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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저격수'였던 강용석 행보가 우려스러운 이유

[하성태의 사이드뷰] 고인까지 수익 창출에 활용하는 <가로세로연구소>

20.07.11 13:55최종업데이트20.07.11 13:55
"문재인 정권 차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과 관련해 무언가 숨기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닌가…."

10일 새벽, 경찰이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수습한 뒤 개최한 현장 브리핑에서 어느 보수 성향 유튜버가 던진 질문이다. 기자들 사이에 자리 잡은 이들은 "(박 시장이) 떨어진 건가요?"라는 등의 패륜적인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시장의 실종에 대한 가짜뉴스와 루머가 온라인상을 뒤덮고, 일부 매체마저 검증되지 않은 오보를 쏟아내던 시점이었다.
 
 10일 오전 북악산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구급차량이 응급의료센터앞에 도착해 있다.

▲ 10일 오전 북악산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구급차량이 응급의료센터앞에 도착해 있다. ⓒ 연합뉴스

 
같은 시각, 인터넷 포털과 소셜 미디어상에서는 서울대병원 앞에 몰려든 취재진을 포착한 사진뉴스가 관심을 끌었다. 일각에선 경찰의 수색 작업이 진행되던 와중에 서울대병원으로 몰려든 취재진의 과도한 보도경쟁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여기에 보수 유튜버들도 혼란을 가중시켰다.

"자정 무렵 서울대병원에 몰려든 유튜버들. 박원순 시장과 전혀 상관없는 구급차인데도 일단 카메라부터 들이댑니다. 앞서 밤 9시쯤 '속보'라는 제목을 달고 '박 시장이 이미 DOA, 도착 전 사망 상태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가짜 뉴스가 온라인에 퍼지면서 유튜버들이 병원으로 몰려온 겁니다(...). 월간 조선을 비롯한 각종 매체들은 확인도 없이 '속보'라며 줄줄이 오보를 냈습니다.

비슷한 시각, 서울지방경찰청의 간부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시신을 찾았냐는 질문에 "찾았다" 라고 답하는 대화 내용도 메신저를 통해 퍼졌고, 반대로 '무사하다고 합니다'라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도 함께 유포됐습니다. 심지어 일부 유튜버들은 고인에 대해 추측과 모욕성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습니다." (10일 MBC <뉴스데스크>, <수색 중인데 "사망"…가짜 뉴스에 2차 가해까지> 리포트 중)


이날 지상파 및 종편4사 메인뉴스 중 이런 유튜버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태를 지적한 곳은 MBC <뉴스데스크>와 JTBC <뉴스룸> 뿐이었다. 그러나 이 두 방송사가 언급하지 않은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강용석 변호사가 이끄는 <가로세로연구소>였다.

<가로세로연구소>의 부도덕한 수익 창출

 
는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를 카메라에 담았다." style="letter-spacing: -0.025em; word-break: break-all; margin: 0px; padding: 0px; border: 0px; outline: 0px; vertical-align: baseline; background: transparent; max-width: 100%;">

▲ <가로세로연구소>는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를 카메라에 담았다. ⓒ 가로세로연구소유튜브

 
"최고 일간지 취재기자에게 들은 바로는,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에요." (김용호)
"고소장에도 한 명이 아닌 거예요?" (강용석)
"추가적으로 (피해자들의) 고소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황인 거예요." (김용호)


검증되지 않은 추측이 난무한다. 검은 옷을 맞춰 입은 네 남자가 주절주절 의미 없는 말들을 이어간다. 자신들이 늘어놓은 추측에 본인들이 감탄을 연발하고, 가끔씩   조소도 터트린다.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 <가로세로연구소>의 '현장출동 박원순 사망 장소의 모습!!!'의 내용이다.

<가로세로연구소>는 10일 오후 박 시장이 마지막으로 찾았다는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를 카메라에 담는 무의미한 영상을 제작했다. 일각에선 비난이 쇄도했지만, 이 영상의 조회 수는 11일 오전 10시 현재 17만을 넘어선 상태다.

50여 분간 이어진 이 영상에서 어떤 유의미한 내용을 찾을 수는 없었다. 왜곡과 허위도 난무했다. 서울성곽 길을 걷던 강 변호사가 "서울성곽 복원 사업이 박 시장의 역점 사업 중 하나"라고 소개하자, 김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출입기자여서 아는데, 이걸 처음 추진한 사람이 유인촌 장관"이라고 받은 장면이 대표적이었다.

이른바 '도성놀이'란 서울 성곽길 사업은 한 시민단체가 진행해 오던 민간 사업이었고, 박 시장은 취임 이후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에 참여하는 등 해당 사업을 관심 있게 지원했다. 과거 언론보도 확인 결과, 유인촌 전 장관의 경우엔 숭례문 화재 이후 기자들과 성곽 길을 둘러본 것이 전부였다.

'박원순 저격수'였던 강용석의 과거

강 변호사는 이날 서울시 부시장 등 서울시 직원 3명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방조죄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가로세로연구소>측은 경찰이 박 시장의 사망으로 '성추행 혐의' 피소 사건을 수사 종결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반발했다. 

과연 강 변호사가 박 시장의 극단적인 선택 자체를 2차 가해라 받아들이는 이들을 위해, 성추행 고소인을 위해 이런 고발을 벌였는지는 의문이다.

강 변호사가 박 시장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것이 지난 2011년. 강 변호사는 박 시장 아들의 척추 공개 검진 등 해명 이후 의혹 제기 책임을 지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당시 새누리당 한 의원은 강 변호사의 의혹 제기가 허위로 드러난 것과 의원직 사퇴와 관련해 이런 쓴 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박 시장 아들 병역기피 의혹이 허구로 드러남에 따라 강 의원이 제기해온 다른 주장들의 신뢰성도 모두 한방에 날아갔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법적, 도덕적, 정치적으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 의원직 사퇴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진정 사과한다면 정치를 접어야 할 것(이다)." (<한겨레> 2012년 2월 22일, <무책임 폭로 강용석 사퇴> 중)

이후 강 변호사는 사퇴 선언을 되돌리며 재선 출마를 선언했고, '폭로왕'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박 시장 아들 의혹을 재차 물고 늘어졌다. 이러한 박 시장과의 악연은 이후 수년 간 지속됐다.

1차 의혹제기 때와 달리 2015년 강 변호사의 2차 의혹 제기에 박 시장 측은 "부당하고 야만적인 공격을 바탕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태도"로 규정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수단으로 대응에 나섰다. 강 변호사와 의혹 제기자들을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듬해 2월 법원은 의혹을 제기한 이들에게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 위반 혐의 등으로 벌금형 등 유죄를 선고했다. 그럼에도 강 변호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박원순 저격수'로서 언행을 이어갔다.

강 변호사가 서울시 공무원들을 고발하고 나선 것이 과연 박 시장의 '성추행 혐의' 피소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강 변호사나 <가로세로연구소> 출연자들이 사생활 문제로 경찰 수사 중이라거나 실형을 선고받았던 과거는 둘째 문제다.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박 시장의 마지막 행적이라 알려진 장소에 찾아가 실시간 방송으로 수익 활동에 나선 <가로세로연구소>의 행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 하나, 보수극우 유튜버 중 수퍼챗(콘텐츠 구매 플랫폼) 등으로 압도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는 <가로세로연구소>의 이러한 '박 시장 저격'은 서울대병원으로 몰려갔던 또 다른 보수 유튜버들에게 일종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지점은 고인까지 수익 창출에 활용하는 <가로세로연구소>와 강 변호사, 그리고 보수극우 유튜버들의 이러한 행태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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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유언이 된 한마디, “입에 말아 넣으시오”

아버지의 뜻을 함께 이어가겠습니다
안영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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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1  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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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민 / 안재구 선생 유족 대표, 전 <민족 21> 대표

 

   
▲ 지난 9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통일애국지사 고 안재구 선생 민주사회장’에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는 안재구 선생의 차남 영민 씨. [통일뉴스 자료사진]

 

                                       1.

“영민아, 아버지가 드디어 말씀을 하셨다.”

“그래? 뭐라고 하시던데? 누나를 알아보셨어?”

“아니, 알아보시지는 못하는데…, 내 손을 잡고 손에다 뭘 쥐어주는 것처럼 하시더니 ‘입에 말아 넣으시오’ 이렇게 말씀하셨어.”

작은누나(소영)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가보았습니다. 여전히 천정만 응시한 채 아무 말씀 없이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뵙고, “아버지, 저 영민입니다. 알아보시겠어요?”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를 흘낏 보시더니 다시 천정만 바라보셨습니다.

“아까 그 한마디 하시고는 다시 입을 꾹 다무셨다.”

6월 4일 밤늦게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산소포화도가 50대로 떨어져 빨리 응급실로 모셔야겠다고 했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오신 아버지를 100일 만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난 1월 13일 요양원으로 가셨는데, 2월 말부터 코로나로 면회가 금지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요양원에서 식사를 잘 못 하신다는데 어찌 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100일 만에 만난 아버지는 많이 여윈 모습에 기력도 쇠하셔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급히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바로 중환자실로 이동했습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2주간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가며 투쟁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호흡기를 떼고 일반병실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병실에서는 거동도 못하고 식사도 코줄로 공급받으며 누워계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호흡도 맥박도 혈압도 모두 정상수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아무런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눈을 감고 있거나 천정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자식들도 못 알아보고, 말을 걸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답답한 제가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드리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설명을 해드렸는데, 그때 갑자기 저를 날카롭게 노려보곤 다시 천정만 바라보았습니다. 또 누군가 곁에 오면 항상 손을 꽉 쥐고 계셨고, 팔다리에도 힘을 주고 버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 작은누나가 아버지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아버지가 쓰신 책도 읽어드리고, 라디오에서 클래식 방송도 들려드리곤 했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었습니다. 다만 책에 나오는 어린 시절 할배들의 이야기를 읽어드리니 한 번씩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그러길 여러 차례, 마침내 아버지가 입을 여신 겁니다. 그 한마디가 바로 “입에 말아 넣으시오”였던 것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저는 아버지가 처한 상황, 현재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생사를 걸고 지난한 투쟁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병실은 끌려온 취조실이었고, 아버지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하던 저는 취조하는 수사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묵비하고, 천정만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던 누나를, 어렵게 연락선을 갖고 면회 온 동지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손에 꼭 쥐고 있던 문서를 건네주며 “입에 말아 넣으시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쓰신 회고록 <끝나지 않은 길>을 보면 1948년 2.7 구국투쟁 후 모든 투쟁이 비합법화되고, 모든 조직이 지하로 들어가던 시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남로당 밀양군당의 연락책으로 활동하던 아버지는 군당의 연락문서를 들고 아지트를 찾아갔지만 이미 그곳은 적들의 침탈로 풍비박산이 난 상황이었습니다. 어렵게 찾아낸 마지막 비선도 끊어진 상황에서 아버지는 홀로 산속을 헤매게 됩니다. 결국 아버지는 자신이 갖고 있던 문서를 입에 말아 넣어 씹어 삼키고, 갖고 있던 총도 계곡물에 던져버린 뒤 살길을 찾아 나섭니다. 절절하게 묘사되는 그 대목이 아버지의 오늘이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는 현재가 바로 그 참담한 날들의 순간순간이었던 것입니다.

                                      2.

아버지의 기억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였습니다. 기억은 현재를 기점으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기억이 비연속적으로 사라지더니 어느 때부터는 구국전위 사건을 기억 못하셨습니다. 최근 20~30년의 기억 중에는 2005년 아리랑 참관단으로 많은 분들과 함께 평양에 간 기억이 유일하게 남았습니다. 평양 방문 이야기를 꺼내면 당시의 장면을 생생하게 꺼내시곤 했습니다.

그러다 남민전 사건의 기억에 한참 머무르며 이재문 선생님을 그리워하셨고, 인혁당 사건의 여정남 열사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기도 하셨습니다. 또 경북대 수학과 은사인 박정기 총장님을 찾아뵈어야겠다고 하셨다가 1960년대 경북대 수학교실의 세미나 수업 속에 한참을 머무르기도 하셨습니다. 그랬던 기억이 다시 거슬러 올라가 해방 정국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평생을 살아오시면서 아버지께 가장 강렬한 기억은 아마도 감옥살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 집 곁으로 새로 이사 오신 다음에는 그 집을 감옥이라고 여기셨고,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제게 “당장 보안과장을 불러오라”고 호통도 치셨습니다. 식사를 챙겨서 가면 제가 취사장의 소지를 통해 밥을 받아오는 거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다 한 번씩 바깥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새로운 곳으로 이감 왔다고 여기셨는지 집안 곳곳을 둘러보더니 “그래, 또 한번 살아보는 거지”하며 껄껄 웃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4년을 지내시다 새로 가게 된 요양원도 교도소 병사라고 여기셨다고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요양원 이사장께 불호령을 내리곤 하셨답니다.

그랬던 아버지이기에 생의 마지막도 끝내 투쟁이었던 것입니다. 조직을 지키고,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만 하는 마지막 저항의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조직선을 만나고, 그 사람의 손에 문서를 전달해주신 아버지는 전과는 다르게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누나에게 첫 마디를 건네고 며칠 후, 퇴원을 하루 앞둔 날에 아버지는 저와 형에게도 처음으로 말을 건넸습니다. “오랜 만이구나, 별일 없지?”라고.

퇴원을 하고 예전 요양원으로 다시 가신 날, 아버지는 한결 마음이 편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살아온 생을 알고 있던, 그래서 더욱 각별히 아버지를 챙겨드렸던 요양원의 직원들도 따뜻하게 반겨주었습니다. 하모니카로 연주해주는 고향의 봄을 들을 때도, “안재구 교수님!”하고 부를 때도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이발도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밤에 주무시다가 7월 8일 새벽 4시 30분 심정지로 기나긴 전사의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당신의 임무를 모두 마치고 마침내 편안한 마음으로 떠나신 것입니다. 당신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주셨던 분을 따라가시기라도 하듯 바로 7월 8일, 그렇게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거두셨습니다.

                                       3.

   
▲ 안재구 선생이 영면해 있는 묘소. [사진제공-안영민]

아버지께서 생사를 다투며 중환자실에 계실 때, 권낙기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서운하게 듣지는 마라. 통혁당, 인혁당, 남민전, 이렇게 내려오는 우리 운동의 전통이란 게 있다. 아버지 장례 문제는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니 우리 동지들이 생각을 하고 있겠다.”

범민련의 원진욱 사무처장도 제게 전화를 해서 “만약 큰일을 치러야 한다면 실무적인 건 후배들이 잘 할 테니 선배님은 염려마세요”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7월 8일 새벽에 연락을 받고 뛰쳐나가는데 머릿속만 하얘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일단 미리부터 생각해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잡아놓고 이동하는데 남민전 출신의 김경중 선배께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가 생전에 서울두레생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셨는데, 장례 실무적인 부분은 두레생협에서 맡겠다고 하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직 빈소도 꾸려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급히 서울대로 달려오신 권낙기 선생님이 장례위원회 구성 논의를 바로 진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첫날 오후에 남민전 동지회와 범민련, 진보연대 등 많은 통일사회단체가 참여해 장례위원회 구성을 위한 회의가 열렸고, ‘통일애국지사 고 안재구 선생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유족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한 일이며, 그 덕분에 저희 가족은 문상 오신 분들을 예를 갖춰 맞이하는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조문 오셨습니다. 아버지와 생전에 조직적인 인연을 맺고 함께 활동한 분들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참 많은 분들이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또 많은 곳에서 빈소와 복도를 가득 채우고 남을 정도로 조화와 조기를 보내주셨습니다. 저희 가족에게는 장례 기간 내내 큰 힘이 되었습니다.

7월 9일 오후 7시30분 열린 추모식에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추모사를 해주신 남민전 동지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님, 아버지에게는 마음의 터전이었던 범민련의 이규재 의장님, 1980~90년대부터 함께 투쟁했던 한국진보연대 한충목 상임대표님, 그리고 아버지뿐만 아니라 저희 가족 모두에게 항상 큰 힘이 되어주셨던 양심수후원회 권오헌 선생님의 귀한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작사작곡한 노래 <철창 안의 봄>을 불러준 희망새와 아버지의 삶을 춤으로 표현해준 이삼헌 선생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호상 역할을 해주신 아버지의 중학교 후배인 인혁당 사건의 박중기 추모연대 의장님과 아버지와 함께 감옥살이를 하셨고, 아버지께 싫은 소리도 마다 않으셨던 통혁당 재건위 사건의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7월 10일 오전 6시 발인을 마치고 수원 연화장을 거쳐 밀양의 선영으로 내려가는데 아침부터 밀양에 폭우가 내린다는 소식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도착할 무렵 비가 그치기 시작하더니 하관과 추모식을 마치니 해가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대구경북지역과 부산경남지역, 또 고향인 밀양지역에서 많은 분들이 마지막 배웅을 위해 모였습니다.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를 따랐던 후배 동지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는 길이어서 아버지 마음도 정말 푸근했을 것입니다. 마치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상징하듯이 추모식을 끝내니 숲에서 새가 한 마리 푸드득 날아올랐습니다. 그 순간 하나하나가 제게는 너무나 뜻 깊었고,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남은 일들을 정리하는데, 참으로 많은 분들이 정성을 보내주셨더군요. 장례식 비용을 모두 지불하고도 꽤 많은 금액의 돈이 남았습니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분들의 마음들이 하나로 모인 것인 만큼 주위 분들과 잘 상의해 ‘통일애국지사 안재구 선생’을 기억하고, 아버지의 뜻을 잇는 일에 귀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저희 가족들에게 큰 힘을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들 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버지는 저희 가족에게도, 또 이 땅의 자주와 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 기억됨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겠습니다.

2020년 7월 11일

안재구 선생 유족을 대표하여

아들 영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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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해랑 | 기사입력 2020/07/1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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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이음이 월간 '민족과 통일' 7월호를 발간했다. 

우리사회와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21대 국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1대 국회가 개원되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요구에 시간을 더 이상 허비할 수 없다며 법사위를 포함하여 6개 상임위 의장을 선출하였다. 나머지도 미래통합당이 계속 시간을 끌 경우 모두 민주당 의원으로 선출하겠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미래통합당은 폭거라고 규정한 뒤 주호영 원내대표가 절로 들어가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국회로 돌아오라고 설득하러 간 상황이다.

 

우리에게 국회는 무엇인가? 현행 헌법으로는 유일하게 입법권이 있는 국가기관이고,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역시 유일하게 개헌 발의권이 있는 조직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하여 사법부에 대한 탄핵권을 유일하게 갖고 있다. 물론 탄핵은 헌법재판소를 거쳐야만 완결되지만 일단 탄핵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은 국회가 유일하다.

 

그런데 이러한 국회가 여론 조사 때마다 국민들의 지지도가 하위권에 맴도는 국가기관이 되어 있다. 국회 하면 사람들은 자기들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고, 싸움만 하고, 놀면서도 거액의 세비만 축내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것이 국민들의 정치허무주의로 귀결되고는 한다.

 

국회에 대하여 이렇듯 국민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적폐세력이었던 현재의 미래통합당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제 미통당이 아주 소수로 움츠러들었으므로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는 이제 21대 국회가 시작되었으니 좀 더 기다려 보자는 결론으로 이끌어진다. 물론 더불어민주당과 진보개혁적인 정당들이 200석 가까이 의석을 갖게 된 21대 국회는 이전 국회와는 달리 기대할 것이 있다. 그러나 그 기대가 국회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라고 기다리면서 기대하는 것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불과 몇 년 전의 탄핵 정국을 생각해 보자. 당시에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박근혜의 탄핵에 앞장섰던가? 그들은 지극히 소심한 상태로 우왕좌왕하다가 촛불시민의 압력에 못 이겨 탄핵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덩달아서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분열하여 탄핵진영에 가담함으로써 탄핵이 기정사실화되었던 것이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우리가 다 몸소 겪었던 이런 일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국회는, 아니 정부 여당은 적폐청산과 진보개혁을 위해서 스스로 알아서 앞장서서 나갈 집단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국회를 만들어야 하는가? 또 다른 정치세력이 필요한 것인가?     

 

물론 또 다른 정치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국회나 정부여당을 도외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 다른 정치세력이라 하더라도 국회나 정부여당과 연대와 견제의 긴장 관계에 있어야 한다. 또 다른 국회라는 것은 구상 속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지금 여기서 다루어야 할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은 21대 국회에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고, 계속 압박해야 한다. 그냥 알아서 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되고, 국회를 부정한다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우리의 변혁운동은 1987년 이후 헌법 절차를 인정하는 가운데 진행되어 왔다. 그것은 개량주의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해 보라.

 

분단의 상태에서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이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고, 친일잔재세력만이 아니라 이후 육성된 친미세력까지 더해져 이 땅을 막강한 물리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수 국민을 결집하여 저들의 물리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통하여 전 세계 민주인권평화세력의 호응을 유도해 내는 일이어야 한다.

 

헌법 절차를 국민의 압박에 의해 제대로 진행되도록 하게 만드는 변혁의 로드맵은 어느 누구 탁월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집단지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현명한 것이었다. 그 결과 6월 민주항쟁에서 직선제를 이루어냈지만 그 결과는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었다. 하지만 이후 우리는 그때의 성과를 바탕으로 진전해 왔다.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강고하게 국가권력의 일부를 붙들고 있는 적폐세력을 헌법적 절차에 따라 무력화시키는 일이어야 한다. 그 대상은 일차적으로 검찰, 사법부 등의 헌법기관들이다. 이들을 헌법에 따라, 법 절차에 따라 개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현행 헌법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국회이다. 국회의 입법권이 공수처 설치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국회만이 사법농단의 판사를 탄핵할 수 있다.

 

국회의 입법권은 헌법기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을 개혁하고, 친일 잔재를 청산하는 데도 가장 유력한 방법이 법을 만드는 것이다. 가짜 뉴스를 남발하는 친일친미수구언론을 응징하는 법을 만들어야 하고, 국립묘지에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친일파의 묘를 이장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법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친일을 옹호하고 찬양하는 것에 대해 합법적으로 응징할 수 있게 입법해야 한다.

 

지난 70여 년 동안의 비극적인 민간인 학살이라든가, 518광주민중항쟁에서 있었던 학살, 세월호 참사 등의 진실 등을 밝혀내는 것도 국회의 입법권이 제대로 발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자주 평화를 위한 제도적 마련 역시 국회에서 입법이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앞에서도 강조하였듯이 국회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맡겨 두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들이다. 국회를 끊임없이 압박하는 국민들의 투쟁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진보진영은 여전히 헌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국회는 무엇보다도 국회 자신을 개혁해야 한다. 다른 헌법기관에만 적용하고 자신들에게는 없는 소환제를 반드시 입법해야 한다. 나아가서 입법권의 독점도 해제하고, 국민들에게 발안권을 주는 개헌도 단행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결국 이 글의 제목은 ‘21대 국회 무엇을 해야 하나’가 아니라 ‘21대 국회에 무엇을 하도록 해야 하나’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꾸어야 한다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한발 한발 전진해온 민족민주운동의 침로에 따라 지금 이 순간 바로 앞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거기에서 국회에 해야 할 일을 제시하고 압박하는 일, 너무나도 중요하고 긴급한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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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폭탄’ 123명에게만 던진 정부

종부세 최고세율 6%로 인상, 양도세·취득세 강화…잠긴 주택 매물화 효과는 적을 듯

홍민철·조한무 기자
발행 2020-07-10 21:00:47
수정 2020-07-10 21: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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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2배로 상향하고, 단기 주택매매시 물어야하는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한편, 다주택자의 추가 주택 취득에 세금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10일 내놨다.

“다주택자의 투기성 주택 보유자에 대한 부담을 강화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부합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강화된 부담이 “집값을 낮춰달라”는 국민들 요구에도 부합할 지는 미지수다.

오른 세금에 부담을 느낀 소수 다주택자·법인 보유분이 매물로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집값하락을 가져올 수준의 공급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번에 대폭 강화된 종부세 최고세율 6%를 적용받는 주택투기꾼은 불과 123명에 불과하다.(2018 국세통계,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현황Ⅱ, 과세표준 94억 초과 대상자 기준)

한강변 아파트, 자료사진
한강변 아파트, 자료사진ⓒ김슬찬 기자

강화된 종부세, 정말 ‘세금 폭탄’인가?

 

주택을 수십억원 어치씩 가진 사람, 혹은 법인에겐 폭탄이 될 수 있다. 세금이 적게는 2배, 많게는 6배까지 폭등한다. 
주택을 세 채 이상 가졌거나 두 채라도 정부의 규제대상 지역(서울, 수도권 대부분, 세종 등)에 있는 사람 세금이 2배 가까이 증가한다.

특히 보유주택 가격 합계가 시세로 15억원 이상인 사람들 세금은 2배 이상 늘어난다. 시세로 시가 45억원, 서울에 15억원짜리 아파트 세 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종부세는 종전 2,300만원에서 5,900만원으로 2.5배 늘어난다.

법인에 대한 종부세 강화는 징벌적 수준이다. 법인이 종부세 납부에 해당하는 주택을 가지고 있다면 당장 팔라고 정부가 요구한 셈이다.

법인이 3주택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 최고세율 6%가 무조건 적용된다. 공제 금액도 없앴다. 앞서 예로든 15억원짜리 아파트 세 채를 개인이 아닌 법인이 가지고 있다면 종전 종부세는 2,300만원으로 동일했지만, 법이 개정되고 난 뒤에는 1억3,700만원으로 5배 이상 급증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최근, 법인의 주택 소유가 꾸준히 늘어 문제였는데, 그 부분은 확실하게 대책이 됐다고 본다. 중요한 사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세금 폭탄’을 맞는 투기꾼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2018년을 기준으로 보면, 이번에 대폭 오른 종부세 최고세율 6%를 적용받는 사람은 5천만 인구 중, 123명에 불과하다. 123만명도, 1만2300명도 아닌 123명이다. 종부세율은 최고세율 뿐 아니라 나머지 세율도 조금씩 올라가는데, 납부 인원 자체가 전체 인구의 1%(51만명) 밖에 안된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초저금리 시대에 거대한 자금이 풀려있다. 사람들은 유동성에 기대 불나방 처럼 부동산에 뛰어드는데, 타겟을 종부세 대상자들에게 한정했다. 시장 상황을 오판한 정책”이라며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재산세 인상 방안이 빠진 것은 중대한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2년만 더 버티면 되는 양도세 인상
취득세는 대폭 늘어나

정부는 ‘초단기 주택 투기’에 적용하는 양도세를 인상했다. 산지 1년도 안된 주택을 다시 팔면 시세차액의 70%를 세금으로 거둬들인다. 5억원 아파트를 샀다가 1년도 안돼 6억원에 팔면 단순 계산으로 시세차익이 1억원인데, 애초 4천만원을 세금으로 거뒀다면, 앞으론 7천만원을 걷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1년 더 버텨 2년 뒤에 팔면 세금이 1천만원 떨어져 6천만원이 되고, 3년을 버티고 나면 기본세율로 돌아간다. 시세차익 1억원에 기본세율을 적용하면 2천400만원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누진공제 금액 522만원을 빼줘 1900만원대로 떨어진다. 각종 공제를 더 빼고 나면 세금은 훨씬 더 줄어든다.

최은영 소장은 “오래 버티면 시세차익에 적용하는 세금이 80% 이상 줄어드는데, (대책에)깊은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적어도 고가 주택에 적용되는 장기보유 특별공제는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취득세는 대폭 상향됐다. 3주택 이상 개인이나 법인은 매입가격의 12%에 달하는 취득세를 내야 한다.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면 기존에는 3천만원을 취득세로 냈는데, 이제는 4배인 1억2천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취득세를 감안하면 다주택자나 법인의 추가 주택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대폭 축소된다. 역대 최고 수준으로, ‘3주택 이상 개인과 법인은 추가로 주택을 사지 말거나, 갖고 있는 주택을 팔라’는 뜻이다.

임대주택사업자 혜택 파격 축소는 없었다

임대주택사업자에 주어지는 혜택은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최고 실정으로 꼽히는 정책에서 ‘질서있는 퇴각’을 추진한다. 시민사회가 요구했던 ‘혜택 즉각 축소’ 요구는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임대주택은 단기(4년)와 장기(8년)으로 구분되는데, 단기 임대 기간이 끝나면 장기로의 전환을 금지하고, 신규 단기 임대 등록을 차단한다. 장기 임대도 기간이 끝나면 자동 등록 말소된다. 이렇게 말소되는 임대사업자의 아파트 물량은 올해 말 12만호 가량 될 것이라고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소급 적용’ 논란을 의식한 기색이 역력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 소멸할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라고 답한 꼴이다. 대신 임대사업자들이 규정을 잘 지키고 있는지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김현미 장관은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세제 혜택을 환수하겠다. 등록을 말소한다. 말소된 사업자 물량은 일반 물량으로 전환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법안이 통과되야 한다. 통과 되면, 종부세는 2021년 6월 1일 납부액부터 적용된다.

양도세 중과는 내년 5월31일 이후 거래부터 적용된다. 그 전까지 해당 주택은 매각하라는 압박이다.

7·10 부동산 대책
7·10 부동산 대책ⓒ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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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철·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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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확 뜯어 고쳐야죠"... 스러진 박원순의 꿈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07/11 11:22
  • 수정일
    2020/07/11 11:2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取중眞담 / 박원순과 나] 서울시청 출입기자가 본 박 시장의마지막 3년 20.07.10 20:02l최종 업데이트 20.07.10 21:03 손병관(patrick21)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원순 서울시장
▲  박원순 서울시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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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에 새로 출입하게 된 <오마이뉴스> 기자라구요? 20년 가까이 일했다고요? 근데 왜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지?"
 

지난 2017년 12월 9일 오후 집무실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대면했던 순간에 그가 한 말을 기자는 이렇게 기억한다. 그해 1월 박 시장이 대선 캠페인에 나섰을 때 나는 그를 오찬 간담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시장님이 사람들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배석한 서울시 간부의 귀띔에 나는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네요"라고 답했다.  서울대 입학하자마자 학생 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적당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한 수재. 검사 일이 안 맞아서 변호사를 개업했지만 조영래를 롤모델로 삼았던 인권변호사.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 손 대는 단체마다 성공시킨 시민운동계의 대부.


내가 박 시장에 대해 아는 것은 이 정도였다. 박 시장도 나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니 피장파장. 그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상금 받을 때마다 시민사회단체에 기부한 박 시장 

박 시장과 관련해 가장 놀랐던 사실은 그가 7억 원의 빚을 진 채무자였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변호사 시절 맡은 사건에서 져본 적이 없고, 시민단체 시절에도 외부 강의하면 월 1000만 원은 벌었는데, 젊었을 때 탕진을 좀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탕진'이라고 표현했지만, 젊은 시절부터 제법 많은 돈을 기부했다.

1998년 '우 조교 성희롱사건' 변호인 자격으로 받은 '올해의 여성운동상' 상금을 한국여성단체연합에 기부했고, 2006년에 받은 막사이사이상 상금 5만 달러는 필리핀의 비영리단체에 전달했다.

서울시장이 되기 전 맡았던 포스코 사외이사 퇴직금 7000만 원은 아름다운재단에 보냈고, 서울시장이 된 후에도 '예테보리 지속가능발전상' 상금 5000만 원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에 후원금으로 쾌척했다.

박 시장이 벌인 일들의 뒤처리는 부인 강난희씨가 도맡았다. 지난해 4월 8일 일부 기자들과의 만찬에서 박 시장은 "내가 집안을 전혀 안 돌봐서 집사람이 손댔다가 실패한 사업들이 꽤 있다"라면서 "그렇다고 그걸 집사람 탓하면 안 되지"라고 부인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다.

2018년 박 시장은 3번째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가 보여준 시장으로서의 모습은 전혀 정치인답지 않았다.

그해 2월 26일 오후 2시 서울시청 6층 간담회장. 서울시 15개 산하기관의 노동자이사 20명이 한 자리에 모인 회의장에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박 시장이 세종문화회관 합창단 출신 조영화 이사가 참석한 것을 보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노래 한 곡 할까요?"라고 말했다. 조 이사로부터 "시장님이 먼저 하신다면..."이라고 선창을 요구받자, 박 시장은 "내가 못할 게 없죠"라며 가곡 <봄이 오면>(김동환 시, 김동진 작곡)을 불러제꼈다.

1절을 함께 완창한 뒤 박 시장은 "다음부터 회의할 때는 노래 한 곡씩 하자"고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서울시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돌렸다.

- 기자 "시장님이 회의석상에서 갑자기 노래를 부르시네요."
- 정무수석 "(대수롭지 않은 듯) 또 그러셨나요?"


정치에서도 '박원순만의 길'을 열고 싶어했다
 
구급차로 옮겨지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신 10일 0시 1분경 서울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경찰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 구급차로 옮겨지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신 10일 0시 1분경 서울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경찰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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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순진한 양반이 대선 출마를 하려 했단 말이야?"라는 생각을 깨게 만든 사건은 2018년 5월 16일, 그와의 두 번째 인터뷰였다.

기자는 지방선거 후보 인터뷰를 마치면서 "박 시장과 문재인 대통령 삶의 궤적이 닮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당시는 판문점 정상회담 성사로 문 대통령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어서 여느 여당 정치인이라면 이런 말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박 시장의 반응은 의외로 뜨뜻미지근했다.

"닮긴 닮았죠. 닮았으면서도 또 많이 다르죠. 문 대통령은 지역에서 활동한 게 강점이었고, 나는 중심(서울)에서 활동하면서도 변경에서 활동했으니..."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박 시장의 공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을 때 박 시장은 "대통령이 될 기회가 주어지면 세상을 확 뜯어 고쳐야죠"라고 말했다. 그의 핵심 참모가 "박 시장께선 문 대통령을 좋아하면서도 문 대통령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의 권력의지는 분명해 보였다. 다만, 꿈을 드러낼 시기가 언제인지가 문제였다.

박 시장은 이런 꿈을 꾸면서, 정치에서도 '박원순만의 길'을 열고 싶어했다. 3선에 도전한 2018년 선거에서 박 시장은 자신의 선거는 물론이고 구청장과 구의원, 시의원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끄는 '서울 야전사령관'을 자임했다. 그러나 막상 선거가 끝나자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해 6월 27일 오후 5시40분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일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박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불편했던 선거였어요. 유세차 올라가서 유세한다고 듣는 사람이 실제로 많지가 않아요. 그냥 우리끼리 하는 거야. 전통적인 민주당 방식이지. 사람들 여럿이 다니면 길 막히고. 사실 욕먹는 방식이야.

조용히 찾아가서 물건 사주고 얘기 나눠야 하는데 '박 시장님이 오셨습니다' 소리치는 게 난 불편해. 나만의 선거였다면 사람들 사진 찍어주고 페이스북에 다 올렸겠지. 그런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있으니. 어쨌든 날 위한 선거는 아니었어."


메르스·코로나19, 성공적인 방역을 이끌었지만...

3선에 성공한 뒤 박 시장의 시계는 오는 2022년 대선에 맞춰졌다. 서울시장이 될 때부터 대통령을 꿈꿨던 건 아니다. 박 시장은 "처음부터 대통령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서울시장만으로도 세상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권한은 중앙정부가 다 가지고 있더라"면서 생각이 바뀐 까닭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박원순식 정치'에 대중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쿨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면모도 보였다.

"내가 (대선후보 경선 2위를 한) 안희정이나 이재명에게 배워야 할 게 있어요. 나는 정치를 모르는데, 그 분들은 어릴 때부터 그런 세계에 눈을 떴어요. 이재명 지사가 한 번은 내게 그러더군요. '성남시장 1기에는 업무 50 대 홍보 50 비율이었다면, 2기에는 업무 30 대 홍보 70으로 바꿨다'고. 이 지사는 자기를 알리는, 좋은 아이디어를 계속 내놓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요. 그것이 내가 부족한 점이죠." (2019년 4월 8일 일부 기자들과의 만찬에서)

박 시장은 인권운동과 시민운동을 줄곧 해오면서 진보적 이미지가 강했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의외의 소신을 내놓기도 했다.

뒤늦게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데도, 제러드 다이아먼드 등 세계 석학들과의 세미나를 영어로 할 정도로 실력을 늘린 박 시장은 "우리는 영어를 배워 런던 같은 도시의 장점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데, 그들은 우리를 모른다"면서 "서울이 영어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도시가 돼야 한다, 법을 바꿔 외국인도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21대 총선을 앞둔 2019년 12월 3일에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토크쇼에서 여야 갈등으로 지지부진한 민생법안 통과 상황을 개탄하며, 총선 결과에 따라 독일식 연정을 시도해 보자는 제안을 내놨다. 여당의 압승으로 연정 가능성은 사그러들었지만, 불신과 반목이 강한 한국 정치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보려던 박 시장의 제안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5년 메르스의 교훈을 잊지 않고 음압병상 등 서울의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 2020년 코로나19 국면에서 성공적인 방역을 이끈 것도 박 시장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생전의 박 시장은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와 나의 마지막 인연은 지난달 28일 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아버지 장사 지내기 전 날, 박 시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썰렁했던 빈소를 찾아준, 많지 않은 조문객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아는 이가 많지 않지만, 박 시장은 매일 밤 11시까지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상주의 입장에서 그의 방문이 반가우면서도 "대통령 나간다는 사람이 30분 이상 상가에 죽치고 있는 게 맞냐"는 생각이 언뜻언뜻 드는 밤이었다.

박 시장은 그 자리에서도 "평범한 시민들의 생전 모습을 미리 동영상으로 촬영해놨다가 나중에 파일별로 모아서 편집하면 후손들에게 (조상의)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거대한 온라인 라이브러리가 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랬던 박 시장이 9일 실종됐다가 몇 시간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이 확인되기 전에는 그가 미투 사건으로 피소됐다는 뉴스가 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성폭력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뒤, 박 시장의 입장을 물었을 때 그는 "피해자가 성희롱으로 성적 모독감을 느꼈다면 피해자의 관점에서 보는 게 요즘의 보편적 이론"이라면서 "(판사가) 비판받을 대목이 있지 않냐"고 말했다. (2018년 8월 17일 <오마이TV> 인터뷰).

박 시장을 좋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얘기지만, 지금의 논란도 그가 만든 역사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보다 많은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태그:#박원순

[取중眞담 / 박원순과 나] 서울시청 출입기자가 본 박 시장의마지막 3년 20.07.10 20:02l최종 업데이트 20.07.10 21:03 손병관(patrick21)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원순 서울시장
▲  박원순 서울시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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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에 새로 출입하게 된 <오마이뉴스> 기자라구요? 20년 가까이 일했다고요? 근데 왜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지?"
 

지난 2017년 12월 9일 오후 집무실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대면했던 순간에 그가 한 말을 기자는 이렇게 기억한다. 그해 1월 박 시장이 대선 캠페인에 나섰을 때 나는 그를 오찬 간담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시장님이 사람들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배석한 서울시 간부의 귀띔에 나는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네요"라고 답했다.  서울대 입학하자마자 학생 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적당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한 수재. 검사 일이 안 맞아서 변호사를 개업했지만 조영래를 롤모델로 삼았던 인권변호사.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 손 대는 단체마다 성공시킨 시민운동계의 대부.


내가 박 시장에 대해 아는 것은 이 정도였다. 박 시장도 나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니 피장파장. 그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상금 받을 때마다 시민사회단체에 기부한 박 시장 

박 시장과 관련해 가장 놀랐던 사실은 그가 7억 원의 빚을 진 채무자였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변호사 시절 맡은 사건에서 져본 적이 없고, 시민단체 시절에도 외부 강의하면 월 1000만 원은 벌었는데, 젊었을 때 탕진을 좀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탕진'이라고 표현했지만, 젊은 시절부터 제법 많은 돈을 기부했다.

1998년 '우 조교 성희롱사건' 변호인 자격으로 받은 '올해의 여성운동상' 상금을 한국여성단체연합에 기부했고, 2006년에 받은 막사이사이상 상금 5만 달러는 필리핀의 비영리단체에 전달했다.

서울시장이 되기 전 맡았던 포스코 사외이사 퇴직금 7000만 원은 아름다운재단에 보냈고, 서울시장이 된 후에도 '예테보리 지속가능발전상' 상금 5000만 원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에 후원금으로 쾌척했다.

박 시장이 벌인 일들의 뒤처리는 부인 강난희씨가 도맡았다. 지난해 4월 8일 일부 기자들과의 만찬에서 박 시장은 "내가 집안을 전혀 안 돌봐서 집사람이 손댔다가 실패한 사업들이 꽤 있다"라면서 "그렇다고 그걸 집사람 탓하면 안 되지"라고 부인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다.

2018년 박 시장은 3번째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가 보여준 시장으로서의 모습은 전혀 정치인답지 않았다.

그해 2월 26일 오후 2시 서울시청 6층 간담회장. 서울시 15개 산하기관의 노동자이사 20명이 한 자리에 모인 회의장에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박 시장이 세종문화회관 합창단 출신 조영화 이사가 참석한 것을 보고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노래 한 곡 할까요?"라고 말했다. 조 이사로부터 "시장님이 먼저 하신다면..."이라고 선창을 요구받자, 박 시장은 "내가 못할 게 없죠"라며 가곡 <봄이 오면>(김동환 시, 김동진 작곡)을 불러제꼈다.

1절을 함께 완창한 뒤 박 시장은 "다음부터 회의할 때는 노래 한 곡씩 하자"고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서울시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돌렸다.

- 기자 "시장님이 회의석상에서 갑자기 노래를 부르시네요."
- 정무수석 "(대수롭지 않은 듯) 또 그러셨나요?"


정치에서도 '박원순만의 길'을 열고 싶어했다
 
구급차로 옮겨지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신 10일 0시 1분경 서울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경찰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 구급차로 옮겨지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신 10일 0시 1분경 서울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경찰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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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순진한 양반이 대선 출마를 하려 했단 말이야?"라는 생각을 깨게 만든 사건은 2018년 5월 16일, 그와의 두 번째 인터뷰였다.

기자는 지방선거 후보 인터뷰를 마치면서 "박 시장과 문재인 대통령 삶의 궤적이 닮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당시는 판문점 정상회담 성사로 문 대통령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어서 여느 여당 정치인이라면 이런 말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박 시장의 반응은 의외로 뜨뜻미지근했다.

"닮긴 닮았죠. 닮았으면서도 또 많이 다르죠. 문 대통령은 지역에서 활동한 게 강점이었고, 나는 중심(서울)에서 활동하면서도 변경에서 활동했으니..."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박 시장의 공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을 때 박 시장은 "대통령이 될 기회가 주어지면 세상을 확 뜯어 고쳐야죠"라고 말했다. 그의 핵심 참모가 "박 시장께선 문 대통령을 좋아하면서도 문 대통령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의 권력의지는 분명해 보였다. 다만, 꿈을 드러낼 시기가 언제인지가 문제였다.

박 시장은 이런 꿈을 꾸면서, 정치에서도 '박원순만의 길'을 열고 싶어했다. 3선에 도전한 2018년 선거에서 박 시장은 자신의 선거는 물론이고 구청장과 구의원, 시의원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끄는 '서울 야전사령관'을 자임했다. 그러나 막상 선거가 끝나자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해 6월 27일 오후 5시40분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일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박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불편했던 선거였어요. 유세차 올라가서 유세한다고 듣는 사람이 실제로 많지가 않아요. 그냥 우리끼리 하는 거야. 전통적인 민주당 방식이지. 사람들 여럿이 다니면 길 막히고. 사실 욕먹는 방식이야.

조용히 찾아가서 물건 사주고 얘기 나눠야 하는데 '박 시장님이 오셨습니다' 소리치는 게 난 불편해. 나만의 선거였다면 사람들 사진 찍어주고 페이스북에 다 올렸겠지. 그런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있으니. 어쨌든 날 위한 선거는 아니었어."


메르스·코로나19, 성공적인 방역을 이끌었지만...

3선에 성공한 뒤 박 시장의 시계는 오는 2022년 대선에 맞춰졌다. 서울시장이 될 때부터 대통령을 꿈꿨던 건 아니다. 박 시장은 "처음부터 대통령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서울시장만으로도 세상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권한은 중앙정부가 다 가지고 있더라"면서 생각이 바뀐 까닭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박원순식 정치'에 대중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쿨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면모도 보였다.

"내가 (대선후보 경선 2위를 한) 안희정이나 이재명에게 배워야 할 게 있어요. 나는 정치를 모르는데, 그 분들은 어릴 때부터 그런 세계에 눈을 떴어요. 이재명 지사가 한 번은 내게 그러더군요. '성남시장 1기에는 업무 50 대 홍보 50 비율이었다면, 2기에는 업무 30 대 홍보 70으로 바꿨다'고. 이 지사는 자기를 알리는, 좋은 아이디어를 계속 내놓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요. 그것이 내가 부족한 점이죠." (2019년 4월 8일 일부 기자들과의 만찬에서)

박 시장은 인권운동과 시민운동을 줄곧 해오면서 진보적 이미지가 강했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의외의 소신을 내놓기도 했다.

뒤늦게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데도, 제러드 다이아먼드 등 세계 석학들과의 세미나를 영어로 할 정도로 실력을 늘린 박 시장은 "우리는 영어를 배워 런던 같은 도시의 장점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데, 그들은 우리를 모른다"면서 "서울이 영어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도시가 돼야 한다, 법을 바꿔 외국인도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21대 총선을 앞둔 2019년 12월 3일에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토크쇼에서 여야 갈등으로 지지부진한 민생법안 통과 상황을 개탄하며, 총선 결과에 따라 독일식 연정을 시도해 보자는 제안을 내놨다. 여당의 압승으로 연정 가능성은 사그러들었지만, 불신과 반목이 강한 한국 정치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보려던 박 시장의 제안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5년 메르스의 교훈을 잊지 않고 음압병상 등 서울의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 2020년 코로나19 국면에서 성공적인 방역을 이끈 것도 박 시장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생전의 박 시장은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와 나의 마지막 인연은 지난달 28일 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아버지 장사 지내기 전 날, 박 시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썰렁했던 빈소를 찾아준, 많지 않은 조문객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아는 이가 많지 않지만, 박 시장은 매일 밤 11시까지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상주의 입장에서 그의 방문이 반가우면서도 "대통령 나간다는 사람이 30분 이상 상가에 죽치고 있는 게 맞냐"는 생각이 언뜻언뜻 드는 밤이었다.

박 시장은 그 자리에서도 "평범한 시민들의 생전 모습을 미리 동영상으로 촬영해놨다가 나중에 파일별로 모아서 편집하면 후손들에게 (조상의)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거대한 온라인 라이브러리가 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랬던 박 시장이 9일 실종됐다가 몇 시간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이 확인되기 전에는 그가 미투 사건으로 피소됐다는 뉴스가 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성폭력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뒤, 박 시장의 입장을 물었을 때 그는 "피해자가 성희롱으로 성적 모독감을 느꼈다면 피해자의 관점에서 보는 게 요즘의 보편적 이론"이라면서 "(판사가) 비판받을 대목이 있지 않냐"고 말했다. (2018년 8월 17일 <오마이TV> 인터뷰).

박 시장을 좋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얘기지만, 지금의 논란도 그가 만든 역사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보다 많은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태그:#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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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연내 북미정상회담 돌연 일어날 수도..."

비핵화는 美 불가역적 중대조치 동시 실행될때 가능 (전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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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0  10: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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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며 조선(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면 우리(북)의 행동과 병행하여 타방의 많은 변화 즉 불가역적인 중대 조치들이 동시에 취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은 10일 발표한 담화에서 최근 다양한 채널을 통해 흘러나오는 미국의 대화제의에 대해 언급하면서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오라'는 기존 입장을 강조하면서도 대화 여지를 남겨 눈길을 끌었다.

담화에서 김 제1부부장은 기존 북측의 원칙적 입장을 자신의 의견으로 펼치는 한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심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독특한 어법으로 논리를 구사했다. 

먼저 연내 북미수뇌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생각이기는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조미수뇌회담과 같은 일이 올해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또 모를 일이기도 하다.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여지를 두었다.

이어 "나는 조미사이의 심격한 대립과 풀지 못할 의견차이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미국의 결정적인 입장변화가 없는 한 올해 중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도 조미수뇌회담이 불필요하며 최소한 우리에게는 무익하다고 생각한다"며 "더우기 올해 중 조미수뇌회담은 그 가능성 여부를 떠나 미국이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우리가 받아들여주면 안된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그 이유로 △미국에나 필요하지 북에는 무익하다 △그나마 유지되던 정상간 특별한 관계까지 훼손될 수 있다 △볼튼의 예언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해 줄 필요가 없다는 3가지를 들었다. 또 지금 북미정상회담을 한다면 '누군가의 지루한 자랑거리로만 이용될 것이 뻔하다'며 그간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감추지 않았다.

최근 북미 실무협상이나 정상회담을 계속 제안하는 미국측의 의도에 대해서는 "미국은 대화의 문이나 열어놓고 우리를 눅잦히면서 안전한 시간을 벌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내심 하노이에서와 같은 협상조건으로라도 되돌아가고 싶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분석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해 2월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은 부분적 제재 해제로 북핵동결을 얻으려했고 이에 대해 북은 모험을 할 수도 있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개월 뒤에 만난 6월 30일 판문점 북미정상회담에서 추가적 비핵화조치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미국측에 '제도와 인민의 안전,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제재 해제로는 맞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또 "이후 우리는 제재 해제 문제를 미국과의 협상 의제에서 완전 줴던져버렸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비핵화조치 대 제재해제'라는 지난 기간 조미협상의 기본주제가 이제는 '적대시철회 대 조미협상 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제안하는 상황에서도 국방장관은 북을 향해 '불량배국가', 'CVID' 운운하는 적대적 발언을 숨기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어쨌든 조미 수뇌들사이의 관계가 좋다고 해도 미국은 우리를 거부하고 적대시하게 되여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만을 생각하며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실수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경계하여야 할 때"라고 언급했다.

나아가 "회담탁 우(위)에서 무엇을 어떻게 더 빼앗아 먹겠는가만을 생각하는 미국과는 당장 마주 앉을 필요가 없으며 미국의 중대한 태도변화를 먼저 보고 결심해도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미국은 우리의 핵을 빼앗는데 머리를 굴리지 말고 우리의 핵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데로 머리를 굴려보는 것이 더 쉽고 유익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정상회담을 비롯한 대화는 필요하며, 얼마든지 실현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은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 등 중대한 태도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가능하다면 앞으로 독립절 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한다는데 대하여 위원장 동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며, "위원장동지는 트럼프대통령의 사업에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자신의 인사를 전하라고 하시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미국 측과 직접 만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보인다. '독립기념일 행사 DVD 입수'라는 명분으로.

(추가, 12:11)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김여정제1부부장 담화 (전문)

 

나는 최근 며칠어간 미국사람들이 련일 발신하고있는 우리와 관련한 괴이한 신호들을 보도를 통하여 듣고 있다.

나중에는 조미수뇌회담가능성까지 시사하게 된 미국사람들의 심리변화를 TV보도를 통해 흥미롭게 시청하는것은 아침식사시간의 심심풀이로서는 그저그만이였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생각이기는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조미수뇌회담과 같은 일이 올해에는 일어나지 않을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또 모를 일이기도 하다.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기때문이다.

하지만 명백한것은 조미수뇌회담이 누구의 말대로 꼭 필요하다면 미국측에나 필요한것이지 우리에게는 전혀 비실리적이며 무익하다는 사실을 놓고 그러한 사건을 점쳐보아야 할것이다.

조미수뇌회담이 성사된다고 치자. 미국은 우리 지도부와의 계속되는 대화만으로도 안도감을 가지게 되여있고 또다시 수뇌들사이의 친분관계를 내세워 담보되는 안전한 시간을 벌수 있겠지만 우리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거두어들일 그 어떤 성과도 없으며 기대조차도 하지 않고있다.

나는 조미사이의 심격한 대립과 풀지 못할 의견차이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미국의 결정적인 립장변화가 없는 한 올해중 그리고 나아가 앞으로도 조미수뇌회담이 불필요하며 최소한 우리에게는 무익하다고 생각한다.

더우기 올해중 조미수뇌회담은 그 가능성여부를 떠나 미국이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우리가 받아들여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리유를 간단하게 세가지로 말한다면 첫째,그것이 필요하다면 미국측에나 필요했지 우리에게는 무익하다는것이며 둘째,새로운 도전을 해볼 용기도 없는 미국사람들과 마주앉아야 또다시 우리의 시간이나 떼우게 될뿐이고 그나마 유지되여오던 수뇌들사이의 특별한 관계까지 훼손될수 있는 위험이 있기때문이며 셋째,쓰레기같은 볼튼이 예언한것이기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해줄 필요가 없기때문인것이다.

실지 미국에 있어서 당장 필요한것은 수뇌회담자체나 그 결과가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에서 수뇌들간의 친분관계를 내세워 자기들에게 정치적으로 재앙거리가 될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를 눅잦히고 발목을 잡아 안전한 시간을 벌자는데 목적이 있을것이다.

그리고 지금 수뇌회담을 한다면 또 그것이 누구의 지루한 자랑거리로만 리용될것이 뻔하다.

미국은 대선전야에 아직 받지 못한 크리스마스선물을 받게 될가봐 걱정하고있을것이다.

나는 미국이 그런 골치아픈 일에 맞다들려 곤혹을 치르게 되겠는가 아니겠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자기들이 처신하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때없이 심심하면 여기저기서 심보고약한 소리들을 내뱉고 우리에 대한 경제적압박이나 군사적위협같은 쓸데없는 일에만 집념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두고보아야 할것이다.

나는 그러한 사건들의 유무에 대한 그 어떤 정보는 가지고있지 않다만 미국이 우리에게 발신하는 갖가지 위험한 압박성언동들을 우리 지도부가 언제까지나 좌시하지만은 않을것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미국이 극도로 두려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은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 위원장동지와 미국대통령간의 특별한 친분관계가 톡톡히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때에 미국이 불안초조한 나머지 제풀에 서뿔리 우리의 중대한 반응을 유발시킬 위험한 행동에 나선다면 잠자는 범을 건드리는 격이 될것이며 결과가 재미없으리라는것은 분명하다.

최근들어 미국이 조미간의 실무협상탁이나 수뇌회담탁을 두드리는 기본목적을 바로 꿰뚫어보아야 한다.

미국은 대화의 문이나 열어놓고 우리를 눅잦히면서 안전한 시간을 벌기를 원하고있다.

그리고 미국은 내심 하노이에서와 같은 협상조건으로라도 되돌아가고싶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미국은 바로 그때 2019년초 하노이에서 부분적인 제재해제를 해주는것같은 시늉을 내면서 얼마든지 우리의 핵중추를 우선적으로 마비시켜놓고 우리의 전망적인 핵계획을 혼탕시킬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있었다.

그때에는 우리가 거래조건이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제재의 사슬을 끊고 하루라도 빨리 우리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도모해보자고 일대 모험을 하던 시기였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조미수뇌회담이 열렸을 때 우리 위원장동지는 북조선경제의 밝은 전망과 경제적지원을 설교하며 전제조건으로 추가적인 비핵화조치를 요구하는 미국대통령에게 화려한 변신과 급속한 경제번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 제도와 인민의 안전과 미래를 담보도 없는 제재해제따위와 결코 맞바꾸지 않을것이라는데 대하여서와 미국이 우리에게 강요해온 고통이 미국을 반대하는 증오로 변했으며 우리는 그 증오를 가지고 미국이 주도하는 집요한 제재봉쇄를 뚫고 우리 식대로,우리 힘으로 살아나갈것임을 분명히 천명하시였다.

이후 우리는 제재해제문제를 미국과의 협상의제에서 완전 줴던져버렸다.

나는 《비핵화조치 대 제재해제》라는 지난 기간 조미협상의 기본주제가 이제는 《적대시철회 대 조미협상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재를 가해온다고 우리가 못사는것도 아닌데 무엇때문에 미국에 끌려다니겠는가 하는것이다.

미국이 지금에 와서 하노이의 회담탁에 올랐던 일부 제재해제와 우리 핵개발의 중추신경인 녕변지구와 같은 대규모핵시설의 영구적페기를 다시 흥정해보려는 어리석은 꿈을 품지 않기 바란다.

트럼프 현 미국대통령에 대한 우리 위원장동지의 개인적감정은 의심할바없이 굳건하고 훌륭하지만 우리 정부는 현 미국대통령과의 관계여하에 따라 대미전술과 우리의 핵계획을 조정하면 안된다.

우리는 트럼프대통령과도 상대해야 하며 그 이후 미국정권,나아가 미국전체를 대상해야 한다.

가까운 며칠어간 미국의 고위당국자들의 발언만 놓고보아도 대통령과의 관계와는 무관하게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수 있게 한다.

미국무성이 대화의지를 피력하는가 하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 지도부와의 좋은 관계를 거듭 밝히며 조미수뇌회담가능성까지 시사하는 마당에서 미국방장관이라는 사람은 또다시 그 무슨 《CVID》를 운운하며 우리 국가를 향해 《불량배국가》라는 적대적발언을 숨기지 않았다.

대통령과 그아래에서 심심치 않게 엇박자를 내는것이 의도적인 흉계인지,대통령의 불확실한 권력장악력으로부터 산생되는 일인지는 평하고싶지 않다.

어쨌든 조미수뇌들사이의 관계가 좋다고 해도 미국은 우리를 거부하고 적대시하게 되여있다.

트럼프대통령과의 관계만을 생각하며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실수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을 경계하여야 할 때이다.

최근에 미국이 대조선제재와 관련한 대통령행정명령들을 1년간 더 연장하는가 하면 조미관계개선에 앞서 《인권문제》가 《해결》되여야 한다고 떠들어대면서 우리의 《인권실태》에 대해 걸고들기도 하고 우리 나라를 《최악의 인신매매국가》로,《테로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등 우리를 사사건건 겨냥하고 건드리고있는데 이것만 보아도 미국의 대조선적대시가 결코 철회될수는 없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우리에 대한 체질적거부감이 《토질병》으로 되여버린 미국이 지금의 대선《위기》를 넘긴다 해도 그 이후 우리를 향해 할 수많은 적대적행동들을 예견해야 하며 우리는 지금시점에서 현 집권자와의 친분관계보다도 앞으로 끊임없이 계속 이어질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에 대처할수 있는 우리의 대응능력제고에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미국으로부터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고 그러한 위협을 억제하며 그런 속에서 우리 국익과 자주권을 수호할 전망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실제적인 능력을 공고히 하고 부단히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지금 조미간 비핵화협상을 재개하려는 시도는 미국이 바빠서 들고다니는 문제이지 우리가 바쁘고 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회담탁우에서 무엇을 어떻게 더 빼앗아먹겠는가만을 생각하는 미국과는 당장 마주앉을 필요가 없으며 미국의 중대한 태도변화를 먼저 보고 결심해도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우리의 핵을 빼앗는데 머리를 굴리지 말고 우리의 핵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데로 머리를 굴려보는것이 더 쉽고 유익할것이다.

우리는 미국에 위협을 가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이에 대해서는 위원장동지도 트럼프대통령에게 분명한 립장을 밝히신적이 있다.

그저 우리를 다치지만 말고 건드리지 않으면 모든것이 편하게 흘러갈것이다.

우리는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것을 분명히 하며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면 우리의 행동과 병행하여 타방의 많은 변화 즉 불가역적인 중대조치들이 동시에 취해져야만 가능하다는것을 상기시킨다.

타방의 많은 변화라고 할 때 제재해제를 념두한것이 아님은 분명히 찍고넘어가자고 한다.

나는 원래 남조선을 향해서라면 몰라도 미국사람들을 향해서는 이런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았다.

끝으로 며칠전 TV보도를 통해 본 미국독립절기념행사에 대한 소감을 전하려고 한다.

가능하다면 앞으로 독립절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한다는데 대하여 위원장동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위원장동지는 트럼프대통령의 사업에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자신의 인사를 전하라고 하시였다.

   

2020년 7월 10일

평 양

(출처-조선중앙통신 20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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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비건 뒤에 가려진 그 무엇?

<기고> 김광수 정치학 박사
김광수  |  no-ultar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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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09  14: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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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북(북의 사상과 정치) 정치학 박사, <수령국가> 저자,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제3차 북미정상회담 군불이 지펴지더니만, 마침내 비건(미 국무부 부장관)의 방한에다 트럼프(미 대통령)까지 가세했다. 

트럼프는 뭘 노리나? 

흐름은 이렇다.   

국내에서는 문정인 대통령 특보, 문 대통령 자신이 미 11월 대선전 제3차 북미정상회담 주선 얘기를 공공연히 흘리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한·유럽연합(EU) 화상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바라기로는 미국의 대선 이전에 북미 간 대화 노력이 한 번 더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화답이라도 하듯 비건에 의해 이미 “11월 대선전 북미정상회담 상상하기 어려워(5.29)”로 결론되었던 그 발언은 온데간데없이 미국 내에서도 ‘10월 서프라이즈’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구체적으로는 7월 3일 보도가 이 사실을 확인해준다. 빅터 차 등 미 대북 전문가들이 북미 ‘10월 서프라이즈’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그 예다. 

이렇게 불가능해 보였던 제3차 북미정상회담 군불이 지펴지고 있다. 그러던 차에 비건이 방한(7.7~7.9)했고, 7월 8일에는 급기야 트럼프 자신이 ‘제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  

과연 이 일련의 흐름 속에 어떤 진실이 담겨져 있을까? 결론적으로는 제3차 북미정상회담은 ‘거짓’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북을 미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핵보유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북은 이에 절대 응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운반수단 없어.. 9천마일 떨어져 있다." 

이미 미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화성-14,15호)을 가진 북으로서는 미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미국이 절대 자신을 동등한 핵협상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지 않음을 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그렇다.   
둘째는, 사실 이번 비건의 방문목적에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에 조율”하는 것을 그 초점으로 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어, 정말 사실이 그러하다면 이 또한 북이 절대 받을 수 없는 협상안이다.

이유는 이렇다. 위 협상안은 결국 싱가포르 합의정신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 비핵화 합의정신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선 비핵화, 후 관계정상화’라는 논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불가능한 이유는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북한·이란 불량국가·rogue state(2020. 7.7)”라는 발언, 또 최근 미국·일본·호주 3국 국방장관의 화상 회담 때도 이들 3국은 북핵 해법에 대해 CVID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 모든 상황들이 북이 절대 제3차 북미정상회담에 나올 수 없는 이유이다. 즉, 앞에서는 이렇게 ‘못된’ 짓을 하게하고, 트럼프 자신은 고고한 척 제3차 북미정상회담을 운운한다?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상투적 정치술수이다. 한번 속지, 절대 두 번 속지 않는 북이다. 

셋째는, 제3차 북미정상회담의 필요충분조건에 대한 언급은 진작 없고, 여전히 과거에  했던 자신의 발언들, 자신의 자화자찬에 치중하고 있어 실제 진정성을 갖고 제3차 북미정상회담에 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필요충분조건은 다음과 같다. ‘싱가포르 합의정신에서 다시 출발하겠다는 언급’이다. 하지만, 보도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뿐이다. 

하나, “도움이 된다면”, 이 말뜻은 트럼프 자신의 재선에 도움이 된다면 일 텐데, 이는 다음과 같은 북의 요구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 “조미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루어 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더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최선희 북 외무성 제1부상, 7월 4일)

둘, "그들이(북) 만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이해", 이는 7월 4일 최선희의 발언에서 확인받듯이 지금의 상황에서는 북이 먼저 손짓하는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데도, 그런데도 위 발언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트럼프의 태도는 자신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꾸며진 거짓임을 알 수 있다. 

셋, “민주당이 집권했다면 우리는 분명 지금 전쟁하고 있을 것", "그러나 지금 우리는 김정은과 잘 지내고 있고, 나는 그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등등 여전히 과거에 했던 발언을 재탕 삼탕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트럼프 자신이 실질적으로 제3차 북미정상회담에 임할 자세가 있다고 보기에는 매우 어렵다.

그러니 이 상황은-제3차 북미정상회담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실제 제3차 북미정상회담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지금의 현 상황 관리를 통해 트럼프 자신의 정치적 쇼-재선을 향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라는 말과도 동의어가 된다.   

비건의 진짜 방문 목적은 뭐였나? 

일각에서 신 조선총독부 총독 비건으로 불리는 그가 대한민국을 방한(7.7~7.9)했다. 진짜, 방한 목적이 뭘까? 

애초에 알려진 것과는 좀 다른 듯하다. 왜냐하면 북(최선희)에서 그의 방한에 앞서 분명한 어조로 ‘만나지 않겠다’했는데도 굳이 방한 것을 보면 분명 다른 목적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두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최근 국내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온 한미워킹그룹 해체 목소리에 대해 이를 사수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또 하나는, 새로 임명된 통일외교안보라인에 대한 집안 단속인 듯하다.(미국의 대북제재 정책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그런데 비건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미국은 남북 협력 강하게 지지한다.(2020.7.8.)” 

어떻게 볼 것인가? 결론은 앞에 서술어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제재 정책에 발맞춰나갈 때’ 

그래서 비건의 위 말이 정말 액면그대로 진정했는지, 안했는지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향후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2번의 정상회담 합의문을 이행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말이다. 

그렇지 않고, 계속 또 꼼수 부리면서 이러저러한 우회로, 즉 창의적 해법이니, 한미워킹그룹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것과 밖에서 할 수 있는 것 등 그렇게 언론플레이 한다면 이는 여전히 미국의 벽을 넘지 못했음을 바로미터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 점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정세(문재인 정부)에 속을 일은 없다.   

트럼프와 비건을 이겨낼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

정말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는, 외교가에서 널리 알려진 대로 국내여론을 활용해 압박을 이겨내면 된다. 촛불민심과 177석의 민의의 힘을 믿고, ‘남북문제에 미국 너, 간섭할 권리 없어’ 그렇게만 하면 된다. 

둘째는, 첫 단추를 잘 꿰어야만 옷맵시가 살아나듯이, 마찬가지로 첫 스타트를 잘 끊어야만 남북관계에 있어 이 통일부장관 내정자가 얘기했듯이 ‘창의적 공간’이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내내 미국에 질질 끌려가게 되어있다. 

그러니 문 대통령과 이들 3인방(이인영, 서훈, 박지원)은 눈 찔끔 깜고 비건의 부당 내정간섭을 이겨내어야 한다. 

이를 위한  특급 소스는 아래와 같다.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역설에서 그 정답을 찾으시라. 

첫째, (미국에 의존하지 않은) K-방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시라. 둘째, 미국신화가 깨어지고 있다. 셋째, (미국)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고 있다. 

이런 판에 우리가 미국에게 질질 끌려 다녀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해서 이참에 반드시 미국의 부당한 내정간섭 기제를 끊어내어야 한다. 그래야만 ‘참다운’ 민족의 미래가 밝아진다. 물론 두려울 수 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니...

거기다가 분명 미국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남북문제에 있어 독자노선을 걸을 때 일본과 똑같이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에게 정치경제(심지어 군사적) 보복을 할 수 있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또한 분명한 것은 그럼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우리가 미국과의 종속(혹은, 예속)관계를 끊어 낼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한 번은 반드시 가야하고, 넘어서야 할 길, 그 길을 코로나-19가 만들어주고, 또 촛불민의와 180여석의 힘이 모여져 있을 때 지금 그 길을 가야한다.(기회는 절대 자주 오지 않는다.) 

가다가 (미국을 극복할 때) 분명 고통(아픔)이 따르겠지만 그 고통은 잠시이고, 미래는 너무나 긴 행복이기에 이참에 우린 이를 반드시 이겨내어야 한다. 

어떻게? 여당과 정부, 그리고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이 가졌던 그 ‘진정한’ 두려움을 이해해야 한다. 

울돌목(명량)해전 때의 이야기이다. 장군도 두려웠다. 오직 실 날 같은 희망은 두려움을 용기로만 바꿀 수만 있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그 확신뿐이었다. 마침내 민과 관, 그리고 군이 모두 힘을 합쳐 두려움을 용기로 승화시켜내었다. 그리고 승리했다. 

또 다른 사례는 일본의 경제보복(불화수소)을 우리가 이겨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우려와는 달리, 보도에 의하면 생각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첨단 소재부품 국산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린 그렇게 그 보복을 이겨내 가고 있다.  

해서 설령 미국의 보복이 있다손 치더라도 우선, 우리를 가장 먼저 도와 줄 같은 민족 북이 있고, 다음으로, 창의적 상상력을 발동시켜보면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 우방으로 존재하고 있고, 무엇보다는, K-19를 이겨낸 우리 국민들이 있다. 

믿고, 한번쯤 그 길로 가자. 담대한 여정으로 말이다. 

 

김광수 약력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그리고 현재는 부경대 기초교양교육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자문위원/6.15부산본부 자문위원/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사)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  자문위원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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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받는 다수>를 학습자료로 활용했다 해직당한 교사

김용택 | 2020-07-09 13:08:59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늘은 우선 이 영화부터 한편 보시죠. 11분짜리 <억압받는 다수> (클릭하시면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라는 영화인데 중학교 도덕교사인 배이상헌 교사가 자신의 양성평등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줬다는 이유 등으로 광주시교육청으로부터 수업배제 및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억압받는 다수>라는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1300만명 이상이 보았다는 프랑스 단편영화다.

배이상헌 교사가 가르치는 도덕교과서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성차별 상황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고쳐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대중매체에서 나타나는 성차별 요소를 찾아서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는 <억압받는 다수>를 ‘양성평등’을 설명하는 영상자료로 활용했다는 이유로 광주교육청이 경찰에 고발해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복직을 못한 상태다.

▲<사진 : ‘억압받는 다수’ 영화의 한 장면>

<억압받는 다수>는 ‘여성이 남성을 두고 희롱하는 사회’, ‘여성에게 성폭행을 당하지 않을지, 성희롱을 당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남성의 모습’을 그린 성이 뒤바뀐 사회를 풍자한 영화다. 여성이 주가 되고 남성은 매일 성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유모차를 끌고 걸어가는 슬리퍼를 신고 반바지를 입은 주인공을 보며 지나가는 여성들은 아무렇지 않게 희롱한다. 주인공은 아이를 맡기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한 무리를 만나 성적인 모욕과 폭행을 당하게 된다.

주인공이 신고를 위해 경찰서에 갔는데 그곳은 온통 여자들뿐, 남성은 커피 심부름을 하는 존재이다. 경찰서로 찾아온 부인은 주인공을 달래는 듯하다가 자신의 승진을 이야기하고, 차를 타러 가던 중 둘은 말다툼을 하게 된다. 혼자 가서 차를 가져오겠다며 걸어가는 부인의 모습을 멀리서 비추고, 이어 누가 뒤따라오는 듯한 느낌에 두려워하며 걸음을 재촉하는 여성(부인)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출처 : 루나글로벌스타)

배이상헌선생님의 <억압받는 다수> 사건(?)을 보면 2001년 김인규교사 (비인중학교 미술교사)가 자신의 홈피에 임신한 부부의 누드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해직당했던 사건이 기억난다. 결국 그는 개인의 창작적 권리를 보수적인 교육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환원시킨 판단으로 해직, 3개월 정직처분 후 복직됐지만, 그의 이름 뒤에는 아직도 ‘누드 사진교사’라는 닉네임이 따라 다닌다. 교사의 수업시간에 활용한 자료를 문제 삼는 대한민국의 교육부. 교사의 성교육을 믿지 못해 ‘성교육 표준안’까지 제시해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성교육 현실이다.

‘야동’이나 ‘야설’ 그리고 ‘자위’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단둘이 여행가면 안 된다.’, ‘여성은 예뻐야 하고, 남성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여성들은 외모를 가꾸는 데 공을 들여야 하고, 남성들은 경제적인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남성의 성욕은 여성에 비해 매우 강하다’, ‘남성과 여성은 뇌 구조부터 다르다’... 교육부가 내놓은 ‘성교육 표준안’이다. 이 표준안에는 배꼽티, 짧은 치마, 딱 붙는 바지 대신 치마를 입은 모습을 여성의 바른 옷차림으로 제시하는가 하면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교육을 ‘성교육 표준안’이라며 제시해 놓고 있다.

지난 해 12월 15일 한겨레신문의 [세상읽기] “배이상헌, 직위해제당한 한국 성교육”의 주제의 중앙대학교 김누리교수 칼럼을 보면 성평등을 주제로 한 ‘세계적인 수작’을 수업 교재로 삼으면, 한국의 교사는 ‘성비위범’으로 몰렸다며 한국의 성교육을 개탄하고 있다. 그는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이중모럴 사회’”라고 진단한다. “공적으로는 너무도 엄숙한 성윤리가 지배하지만, 현실에서는 일상적으로 성이 거래되고 착취되는 사회라고 진단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이들이 사는 사회’가 오늘날 한국사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수많은 성폭력, 성희롱, 성추행, 성접대 사건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김교수의 진단처럼 오늘날 n번방사건을 비롯해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성추행, 성폭력은 성교육의 부재가 만든 결과가 아닐까?

김누리교수는 “독일 교육의 목표는 성숙한 민주주의자, 즉 ‘강한 자아’를 가진 개인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그렇다면 강한 자아는 어떻게 길러내는가? 김교수는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약한 자아”라고 한 말을 소개하면서 ‘약한 자아를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우리의 자아가 너무도 약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강한 자아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조건이며 올바른 성교육은 강한 자아를 만드는 출발점이라는 독일의 성교육. 성적 억압을 통해 죄의식을 내면화시키는 우리나라 성교육. 위선적인 엄숙주의로는 어떻게 건강한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 있겠는가?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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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 가셔서도 계속 싸워 주십시오”

‘통일애국지사 고 안재구 선생 민주사회장’ 엄수
이계환 기자  |  k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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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0  02: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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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영결식장에서 열린 ‘통일애국지사 고 안재구 선생 민주사회장’에서 고인의 남민전 동지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저승에 가셔서도 계속 싸워 주십시오.”

‘통일애국지사 고 안재구 선생 민주사회장’이 9일 오후 7시 30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영결식장에서 열렸다.

이날 추도식에서 고인의 남민전 동지인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추도사에서 “그 누를 길 없는 정열을 익히 알고 있는 저로서는 이제 모든 것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쉬시라는 입에 발린 인사는 드리지 않겠다”며 이같이 요구했다

임 소장은 “그러나 싸우지만 마시고 거기서 만나고 싶었던 그리운 선배 동지 후배들과 가족들과 즐거운 회고담도 펼치시기를 빈다”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독서회 동무들, 대구시절의 인혁당 선후배, 미리 가신 남민전 동지들...”이라고 열거해, 고인이 활동을 하며 만난 동지들을 상기시켰다.

특히 임 소장은 고인이 해방공간에서 최덕출이라는 생애 첫 가명을 시작으로 남민전에서 김대성, 그리고 구국전위 조직사건 때 남광민까지 합해 “일생 동안 3가지 가명을 썼으니 세 사람 몫의 투쟁을 수행하신 셈”이라고 기렸다.

   
▲ 고인의 남민전 동지인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이 고인의 약력소개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앞서, 역시 고인의 남민전 동지인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고인이 걸어오신 길’ 약력소개에서 “선생님께서 운명의 마지막 어느 순간, 머릿속에 입력되었던 남민전 전사의 조직보위 수단의 한 장면을 보여주셨다”며,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있었던 한 사건(?)을 소개했다.

권 명예회장은 “따님조차 알아보시지 못한 상태에서 종이 한 장을 주시며 ‘이 종이를 말아서 입에 삼키시요! 그래야 조직을 지킬 수 있다!’라고 참으로 눈물겨운 장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고인이 눈을 감을 때까지 ‘영원한 조직인’, ‘영원한 남민전 전사’였다는 것이다.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과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의 추도사에 이어 해외에서 재일 한국민주통일연합 등의 조전이 소개되었다.

   
▲ ‘영혼의 춤꾼’ 이삼헌 춤꾼의 추모꿈.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 노래극단 희망새는 고인이 감옥 안에서 만들었다는 ‘철장 안의 봄’ 노래를 불렀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계속해서 ‘영혼의 춤꾼’으로 불리는 이삼헌 춤꾼의 추모꿈에 이어, 노래극단 희망새의 추모의 노래가 이어졌다. 희망새는 고인이 감옥 안에서 만들었다는 ‘철장 안의 봄’ 노래를 불러 새삼 고인을 상기시키며 장내 분위기를 숙연케 했다.

   
▲ 고인의 차남인 안영민 전 <민족 21> 대표는 유족 인사에서 “아버님의 ‘끝나지 않은 길’을 오늘 오신 여러분들과 함께 걸어가겠다”며 결의와 함께 고마움을 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고인의 차남인 안영민 전 <민족 21> 대표는 유족 인사에서 “아버님이 2011년 <통일뉴스>에 연재했던 자서전을 책으로 내면서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는데, 아버님과 얘기를 나누면서 아버님이 아직 해방공간에 계시는구나, 아직 소년시절에 계시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면서 “그래서 자서전 책 제목을 ‘끝나지 않은 길’로 정했다”고 저간의 비화를 소개했다.

안 전 대표는 “이후 아버님께서 못다 쓴 자서전을 계속 쓰려고 했으나 기억상실 때문에 완성하지 못했다”면서 “아버님의 ‘끝나지 않은 길’을 오늘 오신 여러분들과 함께 걸어가겠다”며 결의와 함께 고마움을 표했다.

호상 인사에서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은 고인과의 동향임을 소개하며 “고인은 참지식인으로서의 소명을 다하셨다”고 기렸으며,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장례일정을 성의껏 진행한 일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 이날 추도식에는 고인이 몸담았던 남민전 동지회를 비롯해 통일사회단체 인사들 150여 명이 참석해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정용일 전 <민족 21> 편집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도식에는 고인이 몸담았던 남민전 동지회를 비롯해 통일사회단체 인사들 150여 명이 참석해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엄수되었다.

한편, ‘신념의 쪽배로 분단을 헤쳐온’ 통일원로이자 수학자인 안재구 선생은 지난 8일 새벽 요양원에서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0일 오전 6시 발인 후, 운구는 장지인 경남 밀양 선영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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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연대 “세월호참사 국가책임 세력이 죗값 치를 때까지 싸우겠다”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0/07/0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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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국가책임 세력들이 충분한 죗값을 치룰 때까지 진실과 정의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이는 '세월호 보고조작' 혐의가 있는 김기춘에게 집행유예, 김장수·김관진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세월호 유가족의 일성이다.  

 

▲ 9일 '세월호 보고조작' 혐의가 있는 김기춘에게 집행유예, 김장수·김관진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재판이 끝난 뒤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들이 죗값을 치를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제공-4.16연대]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는 9일,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선고공판에서 양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과 같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한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1심과 같이 무죄, 공용서류 손상 등 혐의로 기소된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도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이하 4.16연대)는 긴급논평 ‘세월호참사 컨트롤타워에게 면죄부를 준 재판부 규탄’을 발표했다. 

 

4.16연대는 논평에서 “오늘 우리는 서울고등법원 제13형사부 사법농단 세력의 횡포를 몸소 겪었습니다. 오늘 재판 결과에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라며 참담함을 표했다. 

 

4.16연대는 김기춘, 김장수, 김관진이 304명 국민의 생명 구조를 방기해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이며, 참사 후에도 박근혜 독재권 보호를 위해 박근혜 7시간 죄행을 은폐, 조작하고 진상규명 조사와 책임자처벌 수사를 방해했던 특대형 범죄자라고 규정했다. 

 

4.16연대는 “오늘 재판부가 이 자들에게 내린 판결은 분명 면죄부”라며 “국가권력 집단은 모두 치외법권 세력들인가”라며 한탄했다. 

 

4.16연대는 검찰에게 김기춘, 김장수, 김관진 이 자들을 즉각 상고할 것을 요구하며, 진실과 정의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4.16연대 긴급논평 전문이다.

 

---------------아래----------------------

 

[긴급논평] 세월호참사 컨트롤타워에게 면죄부를 준 재판부 규탄

 

오늘 고등법원 제13형사부(사건번호 2019노1880, 재판장 구회근)에서 국정농단 세력 김기춘, 김장수, 김관진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있었습니다.

 

김기춘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김장수, 김관진 무죄!

 

2심 재판부 역시 1심 재판부 선고 결과와 다를 바 없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범행이 아니었고, 1심 재판부가 적절하게 잘 판단했다는 게 판결의 주요 요지였습니다. 선고심 재판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서울고등법원 제13형사부 사법농단세력의 횡포를 몸소 겪었습니다. 오늘 재판 결과에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세월호에 타고 있던 476명의 국민 중 304명의 국민이 희생된 참사 현장을 생중계로 목격했습니다. 김기춘, 김장수, 김관진 이 자들은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최고위급으로 컨트롤타워 위치에 있던 자들입니다. 이들은 304명 국민의 생명 구조를 방기해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참사 당시뿐만 아니라 참사 후에도 박근혜 독재권 보호를 위해 박근혜 7시간 죄행을 은폐, 조작하고 진상규명 조사와 책임자처벌 수사를 방해했던 특대형 범죄자들입니다. 또한 국가권력 기구를 동원해 국민 여론을 조장해 대한민국 국민을 기만했던 자들입니다.

 

오늘 재판부가 이 자들에게 내린 판결은 분명 면죄부입니다.

 

국가권력 집단에게는 대한민국 헌법이 아닌 다른 법이라도 있단 말입니까? 

 

국가권력 집단은 모두 치외법권 세력들입니까? 

 

오늘 서울고등법원 구회근 재판부의 판결은 국가 최고권력층이 독재자 보호라는 미명 아래 권력 기구를 동원해서라도 304명 국민에 대한 살인 범죄의 진실을 감추고, 왜곡시켜도 용인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해 준 판결입니다. 

 

우리는 오늘 판결을 결코 인정할 수 없으며 재판부의 사법농단 행태를 규탄합니다. 

 

검찰은 김기춘, 김장수, 김관진 이 자들을 즉각 상고하십시오. 검찰은 더욱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심판의 잣대로 대법원에서 심판 할 수 있도록 즉각 상고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오늘 선고를 받은 김기춘, 김장수, 김관진과 1심 재판을 함께 받은 윤전추를 포함해 현재까지 세월호참사 관련 78명 범죄혐의자를 검찰에 고소고발했습니다. 오늘 재판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세월호참사 국가책임 세력들이 충분한 죗값을 치룰 때까지 진실과 정의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2020년 7월 9일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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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박원순 시장 발견 현장, 타살 정황 없고 유서도 없다"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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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0/07/10 05:03
  • 수정일
    2020/07/10 05:03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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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신] 새벽 2시 서울 와룡공원 현장 브리핑... 시신, 현장 감식 마치고 서울대병원 안치

20.07.09 19:10l최종 업데이트 20.07.10 04:22l

 
구급차로 옮겨지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신 10일 0시 1분경 서울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경찰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 구급차로 옮겨지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신 10일 0시 1분경 서울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경찰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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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로 옮겨지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신 10일 0시 1분경 서울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경찰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 구급차로 옮겨지는 박원순 서울시장 시신 10일 0시 1분경 서울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경찰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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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전 북악산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구급차량이 응급의료센터앞에 도착해 있다.
▲  10일 오전 북악산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구급차량이 응급의료센터앞에 도착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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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전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운구한 구급차량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도착해 있다.
▲  10일 오전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운구한 구급차량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도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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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신 : 10일 오전 4시 20분]    
박원순 시장 시신, 서울대병원 안치...일부 지지자들 눈물

10일 오전 0시 1분, 서울 북악산 인근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이 3시간 가량의 현장 감식을 마치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박 시장을 호송한 구급차는 이날 오전 3시 18분께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했다. 경찰 20여 명이 응급의료센터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고 구급차를 둘러쌌다. 양복을 갖춰입은 30여 명의 서울시 관계자들은 박 시장의 시신이 이송되는 것을 바라봤다. 구급차의 문이 열리자 일부 지지자들은 "아이고 박원순", "사랑한다 박원순" 등을 외치며 눈물을 보였다. 한 시민은 "박원순"을 외치다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반면, 보수 유투버 50여 명은 음모론을 제기하며 "죽었으면 모습을 보여줘라"라고 소리치며, 라이브 생방송을 진행했다.

향후 경찰은 유족과 협의해 시신 부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박 시장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5신 보강 : 10일 오전 3시40분]
경찰의 와룡공원 현장 브리핑 "타살 정황 없고 유서도 없다"


전날 실종됐다가 10일 숨진 채 발견된 박 시장에 대해 경찰은 "타살 정황은 없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전 2시 와룡공원 앞에서 브리핑에 나선 최익수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은 "실종신고를 받고 7시간 동안의 대대적인 수색을 진행하여 7월 10일 00시 01분경 북악산 성곽길 인근 산 속에서 (박 시장을) 사망한 채로 발견했다"며 "CCTV 동선 분석을 통해 동선을 파악 중에 있으며, 향후 변사사건 처리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과장은 발견 지점은 "숙정문과 삼청각 중간 정도"라고 설명했고 "소방 인명구조견이 박 시장의 시신을 먼저 발견하고 소방대원과 경찰 기동대원이 뒤따라가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이 발견된 현장에서는 가방과 휴대전화, 명함, 필기도구 등의 유류품도 함께 발견됐다. 유서는 없었다고 한다. 브리핑 당시 박 시장의 시신은 발견된 현장에서 감식을 진행중이었고, 시신에 별다른 손상 없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다고 최 과장은 밝혔다.

타살 여부에 대해 최 과장은 "현재로서는 특별한 타살 흔적이 없어 보이지만 변사사건 처리 절차에 따라 좀 더 수사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망 유형을 묻는 질문에는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고려해 유족과 상의한 뒤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숨진 시간을 어느 정도로 추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CCTV 동선을 분석하고 있고, 세부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향후 종합적인 수사가 진행된 후에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구체적으로 서울 가회동 공관에서 오전 10시 44분쯤 나와 CCTV에 오전 10시 53분 경 와룡공원 뒤쪽에서 걸어가는 모습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의 와룡공원까지의 이동 동선과 관련해서 경찰은 "(박 시장이) 공관에서 와룡공원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한 후 도보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피소 건과 관련해 박 시장 본인에게 소환 통보를 내렸냐는 질문에 최 과장은 "일단 서울청에 박원순 시장 고소장이 접수 되었고, 수사 중에 있는데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검시가 끝나는 대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박 시장 시신을 인계해 빈소가 마련되도록 할 계획이다.

한편, 브리핑 현장에는 50명이 넘는 취재진을 비롯해 인근 주민과 보수 성향 유튜버 5~6명이 모여 라이브 생방송을 진행했다.
 
 1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에서 최익수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이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1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에서 최익수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이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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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에서 최익수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이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1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에서 최익수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이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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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신 보강: 10일 오전 1시 14분]
수색 7시간만에 박원순 시장 숨진채 발견


실종됐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오전 0시01분경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 오후 5시 30분부터 북악산 일대를 6시간30분여 수색한 경찰은 박 시장이 "삼청각 인근 산 속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망 경위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여러 정황상 박 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 시장의 딸은 전날 오후 5시경 "박 시장의 전화기가 꺼져있고 소재 파악이 안 된다"라며 112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박 시장의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서울 성북구 일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다. 이날 저녁 일부 언론에서는 박 시장에 대한 성추행 혐의 고소장이 경찰에 접수됐다고 보도했다.

상세한 내용은 오전 2시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이 브리핑할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신고된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1차 수색을 마친 경찰이 수색을 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신고된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1차 수색을 마친 경찰이 수색을 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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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신고된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1차 수색을 마친 경찰이 수색을 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신고된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1차 수색을 마친 경찰이 수색을 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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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 9일 오후 10시 40분]
1차 수색 성과 없어... 경찰-소방당국, 2차 수색 돌입


9일 오후 10시 40분 현재, 경찰과 소방당국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실종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가짜뉴스'가 지속적으로 전파되고 있으나, 경찰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재차 확인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오후 5시 30분부터 경찰 428명, 소방 157명 등 총 580여 명을 동원해 수색에 나섰다. 경찰견과 소방견뿐만 아니라 드론과 서치라이트 등 야간 수색용 장비 등도 동원됐다. 그러나 오후 9시 30분경 별다른 성과 없이 1차 수색을 마쳤다. 80여 명을 추가 투입해 오후 10시 30분부터 미진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2차 수색에 돌입했다. 2차 수색에서도 찾지 못할 경우 오는 10일 동이 틀 시간에 맞추어 수색을 재개할 계획이다. 2차 수색 종료 시점은 아직 미정이다.

오전 10시44분 가회동 관사에서 외출... 10시53분 와룡공원 CCTV 포착
텔레그램 마지막 접속 시각 오후 1시44분
휴대폰 마지막 신호는 오후 3시49분 포착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신고된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1차 수색을 마친 경찰이 수색을 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신고된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1차 수색을 마친 경찰이 수색을 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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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실종신고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경찰과 소방 인력의 수색이 진행되고 있다.
▲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실종신고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경찰과 소방 인력의 수색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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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신고된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1차 수색을 마친 경찰이 수색을 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신고된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1차 수색을 마친 경찰이 수색을 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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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오전 10시 44분,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자리한 관사에서 나와 외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시장은 어두운 색 점퍼, 검은 바지, 회색 신발과 검은 모자를 착용하였으며, 등에는 검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약 4분 뒤인 오전 10시 48분에는 인근 주민센터 앞에 서 있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 화면에 잡혔다. 이후 10시 53분에는 와룡공원에 도착하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됐다.

박 시장의 텔레그램 ID의 마지막 접속 시간은 오후 1시 44분으로 뜬다. 이후 박 시장 휴대폰의 마지막 신호가 기지국에 잡힌 것은 오후 3시 49분이었다. 위치는 성북동 핀란드 대사관저 인근이었다.

또한, 경찰은 박 시장의 유서가 공관에서 발견됐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 역시 부인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일부 보도에서 '유서가 발견됐다' 혹은 신고 과정에서 유서가 언급됐다 등의 내용이 나왔다"라며 "신고자의 구체적인 신고 워딩은 확인해 줄 수 없고, 현재까지 경찰이 유서를 발견한 적은 없다"라고 밝혔다. 아직 "유서의 존부(存否)가 확인된 바는 없다"라는 것.

연락 닿지 않은 박원순계 의원들... 미래통합당 "엄중한 시국, 언행에 유념"

한편, 정치권은 충격 속에서 현 상황을 엄중히 바라보고 있다.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에게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민주당 역시 보도를 통해 이번 사건을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여러모로 엄중한 시국"이라며 "모쪼록 우리 의원님들께서는 언행에 유념해 주시기를 각별히 부탁드린다"라고 당부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신고된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1차 수색을 마친 경찰이 수색을 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신고된 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와룡공원 일대에서 1차 수색을 마친 경찰이 수색을 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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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9일 오후 8시 6분]
경찰 "시신 발견은 오보"


서울지방경찰청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일부 매체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공지했다.

서울시경은 9일 오후 7시 20분 경 기자단 공지를 통해 경찰 측이 박원순 시장의 "시신 발견을 확인해줬다는 보도는 오보"라고 밝혔다.

박 시장을 찾기 위해 경찰 2개 중대와 형사팀, 드론, 경찰견 등이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과 주한 핀란드대사관, 성북구 삼청각 일대를 수색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6일 서울 시민청에서 열린 민선7기 2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6일 서울 시민청에서 열린 민선7기 2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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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 9일 오후 7시10분]
'박원순 서울시장 실종' 가족 신고에 경찰 소재 파악중
9일 오전 참모들과 회의한 뒤 오후 면담 일정 취소


경찰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됐다'는 가족의 신고를 접수하고 소재 파악에 나섰다.

서울시와 경찰에 따르면, 박 시장 딸은 이날 오후 5시를 넘어 "박 시장의 전화기가 꺼져있고 소재 파악이 안 된다"라며 112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박 시장의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서울 성북구 일대를 중심으로 행방을 쫓고 있다.

박 시장은 이날 오전 시청에 출근하지 않고 공관에서 참모들과 정례 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4시 40분에는 김사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과 면담이 예정돼 있었는데 면담 6시간 전 시청 대변인실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일정이 취소됐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기자들에게 알렸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6층 비서실로부터 '시장 몸이 편찮다'는 취지의 얘기를 듣고 일정을 취소했다. 저희도 정확한 사실 관계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오후 7시 현재 서울시청 6층에 있는 시장실, 정무수석실, 공보특보실 등은 직원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다.

 

태그:#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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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년부터 의대 정원 늘려…10년간 의사 4천명 충원

등록 :2020-07-09 04:59수정 :2020-07-09 07:22

 

 

의사 인력 확대’ 정부 방안 입수

팬데믹 대비·지역의료 확충 위해
내년 고3부터 매년 400명 증원
지방 의무복무 특별전형 3천명
역학조사관·기초연구 등 1천명

‘공공의대’는 전북권에 설립키로
이달 발표…의사협 큰 반발 예상
2일 오전 대전시 동구 천동 천동초교 운동장에서 의료진들이 쉴틈 없이 학생들의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전 대전시 동구 천동 천동초교 운동장에서 의료진들이 쉴틈 없이 학생들의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총 4천명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역의사 특별전형’ 등의 방식으로 의대 정원을 연평균 400명씩 늘리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과 지역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인데, ‘정원 늘리기’에 반대해온 대한의사협회 등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8일 <한겨레>가 입수한 정부의 ‘의료인력 확대 방안’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중증·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무 복무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지역의사’ 3천명 △역학조사관과 중증외상, 소아외과 등 특수한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의사 500명 △기초과학 및 제약·바이오 연구인력 500명 등 총 4천명의 의사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의료인력 확대 방안’은 지난 6월2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논의됐고, 보건복지부가 의대 정원 배분을 담당하는 교육부와 협의를 마치는 대로 당정 협의를 거쳐 이달 중에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지방에서 근무할 의사는 ‘지역의사 특별전형’ 방식으로 각 의대에서 뽑게 된다. 장학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해당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고, 그러지 않으면 의사면허를 취소·중지할 계획이다. 지역의 우수한 인재를 우선 선발해 10년가량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등의 세부내용을 검토 중이다. ‘특수 전문인력’은 희망하는 대학의 계획을 심사한 뒤에 대학마다 정원을 배정한다. 다만 인력양성 실적을 평가해, 미흡하면 정원 배정이 취소될 수 있다.

정원 확대와 별개로 ‘의대 신설’ 방안도 추진된다. 국가가 공공의료 분야에서 일할 의사를 직접 양성하는 ‘공공의대’는 폐교한 서남대 의대 정원(49명)을 활용해 전북권에 설립할 예정이다. 장기 군의관 20명도 위탁받아 정원 70명 규모로 운영한다. 국가가 학생 선발부터 교육, 공공병원 등에서의 의무 복무, 지역정착 등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공공의대 설립 문제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 광역자치단체 17곳 가운데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전남 지역의 의대 신설 문제는 ‘전남도 내부에서 지역을 결정한 뒤에 별도 검토’하기로 했다.

의대 신설 및 정원 확대는 김영삼 정부 이후로 20년 넘게 묶여있던 사안이다.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의사 파업 결과, 의대 정원은 3253명에서 3058명(2006년)으로 오히려 감축된 바 있다. 우리나라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2.3명(2017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평균 3.4명) 최하위 수준이다.

클립아트코리아.
클립아트코리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952889.html?_fr=mt1#csidx094d2bafa7da9a089dc86e5ce28ca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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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당 대표 임기 질문에 이낙연 의원의 ‘묘한’ 답변

이낙연 vs 김부겸 양자대결로 굳어진 민주당 전당대회
 
임병도 | 2020-07-09 09:27: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7월 7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은 오전부터 몰려드는 취재진들로 북적였습니다. 오후 2시로 예정된 이낙연 의원의 민주당 당 대표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앞두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낙연 의원이 대권 주자 여론 조사 1위를 달리고 있었던 탓에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유튜버도 간혹 눈에 띄었습니다. 이낙연 의원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새삼 알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2시를 5분여 남기고 기자회견장에 입장한 이낙연 의원은 기자석에 앉아 있는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단상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아직 시간이 남았다는 얘기에 다시 기자석으로 갔다가 정각에 출마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당 대표 임기 질문에 이낙연 의원의 답변은?

 

 

이낙연 의원이 약 10여분에 걸쳐 발표한 출마 선언문의 요지는 ‘국난 극복’이었습니다. 이 의원은 당 대표 출마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고 “저는 민주당과 저에게 주어진 국난극복의 역사적 책임을 이행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다며 출마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이 의원이 ‘국난 극복’을 말했지만, 사실 기자들의 관심은 대권 도전이었습니다. 실제로 출마 선언이 끝난 뒤 가진 백브리핑 시간에서도 당 대표 임기에 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기자: 당권과 대권 분리 조항 때문에 내년 3월에 그만둬야 하는데 이 의원이 생각하는 임기는 언제까지이신지요?

이낙연 의원: 임기요? 현재로서는 당헌 당규를 그대로 지켜야지요. 임기도 존중해야 되고 대선에 출마할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연히 존중돼야 되겠죠.

이낙연 의원은 당권과 대권 분리 조항에 따른 당 대표 임기 질문에 일단은 당헌 당규를 따르겠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임기와 함께 대선에 출마할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도 존중해야 한다며 여지를 남겼습니다.

기자: 앞의 질문과 연장 선상에서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모레 출마 예정인데 당 대표가 되면 2년 임기를 채우겠다고 했습니다. 김부겸 의원과 같은 입장이신지요?

이낙연 의원: 제가 그렇게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김부겸 의원의 충정은 존중합니다.

당 대표 임기에 대한 답변이 모호하자, 다른 기자가 재차 김부겸 의원이 공식적으로 2년 임기를 채우겠다고 밝혔다며 “김부겸 의원과 같은 입장이냐”며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이 의원은 “제가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없다”라며 자신은 김부겸 의원과는 다른 입장임을 밝혔습니다.

약간 묘한 답변이었지만 결론은 이낙연 의원은 내년 3월까지만 당 대표를 하고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당헌 당규를 바꿔 당 대표를 계속하는 부분은 당내 분위기와 여론 등을 보면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낙연 vs 김부겸 양자대결로 굳어진 민주당 전당대회

민주당의 당 대표를 선출하는 8.29 전당대회는 ‘이낙연 vs 김부겸’ 양자대결로 굳어졌습니다. 당권주자로 거론됐던 우원식, 홍영표 의원이 전당대회에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전당대회가 이낙연 의원의 압승으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럴 경우 전당대회에서 대선으로 이어지는 흥행몰이가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김부겸 전 의원이 당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 전 의원은 당 대표 출마를 민주당 여의도 당사에서 한다고 합니다. 대권보다는 당을 먼저 생각하는 후보를 강조한다는 표현입니다. 여기에 김부겸 전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꼬마 민주당에 남아 있었다는 부분을 강조하며 노무현 정신을 잇는 인물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또한, 당내 이낙연 견제 세력을 연합해 대결에 나서겠다는 전략도 엿보입니다.

대선 주자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대세론에 따라 이낙연 의원이 압승할 지, 당권과 대권은 분리해야 한다는 안정론에 표가 갈지는 아직까지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다만, 두 사람의 대결이 일방적으로 끝나기보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져야 대선까지도 국민들의 관심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바로보기:기자들의 당 대표 임기 질문에 이낙연 의원의 ‘묘한’ 답변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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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손 든 윤석열 "중앙지검이 검언유착 수사"... 법무부 "국민 바람에 부합"

일주일만에 추미애의 완승으로 끝난 '수사지휘권 대립'... 그래도 뒤끝 불씨 남긴 대검20.07.09 09:31l최종 업데이트 20.07.09 10:33l선대식(sundaisik)

[기사 보강 : 9일 오전 10시20분]  

 검사장회의, 수도권 지검장 회의, 전국지방청 검사장 회의가 열릴 예정인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  검사장회의, 수도권 지검장 회의, 전국지방청 검사장 회의가 열린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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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검언유착 의혹사건을 총장에 지휘 없이 독립적으로 수사하게 됐다. 사상 두번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하며 일주일을 끌었던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은 추 장관의 완승으로 끝나게 됐다.

대검찰청은 9일 오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팀이 채널A 기자-한동훈 검사장 유착 의혹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고 밝혔다. 윤 검찰총장이 추 장관의 수사 지휘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최종 입장을 낸 것이다. 이에 법무부는 "만시지탄"이라면서도 "공정한 수사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에 부합"한다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윤 총장은 추 장관의 지휘권을 존중한다면서도 독립적 수사본부 구성을 제안했지만, 추 장관은 1시 40분 만에 거부 의사를 밝히며 팽팽히 대립한 바 있다.

대검찰청 대변인실은 9일 오전 8시 41분 아래와 같은 입장을 취재진에 전달했다.
 

채널A 사건 관련입니다.
수사지휘권 박탈은 형성적 처분으로서 쟁송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한 지휘권 상실이라는 상태 발생.
결과적으로 중앙지검이 자체 수사하게 됨.
이러한 사실 중앙지검에 통보필.
총장은 2013년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의 직무배제를 당하고 수사지휘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음.


결국 추 장관이 발동한 수사지휘권을 모두 수용한다는 뜻이다. 또한 윤 총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에 따라 2005년 상황과 달리 2020년 두번째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행사는 15년 전과는 달리 검찰총장의 '항의성 사표' 없이 수용되는 것으로 결론 날 것으로 보인다.

대검 관계자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총장의 지휘권은 이미 상실된 상태(형성적 처분)가 됐다"면서 "결과적으로 장관 처분에 따라 이 같은 상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중앙지검이 책임지고 자체 수사하게 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내용을 오늘 오전 중앙지검에도 통보했다"라고 밝혔다.

입장문 후반에 불씨 남긴 대검 "2013년 국정원 사건 때도... 법무부가 요청해놓고..."

하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위 대검 입장의 말미에서 2013년 국정원 사건 당시를 언급한 것이 눈에 띈다. 즉, 윤 총장을 현재 자리에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을 굳이 소환해서 '부당한 핍박'이라는 이미지를 겹쳐지게 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또한, 대검은 입장문 말미에 추미애 장관이 거부한 독립적 수사본부 구성을 두고 법무부가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밝혀 '논란 2라운드'가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지휘권 발동 이후 법무부로부터 서울고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독립 수사본부 설치 제안을 받고 이를 전폭 수용하였으며 어제 법무부로부터 공개 건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음.


즉, 법무부가 뒤에서는 독립적 수사본부 구성을 제안했으면서, 이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자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법무부 "실무진 검토일 뿐, 장관에게 보고된 바 없어"

하지만 이에 대해 법무부는 "대검 측으로부터 서울고검장을 팀장으로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법무부 실무진이 검토하였으나, 장관에게 보고된 바 없고, 독립수사본부 설치에 대한 언급이나 이를 공개 건의해 달라는 요청을 대검 측에 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대검의 입장 발표가 나온지 약 1시간 20분 후인 오전 10시 경 법무부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법무부는 "만시지탄"이라면서도 "이제라도 장관의 지시에 따라 수사 공정성 회복을 위해 검찰총장 스스로 지휘를 회피하고 채널A 강요미수 사건 수사팀이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결정한 것은, 공정한 수사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 당시에 총장이 느꼈던 심정이 현재 이 사건 수사팀이 느끼는 심정과 다르지 않다고 총장이 깨달았다면 수사의 독립과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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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시 "함께 부르는 노래"- 안재구 선생님 영전에

추도시 "함께 부르는 노래"- 안재구 선생님 영전에

 

황선 | 기사입력 2020/07/0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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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란 기자

 

함께 부르는 노래 

- 안재구 선생님 영전에 바칩니다 -

 

-황선

 

조금 덜 총명했다면,

조금 덜 용감했다면,

조금 더 편한 인생을 사셨을까요.

 

어느 학교도 별나게 총명한 당신에게

순순히 졸업장을 내주지 않았지만

당신은 스스로 배움의 길을 찾고

스스로 교과서가 되셨습니다. 

스스로 큰 스승이 되셨습니다. 

 

수학과 철학 너머

가장 높은 깨달음의 봉우리에

자랑스런 민족과 

숱한 도전에 응수하며 

세상을 진보시켜온 사람이 있었노라고

모두를 대신해 깨우친 사람.

 

옥바라지 하며 아이를 키워내던

당신의 아내가 떠오르신다며

힘 내라 하셨죠. 

광장의 아이들에게선 

직접 안아주지 못하며 키운 

당신의 아이들을 보셨지요. 

그리고...

형장에서 감옥에서 이슬처럼 사라진 

아까운 사람들을

그리워 하셨죠. 

매일매일 그리운 사람들을 

그리워 하셨죠. 

 

그리움은 많아도 후회 없는 삶이라고

당신은 우리를 응원하셨습니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안부에

도리를 맡기고

조금만 더 견뎌달라고

아쉬운 기도만 더 한 한심한 세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름날 유독 별이 밝은 새벽을 택해 가신

당신의 치열했던 삶과 그리움을

기쁘게 이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 

7월 하늘에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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