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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검사 “5천만 국민 승선한 세월호서 승객 버리고 도망 안 가

 

페이스북 통해 근황 전해.. “굳세게 제 자리를 붙잡고 있어요”

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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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08  12:49:17
수정 2015.12.08  12: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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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적격심사’ 대상에 오른 임은정 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굳세게 자리를 붙잡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임 검사는 8일 “살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이 세상 최고의 다이어트는 징계다이어트라고 농담을 했었는데 이번엔 몸무게 변화가 없으니 덜 힘든게 확실하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임 검사는 7일 세월호 유가족들의 ‘진실투쟁’ 1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쁜나라>를 봤다고 전하면서 “그새 마음에 달려 있던 노란리본이 어느새 가방에만 매달려있었구나 싶어 아이들에게 아주 많이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는 오천만 국민이 승선한 세월호. 저는 공무원이니 선원이겠지요”라면서 “승객들을 버려두고 도망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임 검사는 故 윤중길 진보당 간사 재심사건 무죄구형 당시를 떠올리며 “그날 무죄구형을 하지도 못하고 끌려갈까봐 공판검사석을 꽉 붙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굳세게 제 자리를 붙잡고 있다”면서 걱정해준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임은정 검사는 지난 2012년 12월 故 윤중길 진보당 간사의 재심에서 상부의 ‘백지구형’ 지시를 거부했다가 공판 검사가 교체되자 법정 문을 걸어 잠근 채 무죄를 구형했다.

이후 품위 손상 등을 이유로 정직 4개월 처분을 받고 행정소송을 냈다. 임 검사는 1심과 2심에서 승소, 현재 법무부의 상고로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또 최근에는 심층적격심사 대상에 올랐다. 대검찰청이 심층적격심사에서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면 임은정 검사는 강제 퇴직할 수도 있어 ‘보복성 심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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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나로 인해 천안함 발표 불신? 감사한 일”

검찰 3년 구형에 이강훈 변호사 “검찰, 수중폭발로 절단 입증 실패했다”
 
입력 : 2015-12-08  01:46:48   노출 : 2015.12.08  11:17:03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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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의혹을 제기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5년 넘는 재판 끝에 검찰로부터 징역 3년을 구형받은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서프라이즈 대표)과 변호인단은 최후진술과 최후변론에서 검찰과 군이 북한어뢰폭발설 입증에 실패한 5년이었다고 밝혔다.

공적 조사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는 검찰 주장에 신상철 대표는 “저 때문에 신뢰가 떨어졌다면 그동안 제가 천안함 진실을 펼치려는 역할을 잘 했다는 평가”라며 “감사한 데이터”라고 반박했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이흥권 부장판사) 주재로 열린 신상철 대표의 명예훼손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조민호 검사는 “공공의 이익 보다는 정부합조단과 국방부, 해군 소속 군인 비방을 위한 목적으로 쓴 글”이라며 “피해가 중대하며, 공적 조사에 대한 불신과 국론분열을 초래했다”고 설명했다.

최행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검사는 신 대표가 허위라면서 허위인 이유에 대한 반증이 모호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최 검사는 내장재에 불탄 흔적이 없는 등 폭발 의한 것이 아니라는 신 대표의 주장에 대해 “어뢰에 의한 비접촉 폭발에 대해 무지한 것”이라며 “버블에 의한 폭발시 화염은 열손상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열손상이 없는 것이 곧바로 수중폭발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TNT 290kg 규모 어뢰의 수중폭발 실험을 한 호주 토렌스함의 절단면과 천안함 절단면이 유사하다고도 최 검사는 주장했다. 천안함 함미 상부갑판은 평평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폭발이 아니라는 신상철 대표의 주장에 대해 최 검사는 “어뢰 비접촉 폭발을 알지 못한채 한 주장”이라며 “절단면에 나타난 취성 파괴와, 전단파괴의 형태는 전형적 폭발로 나타난 절단형태”라고 주장했다.

   
호주 토렌스함 폭발직후 절단면 상태. 사진=법정 제출자료 갈무리.
 

최 검사는 기소후에도 신 대표가 1번어뢰 구멍에 들어간 가리비와 붉은 멍게 추정물질 등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기소 후에도 지속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조민호 검사는 “신 대표가 작성한 글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며 수많은 글 가운데 일부 문장 몇군데를 떼어내와 근거로 제시했다.

‘생존자 구출을 원치 않았다’, ‘황급히 단속에 나서고 입막음에도 성공’, ‘조사 받을 사람이 조사하겠다고 나서는 형국’, ‘군은 거짓말을 하면서 피해가려 한다’, ‘김태영 국방장관을 증거인멸죄로 고발하겠다’

이에 대해 신 대표 법률대리인인 이강훈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지난 5년 넘게 재판하는 동안 검찰이 북한어뢰의 수중폭발이라는 정부 발표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증거조사를 통해 북한 어뢰폭발에 의해 천안함이 절단돼 침몰했다는 것과, 피고의 주장이 허위이며 합리적 의심없이 입증하는데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러므로 무죄”라고 밝혔다.

특히 검찰이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 입증에 실패했다는 수많은 근거가 법정에서 제시됐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어뢰설계도가 불명확하다. 측정수치도 불일치하며, 윤덕용 합조단장조차 어뢰 설계도 원본을 보지 못한채 출력물을 본 것이 전부였을 가능성이 높다. 실측 1번 어뢰추진체 측정 수치와 설계도상의 크기가 다르다.”
“-백색물질 조사가 불완전하다…백색물질을 AlxOy로 규정한 것이야말로 백색물질 자체를 모른다는 사실을 자인한 것에 불과하다. 이근득도 실제로 나와서 ‘정확히 분류하기 힘들다,비율을 정확히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물기둥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좌현견시병 황보상준 일병은 ‘물이 튀었고, 방탄목과 헬멧을 착용한 상태에서 얼굴에 분무기를 뿌린 것 같았다, 물보라일 수 있다’고 증언했다”
“-어뢰폭발시 수중에 섬광이 발생해야 하지만, 이런 현상을 전혀 보지 못했다. 특히 야간이라 더 뚜렷하게 보여야 하는데도 견시병과 초병 누구도 보지 못했다. 호주 어뢰 폭발실험의 경우에도 낮인데도 수중에 섬광이 확인된다.”
“-사망자와 생존자의 상처가 크지 않다. 공창표 하사는 왼손으로 난간을 잡고 있었다고 했으나 (충격의 순간)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허순행 하사는 우현을 바라보고 있던 중 테이블 앞으로 넘어졌다고 했으나 치료받을 만큼 다치지 않았다. 김수길 전탐장 역시 절단면 바로 안쪽 CP 침실에 누워있던 중 절단면 쪽에서 쿵 소리가 난 후 다시 충격이 있었지만 몸이 움직여지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작은 함정에 부딪히는 정도였다는 증언이었다. 첫 번째 쿵소리엔 큰 상선이나 동급 함정에 부딪힌 줄 알았다고 증언했다. 사망자의 신체적 부상의 경우 골절을 있었지만, 사망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다. 성기룡 의무대장은 익사 외의 특별한 소견이 없다고 했다.”
“-함수 절단면의 멀쩡한 형광등. 검찰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설계된 형광등이라고 주장하지만 수중 폭발시 치솟을 충격파에 형광등이 붙어있을 것으로 예상하기 어렵다.”
“-청각장애를 입은 사람이 없다. 증인으로 출석한 공창표 하사 등 생존장병의 경우 일상대화와 업무에 지장이 없었으며, 청각장애가 없었다.”
“-화약냄새를 맡았다는 생존자가 없다.”
“-합조단이 시뮬레이션한 내용을 역으로 폭발순간부터 일일이 좌표를 찍어가며 움직임을 관찰해보니, 폭발직후 0.2초~0.3초 사이 때 충격으로 떠오르는 속도가 가장 높았고, 최소 2.67m 정도 올라갔다. 김수길 상사의 예를 들면, 폭발직후 0.2~0.3초 때 2.67m로 떠올라야 하나, 3층 침대와 (천장사이의) 공간이
1m도 채 안되는데도 전혀 올라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김기택 음탐사는 수중폭발시 가장 충격을 많이 받은 곳 중 하나인 함교 뒤쪽의 음탐실에 있었지만 폭발순간에도 엉덩이가 그대로 의자에 붙어있었다고 증언했다.”
“-함수함미 절단을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지 못했다. 끊어진 부분을 묘사하지 못했다. 합조단 보고서 141쪽~176쪽에 폭발시뮬레이션 이미지를 잔뜩실었으나 정작 실제 대형사고를 구현하지 못했다. 이는 과학을 잘 모르는 국민에게 과학자가 한 것이니 믿으라는 얘기밖에 안된다.”

   
천안함 함미 절단면. 사진=법정 제출자료.
 

이 변호사는 이밖에도 △군 정부 대응 자체가 국민의 불신을 낳은 점 △신 대표의 좌초후 충돌설과 정부의 어뢰폭발설을 나란히 비교하는 것이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라는 점 등을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명예훼손 주장에 대해 “천안함 사고원인에 대한 글과 비판이지, 천안함 소속부대원, 합조단 간부, 국방부 인사 등의 자연인을 거론한 일이 없다”며 “김태영 김성찬과 같은 개인이 아니라 국방장관 해군참모총장으로서의 정부조직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유족이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것은 사고원인이 A가 아니라 B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교통사고냐 북한어뢰냐는 것이 대체 명예훼손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유족의 입장에서 희생자가 부여받은 전사자 지위에 영향을 줄 뿐 유족의 명예와 관련돼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천안함 사건은 공론의 장으로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며 “정부 발표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질식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최후진술에서 검사가 구형하면서 내세운 주장을 일일이 반박했다.

입막음 시도가 있었다는 지적이 허위라는 검찰 주장에 대해 신 대표는 “(최원일 함장이 생존장병에게) 핸드폰을 수거하고 외부인과 인터뷰하지 말라고 증인이 출석해 증언했는데, 이것이 입막음 시도가 아니면 무엇이 입막음인가”라고 반문했다. 합조단 회의에 한 번 밖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신 대표는 “문병옥 준장(합조단 대변인)과 약속을 했다”며 “소수의견이라도 낼 수 있도록 보장했다면 5월20일 최종 발표 자리에도 있었을 것이지만 이의제기하자마자 고소고발하는 등 배제하려했는데 어떻게 더 갈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그는 “처음 참석한날 자료를 달라고 했지만, 유일하게 내게만 자료를 주지 않았다”며 “그 이후 내가 합조단에게서 얻은 것은 비난과 욕 뿐이었다”고 전했다.

신 대표는 검찰이 2010년 천안함 정부발표 신뢰도가 47%에서 2015년 39%로 줄어들었다고 제시하면서 ‘공적 조사 신뢰도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한 것을 두고 “내게는 감사한 데이터”라며 “정말로 저 때문에 신뢰가 떨어졌다면 그동안 제가 천안함의 진실을 펼치려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강연하면서 의혹을 제기한 것이 선동이 아니라, 그만큼 합리적으로 주장을 펼쳤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작과 은폐라는 신 대표의 비판이 허위라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신 대표는 “9시15분이라고 쓰여진 것에 ‘ㄴ’자를 그려넣어 9시45분이라고 만든 것이 조작이 아니면 무엇이며, 가스터빈을 2010년 5월19일에 인양해놓고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은폐가 아니면 무엇인가”며 “TOD 동영상이 없다고 4~5차례 주장하다 뒤늦게 공개된 것, 스크래치가 없다고 해놓고 저렇게 버젓이 나타난 것은 거짓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5년 재판에 대해 신 대표는 “5년 넘게 재판을 하면서 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 너무 멀리 왔다. 진실을 얘기하고 밝히는 길이면 편하다”라며 “역사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역사책에 천안함 사건이 쓰이는 것은 환영한다. 교사와 아이들의 질문을 더 많이 받게 될테니 말이다. 다만, 역사에 두려움을 안다면 거짓을 쓰려는 이들은 불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실은 호주머니 속 송곳과 같아 바지를 뚫고 나와 허벅지를 찌를 것”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재판부에도 “그동안 법정에서 진실을 조사하고 밝힐 수 있도록 해준데 대해 감사하다”며 “사법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흥권 재판장은 “5년 넘게 재판을 진행하면서 쌍방의 주장과 증거조사를 다 마쳤다”며 “재판결과를 토대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신상철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 1심 선고공판은 오는 2016년 1월 25일 오후 2시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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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제2차 민중 총궐기 대회 보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12/08 10:44
  • 수정일
    2015/12/08 10: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주의 수호하려 수만 명 운집
 
뉴스프로 | 2015-12-07 19:32: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BBC, 제2차 민중 총궐기 대회 보도
– 법원, 정부의 시위 금지령에 대해 부당하다고 판결
– 민주주의 수호하려 수만 명 운집

영 BBC는 서울광장에 모인 5만여 명의 시민들이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져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 씨의 쾌유를 기원하고 노동개악 저지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을 외치며 벌인 제2차 민중 총궐기 대회 소식을 5일 보도했다.

기사는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참여한 이번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됐으나 약 18,000명의 경찰 병력이 배치됐다고 밝혔다.

또 시위대가 노동법 개정안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하고 특히 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과거 독재자들을 미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의 시위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번 시위가 합법이라고 판결했으며 시위를 주도한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은 “자본가들만 살찌우는 노동환경”에 저항할 총파업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BBC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bc.in/1QlQphj

South Korea protests: Seoul rally against Park Geun-hye
한국 시위: 박근혜에 저항해 민중총궐기

• 5 December 2015
• From the section Asia

Saturday’s protest went ahead after a court turned down the government’s move for an injunction to be made against it.
토요일 시위에 금지령을 내리려던 정부의 움직임을 법원이 기각한 후 시위가 진행됐다.

Tens of thousands of protesters in South Korea have held a mass rally against a raft of government policies that they say weaken democracy.

수만 명의 한국 시위자들이 다수의 정부 정책이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고 말하며 이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The protest was big, rowdy and attended by a wide cross section of people but there was no repeat of violence which marred a similar rally last month.

토요일 집회는 대규모였고 소란스러웠으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이에 참석했지만 지난달 이와 유사한 집회를 훼손시켰던 폭력은 재연되지 않았다.

About 18,000 police were deployed in the capital, Seoul.

수도 서울에 약 18,000 명의 경찰병력이 배치됐다.

Protesters oppose plans including changes to labour laws and greater controls over history textbooks.

시위자들은 노동법 개정안과 역사교과서에 대한 통제를 포함한 정부 계획에 반대한다.

Left-wing critics say this will lead to a whitewashing of past South Korean dictatorships.

진보 성향의 비평가들은 교과서 통제 계획이 과거 한국의 독재자들을 미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Saturday’s rally was mostly peaceful, in contrast to a similar demonstration last month.
토요일 집회는 지난달 유사 집회와는 대조적으로 대체로 평화스러웠다.

About 14,000 people are estimated by police to have attended the rally, far fewer than the 60,000 that attended the 14 November demonstration.

11월 14일 시위에 참석했던 6만 명보다 훨씬 적은 약 14,000명이 그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경찰에 의해 추정된다.

Saturday’s protest went ahead after a court turned down the government’s move for an injunction made in the aftermath of violence at the previous demonstration.

토요일 집회는 그 이전 시위에서의 폭력의 여파로 정부가 금지령을 내리려는 움직임에 대해 법원이 이를 기각한 이후에 열렸다.

The demonstrators were unhappy over moves by President Park Geun-hye’s conservative government to dismiss workers based on performance and to place a ceiling on the salaries of senior employees to encourage employers to recruit younger people and reduce youth unemployment.

시위자들은 업무실적에 근거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고 나이 든 고용인들의 연봉을 제한해 고용주들이 보다 젊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청년 실업률을 줄이게 하려는 박근혜 보수 정부의 계획에 불만을 나타냈다.

An arrest warrant has been issued against the head of the militant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 (KCTU), who has taken sanctuary in a Buddhist temple in Seoul, over the 14 November rally.

서울에 있는 한 불교사찰에 피신 중인 투쟁적인 민주노총의 위원장에 대해 지난 11월 14일 집회를 이유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President Park has called for people to be banned from covering their faces at rallies
박 대통령은 시위자들이 집회에서 복면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The march was organised by labour, farmer and civic groups in protest over what they say is a deterioration in personal and political freedom.
시위 행진은 개인적, 그리고 정치적 자유를 퇴행시키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 노동자, 농민 및 시민단체들에 의해 조직됐다.

On Saturday Han Sang-gyun repeated a call for a general strike against “labour conditions that only fattens capitalists”.

토요일에 한상균은 “자본가들만 살찌우는 노동 환경”에 저항할 총파업을 재차 요청했다.

President Park is the country’s first female president and was elected two years ago.

박 대통령은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며 2년 전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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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동포들도 복면시위, 박 정권 규탄

미주동포들은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과 뉴욕과 로스엔젤레스 시카고, 보스턴, 필라델피아, 캐나다의 토론트 등에서 지난 1차민중총궐기를 살인적으로 진압한 현정권을 규탄하는 규탄시위를 열었다.

 

재미동포 언론들과 동포들에 따르면 로스엔젤레스 거주 동포들은 지난 4일 오후7시부터 이곳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서울서 진행된 ‘10만 민중총궐기대회’에 대한 살인진압으로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박근혜 폭압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미전국 8개도시(로스앤젤레스, 뉴욕, 워싱턴디씨, 시카고, 보스턴, 필라델피아, 텍사스, 씨애틀) 동포들이 작성한 연대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날 로스엔젤레스 동포들은 이 연대성명을 통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철회하며 건국절 기획을 당장 그만둘것, ▲세월호를 속히 인양하고 진상규명을 철저하게 실시할 것 ▲북 붕괴론에 기초한 적대적인 국면을 조성하지 말고, 평화 통일을 위한 남북 화해 정책을 실시하고 국내 해외 인사에 대한 색깔 공세를 중단할 것 ▲지난 11월 14일 자행된 폭력적인 진압을 규탄하며 백남기 선생의 회복에 최선을 다할 것 등을 한국 정부에 촉구했다.

 

또한 보수 장기집권 기획을 위한 언론 장악, 개헌 논의 등을 당장 그만두고 정정당당하게 민중의 심판을 받으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헤 대통령의 복면 시위자들을 테러세력에 비교한 것에 반발해 복면을 쓰고 집회에 참석했다.

시위현장에서 밝힌 재미동포연대 성명서 전문을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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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남 대결관념 버리면 남북관계 획기적 변화"

북,"남 대결관념 버리면 남북관계 획기적 변화"
 

"대결자세 버릴 때 됐다. 통일은 민족이 사는길" 강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12/07 [08:5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8천만겨레의 염원인 평화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북정상이 합의한 남북 7.4공동성명에 의한 통일 3원칙을 들고 6.15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이정표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북측은 남측을 향해 남측이 대결관념을 버리면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발전 할 것이라며 통일만이 민족이 살길이라고 강조해 나섰다.

 

연합뉴스를 비롯한 국내 주요 언론들은 지난 6일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의 '대결의 자세와 입장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제목의 논평을 인용  "남조선 당국은 시대의 흐름과 겨레의 지향을 똑바로 보고 반공화국 대결관념을 버려야 하며 당국회담에 성실한 자세와 입장으로 나서야 한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은 논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이 낡은 대결 관념을 대담하게 털어버리고 진심으로 북남 관계 개선의 길에 나선다면 북남 관계는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며 나라의 통일과 민족공동의 번영을 실현하는 데서 나서는 기본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신문 논평은 "낡은 대결관념을 털어버리는 것은 북남 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기 위한 선결조건"이라며 "북남 사이에 반목질시하고 대결할 것이 아니라 화해하고 단합해 관계개선을 이룩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길만이 우리 민족이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조선 집권세력이 완고한 대결관념에 포로되어 있는 한 아무리 대화의 장이 마련돼도 그것은 헛수고로 될 것"이라며 "상대방의 성의를 색안경을 끼고 대하거나 이러저러한 부당한 조건을 내세운다면 북남 대화는 또 하나의 대결마당으로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현 북남 관계 문제가 아무리 복잡하고 착잡하게 얽혀져 있다 해도 온 겨레의 기대에 보답하려는 의지를 안고 민족공동의 이익의 견지에서 흉금을 터놓고 제기된 현안들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면 얼마든지 의견 상이(차이)를 해소하고 북남 관계의 전진을 이룩할 수 있다"며 "우리는 앞으로도 책임적이고도 인내성 있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신문은 지난 4일에도 "당국회담은 긴장완화와 관계개선을 이룩할 중요한 계기"라며 "체제대결에 매달리면 돌이킬 수 없는 민족적 재난이 오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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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논평] 미래가 현재에 개입하다

기획재정부, 미래를 내다보는 초능력자?

 
 
시민건강증진연구소 2015.12.07 07:46:32

 

미래가 현재에 개입하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2>가 묘사한 미래는 2015년이었다. 영화 소재가 된 날(10월 21일)을 전후해 세계적으로 상업성 기사나 행사가 이어졌고, 한국 사람들의 관심도 덩달아 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있었다. 영화에서 묘사한 2015년이 지금과 얼마나 가까울까 하는 것. 몇몇 언론의 '평가'를 종합하면, 비행 자동차나 초 단위의 일기예보, 크기가 저절로 맞는 옷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전자 안경이나 3차원 영화는 제법 비슷하게 맞았다고 한다.

꼭 영화가 아니라도 미래 예측은 큰 관심 대상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얼마나 맞았나 하는 것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라면, 한국에서도 그만한 일이 없지 않다. 좀 더 진지하고 엄숙한 모양을 갖추었다는 것이 <백 투 더 퓨처 2>와 다른 점이긴 하다.

한국미래학회가 정부의 의뢰를 받아 2000년의 한국을 예측한 때는 1970년이었다. <서기 2000년 한국> 연구에는 1969~1970년에 걸쳐 1060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고 한다. 한국 최초로 델파이 연구방법을 쓴 과학적인 연구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예측은 맞은 것도 있고 엄청나게 오판한 것도 여럿이다(원 보고서를 구할 수 없어 내용은 1970년과 2000년 무렵의 여러 언론 보도와 관련 글을 참고했다). 주로 과학, 기술 발전과 사회 제도 변화에서 빗나간 것이 많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서울-부산을 1시간에 달리고 김포-뉴욕을 5시간에 비행할 것이라 했지만, 지금까지도 간격이 크다. 뭐니 뭐니 해도 차이가 가장 큰 것은 컴퓨터 보급이다. 1990년에 3000대, 2000년에 1만 대의 '전자계산기'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으나, 컴퓨터는 2000년 초에 벌써 400만 대를 넘었다.

이런 것도 많이 틀렸다.

"2000년까지 고등학교 의무 교육이 시행되고, 대학 입시 제도가 없어지며, 매년 4주의 유급 휴가가 일반화된다."

틀린 것 그 자체보다는 틀린 이유가 궁금하다. 과학기술이야 쉽게 이해가 되지만, 사회 정책이나 제도, 사회적 삶의 변화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벼운 흥미를 빼면, 이렇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1970년 당시의 작업에 국가가 깊게 개입했다는 것이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30년 후 미래를 말하는 것은 예측하는 것인가 의도하는 것인가. 미래 예측과 예측된 미래는 어떻게, 그리고 왜 현재에 개입하는가.

우리는 미래 예측이 현재를 위해 의도적으로 소비되고 활용되는 측면에 주목한다. 이런 목적의 미래 예측은 당연히 정치적이고, 흔히 정략을 위해 소모된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60년까지의 '장기 재정 전망'이 가장 최근의 사례다.

우선 짚을 것은 2060년이라는 시간 프레임. 보통은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은데(앞에서 말한 미래 예측도 겨우(!) 30년이었다), "국가의 중심"을 자부하는 기획재정부답게 '스케일'이 크다. 올해 처음 그런 것도 아니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12월 4일 내놓은 보도 자료는 비교적 온건한 제목("기획재정부, 2060년까지 국가 채무비율 40% 이내로 관리")을 달고 있다. (☞관련 자료 : 기획재정부, 2060년까지 국가 채무비율 40% 이내로 관리) 하지만 제목만 그럴 뿐, 내용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충분히 급진적이고, 단정적이며, 편향되어 있다.

'장기 재정 전망'의 정치는 정치성을 숨기는 데서 시작한다. 예산의 정치가 본래 그렇지만, 장기 재정 전망 역시 숫자의 과학을 표방한다. 기획재정부의 보도 자료에 들어있는 표현이 주장하려 하는 것이다. 전망은 "관련 전문가 27명으로 구성된 민관 합동 장기 재정 전망 협의회(위원장 재정관리관)에서 지난 1년간 실무 작업을 한 결과임".

정확하고 객관적인 '팩트(사실)'에 도전하지 말라는 엄포다. 과연 그럴까. 2060년은 지금부터 45년 후다. 지금부터 45년 전은 1970년이다. 이것 때문에 앞에서 1970년의 미래 예측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기술적 예측으로 환원되지 않는 미래는 얼마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가.

경제와 사회의 바탕이 되는 미래 인구 추계조차 5년마다 춤을 추는 형편이다. 통계청이 2010년 기준으로 작성한 인구 추계는 5년 전 작성한 추계에 비해 2050년(40년 후!) 인구가 500만 명 이상 차이가 난다. 출생률, 기대 여명, 국제 이동 등이 변하기 때문이다. 재정 전망에는 이보다 더 예측하기 어려운 경제 상황, 국제 요인 등을 보태야 한다. 게다가 정책, 제도, 사람들의 대응 등 '사회적' 요소까지 들어가야 하니, 말해 뭣하랴.

장기 재정 전망은 현재 정치에 직접 개입한다. 팩트라고 전망을 발표하는 것만으로 현재를 바꾸는 동력은 충분하다. 언론이 그대로 받아 적고 제 생각을 보태 뽑은 제목을 보자.

"국민 연금 2060년 완전 고갈", "건강 보험 2022년부터 적자", "씀씀이 안 줄이면 나랏빚 폭증", "국가 채무, 2060년 GDP 대비 60% 넘어", "저성장, 고복지 지속 땐…", "복지 이대로 가면…", "포퓰리즘 복지 계속 땐…."

누가 경제 성장에 이의를 달고 복지 확대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장담하건대,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모든 복지 확대 제안과 정책은 "재정 건전성은 고려하지 않는" 포퓰리즘으로 공격을 받을 것이다. 미래가 현재에 개입하는 정치이고, '장기 재정 전망'이 현실에 개입하는 정치다.

그것이 명백히 정치적 실천이라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전망을 내는 것은 기술, 객관성, 정확성의 프레임에 갇히는 지름길이다. 대항 정치의 하나는 재정 수입, 곧 세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줄로 믿는다.

'재정 건전성'의 허구와 이를 선동하는 위선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마침 딱 맞춤한 예가 있다. 지금의 경제부총리가 경기 부양용 돈 풀기에 앞장서고 말로만 재정 건전성을 내세웠다는 비판은 소수 의견이 아니다. 오죽하면 한 보수 언론조차 이런 사설을 썼을까.

"지역구 예산 500억 챙긴 최경환, 2060년 재정 걱정되나" (<동아일보> 2015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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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00일... "416 교실 원형 보존하라"

[현장] 세월호 유가족·시민 '기억과 약속의 길' 도보순례·난장 문화제 열려 15.12.06 22:10l최종 업데이트 15.12.06 22:13l박호열(tkaen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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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600일인 6일 오후 단원고 2학년 2반 교실(416 교실)을 찾은 시민들이 아이들이 마지막 수업을 한 교실에서 생전의 흔적과 온기를 어루만지며 깊은 상념에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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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당 추천 위원들에게 집단행동을 사주하는 문건을 만들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흔드는 정부. 198억7천만 원의 3분의 1수준인 61억7천만 원으로 대폭 삭감된 특조위의 내년 예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가로 막는 거짓이 진실을 희롱하며 맞은 세월호 참사 600일의 풍경이다.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세월호 안산시민대책위원회는 세월호 참사 600일을 맞아 6일 오후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416 교실) 방문을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 600일 기억과 약속의 길'을 걸었다. 세월호 미수습자 수습과 진상규명, 안전사회 실현을 위한 약속과 의지를 다지는 이날 행사는 오후 2시 단원고에서 시민 300여명과 함께 416 교실을 방문하는 '애들 보러 학교가자'로 시작했다. '영만 엄마' 이미경씨가 416 교실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 오직 남아 있는 건 단 하나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살아 숨 쉬던 이 교실입니다. 이 교실 또한 어떻게든 빨리 치워버리고 잊으려고 한다면 미래는 더 참혹한 세상이 될 겁니다. 그래서 이 교실이 참사의 마지막 현장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 교실은 분명 먼 훗날 오늘을 돌아 볼 수 있게 하는 기억과 안전 교육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교실 방문에는 '262명이 들려주는 10개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2명(미수습자 9명 중 학생 4명, 교사 2명)이 마지막 수업을 했던 10개의 교실에서 아이들의 흔적과 온기를 어루만지며 '마음의 소리'를 나눴다. 또한 제자들과 함께 꿈과 희망을 설계했던 2학년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남긴 '사랑의 소리'를 함께 들었다.

그래서일까. 교실 사이를 걷는 발걸음은 조용하다. 유가족이 마련한 '기억의 공책' 위로 시민들이 써 내려가는 볼펜 소리가 사각거렸다. 2학년 6반 교실에서는 한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통곡했다. 미수습 상태인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학생 교실에서는 간간이 훌쩍임이 울렸고, '기억의 공책'에는 엄마와 삼촌, 시민들이 600일을 맞아 짧은 추모의 글을 남겼다. 그리고 책상 위와 복도를 가득 채운 잊지 않겠다는 다짐들이 속울음을 위로했다.

"은화 학생! 얼굴이 보고 싶네요. 여기 모든 아픈 기억들 다 잊어버리고 하늘에서는 예쁜 천사가 되어요."(2학년 1반 조은화)

"다윤아, 요섭 삼촌이야. 아빠랑 엄마랑 너 돌아 올 때까지 끝까지 찾을게. 우리 꼭 만나자! 꼭 돌아와."(2학년 2반 허다윤)

"현철아, 벌써 600일이야. 차가운 바다에 있을 너를 생각하면 내 마음도 추워. 기다리고 있어. 미안한 어른이."(2학년 6반 남현철)

"영인아! 얼마나 힘드니. 곧 엄마 품으로 올 수 있을 거야.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 노력할게. 천국에서 잘 지내…"(2학년 6반 박영인)

'기억과 약속의 길'은 이날만이 아니었다. 416기억저장소는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3000여명의 시민들이 주말마다 416 교실을 둘러보고 합동분향소까지 걸으며 세월호 참사를 되새겨왔다. 11월 24일에는 416 교실지키기 시민모임이 발족됐다. 시민모임이 벌인 온라인 서명운동에는 5일 현재 6000여 명의 시민이 동참했다. 오는 10일까지 1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한 엄마 아빠들은 매주 교실을 청소를 하며 아이들을 지켜왔다.

"416 교실을 지키지 못하면, 세월호 참사는 잊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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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고 2학년 10반 옆에 자리한 2학년 교무실은 선생님들이 수학여행을 가기 전 마지막 수업을 한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지만 2학년 10개 교실과 교무실은 보존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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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을 지키는 게 최종목적이 아닙니다. 단원고에서 새로운 교육을 시작한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슬픔을 강요하는 추모공간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슬픔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하며 오히려 이겨낼 수 있는, 추모와 교육이 공존하는 단원고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그 416 교실이 보존 논란에 휩싸였다. 요점은 이렇다. 416가족협의회는 지난 9월 경기도교육청과 단원고에 학교 안에 교사를 증축하고 교실을 재학생들의 수업공간과 완전히 차단한 후 원형 보존하며, 학교 밖에 416기념관을 짓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 '단원고 교사증축과 416기념관 건립을 위한 제안'을 했다. 기념관 건립비용은 50억 원 안팎이다.

도교육청은 11월이 돼서야 입장을 밝혔다. 내년 1월 명예졸업식 이후 완공 때까지 2년여 동안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교실과 교무실을 임시로 '배치'한 후 단원고 진입로 옆 도로부지를 확보해 5층 규모의 '416민주시민교육원'을 건립하고 그곳에 이전, 복원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에 대해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가 바라는 건 단원고와 교육청이 새로운 교육을 어떻게 할 건지입니다. 이에 대한 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416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교실을 비울 수 없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교육에 대한 진심어린 고민과 실행이 전제되지 않은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유 위원장은 도교육청 제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도교육청의 제안대로 교육원 건립을 위해 학교 앞 도로부지를 확보할 경우 공원 등이 사라지면서 유가족과 주민 간에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안산시 역시 부정적이다. 도로부지를 매입할 경우 공청회 등을 열어 주민 의견을 수렴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부터 세월호 추모사업 논의가 본격화되는 마당에 주민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갈등 유발을 조장하는 안을 어떻게 받겠느냐는 것이다.

경기도와 도교육청이 절반씩 부담하는 교육원 건립비용 100억 원 조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유 위원장은 "경기도는 50억 조성과 관련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다만 도교육청이 최선을 다해 (경기도를) 설득하겠다는 게 전부로 핵심은 내년 1월 11일 명예졸업식 이후 교실을 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는 물론 도의회와 사전 조율이 전혀 안 됐다는 것이다.

도교육청의 제안이 신뢰도가 떨어지는 데는 민주시민교육원이 416 교실의 대안으로 준비된 게 아니라는 점도 한몫했다. 유 위원장은 "(교육원 건립은) 지난 경기도교육감 선거 때 공약으로 단원고와 관련짓지 않아도 어차피 교육청이 할 공약사업이었다"며 "이러니 어찌 교육청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고 토로했다. 유가족들이 교육청 안을 교실 철거를 위한 수순으로 보는 이유 중의 하나다.

유 위원장은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단원고에서 새로운 교육을 시작하는 게 교실 보존 이유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육청은 교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앞서 단원고에서 시작할 새로운 교육의 내용과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제안을 했어야 했다"며 "교실 보존을 뛰어넘어 진정한 교육을 담보하는 안을 제안한다면 언제든지 수용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도교육청의 제안 순서가 틀렸다는 지적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경기도교육청·단원고·일부 재학생 학부모들이 416 교실 보존을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이번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 진상규명과 함께 교실 존치도 함께 가야 한다. 다만, 교실 존치가 시민들 간의 갈등으로 비쳐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걱정이다. 교실 존치가 안 되는 이유가 뭔지 정말 모르겠다. 왜 안 되는지 거꾸로 물어보고 싶다." (오정숙, 자영업)

"교실을 치우는 것은 참사를 묻어 버리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원양어선과 돌고래호가 침몰했는데 국민들은 무감각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실은 반드시 보존돼야 한다. 참사의 현장을 입시 전쟁을 치르는 공간으로 되돌리는 것은 아이들에게 모욕적인 처사라고 생각한다." (김미숙, 주부)

"동거차도에서 시민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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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월호 참사 600일인 6일 오후 단원고에서 정부합동분향소까지 도보순례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들이 김종천 416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의 안내로 화랑유원지 산책로를 지나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로 들어서고 있다. 길가에는 참사 이후 유가족의 활동상을 담은 펼침막이 게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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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교실을 찾은 시민들은 3시 20분께 단원고에서 화랑유원지 합동분양소까지 도보순례에 나섰다. 노란색의 추모 깃발을 앞세우고 손 피켓을 든 시민들은 416기억저장소 김종천 사무국장의 안내로 화랑유원지 산책로를 함께 걸었다. 길가에는 떨어진 낙엽 대신 유가족들의 600일간 활동상을 담은 펼침막이 벌거벗은 나무를 보듬고 있었다.

짧은 겨울 해가 서녘에 버티고 있을 즈음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 앞 광장에서 600일 난장 문화제가 열렸다. 분향소 앞마당에는 유가족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시민들에게 떡과 차 등 한 끼를 나누는 '먹을거리 부스', 참사 600일 동안 가족과 시민들의 활동을 담은 사진·웹자보·세월호를 주제로 한 도자기 등을 전시한 '전시 부스', 기억과 약속의 나무에 메시지를 남기는 '참여 부스'가 시민들을 맞았다.

'예은 엄마' 박은희씨의 사회로 진행된 문화제에는 시민 500여 명이 참여했다. '예은 엄마'가 미수습자의 이름을 한 명씩 차례대로 부르면 시민들이 그 이름을 따라 부른 후 각자가 기억하는 세월호 희생자의 이름을 다 같이 외치며 문화제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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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린 600일 난장 문화제에서 단원고 ‘경빈 엄마’ 전인숙씨, 산청간디학교 노규미 학생, 김연지 엄마의 노란손수건 회원(왼쪽부터)이 증언과 연대의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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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 언과 연대의 발언에서 '경빈 엄마' 전인숙씨는 동거차도에 머물고 있는 단원고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모들은 정부에서 세월호 인양 참관을 거부하자 인양 현장이 잘 보이는 동거차도로 산으로 올라가 카메라 망원렌즈로 인양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 세월호 인양을 지켜보기 위해 엄마들이 동거차도에서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부모들이 찢어지는 가슴 부여안고 현장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금 인양 작업을 제대로 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가 없어 너무 답답해요. 시민 여러분 누구라도 동거차도로 오세요.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동거차도로 와 주세요. 시민 여러분들께서 끝까지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함께 끝까지 해주세요."

산청간디학교 노규미 학생은 "인터넷에서 시민을 검색해 보니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뜻이던데 권력이 국민에게 있는 세상을 위해 지난해 꽃피던 봄날의 그 시간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연지 엄마의 노란손수건 회원은 "오는 14일부터 세월호 청문회가 열리니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며 "416교실 보존을 위해 부모님들이 도교육청 앞에서 매일 피케팅을 하고 있는데, 시민 여러분들이 함께 해 주는 것만큼 큰 힘이 되는 게 없다"고 당부했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서울 광화문과 안산에서 유가족과 함께 헌신적으로 활동해 온 시민 6명에게 '아름다운 동행'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증정하기도 했다.

600일 문화제는 416가족합창단이 '약속해'를 부르는 가운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이자 '가만히 있으라'던 부끄러운 교육을 반성하는 현장인 416 교실을 지킬 것을 다짐하며 막을 내렸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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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4번째 철수’? 무릎팍 도사는 뭐라 할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12/07 13:03
  • 수정일
    2015/12/07 13:03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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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한지붕 가족끼리 연대하자는 ‘문안박 연대’도 생뚱
문안을 여쭐 수 없는 ‘양초의 난’에 야권 지지자들 부글부글

안철수 의원이 6일 오전 10시30분 국회 기자실에서 회견을 했습니다. 안철수 의원의 회견은 5일 오후 4시에 예고됐습니다. 장소도 1주일 전의 의원회관 간담회실이 아니라 본청 기자회견장이었습니다. 당연히 기자들은 탈당까지 포함하는 ‘중대선언’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의 이날 회견은 일단 혁신전당대회를 거듭 촉구하는 선에서 그쳤습니다. “문재인 대표께 말씀드립니다. 현재의 체제와 리더십으로 당의 분열과 갈등을 잠재울 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 당으로 총선 돌파와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정치 리더십은 누르고 억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짓누를수록 불신과 갈등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화합은 멀어져 갈 것입니다. 지금은 기득권에 연연할 때가 아닙니다. 혁신전당대회를 거부한 12월3일 결정을 재고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저는 회견의 내용보다도 안철수 의원의 표정과 어투에 더 관심이 끌렸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차분한 사람입니다. 버럭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날 회견에서는 평소와 달리 얼굴이 붉고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잔뜩 화가 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저 안철수의 미래나 문재인의 미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야당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정권을 바꾸어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저는 저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우리 당을 바꿔나갈 생각이 없다면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제 더 이상 어떤 제안도 요구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묻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직 낡은 정치를 바꿔달라는 시대 흐름과 국민의 요구에만 충실할 것입니다.” 남은 선택지는 탈당 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요? 문재인 대표가 전당대회를 받아들일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안철수 의원에게 남은 선택지는 탈당뿐입니다. 안철수 의원과 가까이 지내는 당직자에게 ‘탈당하는거냐’고 물었습니다. “외통수다. 다른 선택이 없는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을 한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안철수 의원의 행적이 떠올랐습니다. <한겨레> 김보협 기자가 안철수 의원의 정치 행보를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기는 2009년 6월17일 문화방송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후부터입니다. 그 전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국회의원 출마, 청와대 수석비서관, 장관직 등을 제의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2006년에는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한 일도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정치를 잘할 자신이 없고 힘(권력)을 즐기지도 못하기에 거절했다. 실무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앞으로 정치를 할 가능성은 낮다”고 2009년 12월18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랬던 그가 정치를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은 2011년이었습니다. 법륜 스님, 시골의사 박경철씨 등과 함께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정치를 통한 사회적 기여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하고 10월26일 보궐선거가 확정되자 안철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히자 9월6일 20분가량의 짧은 대화로 조건없는 양보를 선택했습니다. 조건없는 양보는 그에게 ‘참신한 대선후보’라는 새로운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등에 업고 그는 2012년 9월19일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가 실패할 위기에 처하자 11월23일 후보직 사퇴를 전격 선언했습니다. 그 뒤 2013년 4월24일 노원병 재보선에 무소속으로 당선됐고 2013년 11월28일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새정추)를 출범시켰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당창당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2014년 3월26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합당에 전격 합의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습니다. 안철수 의원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서울시장 후보 양보를 ‘첫번째 철수’, 대선후보 양보를 ‘두번째 철수’, 신당창당 포기 및 민주당과의 합당을 ‘세번째 철수’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만약 안철수 의원이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결행한다면 4년여에 불과한 그의 짧은 정치역정에 ‘탈당’이라는 오점이 또 하나 찍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탈당을 하지 않고 주저앉을 명분도 현재로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든 ‘네번째 철수’라는 비판을 받게 될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안철수 의원의 이날 회견에 대해 문재인 대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안철수 의원의 회견 30분 뒤인 오전 11시부터 국회 대표실에서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의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비정규직 구직수당제 등 4대 개혁안을 제시하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비정규직 기자회견을 마치고 대표실 옆에 붙어 있는 작은 회의실에서 안철수 의원의 회견문을 받아서 읽어봤지만 별다른 코멘트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즉답을 내놓으면 안철수 의원을 자극할 수 있어 답변을 미룬 것인지, 아예 무시하고 ‘나의 길’을 가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문재인 대표가 안철수 의원의 혁신전당대회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안철수 의원이 탈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중재안을 마련할 중진이나 의원들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연합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연합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그런데 참 궁금합니다.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의 관계는 왜 이렇게 꼬이는 것일까요. ‘혁신’이라는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도 손을 잡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우선 두 사람을 이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내 주류는 안철수 의원을 비판하고 비주류는 문재인 대표를 비판합니다. 주류와 비주류의 상호 비판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보다 더 가혹하고 야멸찬 경우가 많습니다. 당 밖에도 분열을 부추기는 여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친여 및 기득권 성향의 논객들은 공공연히 갈라설 것을 주문합니다. 그래야 여당에 어부지리가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야당 성향의 논객들도 내놓고 갈라서라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문재인의 협량한 정치력과 무책임” 안철수 의원의 멘토로 알려진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12월5일치 <동아일보>에 칼럼을 썼습니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12.3 독주선언으로 한국정치, 특히 야당정치에 일대 격변이 불가피해졌다. 제1야당 지도부의 협량한 정치력, 강고한 기득권, 골수에 밴듯한 흑백논리, 철저한 무책임이 거대한 후폭풍, 민심이반을 불러오고 있다.” “만일 이런 상태로 계속 가면 유권자의 탈바꿈이 괴력을 발휘할 것이다. 어차피 내년 총선은 틀린 것이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제1야당을 일단 무너뜨려야 한다는 가치판단의 돌연변이가 넓게 퍼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신당을 둘러싼 정치지형이 크게 변할 것이다. 야권재편의 회오리 바람이 불 것이다.” ‘제1야당을 일단 무너뜨려야’라는 표현이 무척 자극적입니다. 한상진 교수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민주당 대선평가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후보와 이른바 친노세력을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던 사람입니다. 한상진 교수는 지난 11월18일 ‘천정배 신당’ 창당 선포식에 참석해 “야권이 분열되는 것 아닌가, 집권여당에 어부지리를 주는 것 아닌가 일말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를 변혁시키는 데는 전진과 후퇴의 방법이 필요하다. 개혁을 시작하면 그 안에 기득권, 타성, 고정관념, 패권세력이 생긴다. 그런 체재로 더 나아가기 어렵다.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해야 한다”고 축사를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표의 대변인을 지냈던 김기만 전 청와대비서관은 얼마전 ‘안철수에게 묻는다. 문재인 결단하라’는 글을 썼습니다. 안철수 의원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안철수, 혁신위원장 안맡고 뒤에서 딴소리” “문재인 대표가 지난 5월 안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을 제안했다. 그건 왜 맡지 않고 뒤에서 딴소리를 그리할까.” “혁신을 전매특허, 독점계약한듯이 말하지만 그의 수사 속에서 혁신의 어떤 구체성도, 진정성도 발견되지 않는다. 혁신의 실체가 없다. 자신이 볼 때 김상곤 정도는 우스운가. 혁신위원장의 노력은 시쳇말로 뭣도 아닌가. 구상유취 행태도 분수가 있는 법이다. 실망 넘어 분노가 치민다. 새누리보다 더 두려운 분들이 당 내부에 득실득실하다.” 두 사람의 글에는 증오와 저주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문재인 안철수 불화의 근본 원인을 주변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정치인은 결국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지는 존재들입니다.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은 매우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당내에서는 두 사람을 ‘양초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 사태를 ‘양초의 난’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양초의 난’을 분석하려면 시시비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사태가 한창 진행중이고 자칫하면 분석이 정쟁에 휘말려 들어갈 수 있으니 비겁하더라도 당분간은 양비론에 그치겠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애초 자신의 리더십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른바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이 이를 거절하자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않고 총선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정면돌파를 선택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문안박 연대는 왜 제의한 것일까요? 모든 정치적 제안에는 상황에 대한 사전 분석과 기획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문안박 연대는 사실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이상한 제안입니다. 연대는 ‘다른 사람’과 하는 것인데 안철수 의원이나 박원순 시장은 같은 정당 소속입니다. 문안박 연대를 하면 최고위원들의 권한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안철수 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문 대표께 묻습니다. 그 각오와 결기로 전당대회에서 국민과 당원께 재신임을 묻겠다는 선택은 왜 하지 못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려면 문재인 대표가 지난 9월 혁신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왔을 때 찬성을 했어야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11월29일 혁신전당대회를 제안하고 다음날 광주로 내려갔습니다. 사흘 뒤 신문에는 안철수 의원이 김치공장에서 김치를 맛있게 받아먹는 사진이 크게 실렸습니다. 어느 당직자가 그 사진을 보고 “당은 지금 위기에 빠져 있는데 호남에 가서 자신의 대통령 선거 운동만 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비판을 했습니다. 사실 새정치민주연합 안에는 문재인 안철수 어느 한쪽 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직자나 국회의원 중에 문재인 안철수 어느 편도 아닌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내 정치에서 중립지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몇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결국 이번 일로 문재인도 망가지고 당도 망가질 것이다. 큰일이다.” “안철수 의원은 2017년 대통령 선거 욕심밖에 없다. 정당정치를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전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두 사람에 대한 실망과 비난이 지금 야당 사람들과 지지자들 사이에 급속히 번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두 사람의 판단과 선택에 새정치민주연합과 야권 전체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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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 가해의 진실을 말하라

<베트남 나비평화기행③> 빈딘성 민간인 학살 현장을 가다

빈딘성=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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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05  22: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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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베트남전쟁 종전 40년입니다. 그리고 한국군 전투병 파병 50년입니다. 지금까지 학자들과 언론인들은 베트남전쟁이 왜 발발했고, 어떻게 진행됐는가에 대해 천착해왔습니다. 많은 자료들이 발굴되고, 베트남전쟁 피해자들과 참전 군인들의 증언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있을 뿐, 가해자는 진실의 물음에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베트남전쟁이 왜'라는 물음을 넘어서 한국사회는 "왜 민간인을 학살했는가", "어떻게 사죄해야 하는가"에 대해 늦었지만 답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평화를 만들어어야 합니다.

<통일뉴스>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함께 <나비기금>이 마련한 '베트남 나비평화기행'(2~9일)에 함께 합니다. 우리가 저지른 학살에 당사자가 사죄하고 해결에 나서기를 바라며 평화를 찾는 동행기를 마련했습니다.

 

   
▲ 베트남 빈딘성 고자이마을 중앙 위령비 뒤에는 1966년 음력 2월 26일 당시 맹호부대의 학살상황이 모자이크벽화로 묘사되어 있다. 군인 오른쪽 팔에 맹호부대의 상징인 호랑이 그림이 선명하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1966년 1월 9일 낌따이촌 37명 학살
1966년 음력 1월 23일부터 2월 26일 빈안사 1,004명 학살
1966년 9월 24일 쯔엉탄마을 58명 학살

'학살'(虐殺, massacre), 가혹하게 마구 죽임'. 1965년 10월 25일 한국군 전투병으로 구성된 맹호부대가 베트남 중부 빈딘성 뀌년시에 있는 항구에 상륙했다. 상륙 1년도 안된 이들에 의해 민간인들이 학살됐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마련한 '2015 나비기금과 함께하는 나비평화기행' 참가자 20여 명이 4일과 5일 베트남 빈딘성 일대에 있는 민간인 학살 현장을 찾았다.

4일에 방문한 맹호부대 주둔지역인 빈딘성 낌따이촌에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소위 베트콩)이 쏜 총에 한국군 1명이 사망한다. 이에 복수라는 명분을 가장한 한국군이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을 공터에 모이게 했다. 그리고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다. 그리고 불을 질렀다. 여기서 43명이 죽었고 이 중 37명이 낌따이촌 사람이다.

주민들이 학살된 곳에 1976년경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졌다. 증오는 혐오감과 분노가 같이 느껴질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여기에는 싫은 감정과 비난하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한국군에 대한 분노를 고스란히 담은 구조물이다.

현재 일부 구조물은 마을 어귀에 서있고, 2016년 학살 50년을 앞두고 새로운 '증오비' 건립 공사가 한창이다. 가해의 진실에 답을 얻지 못한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한국군을 증오할 수밖에 없다.

이 마을에는 정대협이 '나비기금'으로 지원하는 찐 티 남 할머니가 생존해 있다. 남 할머니는 학살로 다섯 명의 가족을 잃었다. 지금도 학살 당시 방공호에서 나와 한국군에게 전투화로 차이고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았던 순간, 가족의 시신이 불타는 광경이 선하다.

   
▲ 낌따이촌 입구에 세워져 있는 '한국군 증오비'.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낌따이촌에서 학살된 이들이 묻힌 무덤에 나비평화기행 참가자들이 4일 향을 피우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떠이선현 떠이빈사 고자이마을. 맹호부대가 이 곳에서 학살을 하기 전까지 빈안(平安)사였다. 하지만 이후 떠이빈(西英)으로 이름을 바꿨다. 더 이상 편안할 수 없다는 반증이다.

한국군의 대표적인 민간인학살로 손꼽히는 빈안지역에서는 1966년 음력 1월 23일부터 2월 26일까지 15개 지역에서 총 1,004명이 학살됐다. 학살의 마지막 날에 고자이마을에서는 1시간만에 380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학살된 주민들이 묻힌 땅 위에 위령비가 세워졌다. 위령비에는 '이곳에서 1966년 2월 26일 남조선 괴뢰군이 미 제국주의의 지휘아래 무고한 주민 380명을 학살하다'라는 문구와 함께 피해자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리고 '미 침략 적군에 대한 증오를 깊이 새긴다'라는 구호가 새겨졌다. 

그리고 중앙에 있는 위령비 뒷편에는 맹호부대가 민간인을 학살하던 당시의 장면이 묘사된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학살당시 생존자인 런 아저씨의 눈에는 한국군이 쏜 총알이 빗발치고 수류탄의 파편으로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의 모습이 여전히 또렷하다. 그리고 엄마와 여동생의 죽음도 목격해야 했다.

   
▲ 고자이마을 중앙 위령비.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고자이마을 학살 피해자들이 묻힌 무덤 위에 세워진 위령비. 참가자들이 분향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5일 나비기행 참가자들은 푸깟현 쯔엉탄 마을과 프억흥(福興)절을 찾았다. 한국군은 한 주민의 집 마당으로 마을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영문을 모른 채 주민들은 총을 맞고 수류탄에 이어 박격포의 공격을 받았다. 

조그만 마을에 14가구 58명이 몰살됐다. 인적이 사라진 쯔엉탄마을, 가족들을 반겼을 한 주민의 집 마당은 거대한 무덤으로 변했다. 그리고 무덤 뒤 위령탑 옆에는 '참살'이라는 단어와 함께 '남한 병사들은 58명의 양민 주로 노인, 여자 그리고 어린이들을 살해하였습니다'라고 한글로 적혀있다.

나비평화기행 참가자들이 쯔엉탄 위령비를 참배하는 도중 한 할머니가 들어왔다. "가족 8명을 여기서 잃었다. 한국군이 왔다. 모조리 쐈다. 수십 명이 죽었다. 우리가 무엇을 아는가. 여기 있으면 너무 힘들다"라고 나즈막히 말하고는 홀연히 자리를 떴다.

쯔엉탄마을을 내려다보는 할머니산이라는 뜻의 '누이바'의 품에서 태어난 틱 동 꾸아 스님은 4살에 출가해 참살, 뜻 그대로 비참하고 끔찍한 상황을 면했다. 스님은 참살된 고향주민들을 위해 프억흥절에서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매일 천도제를 지내고 있다.

   
▲ 쯔엉탄마을 위령비. 위령비 앞 푸른 잔디는 무덤이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쯔엉탄위령비에는 설명문구가 한글로 적혀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증오', '학살', '참살'. 혐오스럽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비난하게 만드는 가혹하게 마구 죽여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벌인 자는 누구인가. 세 지역에 있는 구조물은 '남조선 괴뢰군' '한국군', '남한 병사'를 지목한다. 바로 '맹호부대'이다.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당시 채명신 주월사령관이 말했다. 맹호부대원들은 사령관의 명령을 어긴 것인가. 아니면 채 사령관은 부하들의 행위를 감추려고 한 말인가.

진실은 단 하나다. 한국정부와 참전군인들은 민간인 학살행위가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50년이 되도록 한국군을 증오하는 생존자와 목격자들이 있다. 생존자와 목격자들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한국군을 지목하고 50년 가까이 증오하고 있는가.

낌따이촌은 1966년 1월에 벌어진 학살로 "'따이한'이 온다"는 말에 지금도 울던 아이도 눈물을 그친다. 그리고 베트남전쟁 당시 남베트남군으로 미군을 도운 응우옌 꾸앙 안 할아버지는 위령비 재조성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안 할아버지는 "베트콩이 쏜 총에 한국군 한 명이 전사했다. 한 명이 죽었다고 우리 마을 주민들을 무참하게 죽였다고 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끔찍하다"라고 말했다. 한국군 편에 섰던 할아버지가 한국군의 학살을 부인할 법한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국군에 의해 학살된 주민들의 넋을 달래는 일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다.

   
▲ 낌따이촌에서 위령비 재조성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응우옌 꾸앙 안 할아버지.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쯔엉탄마을 출신인 틱 동 꾸아 스님은 프억흥절에서 매일 천도제를 지낸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한국인도 잘 찾지 않는 외진 곳에 위치한 쯔엉탄 민간인 참살 위령비는 다른 위령비와 달리 한글이 적혀있다. 쯔엉탄 위령비는 국제 공용어도 아닌 한글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가. 틱 동 꾸아 스님은 한국정부가 외면하는 58명의 피해자를 위해 왜 천도제를 지내고 있는가.

'증오', '학살', '참살'의 진실의 물음에 한국정부가 답해야 할 차례다. 용맹한 호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맹호는 침묵의 나약함이 아니라 진실을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 그리고 진실을 통한 진정한 평화의 길에 함께해야 한다.

빈안사 민간인학살 생존자 런 아저씨가 말했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학살 속에 있던 사람이고 내가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직접 몸으로 겪은 이야기고 이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들춰서 또다시 한국과 베트남에 증오나 원한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비평화기행 참가자들은 "당 티 카오, 응옌 티 바..팜 반 노" 쯔엉탄 위령비에 적힌 58명의 피해자 이름을 읽으며 진실을 위한 초혼을 불렀다.

   
▲ 프억흥절에 있는 쯔엉탄마을 학살 피해자 영정.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빈딘성박물관에 전시된 고자이마을 학살자들이 숨어있던 방공호에서 발견된 유물. 학살자들이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소위 베트콩)이 아님을 증명한다.[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빈딘성박물관. 1969년 맹호부대와 한진(현 대한항공)에 의해 지어진 한월문화회관으로 베트남이 승전한 뒤 접수해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런 아저씨 이야기

베트남 나비평화기행 참가자들은 4일 오후 고자이마을 위령비에서 당시 생존자인 런 아저씨와 조우했다. 애초 그와 만남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는데, 한국인들이 왔다는 소식에 한 걸음에 달려왔다. 

응우옌떤런이 본명인 런 아저씨는 빈안사 깐븜 학살이 벌어진 2월 15일 15살에 맹호부대원들을 마주해야 했다. 65명이 살해당한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수류탄 파편이 몸 안에 박혀 밤새 뛰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할 정도다. 그의 이름이 달리다라는 영어 '런'과 닿아있다.

다음은 런 아저씨의 증언이다.

   
▲ 빈안사 학살 당시 살아남은 런 아저씨.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사실 그날 하루가 굉장히 길었어요. 학살이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졌지요. 그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하기가 쉽지 않지만 간략하게 들려줄께요.

그때가 음력 2월 15일이었지.. 이른 아침 5시경부터 마을 사방에서 폭격이 시작됐어요. 그때는 아침 5시 경이라 사람들이 자고 있을 때였지요. 포탄소리에 자다가 깨서 폭격을 피하려고 다들 방공호로 들어갔어요. 아침 6시 정도에 들어갔는데 포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다시 마을 입구에서 총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라구요. 총소리가 아침 6시경부터 점심때까지 이어졌어. 아 그런데 점점 우리 집쪽으로 가깝게 다가오는게 느껴지더라구. 점심 때쯤 되니까 총소리가 우리집 가까이에서 들렸죠. 

연발로 '다다다다' 조금있다가 다시 '다다다'... 총소리와 총소리 사이에 신음, 비명, 고함, 울음.. 너무 참혹한 소리들이 총소리 사이사이로 들렸어요. 아이들, 노인들, 아줌마들의 끔찍한 소리더라구요.

다행히 총소리가 우리 집을 비켜가길래 아 멀어졌다, 살았구나 싶었는데 오후 4시경 마을 끝에서 다시 총소리가 올라오데요. 우리 가족이 숨어있는 방공호에서 발자국 소리가 멈췄는데, 뭐라고 막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나서 저희가 숨어있는 방공호 속으로 총을 겨눴어요. 말 소리를 알아들 수 없는데 손짓을 하더군요. 올라오라고. 그래서 나왔어요.

올라가서 보니까 한국군이더군요. 한국군이 엄마, 여동생 저를 끌고 가는데 가는 길에 집을 만나면 다 뒤져서 노인을 끌어내오고 가다가 또 사람을 만나면 끌고 가고 그런 식으로 우리를 끌고 어디론가 데려갔어요.

어느 논 귀퉁이더라구요. 거기가서 보니까 20여 가구 가족들이 끌려와서 모여있어요. 한국군인들이 마을사람들을 가운데로 모이라더니 고개를 숙이래요. 쳐다보지 말라고. 

마을사람들이 둘러앉아서 고개를 땅에 쳐박고 있는데 그 주위를 한국군이 둘러쌌어요.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어느 한 군인의 외침소리를 들었어요. 그소리에 맞춰서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하는데...

   
▲ 고자이마을 위령비 앞에서 참가자들이 런 아저씨의 증언을 듣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포연이 가득했지만 똑똑히 봤습니다. 총알이 빗발치고 수류탄이 터지는데, 어떤 아이는 머리가 터져서 뇌수가 흘러나오고 어떤 사람은 배가 터져서 창자가 나오고 어떤 사람은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는 광경을 지금도 또렷이 선명하게 기억해요.

다행히 그때까지 우리 가족은 총에 맞지 않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뭐 하나가 내 발 뒷굼치에 탁 떨어지더라구요. 그런데 본능적으로 수류탄이다 싶어 몇 발짝 나갔는데 터졌어요. 파편들이 나를 덥쳤죠. 온 몸을 떨었던 기억까지 납니다. 의식을 잃어서 다음부터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가 의식이 다시 들고 보니 컴컴한 밤이더라구요. 깨어나니까 여전히 약하지만 사람들의 신음을 들었죠. 이 소리들이 점점 작아지더니 사라졌어요. 사위가 고요해졌는데 다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워있는데 밤 10시 정도인가 그때서야 한국군을 피해서 달아난 마을 사람들이 시신을 수습하려 돌아왔어요.

부상자는 옮기고 시신은 수습하고 그랬죠. 우리 집은 포격으로 다 불이타서 마을사람들이 저를 숙부집으로 실어갔어요. 거기로 옮겨가서 보니까 이미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더라구요. 어머니는 하반신이 날아갔어요. 그리고 몸에도 부상을 심하게 입었요. 어머니는 기력이 없어서 고함을 지르거나 말을 하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자그마하게 신음소리를 내더라구요. 여동생은 머리에 수류탄을 맞아서 사람의 음성이 아닌 짐승같은 비명을 계속 질었어요.

밤 12시쯤인가 여동생이 먼저 죽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여동생을 돗자리에 말아서 나갔어요. 저도 그때 부상이 심해서 다리는 온통 수류탄 파편으로 피투성이고... 따라갈 수 없더라구요. 마을사람들이 묻고 돌아왔는데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한 마디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를 돗자리에 말아 나가는 순간 나는 다시 의식을 잃었습니다.

의식이 들었는데 나 혼자 남았어요. 어머니가 없고 여동생도 없고 집은 불탔고 옷도 먹을 것도 없고, 참 막막했어요. 세상에 혼자남았구나. 혼자서 한참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학살은 내게 굉장히 큰 슬픔인데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내가 학살 속에 있던 사람이고 내가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직접 몸으로 겪은 이야기고 이것이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역사 속 진실, 학살의 진실을 내가 알려주는 것이 산 자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내가 지금 이야기한 것은 진실입니다. 사실이에요.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들려주는 것이 과거를 들춰서 또다시 한국과 베트남에 증오나 원한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실을 알아야만 한국과 베트남이 상처를 극복하고 정말 좋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이 같은 청년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야합니다. 여러분 같은 청년들이 베트남 청년들을 만나야 해요. 한국과 베트남의 새로운 역사를 써가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한국에 가서 친구들에게, 청년들에게 많이 알려야 해요.

나는 시민들의 사과를 많이 들었습니다. 직접 들었어요. (4월) 한국에 갔을 때에도 내 손을 잡고 그랬어요. 문제는 한국정부가 사과해야 합니다. 문제는 참전군인과 한국정부가 인정하고 사과해야죠.

[정리=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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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등산 유전자’를 타고났나

한국인은 ‘등산 유전자’를 타고났나

조홍섭 2015. 11. 13
조회수 4973 추천수 0
 

세계가 놀라는 한국인의 등산 열풍…성인 28% 월1회 이상 등산, 젊은층도 가세

조선 선비들도 등산 즐겨 '유산기' 남겨…등산은 공부 수단, 정상 등정 고집 안해

 

설악2.jpg» 단풍 구경을 위해 설악산을 찾은 등산객들. 탐방객 수는 10월 한 달에만 72만명에 이르렀다. 사진=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우리나라 사람은 등산을 좋아한다. 주말이면 수도권 등산로에선 앞사람 엉덩이를 보면서 줄지어 산을 오른다.

 

단풍철에 명산은 인산인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집계를 보면, 10월 한 달 동안 설악산에만 72만여명이 탐방객이 찾았다. 절정을 이룬 10월17~18일 주말에는 10만명 가까운 인파가 설악의 단풍을 즐겼다.
 

산에 오르는 이는 주로 중장년층 남성일까. 맞는 얘기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한국갤럽의 9월 조사에서 월 1회 이상 등산하는 사람은 남성의 37%, 여성의 19% 등 성인 넷에 한 명꼴(28%)로 나타났다.  50대 이상 남성의 절반이 여기 해당하지만 20대 남성의 34%, 30대 여성 21% 등 젊은층도 적지 않았다.

 

설악.jpg»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을 오른 뒤 중청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등산객들. 사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등산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활동이기도 하다. 한국갤럽이 주5일제가 시행된 2004년 이후 지난해까지 3차례 한 조사에서 등산은 선호취미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그 비율도 증가했다. 등산은 남성에게는 축구 다음, 여성에겐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기도 했다.


한국인을 이토록 산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뭘까. 한국인의 등산 열풍을 본 서구 언론은 고가의 등산복과 등산장비, 둘러앉아 막걸리 등 음식을 먹는 모습에 먼저 놀라지만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분석한다.

 

wsj.jpg» 한국인의 등산열풍을 다룬 지난 9월11일치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판.

 

<월스트리트저널>은 9월11일치 기사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녹초가 된 한국인이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인기있는 방법이 등산”이라며 “그런데 한국인은 너무 경쟁적이어서 등산할 때도 스위치를 끄지 못한다”고 짚었다. 그것이 “앞다퉈 정상에 올라 단체사진 찍고 재빨리 하산”하는 산행 문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달걀판처럼 산이 많은 나라인데다 부유해지고 여가 시간이 늘어서’라고 풀이했다. <뉴욕타임스>의 백두대간 등정기에서는 “미국인에게 서부가 있다면 한국인에겐 산이 있다”라고 적었다. 미국 공영방송 <엔피아르>(NPR)는 로스앤젤레스의 등산로를 가득 메운 이민 2세, 3세 재미 한국인을 취재하고 “등산은 한국인의 정체성”이라고 단언했다.

정선.jpg» 정선이 18세기에 그린 <백천동>. 조선시대 선비의 유산 모습을 잘 보여준다. 중앙 바위 위에서 선비들이 경치를 즐기고 있다. 그림 왼쪽에 삿갓을 쓴 승려들과 그들이 내려놓은 가마(남여)가 보인다. 오른쪽엔 선비들이 타고온 말이 있다.

 

등산은 생물학적으로는 몰라도, 우리의 문화 디엔에이(DNA)에 깊이 새겨져 있을지 모른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선비들은 명산을 등산하고 그 기록을 남겼다.

 

6일 경상대에서 열린 명산문화연구센터 창립기념 학술대회에서 ‘조선 선비의 유산(遊山) 문화’를 주제발표한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산수 유람을 중요한 공부 수단으로 생각했던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유산이 오늘날의 등산이나 여행과는 다르지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조선 시대 등산기인 ‘유산기’는 약 600편에 이른다. 사대부들의 등산은 주로 북한산, 금강산, 지리산, 소백산, 가야산, 청량산, 백두산 등에서 짧으면 2~3일, 길면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이뤄졌다.

 

중흥동.jpg» 북한산에 올라 시를 쓰고 있는 선비들을 그린 중흥동의 금란계첩(1857).

 

유산기를 정리한 정 교수의 <사대부, 산수 유람을 떠나다>를 보면, 승려가 메는 가마를 타고 산을 오르고 악사와 기생까지 동원하기도 하는 등 당시 특권층의 행태에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늘날 산행문화의 뿌리로 보이는 것도 있다.

 

앞서 다녀온 이들의 산행기를 꼼꼼히 읽어 여행을 준비하고, 경치 좋은 곳에 둘러앉아 시를 짓고 사교활동을 했다. 산행 중엔 계곡에 놋쇠나 구리로 만든 노구솥을 걸고 밥을 지어 준비해 간 반찬을 곁들여 먹었다. 술도 여흥과 비상식량, 약으로 쓸 필수품이었다.
 

조선 선비도 절경을 즐기러 산에 갔지만 산행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심신을 수련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산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요즘과 달랐음은 유산기를 남긴 선비 가운데 상당수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데서도 알 수 있다.

 

호연지기와 선비로서의 지조를 지키려 했던 이들이 많이 찾았던 지리산 천왕봉은 많은 이들이 찾았지만 금강산의 비로봉이나 북한산의 백운대의 정상을 등정한 이는 매우 드물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러나 복원할 만한 산행 유산이 유산기에 들어있다.

 

산행 열풍은 단군신화, 유산기, 산신제 등 한민족과 산의 뗄 수 없는 관계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원석 경상대 교수의 말을 빌면, “한민족에는 ‘산천 디엔에이’가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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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검찰, "사망자 129명, 부상자 352명, 99명 중태"

[라이브블로그] 파리 검찰, "사망자 129명, 부상자 352명, 99명 중태"

 
 
게시됨: 업데이트됨: 
PARIS

업데이트 : 2015년 11월14일 23:55 (기사 업데이트)
업데이트 : 2015년 11월15일 04:10 (희생자수 업데이트)

14일(현지시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전날 밤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동시다발 테러를 '전쟁행위'로 규정하고 이슬람국가(IS)를 배후로 지목했다. IS는 성명을 내고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오전 생방송으로 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이번 사건이 "(프랑스 내) 공모와 함께 IS에 의해 외국에서 계획되고 조직된 전쟁 행위"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수호해온 가치에 대한, 자유 국가로서의 우리의 존재에 대한 테러범들의 군대, IS 단체, 지하디스트 군에 의한 (공격)"이라며 "나라 안팎에서, 어디에서라도 모든 수단을 써서라도 행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ollande

IS는 성명을 내고 "이번 공격은 폭풍의 시작일 뿐이며, 교훈을 얻기 원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주장했다.

한편 13일 밤(현지시간) 파리 시내 콘서트장과 레스토랑, 축구경기장 등에서 일제히 발생한 총격 및 폭탄테러로 현재까지 최소 129명이 숨졌으며, 부상자는 352명으로 파악됐다고 파리 검찰이 14일 밝혔다. 부상자 중 99명은 중태로 사망자수는 추가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검찰은 "테러리스트" 7명이 숨졌으며, 이들은 3개의 팀을 이뤄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범인들 중 한명은 프랑스 국적인 것으로 확인됐으나, 구체적인 신원이나 나머지 범인들의 신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희생자수와 이들의 정확한 신원 역시 아직 정확히 집계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건 직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던 프랑스는 14일부터 3일간을 애도기간으로 정했으며, 주요 시설 및 국경지대에 대한 경비태세를 최상위급으로 강화했다.

한국 정부는 14일 밤 프랑스 파리에 '여행자제' 경보를 내렸으며, 프랑스 나머지 지역에는 '여행유의' 경보를 발령했다.

 

* 자세한 속보는 아래 라이브블로그에서 업데이트 됩니다.
** 14일 저녁 9시(한국시간) 이전의 속보는 [라이브블로그] 프랑스 파리, 동시다발 테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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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경찰 차벽과 곳곳서 충돌

 
(추가)민주노총 등, “차벽은 위헌...집회 금지 책임져야 할 것”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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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4  18: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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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들어오는 종각 앞에서 경찰이 방어벽을 쌓아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의 행진을 원천 봉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비롯한 53개 단체가 14일 오후 4시부터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진행하기로 한 ‘민중총궐기’ 대회가 차벽과 경찰병력을 이용한 경찰의 원천 봉쇄로 인해 이날 오후 6시가 되도록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날 4시 30분을 조금 넘겨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이날 ‘민중총궐기’의 사전대회인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2015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 8만명은 일제히 광화문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으며 경찰은 행진에 시작되기 전에 이미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동아일보사 까지 차벽을 세워 출입을 통제했다.

이날 광화문에서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까지 예정돼 있던 민중총궐기에 참가하기 위해 오후 2시부터 서울역광장에서 사전 대회를 진행한 전국빈민연합 등 비민단체 회원들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함께 이동했으며, 남대문 앞에서 전국농민대회를 마친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가톨릭농민회·친환역농업인연합회 등 농민단체 소속 농민들도 함께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경찰의 차벽을 향해 합법적 집회 보장을 요구하며 물병을 던지는 등 저항했고 경찰은 이에 대해 버스 위에서 최루액을 쏘며 진압을 시도했다.

   
▲ 동아일보 앞 에서 광화문 사거리로 이동하는 길목에도 차벽으로 막고 있는 모습.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경찰은 인근 광화문 우체국 앞 대로도 차벽과 경찰병력으로 막아 대학로에서 사전대회를 마치고 광화문을 향했던 민주주의국민행동,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등 시민 약 1만명의 광화문 진출도 저지했다.

뿐만 아니라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뒤편으로도 차벽과 경찰병력을 배치하는 등 광화문 광장 일대에 집회 참가자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광화문 전철역 안에서도 경찰이 통행을 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역안에서도 이동을 시도하는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중이다. 

종로구청 사거리에서는 경찰이 자유로운 이동을 요구하며 대치중인 시민들을 향해 물포를 난사했고, 인근 조계사에서 안국동 방향, 인사동에서 안국동으로 이동하는 방향에는 시위대가 있지도 않은데 차벽으로 통행을 막고 있어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상여를 앞세워 광화문 행진에 나섰던 농민들은 물대포에 맞아 상여 대부분이 파손되기도 했다.

이날 대회를 준비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투쟁본부)는 매년 전태일 열사 기일인 11월 13일 전후한 주말에 서울에서 진행하던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 이번에는 농민, 빈민, 청년, 시민 등 각계 각층이 함께했다고 밝혔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언론장악, 철도-의료-교육민영화와 노동개악까지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분노한 민중들이 직접 행동으로 저항하는 열기가 높아 당초 예상했던 10만명을 상회해 13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최종 집계했다.

이는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사태로 발생한 촛불항쟁 이후 최대 규모이다.

태평로에서 광화문 방향, 종로에서 광화문방향으로 각각 행진을 시도하던 참가자들은 오후 8시 30분께 태평로로 합류해 당초 계획했던 행진을 계속하려고 했으나 경찰의 방벽에 막혔다.

투쟁본부는 오후 11시 공식 해산선언을 했다.

이날 전남 보성에서 올라 온 농민 백남기(69살)씨가 경찰의 직격 물대포를 맞아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입원해 있으며, 현재 위중한 상태로 알려져 있다.

주최측은 이날 경찰의 물대포 진압 등으로 인해 30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이중 일부는 뇌출혈 증세 등으로 인해 응급 후송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오후 10시 현재까지 확인된 연행자수는 26명이다. 

투쟁본부는 이날 대입 논술시험을 치르는 11개 대학 중 대학로에 위치한 성균관대학교의 수험생 이동에 문제가 없도록 당초 3시로 계획돼 있던 시민대회와 행진시간을 입실이 끝난 4시 이후로 1시간 늦추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4시부터 광화문 인도를 통해 청운동 사무소까지 행진신고를 냈지만 경찰이 ‘교통불편’을 이유로 금지 통고를 했다며, “이는 각종 문화·체육, 종교 정부행사를 위해 광범위한 교통통제를 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명백히 구별되는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했다.

   
▲ 14일 오후 4시 이후에 진행된 민중총궐기에 앞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진행됐다. 앞서 인근 여러 지역에서 사전대회를 마친 8만명의 민주노총 조합원이 참여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수배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뒤로 설치된 차벽.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미국대사관 앞의 철통경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태평로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하려는 대회 참가자들이 경찰 차벽을 철거하기 위해 매단 밧줄을 끌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추가-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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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부의 무한 연장, 언론의 침묵은 범죄다”

[인터뷰]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노동이 무너지면 언론도 무너진다”
 
입력 : 2015-11-13  17:58:16   노출 : 2015.11.15  09:42:09
김유리·손가영 기자 | yu100@mediatoday.co.kr  
 

“박근혜 대통령의 ‘노동개악’을 한 마디로 하면 ‘살생부의 무한 연장’입니다. 수익 창출과 원가 절감 압박을 받는 기업은 노동자를 상시적으로 평가해 하위 몇 %를 잘라내는 식으로 ‘일반해고’를 수시로 가하겠죠. 박근혜 정부가 ‘정년 60세 상향’ 공약을 내걸어 실행시켰지만 글쎄요, 한 직장에서 정년을 채우는 노동자가 나올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총파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전국 지·본부 순회를 막 마친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위원장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개악법이 통과되면 1987년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다”는 경고를 부정했다. 오히려 “1987년보다 못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게 김 위원장의 진단이다. 김 위원장은 “정권을 바꿔야한다”는 말에도 단연코 반대했다. “한번 시작된 노동개악에 적응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이유다. 다음은 김환균 위원장과 나눈 1문1답이다.  

- 최근 전국을 돌면서 조합원을 만나면서 총파업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총파업을 결단하게 된 이유는? 
“언론노조는 그동안 ‘노동운동 차원의 역할’과 ‘한국 언론의 자유 신장을 위한 사회적 책무’라는 두 바퀴로 굴렀다. 솔직히는 후자 쪽에 무게를 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을 들여다보니 이건 노동의 토대를 완전히 무너뜨릴 ‘개악’ 수준인 거다.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 지금은 노동조합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싸워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정권과 자본이 목을 치겠다며 달려드는 데 도끼를 갖다 바치면서 고분고분 목을 내줘서는 안 된다. 우리도 벨 수 있든 없든 칼 한 자루는 준비해야한다. 중앙집행위원 간에는 그런 공감대가 형성됐고 결국 파업 찬반 투표를 하게 됐다.” 

   
▲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전국언론노조동조합 이기범 기자
 

 

- 지역에서 만난 조합원들과 어떤 이야기를 했나. 
“언론노조의 역사는 2012년을 기점으로 나뉜다. 언론 탄압에 맞서 격렬하고 끈질기게 싸웠던 때가 2012년이다. 승리할만한 결과에 이르지 못했다. 솔직히는 패배감이 크다. 경기에 졌을 때 히딩크 감독이 그런 말을 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이 대화해야 한다.’ 주변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다보면 똑같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힘을 얻는다. 그런 마음으로 총파업 투표를 간곡히 부탁했다.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도 꼭 참여하자고 했다. 많은 사람이 분노를 공유하는 현장은 각자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대화를 마칠 때 쯤 조합원 표정을 보면 모두 결연해져있다. 제겐 피곤을 잊게 만드는 ‘사이다’(속이 시원하다는 뜻의 인터넷 언어)였다.”  

- 이번 슬로건을 ‘노동이 무너지면 언론도 무너진다’고 잡았다. 무슨 뜻인가. 
“이번 정부의 노동개악, 언론 장악,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세가지 사안을 하나로 바라봐야 한다는게 언론노조 인식이다. 노동개악은 기본적으로 노조를 무력화해 노동자를 파편화시키고 일반 해고를 통해 사람을 마구 잘라내게 된다. 사회의 버팀목인 노조나 개인이 파편화된 사회에서 공정언론·언론자유 이런 구호는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비판적인 언론과 건전한 민주주의 공론장을 무너뜨리는 언론 장악 후 진행 되는 게 역사교과서 국정화다. 국민 의식·가치관 개조를 겨냥하는 것. 이걸 통틀어서 ‘최후의 기획’이라고 부른다.”

- 정부가 ‘최후의 기획’을 하는 이유는? 
“일본과 같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거 아닐까. 일본은 현재 자민당 일당의 장기집권 혹은 영구집권으로 가고 있다. 한국은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둔 상황이다. 노동자를 가르고 언론을 장악하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가치관을 획일화하는 상황 모두 장기 집권의 토대를 갖추기 위한 일관된 목적을 가진 움직임이라고 본다.” 

- 한편으로는 언론이 무너져서 노동이 무너진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현재 슬로건 앞에 ‘언론이 먼저 무너져서’라는 말이 생략됐다고 보면 된다. 뉴스에서 노동 관련 뉴스, 노동 개악 관련 심도 있게 문제점을 진단하는 뉴스가 있나. 실상과 본질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언론이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이 지경까지 왔다. 그래서 노동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노동조합이다. 되살아날 불씨를 간직하고 있다. 노동개악으로 노동조합이 무력화되면 언론이 또 다시 무너지게 된다.”

- 노동개악의 핵심 문제는 뭐라고 보나. 
“비정규직화와 일반해고다. 해고 절차를 쉽게 했고 55세 이상 고령자·전문직으로 파견 대상을 확대했다. 언론사를 기준으로 말하면 노조 활동하고 비판적인 견제세력을 저성과자로 낙인찍어서 손쉽게 해고 하겠다는 거다. 이 자리에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55세 이상 된 사람들을 무한 파견해 일자리를 채운다는 게 노동개악의 핵심이다. 이걸 보면 언론이 어떻게 무너질지가 딱 보인다. 이런 상황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결국 언론사 간판이 붙은 곳에 정규직은 정권에 고분고분한 사장 한 명만 남는 거다. 나머지는 모두 사장 말을 잘 듣는 비정규직 기자·PD가 채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겠나. 극단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미 지역 언론사 대부분의 현실이다.”   

- 언론사만의 문제 아닌가? 
“이런 작업이 사회 전반에 적용되면 직업의 질이 떨어지는 거다.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과보호 받는 정규직이 양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규직이 양보하면 정규직이 늘겠나, 비정규직이 늘겠나. 그건 답이 정해진 질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번 노동개악을 막지 못하면 1987년 체제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사실 1987년보다 더 후퇴할 거라고 본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이 정규직이었고 어쩌다 해고돼 다른 직장을 구해도 정규직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정규직에서 잘려서 다른 정규직으로 갈 수 있나. 당시 상황과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다른가. 
“우리의 인식 자체가 달라졌다. 1987년에는 평생직장·연공서열 기준의 호봉제 등이 당연했는데 이제는 임금피크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프랑스의 92세 레지스탕스인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라는 책을 썼다. 그들이 나치 독일과 싸우면서 ‘자유 프랑스’는 안정적인 교육과 일자리, 노후 보장을 해 줄 것이라는 상식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들어선 후에는 ‘노오오력’(노력을 강조한 신조어)하지 않은 개인을 탓한다. 이런 현재가 정당하냐는 의문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분노하라’고 했다. 우리에겐 지금이다.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분노해야 한다.” 

- 박근혜 정부는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지 않았나. 그런데 문제가 되나. 
“이 땅에서 노동하는 사람치고 그 공약 이행을 안 반긴 사람이 없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2017년 이전에 정년 60세까지 그 직장에 머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바로 일반해고 때문이다. 내가 CEO라도 ‘올해 저성과자 몇% 자르고 내년에도 자르고 모자라는 일자리는 파견 받자’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될 거다. 왜냐, 가능하니까. 이제 한 번 작성한 살생부는 파기되지 않고 계속 갱신될 거다. 한쪽에서는 정년 60세를 만들어 놓고 다른 쪽에선 이걸 일거에 무너뜨리는 일반 해고를 도입하는 거다. 이건 대단한 배신이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지 않겠나.” 

- 언론노조는 노동법 개악이라고 하는데 언론사는 ‘노동개혁’이라고 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언론매체에서 이런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음으로써 빚어지는 일이다. 오죽하면 조합원을 언론인으로 둔 언론노조 위원장이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감춰진 노동개악 디테일은 이런 거다’ 하고 있겠나. 스스로도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물론 우리 조합원에게 그런 논조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게 한계다. 시민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탐욕스러운 정규직 노동자 이런 프레임을 다양한 방법으로 반박해 나갈 필요가 있다.”

- 뉴스 논조를 결정하진 못하지만 최근에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언론인 시국선언도 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연합뉴스가 강경 대응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연합뉴스와 KBS, YTN, EBS 사측이 시국선언에 대해 ‘경고장’을 보냈다. 그런데 누가 불러준 걸 받아썼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비슷하다. 사측은 언론인으로서 객관·중립적이어야 한다고 하는 데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정치적 사안인지 모르겠다. 언론인은 매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어떤 정파가 역사 해석을 한가지로 정해놓겠다는 건데 그게 말이 안된다는 거다. 설령 백번 양보해서 언론인이 중립을 지켜야할 문제라고 하더라도 이 사람들이 자기 프로에서 그런 주장을 한 것도 아니다. 이건 억지로 언론인의 입을 막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거다. 정부가 점점 더 자기 무덤을 파는 거다. 수렁으로 빠져는 상황이다.” 

- 최근에는 언론의 국정화 주장도 나오는데 이유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대두되면서 수사학으로 가져다 붙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질이 같다. 국정화. 정부가 정하는 의견을 추종하게 만드는 게 본질이고 이건 역사 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민주사회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경쟁하는 오픈 마켓이다. 그런데 현재 대부분 언론은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정부 의견을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반대 의견은 ‘종북·좌파’ 등으로 매도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인 여론시장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언론 국정화의 핵심이다.” 

- 14일 민중총궐기 참가자에게 한마디 한다면. 
“노동개악·언론장악·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세트로 준비된 현 정권의 ‘최후의 기획’이다. 노동자들이 뭘 할 수 있나, 정권을 바꿔야 한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노동개악은 한번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다. 아담과 하와가 실낙원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이 아무리 뉘우쳐도 복낙원되지 않는다. 노동개악을 되돌린다는 것은 비정규직을 다시 정규직으로 되돌리는 일인데, 일개 기업에서도 쉽지 않다. 기업은 이미 그 상황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에 과거로 돌리는 데는 굉장한 비용이 들 거다. 아마 폐허가 된 전 국토를 복원하는 비용이 더 적게 들거다. 개별 회사에 바뀐 정권의 힘이 다 못 미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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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조준한 물대포 맞은 농민 생명 위독

등록 :2015-11-14 23:12수정 :2015-11-15 10:03
 

14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한 농민이 차벽에 밧줄을 걸고 당기던 중 경찰의 물대포를 직사로 맞고 쓰러져 있다.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는 뇌진탕 증세를 보였고, 아스팔트에 누워있다가 구급차로 호송됐지만 현재 생명이 위독한 상태로 전해졌다. 뉴시스
14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한 농민이 차벽에 밧줄을 걸고 당기던 중 경찰의 물대포를 직사로 맞고 쓰러져 있다.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는 뇌진탕 증세를 보였고, 아스팔트에 누워있다가 구급차로 호송됐지만 현재 생명이 위독한 상태로 전해졌다. 뉴시스
[11.14 민중총궐기대회]
노동개악·국정화 반대 모인 광화문 10만 시민들
경찰 물대포·캡사이신 맞서 한밤까지 격렬 대치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 밤늦게 뇌수술 받아
경찰, 시위 참가 50명 연행…“불법배후세력 추적”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14일 오후 서울 도심 곳곳에서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빚어졌다. 도로에는 경찰이 물대포로 발사한 최루액 섞인 물이 흥건했다. 충돌 과정에서 60대 농민 한명이 경찰이 발사한 물대포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농민은 매우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CBS 노컷뉴스 제공영상] 쓰러진 농민… 멈추지 않는 물대포

 

 

14일 오후 서울 세종로사거리 일대에서 전국에서 올라온 10만여명(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은 6만8천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민중대회가 열렸다. 53개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주최한 이날 민중대회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다.

 

오후 2시께부터 대학로, 서울역, 시청광장 등에서 청년, 빈민, 농민, 노동자 등은 부문별 사전집회를 연 뒤 속속 서울광장으로 모였다. 이들은 집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노동개혁에 반대하고, 청년실업 문제, 쌀값 폭락, 빈민 문제 등의 해결책 마련을 요구했다.

 

서울광장에 모인 참가자들은 오후 4시30분께부터 광화문 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이미 세종로사거리 일대에 차벽을 세워 놓은 경찰은 해산명령을 했지만,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으로 행진했다. 대학로와 서울역에서 출발한 시위대도 종로구청 앞에서 경찰 차벽에 막혔다.

 

사방에서 빗발치는 물대포…경찰, 최루액까지 난사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발사했다. 도로에는 물에 섞여 발사된 소화기 분말가루가 쌓여 온통 하얗게 변했다. 심지어 경찰은 쓰러진 사람을 향해 물대포를 쏘거나 멀리까지 조준 발사를 하기도 해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경찰의 무차별 물대포 발사에 부상자도 속출했다. 특히 전남 보성에서 올라온 농민 백아무개(69)씨는 경찰이 발사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됐다.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백씨는 시위대의 앞쪽에 있다 경찰이 거의 직사로 발사한 물대포를 맞고 뒤로 넘어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조영선 변호사는 “현장 영상을 보니 경찰이 2~3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직격 조준을 했고, 물대포를 맞은 백씨가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것으로 보인다”며 “물대포는 최소한도로 써야 하고 살상 목적으로 사용하면 안 되는데 경찰이 이를 어겼다”고 주장했다. 서울대병원 쪽은 “백씨는 외부 충격에 의한 뇌출혈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백씨는 상당히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씨는 이날 밤 늦게 뇌수술을 받았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처음 병원에 왔을 때는 수술이 어려울 정도로 매우 위독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백씨는 가톨릭농민회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씨 외에도 여기저기에서 부상자들이 구급차로 옮겨지는 광경이 목격됐다. 시민들은 “살인정권 폭력정권 박근혜 정권 박살내자”는 구호를 외쳤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이날 밤 10시 현재 백씨를 포함해 30명가량이 크고작은 부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경찰의 최루액을 맞은 시민들은 어지럼증을 호소하거나 기침을 심하게 하는 등 고통스러워했다. 대학생 이아무개(22)씨는 “캡사이신 농도 기준을 한참 넘은 것 같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눈도 많이 아프다. 애초 길을 이렇게 막아 놓고 시위대한테 정말 이래도 되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중총궐기대회, 차벽에 균열…경찰, 최루액 살포

 

 

대회 참가자들은 경찰 버스에 밧줄을 맨 뒤 잡아당겨 차벽에서 끌어내기도 했다. 한때 동아일보사 앞의 차벽이 뚫리기도 했으나 이내 경찰이 겹으로 쌓은 차벽에 막혔다.

 

또 경찰이 친 차벽 위에서는 경찰버스를 끌어내려는 노동자와 경찰이 격렬하게 대치했다. 경찰은 버스 위에서 캡사이신을 쏘는가 하면, 시위대가 버스에 오르지 못하도록 버스에 콩기름을 붓기도 했다. 차가 아닌 손으로 발사하는 물대포도 등장했다. 경찰은 버스 위로 오르려는 시위대를 향해 내리꽂듯이 손 물대포를 발사하기도 했다. 격해진 노조원들은 경찰을 향해 물통을 던졌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를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고 물대포를 쏘며 막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를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고 물대포를 쏘며 막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충북 음성에서 21년째 과일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 유아무개(47)씨는 “농사지어야 돈이 안돼 적자가 심하니까 힘들어서 나왔다.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고 집회 참여 이유를 밝혔다. 유씨는 최루액을 뒤집어 써 온몸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가족과 함께 온 경기 구리시민 강아무개(47)씨는 “해도 너무 한다. 왜 못가게 막는지 모르겠다. 이건 잘못된 거 아니냐”고 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시위대 규모가 급속하게 줄어 이날 밤 10시30분 현재 세종로사거리에는 2000명가량이 남아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시민들은 차벽 앞에서 “차벽은 위헌이다” “박근혜는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 흥분한 시민들은 경찰을 향해 횃불을 던지기도 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차벽을 향해 횃불을 던지지 말라”는 외침이 나왔다. 경찰은 해산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강제해산에 나서겠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시위대는 밤 11시 조금 넘은 시간 공식 해산을 선언하고 대치 상황을 끝냈다.

 

행진에 앞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함께 싸우면 승리하고 불의한 정권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자. 싸워도 바뀌지 않는다는 패배의 굴레를 벗어던지자”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시위 참가자 중 폭력을 휘두른 50명을 붙잡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청은 이날 밤 보도자료를 내어 “불법폭력 시위를 벌인 집회 주최자 및 폭력행위자는 물론 배후세력까지 추적해 엄단할 방침”이라며 “경찰버스 등 경찰 장비를 손괴한 시위주도 단체 및 행위자에 대해서도 민사상 손해배상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우리 박수지 황금비 현소은 기자 ecowoori@hani.co.kr, 영상 김도성 피디 박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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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총궐기 본부, 민중 분노 쏟아질 것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11/13 13:18
  • 수정일
    2015/11/13 13:1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시민사회단체에서 종교계로 옮겨 불 붙는다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11/13 [10:3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이정섭 기자



박근혜 정권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분노를 상징적으로 드러낼 10만 민중총궐기가 하루 앞으로 다가 온 가운데 민주노총이 현 상황과 정부부처 합동 담화를 비난하는 입장을 밝혔다.

 

▲     © 이정섭 기자

민주노총은 13일 내일 민중총궐기에는 2008년 촛불항쟁에 버금가는 최대 규모의 노동자 민중들이 함께할 것이라며 오늘 법무부, 노동부, 행자부, 교육부, 농식품부 등 관련 정부 부처들은 민중세력의 궐기를 압박하고 여론을 호도할 목적으로 합동담화를 발표했다고 비난했다.

 

민노총은 민중총궐기의 최대 규모를 차지하는 민주노총은 14일 민중총궐기의 의의 및 진행상항을 정확히 알려 국민들과 대회의 취지를 공감하고 의도치 않은 시민불편을 예방하는 한편, 정부 당국과 보수언론의 악의적 공세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14일은 분노의 날이라면서 노동자-농민-빈민-시민-청년학생 등, 박근혜 정권을 향한 전체 민중의 분노가 서울 도심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언론장악, 철도-의료-교육민영화, 그리고 노동개악까지,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분노한 민중들이 직접 행동으로 저항하는 날로 10만 민중총궐기라 명명했지만 전국에서 보고되는 참여열기가 예상 외로 높아 15만 군중에 이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박근혜를 정점으로 한 극우정치와 재벌이 지배하는 일상은 이미 전쟁터라며 그도 모자라 국민의 기억을 지배하겠다며 국정교과서 역사쿠데타를 감행하고 연 내에는 해고를 더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더 늘리는 노동개악까지 밀어붙인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그 중에서도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나라. 이 아비규환에 작은 숨구멍이라도 내고자 민중총궐기에 나서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우리 학생들이 수능 논술시험을 보지만 논술시험을 치르는 12개 대학 중 11개 대학은 집회장소와 상당히 멀어 집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한 숙명여대 등 다수의 학교는 오전에 시험을 치르므로 오후에 열리는 시위상황과 관련이 없다며 정부 부처의 담화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민주노총은 보수 언론들이 “지하철 이용 당부는 한 마디도 없이 오직 수험생 불편을 부풀리는 보수언론의 보도는 매우 악의적”이라며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학살한 통합진보당을 거론하는 것은 졸렬하다. 민중총궐기에 대한 근거 없는 매도는 중단해야 한다. 경찰은 우리가 광화문 인근에 집회신고를 내지 않고 광화문 집결과 청와대 방향 행진을 시도한다고 언론에 흘렸지만,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단체는 이미 민중의 분노는 양심을 구현하는 종교계로 옮겨 붙고 있다면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16일 서울광장 시국미사와 금속노조의 무기한 총파업 계획을 거론했다.

 

한편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운동단체의 최대 연대체인 한국진보연대 등은 14일 10만 민중 총궐기 투쟁을 벌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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