침식사 시간이에요. 아침 먹으면 체중이나 여러가지 환자 상태 체크하고, 시간마다 필요한 약이 정해져 있거든요. 약을 놔드리고, 시간마다 마사지도 해드리고 자세도 바꿔드리고 그래요. 의사선생님 회진 보고 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하고 그러다보면 점심 먹고 저녁 먹고 하루가 가는 거죠."
밤잠 설치며 최저임금 못받아
대부분 간병 서비스를 받는 환자들은 거동이 불가능한 중증 환자가 많기 때문에, 이런 일들 하나하나가 중노동일 수밖에 없다. 특수저울을 침대에 올려서 환자의 체중을 재는 일,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의 귀저기를 갈고 몸을 돌려가며 물수건으로 목욕을 시키는 일 등이 모두 그렇다. 환자를 안고 씨름하다 보면 말 그대로 하루가 훌쩍 간다. 밤에도 잠을 못 드는 환자의 수발을 들거나, 수면 중 호흡 상태를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수다. 이렇게 하루 24시간 꼬박 간병노동을 하고 받는 돈은 일당 6만5000원. 시간당 임금으로 계산하면 2700원 꼴인데, 최저임금 4580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금액이다.
이렇게 간병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열악한 이유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주 기본적인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이나 휴일에 대한 기준도 없다.
"가장 힘든 점은 잠을 못자는 거예요." 어제도 벨을 울리는 환자 때문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는 이 씨는 가장 힘든 점으로 수면부족을 꼽았다. "삼일 동안 잠을 못자서 눈이 충혈되다 못해 핏발이 터진 간병노동자도 있었고, 우리 협회에는 며칠 동안 잠을 못자고 쓰러지는 바람에 뇌진탕에 걸려 중환자실에 입원한 간병인도 있었어요." 늦은 밤에는 누워서 수면을 취할 때도 있지만, 전신이 마비된 환자들은 기관지에 가래가 끼면 수면 중 무호흡증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깊이 잠들 수가 없다. 조그만 기척이나 부름에도 일어나 석션으로 가래를 빼주고, 소변귀저기도 갈아줘야 한다.
환자에게 감염돼도…병원 "간병노동자는 외부인"
병원에서 일하다보니 면역질환이 생기거나 감염사고를 입는 등의 문제도 많다. 내가 만난 간병노동자도 MRSA균에 감염된 적이 있다고 했다. MRSA균은 항생제에 강한 내성을 가진 슈퍼 박테리아로 항생제 투약이 많은 대형병원에서 자주 발생하는 균이다. 감염자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각종 염증을 일으킨다.
"환자가 MRSA 보균자였는데, 간병하는 저에게 말해주지 않았어요. 보균 환자를 진료한 의사와 간호사, 보호자까지 정기적으로 MRSA 검사를 하면서 24시간 함께 지낸 저는 검사를 해주지 않는 거예요. 같이 검사를 받게 해 달라고 요구했죠. 그랬더니 제가 감염되었다고 나왔어요."
하지만 보상에 대한 규정이 없어 감염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병원은 1:1 계약이니 보호자와 이야기 하라고 했고, 보호자는 소개해 준 간병인협회에 책임을 돌렸다. 다른 환자에게 재감염의 위험이 있어 2개월간 일을 쉬면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병원과 보호자 어디에서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 환자가 전염성 피부병인 옴에 감염되어 있다는 것을 병원에서 말해주지 않는 바람에 옴이 옮아 심하게 고생한 간병노동자도 있었고, 에이즈 환자의 주사바늘에 찔리는 경우도 있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업재해나 직업병으로 인정받기도 어려워서 심하지 않은 경우 일을 쉬면서 자비로 치료를 한다고 한다.
"임금에 비해 하는 일이 많고 힘들다 보니, 대부분은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계속 해요. 70%는 생계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 봐야 할 거예요. 남편과 이혼하거나 사별한 여성들이나, 집에서 가장노릇 하는 엄마들이 많아요."
"간병서비스 건강보험 적용, 병원이 간병인 직접 고용해야"
피곤한 얼굴의 이씨는 "그래도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환자를 돌보는 일, 누군가에게 꼭 필요하고 절실한 일이라는 것이 간병 노동에 대한 자부심을 준다.
"내가 간병한 환자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일 때, 상태가 좋아졌을 때는 정말 기뻐요. 전에 한번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욕창에 심하게 걸린 환자를 간병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간병을 잘 해서 그 환자의 욕창이 깨끗이 나았을 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때, 내가 하는 일의 가치와 보람을 느꼈어요."
이러한 간병노동, 돌봄노동의 가치가 인정되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많은 변화들이 필요하다. 간병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그들의 권리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간병노동자의 현실과 권리를 전혀 반영하거나 고려하고 있지 못한 법, 제도를 개정하고, 노동시간과 임금, 휴게 공간 등을 규정해 간병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의 최소한이라도 지켜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야간노동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교대제를 도입하고, 간병노동자의 임금 인상이 보호자에게 비용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간병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또한 돌봄노동, 간병노동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간병을 '병수발', '하찮은 일'로 보는 일부 보호자들의 태도나 사회적 대우가 마음 아플 때도 있다고 하면서, 이 씨가 한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가끔씩 '내가 돈 주고 산 사람이니 그 시간동안 내가 마음대로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보호자들이 있어요. 환자를 간병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인데, 보호자의 잔심부름이나 수발까지 요구하는 경우요. 그럴 때 기분이 정말 나쁘죠. 간병노동자가 그냥 허드렛일 하고 수발드는 사람이 아니라 한 환자의 생명을 케어하는 '전문간병인'이자 '일하는 노동자'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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