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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학살 이후


 

포털사이트에는 그의 치정에 관한 온갖 추측들,

Ismail Ax는 무슨 뜻인가요? 따위의 옐로우페이퍼스러운 질문들이 오르고 있고,

기사들의 우려와 걱정의 초점은 오직 하나,

"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외교통상부 당국의 반응은 대략

"재수없게 미친놈하나 걸려서 골치아프게 생겼네." 

교포사회는

"미국인들이 우리에게 해코지하면 어떡해?,"

이 대목은 9.11이후 백인들이 미국에서 자행한 아랍인에 대한 집단 해코지 이후,

유색인종들의 정신적 공황의 재연이랄까.

당시 virginia tech에서 백인 청년들이 아랍계 대학생들에게 돌맹이를 마구 던졌댄다...

이쯤되면 비극이 지성을 마비시킨 정도?

 

그러나 우리의 질문과 고민은 다시  걱정은 우리 내면의 숨겨진 곳으로 돌아오기도 해야한다.

오직 진보적인 심리학자들만의 학술이론에 그친다면 비극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조'라는 성을 가진 스물셋의 한국인 미 영주권자가 Virginia tech 기숙사에서 벌인 대량 학살사건.

이것은 우연히 발생한 한낫 치정이 아니다.

범인은 아마도 자신이 원한을 품고있던 사람들을 죽이고나서 정신이 나가 이유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을 것이다.

이유없는 총기난사..!!

강의실에서 공부하던 이들의 억울한 죽음.

그의 정신적 공황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

 

가장 먼저 구스 반 산트의 영화 <엘리펀트>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김없이

<볼링 포 콜럼바인>


 

1999년 콜롬바인고등학교에서 발생한 10대 총기난사사건이 더 확대되어,

그리고 이제는 결코 '철없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방황'이라고 초역사적인 사건 중 하나로 형언할 수 없도록, 

성인 대학생에 의해서!

복사되어.

발생했다. 

 

자본주의 인간사회가 낳는 극심한 정신적 소외가 비극을 불러오고있는 것이다.

우린 구조적으로 계속 '타인'이라는 존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집단이 '타인'을, 내가 '타인을, 집단이 '타인들'을. 이런 방식의 경계들은 결코 우릴 행복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난 결코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소외의 경계에 대한 것이다.

난 내가 만드는 소외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 역시 별 수 없는 잔인한 사회 안에서 큰 무리없이 사는 평범한 구성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린 얼마나 자유로울까?

침묵하고 방치하는 우리가 숨겨진 가해자가 아닐까?

나와 당신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 감정에서부터 치유와 변혁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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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추신!

수십만명의 죄없는 민간인을 학살한 자에게 누군가를 추모할 권리가 있는가?!

 

네이버 댓글에선 어김없이
"조승희가 한총련 출신일 것이다!"
라는 추측의 저급한 비난이 올라왔다.
이 놈의 세상이 미친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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