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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두개골 함몰시킨 돌망치는 바로…"

[기고] '장준하 선생 겨레장' 추도사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3-31 오후 5:04:37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 독재를 반대하다 숨진 고 장준하 선생의 유해가 3월 30일 경기도 파주시 장준하공원에 안장됐다. 지난해 8월 고인의 유해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두개골 함몰 골절이 발견되면서 타살 의혹이 재점화돼 땅 밖으로 나온 지 7개월여 만이다.

'장준하 선생 겨레장 위원회'는 이날 오전 9시
서울 시청광장에서 발인제를 시작으로 겨레장을 치렀다. 이날 행사에는 고인의 부인 김희숙 여사 등 유족 20여 명이 참석했다. 정치·법조·학계·시민사회단체의 인물들도 참석해 고인의 넋을 애도했다.

운구
행렬은 고인이 유신 시절 수감 생활을 한 서대문형무소 앞을 지났다.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겨레장의 추도사를 손수 작성해, 국가가 나서서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 전 총재의 추도사 전문이다. <편집자>

장준하 선생은 민족 광복과 해방 그리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참으로 치열한 삶을 사셨습니다. 일제가 우리 민족 말살에 광분했던 1941년 선생은 학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중국 전선에 일제의 총알받이로 끌려갔습니다. 선생은 다른 학병 동지들과 함께 일본군 병영을 탈출하여 한국광복군이 되었습니다.

그때 장 선생은 김준엽 동지, 윤경빈 동지, 김우전 동지, 그리고 저의 처남인 박승헌 동지 등 32명과 함께 중국 서주에서 중경까지, 그리고 일부는 서안까지 길고 험난했던 6000리 대장정에 나섰습니다. 풍찬노숙의 대장정이었으며, 밤에는 돌베개를 베고 잔 고난의 대장정이었습니다. 이 장정은 한국독립운동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일제가 항복하자, 장 선생께서는 백범 김구 선생을 모시는 일에 더욱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백범께서 흉탄으로 쓰러지시고, 조국의 분단은 더욱 고착되는 비극의 현실을 장 선생께서는 안타까워하셨습니다.

6.25 동족상잔의 아픔이 아직도 겨레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을 때 선생께서는 월간 <사상계>를 통해 우리 민족과 겨레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정신적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이승만 문민 독재가 친일 세력의 협력으로 날로 부패해가고, 날로 독선적으로 치닫게 될 때, <사상계>는 한낱 월간 잡지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민족 광복과 조국 민주화를 향한 또 하나의 빛나는 장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 문민 독재가 박정희 군사 독재로 바뀌면서, 참으로 얄궂게도 광복군 장준하 선생은 일본 장교 박정희 소장과 정면충돌하게 됩니다. 얼마나 서글프고 분한 일이었습니까.

선생은 박정희 정권이 3선 개헌을 통해 장기 집권을 획책할 때, 그리고 유신 체제 출범을 계기로 총통제 같은 영구 집권을 구체화해 나갈 때 광복군의 그 불타는 애국심으로 박정희 정권에 더욱 용기 있게 맞서 싸웠습니다. 지금무효화가 된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선생은 1974년 15년형을 받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습니다. 병보석으로 출소했지만, 유신 체제가 더욱 그 광기를 뿜어내던 1975년 8월에, 선생은 홀연히 경기도 포천 약사봉 아래서 시신으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해방 전 선생의 그 험난했으나 값진 광복 대장정과 해방 후 민주화 대장정이 어찌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 있단 말입니까. 유신 체제는 서둘러 추락사로 단정했지요. 그런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터져 나왔습니다.

진실의 자기 폭발이 예수 부활 사건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지난해 8월, 그러니까 지하에 묻힌 지 37년 만에 선생께서는 무덤에서 나와 지금은 새로운 영의 몸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묘소 이장을 위해 가족들이 묘를 열어보았습니다. 그곳에 선생의 두개골이 입을 열어 타살된 흔적을 마치 모두 와서 꼼꼼히 살펴보라는 듯 저희들에게 속삭였습니다. 아니, 37년간 은폐되었던 진실이 마침내 청천벽력처럼 소리치며 저희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권위 있는 법의학자의 감식 결과 선생의 죽음의 진실이 마침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37년간 저희들은 그 진실을 규명할 수 없다고 너무 일찍 체념하기도 했고, 진실을 끝까지 밝혀내려는 용기가 부족해서 침묵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선생께서는 지하에서 37년간 가위눌리듯 소리치셨는데, 저희들은 그 진실의 외침을 듣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 저 돌들이 진실을 외친다고 했는데, 이제 선생의 그 두개골이 진실의 돌이 되어 벽력처럼 외치는 듯합니다.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에서 고 장준하 선생 유족과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 겨레장위원회 회원들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유해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옮기고 있다. ⓒ뉴시스

도대체 누구의 돌망치가 선생의 두개골을 그토록 선명하게, 동그랗게 함몰시켰을까요?

먼저 한국광복군을 토벌하는 일에 광분했던 일본제국 군대 같은 폭력 세력이 떠오릅니다. 바로 그들이 그 돌망치가 아니겠습니까.

민족 분단을 고착·강화시키면서 정치 권력을 독점했던 반민족적 세력이 바로 그 돌망치가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자유권적 기본권과 생존권적 기본권을 존중해주면, 부패한 권력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 반민주 세력이 바로 그 돌망치가 아니겠습니까.

<사상계> 같은 민주·민족·민중의 등불 역할을 했던 겨레의 월간지를 증오하고 두려워한 반지성적·반민중적 세력이 바로 그 돌망치가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 벌거벗은 권력으로 진실을 얼마든지 쉽게 훼손할 수 있고, 그 진실을 감쪽같이 영원히 숨길 수 있다고 자신했기에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신나 했던 정치 테러리스트들이 바로 그 돌망치가 아니겠습니까.

이제 저는 정중하게 말씀드립니다. 국가가 장 선생 사망의 실체를 이제는 밝혀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선생의 그 깨진 두개골의 외침에 정부는 정의롭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선생의 조용한, 그러나 처절한 절규가 자유, 정의, 그리고 평화를 갈망하는 이 땅의 모든 겨레들의 함성으로 힘차게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소상하고 공정하게 진실을 밝힐 때, 선생의 억울한 죽음을 애통해하는 모든 이 땅의 씨알들이 새 정부를 믿고 지지할 것입니다. 진실 규명만이 용서와 화해의 새 질서를 세워 나갈 수 있습니다.

장준하 선생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육신은 이미 흙으로 돌아가셨으나, 그의 영의 몸, 사회의 몸, 역사의 몸은 겨레와 함께 살아계십니다. 분단된 조국이 평화와 공의로 하나 되기를 온몸과 마음으로 갈망하는 모든 겨레의 마음 속에 선생은 시퍼렇게 살아계십니다.

선생께서 오늘 이 노제에 친히 오시어 저희들의 손을 잡으시고 미완의 해방과 광복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대장정을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하늘에서 딱딱한 돌베개 대신 선생을 흠모하는 겨레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따뜻하고 부드러운 베개를 베시고 편히 쉬소서. 편히 쉬소서.

2013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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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예고 없는 무자비한 전면대결전" 선포

 

북, "예고 없는 무자비한 전면대결전" 선포
 
"원수격멸의 판가리 결전 불벼락 선언"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4/01 [08:37]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조선은 가장 위력한 무기로 총폭탄정신 수령결사옹위 정신인 일심단결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

조선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전원회의 개최 이후에도 미국과의 전면대결전, 불벼락 섬멸전, 불바다 발언을 이어 가고 있어 주목된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1일 “우리 민족의 앞길에는 반드시 조국통일의 새 아침이 밝아오게 될 것이며. 조국통일대전의 최후승리는 판가리결전에 떨쳐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 온 겨레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로동신문은 “미국과 남조선 괴뢰호전광들이 우리 혁명무력의 의미심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침핵전쟁도발의 불구름을 미친 듯이 몰아오고있는 것과 관련하여 공화국정부, 정당, 단체들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작전회의에서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내리신 최종결단과 천만군민의 의지를 담은 특별성명을 발표하였다.북남사이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은 전시에 준하여 처리되며 미국과 괴뢰패당의 군사적 도발은 국지전이 아니라 전면전쟁, 핵전쟁으로 번져지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조국통일대전의 최후승리를 이룩할 것이라는 것을 내외에 엄숙히 천명한 특별성명은 우리 군대와 인민, 온 겨레를 기다리고 기다려온 원수격멸의 판가리 결전에로 부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신문은 “오늘의 판가리 결전은 미국과 남조선괴뢰들과는 말로써가 아니라 선군총대로 결산하게 될 정의의 애국성전”이라며 “우리는 이미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을 통하여 나라의 자주권과 최고 존엄을 수호하기 위한 천만군민의 단호한 군사적대응의지에 대하여 내외에 엄숙히 천명하였다.”고 군사적 대응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신문은 미국의 핵전략폭격기 등의 한반도 훈련을 비롯한 물리적 행동과 조선을 자극하는 발언들을 언급하고 “이것은 우리의 인공지구위성발사와 지하핵시험을 기화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의 반공화국적대행위가 단순한 위협공갈단계를 넘어 무모한 행동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핵몽둥이를 내대고 우리 천만군민의 심장을 도려내겠다는 최후통첩이 아닐 수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또한 “조성된 험악한 정세는 미제와 괴뢰패당과는 말로 할 때가 지났으며 오직 선군총대로 단호히 결산하여야 한다는 우리의 판단과 결심이 천만번 정당하다는 것을 명백히 실증해준다.”며 “미제의 핵공갈에는 무자비한 핵공격으로, 침략전쟁에는 정의의 전면전쟁으로! 바로 이것이 우리 천만군민의 단호한 대답이며 억척불변의 입장”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어 “백두영장의 슬하에서 자라난 혁명 강군과 영웅적인민은 미국이 핵무기를 휘두르며 힘의 정책에 매달리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다는 것을 정의의 애국성전으로 세계에 보여 줄 것”이라고 말하고 “오늘의 판가리 결전은 우리에 대한 그 어떤 도발행위에 대해서도 예고 없이 사정을 보지 않고 무자비하게 징벌하는 전면대결전”이이라며 일전불사를 외쳤다.

아울러 정전협정 백지화와 불가침 합의 전면 폐기로 남북관계는 전시상황에 진입하였다며 “우리 군대와 인민이 실제적인 군사행동에 진입한 조건에서 남조선괴뢰들이 우리의 존엄과 자주권을 조금이라도 해치는 경우 즉시적이고도 단호한 물리적 타격이 있을 뿐이다. 전쟁은 광고하고 시작하지 않는 것처럼 전시의 군사행동은 예고 없이 단행되며 거기에서 자비란 있을 수 없다.”며 불의에 공격을 감행 할 것을 시사했다.

특히 “미제의 핵전략타격수단들까지 남조선지역 상공에 날아들어 우리 공화국을 침략하기 위한 전쟁연습에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은 미국이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며 “지금 우리의 전략로켓군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최종검토, 비준해주신 화력타격계획에 따라 임의의 시각에 미국본토와 하와이, 괌도를 비롯한 태평양작전전구안의 미제침략군기지들과 남조선강점 미군기지들을 타격할 수 있게 사격대기상태에 들어갔다. 이제 미제와 괴뢰 호전광들이 서해 5개 섬이든, 군사분계선일대이든 그 어느 지역에서든지 군사적 도발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국지전으로가 아니라 전면전쟁, 열핵전쟁으로 확대된다는 것은 불보듯 명백해졌다.”고 전쟁의 긴장정세를 부각시켰다.

로동신문은 “멸적의 의지로 만장약 된 우리 혁명무력의 핵 불소나기는 설사 목표가 지구상 그 어디에 있든 첫 타격으로 모조리 죽탕쳐 버리고 침략자, 도발자들을 씨도 없이 잿가루 속에 날려 보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로동신문은 “천만군민의 무자비한 징벌의 철추가 원쑤의 머리위에 떨어지고 있으며, 오늘의 판가리 결전은 겨레의 세기적 숙원을 성취하기 위한 거족적 성전”이라고 규정하고 “우리 군대와 인민의 최후우리 민족의 앞길에는 반드시 조국통일의 새 아침이 밝아오게 될 것이다. 조국통일대전의 최후승리는 판가리 결전에 떨쳐나선 우리 군대와 인민, 온 겨레에게 있다. 이 정의의 대전에서 극악한 대결광신자들과 호전광들, 인간쓰레기들을 비롯한 역적무리들이 첫째가는 벌초대상이 될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그런것으로 하여 조국통일대전은 겨레의 지향과 시대의 요구에 도전해 나선 민족반역의 무리들을 깨끗이 쓸어버리기 위한 거족적인 전민항쟁으로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문은 “정의의 조국통일대전의 진두에는 백두의 천출명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서계신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내리신 최종결단은 세기를 넘어 이어온 미국과의 대결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환적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판가리 결전의 선언으로서 내외반통일 세력에게 내린 최후경고이며 우리 군대와 인민을 조국통일대전의 최후승리에로 부르는 고무적 기치”라고 피력했다.

또한 “지금 우리 천만군민은 미제와 괴뢰패당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멸적의 의지를 안고 경애하는 원수님의 최후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명령만 내리면 발사하게 되어있고 일단 퍼부으면 불바다로 타번지게 되어있다. 적들은 오늘의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하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전면대결전에나 설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영국의 영국의 국제전략 문제연구소의 마크 피츠패트릭 핵비확산·군축연구팀장은 "북한이 있지도 않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내세워 미국 본토타격 계획을 노출했다"며 조선이 미사일 공격 능력을 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국 언론들이 보도해 이 발언에 대한 조선의 반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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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언론이 통합진보당에 사과하지 않는 이유

진보언론이 통합진보당에 사과하지 않는 이유
(서프라이즈 / 천의무공 / 2013-03-31)

 


 

다른 건 다 접어두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과 관련하여 명백히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한 것이 드러난 것만도 무수히 많았다. 그에 대해 통합진보당이 진실보고서를 만들어 소상하게 해명한 지도 오래되었고, 편견없이 읽어본다면 언론보도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언론의 사과는 간헐적인 몇명에 그치는 것일까? 그들도 이제는 사태의 진실을 어렴풋이 알게되었을텐데, 왜 솔직한 인정을 하는 사람은 여전히 드문 것일까? 나의 판단은 이렇다.

사과는 사람의 발등을 밟은 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칼로 사람을 찔러 죽여 놓았다면, 과연 사과를 할 수 있을까? 오해로 무고한 사람을 찔러 죽인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됐다면, 과연 사죄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겠다고 나설 수 있을까? 더구나 그 짓을 혼자 한것도 아니고 여럿이서 함께 찌르고 때렸으므로 입을 닫고 있으면 여전히 묻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통합진보당의 진실보고서, 김인성 교수를 비롯한 양심적 시민들의 증언, 서슬퍼런 검찰이 내놓은 수사결과 등을 전혀 모르지는 않을 진보언론 기자들의 마음 속은 어떤 것일까? 첫째는 아마도 심리적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할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끔찍한 짓이었는지를 정면으로 인정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보다는, 자기 합리화의 편안함을 본능적으로 추구할 것이다. 즉, "뭐 지금와서 경선부정의 증거로 대서특필된 주민번호조작, 소스코드조작, 집단적 조직적 대리투표 등이 사실이 아니라해서 그게 뭐 중요해. 어차피 이석기 김재연의원이 정치적 책임을 지라고 한건데 그걸 거부해서 문제가 된거지" 이런 논리로 합리화한다. 천편일률적으로 다 같다. 헛웃음이 나온다. 기가 막혀서.

 

 

정치적 책임? 정치적 책임의 근거가 된 것이 앞서 언급한 엄청난 엉터리 주장들 아니었나? 진상조사보고서라는 폭탄을 던져 국민여론을 일순간에 몰고 간 주요 내용들이 이제는 다 오해였음이 해명되었고, 먼지털이식 수사로도 기소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이 너무나 부실하고 선입견과 악의적 의도로 점철되어 있음이 처음부터 너무 명확했기에 그 것을 토대로 정치적 책임을 질 수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태 발생 후 며칠만에 그 내용들을 차례로 반박하고 해명했으나 그런 회견장에는 기자들이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오직 확인된 근거도 없이 무조건 폭로부터 하고 보자는 그런 묻지마 의혹제기에만 피냄새를 맡은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어 보도하지 않았나?

잘못된 보도를 토대로 형성된 오도된 여론을 소위 '국민눈높이'라며 마치 무슨 금과옥조인양 따를 것을 강요하지 않았나? 부정경선의 증거라며 제시했던 주요 내용들의 사실 여부와 정치적 책임은 둘로 나눌 수 없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심각한 부정경선이 만연한 것이 사실이라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정치적 책임을 묻는다는 근거 자체가 원인 무효가 되는 것이다. 이제와서 통합진보당 경선 수사 결과 당권파의 경우 검찰의 부풀리기 기소로 경미한 사례들을 엮어 넣은 것 외에는 심각한 부정 사례가 없음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 핵심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비겁한 자기합리화이다.

마지막으로, 심지어 아무리 경미해도 정치적 책임을 졌어야 한다고 박박 우긴다해도, 도대체 김재연 의원은 무슨 정치적 책임이 있는 것인가? 아무도 김재연의원이 왜, 어떠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저 이석기 김재연 무조건 사퇴, 이러니까 너도 나도 앵무새처럼 사퇴해, 사퇴해 이런다. 어떤 언론도 김재연 의원이 왜 패키지로 엮여야 하는지 설명한 적이 없다. 종북몰이에서도 도대체 김재연 의원은 아무런 발언조차 한 적이 없는데 항상 패키지 대접이다.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는 언론의 비이성적 휩쓸리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우리 현대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정치적 책임이란 사실관계가 제대로 선 후에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억울한 누명을 씌워 모함해놓고, 이건 사실이 아니다, 먼저 진실을 가린 후에 책임을 져도 지겠다는 사람들한테, 마치 의원자리가 탐나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파렴치한 이어서 사퇴를 안하는 것처럼 몰아부쳐 인격살인까지 덧붙였다. 전 국민들에게 성토당하며 사면초가로 하루 하루가 가시방석이었을 그들이 그 자리가 탐나서 버텼던 거라고 매도까지 한 것이 진보언론이다. 진보언론이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한 일은 분위기에 휩쓸려, 선입견에 사로잡혀, 무고한 진보주의자를 정치적으로, 인격적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사람을 죽여놓고 뒤늦게 사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으면 당신은 박정희보다, 전두환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천의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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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새끼 입양은 실수인가 전략인가

남의 새끼 입양은 실수인가 전략인가

 
조홍섭 2013. 03. 30
조회수 433추천수 0
 

아프리카 나미비아 사자 빈번한 '외도'로 우두머리 바뀌었을 때 새끼 살해 막아

민물고기 시클리드도 위험 분산 위해 남의 둥지에 자기 새끼 옮겨

 

729px-Just_one_lion.jpg » 새로 우두머리가 된 수사자는 앞선 우두마리가 아비인 새끼를 모두 죽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나미비아의 사자는 꼭 그렇지 않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수컷 사자처럼 욕 많이 먹는 동물이 있을까? 그 큰 덩치로 좀 도와줘도 좋으련만, 암컷들이 힘든 사냥을 마친 뒤에야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비키라고 호령한다. 게다가 새로 우두머리에 등극한 수컷들은 귀여운 새끼를 닥치는 대로 죽인다.
 

수컷의 이런 행동을 흔히 냉혹한 유전자의 논리로 설명한다. 재위기간이 보통 2년에 불과한데 암컷은 2년마다 임신한다. 따라서 새끼를 죽여 암컷이 다시 발정기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최선의 선택일 터이다. 이런 유아 살해 때문에 태어난 사자의 약 4분의 1이 1년도 살지 못하고 죽는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이 논리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동물들의 ‘입양’ 행동이다. 자신과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새끼를 기르는 포유류와 조류가 적지 않다. 찰스 다윈도 이 현상을 설명하느라 골머리를 앓았고,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입양은 실수”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입양은 너 자신의 번식 성공률을 낮출뿐더러 상대의 기회를 높이기 때문에 이중의 타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남의 유전자를 지닌 새끼를 받아들이는 게 일부 동물에게는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음이 유전학적 연구로 밝혀지고 있다. 남아프리카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의 사자는 우리가 흔히 아는 동아프리카 세렝게티의 사자와는 많이 다르다. 세렝게티의 사자 무리는 두 마리 또는 그 이상의 수컷이 지배하며 다른 수컷은 무리 주변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다. 살아 있는 새끼는 모두 우두머리 수컷들의 자손이다.
 

1024px-Namibie_Etosha_Lionceaux_01.jpg » 에토샤 국립공원의 새끼 사자들. 이들의 상당수는 외도의 결과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에토샤의 사자 무리는 수컷 1~3마리가 지배하지만 일부 무리는 수컷을 공유하기도 한다. 암컷들도 훨씬 융통성이 있어 주기적으로 무리 밖의 수컷과 밀회를 즐긴다. 최근의 한 유전학 연구에선 11개 무리의 새끼 34마리 가운데 14마리가 외도의 결과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란함의 효과는 명백하다. 만일 새 우두머리가 등장했을 때 자신과 짝짓기했던 암컷의 새끼라면 죽이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수컷이 한 마리밖에 없는 무리에서 암컷의 외도가 흔했다.

‘입양’이든 ‘외도’이든 이런 전략은 물고기와 사회성 곤충에게서도 나타난다. 남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에 서식하는 시클리드라는 민물고기의 한 종은 호수 바닥에 둥지를 파고 번식하는데 알에서 깬 새끼를 입에 넣어 보호하는 습성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연구자들은 최근 이 물고기의 새끼 가운데 59%가 부모와는 유전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어미는 최고 42m나 떨어진 다른 둥지에 자신의 새끼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새끼를 남의 둥지에 입양시키면 포식자의 공격이나 환경파괴로 자기 둥지가 망가져 새끼를 통째로 잃는 위험을 분산시킨다.
 

그렇다면 남의 새끼를 받는 이유는 뭘까. 연구자는 이를 포식자에게 자기 새끼가 잡아먹힐 확률을 낮추는 ‘희석 효과’로 설명했다. 흥미롭게도 받아들이는 새끼는 자신의 새끼보다 크기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포식자가 작은 것부터 공격하므로 자기 새끼를 보호하는 효과가 난다.
 

neolamprologus-caudopunctatus1.jpg »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에 서식하는 시클리드의 일종. 새끼를 입에 넣어 보호하는 습성이 있다.

 

타조도 자기 둥지에 찾아오는 다른 암컷의 알을 부지런히 받아들인다. 이는 타조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기 알 주변에 남의 알을 배치해 포식자 공격을 완충하려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입양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려나.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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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당 원고료 5000원…헐값 강요하는 대한민국

[잡지의 죽음 ②] 대중문화 비평의 미래는 있는가

김용언 기자,이대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3-31 오전 11:41:58

 

 

<무비위크>가 3월 마지막 호를 끝으로 사실상 폐간한다. 대표적 대중문화 웹진인 <텐아시아>는 강명석 편집장을 비롯한 주요 인력집단 퇴사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자체 수익을 내는 대중음악 잡지는 찾기 힘들어졌다. 대중문화의 주요 축인 영화·TV·음악을 다루는 전문지 시장이 해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이 위기는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서 위기의 원인과 암울한 미래상을 들었다. <편집자>
 

잡지의 죽음
① 대중문화 잡지 연쇄 '사망'…누가 죽였나


문화 콘텐츠 전문 잡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과연 있는가. '돈 생각 하지 않고' 좋은 콘텐츠에만 집중하는 오너 덕분에 재정적 기반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잡지를 만들거나, 혹은 일간지 등 기존 매체에서 전문 기자를 양성하여 '보도 자료를 베끼지 않는' 특집 및 기획 기사를 양산하는 방식이 우선적인 대안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양쪽 모두 불가능해 보인다. 전자의 경우, 의욕적으로 시작한 매체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적자 누적을 견디지 못하고 폐간했다. 후자의 경우, 경제나 의학 등 특정 지면을 제외하고는 전문 기자를 양성할 의욕 자체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

'문화 전문 기자'는 없다

태상준 영화 저널리스트는 "한국의 일간지는 기자들을 철저하게 '돌린다.' 한 분야를 한 기자에게 1, 2년 이상 맡기지 않고 다른 분야로 계속 돌리며 일을 시킨다. 전문 기자 혹은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를 필요로 하는 방식이고, 이 중에서도 문화는 뒷전으로 밀리는 게 사실이다. '문화 전문 기자가 필요한가'라는 질문 자체에 윗사람들이 동의하지 못한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성우진 대중음악 평론가(<파라노이드> 필진, 전 <핫뮤직> 편집장)는 "이제는 전문성을 요하지 않는 시대다. 쉬운 것만 얘기해주는 평론가를 원하는 시대고, 잡지를 보기 위해 몇 천 원을 투자할 사람이 사라진 시대"라며 "많이 보는 영화, 많이 듣는 음악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유료 전문지가 설 자리는 없다"고 단언했다.

비평의 전성기가 과연 얼마나 길었느냐를 반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른바 '스타 평론가' 한둘에 의존하는 시대가 아니라 비평 환경이 폭발하고 그에 따라 잡지 시장이 팽창했던 시기는 극히 짧다는 게 요지다. 즉, 애초에 우리는 대중문화 비평 토양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이제 시작을 모색해야 한다는 반론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는 "대중문화 폭발기가 사실 1990년대 중반의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매우 짧은, 이례적이었던 시대를 전성기의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무리"라며 "우리보다 대중문화 비평의 역사가 훨씬 오래된 영미권의 상황을 그대로 우리 상황에 등치시키는 건 현실과 맞지 않다. 우리에겐 대중문화를 진지하게 고민한 시간이 길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더 빈곤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당장 대중문화 평론가들이 받는 원고료 수준은 15년 전과 동일하다는 게 정설이다. 해외 팝 음반 해설지의 경우 소니, 유니버설, 워너 등 '메이저 3사'의 국내 배급사 모두 원고료 수준이 10만 원이 되지 않는다. 한 웹진 관계자는 "한 달에 필자에게 원고료 30만 원을 줄 수 있는 대중음악 웹진은 한국에서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일권 편집장은 "안 좋은 상황이 한꺼번에 맞물려서 악순환을 낳고 있다. 돈이 돌지 않으니 대중음악 평론가들의 원고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매당 원고료가 5000~6000원 수준으로 떨어지는 일까지 발생했다"고 전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논란이 된 허지웅 영화 평론가와 서화숙 <한국일보> 선임기자의 원고료 관련 마찰도 이런 상황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문지의 몰락과 더불어 대중문화 관련 글이 제값을 받기 힘든 현실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게 됐다.

장기적으로 대중문화 잡지의 몰락이 대중문화 담론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문지 시장이 여전히 살아 있는 영미권에서 대중문화 비평은 흔히 사회학, 철학과 맞물려 학계에서도 활발히 일어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마땅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서정민갑 의견가는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지만, 지적인 고통을 즐기려는 사회적 에너지는 분명 부족해 보인다"며 "진지한 고민이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되면서, 인문학마저 쉽게 쓴 게 잘나가는 시대가 됐다. (이 시대에) 대중문화를 산업적·정치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한국에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대중문화의 위상은 한국 언론에서도 가장 떨어진다. 잡지시장이 갈수록 위축됨에 따라, 진지한 담론을 기대할 창구는 어디서도 찾기 힘들어졌다. 영화 <늑대소년>의 한 장면. ⓒ뉴시스


해외 잡지들은 어떻게 '생존 중'인가

국내의 척박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의 예를 찾아보더라도 일대일 비교가 쉽지 않다. 문화 자본이 자생적으로 대중문화 비평 잡지를 꾸리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예를 들어 영국영화협회(BFI, British Film Institute)에서 발간하는 영화 월간지 <사이트사운드(Sight and Sound)> 같은 형태만이 지속 가능한 것 아니냐는 비관적인 예측도 오랫동안 떠돌았다. 일종의 학술 매체만이 살아남고, 대중과 담론의 창구는 사라질 수 있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비슷한 사례로 한국에선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법인영상자료원에서 만드는 기관지 <영화천국>이 있다. 이 얇은 격월간지는 기존의 대중적인 잡지들에서 한동안 소화하지 못했던 깊이 있는 영화 담론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같은 '기관지'가 태생적 한계 때문에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이런 표현이 허용된다면)'학술적' 경향을 띤다는 점은 피할 수 없다는 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미국의 경우도 2000년대 초반 잡지 시장의 활황이 정점을 찍었고, 현재는 종이 매체와 태블릿디지털 잡지 시장으로 광고가 점차 분산되면서, 종이 매체의 상황이 결코 쉽지 않다. 산업 전문 인터넷 매체 <데일리 파이낸스(Daily Finance)>의 2013년 3월 10일자 기사에 따르면, 미국 최대 규모의 종합 미디어 그룹 타임워너에서 <타임> 지를 비롯한 잡지 출판 부문을 분리했는데, 여기에는 종이 잡지 광고 수익의 지속적인 하락이 큰 몫을 차지했다. 출판 부문의 광고 수익은 2004년 정점을 찍은 이래 2012년에는 무려 38퍼센트 하락한 34억 달러에 그쳤다고 한다.

또 다른 거대 종합 미디어 그룹 뉴스코프 역시 <월스트리트저널>, <타임스>, <선>, <뉴욕포스트> 등 인쇄 매체를 분리할 계획이다. 주간지 <뉴스위크>는 작년 말 80년 역사의 종이 잡지를 포기하고 온라인으로만 발행키로 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여전히 높은 광고 수익을 올리고 있는 럭셔리 잡지 시장과 패션지 등은 태블릿용 디지털 잡지로 재빠르게 확장하는 데에도 앞서 나가며 새로운 수익 창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그만한 재원과 역사,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종이 잡지의 불안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한국의 문화 전문 잡지가 이 사례들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대중성'에 연연하지 않고 소수의 전문가와 충성심 강한 열독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잡지의 가격이 올라가게 됨을 뜻한다. 한국 경제의 오랜 불황과 더불어 문화 콘텐츠의 높은 가격에 거부감을 표하는 환경이 지속되고 있음을 상기할 때, 이 역시 쉬운 선택은 아니다.

결국 자생적 문화 자본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대중문화의 각 장르를 안정적으로 아카이빙하고, 분석하고, 새롭게 소개하는 잡지 본연의 의무를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계속 제시되는 것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용언 기자,이대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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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앞둔 진주의료원 환자 "꼼짝 못하는데 눈물만..."

[르포] 진주의료원 휴업 예고기간 마지막날... 환자들은 '정상 진료' 희망만

13.03.30 21:14l최종 업데이트 13.03.30 21:14l

 

 

"정상 진료 합니다."

진주의료원 현관문에 붙어 있는 '휴업 안내문'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는 문구. 폐업을 결정했던 경남도가 발표한 휴업 예고기간(3월 18일부터) 마지막 날인 30일에도 진주의료원에서는 간호사와 직원뿐만 아니라 환자들도 '정상 진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응급실이며 병실마다 대부분 정상진료를 하고 있지만, 환자가 없는 침대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경남도가 폐업 발표했던 지난 2월 26일에는 환자 203명이 입원해 있었는데, 이날에는 71명의 환자들이 침대를 지키고 있었다.

"여기 누워서 끝까지 버틸 겁니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한 가운데, 의료원 현관문에 붙어 있는 '정상 진료 합니다'는 대자보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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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가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기로 결정하고 휴업까지 하기로 한 가운데, 휴업 예고 마지막날인 30일 오후 의료원의 한 병실에 환자가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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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가 '3월 30일까지 퇴원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가라'고 했지만, 1/3 가량의 환자들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진주의료원이 지금은 시끄러워도 언젠가는 정상 진료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기도 했지만, 이곳이 좋거나 다른 민간병원으로 쉽게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주말을 맞아 많은 가족들이 환자를 찾아왔지만, 환자나 가족이나 모두 불안과 걱정뿐이었다. 폐암 말기인 70대 남성 환자는 "이 병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눈물만 흘리고 있다"며 "경남도청에 싸우러 가고 싶지만 누워서 꼼짝도 할 수 없으니, 눈물만 나올 뿐"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남편의 손을 잡고 있던 부인은 "공무원들이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데, 쉽게 갈 수 없다"며 "경남도에서 의료원을 없앤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 환자는 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지난해 12월 진주의료원에 입원했다.

부인은 "다른 병원에는 오래 입원해 있을 수 없다, 근처 대형병원에 갔는데 며칠 입원해 있으니까 퇴원해도 된다고 해서 집에 갔다가 또 아파서 병원에 가기를 몇 차례 했다"며 "진주의료원은 오래 입원할 수 있어 좋고, 병원비도 다른 병원과 비교하면 많이 저렴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은 "여기서 누워서 끝까지 버틸 것"이라며 손에 힘을 주었다.

올해 91세인 한 환자는 "진주에서 80년 넘게 살았고 의료원 역사가 103년이나 되는데, 갑자기 문을 닫는다고 하니 믿기지 않는다"며 "다른 병원에 있다가 여기 왔는데 주변 환경도 쾌적하고 좋다, 계속 여기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옆 침대에 누워있던 80대 환자는 "우리가 경남도청에 찾아갈 수 없으니까 언론이 제발 제대로 보도해서, 우리 소원을 경남지사한테 좀 전달되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을 했던 경남도가 휴업을 실시한 가운데, 휴업 예고기간 마지막인 30일 오후 의료원 현관에 사용하지 않는 휠체어가 진열되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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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한 가운데, 30일 오후 정상 진료하고 있는 응급실에 환자가 없어 텅비어 있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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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가족들은 한결같이 '다른 민간병원에서는 의료원처럼 오래 입원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강숙(57)씨는 민간병원과 진주의료원의 입원 환경에 대해 설명했다.

"민간병원은 환자가 오래 입원하는 것을 싫어한다.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환자가 새로 오면 각종 검사를 하면서 비용을 받아야 수익이 발생한다. 검사와 수술을 받지 않는 입원 환자들은 밥 먹고 잠자고 하는 비용에다 약품값 정도다. 오래 입원해 있으면 병원들은 돈이 안 된다며 싫어한다. 그런데 의료원은 그런 게 없어서 좋다."

진주의료원에는 10년 넘게 입원해 있었던 환자도 있었다. 그 환자는 더 있고 싶었지만, 이번에 경남도가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가라고 해서 며칠 전 할 수 없이 민간병원으로 갔다.

또 교통사고에다 '위 절제 시술'까지 받았던 김아무개씨는 2006년부터 입원해 있다가 며칠 전 사천의 한 병원으로 옮겨갔다. 김씨의 보호자들은 "꼭 싸워서 이겨 달라"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에 투쟁기금 50만 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환자 가족들은 "병원이 정상화 되면 다시 올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경남도 "의사들, 3월 퇴사해도 1개월 치 임금 더 주겠다"

진주의료원은 아직 폐업이 확정된 게 아니다. 경남도가 폐업 결정을 했지만, 경남도의회에서 관련 조례를 통과시켜야 한다. 경남도는 진주의료원을 '도립 의료원'에서 제외하는 관련 조례 개정안을 도의회에 제출해 놨고, 도의회는 이를 월 18일 처리할 예정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경남도에 두 차례 공문을 보내 '신중하게 하라'고 해 사실상 폐업에 제동을 걸었다. 야당과 노동계·시민사회 진영은 폐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경남도는 폐업 강행에 변함이 없다.

폐업·휴업 발표를 했던 경남도는 의사 11명에 대해 '계약해지 통보'를 했고, 제약회사에 약품 공급도 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경남도는 지난 26일 의사들한테 보낸 '계약해지 관련 임금정산 문의에 따른 회신문'을 통해 "휴업 시에는 봉직하고 있는 진료과장 역할이 없어짐에 따라 부득이 하게 계약 해지일은 4월 21일"이라고 밝혔다.

경남도가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휴업 예고기간 마지막 날인 30일 오후 한 병실 앞의 모습이다. 경남도는 진주의료원에 대해 '보호자없는병원사업'을 벌여 간병인비를 일부 지원해 왔는데, 폐업 결정 이후 진주의료원에 대한 '보호자없는병원사업 철회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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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한 가운데, 최근 의약품 공급업체 측은 의약품 공급 중지 통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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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경남도는 "휴업 예고 기간 중 계약해지일 전 자진 퇴사시 임금 정산은, 계약해지일 이전 3월 중 퇴사하더라도 미지급된 임금과 4월분 급여(1개월)를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리 환자에 대해서는 퇴원 또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조치해 주기 바란다"는 조건을 달았다.

진주의료원에는 의약품 공급이 중지됐다. 의료원에 약품을 공급해 오던 ㈜케이비팜(Kb pharm)은 지난 25일 진주의료원에 공문을 보내 "폐업 절차에 따른 수금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므로 부득이 의약품 공급을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30일 현재까지 의사 11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4월 첫째 주에 두세 명이 퇴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별도로 진주의료원에는 공중보건의 5명이 일하고 있다. 의약품 공급 중지 통보가 있었지만, 그동안 비축해 놓은 의약품이 있어 환자 진료에는 당분간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남도, '거짓 홍보'에 혈세 쓰다니..."

진주의료원 안팎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의료원 앞 도로 주변에는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폐업 철회' 등을 요구하며 내건 펼침막이 수십 개가 걸려 있으며, 의료원 건물 외벽에는 홍준표 경남지사를 비난하는 내용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울산경남본부 진주의료원지부는 의료원 현관에 농성장을 설치했고, 투쟁본부 사무실도 꾸렸다. 박석용 지부장은 "의사들에 대한 계약해지와 의약품 공급 중단 조치는 비의료적·비인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박 지부장은 "얼마 전 경남도가 휴업 발표를 하면서 마지막 환자까지 책임을 진다고 했는데, 의사를 내보내고 약품 공급을 끊는 게 책임을 지는 것이냐, 어불성설이다"라며 "경남도가 의약품 공급 회사에 전화를 걸어 (공급을) 중단케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석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울산경남본부 진주지부장(가운데)이 30일 오후 진주의료원 현관 농성장에서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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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 공무원들은 환자들을 퇴원시키기 위해 아는 사람들을 동원하기도 하는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며 "경남도가 보도자료 등을 통해 지금까지 해온 주장은 거의 대부분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경남도는 적자를 이유로 의료원을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니 여론이 불리하니까 얼마 전에는 신문에 광고를 냈다"며 "그 광고비는 공짜로 낸 게 아니고 세금이 들어간 것 아니냐, 그것도 '거짓 홍보'를 하는 데 도민 혈세를 쓴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홍준표 지사는 진주의료원을 두고 '강성노조 해방구'라고 표현했다. 박 지부장은 "'해방구'라는 단어조차 몰랐는데 이번에 알았다, 그런 위험천만한 단어를 쓰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노조는 '토요 무급 근무' 등에도 합의를 해줬다, 지부장이 사인까지 했고... 임금체불도 심했는데, 어떻게 강성노조란 말이냐"고 따졌다.

또 그는 "홍준표 지사는 진주에 '제2경남도청사'를 짓겠다고 공약했는데, 그 위치는 진주혁신도시 자리였다"며 "그런데 일부에서 진주의료원을 없애고 거기에 제2청사를 지어야 한다고 한다,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진주의료원 환자와 가족들은 지난 2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신청을 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지난 27일 의료원에 가서 현장 조사를 벌였고, 위원회에서 심의를 해서 결과를 낼 예정"이라며 "4월 첫째 주에 결정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치권도 진주의료원 사태에 관심이 높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은 4월 임시국회에서 '지방의료원에 국고가 지원되기에 폐업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은 애매한 입장이다. 이창희 진주시장과 김재경(진주을)·박대출(진주갑) 국회의원은 진주의료원 폐업 여부에 애매한 입장을 보이거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진주의료원에서는 단식농성과 집회 등이 이어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안외택 본부장을 비롯한 조합원 8명은 이날까지 4일째 경남도청 정문 옆 천막에서 단식농성하고 있다. 또 경남도의회 민주개혁연대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천막을 설치하고 철야농성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4월 13일 창원 만남의광장에서 '진주의료원 지키기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18일 경남도의회 앞에서 '영호남 노동자대회'를 연다. 진주의료원 사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남도가 폐업 결정한 진주의료원인데, 건물 외벽과 도로변에 홍준표 경남지사를 규탄하거나 폐업 철회를 요구하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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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 성업 이루고야말 멸적의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3/31 11:36
  • 수정일
    2013/03/31 11:36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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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침략자들에게 불 폭탄 세례" 예고
 
“조국통일 성업 이루고야말 멸적의지”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3/31 [07:4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조선은 전쟁을 결심하고 미국과 한국도 전쟁을 기정 사실화 해 한반도는 전쟁의 긴장감이 높아 지고 있다. ©


조선이 침략자들의 머리 위에 어떤 불 폭탄 세례가 들씌워지는지 세계는 똑똑히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철천지원수 미제와 천하의 역적무리인 동족대결광신자들을 씨도 없이 죽탕쳐 버리고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 성업을 기어이 이룩하고야말 멸적의 의지로 내 조국강토가 하나의 거대한 불덩이가 되여 활화산마냥 끓어 번지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로동신문은 “그 어떤 뇌성벽력에도 굴할 줄 모르는 천만 군민의 드센 담력과 배짱, 그것은 백두의 천출명장들께서 안겨주신 것”이라며 “선군은 우리의 자주이고 존엄이며 생명입니다.”라는김정은 원수의 어록을 게재했다.

이 신문은 “주체 87(1998)년 미제가 또 다시 우리의 평화적인 핵 시설을 문제시하는 한편 핵 선제 공격계획인 《작전계획 5027》을 내외에 공포하면서 압력의 도수를 높일 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조선반도에 조성된 엄중한 정세를 놓고 우려를 표시했다”며 엄중했던 당시 상황을 상기시키고 “그러나 적들의 도발책동에 백두의 담력과 배짱으로 맞서 나서신 분은 위대한 장군님이셨다”며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성명을 통하여 우리의 혁명무력은 미제침략군의 도전에 추호도 용서 없이 섬멸적인 타격으로 대답할 것이라는 보다 강한 대결의지가 발표되었다.”고 김정일 위원장의 지략을 회고했다.

신문은 “미국도 역적패당도 일본도 우리의 타격 목표이다, 그리고 선제공격은 미국만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내용으로 일관된 성명은 공격대상과 공격수단, 공격방식까지 제시한 우리의 군사적 초강경 입장의 명백한 표명이었다”며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단호한 혁명적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에서는 적들의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하고 침략전쟁에는 정의의 해방전쟁으로 단호히 대응해나갈 것을 천명하였다. 평양시를 비롯한 각 도들에서 열린 군중집회들에서는 우리 혁명무력이 침략의 아성과 그 기지들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외침들이 터져 나왔다.”고 조미대결을 앞 둔 당시 조선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했다.

또한 “감히 우리를 어째보려고 작전계획을 내돌린다, 어쩐다 하면서 기고만장하여 날뛰던 미제는 그 어떤 압력과 위협에도 두려움 없이 더 강하게 맞서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초강경대응자세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미국의 의도가 파탄 났음을 강조했다.

이어 “최악의 역경과 초긴장이 조성되었던 조미대결전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이 거둔 모든 승리들, 그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천재적인 지략과 함께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무비의 담력과 배짱이 있어 이룩된 열매였다.”고 덧붙였다.

로동신문은 “조국과 민족의 자주권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원수들에게는 무자비한 철퇴를 안겨야 한다는 위대한 장군님의 담력과 배짱은 오늘 김일성, 김정일조선을 빛내시는 것을 자신의 사명과 본분으로 여기시고 선군조선의 기상을 만방에 떨쳐가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에 의하여 이 땅에 그대로 빛 발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신문은 “적들의 그 어떤 군사적 도발과 발악적인 위협공세에도 초강경의 대응으로 단호하고도 무자비한 타격을 가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두리에 굳게 뭉친 천만군민의 멸적의 신념과 의지가 침략자들의 머리위에 어떤 불폭탄 세례로 들씌워지게 되는가를 세계는 똑똑히 보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한편 한미 양국은 조선의 강경 발언과 조치들이 실질적 행동으로 이어 질 수 있다고 보고 강온전략에 대한 입장을 내놓고 있으나 조선을 자극하는 발언 일색이어서 평화를 위한 길보다 전쟁의 길이 가깝다는 것이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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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살' 드러낸 장준하 유해 마침내 영원한 안식처로

 

<포토뉴스> '타살' 드러낸 장준하 유해 마침내 영원한 안식처로
 
 
 
2013년 03월 30일 (토) 20:39:29 류경완 통신원 tongil@tongilnews.com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 인근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던 장준하 선생이 유해로나마 자신의 ‘타살’을 입증하고 30일 마침내 영원한 안식처를 찾았다.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사인을 밝히지 못한 채 잊혀졌던 장준하 의문사 사건은 2011년 8월 초 폭우로 인해 묘역이 훼손돼 2012년 8월 1일 이장 과정에서 두개골 함몰 골절이 드러났고, 지난 26일 법의학자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에 의해 37년 만에 타살임이 입증된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유가족들과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30일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 겨레장’은 오전 9시 서울광장에서의 발인제를 시작으로 추모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옛 서대문형무소까지 행진해 분향의식을 가진 뒤 파주 장준하공원에 안장함으로써 마무리됐다.


   
▲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 [사진 - 통일뉴스 류경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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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의 땅을 침범하다

노루의 땅을 침범하다

 
남종영 2013. 03. 29
조회수 473추천수 0
 

한라산 노루 '유해조수' 지정, 인간과 공존할 길은 없는 것인가

50m 밖 눈치채는 예민한 청각, 달아나며 '컹컹' 짖어

 

500.IMG_0936 (1).jpg » 2008년 제주 물찻오름 주변의 숲에서 만난 노루. 사진=남종영 기자

제주도의 생태계는 육지와 다르다. 예부터 호랑이나 반달가슴곰 등 맹수가 살지 않았다. 육지의 '골칫 덩어리' 고라니도 없다.

 

멧돼지는 1900~1930년 사이에 멸종됐다가 2004년에야 처음으로 발견됐다. 육지에서 새로 유입된 것인데, 2012년 조사 결과 약 198마리가 사는 걸로 추정된다.

 

제주도가 이렇게 다른 생태계를 구성하는 이유는 한반도에서 외따로 떨어진 섬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번성한 동물이 있다. 노루다. 노루는 포식자의 위협과 경쟁자 없는 무주공산에서 번성을 구가했다.

 

제주녹색환경지원센터의 의뢰로 오홍식 제주대 교수(과학교육)가 2011년 추정한 노루의 개체 수는 1만 7756마리(해발고도 600m 이하 지역)이다. 이 보고서를 보면, 제주도 환경자원연구원에서 2009년 조사한 1만 2881마리에서 2년 만에 4875마리가 증가하는 등 노루가 '폭발적 증가세'를 보인다.

 

이 수치가 너무 과장됐다는 주장, 노루의 개체 수가 정점에 이른 뒤 정체 추세를 보인다거나 감소세라는 주장 등 다른 의견도 있지만, 노루가 많은 것에 대해선 전문가, 환경단체 모두 인정하고 있다.

 

jeju.JPG

애초부터 제주에 노루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한때는 절멸 위기에 이르기도 했다. 제주도 야생 생태계에서 노루에게 이렇다 할 천적은 없었지만, 명실상부한 최대 천적은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 때문에 노루는 한때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1971년 <동아일보> 10월5일치 기사를 보자.

 

노루는 경북 포항, 청송, 영양, 금릉군 황학산 일대에 많은데, '노루 피가 몸에 좋다' 해서 군 부대 등에서 서치라이트 등을 사용한 야간수렵으로 남획하고 한라산 저지대에서는 한겨울 적설기에 십여마리씩 떼를 지어 먹이를 찾아 민가로 내려오는 수가 있는데, 이때 마을 사람들이 몽둥이로 때려잡는다고 한다"


한겨울 적설기는 야생동물(특히 초식동물)에게는 위기의 계절이다. 땅이 눈으로 덮이면 먹을 게 없고, 산양의 경우 눈속에 빠져 갇힌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강원 설악산 등지에서는 눈에 갇힌 산양을 몽둥이로 때려잡아 약탕용으로 썼다고 주민들은 증언한다.

 

제주 노루도 마찬가지였다. 맛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가끔씩 고기로 먹었고 가죽은 박제로 만들어 썼다. 1970~1980년대 사냥이 괜찮아 보이는 레저활동으로 여겨졌을 때, 노루는 첫째 가는 밀렵대상이었다.

 

그러다가 제주도에서 본격적인 노루 보호운동이 시작된다. 1980년대 들어서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사냥총을 이용한 밀렵을 단속하고, 철제 올가미를 수거하고, 겨울에는 먹이도 줬다. 이때 신문 방송을 장식한 것은 밀렵으로 피해를 입는 노루였다.

 

노루는 제주도의 상징동물이 되어 갔고, 노루의 개체 수도 점점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을 결실을 맺었다. 1990년대 들어선 한라산에 오르다보면 노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제주도의 노루 보호는 자연보호 운동의 성공사례로 거론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상황은 바뀌기 시작한다. 노루가 농작물을 해친다는 볼멘소리가 조금씩 나온다. 2000년대 들어 농민들은 집단적으로 '노루가 들끓는다'며 항의를 시작했다.

 

노루가 농경지로 내려와 고구마, 콩, 팥, 배추 밭을 파헤친다는 것이다. 목장으로 내려와 사료용 풀을 뜯어먹는다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1년 제주도에 접수된 농작물 피해 신고 건수는 250여건이다. 제주도의 상징인 노루는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그럼, 노루는 왜 많아졌을까? 오홍식 교수가 말했다.

 

노루 같은 사슴과 동물은 포식자가 없을 경우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기본적으로 포식자에 의해 사냥당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종 보전 전략상 개체군을 늘리는 쪽으로 진화한 거죠. 일반적으로 노루 암컷 한 마리가 한해 1.2~1.4마리를 번식시킵니다. 세 살 때부터 번식이 가능하다고 보면, 암컷 한 마리가 10년에 대략 7마리 이상을 생산하는 거죠."


야생 생태계에서 포식자가 없다는 점(유일하게 들개가 있지만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리고 유일한 천적인 인간의 밀렵이 엄격한 규제로 줄어든 점 등이 노루의 개체 수 증가를 불러온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또한 원래 노루의 서식지였던 중산간이 목장과 밭으로 개발돼 서식지가 줄어든 노루가 '노출되거나' '뛰쳐나온'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어쨌든 농민들의 여론은 비등해졌고, 노루를 유해조수로 지정하자는 주장에까지 이른다.

 

제주도는 행정구역상 특별자치도여서, 환경부가 규율하는 육지와 달리, 자체적으로 유해조수를 지정할 수 있다. 결국 2월28일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 조례’ 개정안이 제주도의회 심의에 올랐다. 제주시 96개리의 이장들이 항의시위가 이어지는 와중에 결국 도의회는 노루를 유해조수로 지정하기에 이른다.

 

500.강재훈-발신기 표시.jpg » 18일 국립산림과학원 산하 난대아열대림연구소의 권진오 박사가 노루의 지피에스(GPS) 신호가 찍힌 지도를 보여주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노루가 얼마나 많기에? 노루를 보러 가기로 했다. 제주도에 노루가 제아무리 많다고 하지만 야생 노루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북극에 간다고 해서 무조건 북극곰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15일 제주도에 가기 전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루를 보고 싶은데요.”

 “노루 생태관찰원에 가 봐요.”

 “아니, 거기 말고요. 동물원 같잖아요. 진짜 야생 노루를 보고 싶다고요. 야생 노루!”

 “야생 노루?”

 “네. 그러니까 어디 가면 볼 수 있죠?”

 “음. 글쎄….”

 

대개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러던 중 국립산림과학원 산하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의 권진오 박사가 ‘이리 오라’고 말했다. “우리 연구소가 관리하는 한남시험림 주변에만 대충 40~50마리 삽니다. 순찰을 돌다 보면 한번은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한남시험림은 12㎢ 면적의 숲이다. 대충 계산해 보면 가로 세로 1㎞의 공간에 3~4마리는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어찌, 노루 보기 좋은 장소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쉽지 않았다. 18일 오후 우리들은 한 시간째 노루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평소 노루가 ‘상존한다’는 한남시험림 주변 목장에서부터 추적을 시작했으나, 노루는 이날 ‘부재중’이었다.

 

이번엔 한남시험림 숲 임도를 따라 노루를 찾아 헤맸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무 빽빽한 산등성이에서 노루 한 마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갓 나기 시작한 뿔에 하얀 엉덩이. 노루가 맞았다.

 

사진기자가 카메라로 초점을 맞추자, 노루는 몸을 돌려 숲의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숨바꼭질은 계속됐다. 노루를 몇 마리 봤지만, 노루는 사람의 접근은 허용하지 않았다. 노루가 설정한 경계 거리는 대략 50m 정도였다. 몸을 숙이고 낮은 포복을 해도 노루는 이내 내뺐다.

 

지난해부터 권진오 박사팀은 노루를 연구하고 있다. 숲을 연구하는 박사들이 왜 노루를 연구하고 있을까? 사실 한남시험림도 노루 때문에 골탕을 먹는 참이었다.

 

권 박사가 갓 심은 어린 묘목을 보여주었다. 줄기에 오목한 상처가 나 있다. “노루가 뿔질을 하거든요. 봄에 뿔이 나면 나무에 대고 긁는 거예요. 묘목이 다 죽어요. 뭐, 우리 시험림 안 묘목은 노루에 다 상납했다고 봐야지.”(웃음)

 

연구소는 고육지책으로 노루의 뿔질 피해를 막는 도구 개발에 나섰다. 묘목 지대를 둘러 울타리를 쳐보고, 묘목마다 철제 보호대를 싸보기도 했다. 가장 효과가 좋아 현재 사용하는 것은 플라스틱 필름이다. 어린 묘목들이 하얀 필름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송악은 안 거둬요. 송악나무 열매를 노루가 좋아하니까 먹으라고 놔둬요. 어차피 숲이 노루와 함께 사는 거니까요.”

 

500.권진오 박사02.jpg » 어린 묘목을 노루의 뿔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플라스틱필름을 둘러놓았다고 권진오 박사가 설명하고 있다.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숲을 보호하려면 먼저 노루를 알아야 했다. 연구소는 지난해 노루 6마리를 포획해 인공위성 위치추적장치(GPS) 목걸이를 채워 돌려보냈다. 놀랍게도 노루는 멀리 이동하지 않았다. 많이 돌아다닐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노루는 자신의 삶터를 철저히 지키는 ‘영역 동물’이었다. 작게는 1㎢ 안에 머물렀고 넓어야 4㎢를 넘어서지 않았다. 사람으로 치자면, 동네 안을 벗어나지 않는 셈이다.

 

그리고 새끼를 보살피는 암컷은 특이한 행동을 나타냈다. 지난해 5월9일 포획돼 방사된 5947번은 일주일 만에 새끼를 낳았다. 난대아열대림연구소의 김은미 박사는 “새끼를 낳기 전에는 임의로 돌아다녔는데, 새끼 낳고서는 새끼를 특정 공간에 은신시켜 두고서 그 지점을 중심으로 오갔다”고 말했다.

 

4208번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수목지대를 보호하기 위한 그물형 울타리에 뿔이 걸린 노루를 구조해 돌려보냈는데, 또 다시 걸리고 말았다. 마침 그때가 추석 연휴라서 사람이 적었던지라 그물에 걸린 노루는 발견되기 전에 숨졌다. 노루의 뿔이 그물형 울타리에 걸리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이 때문에 일부 주민들은 울타리에 걸린 노루를 생포해 팔기도 한다).

 

6월13일 서귀포시험림에서 포획돼 방사된 5772번은 석달 뒤 서귀포시 상효동 서귀포충혼묘지 주변에서 신호가 두절됐다. 연구팀이 이 일대 500m를 찾아봤지만 노루는 보이지 않았다. 권 박사가 말했다. “이런 일이 흔해요. 로드킬(동물 찻길 사고)을 당한 노루를 금방 사람들이 실어가거든요.”

 

500.강재훈-제주도 노루08.jpg » 19일 제주시 축산진흥원 목마장. 카메라를 들이대더니 노루가 도망쳤다.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제주도는 노루를 엄격하게 포획, 관리할 방침이다. 유해조수로 지정했지만, 아무나 노루를 포획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상기 제주도 환경자산보전과 계장은 25일 “노루는 제주도의 상징동물이고 도민들에게 사랑받는 동물”이라며 “총으로 포살시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올해 노루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극심한 곳을 두 곳(제주 및 서귀포) 시범사업지로 선정해 노루를 제주시의 노루생태관찰원과 2015년 완공될 새 시설로 이주시킬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유해조수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얻은 뒤 발생하는 '부작용'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영웅 제주환경연합 사무국장이 말했다.

 

사실 걱정되는 건 지자체의 포획이 아닙니다. 분위기가 이러니 일반인들이 여기저기서 올무나 덫 놓고 그럴까봐 걱정이지요. 사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잡고 있어요. 여전히 총을 이용한 밀렵도 이뤄지고, 그물에 걸린 노루를 잡아먹기도 하고요.”

 

‘포획 뒤 이주’라는 제주도 대책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노루는 길고양이와 비슷한 영역동물이다. 특정 지역의 노루를 없애면 다른 영역의 노루가 치고 들어오는 ‘풍선 효과’가 발생한다. 길고양이는 이같은 이유 때문에 티엔아르(TNR)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고 있다. 어차피 잡아서 포살하면 다른 영역의 길고양이가 번식해 치고 들어오니, 잡은 뒤(trap), 중성화 수술(neuter)을 시켜, 원 위치에 방사(return)함으로써, 개체 수를 관리하는 기법이다.

 

20년 이상 제주 노루를 연구해온 오장근 한라산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제주도의 대책이 성공하려면, 다른 지역의 노루들이 새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아요. 노루는 길고양이와 다른 초식동물이예요. 일단 포획하기 힘들어요. 길고양이는 덫에다가 먹이를 넣어 유인할 수 있지만, 노루는 사방천지에 깔린 게 먹이이기 때문에 먹이 유인이 쉽지 않죠. 그리고 중성화 수술을 해도 노루들은 해당 영역에서 계속 농작물 피해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효과가 없고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오장근 연구원은 노루를 제거한 지역에 노루가 나타났을 때 불쾌한 음향을 내보낸다거나, 노루가 싫어하는 식물을 식재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농경지 주변에 그물형 울타리를 치는 방법은 저렴하지만 친환경적인 방식이 아니다. 뿔이 걸린 노루가 자칫 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육지에서 노루는 멸종위기에 처했다. 제주에 많은 노루를 육지로 옮겨 종 복원 사업을 시작해보는 것도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500.강재훈-제주도 노루06 (1).jpg » 제주도 축산진흥원 목마장에서 만난 노루.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제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루 논란은, 어쩌면 우리에게 '동물과 함께 살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모른다. 이를테면 우리는 캐나다 록키산맥의 관광지 밴프의 거리를 활보하는 말코손바닥사슴과 흑곰을 보고선 돌아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곳'이라면서 부러워 마다하지 않는다.

 

사슴의 로드킬로 인한 자동차 사고, 쓰레기장을 뒤지는 흑곰 등 일부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그들은 동물을 인간의 마을에서 내쫓지 않는다. 그럼, 제주도의 노루는 어떤까? 권진오 박사가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영국에서 한 중소도시에서 공부할 때였는데요. 여우가 가끔씩 동네에 들어와 기웃거렸어요. 그런데 한국 이민자가 이걸 보곤 무서워 소방대에 신고했답니다. 신고를 받고 온 소방대원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지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야생동물과 함께 살던 기억을 지워버린 것 같아요. 무조건 쫓아내야 할 대상, 깊은 숲속에서 보아야만 하는 대상으로 야생동물을 생각하지요. 지혜를 발휘한다면 야생동물들과 함께 살 수 있는데요.

 

이틀 동안 한남시험림과 중산간을 돌아다니면서 노루 여남은 마리를 관찰했다. 많이 봤지만 자세히 관찰하진 못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노루들은 후퇴한 뒤 ‘컹컹’ 짖어댔다. 처음에는 들개가 사는 줄 알았다.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했다고 느꼈을 때 노루가 내는 전형적인 소리다.

 

19일 중산간의 제주도 축산진흥원 목마장에서 노루를 쫓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노루 사진 많이 찍었느냐고 물어봤다.

 

 “아니오. 카메라만 들면 도망가 버리더라고요.”

 “그놈들 엄청 귀가 밝아요. 50m 떨어진 곳에서 한 발자국만 옮겨도 흠칫하고 쳐다봐요. 그리고 카메라를 무서워하는 놈들이 있어요.”

 

 그때 노루가 저만치 도망갔다.

 “저놈도 며칠 전 총을 든 사람을 봤을 거예요. 그러니까 도망가지. 카메라가 총처럼 생겼잖아.”

 

제주/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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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이메일 : fandg@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isoundmy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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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작한 한반도 게임, 북한은 화답하라

전운 속에 이루어진 새 정부의 첫 대북정책 업무보고

13.03.29 18:36l최종 업데이트 13.03.29 18:36l

 

 

류길재 통일부 장관. 사진은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북정책에 관한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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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연일 도발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3월 27일 통일부와 외교부의 첫 업무보고가 있었다. 업무보고 하루 전에 북한이 '제1호 전투근무태세'를 선포하고, 당일에는 개성공단 통행안전을 위한 군통신을 차단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의 키워드인 신뢰외교(Trustpolitik)와 균형정책(Alignment Policy)이 구체화되어 내외에 첫선을 보였다.

6자회담 참여국의 리더십이 모두 교체된 이후 지금까지 각국은 사실상 대북정책에 대해 새로운 이니셔티브(initiative) 없이 북한의 지난 3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논의에 몰입했을 뿐이었다. 북한이 이에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한반도 상황은 악화의 방향으로만 진행되었고 국면을 타개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지난 20여 년간 북핵 협상을 주도했던 미국이 소득 없는 북한과의 협상에 지치고 자국 외교의 우선순위에서 북핵문제가 뒷전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돌파구를 마련해줄 것을 기대하는 눈치가 늘고 있다는 관찰도 있다.

더구나 미국은 과거처럼 대북관계를 어떻게 이끌까 하는 고민보다는 G-2시대의 아시아 정책으로 한반도를 뛰어넘는 큰 그림 속에 한·미관계를 어떻게 공고히 하여 아시아에서 미국의 국익을 지킬 것인지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 정부의 한반도 상황 개선을 위한 책임과 역할 비중이 커졌다.

1969년 닉슨 독트린으로 데탕트의 물결이 한반도에 밀려올 때도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 주변국들이 한반도의 현상유지와 남북 간 긴장완화를 원하면서 민족내부적 해결 노력이 더욱 중시되었다. 또한 중국과 일본의 역할 비중이 늘어나 한반도 문제가 단순 진영론에서 벗어나 다층적이고 역동적이게 됐다. 이 시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선택한 것이 자주국방력 강화와 남북대화였다. 북한의 도발이라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민족 전체의 미래를 위해 북한을 실체로 인정하고 대화라는 새로운 게임을 하자고 선(先)조치한 것이다.

동북아의 역학구도가 변하는 불안정한 시기에 통일부가 대북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국내외에 천명하였다. 이것은 비록 당장 어떤 대북제의나 조치가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북한은 물론 주변국에 우리 의도를 분명히 하고 각국의 관련 정책 정립에 우리 입장이 반영되도록 요구하고 선도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북핵을 넘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새로운 판을 짜보자고 일성을 지른 셈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서 우리 방침 지키는 게 중요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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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정부는 우선 북한의 위협과 공갈에 대해서는 대북억제력에 기반하여 엄정히 대처하여 추가도발 여지를 차단하고,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여 북한을 압박하는 한편, 관련국들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북핵문제 진전 등 상황타개를 위한 동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전쟁' 협박이 연일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에 맞대응하지 않고 침착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출범 초기 예민한 시기에는 돌출 대응으로 북한에 빌미를 주거나 우리 발목을 스스로 묶지 않도록 절제하는 태도가 특히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개성공단을 확대할 수 있다"는 통일부 장관 발언이 빌미가 되어 남북이 쓸데없는 소모전으로 상황을 악화시켜 나갔던 사례가 좋은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교체 때마다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부분적으로만 개량되어 연장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정부의 대북정책 일관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예외적인 일탈적 현상이었을 뿐이다.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대한민국 정부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축적하는 토대 위에서 평화를 확보하고 민족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을 일관되게 기조로 삼아왔다. 따라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맸던 일탈현상을 걷어내고 남북관계를 제 궤도에 올려 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일관성이라고 할 것이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주관부처를 통일부로 한 것도 균형정책에 입각하여 판단한 것이겠지만 이러한 정책 일관성 유지 차원에서 긍정적이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남북관계의 특수성보다 보편성에 따른 국제공조를 강조하면서 외교부가 대북정책의 중심적 역할을 하도록 했고, 민족내부적 성격은 도외시하였다. 이 때문에 남북교류협력과 안보국방정책의 균형을 잡지 못해 사실상 통일부의 존재는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되었다. 이 바람에 남북관계와 국가안보 두 측면 모두 역대 최악의 상황이 조성되어 새 정부에 부담을 안겨주었다.

박 대통령은 신뢰구축에 대해서, 남북이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실천 가능한 것부터 이행해야 하며, 상대가 약속을 어겼으니 우리도 마음대로 하겠다는 식이 아니라 이를 어기면 손해라는 인식을 주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북한의 변화를 마냥 기다리거나 변화를 안 한다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우리와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 만드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하였다. 역대 정부 대북정책의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회복했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가 통일준비 차원이라며 업적으로 치켜세우려던 통일기금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역대 정부 판단에 부합하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통일재원이 필요하긴 하지만 여러 가지 판단에서 실질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언급하였다. 새 정부 정책이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해준다.

평화와 협력의 손을 잡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경남진보연합, 울산진보연대, 부산민중연대는 15일 낮 12시 창원 진해구 소재 진해미군사고문단 정문 앞에서 "군사훈련 중단 촉구 공동집회"를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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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런 기본자세하에 북한의 돌출행동에 일희일비하여 끌려다니지 말아야 하며, 우리 사회의 일부 극단적이고 말초적인 대북강경 여론에도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침착하게 우리 방침을 유지하면서 국가안보를 강화하고 남북관계 개선노력을 꾸준히 경주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신뢰는 비록 작은 규모라도 서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때 가능하다며, 관계 부처에 조속히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완성해서 국민의 이해와 주변국들의 지지를 구하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하라고 지시하였다. 또한 박 대통령은 북한의 올바른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북한이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변화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공조해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노력을 끊임없이 전개하라고 정부에 주문했다.

이제 북한이 대답할 차례다. 남쪽이 내민 손을 잡고 평화와 협력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끝내 이를 뿌리치고 우리 민족을 핵공포 속에 가둘 것인가? 북한이 진정으로 민족 전체의 안녕과 행복을 바란다면 신뢰를 위한 대화의 길에 나서야 한다. 우리 민족이 먼저 힘을 합치고 통일미래를 설계해야만 주변국들의 지지와 성원을 견인할 수가 있다. 북한의 선택권이 넓혀져 있는 지금이야말로 명분과 실익을 함께 얻을 수 있는 기회다.

북한은 3월 말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와 4월 초 최고인민회의를 소집하여 '중대문제'를 논의한다고 예고하였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정책방향과 의지를 곡해하지 말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북한이 우리의 정책에 호응하는 태도를 보여, 5월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상황타개와 국면 전환에 매우 중요한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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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이 시각부터 북남관계는 전시상황"

 

정부.정당.단체 특별성명.."김정은 시대는 모든 것이 다르다"
 
 
2013년 03월 30일 (토) 09:53:11 이광길 기자 gklee68@tongilnews.com
 

"이 시각부터 북남관계는 전시상황에 들어가며 따라서 북남 사이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은 전시에 준하여 처리될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정부.정당.단체들은 30일 특별성명을 통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작전회의에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내리신 최종결단과 최고사령관의 최후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천만군민의 한결같은 의지를 담아" 이같이 밝히면서 "조선반도에서 평화도 전쟁도 아닌 상태는 끝장났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우리 혁명무력이 실제적인 군사행동에 진입한 조건에서 북남관계도 자동적으로 전시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북남 사이에서 우리의 존엄과 자주권을 조금이라도 해치는 그 어떤 도발적 행위에 대해서도 예고없이 즉시 단호한 물리적 행동으로 사정을 보지 않고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이어 "미국과 괴뢰패당이 서해 5개섬이든 군사분계선 일대이든 그 어느 지역에서든지 북침전쟁의 불을 지르기 위한 군사적 도발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국지전으로 한정되지 않을 것이며 전면전쟁, 핵전쟁으로 번져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성명은 지난 26일 북한군 최고사령부 성명, 29일 새벽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주재 긴급 작전회의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로 보인다.

실제로, 성명은 지난 8일과 19일, 25일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출격과 지난 28일 'B-2' 스텔스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출격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행보와 관련, 최근 정부 고위당국자도 "과거보다 북한이 '강(强)-강-강'하는 상황인데,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걸 보면 과거엔 예측가능한 측면이 있다면 지금은 사이클이 안보인다는 것"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한편, 북한은 31일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다음달 1일에는 최고인민회의를 소집해놓은 상태다.

 

<북 정부.정당.단체 특별성명>

(평양 3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정당,단체는 30일 다음과 같은 특별성명을 발표하였다.

우리의 자주권을 유린하고 나라의 최고리익을 침해하는 미제의 반공화국침략책동이 극히 엄중한 단계에 들어선것과 관련하여 백두의 천출명장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군 화력타격임무수행과 관련한 작전회의를 긴급소집하시고 화력타격계획을 최종검토,비준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내리신 중대결심은 세기를 넘어 이어온 미국과의 대결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환적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판가리싸움의 선언으로서 미국과 괴뢰패당을 비롯한 반통일적대세력에 대한 최후경고이며 우리 군대와 인민의 멸적의 의지를 담은 정의의 최종결단이다.

지금 우리의 영용한 인민군장병들과 전체 인민들은 미제의 무모한 전쟁도발책동에 치솟는 격분을 금치 못하면서 경애하는 원수님의 중대결단을 받들어 원쑤들과의 결사항전에 산악같이 일떠서 조국통일대전의 최후승리를 이룩하고야말 불타는 결의에 넘쳐있다.

미국과 괴뢰패당의 북침전쟁책동이 최극단에 이르고있는것과 관련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이미 성명을 통하여 나라의 자주권과 최고존엄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단호한 군사적대응의지를 내외에 엄숙히 선언하였다.

미국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전략폭격기 《B-52》를 남조선지역상공에 들이민데 이어 미국본토에 있는 스텔스전략폭격기 《B-2A》를 비롯한 최첨단전략타격수단까지 남반부상공에 깊숙이 진입시켜 우리를 겨냥한 폭격훈련을 강행한것은 용납할수 없는 극악무도한 도발이며 공공연한 도전이다.

미국의 무모한 북침핵전쟁소동에 편승하여 괴뢰패당은 《선제타격》과 《강력한 응징》을 떠들다못해 그 무슨 《지휘세력타격》과 지어 우리의 최고존엄의 상징을 감히 어째보려는 기도까지 공공연히 드러내고있다.

이것은 미제의 강도적인 침략야망과 괴뢰역적패당의 북침기도가 도를 넘어섰으며 위협공갈단계로부터 무모한 실전단계에로 들어서고있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조성된 험악한 정세는 미제와 괴뢰패당과는 말로 할 때가 지났으며 오직 선군총대로 단호히 결산하여야 한다는 최고사령부의 판단과 결심이 천만번 정당하다는것을 더욱 명백히 실증해준다.

지금 미국과 괴뢰호전광들은 이번 《B-2A》스텔스전략폭격기의 핵폭탄투하연습에 대해 《북을 자극하기 위한것이 아니》라느니,《방어훈련》이라느니,《동맹국의 리익을 지키기 위한것》이라느니 하고 떠들지만 그것은 저들의 침략적정체를 덮어놓고 내외여론의 비난을 회피하며 우리의 불벼락을 모면하기 위한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이 핵무기를 휘두르며 힘의 정책에 매달리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다.

미제의 핵공갈에는 무자비한 핵공격으로,침략전쟁에는 정의의 전면전쟁으로! 바로 이것이 우리의 단호한 대답이며 억척불변의 립장이다.

천하제일명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시대에는 모든것이 다르다는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이제 적대세력들은 선군조선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수 없다는 백두령장의 철의 의지와 무비의 담력,무서운 본때를 몸서리치게 맛보게 될것이다.

기다리고기다리던 판가리결전의 최후시각은 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정당,단체들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작전회의에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내리신 최종결단과 최고사령관의 최후명령을 기다리고있는 천만군민의 한결같은 의지를 담아 다음과 같이 엄숙히 천명한다.

1. 이 시각부터 북남관계는 전시상황에 들어가며 따라서 북남사이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은 전시에 준하여 처리될것이다.

조선반도에서 평화도 전쟁도 아닌 상태는 끝장났다.

우리 혁명무력이 실제적인 군사행동에 진입한 조건에서 북남관계도 자동적으로 전시상황에 처하게 되였으며 그에 따라 북남사이에서 우리의 존엄과 자주권을 조금이라도 해치는 그 어떤 도발적행위에 대해서도 예고없이 즉시 단호한 물리적행동으로 사정을 보지 않고 무자비하게 징벌할것이다.

2. 미국과 괴뢰패당이 서해 5개섬이든 군사분계선일대이든 그 어느 지역에서든지 북침전쟁의 불을 지르기 위한 군사적도발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국지전으로 한정되지 않을것이며 전면전쟁,핵전쟁으로 번져지게 될것이다.

미국이 하와이와 괌도를 비롯한 태평양상의 군사기지들과 본토에 있는 핵전략폭격기까지 남조선지역 상공에 들이밀어 북침핵전쟁책동을 광란적으로 벌리는 조건에서 조선반도에서 그 어떤 군사적충돌도 전면전쟁,핵전쟁으로 확대될것이라는것은 자명하다.

우리 혁명무력의 첫 타격에 미국본토와 하와이,괌도를 비롯한 태평양작전전구안의 미제침략군기지들이 녹아나고 남조선주둔 미군기지들은 물론 청와대를 비롯하여 괴뢰통치기관들과 괴뢰군기지들도 동시에 초토화되며 침략자,도발자들은 씨도 없이 불타 재가루로 될것이다.

3. 우리는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조국통일대전의 최후승리를 이룩할것이다.

우리의 조국통일대전은 3일대전도 아니며 미국과 괴뢰호전광들이 미처 정신을 차릴 사이없이 단숨에 남조선 전지역과 제주도까지 타고앉는 벼락같은 속전속결전,하늘과 땅,바다는 물론 전방과 후방이 따로없는 립체전으로 될것이다.

이 성스러운 정의의 대전은 북과 남,온 겨레가 참가하는 거족적인 전민항쟁으로서 그앞에 극악한 대결광신자들과 호전광들,인간쓰레기들을 비롯한 민족반역자들은 가차없이 벌초대상이 될것이다.

정의의 조국통일대전에 일떠선 우리 군대와 인민,온 민족의 의지와 힘을 막을자 이 세상에 없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위대한 영상을 높이 모신 우리 민족은 세기와 세기를 이어오며 쌓이고쌓인 한과 숙원을 가슴후련히 풀고 조국통일의 찬연한 새날을 기어이 안아옴으로써 이 땅에 천하제일강국을 반드시 일떠세우고야말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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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전쟁 계획따라 미 본토 잿가루 만들 것

 

조선 군민 "작전회의 소식은 승리의 확신"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3/30 [09:12] 최종편집: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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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김정은 원수가 29일 새벽 0시 30분 화력타격계획을 최종검토하고 비준한 것에 따라 미국본토는 물론 하와이, 괌도 등의 미제침략군기지들을 사정보지 않고 씨도 없이 잿가루로 만들어버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29일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인 김정은 원수의 김급작전회의 소집 결과에 대한 반향을 보도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중앙통신은 “이 소식(긴급작전회의에서 최종 검토 비준한 사실)에 접한 전체 군대와 인민은 군사사상과 영군술, 군사전략과 전술 그리고 그 담력과 배짱에서 천하제일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 계시고 그이의 슬하에서 억세게 자라난 백두산혁명 강군이 있는 한 반제반미대결전에서 반드시 승리만을 떨쳐갈 것이라는 확신을 더욱 굳게 가졌다”고 전했다.

이신문은 각계반향을 전하며 조선인민군 군관 계상철(남자, 55살)의 말을 실었다.

계상철 군관은 “미제는 역사상 처음으로 스텔스전략폭격기를 비롯한 전략타격수단들을 남조선에 새롭게 진입시켜 우리를 겨냥한 핵침략 전쟁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놓았다.”며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기어이 핵전쟁을 일으켜 우리를 먹어보려는 승냥이본성이 세계 앞에 낱낱이 공개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우리 부대 장병들은 승리의 신심 드높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최종검토, 비준하신 화력타격계획에 따라 미국본토는 물론 하와이, 괌도 등의 미제침략군기지들을 사정보지 않고 씨도 없이 잿가루로 만들어버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양화력발전연합기업소 작업반장 김태호(남자, 36살)는 “아침방송을 통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전략로켓군 화력타격임무수행과 관련한 작전회의를 긴급소집하시였다는 보도를 들었다”면서 “조국과 민족, 사회주의운명을 한 몸에 지니시고 반미대결전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원수님께서 혁명의 진두에 서계시기에 스텔스전략폭격기보다 더한 것들이 아무리 날뛴다 해도 어림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태호 반장은 “우리 기업소 노동계급은 마치와 총을 억세게 틀어잡고 백두산대국의 존엄이 어떻게 과시되고 당과 수령의 두리에 일심단결 된 선군조선의 승리가 어떻게 빛나는가를 세계 앞에 똑똑히 보여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평양기계대학 지설경(여자, 21살)학생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미제가 핵으로 우리를 위협 공갈하는 시대를 영원히 끝장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핵무기만능을 줴치며 오만하게 날뛰는 침략자들에게 진짜 핵전쟁이 무엇인가를 톡톡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인민군대에 탄원한 우리 학급 동무들은 김정은 원수님의 현명한 영도 따라 반미대결전에서 빛나는 위훈을 세우고 영웅이 되여 다시 만나자고 굳게 약속했다”고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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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국민' 평균재산 11억 '부자' 공무원,새누리당 의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3/30 10:07
  • 수정일
    2013/03/30 10:0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13년 대한민국 정부공직자의 재산신고 내역이 공개됐습니다. 행정부,지자체,사법부 등 대한민국 1급 이상 공무원들과 교육감, 지방의회 의원 등은 반드시 재산을 신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12월에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과 홍준표 경남지사,문용린 서울교육감은 제외하고 (추후 공개) 대한민국 공직자의 재산이 공개됐습니다.

대한민국 중앙과 지방 공직자 중에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은 진태구 충남 태안군수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9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위 공직자 정기 재산변동사항'에 따르면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중 진태구 충남 태안군수가 230억6174만4000원을 신고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진태구 태안군수는 2002년 태안군수에 취임하면서 기초자치단체장 중에서는 11년째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원래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보면 (국회의원 제외) 309억6900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던 전혜경 국립식량과학원장이었지만, 공직에서 물러나면서 진태구 태안군수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검찰에서는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이 119억7134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고, 사법부에서는 최상열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139억2529만원의 재산을 신고했습니다.

행정부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던 김기수씨가 주식매각 등으로 15억8661만원이 늘어난 86억8446만원을 신고해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부자 새누리당, 가난한 야당'

공직자 재산신고에서 검찰,행정부 등을 제외한 국회의원에 대한 재산신고도 이루어졌는데 국회의원 재산 1위는 여전히 정몽준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 나타났습니다.
 

 

 


국회의원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 10명을 조사하니 9명이 새누리당 의원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영희 의원도 공천헌금 파문이 일어나기 전에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국회의원 중 재산이 많은 사람은 모두 새누리당 의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특히 500억 재산가 4명은 모두 새누리당 의원이었고, 이들 새누리당 의원들의 평균 재산은 민주통합당 의원보다 10억이나 많았습니다.

새누리당 의원 평균 재산 ' 23억9180만원' VS 민주당 의원 평균 재산 '13억247만원'

(새누리당 500억 이상 의원 4명 제외)


국회의원 중 가장 재산이 적은 하위 10명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야당 의원이었고, 검찰의 표적수사로 억울하게 재판을 받았던 한명숙 전 총리는 5831만원의 재산을 신고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여당,야당을 떠나 항상 보수쪽이었던 새누리당 의원들의 재산이 많았고, 진보쪽으로 분류된 의원 대부분은 재산이 적다 못해 가난하다는 말이 이번 신고에서도 입증됐습니다.

' 2012년보다 고위공직자의 재산이 줄었다는 이상한 통계'

안전행정부는 29일 관보를 통해 공개된 행정부 고위공직자의 재산이 2012년 신고때보다 평균 1200만원이 줄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통계는 사실을 알고 보면 왜곡된 통계에 불과합니다.
 

 

 


2013년 고위공직자의 재산은 평균 11억7000만원으로 2012년 11억8200만원과 비교하면 수치상으로는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산신고가 사라졌고, 아들이나 부모의 재산 고지 거부한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2012년 재산 고지를 거부한 사람은 490명이었지만, 2013년 533명으로 증가했는데, 이들을 합치면 오히려 평균 재산은 더 늘 수도 있었습니다.

단순한 평균재산 수치가 아니라 재산 증가를 보면 2012년 1147명이었던 재산증가 고위공직자가 2013년에는 1378명, 전체 71.3%가 증가했습니다. 이 말은 고위공직자 10명 중 7명은 대부분 재산이 증가됐다는 의미입니다.

고위공직자의 재산신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59억과 300억 자산가였던 전혜경 전 국립식량과학원장이 2013년 재산신고에서는 포함되지 않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재산신고가 미포함된 점을 본다면 평균재산 보다는 재산이 늘어난 사람이 얼마나 됐고, 재산고지를 거부한 인원이 몇 명이었느냐를 모두 종합적으로 따져서 통계를 냈어야 합니다.

' 끝까지 돈 벌고 나간 MB 각료들'

지난해부터 대한민국 경제가 불황이고 가계부채가 늘어나 국민은 죽겠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MB정권의 각료들은 대부분 재산이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였습니다.
 

 

 


MB정부 마지막 각료들은 2013년 고위공직자 재산신고에서 권재진 법무부 장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산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재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사람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4억5503만원이 늘어난 12억 1065만원으로 신고했습니다.

MB정부 국무총리와 장관들은 재산증가 이유는 급여를 저축해 예금이 증가한 사례가 많은데, 국민들은 돈이 없어 겨우겨우 불황을 이겨내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국민은 힘들어도 고위공직자는 급여를 열심히 받고 이걸로 재산을 늘렸던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 오히려 빚이 늘어난 박원순 서울시장'

2013년 고위공직자 재산신고에서 재산이 늘어난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재산이 아닌 빚만 늘어난 사람도 있는데 바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입니다.

 

 

 


 

 

박원순 시장은 2012년 3억1056만원의 빚이 있다고 신고했는데 2013년에는 5억9473만원으로 오히려 빚이 늘어났습니다. 특히 박 시장의 부인이 운영하던 사업을 접으면서 보증금과 자동차를 팔아 재산은 줄고 빚은 늘어났습니다.

박 시장의 예금은 선거비용 보전과 기탁금으로 일시 늘어났지만, 선거 때 모집했던 펀드를 상환하고, 선거비용을 사회복지 기관에 기부함으로 예금 증가는 그리 박원순 시장의 재산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고위공직자 재산신고 보도 이후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출처:박원순 시장 페이스북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시장 강난희씨의 사업체가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면 강난희씨가 운영하던 사업은 박원순 변호사가 시장으로 취임하면서 폐업을 하는 등의 불이익(?)만 당한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의 부인 강난희씨는 1999년 인테리어업체 'P&P디자인'을 설립해 사회운동을 하던 남편 대신 집안 살림을 대신했고, 박 변호사가 벌인 사회운동에 대한 빚까지 떠안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고위공직자가 돈이 많다는 것이 무조건 비난 받을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빚이 있는 상황에서 선거 기탁금과 선거 보전비용을 받은 박원순 시장이 오히려 돌려받은 돈을 사회복지기관에 기부했다는 사실을 재산이 늘어난 고위공직자들은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엠피터'에게 후원금을 보내주는 사람들도 그리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적은 월급을 쪼개 다달이 만원,2만원씩 보내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재산이 많은 사람보다 없는 사람들이 더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일이 많습니다.



 

▲박근혜 정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부동산투기,탈세,전관예우 의혹 리스트.


고위공직자들은 넓은 아파트에 좋은 차,비싼 가전제품이나 골동품,보석 등이 있기 때문에 서민처럼 다달이 대출금을 내면서 쪼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더 많은 기부를 할 수 있거나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늘어난 재산으로 더 많은 부를 이룩하려고 애를 씁니다.

고위공직자들이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렸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부동산 투기, 탈세, 편법증여, 전관예우 등을 통해 재산을 모았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고위공직자는 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부를 축적하는 자리라는 인식을 주기 충분합니다.

박원순 시장과 같은 사람을 우리가 왜 자꾸 투표로 뽑아 대한민국 고위공직자로 보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는 2013년 고위공직자 재산신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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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유랑하는 노마드 신자

휴심정 2013. 03. 29
조회수 0추천수 0
 

[복음과상황 265호 커버스토리] 교회를 유랑하는 노마드 신자
 
 
내년에도 이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 연말이 되면 한번쯤 품게 되는 물음이다. 이는 ‘교회 생활’이라 일컫는 신앙활동에 불편한 구석이 있는 이들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고민이며, 오랜 기간 눈물과 땀을 흘린 교회의 열심 있는 성도조차 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이 고민 앞에서 자신이 맡았던 봉사와 직분을 어떻게 내려놓을까 조바심을 내고, ‘교회 이적(移籍, transfer)’에 대한 적절한 명분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그런 고민과 망설임 가운데 새해가 되면 소리 없이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 교우들이 생기고, 이래저래 안부를 물으면 다른 교회에 ‘출석’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들을 다시 오도록 설득하자니 그 심경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 심지어 부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물론 주위를 둘러보면 가족들 처지와 옛정을 생각해서 한두 해 더 버텨보자며 마음을 다잡고 ‘그냥 다니는’ 이들도 많다.
 
이는 지역교회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연말 풍경이지만, 요즘 들어 부쩍 ‘좋은 교회’를 찾아 나서는 이들의 움직임이 꽤 눈에 띈다. 4, 50대 가장을 중심으로 가족 단위로 이동하는(遊牧)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30, 40대 초반의 가정과 2, 30대 미혼 청년들의 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야말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의 현 상황 속에서 영적 정처 없이 유리방황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회 탐방이 습관이 된 청년들도 보인다. 논의를 펴 나가기 위해, 그 모종의 유리방황이 습관이든, 신중하고 절박한 일회성 결단이든 이들을 편의상 ‘교회 노마드 신자(church nomad)’라 부르고 싶다. 물론 여기서 모든 형태의 교회 이동이나 유랑을 다룰 수는 없기에, 몇 가지 현상에 초점을 맞춰 살펴볼 작정이다.
 
교회십자가.jpg
 
‘노마드 신자’의 여러 모양들
 
교회를 찾아 유리방황하는 이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형은, 진리를 찾고자 길을 떠난 이들이다. 교회를 옮겨다니며 예배에 참여하는 이들 중 일부는 진실한 답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예수에 대해서, 기독교 공동체에 대해서 풀지 못한 질문을 품고 다닌다. 그 배경이 어떻든 그들은 진리를 얻고자 교회를 찾아 다닌다. 그러나 이들의 진지하고 심각한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 줄 준비된 교회는 그리 흔하지 않으며, 대부분 ‘믿음’에 대한 잘못된 신학으로 맹신을 강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은 단순히 좋은 설교(자)를 찾아 나선 이들과는 구별된다. 철학적이고 근원적인 답을 명확히 붙들고 싶은 갈급함이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서 이들에게 적절한 답을 제시해 주고 이들을 넉넉하게 받아 줄 교회는 얼마나 될까. 그래서 이들은 때로 교회생활을 하지 않고 절대자에 대한 감각을 스스로 일깨우고 진리를 획득한다. 만약 이들 중 교회에 정주(定住)하는 비율이 늘어난다면, 이는 한국교회가 건강해진다는 신호로 보아도 무방할지 모른다.
 
둘째, 상처를 받고 방황하는 이들이다. 교회 내에서 상처받는 일이야 허다하다. 성도 간의 불신과 원망이 커져 더 이상 머무르기 어려운 경우도 흔하다. 젊은이들의 경우 이성교제 때문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나이가 꽉 찬 미혼 여성도 지역교회에 머물기는 쉽지 않다. 교회 내의 불합리와 불의에 대한 진실한 건의가 조직의 논리로 거부되고, 심지어 영적 권위와 질서라는 명분 아래 교회를 분열하는 ‘사단’으로 몰리는 경우도 흔하다. 무엇보다 목회자와의 관계가 어려워 교회를 떠난 경우는 목사나 교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경험을 겪은 이들은 또다시 동일한 일을 겪고 싶어하지 않으며, 따라서 새로 옮긴 교회에서는 되도록 익명성을 보장받으며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한다. 규모가 작은 공동체에서 얽히고설키는 것도 원치 않는다. 심한 경우, 더 이상 ‘교회 생활’이란 것을 하기 싫어한다. 이 때 가까이에서 붙들어 줄 가족, 친지, 친구가 없다면, 이들은 조용히 ‘교회’에서 사라진다.
 
셋째, 윤택한 환경을 찾아 나선 이들이다. 아이들이 커 가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자신과 가족의 영적 복지를 한 단계 향상시킬 수 있을 듯한 교회를 찾아 가는 사람들다. 이들은 교회 선택과 관련하여 큰 갈등 과정을 겪기보다는 현실적인 삶의 필요들에 대한 답을 현명하게 찾아가는 쪽을 택한다. 이런 유형에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교회로 옮긴 이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직업, 소득과 소비 수준, 학력 등을 본능적으로 고려하며, 그것이 욕망 실현의 형태일수도 있으나 겉으로 보기엔 별 무리 없어 보인다.
 
마지막 유형은, 대안을 찾아 떠난 이들이다. 이들은 한국교회의 절망적 상황에 환멸을 느끼고 스스로 ‘건강한 교회’, ‘좋은 교회’를 찾아 나선 경우에 해당한다. ‘하나님 나라’에 눈을 뜨고, 개인 구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참여적 활동을 긍정하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들이다. 이들은 설령 자신이 예전에 속했던 교회가 딱히 나쁘지 않다 하더라도,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교회를 찾아 나선다. 기독교단체 활동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상당히 많다. 또 학생선교단체에서 훈련받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소셜네트워크(SNS)와 포스트모던 문화, 그리고 ‘한국 사회 몰상식과 폭력의 현장’이 뒤범벅된 상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젊은층이라는 특징을 띤다. ‘87년형 복음주의’의 관점에서 분류한다면 4, 5세대에 해당하는 무명용사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대다수 대안을 찾아 길을 떠났지만, 아직 정착하지는 못했다.
 
노마드 신자의 특징들
 
이유나 동기가 어떻든 위 네 가지 유형의 노마드 신자들에게서 도드라지는 특징이 있다.
 
첫째는, 교회를 조용하고 은밀히 드나들며 익명성을 누리고 싶어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거나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문제는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공동체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개신교 테두리에서 이탈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물론 이탈한 이들이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거나 교회를 개척하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둘째는, 교회를 찾고 고민하고 다시 정착하는 모든 과정이 한편으로는 자아실현의 수단이 될 위험이 있다. 이는 비단 좋은 교회 모델을 찾아 떠난 개혁적 성향의 그리스도인들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의 추세를 보면, ‘변혁’이라는 이름의 플러그인을 탑재해야만 괜찮은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지는 트렌드가 엿보인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리더십‐비전‐일상‐공동체’ 등으로 이어진 각 키워드에 열광하지 않은 청년들이 있었던가. 그 중심 단어들이 바뀔 때마다 모두가 그것이 제자로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덕목으로 이해되어 왔다. 묵묵히 그 길을 걸어온 분들을 매도하려 함이 아니다. ‘사회참여’, ‘정의’, ‘생태’, ‘공동체’ 같은 것들이 하나의 유행처럼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 될 위험은 결코 적지 않다.
 
셋째, 진리를 찾는 구도자를 제외하고 노마드 신자의 대부분은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수평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는 수평 이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그리하여 마땅히 정주할 곳은 없고 수평 이동은 선택하고 싶지 않아서 아예 개신교 울타리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같은 양태를 볼 때,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나라의 개신교인 비율은 지금보다 더 낮아질 것이다. 거품이 빠지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메가처치들의 세는 쉽게 줄지 않고 당분간 유지될 것이고, 역설적으로 기독교가 부자와 권력자들을 대변하는 종교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데 더욱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밖에 목회 철학의 부재라든지 조직 운영의 미숙함, 사회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적자생존(?)의 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교회들도 늘어나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마드 신자들과 가나안 성도들에게 적실한 교회 공동체 상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시급히 답을 찾아야 할 때다.
 
대형교회예배모습.jpg
*한 대형교회의 예배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노마드 현상이 늘어나는 이유
 
이런 현상들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나는 무엇보다,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논하고 가르치고 배우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교회란 한국 사회 안에서 게토화하고 시대에 뒤처진 집단임을 학습했다. 게다가 세상에서 기독교인이라고 당당히 말할 자긍심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교회론에 대한 본질적 논의 자체가 많지 않은 것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
 
교회론의 부재, 교회론의 학습과 공유 부재는 심각한 문제다. 교회에 대한 이상이 희미하고 그 기대치와 기준이 낮을수록, 상처받은 이들을 설득하고 품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보다는,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를 어지럽힌 죄를 묻어버리고 상처받은 이들이 쓴 마음으로 떠나도록 방기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목회자와 성도가 함께 교회가 무엇인지 말씀으로 돌아가서 진득하게 공부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당장 노마드 신자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나,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속한 교회의 견실한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노마드 신자들이 증가하는 데는 ‘교회의 실패’ 즉 한국 개신교의 실패가 큰 몫을 한다. 우리 중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럼에도 목회자의 책임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많은 교회가 목사 중심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으며, 여전히 성도 위에서 영적 권위를 행사하며 군림하려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원인을 교회론이나 목회자, 낡은 패러다임 등 외재적 요인으로 돌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좋은 교회, 자기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 떠나거나, 정주하기보다 노마드식 교회 생활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이들이 돌아볼 점은 과연 없을까. 교회를 자아실현이나 자기 만족의 수단으로 여긴 적은 없는지, 자신의 기준과 상식에 맞는 설교(자)를 찾아다니지는 않았는지, 내 가족의 안락과 안전을 위한 이동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대안을 찾아 교회를 떠난 이들 중 많은 경우 전문적 훈련을 받은 기독교 활동가가 많다고 언급했다. 그들은 왜 교회를 계속 고민하며 한 곳에 쉬이 정착하지 못하는 걸까. 왜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나오는 신앙생활을 할까. 물론 굳이 교회에 등록하여 한 부서의 일원으로서 주일마다 봉사와 섬김에 참여하지 않고도, 홀로 주일 예배에 신실히 참여하고 평일에는 세상으로 파송된 선교사 의식으로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교회에서 고유의 은사를 발휘하여 자기 몫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이는 단순히 주일에 어떤 부서에 소속되어 봉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이 일터에서 하는 일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복음 전도로 귀결되게 하는 시스템을 교회와 더불어 구축할 아이디어는 없을까. 이는 교회가 자연스럽게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과 호흡하는 형태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걸림돌이 있다. 대표적인 게 교회 직분제도의 경직성이다.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노마드 신자들이 교회내 직분제도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교회에서 발언권이나 일정한 역할을 부여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안으로 선택하는 것이 성가대원이나 주일학교 교사 등 마지못한 주일 봉사다. 그런데 이런 주일 봉사가 대부분 교회 조직 유지에 치중되는 탓에 이들이 교회에 정착해서 제 몫을 할 여지가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회 지도자들과 조직이 너무 경직되어 있고 전통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최종 판단이 선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척박한 땅에 남아서 수십 년 뒤를 내다보고 씨를 뿌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땅을 찾아 다시 경작할 것인가?
 
창의적이고 다양한 실험이 필요한 시기
 
지금 한국교회는 다양한 ‘실험’을 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실험이란 다양한 이들이 주도하는 다양한 형식의 교회 개척과 예배 모임 창조를 말한다. 물론 ‘대안적 공동체’라는 동기만으로는 결코 그 모임을 생명력 있게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거기에는 교회의 영광, 거룩함에 대한 소망, 살아 있는 예배, 서로에 대한 헌신, 잃은 자들에 대한 애통함,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공유된 철학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위에 지역을 중심으로 한 교회 개척도 좋고, 특별한 사명과 사역을 전제한 교회 개척도 가능할 것이다. 교회 개척이 어렵다면 속한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임을 만들고 애써야 한다.
 
이러한 실험들에 대해 목회자 그룹, 신학자 그룹은 단단히 대비하고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미 시대적 필요와 요청에 의해 싹이 돋아나고 있다. 성례전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고, 초대교회의 가정교회 예배와 모임에 대한 재구성도 필요하다. 다양한 신앙의 형태 가운데 복음주의적 본질과 기본을 고수하면서도 많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형태가 실험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실험에서 꼭 제안하고 싶은 것은 공동체를 견고하게 붙들고 힘을 공급할 수 있는 나름의 예배모델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이는 젊은 세대의 문화적 특징을 연구하자는 제안이 아니다. 복음이 복음으로 이해되고 작동할 수 있는 원초적 환경에 대한 열린 자세와 창의성과 수용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두세 가정이 매주 모여 예배를 드린들 어떠한가. 겉으로 볼 때는 개신교의 쇠락은 눈에 띄겠으나 숨어 있는 일상 속의 예배자와 예언자들의 모임은 예측불가하지만 다양하게 전개될 것이고 그것이 교회의 본질과 초심을 회복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교회 노마드 신자는 한국교회의 한계와 약함을 드러내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국면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노마드 신자는 늘면 늘었지 당분간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당장 우리 곁의 누군가는 교회에 대한 아픔과 절망 가운데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그 고민의 이유를 돌아보고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자. 아울러 노마드 신자들도 어설픈 영적 유목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듣기 좋은 설교(자)를 찾아다니기를 멈추고, 성경을 함께 공부하고 진솔한 찬양을 함께 부를 영적 동반자를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찾고 만들어가자.
 
자, 당신은 내년에 어느 교회에 속할 것인가?
 
이대귀 편집위원 daegwi@yahoo.com
 
이대귀님은 기독음악인이자 나들목교회에서 6년간 전임으로 음악사역과 기획행정사역을 한 유사 목회자이다. 5살부터 30년 동안 목회자가 될지 고민했으며, 지난 7년간 매 주말 10명 안팎의 지체들과 가정교회 모임을 해 오고 있다. 가정교회를 거쳐간 이들은 30여 명이며 그중 2개의 가정교회가 분가 개척했다. 현재 <많은물소리> 공동편집인이자, 직접 설립한 회사인 킹덤스테이션의 책임프로듀서로서 문화기획에 힘을 쏟고 있다.
 
*이 글은 <복음과 상황 goscon.co.kr>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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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국정원을 후퇴시킨 '원세훈 체제' 4년

'원 주사' 주도 국정원 4년, 'MB홍보처'로 전락하다

 

13.03.28 18:44l최종 업데이트 13.03.28 21:18l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9년 '1·19 개각'을 통해 자신의 최측근인 원세훈 당시 행정안전부장관을 국가정보원장에 내정했다. 서울시에서 잔뼈가 굵은 지방공무원출신이 '4대 권력기관'인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에 오른 것이다.

지난 1998년 안전기획부(안기부)가 국정원으로 개칭한 이후 지방공무원(행정관료) 출신이 국정원장에 발탁된 경우는 원세훈 전 원장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안보나 정보업무와 동떨어진 행정관료출신이 국가정보기관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겠느냐?"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비판에 원세훈 전 원장은 '조직장악'으로 응수했다.

"원세훈 원장은 수 천장의 첩보보고서까지 챙겨서 읽었다"

▲ 국정원은 'S라인'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행정부시장을 지낸 원세훈 행안부장관을 2009년 2월에 국정원장으로 기용한 데 이어, 시장 비서실장을 지낸 목영만 행안부 차관보를 지난해 9월 국정원 기조실장(위 오른쪽)으로 기용함으로써 국정원을 S라인 행정관료들의 손에 맡겼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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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 14회 출신인 원세훈 전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승승장구했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원 전 원장을 서울시 기획예산실장과 경영기획실장, 행정1부시장에 발탁해 '인사'와 '재정'을 맡긴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는 이 전 대통령 'S라인'(서울시 인맥)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이 전 대통령의 중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초대 행정안전부장관에 이어 국정원장에까지 발탁했다. 이 전 대통령이 새 정부 두 번째 개각에서 원세훈 전 원장을 국정원장에 앉힌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새 정부 초대 국정원장으로 중용한 김성호 전 원장이 정권을 위기로 몰고간 촛불집회 등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냈던 김성호 전 원장은 조직장악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원세훈 전 원장은 지난 2009년 2월 국정원장에 취임한 이후 '인사권' 등을 통해 확실한 조직장악에 나섰다. 국정원 한 현직 간부의 증언이다.

"김성호 원장은 검찰출신이어서 국정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국정원에 적응해 조직을 장악할 만하니까 원세훈 원장으로 교체됐다. 원세훈 원장은 직원들을 혹독하게 다스렸다. 잘못했을 때는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몰아세웠다. 원세훈 원장 시절에 파면, 해임 등으로 징계받은 직원들이 제일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인사난맥상'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직 국정원 직원인 A씨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국정원에서 포항세력('영포라인')이 득세하다가 원세훈 원장이 부임하자 (조직내 주류가) 범S라인('서울시 인맥')으로 바뀌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조정관을 했던 L씨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에 갔다가 원세훈 원장이 부임하면서 다시 원에 들어왔다. 그가 원장을 보좌하면서 국정원 인사를 주물렀다. 4~5급이 이렇게 국정원 인사를 주물러서야 되겠나? 인사라는 게 항상 뒷말을 남기게 마련인데 특정인사에 의해 인사가 좌지우지되면 직원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원세훈 전 원장은 조직장악을 위해 6급인사까지 챙겼다. 앞서 언급한 현직 간부는 "원세훈 원장은 6급 인사카드까지 다 가져오라고 해서 그것을 다 외워서 인사를 챙겼다"며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국정원 조직을 완벽하게 장악했다"고 평가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원 주사'다운 조직관리"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인사관리와 함께 '정보관리'에서도 아주 치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장에서 올라 온 요원들의 첩보보고서는 정보분석관들에 의해 '정보보고서'로 작성되고, 이렇게 올라 온 정보보고서는 요약본 형태로 국정원장에게 보고된다. 하지만 원세훈 전 원장은 달랐다. 다시 현직 간부의 증언이다.

"원세훈 원장은 서울시에서 행정부시장을 해봤지 않나? 그래서인지 엄청 꼼꼼하다. 요원들이 첩보보고를 올리면 정보분석관들이 이를 분석해 정보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런데 원세훈 원장은 정보비서관이 올리는 (정보보고서) 요약본 말고 첩보보고서를 가져오라고 하더라. 그게 하루에 수천장인데 그것을 다 읽고 기억했다."

'잃어버린 10년' 보수담론, 국정원의 '종부세력 척결론'으로 이어져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009년 2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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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사관리와 정보관리를 통해 원세훈 전 원장이 한 일은 크게 '종북세력 척결'과 'MB정부 국정홍보'로 요약된다. 전직 직원 A씨는 "원세훈 원장이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종북세력 척결 등 이념문제를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원세훈 지시·강조말씀'('원세훈 지시사항')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한 달에 평균 한 번 열린 '확대부서장회의'(각 부서장과 지역지부장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원세훈 전 원장은 일관되게 '종북세력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 2009년 6월 19일 "아직도 전교조 등 종북좌파단체들이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의 허울 뒤에 숨어 활발히 움직이므로, 국가의 중심에 서서 일한다는 각오로 더욱 분발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는데, 이러한 '종북세력 척결' 주문은 지난 2011년 2월 18일 지시에서 '절정'에 이른다.

"외부의 적인 북한보다 오히려 더 다루기 힘든 문제가 국내 종북좌파들로서, 앞으로 더욱 정부 흔들기를 획책할 것이므로 진행중인 내·수사를 확실히 매듭지어 더 이상 우리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함.

종북세력 척결과 관련,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욱 어려우므로, 확실한 징계를 위해 직원에게 맡기기보다 지부장들이 유관기관장에게 직접 업무를 협조하기 바람."

실제로 원세훈 전 원장 재임 4년 동안 ▲범민련 사건(2009년 5월) ▲환경영화제 개최 방해(2009년 5~6월) ▲공무원노조 사찰(2009년 7월) ▲희망제작소·아름다운가게 사찰 및 후원기업 압박(2009년 9월) ▲MB 풍자한 '삽질공화국' 미술작품 전시 방해(2009년 12월) ▲한국진보연대사건(2010년 6월) ▲6·15청학연대사건(2011년 5월) ▲왕재산 사건(2011년 7월)▲금속노조 사업자 사찰(2011년 10월) ▲전교조와 평통사 압수수색(2012년 1월) ▲방송인 김제동·김미화 사찰 의혹(2012년 4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상자기사 참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군부정권이나 권위주의정권 시절에 내세웠던 '종북세력 척결'에 힘을 쏟은 모습은 이미 행안부장관 때 예고된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흔적 지우기'가 그렇다. 국방·안보분야의 한 전문가는 "원세훈 전 원장이 행안부장관으로 취임하자마자 내린 첫번째 지시가 '노무현 정부에서 사용한 용어를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혁신'이라는 용어였는데 그 지시 이후 부처에서는 '혁신'이라는 용어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원세훈 전 원장은 국정원장 내정 당시 "잘못된 10년을 바로잡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보수진영 담론은 이명박 정부 국정원에서 고스란히 '종북세력 척결론'으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촛불집회'와 '노무현 열풍과 서거'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 '촛불'과 '노무현'은 이명박 정부에 내재해 있던 두 개의 트라우마였다.

국회 정보위 소속 김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촛불집회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심이 흉흉해지자 민간인 유력인사들을 사찰하고, 정부 비판세력을 '종북'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며 "국정원은 앞서서 그런 정국운영을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특히 지난 2008년 5월부터 수개월간 지속된 촛불집회를 정권의 심각한 위기 징후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부활, 국정원의 국내심리전 시작, 검찰의 공안파트 강화, 군의 SNS 등 인터넷 검열 강화 등으로 이어졌다.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국정홍보원으로 이름 바꾸어야"

또한 원세훈 전 원장은 취임한 이후부터 국정홍보에도 주력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한 4대강사업은 원세훈 전 원장이 25차례 확대부서장 회의에서 9차례나 언급할 정도였다.

"4대강 사업이 장마철 이전 마무리되도록 지부장들은 지원에 만전을 기하고, 공사현장의 안전문제 점검."(2011년 2월 18일)
"4대강 그랜드 오픈이 한달여 정도 남았는데, 지역단체․언론 등을 통해 행사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사전 면밀 점검하고, 관계기관에 지원하여 국책사업이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 받도록 할 것."(2011년 9월 16일)

'원세훈 지시사항'을 공개했던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러한 지시는 국정원의 업무영역과는 전혀 관계없다"며 "이런 정도면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국정홍보원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국정원은 지난 2011년 11월 제3차장 산하에서 대북심리전을 맡고 있는 심리정보단을 심리정보국으로 확대·개편했다. 이렇게 조직을 확대한 것은 임기말에 4대강사업, 원전수주, 자원외교 등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홍보방식은 포털사이트와 트위터 등에서 댓글을 다는 것이었다. 원세훈 전 원장은 지난 2012년 1월 27일 "원도 훈수두기식 활동을 탈피 국정성과 홍보확산 실행에 주력"(2012년 1월 27일)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국정홍보조차도 '종북세력 척결론'으로 수렴됐다. 전직 직원인 A씨는 "처음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 홍보에 주력하다가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미명 아래 야당 인사 등에 종북 이미지를 씌우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며 "심리전은 북한을 상대로 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 국민에게 총질하는 격이다"라고 꼬집었다.

이렇게 국정원이 '종북세력 척결'과 '국정홍보'에 주력하면서 정작 대북정보력은 급격하게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종북세력 척결과 국정홍보를 위해 대북정보기능을 축소하고 국내정보 수집기능을 강화하면서 생긴 필연적인 결과였다. 특히 원세훈 전 원장이 취임한 직후 제3차장 산하의 대북전략국을 해체했는데 이는 대북인적정보(대북휴민트)가 무력해진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북한에서 발표하기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사실(2011년 12월 17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무능한 대북정보 수집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여권에서도 "정보 당국의 대북정보 수집력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구상찬 의원), "(국정원의) 정보수집능력이 인터넷 검색수준이다"(윤상현 의원)라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빗발칠 정도였다.

김현 의원은 "원세훈 전 원장은 남북대화를 성사시키지 못한 유일한 국정원장으로 기록될 것이다"라며 "지난 10년간 쌓아온 대북정보와 해외정보 기능을 원점으로 후퇴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원세훈 전 원장은 재임 4년 내내 '국정원장'이 아니라 '원주사'로 활동한 셈이다"라고 꼬집었다.

지난 2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이 작성한 '국가정보원 개혁을 위한 제안서'는 "현재 북한을 상대로 한 휴민트 수집체계는 붕괴했고, 그 이유는 인사농단에 있는 것 같다"며 "정보기관에 대한 정치적 이유의 인사관여가 정보능력을 저하시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정원이 인터넷 여론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점도 특이할 만하다. 지난 2010년 7월 전후 심리정보단(심리전단)에서 작성했다는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국정원은 인터넷 댓글 달기 등이 대북심리전의 일환이라고 주장하지만 여론조작을 통한 국내정치 개입 의혹이 짙다.

'국가정보원 개혁을 위한 제안서' 작성에 참여한 진성준 민주통합당 의원은 "새누리당이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실패한 이후 인터넷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했고, 특히 2012년 SNS 등이 새로운 정치공간으로 떠오르자 이에 기민하게 대응했다"며 "그로 인해 인터넷 공간에는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얘기가 더 많을 정도로 차고 넘쳤는데 국정원에서 벌인 인터넷 심리전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국정원은 정권보위기관이 아니라 국가보위기관이다"

▲ 이명박 시장과 원세훈 부시장 시절 지난 2004년 10월 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자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원세훈 행정1부시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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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원장이 재임한 4년간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은 민주화 이후 출범한 다른 정부 시기보다 심화됐다는 평가가 많다. 이를 이명박 전 대통령의 권력기관 사유화 경향과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진성준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권력을 사유화하는 통치습성을 보여왔는데 지금 원세훈 국정원의 모습은 거기에서 생겨났다"며 "이 전 대통령은 국정원뿐만 아니라 청와대, 총리실, 검찰 등 국가기관을 정권의 사유물로 사용할 정도로 공적 소명의식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진 의원은 "DJ·노무현 정부가 철저하지는 못했지만 국정원을 개혁하기 위해 많이 노력한 결과 노무현 정부에서 주례 독대보고를 포기하고, 국내정치정보를 보고받지 않는 등 (국정원과 권력의 관계가) 많이 정상화됐다"며 "하지만 그것이 이명박 정부에서 역전됐고, 지난해 대선에서 드러난 '인터넷 댓글 공작 의혹'은 그 하일라이트다"라고 지적했다.

전직 직원인 A씨는 "외교를 잘해야 국가의 위상이 바로 서고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 그 외교의 시작은 북한이다"라며 "그런 점에서 국가정보기관의 최우선 업무는 대북문제인데 자꾸 국내정치에 개입하려는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A씨는 "군사정권이 끝나면서 우리는 안기부(국정원)를 '정권보위기관'이 아니라 '국가보위기관'으로 다시 정의했다"며 "내부직원들은 그런 기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지휘부가 정권안보에만 충성심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에 주력한 결과는 국정원 내부조직의 와해와 전직 국정원장의 '퇴임 직후 출국 금지'라는 초유의 사태로 나타났다.

원세훈 국정원 재임기간(2009년-2012년) 일어난 국정원 관련 사건일지
<2009년>

▲대북전략국 해체
2009년 2월 원세훈 원장 취임 직후 3차장 산하의 대북전략국을 해체함. 대북전략국은 남북회담, 남북 비공개접촉, 교류협력을 하던 대북전략 파트였음. 대북전략국 해체는 대북 인적정보(휴민트)가 무력해진 원인 중의 하나로 꼽힘.

▲ 4대강 지역 주민 대책위 회유
2009년 5월 4일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해 충남 부여군 세도면 대책위가 정부 과천 청사 항의방문을 결정한 직후, 국정원 직원이 대책위 관계자에게 연락해 "그렇게 하면 밉보일 수 있다"며 압력을 행사함.

▲ 범민련 사건
2009년 5월 7일 이규재 의장을 비롯한 범민련 남측본부와 지역연합의 전.현직 간부와 활동가 등 16명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6명을 구속함. 재판과정에서 국정원에 의해 패킷감청이 이루어진 것은 물론 과도한 감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남.

▲ 노무현 전 대통령 기소 관여 의혹
2009년 5월 7일자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원세훈 국정원장이 검찰 고위관계자에게 극비리에 국정원 직원을 보냈고, 이 직원은 "국정원장의 뜻"이라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말고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신병처리를 마무리 짓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발언함.

▲ 환경영화제 개최 방해 의혹
2009년 5~6월 환경부와 서울시가 2004년부터 매년 환경영화제에 2억여 원씩을 지원해왔는데, 국정원 조정관이 서울시 담당 본부장에게 전화해 지원금을 보류시켰다는 주장이 환경재단 관계자들로부터 나옴.

▲ 공무원노동조합 사찰
2009년 7월 국정원이 양천구청에 양성윤 당시 통합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후보를 징계하라고 압력을 넣음.

▲ 인사청문회 정보제공자 색출
2009년 7월 2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천 후보자의 부부동반 해외 골프여행 출입국 기록, 후보자 부인의 명품 구매목록 등을 폭로한 것과 관련해 국정원이 관세청 직원들을 상대로 제보자 색출 작업을 벌였다고 주장함.

▲ 희망제작소·아름다운가게 사찰 및 후원기업 압박
2009년 9월 17일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이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가게를 사찰하고 후원기업들을 압박했다고 폭로함.

▲ 민간기업 압박
2009년 10월 19일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를 둘러싸고 포스코 측과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는 오종택 인선ENT(주) 회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포스코와 싸우느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함.

▲ MB 풍자한 '삽질공화국' 미술작품 전시 방해
2009년 12월 3일 국정원 광주지부 직원이 광주시 문화예술 부서와 5.18 기념 문화관 대관부서에 전화를 걸어 5.18 기념문화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대통령을 풍자한 '삽질공화국' 작품과 관련 시의 견해를 물었고, 이후 광주시가 작품의 전시가 전시장 설치 목적에 어긋나고 공공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며 주최 측에 철거 요구함.

<2010년>
▲ 세종시 대책위 회유
2010년 1월 초 국정원 직원이 임장철 연기군의원을 비롯한 면장, 농협조합장 등을 만나 "아무리 지역주민들이 세종시 원안을 주장해도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까지 표명했기 때문에 원안이 수정될 것", "원하는게 뭐냐, 필요한 게 있으면 다 주겠다"면서 원안 수정에 찬성해줄 것을 요청함.

▲ 조계사에 압력 넣어 문화행사 무산
2010년 1월 28일 국정원 직원이 조계사에 압력을 행사해 조계사 경내에서 열릴 예정이던 '바보들 사랑을 쌓다' 행사가 무산됨. 행사 직전 국정원 직원이 전화를 걸어 "반정부적인 정치집회가 조계사에서 열린다, 총무원장 스님이 방북도 하는데 이런 정치집회는 종단에 누가 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전한 직후 행사가 불허됨.

▲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 사찰 의혹
2010년 5월 4일 서울 명동의 한 호텔 앞에서 방한한 프랑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을 몰래 촬영하던 사람들이 탄 승용차가 목격. 이후 이 차량이 국정원 소유부지의 공터에 주소를 둔 유령회사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정원 사찰의혹으로 번졌음.

▲ 탈북자 위장 간첩 김미화 사건
2010년 5월 23일 국정원은 지하철 기밀 등을 빼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보고해온 여성 공작원 김미화와 그 공범을 구속했다고 발표함.

▲ 한국진보연대 사건
2010년 6월 29일 국정원은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등 3인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3명을 체포함. 1심 재판에서는 3명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었고, 2심에서도 1심판결이 확정.

▲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 사찰
2010년 8월 16일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 한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국제회의 위탁운영업체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 자신의 부인을 사찰했다고 주장함.

▲ 탈북자 출신 기자 사찰
월간 <신동아> 2010년 11월호는 김정은 후계논의, 화폐개혁 등 다수의 북한발 특종기사를 썼던 최선영 <연합뉴스> 기자를 2010년 5월~7월 국정원이 사찰했다고 보도함.

<2011년>
▲ 불교계 인사 압력행사 의혹
2011년 3월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주지였던 명진 스님이 자신의 봉은사 퇴출에 원세훈 국정원장이 개입했다고 주장함.

▲ 인도네시아 특사단 상대 정보수집 실패
2011년 3월 16일 국정원 직원들이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이 머물고 있던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숙소에 침입해 노트북을 뒤지다 발각되어 절도 등의 혐의로 경찰에 신고됨.

▲ 6·15청학연대 사건
2011년 5월 6·15청학연대 활동 건으로 국정원이 단체관계자 14명을 압수수색하고 그 가운데 4명을 체포했으나 구속영장이 기각됨.

▲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찰 의혹
2011년 6월 2일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세종시 문제로 파란을 겪은 후 2009년 4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사찰하기 위한 팀이 약 20명 인원으로 국정원 안에 꾸려졌고, 이아무개 팀장의 지휘 아래 4월~7월 사이 박 전 대표를 집중 사찰했다"며 '박근혜 사찰' 의혹을 제기함.

▲ 왕재산 사건
2011년 7월 반국가단체구성 혐의 등으로 이른바 왕재산 조직의 총책임자를 체포하고 조직원들을 압수수색함.

▲ 금속노조 사업장 사찰
2011년 10월 7일 경북 구미의 반도체업체 KEC노조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 당시 국정원이 노조 동향을 사찰해왔음을 드러내는 회사 측 문건을 폭로함.

▲ 국정원 심리정보단->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
2011년 11월 국정원 심리전단이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함. 심리정보국 산하 4개팀에서 70여명이 인터넷 댓글 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을 받음.

▲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시기 정보획득 실패
2011년 12월 20일 긴급 소집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발표 전에 김 위원장 사망사실을 몰랐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원세훈 원장이 "몰랐다"고 답변함.

<2012년>
▲ 전교조 사건
2012년 1월 지난 2003년부터 진행해온 남북교육자교육협력사업 과정에서 북측 인사를 만난 혐의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4명의 자택과 학교를 압수수색함

▲ 장자연 사건 개입 의혹
2012년 1월 12일 이상호 MBC 기자가 모바일 전용방송 <손바닥TV>를 통해 "고 장자연씨의 전 매니저 유장호 씨와 청와대, 국정원 간에 교류가 있었다"고 주장함.

▲ 평통사 사건
2012년 2월 '평화와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사무실을 국정원이 압수수색함. 국정원은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기 등 평통사의 주장이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라고 판단함.

▲ 방송인 김재동씨 사찰 의혹
2012년 4월 3일 방송인 김재동씨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둔 2010년 5월께 국가정보원 직원의 요청으로 두번 만난 일이 있다"며 그 직원이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추모 콘서트 사회를 본다는 게 사실이냐, 왜 그것을 굳이 당신이 해야 하느냐, 당신 아닌 다른 사람도 많지 않으냐"며 콘서트 사회를 보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로함.

▲ 방송인 김미화씨 사찰 의혹
2012년 4월 4일 방송인 김미화씨가 "지난 2010년 5월, 국정원 직원이 팬이라며 찾아왔다"며 "얼마 뒤 제 집까지 찾아온 국정원 요원은 '청와대와 국정원 윗분들이 김미화 씨가 노무현 정부를 지지하는 태도를 보여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을 했다"며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불법 사찰 정황을 폭로함.

▲ 탈북자 위장 간첩 이OO 사건
2012년 6월 1일 국정원은 2011년 말 태국에서 국내로 입국한 탈북자 이아무개씨(46)가 위장 탈북한 보위부 소속 공작원인 사실을 확인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함.

▲ 국정원 직원 인터넷 댓글 공작 의혹
2012년 8~12월 국정원 여직원 김아무개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업무가 발각되기 전인 12월 11일까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정부·여당에 유리한 글을 작성하고, 같은 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글에 찬성·반대 표시를 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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