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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남아

 

 

<열혈남아> ( cruel winter blues )

이정범 감독 작품

 

언젠가 대학로 어느 골목길을 지나다가 위의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 포스터 정말 멋있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분위기, 감성 모든게 느껴졌다. 그치만 제목과 영화의 소재 자체의 진부함이 가져오는 어떤 거부감 때문에 굳이 찾아서 보지 않았고 나중에 dvd나오면 봐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어제는 며칠전 학교에서 빌려온 <열혈남아> dvd를 봤다.

 

이 영화를 언급할땐 내용 자체에 대해 말하기보단 이미지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할 것만 같다. 그만큼 영화 자체가 갖는 분위기를 이미지로 담아내기 위해 치중한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겨울 벌교 벌판의 쓸쓸하고 슬픈 심상이 빨갛게 칠해져 영화 곳곳을 채워넣는다. 2002년 월드컵 응원 열기 속의 붉은 티셔츠를 입고 뛰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 속에서 반대방향으로 도망가다가 칼에 의해 어떤 무의미한 싸움의 복수를 당한 설경구의 친구 '민재', 붉은 벌판, 빨간 꽃무늬 티셔츠, 피, 붉게 충혈된 눈, 비오는 추운 겨울날 국밥집.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지고서 망나니처럼 제멋대로 살면서 욕질과 폭력을 서슴치 않는 건달 설경구의 배경은 아주 적절하게 그려져있다. 미술로 따지자면 이 영화는 여느 한국 영화들 중에서도 상급에 속한다.

 

 

조폭, 아니 '건달'이라고 해야 좀 더 정확할 설경구와 조한선이 나오는 영화. 이 영화는 여느 조폭영화와는 다르다. 좀 더 진화했고, '인간'의 드라마에 치중했다고 해야하나. 예전에야 벌교에 가서 싸움 자랑하지말라는 말이 있었다지만, 이제는 세상 달라졌다고 말하는 벌교 할아버지의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리진 않는다. 마치 벌교에서 벌어질 어떤 비극의 결과를 암시라도 하듯 말이다.

그러나 복수하러 간 그곳 벌교에서 설경구는 유사-엄마 나문희를 만났고, 알 수 없는 모성애를 느낀다. 설경구가 나문희에게 느끼는 모성애는 그리움, 슬픔의 정이다. 그리고 설경구의 어떤 혹시 올지도 모를 '밝은 내일'을 상징하는 듯한 다방 여자 심이영은 그에게 결국, 결코 올 수 없었던 미래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이 단순하지 않고 잘 짜여진 내러티브가 지나면서 망나니 마초 설경구는 어떤 못난이 남성의 슬픈 사연 쯤으로 상징화되어 용서된다. 나문희의 눈물에 의해서 용서되고, 마지막 씬에서 나문희의 대사 중 하나인, "쟤는 우리 둘째에요." 라는 말. 서럽듯 눈물 흘리며 죽어가는 설경구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는데, 이 장면에서 설경구는 무언가에 의해 용서받은 듯하다. 나문희에게 설경구는 외롭고 쓸쓸한 삶, 그리고 남극에 있는 둘째아들이 죽었을것이라는 세간의 이야기와 동떨어져 혼자 단절된 체 살아가는 듯한 삶에서의 통로였고, 설경구에게 나문희는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행복, 유토피아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나문희의 첫째 아들에 대한 설경구의 선택이 그에게 또 하나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게다가 마지막 크레딧이 다 오를때까지 흐르는 그 멋진 음악까지!!

 

알리바이와 용서에 대한 여러가지 혐의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남자들의 단편을 대비해 보여주는 것만 같은 이 건달들의 결핍에 대해 이렇게 깊게 들어가 성찰한 대중영화는 많이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런 식의 '결핍'에 대해서는 김기덕식일수도 있고, 용서일 수도 있고, 비난이거나 방종, 비웃음일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얼마나 다층적으로 다루었는가이다. 이 영화는 다층적인 영화다. 이야기를 이끄는 힘에 있어서, 상업적인 선택보단 비겁하지 않고 졸렬하지 않은 방향을 택했다. 흥행할 수 있는 영화인데, 흥행 못한 것이 참 안타깝다.

 

p.s. 설경구, 나문희, 조한선의 연기는 아주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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