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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통일 새시대, ‘투쟁’없이 오지 않는다

[기고] 자주통일 새시대, ‘투쟁’없이 오지 않는다- 평화와 번영,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이하며
  • 엄미경 민주노총 부위원장
  • 승인 2019.04.23 09:32
  • 댓글 0
 

“지금 정세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도 같다”

지난해 4.27판문점선언이 발표된 직후, 6.15공동위원회 만남의 자리에서 북측 대표들이 호소한 말입니다. 그리고 8.12남북노동자 대표자회의에서도 북측 노동자들은 “조선(한반도)의 정세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남북노동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긴장을 놓지 않았습니다.

4.27판문점선언 이후, 1천여 건에 이르는 남북 민간자주교류 사업제안서가 전달되었지만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와 ‘새해맞이 금강산 상봉모임’외에는 이렇다 할 민간자주교류는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이는 북측 동포들이 그토록 우려했던 것이 무엇인지 현실적으로 체감하게 합니다. ‘평화와 번영, 자주통일 새 시대’는 그저 오지 않습니다. 올 해 2월, 하노이 회담(2차 북미정상회담)의 파탄은 이런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미국은 본질적으로 ‘최고의 압박’이라는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동북아 전초기지로써 한국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국방전략은 2019년 국방수권법(NDAA)에 올곧이 담겨져 있습니다.

미국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에서도, 세계 그 어디에서도 ‘평화’는 요원합니다. 세계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 군사적 패권을 결코 놓지 않는 나라, 그런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그저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한반도 대전환의 정세는 다시금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의 내정간섭은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태도인데, 문재인 정부는 판문점 선언 1조1항 ‘민족자주의 원칙’을 져버리고 ‘한미동맹 강화’의 길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북미관계에서의 ‘중재자 역할’ 타령만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운명에서는 남도, 북도 결코 제3자가 될 수 없으며 ‘중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운명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며, 우리 민족의 운명도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직접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 4.27판문점선언의 핵심 정신입니다.

지난해 11월에 만들어진 이른바 ‘한미워킹그룹’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 총독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외교부는 미국의 요구대로 ‘남북관계발전 속도조절’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대북제재 이행을 담당하는 조직에서 ‘제재수출 통제팀’을 분리해 별도의 ‘과’로 승격하는 등 체계개편을 통한 대북제재 역할을 더욱 확대해 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정신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방해 책동’이 노골화될수록 촛불혁명으로 다 죽어가던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수구보수 세력도 다시 자기들의 세상을 만난 듯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5.18 등 민중항쟁의 역사를 왜곡하고 남북대결과 반북이데올로기를 조장하는 등 반평화 반통일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 눈치 보랴, 일본 눈치 보랴, 자한당을 비롯한 수구보수세력의 눈치 보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새로운 평화와 번영, 자주통일 걸음걸음을 망설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민’이 앞장 서 나가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노동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실천적이고 투쟁적이며 조직적인 곳이 민주노총입니다. 또한 남북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 정신도 가장 실천적입니다. 우리는 그 이름 그대로 자랑스러운 ‘노동계급’입니다. 노동계급은 온갖 도전과 난관에서도 ‘결코 자기운명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투쟁의 상징입니다.

오는 4월27일 판문점선언 1주년에, 멈춰 선 평화와 번영, 자주통일의 시계를 다시 돌리고 움직이게 하는 거대한 힘을 만들어 냅시다. 4.27판문점선언 1주년에 임진각에서 우리 노동자가 판문점선언 1조 1항 ‘민족자주의 원칙’을 선언합시다.

평화와 번영, 자주통일 새 시대는 투쟁 없이 결코 오지 않습니다. ‘조만간 정세가 풀리겠지, 북미 간, 남북 간 물밑접촉이 있겠지’ 등의 근거 없는 낙관과 환상과는 단호히 결별하고 오로지 ‘실천과 투쟁’으로 대북제재 등 미국의 방해책동을 분쇄하고 남북공동선언을 지켜냅시다. 아울러 남북공동선언 이행의 길에 더 많은 민중들과 연대하고 실천함으로써 ‘항구적 평화체제의 정착’과 노동자가 주인 될 ‘자주통일’의 새 세상을 열어냅시다.

 

엄미경 민주노총 부위원장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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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강제수용 법안만 110개…80대 촌로 “내 땅 4번 뺏겨” 울분

등록 :2019-04-22 05:00수정 :2019-04-22 07:24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⑥빼앗는 자를 위한 ‘토지보상법’
일생에 4번 토지를 강제 수용당한 이기인씨.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사는 이씨는 땅을 5번째 강제수용당할 위기에 놓이자 지난해 3월30일 ‘대통령님, 도와주세요’라는 팻말을 옆에 세워두고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에 나섰다. 토지난민연대 제공
일생에 4번 토지를 강제 수용당한 이기인씨.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사는 이씨는 땅을 5번째 강제수용당할 위기에 놓이자 지난해 3월30일 ‘대통령님, 도와주세요’라는 팻말을 옆에 세워두고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에 나섰다. 토지난민연대 제공

 

[탐사기획] 여의도 농부님, 사라진 농부들

 

64만6706㎡. 국회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이 보유한 농지 면적이다. 그들의 농지는 자신의 개발 공약과 가까웠고, 예산을 확보해 도로를 내거나 각종 규제 해제에 앞장서면서 땅값이 뛰었다.

 

2526.1㎞. 5개월간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찾아다닌 거리다. 풀이 허리만큼 자라도록 버려진 땅, 씨앗이 심기지 않은 논과 밭이었다. 전체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농지를 보유한 의원은 33%다.

 

1549.4㎢.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서울과 인천을 합친 규모의 농지가 사라졌다. 값싼 땅이 새도시, 산업단지 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외지인들은 개발 예정지 인근을 사들였고, 농부는 그 땅의 소작농이 되었다. 땅을 잃은 농부들은 더 값싼 경작지를 찾아 떠났다. 의원은 농지를 왜 매입했을까. 국회의원 소유 농지를 둘러싼 이해충돌 문제와 사라진 농부들의 사연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처음에는 골프장 반대 운동으로 시작했는데,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을 바꾸지 않고서는 전국에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국토교통부는 전국적으로 이뤄지는 토지 강제수용 등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고 있지 않아요. 국토부 주무관한테 이 문제를 지적하니까 ‘그럼 나라가 흔들린다’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11월30일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 자택에서 만난 박성율 목사가 말했다. 토지를 강제수용당한 30여개 피해 주민 대책위원회 등과 연대해 ‘토지난민연대’를 구성한 박 목사는 회원들과 번갈아 일주일에 서너번 홍천에서 서울로 이동해 청와대 앞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6일 495일째 청와대 앞에 섰다. 박 목사가 거리에 서게 된 계기는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대표이사를 지낸 법인 ‘원하레저’의 골프장 조성 사업이었다. 목회를 잠시 접고 내려간 고향 홍천에서는 2008년부터 골프장 인허가가 이뤄지고 있었다.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이 골프장을 공공·문화체육시설로 규정해 민간 건설업자들도 토지 소유자 80%의 동의를 받으면 나머지 소유자들의 집과 땅을 강제수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골프장 시행자들은 사업 기간을 단축하려 불법으로 농민들의 조상 묘지를 파헤쳤고, 토지를 강제수용당한 농민들은 평생 살아온 마을을 떠나야 했다.

 

박 목사가 이끄는 ‘토지난민연대’ 회원 가운데 일생에 네번의 강제수용을 겪은 할머니도 있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화지리에 사는 이기인(85)씨는 1994년, 2001년, 2004년, 2009년 각각 기획재정부, 국방부에 농토를 강제수용당했다. 그런데 2015년 철원군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철원 노동당사’ 인근에 조성된 공원을 확장하기로 결정하면서 논 1700평을 또다시 수용당할 위기에 놓였다. 5번째 강제수용을 거부한 이씨는 “60년간 보유한 내 피와 땀 같은 땅”이라며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는 등 억울함을 호소하며 버티고 있다. 이씨의 딸 유경림씨는 “군청 누리집에 공고하는 것으로 사업이 확정됐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군청에 가서 따지고 버티시니까 군청 공무원이 업무방해로 고소한다고 하더라. ‘그 땅 몇푼이나 (주고) 샀어요?’라고 하면서. 그게 법이라더라. 법 위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 위에 법이 있다”고 토로했다.

 

토지보상법 말고도 110개의 개별법으로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한 제도에 반대하며 495일째 1인시위를 하는 박성율 목사. 지난 6일에도 자택인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를 나서 청와대 앞에 섰다. 박성율 목사 제공
토지보상법 말고도 110개의 개별법으로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한 제도에 반대하며 495일째 1인시위를 하는 박성율 목사. 지난 6일에도 자택인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를 나서 청와대 앞에 섰다. 박성율 목사 제공

 

■ 9년간 공공기관이 수용한 토지만 1106㎢

 

‘관광진흥법’ ‘마리나항만의 조성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역세권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이 법률들의 공통점은 사업 시행자가 지방자치단체장의 인허가를 받으면 민간인의 토지를 강제수용해 개발 사업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골프장뿐 아니라 레저시설, 호텔 등 민간사업 시행 과정에서 토지가 강제수용된다.

 

국토부는 강제수용 면적 등 관련 통계를 제대로 집계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 규모도 가늠하기 어렵다. 민간사업자의 수용으로 인한 토지 면적, 수용당하는 인구 등은 아예 제대로 된 통계가 없다. 그나마 한국토지주택공사, 철도공사 등 공공기관이 수용하는 면적만 집계된다. 지난해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08~2016년 공공기관이 수용한 토지는 1106㎢로, 여의도의 132배에 이른다. 보상금액은 132조3297억원으로 지난해 정부 총지출 예산 428조8000억원의 30.8%에 이른다. 이 의원은 “토지 수용으로 영향을 받은 인구는 9년간 288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관계자는 “경험치상 국가 시설 조성으로 수용하는 땅은 대다수 농지나 임야”라고 말했다. 대다수 피해자가 농민인 셈이다.

 

 

이기인 할머니의 ‘강제 수용’ 인생

 

1994년부터 2009년까지
기획재정부에 국방부에… 
이번엔 논 1700평 또 수용될 위기
철원군청에 따지니 고소 운운
이씨 딸 “사람 위에 법 있더라”

 

공익성 검증 부실한 ‘토지수용 법안’

 

한해 3000건 토지수용 사업 중
국토부 ‘사업 인정’은 7.1건 꼴
폭넓은 예외 인정에 공익성 ‘뒷전’
공공기관 9년간 여의도 132배 수용
최소 49개 법안 ‘민간 강제수용’ 허용

 

시·군청 공고로 끝… 졸지에 ‘토지난민’

 

지자체 누리집에 일방적 사업공고
주민들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아
이의제기도 못하고 보상금 협상만

 

국민의 재산권 보장을 명시한 헌법 23조는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토지보상법 4조는 “국방·군사시설, 철도, 도로, 공항 등에 관한 사업” 등 강제수용이 가능한 공익사업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다만 4조 8항에서 토지보상법이 아닌 개별법에서도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데, 문제는 이런 법률이 110개나 된다는 사실이다. 토지보상법 외에 강제수용이 가능한 개별법은 2000년 43개였으나 의원 발의 등으로 점차 증가해 2019년 현재 110개에 이르렀다. 110개 가운데 상당수가 민간사업자의 토지 수용을 허용한다. 2013년 연구보고서 <우리나라 수용 법제에 대한 법경제학적 검토>를 낸 이호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낸) 당시 개별법이 100개였는데 이 가운데 49개 법률이 공공이 아닌 민간사업자의 토지 강제수용을 허용했다”고 분석했다.

 

강제수용에 앞서 공익성 검증 절차 또한 부실하다. 토지보상법은 수용 이전에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사업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한해 이뤄지는 토지 수용 사업 3000여건 가운데 국토부 장관의 ‘사업 인정’을 받은 건수는 2014~2019년 43건에 그친다. 한해 평균 7.1건에 불과한 이유는 토지보상법이 사업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폭넓게 허용하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사업을 공고하거나 관리 계획 또는 사업 계획 승인을 하면 국토부 장관으로부터 사업 인정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이른바 ‘사업 인정 의제’를 허용한 탓이다. 토지보상법 외에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한 개별법 110개 가운데 91개가 국토부 장관의 ‘사업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호준 연구위원은 “선거 때 남발되는 각종 개발 공약 또한 이런 손쉬운 과정을 통해 민간인의 토지를 강제로 수용한다. 특히 산업단지 유치 공약의 경우 지자체 입장에서는 세수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허가를 쉽게 내준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22일 강원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골프장 부지 앞에 반경순 구만리 골프장 반대 추진위원장(맨 왼쪽)과 주민들이 서 있다. 구만리 주민들은 골프장 반대 운동을 하면서 다치고 전과자가 되었다. 주민들의 반대 투쟁으로 골프장 공사는 중단됐다. 홍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3월 22일 강원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골프장 부지 앞에 반경순 구만리 골프장 반대 추진위원장(맨 왼쪽)과 주민들이 서 있다. 구만리 주민들은 골프장 반대 운동을 하면서 다치고 전과자가 되었다. 주민들의 반대 투쟁으로 골프장 공사는 중단됐다. 홍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골프장 조성으로 인한 토지 강제수용이 문제 되자 헌법재판소는 110개 법률 가운데 일부에 대해 두차례 제동을 걸었다. 헌재는 2011년 6월 골프장을 강제수용할 수 있게 한 국토계획법 제2조 6호 라목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14년에는 옛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제19조 1항이 “공익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사업을 위해 공공수용(강제수용) 가능성을 열어둬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호준 연구위원은 “사업 시행자가 110개 법률 가운데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지 않은 다른 법률에 근거해서 골프장을 조성하고 토지를 강제수용해도 된다. (헌재 결정이) 근본적 처방은 아니다.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법률도 문제가 되는 조항은 골프장에 국한되기 때문에, (강제수용 조항이) 여전히 110개 법률 안에 살아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22일 강원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골프장 부지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대표를 지낸 법인의 골프장 조성 공사는 중단된 상황이다. 그러나 강원도청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은 골프장들이 홍천군 곳곳에 조성되면서 농민들은 터전을 잃었다. 홍천/김명진 기자
지난 3월22일 강원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골프장 부지에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 아내가 대표를 지낸 법인의 골프장 조성 공사는 중단된 상황이다. 그러나 강원도청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은 골프장들이 홍천군 곳곳에 조성되면서 농민들은 터전을 잃었다. 홍천/김명진 기자
■ 주민이 할 수 있는 건 보상금 협의뿐

 

이런 문제점 때문에 토지 강제수용 이전 공익성 검증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토지보상법이 연이어 개정됐다. 2016년 6월부터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사업에 대해 실시계획 승인을 내기 이전에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심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개정했고, 2018년 12월 ‘의견 청취’보다 강화된 ‘협의 절차’를 거치도록 또다시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국토부의 ‘심의 의견’이나 ‘협의 절차’에 대한 법률적 구속력을 놓고 이견이 분분하다.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관계자는 “구속력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어서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다. 국토부가 심의 과정에서 부적격 판정을 내려도 지자체가 ‘실시계획인가’를 낸 경우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정확히 파악은 안 된다”고 말했다.

 

토지보상법 개정안이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한 110개 개별 법률은 그대로 존치돼 있기 때문이다. 박성율 목사는 “지자체가 사업 결정 고시를 내기 전에 주민 의견이 수렴되지 못하는 과정상의 문제 또한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토지보상법에 따른 수용 절차를 보면, △국가 또는 지자체의 사업 계획 결정 △보상계획 공고 △보상액 산정 협의 △협의 미성립 시 토지 강제수용에 앞서 국토부의 사업 인정(또는 사업 인정 의제) △수용 재결 등의 단계를 밟게 된다. 이호준 연구위원은 “지자체가 누리집 등에 일방적으로 사업 공고를 하는데 주민들은 이조차 모르고 있다가 보상액 산정 협의 때가 돼서야 인지한다. 결정 고시 등이 확정된 뒤라서 주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의 제기가 아니라 오직 보상금 협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토지보상 또한 실거래가로 이뤄지지 않고 대다수 공시지가에서 10~30%를 더해 수용되는 실정이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토지난민연대 2차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토지 강제수용 철폐하라’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토지난민연대 2차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토지 강제수용 철폐하라’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다른 나라에서는 민간사업자의 토지 강제수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하지만, 공익성 검증이 훨씬 엄격하다. 이 연구위원은 “독일의 경우 왜 수용을 해야 하는지, 수용이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는지 등 다양한 검토를 한 이후에 수용 근거 법률을 통과시킨다. 미국의 경우도 2005년 토지 수용 패러다임이 변해 정부가 민간의 경제적 이익을 증대시킬 목적의 수용권 행사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는 한편 수용토지에 대한 공공 모니터링 같은 사후 검증 절차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선거철에 정치적 필요나, 민간기업의 이윤을 위해 농민의 땅을 값싸게 강제수용하는 과정이 토지보상법이 인정한 다양한 우회로를 통해 적법하게 이뤄진다. 국토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관계자는 “민간사업자의 영리사업을 위해 강제수용하는 경우가 있어서 토지 수용이 가능한 110개 법률을 줄여나가는 목표를 갖고 있다. 법률 개정 공고를 점진적으로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끝>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연재를 마치며

 

한 장의 서류에서 시작되었다. 국회의원 재산 공개 내역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논과 밭이었다. 제보자, 취재원, 조력자 없이 시작한 취재였다. 노트북 한 대를 들고 홀로 전국을 헤맸다. 6차례 이어진 탐사기획의 소재는 농지로 동일하지만, 같은 소재를 두고 다양한 계층과 층위의 현실을 담으려 했다. 1~2회는 농지를 보유한 국회의원들의 이해충돌 실태를 공약 전수조사와 그들의 농지 인근 도로 개설을 중심으로 들여다봤다. 3회는 한 마을에서 이뤄지는 농지 투기 실태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어떻게 부동산 왕국을 이루는지, 한 공간을 깊이 들여다봤다. 4회는 법률적 측면이다. 누구나 위반하지만 범법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농지법을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앞장서서 허무는지, 편법으로 취득한 농지취득자격증명과 현장 취재를 대비해 보여줬다. 5회는 개발 예정지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농민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 12명의 농민 구술로 담아냈다. 6회는 개발로 인해 농민들이 땅을 어떻게 강제수용 당하는지 법률의 문제점을 짚었다. 공직자들에 대한 개별적 고발에 그치지 않고, 비농업인들의 불필요한 농지 소유가 일상화한 한국 사회의 보편적 현실과 이로 인한 피해를 담고자 했다. 의원들의 농지 소유에서 시작된 연재는 마지막에 토지보상법이라는 부조리한 법률에 닿았다. 어쩌면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법이 제정되는 국회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누가 어떤 법을 입법하고 이로 인한 이득을 취하는지 감시의 눈길을 거둘 수 없게 됐다. 1년 앞으로 다가온 21대 총선이 문득 가깝게 느껴진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890920.html?_fr=mt1#csidx5e38e2a0cd1334686ce0ba6c401e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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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다시는 국회로 돌아오지 마라

[사설] 자유한국당, 다시는 국회로 돌아오지 마라
  • 현장언론 민플러스
  • 승인 2019.04.22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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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019년04월20일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멈춤), 국민이 심판합니다'집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자유한국당이 기어이 장외투쟁에 나섰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자체 추산 2만여 명이 참석했다는 자유한국당 장외집회는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강행에 대한 반발로 시작해서 ”색깔론“과 ”박근혜“로 끝난 집회였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집회를 계기로 다음 달 문재인 정부 2년을 비판하는 '대국민 보고대회'를 이어가고, 이후 약 한 달 동안 부산·대구·충청·수도권 등을 돌며 현 정부의 문제점을 '고발'하겠다는 계획까지 가지고 있다.

이날 집회는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강행은 핑계에 불과할 뿐, 5.18 망언, 세월호 막말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덮고 국면을 전환해보자는 꼼수집회 성격도 겸해서 강행된 것인데, 자한당이 망언, 막말 백화점 정당임을 유감없이 입증했다.

황교안 자한당 대표는 이날 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대변인“이라고 아예 공식화했다. 황교안 대표가 공안검사 출신이고, 통합진보당 해산의 주역의 한사람이며, 독실한 근본주의적 기독교 신자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래도 취임 초부터 색깔론을 펴겠는가 하는 세간의 관측을 여지없이 뭉개고, 자기 본색을 정확히 드러냈다.
황 대표는 또 온 국민의 감동과 찬사를 받았던 4.27판문점 선언과 9월평양선언을 염두에 두고, “종북굴종외교를 그만두라”고 공격하고, 문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북한 제재를 해제해달라 구걸하고 다닌다”며 자신이 분단과 대결에 살쪄온 분단적폐세력의 잔당이며, 미국의 대북제재에 생명줄을 걸고 있는 친미사대매국노에 불과한 정객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는 정치와 경제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고 경제는 아이엠에프(IMF)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라고 한 마디 했다. 온국민이 촛불로 일어나 대통령을 탄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며, 적폐청산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린다’는 초대형 망언이다. IMF이전이야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 좋다고 OECD까지 가입했다가 외환위기를 자초해서 나라가 망한 것인데, 경제가 IMF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하니, 무식한 소리일 뿐 아니라, 1:99로 양극화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이대로’ 가자는 ‘가진 자’의 인식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 여기에 지지 않았다. 나대표는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우리도 모르게 (국가보안법) 위헌 결정을 해버리면 의회도, 우리 투쟁도 소용이 없어진다. 여러분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제기해 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을 반대한 이유가 근본적으로는 국가보안법 등을 포함한 각종 악법들에 대한 국민적 헌법소원로 이어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니, 그들이 진정으로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김태흠 의원(자한당 좌파독재저지특별위원장)은 "도대체 이 정부는.....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에 이어 언론 장악, 그리고 마지막으로 헌재까지 장악했다.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역사 등 모든 것을 물갈이하려는 목적"이라고 규탄했는데, 제대로 시작도 안했는데 이 난리이니, 진짜 물갈이가 시작되면,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토요일 집회에서 자한당 연사들 입에서 나온 망언, 막말들을 보면, 역시 자한당은 해체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그러니, 자한당은 기왕 국회에서 나와 장외로 나간 거, 다시는 국회로 돌아오지 말기를 바란다.

사실 자한당 장외투쟁은 이미 계획된 것이었다.
자한당은 이미 문재인 정부의 인사문제와 각종 의혹을 고리로 대여공세를 펼쳐왔으며, 나경원 대표는 지난 3월 국회 대표연설에서 각종 의혹과 관련해 전 상임위 국정조사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하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특검도입과 국민투쟁으로 이어지는 3단계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총선전 자한당의 장외투쟁을 필수경로로 이미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결행 계기와 시기만 남았을 뿐이었다.
하노이 이후 북미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남북관계 또한 아직 불투명하며, 경제는 안좋은데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내려갈 만큼 내려가고, 자한당 지지율이 일정 오르고 있는 지금이 바로 총반격의 적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반기에 구사해야 할 전술을 좀 일찍 감행한 감은 있지만, 5.18 망언과 세월호 막말을 형식적 징계로 꼬리를 자르고, 보수세력결집과 대여투쟁전선을 확장하기 위해, 또한 황교안 자신을 반문투쟁의 지도자로 세워내기 위해 지금보다 더 좋은 타이밍을 잡기는 힘들 것이라고 타산했을 것이다.
이날 광화문에서 시작해 청와대 앞까지 가두시위를 한 황 대표는 “오늘 우리의 투쟁은 문재인 좌파독재를 막기 위한 대장정의 첫걸음”이라고 선언하며 집회를 마무리한 사실을 놓고 보아도, 자한당의 총선투쟁이 전면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태를 놓고 일부 시사평론가들과 원내정당들은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한당은 장외투쟁을 중지하고, 국회로 복귀하라고 촉구한다. 자한당이 국회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 대한민국 국회는 자한당 때문에 아무 일도 안되고 있다. 자한당이 국회에서 하는 일이란, 분단적폐를 쌓고, 분단적폐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몸부림치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말고는 없다. 자한당하고 마주 앉아서 논할 수 있는 ‘민생문제’란 없다. 정말 일하는 국회를 만들고, 민생문제를 국회에서 제대로 다루려면, 반민생집단인 자한당이 다시는 국회에 발을 뭍이지 못하도록 무력화시키고, 해체시키는 강도 높은 공세를 강화해야 할 때이다. 특히 더불어 민주당은 이 점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더불어민주당과 개혁세력은 지금은 협치를 하고, 총선 때 가서 표로 심판하자는 한심한 생각이나, 정치공학적 판을 잘 짜면 240석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하면 곤란하다. 이미 총선투쟁은 시작되었고 자한당은 목숨을 건 승부수를 던졌다. 정치 한 번 안 해 본 검사출신이 투쟁의 의지를 다지고 거리로 나섰다. 더불어민주당과 개혁세력은 이보다 더한 일전불사의 결의가 없이는 결국 분단적폐세력의 부활을 보게될 것이다.

이날 집회가 결국 “박근혜‘로 끝난 것처럼, 황교안 대표의 장외투쟁 행보 역시 박근혜 당대표 시절을 코스프레하고 있다.
지난 2006년 1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사학법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두 달 가까이 장외투쟁을 전개했다. 국회에 복귀하고서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사학법을 재개정하지 않으면, 사학법과 전혀 관련없는 다른 법안이나 예산안도 처리해 줄 수 없다는 식으로 나왔고, 결국 2006년 4월과 6월 임시국회, 9월 정기국회, 2007년 2월 임시국회 등이 줄줄이 파행으로 끝났다. 당시 한기총 등 개신교를 필두로 한 사학재단들도 한나라당에 적극 합세했고, 결국 원내 1당이자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사학법 재개정에 합의하고 말았다, 2007년 7월 여야 합의로 사학법이 걸레조각이 된 채 재개정되어서야 국회는 겨우 정상을 되찾았다. 당시 한나라당은 2개월 가까이 국회파업을 하고, 1년 반 정도를 노골적으로 국회를 태업했다. 황교안 대표가 가려는 길이 바로 이 길이다.

자한당 무리들이 민주노총이 파업하고, 태업하면, 나라가 절단난다는 식으로 공격해 놓고서, 자기들은 국회파업과 태업, 보이코트를 밥먹듯이 한다는 식으로 어줍잖은 ’내로남불‘ 비판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원내도 좋고, 장외도 좋다는 더러운 욕망의 정치, 징글맞은 수구의 민낯을 말하고자 함이다. 태극기부대를 초기에 방치하다가 자한당 장외투쟁까지 이르게 된 오늘을 보면 해방 직후 친일파들이 세력을 모으고 애국지사들에게 테러를 감행하며, 민중을 학살하던 시기의 악몽을 떠올리게 된다. 친일파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별 짓을 다했다. 이제 그들 친일파들이 목숨을 걸고 세운 나라가 대한민국인데, 이제 다시 독립애국지사들이 세운 나라로 만든다고 하니,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살아남기 위해 더한 짓도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개혁진영은 언론사 앞에서 피장파장하는 말싸움 정도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 분단적폐세력의 결집과 반격을 매우 심각하게 봐야 한다. 당장의 국회를 정상화시키는데 목을 메는 행정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기능적 협치에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민생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자한당이 기왕 거리로 나간 거. 더불어민주당도, 개혁정당들도 국민속으로 들어가라. 정부여당은 국회빼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사회대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적폐세력을 청산하며,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민생을 돌보는데 올인해야 한다. 진보진영 역시 그들이 마음놓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외투쟁을 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나갈 때는 자기 맘대로 나갔으나, 들어올 때는 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게 해야 한다.

현장언론 민플러스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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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공중전투동작과 절묘한 전술유도무기

개벽예감 344] 절묘한 공중전투동작과 절묘한 전술유도무기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9/04/22 [08:4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최정예 비행련대 불시검열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2. 초인적인 비행술 연마하는 전투비행사들

3. 세계 정상급 과학기술인재들이 만든 전술유도무기

4. 미국의 공중감시망 뚫은 조선의 신형 순항미사일

 

 

1. 최정예 비행련대 불시검열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4월 16일 “부대 앞을 지나가다 추격습격기련대의 비행훈련실태를 료해하기 위하여 갑자기 들렸다”고 하면서, 조선인민군 항공군 및 반항공군 제1017군부대를 불시에 검열하였다고 한다. 한국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제1017군부대는 평양에서 북쪽으로 약 45km 떨어진 평안남도 순천비행장에 주둔하는 비행련대라고 한다. 제1017군부대는 훈련, 학습, 생활에서 가장 우수한 부대에게 수여되는 오중흡7련대 칭호를 쟁취한 비행련대이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는 최정예 비행련대다. 

 

제1017군부대를 불시에 찾아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투가 예고하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므로 임의의 시각에 불의에 판정하고 군부대의 경상적 동원준비를 검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전투직일근무를 수행하고 있는 추격습격기들을 리륙시켜 비행사들에게 어렵고 복잡한 공중전투동작을 시켜보라고 명령하시였다”고 한다. 명령이 하달되자, 제1017군부대에 배속된 미그-29 추격습격기 2대가 동시에 이륙하여 어렵고 복잡한 공중전투동작을 수행하였고, 뒤이어 수호이-25 습격기 1대가 이륙하여 어렵고 복잡한 공중전투동작을 수행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날 전투비행사들은 “자기들이 평시에 련마해온 비행술을 뽐내였”는데, “리륙과 각이한 공중전투동작들, 착륙 등 모든 비행조작을 능숙하고 세련되게 진행”하였다고 한다. <사진 1>  

 

▲ <사진 1>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4월 16일 조선인민군 항공군 및 반항공군 제1017군부대를 불시에 검열하였다. 위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1017군부대 비행장 활주로를 걸어가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추격기, 습격기를 조종하는 전투비행사들의 공중전투동작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제1017군부대는 평안남도 순천비행장에 주둔하는 최정예 비행련대다. 그 비행련대 소속 전투비행사들의 비행훈련실태를 불시에 검열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소에 연마해온 여러 가지 고난도 비행술을 능숙하고 세련되게 펼쳐보인 전투비행사들의 훈련성과를 높이 평가하였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다른 나라 전투비행사들이 따라오지 못할 고난도 공중전투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그들의 절묘한 비행술 앞에서 미국은 속수무책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공중전투동작이라는 전문용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중전투동작(air combat maneuver)은 시각공중전투(visual air-to-air combat)에서 사용되는 비행술이다. 시각공중전투는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을 만큼 비좁은 무기교전구간(weapons engagement zone) 안에 들어온 적기를 기관총으로 격추시키는 근접공중전을 뜻한다. 공대공미사일은 전투비행사의 시야를 넘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먼 거리에 있는 적기를 레이더로 포착하였을 때 사용하는 것이다. 공대공미사일이 지닌 항공력학적 한계 때문에 적기가 섬광탄(flare)을 발사하며 재빨리 회피기동을 하면 공대공미사일로 격추하지 못하므로 기관총을 쏘아야 하고, 적기가 공대공미사일 최단사거리 안으로 파고 들어오는 경우에도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할 수 없으므로 기관총을 쏘아야 한다. 시각공중전투는 이처럼 기관총을 쏘면서 벌어지게 된다.    

 

더욱이 공중전투반경이 매우 협소할 뿐 아니라, 교전쌍방이 거의 동시에 출격시킨 수많은 전투기들이 피아를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뒤엉켜 교전하게 되는 한반도 상공에서는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할 기회가 거의 없으므로 전투기들끼리 서로 기관총을 쏘는 치열한 시각공중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미국 공군 현역장교가 집필한 자료에 따르면, 시각공중전투에 돌입한 전투기가 적기를 향해 기관총을 쏠 수 있는 최단거리는 160m라고 한다. 만일 그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기관총으로 적기를 격추하면, 피격당한 적기의 파편이 날아와 기체에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사격거리를 최소 160m 정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시각공중전투에 돌입한 전투기가 기관총을 쏠 수 있는 최장거리는 1.6~1.8km라고 한다. 만일 그보다 더 먼 거리에서 적기를 향해 기관총을 발사하면, 격추확률이 크게 떨어진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시각공중전투는 약 2~3km 정도의 반경 안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 2>  

 

▲ <사진 2>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불시검열한 제1017군부대에는 미그-29와 수호이-25가 배속되었다. 위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행훈련명령을 받은 그 비행련대 전투비행사들이 조종하는 미그-29 두 대가 동시에 이륙하는 장면이고, 아래쪽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여러 가지 고난도 공중전투동작들을 수행한 전투비행사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기념사진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좌우에 있는 두 사람은 미그-29를 조종한 전투비행사들이고, 맨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수호이-25를 조종한 전투비행사다. 기념사진배경에 보이는 미그-29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살펴본 사적비행기다.     

 

시각공중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요인은 두 가지다. 첫째 요인은 시각공중전투에 적합한 추격기이고, 둘째 요인은 추격기가 적기를 향해 기관총을 발사하는 사격위치를 선점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국 공군 전투기의 첨단성능이 시각공중전투에 불리하다는 사실이다. 미국 전투기들은 항속거리가 길고, 중무장을 하고, 비행속도가 매우 빠르고, 레이더로 멀리 보는 원격탐지능력이 뛰어나지만, 이런 첨단성능들은 시각공중전투에서 불리한 요인들로 된다. 왜냐하면 항속거리가 길고 중무장한 전투기에는 크고 무거운 연료와 많은 미사일, 로켓탄, 폭탄이 잔뜩 실리는데, 이처럼 비대해진 기체의 중량은 시각공중전투에서 민첩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요인이다. 또한 시각공중전투에 돌입한 전투기는 비행속도를 초음속 이하로 낮춰 비행해야 하므로, 초음속 비행은 시각공중전투에서 불필요하다. 또한 시각공중전투를 벌이는 전투비행사는 육안으로 적기를 탐지하고 격추해야 하는데, 시야 밖의 먼 거리에 있는 적기를 탐지하는 고성능 레이더는 시각공중전투에서 불필요하다. 스텔스기능이나 고성능 전자장비를 두루 갖추었다는 미국의 최첨단 전투기는 공중전투반경이 광대한 태평양 상공에서 벌어진 장거리 공중전에서는 쓸모가 있지만, 공중전투반경이 협소한 한반도 상공에서 벌어진 단거리 공중전에서는 쓸모가 없다.      

 

한반도 상공에서 벌어진 시각공중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요인은 기관총으로 경무장한 가벼운 전투기가 날쌔고 민첩한 기동으로 적기를 격추하는 사격위치를 선점하는 것이다. 조선이 운용하는 미그-21, 미그-23, 미그-29, 수호이-25는 바로 그런 시각공중전투에 최적화된 성능을 가진 추격기, 습격기들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제1017군부대의 비행훈련실태를 검열하면서 그 비행련대에서 “비행기들의 원성능을 회복하고 전투력을 한 계단 끌어올리기 위한 줄기찬 투쟁을 벌려 커다란 성과를 이룩한 것이 정말로 대견하다”고 높이 평가하였다고 한다. 비행기들의 원성능을 회복하기 위한 줄기찬 투쟁을 벌여 커다란 성과를 이룩했다는 평가는 추격기와 습격기의 성능을 한반도의 공중전투환경에 최적화시킨 대단한 성과를 이룩했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조선이 운용하는 미그-21, 미그-23, 미그-29, 수호이-25 같은 기종들은 다른 나라들이 운용하는 같은 기종들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진 개량형 기종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을 말해주는 정보는 쓰르비야공화국 항공전문가들인 쁘레드락 빠블로위츠와 네나드 빠블로위츠가 2009년에 공동집필한, ‘전투기의 실제성능(Fighter Performance in Practice)’이라는 제목의 자료에 들어있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 공군이 진행한 공중전투평가전에서 미국 전투기 F-15 이글(Eagle)은 미그-21의 민첩한 비행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공중전투평가전에 나선 미그-21은 초속 200~260m로 날아가다가 초속 36m로 급감속하면서 비행방향을 약 90도로 꺾어 급선회하는 놀라운 민첩성을 발휘하였다는 것이다. 만일 전투기의 민첩성을 비교한다면, 전 세계에 현존하는 그 어떤 전투기도 미그-21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 그 자료에서 내린 결론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이 왜 40여 년 전에 생산된 미그-21을 폐기하지 않고 150대나 운용하는지 알 수 있다. 미그-21이 그처럼 놀라운 민첩성을 발휘한다면, 그보다 성능이 더 뛰어난 미그-29는 얼마나 더 놀라운 민첩성을 발휘하는 것일까?     

 

 

2. 초인적인 비행술 연마하는 전투비행사들

 

시각공중전투에서 승리하는 요인은 공중전투환경에 최적화된 추격기의 성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추격기의 성능이 공중전투환경에 맞춰 최적화되었더라도, 추격기를 조종하는 전투비행사의 비행술 숙련도가 낮으면 시각공중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전투비행사의 비행술 및 사격술 숙련도가 결정적인 승리요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 16일 제1017군부대를 찾아가 불시에 검열한 것이 바로 전투비행사들의 비행훈련실태였다. 

 

전투비행사의 비행술 숙련도는 고난도 공중전투동작을 얼마나 능숙하고 세련되게 수행하는가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수준 높은 공군력을 가진 나라들은 다종다양한 공중전투동작들을 개발해놓았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5대 공중전투동작은 고리형 동작(loop maneuver), 급회전동작(break turn maneuver), 반쪽S자형 동작(split-s maneuver), 감속상승동작(barrel roll maneuver), 가위형 동작(scissors maneuver) 등이다. 이를테면, 반쪽S자형 동작은 급강하하면서 기체를 180도 뒤집어, 날아오던 방향의 반대쪽으로 하강선회하는 고난도 공중전투동작이다. 감속상승동작은 수평으로 비행하다가 순간적으로 속도를 늦춰 급상승하는 고난도 공중전투동작이다. 가위형 동작은 적기가 뒤쪽에 따라붙었을 때 순간적으로 속도를 늦춰 적기가 앞쪽으로 나아가게 하고, 적기 뒤쪽에 따라붙는 고난도 공중전투동작이다. 

 

2019년 4월 17일 <조선중앙텔레비젼방송>은 제1017군부대 추격습격기들이 수행한 공중전투동작들이 촬영된 보도사진들을 방영하였다. 그 보도사진들은 제1017군부대 전투비행사들이 위에 열거된 몇 가지 공중전투동작을 수행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행훈련명령을 받은 제1017군부대 전투비행사들이 순천비행장 상공에서 미그-29 두 대를 조종하면서 고난도 공중전투동작을 펼쳐보이는 장면이다. 기체가 180도 뒤집힌 상태로 하강비행을 하는 장면은 그들이 반쪽S자형 동작과 가위형 동작을 연속적으로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장면들은 그들이 평소에 고난도 공중전투동작을 연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난도 공중전투동작을 얼마나 능숙하고 세련되게 수행하는가 하는 기준으로 평가되는 전투비행사의 비행술 숙련도는 전시에 시각공중전투에서 승리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제1017군부대 전투비행사들은 “비행훈련을 가장 극악한 조건에서 전쟁맛이 나게 강도 높게 진행함으로써 그 어떤 불리한 정황 속에서도 맡겨진 공중전투임무를 자립적으로 능숙히 수행할 수 있는 진짜배기 싸움군, 만능전투비행사들로 철저히 준비해갈 불타는 결의를 다지였다”고 한다. 가장 극악한 조건에서 전쟁맛이 나는 고강도 비행훈련이라는 특이한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조선의 언론매체들이 일상적으로, 관행적으로 쓰는 표현이 아니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훈련하는 극악한 비행환경은 어떤 것일까?    

 

2018년 4월 7일 <뉴스1>은 한국 공군 전투기조종사들의 중력가속도시험(G-Test)에 참가한 취재기자의 체험담을 실었다. 체험담에 따르면, 중력가속도시험 중에 지구중력 1G의 여섯 배인 6G에 이르자 취재기자의 시야가 흐려졌고, 7G에 이르자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앞이 보이지 않았고, 7.8G에 이르자 정신을 잃고 까무러쳤다고 한다. 취재기자가 까무러치기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평상시 사람 뇌의 혈압은 80mmHg인데, 중력이 4~5G 이상으로 높아지면 뇌의 혈압은 2mmHg로 급락하여 뇌에 산소공급이 거의 중단되므로 까무러치는 것이다. 그래서 전투비행사들은 그런 극악한 비행환경에서 까무러치지 않기 위해 윽 소리를 내면서 폐의 압력을 높여 심장박동이 유지되도록 가슴공간을 넓혀주고, 크 소리와 흐 소리를 엇갈려 내는 심호흡을 하면서 인체에 산소를 계속 공급해주고, 다리와 배에 잔뜩 힘을 주어 혈액이 하체로 쏠리지 않게 하는 적응훈련을 반복하는 것이다. 한국군 전투기조종사들은 중력이 9G에 이른 극악한 비행환경에서 15초 이상 견디는 고난도 시험을 통과해야 전투기를 조종할 수 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극악한 비행환경 속에서 연마한 고난도 비행술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는 사례는 1973년 10월 6일부터 25일까지 제4차 중동전쟁에 참전했던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남긴 전설 같은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이집트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 나라에 파견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이집트군 전투비행사들을 단기간 집중훈련시켰을 뿐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자 이집트군 비행편대를 선두에서 이끌고 전투를 벌였다. 2019년 2월 이스라엘 국립문서보관소는 이스라엘 국가정보기관 모싸드 국장의 보좌관이 이스라엘 총리의 국방비서에게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1973년 10월 5일에 보낸 1급 비밀전문을 기밀해제하여 세상에 공개하였는데, 그 비밀전문에는 이집트에 파견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 30명이 전쟁에 참전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군이 각종 작전기 387대를 잃을 만큼 그 전쟁은 격렬하였다. 제4차 중동전쟁에 참전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남긴 전설 같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쓰르비야공화국 항공전문가들인 쁘레드락 빠블로위츠와 네나드 빠블로위츠가 공동집필한 ‘전투기의 실제성능'이라는 제목의 자료에 따르면, 제4차 중동전쟁에 참전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는 미그-21을 몰고 이스라엘군 전투비행사들이 조종하는, 당시로서는 최신예 전폭기였던 F-4와 맞붙어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는데, 교전 중에 상상을 초월하는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고 한다. 그것은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가 조종하는 미그-21이 지표면으로부터 불과 915m밖에 되지 않는 저고도에서 급강하하면서 기체를 180도 뒤집어 반대쪽으로 하강선회하는 고난도 반쪽S자형 동작으로 이스라엘군 전투기를 격추한 것이다. 이스라엘군 전투비행사들은 반쪽S자형 공중전투동작을 5,000m 고공에서 수행하는 수준이었고, 미그-21 종주국인 소련의 군사비행교범에는 그 기종이 반쪽S자형 공중전투동작을 수행하는 최저비행고도가 2,000m로 나와 있는데,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는 최저비행고도의 절반도 되지 않는 915m 고도에서 고난도 반쪽S자형 공중전투동작을 수행하여 이스라엘군 전투기를 격추하였으니, 믿기 힘든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진 4>   

 

▲ <사진 4> 위의 개념도는 전투비행사들이 수행하는 여러 가지 공중전투동작들 가운데서 반쪽S자형 동작(split-s maneuver)을 보여준다. 이 공중전투동작은 급강하하면서 기체를 180도 뒤집어, 날아오던 방향의 반대쪽으로 하강선회하는 것이다. 그 반대로도 비행할 수 있다. 1973년 10월 6일부터 25일까지 지속된 제4차 중동전쟁에 이집트를 도와 참전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는 미그-21을 몰고 출전하여 이스라엘군 전투비행사가 조종하는 최신예 전폭기 F-4와 맞붙어 치열한 공중전투를 벌였는데, 미그-21은 지표면으로부터 불과 915m밖에 되지 않는 저고도에서 급강하하면서 반쪽S자형 동작으로 이스라엘군 전투기를 격추하였다. 직경 915m의 협소한 공간에서 반쪽S자형 동작을 수행한 것은 전 세계 공중전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 사실을 파악한 미국 공군 당국자들은 그런 공중전투동작은 불가해하다고 말하며 혀를 내둘렀다. 이스라엘군 전투비행사들이 조종한 미국산 최신예 전투기를 상대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펼친 고난도 비행술은 46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다른 나라 전투비행사들이 시도하지 못하는 절묘함의 극치다. 오늘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자기 선배들이 실전에서 보여준 전설 같은 실전경험을 계승하여 고난도 공중전투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쁘레드락 빠블로위츠와 네나드 빠블로위츠는 공동집필한 자료에서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가 초저공에서 반쪽S자형 공중전투동작을 수행한 것이 살인적인 중력을 견디는 특수훈련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초인적인 능력의 발현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썼으며, 미국 공군 당국자들은 그런 공중전투동작은 “불가해하다(inexplicable)”고 혀를 내둘렀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제4차 중동전쟁에 참전하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들이 공중전에서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는 사실은 더욱 알지 못하는 공동집필자들은 이집트군 전투비행사가 공중전투 중에 초저공에서 반쪽S자형 동작을 절묘하게 수행하였다고 자료에 썼지만, 고난도 공중전투동작을 훈련받지 못한 이집트군 전투비행사들이 그처럼 절묘한 공중전투동작을 수행하였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이 제4차 중동전쟁에서 펼쳤던 고난도 비행술은 46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다른 나라 전투비행사들이 시도하지 못하는 절묘함의 극치다. 오늘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들은 자기 선배들이 46년 전 실전에서 보여준 전설 같은 전투경험을 계승하여 고난도 공중전투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그들의 절묘한 비행술 앞에서 미국은 속수무책이다.

 

 

3. 세계 정상급 과학기술인재들이 만든 전술유도무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 17일 신형 전술유도무기사격시험을 참관하고 지도한 소식이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방과학원이 그 신형 전술미사일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조선이 국방과학원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아서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최고 수준의 군사과학연구기관이다. 1964년 6월 29일에 창설된 국방과학원은 평양 룡성구역 룡성2동에 있다. 국방과학원 산하에는 각 분야별로 세분화된 연구소가 60개소 이상이 있고, 무기시험장은 평안북도 태천군에 있다. 전국에서 과학학과성적이 특출한 대학졸업생들 가운데 선발된 과학기술인재 15,000명이 국방과학원에서 연구사로 일하고 있고, 그들의 연구사업을 방조하는 실험조수와 노동자가 40,000명이다. 그에 비교하면, 1970년 8월 6일에 창설된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원에는 연구원 2,000명, 보조인력 600명이 근무하고 있으니, 조선의 국방과학원과 대비한 인력격차가 21배로 벌어져 서로 비교하기도 힘들다. 이런 사실 하나만 봐도, 조선의 국방과학원이 얼마나 막강한 연구력량을 갖추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세계 정상급 군사과학연구기지인 국방과학원은 55년의 연륜을 아로새기며 수많은 첨단무기들을 연구개발해왔다. 조선이 자랑하는 열핵무기, 핵무기, 대륙간탄도미사일, 전차, 자주포, 방사포, 각종 미사일을 비롯한 세계 정상급 무기체계들이 국방과학원에서 연구개발되었다. 그런 국방과학원이 이번에 신형 무기를 또 하나 만들어 성능판정시험을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국방과학원은 신형 무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무기인지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전술유도무기라고만 밝혔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에서는 그 신형 전술유도무기에 대한 추측들만 무성하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무기체계의 개발완성은 인민군대의 전투력 강화에서 매우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사변으로 된다”고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신형 전술유도무기의 출현이 조선의 유도무기개발사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진다는 점을 말해준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2017년 5월 2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국방과학원이 진행한 신형 반항공요격유도무기사격시험을 촬영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4월 17일 국방과학원이 개발한 신형 전술유도무기사격시험을 참관하고 지도하였다. 신형 전술유도무기의 출현은 조선의 유도무기개발사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는 사변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에 개발된 신형 전술유도무기에 대해 말하면서, 이 무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직접 종자를 잡아주시고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며 개발완성에로 걸음걸음 이끌어오신 유복자 무기"라고 하였다. 신형 전술유도무기는 국방과학원에서 근무하는 세계 정상급 과학기술인재들이 10년 이상 장기간 동안 연구개발하여 완성한 최첨단 순항미사일이다.     

 

신형 전술유도무기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11월 15일 “국방과학원 시험장을 찾으시여 새로 개발한 첨단전술무기시험을 지도하시였다”고 한다. 지난해 11월에는 첨단전술무기라고 하였고, 이번에는 신형 전술유도무기라고 하였다. 첨단이라는 말이 신형이라는 말로 바뀌고, 유도라는 말이 첨가된 것만 다를 뿐, 첨단전술무기와 신형 전술유도무기는 동일한 무기를 지칭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15일에 진행된 신형 전술유도무기 성능판정시험에서 나타난 부족점을 몇 개월 동안 보완하여 이번에 완벽하게 제작된 전술유도무기를 시험사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11월 15일에 진행된 신형 전술유도무기 성능판정시험을 지도하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생전에 직접 종자를 잡아주시고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며 개발완성에로 걸음걸음 이끌어오시던 무기체계가 드디여 탄생하였다, 저 무기는 유복자 무기와도 같은데 오늘의 이 성공을 보니 우리 장군님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고 격정을 누르지 못하시였다”고 한다. 이것은 이번에 두 번째로 진행된 성능판정시험에서 완벽한 성능지표가 검증된 신형 전술유도무기가 10년 이상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개발되어온 무기라는 점을 말해준다. 세계 정상급 과학기술인재들이 10년 이상 장기간 동안 연구개발하여 완성한 무기가 얼마나 놀라운 성능을 가졌는지는 구태여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11월 15일에 첫 번째 성능판정시험을 진행한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가리켜 “우리 당이 중시하며 그토록 기다려온 첨단전술무기”라고 하였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4월 17일 신형 전술유도무기가 개발완성된 것을 가리켜 “인민군대의 전투력 강화에서 매우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사변”이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세계 정상급 과학기술인재들이 10년 이상 장기간 연구개발하여 완성하였으므로, 신형 전술유도무기는 조선로동당이 중시하며 그토록 기다려온 첨단무기이며, 조선인민군의 전투력을 획기적으로 강화시킬 첨단무기인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4월 17일 사격시험을 참관하기 전에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돌아보시면서 국방과학원의 관계일군들로부터 무기체계구성과 운영방식에 대한 해설을 들으시였다”고 한다. 조선의 모든 무기체계들에 정통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기체계구성과 운영방식에 관한 해설을 들을 만큼 그것은 새로운 기술로 만든 무기인 것이다. 무기체계구성과 운영방식이 기존 전술유도무기들과는 완전히 다른 최첨단 전술유도무기가 출현한 것이 분명하다. 

 

국방과학원이 그 최첨단 무기를 전술유도무기라고 부른 것을 보면, 그것이 탄도미사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에서는 탄도미사일을 탄도탄이라고 부르지, 유도무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한 방사포는 세계 정상급 과학기술인재들이 10년 이상 장기간 연구개발해야 할 만큼 어렵고 복잡한 무기체계가 아니므로, 이번에 개발된 신형 전술유도무기는 방사포가 아니다. 탄도미사일도 아니고 방사포도 아니므로, 이번에 개발된 신형 전술유도무기는 순항미사일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세계 정상급 과학기술인재들이 10년 이상 장기간 연구개발한 최첨단 순항미사일은 어떤 미사일인가?    

 

 

4. 미국의 공중감시망 뚫은 조선의 신형 순항미사일 

 

미국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CNN> 2019년 4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군 북부사령부 및 전략사령부는 2019년 4월 17일 조선에서 신형 미사일이 시험발사된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기묘한 일이다.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조선에서 미사일발사징후가 나타나는지 24시간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미국이 평안북도 태천군에 있는 시험사격장에서 진행된 순항미사일시험발사를 탐지하지 못했다니, 뜻밖의 이변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전략사령부 산하 세계작전쎈터(Global Operations Center)는 지구 전역을 포괄하는 위성감시망을 가동하는데, 특히 조선에게 감시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욱이 2019년 3월 25일 <자주시보>에 실린 ‘미국의 특수작전기들은 왜 한반도 상공에 나타났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내가 지적한 것처럼, 미국 본토에서 주일미국군기지로 이동배치된 RC-135U 전자정찰기, RC-135W 전자정보수집기, U2 고도정찰기, 글로벌 호크 무인정찰기, E-3 조기경보통제기 등이 조선에서 미사일발사징후가 나타나는지 24시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동아일보> 2019년 4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미사일발사징후를 감시하는 RC-135S 정찰기가 2019년 4월 15일 서해 상공에 나타나 조선에서 미사일발사징후가 나타나는지 감시하였다고 한다.  

 

미국이 그처럼 공중감시수단을 총동원하여 물샐 틈 없는 감시작전을 펼치고 있는데, 어떻게 평안북도 태천군에서 순항미사일이 시험발사된 것을 탐지하지 못했을까? 이 기묘한 이변을 해명해줄 실마리는 그 신형 순항미사일이 “특수한 비행유도방식”으로 날아갔다고 밝힌 조선의 언론보도에서 발견된다. 미국이 공중감시망으로 탐지하지 못한 절묘한 비행유도방식인 것이다. 미국의 공중감시망을 뚫은 조선의 신형 순항미사일은 어떤 미사일인가? <사진 6> 

 

▲ <사진 6> 이 사진은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인근 오풋공군기지에 있는 미국 전략사령부 산하 세계작전쎈터 내부를 촬영한 것이다. 세계작전쎈터는 지구 전역을 포괄하는 위성감시망을 가동하는데, 특히 조선에게 감시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표적감시도 성에 차지 않은 미국은 최근 미국 본토에서 주일미국군기지로 이동배치된 각종 정찰기들과 전자정보수집기들을 동원하여 조선에서 미사일발사징후가 나타나는지 24시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미국이 그처럼 공중감시수단들을 총동원하여 물샐 틈 없는 감시작전을 펼치고 있는데도, 조선은 공중감시망을 뚫고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보란듯이 시험발사하였다. 미국의 공중감시망은 지표면에서 30~50m 저고도로 날아가는 순항미사일을 탐지하지 못한다. 조선의 신형 순항미사일은 미국의 공중감시망을 완전히 뚫어버렸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모두 감시한다고 제법 큰 소리를 치지만, 지표면에서 불과 30~50m 저고도로 날아가는 순항미사일은 탐지하지 못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의 신형 순항미사일은 물 찬 제비가 날렵하게 땅거죽을 스치듯 30~50m 저고도에서 날아갔음을 알 수 있다. 순항미사일을 바다로 쏘면 해수면으로부터 15m 저고도로 비행하고, 평지로 쏘면 지표면으로부터 30~50m 저고도로 비행하고, 산악지대로 쏘면 지표면으로부터 150m 저고도로 비행한다. 높낮은 산줄기를 타고 넘으며, 골짜기를 이리저리 빠져나가고, 지상구조물을 피해 타격대상을 향해 날아가는 순항미사일을 탐지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순항미사일 비행속도는 시속 900km다. 

 

순항미사일이 저고도에서 빠른 속도로 비행하려면 탄도미사일의 유도조종체계와 완전히 다른 유도조종체계를 장착해야 한다. 물론 순항미사일이라고 해서, 유도조종기능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1세대 순항미사일의 유도조종체계는 레이더고도계(radar altimeter = 레이더로 비행고도를 측정하는 장치), 기압고도계(barometric altimeter = 비행고도의 기압을 측정하는 장치), 숫자식 지형기록도면(digital strip map)으로 이루어졌다. 그와 다르게, 2세대 순항미사일에는 지형대조체계(terrain contour matching system)와 자동목표식별장치(automatic target recognition device) 같은 최첨단 유도체계가 장착된다. 지형대조체계라는 것은 순항미사일이 사전에 입력된 지형과 고도를 자기의 비행방향 및 고도와 대조하면서 날아가게 하는 비행유도체계다. 자동목표식별장치라는 것은 감지기를 통하여 타격목표물과 다른 물체를 구분하고 타격목표를 향해 날아가게 하는 비행유도장치다. 지형대조체계와 자동목표식별장치를 장착한 2세대 순항미사일은 최첨단 순항미사일이다. 최첨단 순항미사일은 타격정밀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조선은 이미 1990년대에 1세대 순항미사일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였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2003년 7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은 1990년대에 만든 1세대 순항미사일을 이란에 수출하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국방과학원에게 2세대 순항미사일 개발을 지시하였고, 특별한 관심을 돌리며 그 개발과정을 지도하였다. 국방과학원은 2세대 순항미사일 개발과정에서 과학기술선진국만이 해결할 수 있는, 매우 어렵고 난해한 기술공학적 난제들을 자력으로 풀어야 하였다. 그들이 자력갱생의 힘으로 기술공학적 난제들을 해결하기까지 10년 이상 긴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직접 종자를 잡아주시고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며 개발완성에로 걸음걸음 이끌어오시던 무기체계가 드디여 탄생하였다, 저 무기는 유복자 무기와도 같다”고 말했던 것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9년 4월 17일에 진행된 신형 전술유도무기시험발사는 “각이한 목표에 따르는 여러 가지 사격방식으로 진행”하였다고 한다. 사격방식이 여러 가지였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순항미사일의 특징은 여러 가지 사격방식으로 쏠 수 있다는 데 있다. 순항미사일은 지대지미사일, 지대함미사일, 공대지미사일, 공대함미사일, 잠대지미사일, 함대지미사일, 함대함미사일 등으로 발사할 수 있으니, 사격방식이 무척 다양하다. <사진 7> 

 

조선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방과학원이 만든 신형 순항미사일에는 “위력한 전투부”가 장착되었다고 한다. 위력한 전투부라는 말은 파괴력이 매우 강한 탄두가 전투부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신형 순항미사일 전투부에 들어간, 파괴력이 매우 강한 탄두는 무엇일까? 신형 순항미사일의 성능지표를 추정할 만한 정보가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미국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전투부에 들어간 탄두를 살펴보면서 추정하는 수밖에 없다.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전투부에는 타격목표에 따라 고폭탄두와 산포탄두(집속탄두)가 선택적으로 들어간다. 적진의 방호시설을 타격할 때는 450kg 고폭탄두가 장착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쏘고, 적진의 병력과 군사장비를 타격할 때는 116개 자탄이 들어있는 산포탄두(집속탄두)가 장착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쏘는 것이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로씨야가 개발하고 있는 대륙간순항미사일 상상도다. 2018년 3월 1일 울라지미르 뿌찐 로씨야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로씨야가 대륙간순항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런 새 형의 전략무기가 개발되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는 무용지물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씨야가 개발하고 있는 대륙간순항미사일의 이름은 부레베스트니끄(폭풍몰이)다. 핵추진로켓엔진이 장착된 이 대륙간순항미사일의 사거리는 10,000km를 넘어 20,000km에 가깝고, 비행속도는 마하1이다. 로씨야는 2017년 말 부레베스트니끄 대륙간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처음 진행하였다. 순항미사일제작기술에서 로씨야를 추적하고 있는 조선도 대륙간순항미사일개발을 연구하고 있는지 모른다.     

 

로씨야는 핵추진엔진을 장착하여 사거리가 10,000km 이상 대폭 늘어나고, 비행속도가 음속을 돌파하는 대륙간순항미사일을 2019년 4월 현재 개발하는 중인데, 조선의 국방과학원도 대륙간순항미사일을 연구하고 있는지 모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에 개발된 신형 순항미사일을 평가하면서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 로동계급이 정말로 대단하다고, 마음만 먹으면 못 만들어내는 무기가 없다고 긍지에 넘쳐 말씀”하였는데, 그런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대륙간순항미사일이라고 해서 어찌 만들지 못하겠는가.   

 

조선은 최첨단 순항미사일로 미국의 허를 찔렀다. 평소보다 더 강화된 미국의 공중감시망을 뚫어버린 조선의 최첨단 순항미사일이 출현했으니, 미국이 허를 찔린 게 분명하다. 조선이 이번에 진행한 신형 순항미사일시험발사는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에서 조선에게 일방적인 핵포기를 요구하여 그 회담을 결렬시킨 미국의 오만과 전횡을 책벌하는 압박조치로 보인다.   

 

지금 미국은 자기의 핵무력을 대폭 증강하면서 조선에게는 일방적인 핵포기를 요구하여 조미핵협상에 커다란 난관을 조성하였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여 조선은 핵무기 생산을 중지한 조치를 유예하고, 핵무기를 다시 생산하고 있다. 미국이 조선에게 일방적인 핵포기를 요구하는 한, 조선은 그에 대응하여 핵무기를 계속 생산할 것이며, 신형 순항미사일에 전술핵탄두를 장착할 것이다. 이것은 조선에게 일방적인 핵포기를 요구하면서 자기의 핵무력을 대폭 증강하는 미국의 오만과 전횡을 질타하는 조선의 엄한 책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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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보법 위반 옥살이’에도 포기할 수 없는 IT사업가의 꿈

김지현 기자 kimjh@vop.co.kr
발행 2019-04-21 21:00:48
수정 2019-04-21 23: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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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IT사업가 김호씨를 지난 18일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IT사업가 김호씨를 지난 18일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민중의소리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국가보안법이 말이 되느냐! 지금이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아니고!”

지난해 8월 9일 이른 아침. 가족들이 아직 단잠에서 깨지 않은 그의 보금자리에 공안경찰이 들이닥쳤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하겠다는 황당한 이야기에 김호씨는 이같이 말하며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이내 공무집행 방해로 수갑을 채우겠다는 경고에 차마 아이들 앞에서 수갑을 찰 수 없던 아버지는 경찰을 따라나섰다. 

당시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민족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고, 4.27 판문점 선언까지 성공적으로 치러진 이후다. 사람들이 모이면 ‘이러다 정말 통일되는 것 아니야?’라는 식의 대화가 기분 좋게 오가던 때였다. 

남북 평화 분위기 속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온 대북사업이 드디어 빛을 보겠구나 희망을 품은 그에게 국가보안법은 생각지도 못한 청천벽력이었다. 국가보안법은 그렇게 김씨의 보금자리로 쳐들어왔고, 남북교류협력 사업의 새로운 길을 제시해보겠다는 꿈을 무너뜨렸다.

갑자기, 국가보안법이라니! 

“낭떠러지로 떨어진 줄 알았어요. 제 희망이 짓밟혔어요. 울분이 가득 했습니다. 화가 너무 났어요. 독방에 있으면서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북한 건강식품 판매를 시작으로 2002년 일찍이 남북경제협력 사업에 뛰어든 그는, 2010년 5.24 대북 제재조치로 사업이 불가능해지자 IT사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중국법인을 통해 북한 개발팀에 얼굴인식 프로그램 하청을 맡기는 제3자 무역 방식이었다. 간접적으로 북한과 접촉하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검찰은 양모씨 등 중국 중개인들을 구체적 근거도 없이 ‘북한 공작원’으로 지목하고, 김씨가 과거 학생 운동을 한 전력이 있다는 내용 등을 적어 공소장을 완성시켰다. 김씨가 ‘북한’이라는 존재를 숨긴 채 사업을 했고, 그 과정에서 북한의 ‘지령’에 따랐다는 것이다.

김씨는 인터뷰 과정에서 이 같은 검찰 주장에 반하는 서류를 공개했다. 2006년부터 2012년 까지 매년 통일부에 제출했던 대북 사업 계획서, 사업 내용 등이 담긴 접촉신고서였다. 검찰이 ‘존재를 숨겼다’고 주장한 양씨의 이름이 기재돼있었다. 

그는 양씨에 대해 “숨길 이유가 없다”며 “그의 정체성은 조선족, 중국국민이다. 사업을 위해 소개받은 수많은 중국 중개인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검찰은 김씨 회사의 얼굴인식 기술 프로그램이 ‘악성 프로그램’이라며 ‘파일삭제’, ‘화면캡처’ 기능 등을 위험 요소로 꼽았다. 이러한 악성 프로그램이 북한의 목적에 따라 국내 주요 기관의 컴퓨터에 접속해 핵심 정보를 삭제하거나 빼내가는 등의 사이버 테러에 이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굴인식 프로그램으로서 ‘파일삭제’는 정상적‧필수적인 기능이다. 행정안전부 가이드라인에는 수집된 개인 영상정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삭제하도록 돼있다. 영상 파일 속에서 얼굴을 인식해내기 위한 화면캡처 기능 또한 마찬가지다. 

검찰의 주장은 IT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경우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다. 김씨는 “기술에 대해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 근거 없는 공포감을 조성하려 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말에 변론해야 한다.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재판 초기 검찰은 이 같은 논리를 펼치며, 김씨의 회사가 납품한 얼굴 인식기술 프로그램에 ‘악성코드’가 심어져있다고 주장했다. 디지털포렌식, 증인신문 등을 통해 이를 입증하려 했다.

그러나 별다른 악성코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검찰이 진행한 디지털포렌식 결과를 통해서도 사이버테러로 볼 수 있는 파일 등은 추적된 바 없다. 

또한 검찰이 법정에 불러 세운 다수의 거래처 업체 직원들은 하나같이 “바이러스 피해 사례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실제 한 증인은 재판장이 김씨 측이 보낸 이메일에 첨부된 파일에 바이러스가 심어져있었느냐고 묻자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하느냐”고 반문했다. 상식적으로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족적이 뻔히 남는 이메일이 아니라, 직접 만나서 USB 등을 통해 건넸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법원 자료사진
법원 자료사진ⓒ민중의소리

‘위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있는 국보법 

최근 검찰은 기존의 주장을 바꿨다. ‘현재로서 사이버 테러라는 결과가 일어난 적은 없었지만, 앞으로 그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김씨 업체가 실제 사이버테러를 벌인 적이 없고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업 자체가 지닌 사이버테러 ‘위험성’ 자체로 국보법 혐의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악성코드의 존재 등 사이버테러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검찰, 김씨는 ‘입증을 못하니, 갑자기 위험 가능성을 강조하기로 전략을 바꾼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김씨는 “위험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그런 말장난을 검찰이 재판에서 하고 있다”고 격분했다.

검찰은 최근 재판부에 김씨에게 적용한 혐의인 ‘국가보안법 위반 상 군사상 기밀’은 “반국가단체에 대하여 비밀로 하거나 확인되지 아니함이 대한민국의 이익이 되는 사실, 물건 또는 지식 등 ‘모든 정보자료’를 의미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러면서 “군사기밀보호법상 ‘군사기밀’과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군사기밀보호법상 ‘군사기밀’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누설되면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이 따르는 정보를 뜻한다. 

김씨는 “이걸 보고 사건의 실체를 더 명확히 알게 됐다”며 “도대체 ‘모든 정보자료’라는 게 뭐냐. 이얼령 비얼령,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뭐든지 마음대로 ‘위험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된다. 그런 가능성 자체로 처벌하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건 그냥 괴롭히는 거다. 결과적으로 북한과 사업을 하는 자체로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인데, 지금과 같은 평화 시대에 너무 부당한 처사다”고 울분을 토했다.

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떠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내외와 문재인 대통령내외가 환송행사에서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다.
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떠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내외와 문재인 대통령내외가 환송행사에서 참석자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다.ⓒ2018남북정상회담 공동사진기자단

검찰은 왜 나를 가뒀나? 

그는 요즘 들어 ‘대북사업을 하는 다른 큰 회사들도 많은데 왜 나 같은 피라미를 가뒀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한다. 김씨는 고민 끝에 ‘내가 운동권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기소하진 못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영장을 보면 제가 학생 운동권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실질적으로 제 경력을 가지고 대중의 반북정서를 자극해 공포를 심어준 것이 아닌가요. 제 얼굴인식 기술 프로그램은 아직 판매가 된 것도 아니었고 개발과 투자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운동권 출신이 아니었다면 이정도의 경제 교류를 가지고 문제 삼을 수 있었을까요. 검찰이 기소하자마자, 보수매체에서는 즉시 ‘운동권 출신 대북 사업가’라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설 명절을 앞두고 보석 석방된 그는 수감됐던 6개월 간 상당한 고객들과의 계약이 무산돼 사업을 새롭게 일궈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김씨에 따르면 그의 사업이 ‘국보법 위반’으로 지목되면서, 그의 사업체 외에도 남북협력으로 진행됐던 IT사업 전반이 타격을 입고 위축된 상황이다. 김씨 회사와 같이 중국법인을 통해 북한 기술자들에게 프로그램 기술 개발 하청을 주는 사업구조는 국내 IT 업계에서 알음알음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북한의 기술력도 좋고, 이 분야 자체가 경쟁력이 있다 보니 대북사업 중 IT사업이 가장 성과가 좋다. 그런데 제 사건 이후 이 분야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며 “애니메이션 제작, 아이콘 디자인 사업 등 북한 하청으로 큰 수익을 냈던 과거 성공경험이 있는 업체들은 노하우도 있는 만큼 이런 사업을 다시 하고 싶어 하지만 제 사건이 터진 이후 겁을 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죄’보다도 제가 더 바라는 것은...”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 화해모드가 조성돼가는 과정에서, 제 사업과 같은 모범사례를 악의적으로 사장시키려 했다는 겁니다.” 

김씨는 자신 있게 그의 사업을 ‘모범사례’로 꼽았다. 

“사실 저희 얼굴인식 사업은 저를 구속하지 않아도 힘들었습니다. 앞서나갔던 분야였고, 저희가 국내 유일 사업체였으니까요. 저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남북 경제협력의 정형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사업을 꼭 성공시켜서 그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남북 화해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사명감도 있었습니다. 오랜 개발 과정에서 사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만 그래서 버텨올 수 있었는데….” 

그는 북한의 프로그램 개발 알고리즘의 경쟁력이 굉장히 좋다고 평가했다. 기술력과 개발자들의 근면성실함이 수준급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노동력이 값싸다고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북한에 사람이 많으면 얼마나 많은가. 결국은 최첨단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사업가적 관점에서의 의견을 밝혔다. 

김호씨는 남북 경제 관계에서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도록 가상화폐 형식의 특수목적 화폐를 마련하는 사업을 구상해 진행하고 있다. 최근 산업은행에서 사업설명회를 가졌다.
김호씨는 남북 경제 관계에서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도록 가상화폐 형식의 특수목적 화폐를 마련하는 사업을 구상해 진행하고 있다. 최근 산업은행에서 사업설명회를 가졌다.ⓒ김호 제공

김씨는 한 차례 좌절을 겪었지만, 다시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고객을 많이 잃고 위축된 얼굴인식프로그램 사업에 매진하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사업을 구축해나가는 일로 바쁘다. 건축업과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사업, 남북 경제 관계에서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도록 가상화폐 형식의 특수목적 화폐를 마련하는 사업 등을 구상하고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그는 “상황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이 시련의 의미가 뭘까 고민해보자. 그런 생각 끝에 다시 일어났다. 솔직히 스티브 잡스같은 대단한 혁명가는 아니지만, 길을 만드는 사람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재판에 최선을 다해 임하겠다”면서도 자신의 ‘무죄’를 크게 바라고 있지 않는다고 했다. 

“저의 유무죄를 떠나서 이번 기회에 남북 정상회담과 공존할 수 없는 국보법의 문제점이 공론화됐으면 합니다. 이런 정상적인 남북교류 협력 사업조차 ‘이적’이라며 처벌하려는 공안검찰의 모순이 알려져 오히려 국보법 폐지 및 수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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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비핵화’보다 ‘북 친구화’가 빠른 해법이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4/22 08:59
  • 수정일
    2019/04/22 08:5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칼럼> 전현준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
전현준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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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2  02: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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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은 대화 자체의 필요성에만 합의했을 뿐 미국은 한국의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괜찮은 거래)’을 거부하였다. 미국이 우리의 ‘포괄적 합의 단계별 이행’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핵 시설 리스트 신고와 대량 살상 무기(WMD) 동결·폐기를 포함하는 ‘일괄 타결식 빅 딜(big deal)’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만큼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 합의 후, 단계적 이행’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대가 컷던 금강산 관광 재개는 일단 무산되었다. 미국의 강압적 태도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미국의 일방적 외교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2.27~28)을 무위로 돌렸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결과보다는 더 진전된 합의가 나올 것으로 기대를 했던 많은 국민들과 전문가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기대가 컷던 만큼 실망도 그만큼 컷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100년 대계인 ‘신한반도체제’를 준비했던 문재인 정부와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를 꿈꾸었던 관련 기업들의 실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일 것이다. 그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주역은 누구든 언젠가 응당한 책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북의 완전한 비핵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미국의 체제안전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북이 ‘안보의 보검’인 핵무기를 포기할 리가 만무하다. 북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핵무기 공격을 두려워해 왔고 그 가능성은 여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핵안보에 대한 대체재(substitute goods)를 주지 않은 상태에서 북핵을 모두 폐기하라고 하는 것은 남의 안보 대체재 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북핵문제 해결의 최선책은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이다. 북과 미국이 북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의 완전한 체제안전 보장을 합의하고 이것을 몇 단계로 나누어 이행하는 것이다. 상호 불신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당면 과제를 ‘선후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방이 먼저 행동을 했을 때 타방이 똑같이 행동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배신을 감독하고 배신에 대해 책벌을 가할 주체가 없는 것이다. 이 때 최선의 방법은 동시에 행동하는 것이다. 조그만 것에서 신뢰가 쌓이면 더 큰 것으로 확장해 가는 것이다.

문제는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이것조차 쉽지가 않다는 것에 있다. 미국은 단계별 해법을 죽도록 혐오한다. 미국은 1994년 10월 미북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합의, 10.3합의, 2012년 2,29합의 등이 소위 ‘단계별 동시행동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지만 북이 이를 모두 파기했다고 보고 있다. 볼턴과 같은 강경파들이 북의 단계[별 해법을 죽자사자 반대하고 최단기간내에 ‘빅뱅식’으로 비핵화를 실시하자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반대로 북은 위의 합의들을 미국이 깼다고 보고 만일 일시에 비핵화를 이룬다면 이후 미국은 CIA공작을 통해 ‘리비아식’으로 민중혁명을 사주하여 김정은 정권은 물론 주체사회주의 체제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인 방안은 우선 북을 ‘미국의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만일 북이 미국의 친구가 되면 북이 미국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 지금은 미국과 북이 ‘백년 숙적’처럼 지내고 있으니까 북이 미국의 침략을 두려워하고 미국이 북의 핵공격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만일 두 국가가 친구가 되면 ’친구평화론‘에 입각하여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불법적 핵보유국인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들 국가들과 수교와 경제교류 등을 진행하여 친구로 지내기 때문에 이들의 핵공격을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북도 미국이 친구로 삼을 만한 충분한 전략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북과 친구가 됨으로써 북의 안보불안을 제거해주고 신뢰를 확보한 다음에 북의 비핵화를 본격화하는 것이 순서이다. 일부 논자들은 미국과 북이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북은 언제든 미국에게 핵무기로 위협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국이 북을 친구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북이 미국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필요도 이유도 없게 된다. 미국이 북을 죽이려 한다면 핵무기를 쓰겠지만 자신을 살리려고 하는 데 무슨 이유로 핵무기를 쓸 것인가?

만일 북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북도 그 즉시로 파멸적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미국은 전략 및 전술무기를 6,500기 정도 보유하고 있다. 북은 기껏해야 몇 십 기를 가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정상적이지 않고서야 미국을 선제공격할 수는 없다.

결국 안보상 약자인 북이 핵무기를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들고 그 이후에 북핵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순서이다. 진정 북의 비핵화를 원한다면 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첩경이다. 다만 이 해법 또한 쉽지는 않다. 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면서 북과의 적대적 상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국내외의 안보 카르텔이 있기 때문이다.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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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배지 만든 박석인 대표, 그가 '오월 어머니'를 택한 이유

"노란 리본은 세월호, 그런데 5.18 상징은?"

[스팟 인터뷰] 5.18 배지 만든 박석인 대표, 그가 '오월 어머니'를 택한 이유

19.04.21 12:34l최종 업데이트 19.04.21 12:34l

 

 주먹밥을 머리에 이고, 횃불을 든 오월어머니. 박석인 광주 메이홀 대표와 임의진 목사 등 동료들이 오월항쟁 40여 년만에 만든 5.18배지. 홍성담 화백의 판화에서 그 형상을 빌려왔다.
▲  주먹밥을 머리에 이고, 횃불을 든 오월어머니. 박석인 광주 메이홀 대표와 임의진 목사 등 동료들이 오월항쟁 40여 년만에 만든 5.18배지. 홍성담 화백의 판화에서 그 형상을 빌려왔다.
ⓒ 메이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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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은 결코 잊지 말아야할 '세월호 참사'를 상징한다. 붉은 동백꽃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제주 4.3을 상징한다. 그리고 오월항쟁 40주기를 1년 앞둔 2019년 4월, 드디어 5.18항쟁을 상징하는 배지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옆에서 광주 최초의 시민자생 예술공간인 '메이홀'을 11년째 운영하고 있는 박석인(의사) 대표. 박 대표는 20일 저녁 자신의 SNS를 통해 배지 하나를 공개했다. 배지는 머리엔 주먹밥 광주리를 이고, 손엔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어머니를 형상화했다. 1980년 '오월어머니'의 모습이다.

"작년에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 제주 4.3항쟁 70주기 추모식에서 4.3을 상징하는 동백꽃 배지를 보았다. 누구나 동백꽃을 보면 제주 4.3을 생각한다. 그리고 노란 리본을 보면 세월호를 생각한다. 내년이면 5.18도 40주년을 맞는다. 그런데 5.18을 상징하는 아이콘 하나, 배지 하나 없다는 것이 늘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박 대표의 목소리에서 '이제사 해냈다'는 안도감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5.18배지 형상의 원형은 홍성담 화백의 오월판화 <횃불행진>에서 가져왔다.

홍 화백은 박 대표의 취지를 듣고 두말없이 사용을 허락했다. 메이홀 관장을 맡고 있는 다중예술가 임의진 목사가 구상 단계에서부터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고근호·주홍 작가가 이런저런 의견을 내며 감수했다. 판화의 형상을 배지로 만들어내는 디자인과 그래픽 과정에서는 서동환 <광주아트가이드> 편집장이 힘을 보탰다.

 
 5.18배지를 처음 구상하고 제안해 동료들과 함께 광주항쟁 40여 년만에 처음으로 5.18배지를 만든 박석인 메이홀 대표. 그가 5.18배지의 이미지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  5.18배지를 처음 구상하고 제안해 동료들과 함께 광주항쟁 40여 년만에 처음으로 5.18배지를 만든 박석인 메이홀 대표. 그가 5.18배지의 이미지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 메이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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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 화백의 판화에서 찾아낸 주먹밥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어머니는 5.18을 상징하기에 손색이 없다. 주먹밥 광주리를 이고,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희생과 나눔, 비폭력 대동세상 등 5.18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사비를 들여 우선 5.18 배지 1천 개를 만들었다. 오월어머니들과 5.18 관련자들에겐 무상으로 드리고 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겐 약간의 금액이라도 받고 팔 계획이다. 수익금이야 작겠지만 5.18의 의미와 가치를 허투루 하지 말자는 작은 실천의지를 서로 나누자는 생각에서다.

"이번에 만든 1천개의 5.18배지가 좋은 마중물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그래서 차량 스티커도 만들고, 엠블럼도 만들어서 5.18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특히 올해 5.18 추모식에서는 광주시민의 가슴에 달린 '주먹밥 아줌마. 주먹밥 어머니'를 보고 싶다. 그리고 내년 5.18 40주기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든 5.18배지, 5.18아이콘과 함께 치렀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2004년부터 의료봉사를 해온 박 대표는, 지난 2008년 임의진 목사 등과 함께 광주 최초의 시민자셍 예술공간 메이홀을 만들어 해마다 <오월특별전>과 <세월호 추모전> 등을 개최하고 있다. '시민자생 예술공간, 메이홀(May Hall)'의 창립정신은 오월정신·광주정신이다.
 
 항쟁 40여 념만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5.18배지는 홍성담 화백의 판화 <횃불행진>에서 그 형상을 빌려왔다.
▲  항쟁 40여 념만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5.18배지는 홍성담 화백의 판화 <횃불행진>에서 그 형상을 빌려왔다.
ⓒ 홍성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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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북한에 대한 '완승' 전략으로는 역사 못만든다

윌슨의 '승리 없는 평화'와 트럼프의 '빅 딜'

 

 

 

세계외교사에 이름을 남긴 외교의 거장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외교 전략과 전술에 능해 국가의 이익을 적극 실현한 인물들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19세기 유럽질서의 토대를 마련한 오스트리아의 재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19세기 후반 현란한 비밀동맹외교로 프로이센의 안보를 확보한 오토 폰 비스마르크, 1970년대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 내면서 미국의 국익을 최대화하려 했던 헨리 키신저 등이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외교이념과 시대적 과제를 제시한 인물들이다. 집단안보체제라는 새로운 개념을 바탕으로 국제연맹을 창설한 우드로 윌슨, 유엔의 역할을 단순한 '평화 관리'가 아니라 '평화 창출'로 설정하고 세계를 누빈 제2대 유엔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가운데 윌슨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들고 나온 '14개 조항'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특히 '14개 조항'에 포함된 민족자결주의는 우리의 3.1운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윌슨은 1차 대전 참전여부를 고민하던 1917년 1월 의회에서 연설을 했다. 제목은 '승리 없는 평화'(Peace without Victory). 연합국이 전쟁에 이기더라도 패전국을 완전히 굴복시켜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완승은 장기적 평화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 논거였다. 참전하면 승리해야 하고, 나아가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데, 그 방안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찾아낸 답의 일단이었다.  

비슷한 사고는 윌슨과는 결이 다른 외교 거장 비스마르크에서도 발견된다. 독일통일을 위해 1864년 덴마크와의 전쟁에서 이긴 다음, 프로이센은 1866년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했다. 뛰어난 군사전략가 헬무트 폰 몰트케 덕분에 한 달 만에 승세를 굳혔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진격해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군부 지도자들은 그러자고 했다. 왕 빌헬름 1세도 동조했다.  

하지만 재상 비스마르크의 생각은 달랐다. 오스트리아를 완전 굴복시키면 원한을 남기게 되고, 다음 전쟁 상대인 프랑스를 칠 때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군의 후미를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군부와 왕을 설득해 빈 공격을 막았다. 덕분에 5년 후 프랑스와의 전쟁(보불전쟁)에서도 승리해 독일 제2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목하 빅딜을 고집하고 있다.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을 위시한 빅딜론자들의 주장을 들을 때면 위의 두 사례가 겹쳐 떠오른다. 북한이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 다른 대량살상무기(WMD)까지 모두 폐기하면 경제제재를 해제하겠다는 게 빅딜의 개요이다. 
 

▲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각)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이 중간단계에서 일부 제재 해제의 가능성을 언뜻언뜻 비추기도 하지만 명료한 것은 없다. 윌슨·비스마르크의 '승리 없는 평화'와는 대척점, 즉 '승리 있는 평화' 또는 완승전략이다. 완승은 불신과 적대감을 배태하는 길이고, 장기적 평화와는 반대의 길임을 잊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반응은 트럼프 행정부의 완승전략이 장기적 평화는커녕 당장의 협상타결도 얻기 힘들 것임을 예고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북한은 최근 농업과 수산업의 발전을 강조하면서 자력갱생과 자립적 민족경제의 구호를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외치고 있다. 러시아와의 정상회담도 열어 북-중-러의 북방 삼각관계를 강화하려는 모양새다. 미국과의 장기 교착에 대비하고 있는 것일 게다.  

미국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온건보다는 강경파가 힘을 더 얻을 공산이 크다. 대외정책에 관한 한 유화적인 주장보다는 강한 정책이 대중영합적이고 표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지금의 미국 입장은 '빅딜 아니면 안 된다. 빅딜에 응하든지 아니면 내년 대선 이후에 보자'라고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트럼프가 3차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은 본인이 원래 주장했던 '기존 정치세력과 다른 접근을 통한 핵문제 해결', 즉 김정은과의 담판을 통한 비핵화의 가능성은 남겨두어, 미국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는 계속 갖고 있도록 하고자 하는 전략일 것이다. 그만큼 3차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낮아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트럼프의 거장 욕구다. 세계외교의 거장들이 했던 것처럼 완승보다는 항구평화의 길을 찾아 노벨평화상도 받고 세계외교사의 한 페이지도 장식하고자 하는 욕심을 발휘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두 단계건 세 단계건 단계를 나누어 비핵화하는 협상에 적극성을 보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협상의 기본을 상기하는 것이다. 협상의 기본은 상호신뢰다. 신뢰는 반복적인 주고받기 속에서 생긴다. '얼마를 주니까 얼마가 돌아오더라'라는 경험이 신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북미는 지난 70년 간 불신을 쌓아왔다. 그래서 깊은 신뢰가 필요한 빅딜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고, 불신을 신뢰로 바꾸어 가는 작업은 필수불가결이다. 그러자면 작은 규모라도 주고받기가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급선무이다. 그런 연후에야 '빅 딜'(Big Deal)이건, '패키지 딜'(Package Deal)이건,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건 비로소 가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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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장외투쟁 나선 자유한국당 “친문무죄·반문유죄냐...좌파독재 중단하라”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4/21 12:41
  • 수정일
    2019/04/21 12: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황교안 체제 첫 장외 투쟁...“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 즉각 철회하라”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9-04-20 17:47:56
수정 2019-04-20 1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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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를 마친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과 당원들이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를 마친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과 당원들이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자유한국당이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좌파 독재 정권'으로 규정하며,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하겠다"며 국회 밖으로 나왔다. 황교안 체제 출범 이후, 자유한국당의 첫 장외투쟁이다. 이들은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강행에 '인사 참사'라고 반발하며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20일 오후 자유한국당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 대회를 개최했다. 집회에는 당 대표, 주요당직자, 의원, 당협위원장 및 당원 등 2만 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자유한국당 시·도 당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 광화문으로 모였다. 자유한국당의 상징색인 빨간색 계열의 옷을 입은 당원과 지지자들은 '문재인 STOP 국민심판'이라고 적힌 빨간 손피켓과 태극기를 흔들었다. 의원들의 규탄사에 흥분한 지지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욕설을 쏟아내며 고성을 질렀다.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정의철 기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과 당원들이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를 열고 현 정부의 독단적인 정부 운영을 규탄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과 당원들이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를 열고 현 정부의 독단적인 정부 운영을 규탄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무대에 오른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로 인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삼권분립', '시장경제'가 무너져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로 단상에 오른 자유한국당 좌파독재저지특별위원장인 김태흠 의원은 "문 대통령은 헌법재판관으로 부적격인 이미선 후보자를 야당이 반대하자, 김경수·드루킹 댓글조작으로 정권을 잡은 세력답게 교묘하게 여론조작까지 하며 전날 임명을 강행했다. 그것도 해외에서 전자결재로 했다"며 "'주식 전문가' 이미선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 강행한 것은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마저 '개무시'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문 정부와 민주당은 재판부를 협박하고 협박해 김경수를 보석으로 석방시켰다"며 "한마디로 친문무죄, 반문유죄, 친문석방, 반문감방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김정은이 좋아할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 김정은 대변인 노릇할 사람을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정권이 종북 정권이 아니고 무엇이냐"며 색깔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이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에서 손을 잡고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이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에서 손을 잡고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10인의 전사 의원들이 단상에 올라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인사하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자유한국당 김광림·주광덕·김도읍·장제원·곽상도·백승주·성일종·김종석·최연혜·임이자 의원은 문재인 정권에 맞서 싸우는 '전사 의원'으로 이날 소개됐다.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에 집회 사회자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준엄한 경고'라고 설명했다. 이날 대회에는 전희경 의원과 이인제 전 최고위원이 규탄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를 맹비난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에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에서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이후 무대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올라서자 지지자들은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했다.

나 원내대표는 "좌파 정권의 무면허 운전이 대한민국의 경제를 망가트리고 있다"며 "이념 포로 정권이 온통 국정 동력을 적폐세력 청산에만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북한만 바라보고 있다"며 "이 정권은 북한하고 적폐청산만 아는 북적 북적 정권이라고 그랬다"고 자신이 했던 발언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과 관련해 나 원내대표는 "이미선 후보는 코드 사슬로 꽁꽁엮여 있는 후보"라며 "결국 이 정권이 헌법 재판관을 자신들 마음대로 쥐락펴락해서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친문재판소'를 만드려고 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후보(임명)를 강행한 것"이라고 외쳤다.

나 원내대표는 "왜 헌법재판소에 이렇게 집착하겠냐. 운동권 1기였던 노무현 정부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얼마나 극렬하게 투쟁했는지 기억할 것"이라며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이 위헌으로 결정나면 우리의 노력도 소용이 없어진다. 막아야 하지 않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문재인 정부를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로 비유했다. 그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펼친 무자비한 포퓰리즘의 마지막 퍼즐이 사법부 장악이었다"면서 "차베스 정권이 사법부를 굴종하게 하고 복종하게 해서 비판하는 세력에게는 입에 재갈을 물리고 마음대로 감옥에 보내고 그렇게 해서 베네수엘라가 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저는 '엄마 정치인'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우리 자식들과 다음 세대에게 빚더미 대한민국을 물려주려는 포퓰리즘 정권을 막아달라"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에서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에서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황 대표가 단상에 오르자, 당원과 지지자들은 함성을 질렀다. '광화문에 처음 나왔다'고 말한 황교안 대표는 이날 대회에서 20분을 넘게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은 한결같이 좌파독재의 길을 걸어왔다"며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좌파천국'을 만들어 놓았다"고 맹비난했다. 

황교안 대표는 "헌재재판관까지 청문회 무시하고 국민 반대도 무시하고 짓밟고, 주식 투자 코드 인사를 밀어부쳤다"며 "대한민국 헌법까지 자기 맘대로 주물러서 좌파독재 완성하겠다는 거 아니냐"고 주장했다.  

특히 황 대표는 "힘도 없는 지난 정권 사람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살아간다. 아무리 큰 병에 시달려도 끝끝내 감옥에 가둬놓고 있다"면서, "그래놓고 무려 8,800만건 댓글 조작해서 감방에 간 김경수를 말도 안되는 보석 판결로 풀어줬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친문무죄, 반문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 이게 이 정권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이런 거냐"라고 소리쳤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또한 황 대표는 "문 정권 대한민국 경제도 완전히 무너트리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 강하게 비난했다. 황 대표는 최저임금 1만원과 관련해 "경제는 바닥을 치고 있는데 최저임금만 잔뜩 올려준다"며 "일자리를 잃게 하고 있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죄다 망하고 있는데도 최저임금만 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탄력근로제 확대와 관련해 "알바자리 구하려고 그래도, 그거 구하게 힘들게 만들어 놓고 있다. 그래놓고 일하고 싶어도 일 못하게 근로시간 줄여서 편하게 잘 살자(한다)"며 "굶어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쉬냐"고 말했다.  

황 대표는 "민노총(민주노총) 갑질에 대기업 수출이 줄어들고 있다"며 "귀족노조 파업하고 중소기업들은 줄도산에 직면해 있다. 불법파업, 불법 점거, 불법 폭행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민노총 눈치만 본다"며 "그러니까 경찰도 검찰도 민노총 손 못대고 있다. 이러니까 어떻게 우리 경제가 살아나겠냐"고 말했다.  

황 대표는 "애국 시민들이 일어나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이 정권이 정신 번쩍 들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유한국당은 이 정권의 좌파독재가 끝날 때까지 결코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며 "제가 선두에 서겠다. 저의 모든 것을 걸고 좌파독재를 기필코 막아내겠다"고 소리쳤다.

이날 대회 말미에는,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단상에 함께 올라왔고,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자유한국당의 결의문을 낭독했다. 민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는 인사참사와 인사강행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며 "인사참사의 책임자인 조국 민정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을 즉각 파면하라"고 요구했다.  

민 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권의 독재에 맞서 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강력한 조치를 총동원해서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심판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집회 이후, 자유한국당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부터 청와대 인근인 효자동 주민센터까지 가두행진을 펼쳤다.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를 마친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과 당원들이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를 마친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과 당원들이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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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혁명회, '자주·민주·통일 4월혁명정신으로 민족모순 청산'

4월혁명 59주년 선언, '미국은 남북선언 이행 간섭말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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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9  12: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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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월혁명회는 18일 기독교회관에서 '4월혁명 59주년 행사'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4월혁명 59주년을 맞는 18일 사월혁명회는 '4월혁명 59주년 선언'을 발표해 '외세를 몰아내고 민족자주통일 이룩하자'고 호소했다.

사월혁명회는 이날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4월혁명 59주년 행사에서 발표한 '선언'을 통해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와 주한미군 전면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와 모든 양심수 석방 △ILO기본협약 비준, 최저임금제 개악, 탄력근무제 기간연장 등 노동법 개악 중단 △적폐청산 방해하는 자유한국당과 수구세력 척결을 '4월혁명의 역사적 소명'으로 결의했다. 

또 미국은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에 간섭말고 한반도 평화통일에 동참하라고 주장했다.

고철환 사월혁명회 공동의장은 인사말에서 "지금 한반도는 미국, 중국, 일본이라는 세계 1,2,3위의 패권국에 둘러싸여 있고 남과 북은 이들 패권국들과 겨루면서 자체 역량으로 우리 고유의 평화를 만드는 극히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남북화해의 당사자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민족자주의 정신으로 자주역량을 총동원하여 이들 패권국과 겨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촛불과 함께 해 온 사월혁명회는 외세로부터의 자주, 독재로부터의 민주, 분단으로부터의 통일이라는 4월혁명 정신으로 무장하여 올해를 민족모순을 청산하는 원년이 되도록 적극 행동하겠다"고 다짐했다.

   
▲ 왼쪽부터 고철환 사월혁명회 공동의장, 박흥섭 사월혁명회 공동의장,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이호윤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 상임대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연대사에서 "4월혁명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민주혁명임과 더불어 평화통일로 가는 길목이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다른 사람의 손이 아닌 우리 손으로 개척해려 한 선배 열사들의 헌신과 투쟁은 작금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로 가는 주춧돌이 되었다"고 4월혁명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판문점에서 꽃피운 화해와 평화의 봄은 평양의 가을을 지나 번영과 통일로 나아가고 있으나 여전히 어려움이 적지 않다"며, 반통일 수구세력들은 망언을 일삼으며 평화로 가는 민족의 발목을 잡고 있고 미국은 여전히 대북제재를 무기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당사자로서의 역할에 부족함이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때일수록 민족의 줏대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민족자주의 정신으로 뭉쳐야 한다. 역사적인 남북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의 시대를 함게 열어나가기 위한 전 국민적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나가자"고 강조했다.

6.15남측위는 4월 27일 임진각에서 민족자주의 원칙을 분명히 확인하고 평화와 번영, 통일의 의지를 밝히는 평화인간띠잇기와 4.27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한다며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호윤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 상임대표는 전국 70여개 대학의 민주동문회가 모인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는 모든 혁명의 '원조'인 4월혁명 참가자들의 직계 후배라고 할 수 있다며, "불의에 몸을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선배들을 따라 배우겠다"고 참가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지난해 4.27판문점선언 이후 6.12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미국의 시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힘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에 미국이 끌려나온 것"이라며, "북미간 70년 격돌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며, 우리 민족과 미국, 국제평화세력과 미국과의 대결로 확장되고 있다. 선배님들이 '자주, 민주, 통일'로 정리한 4월혁명 정신이 노선적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시대의 혁명은 판문점선언에서 천명한 평화, 번영, 통일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4월의 사자들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를 외쳤던 것처럼 4월 27일 전국에서 1만명 이상이 임진각에 집결해 한반도의 평화혁명, 통일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을 세계를 향해 외칠 것이다. 6.15, 8.15, 9.19계기에 평화세력들이 단결해 자주의 기치를 명확히 들겠다"고 밝혔다. 

정종성 한국청년연대 상임대표와 곽효남 진보대학생넷 대표는 4월의 함성을 계승해 한반도, 평화, 번영, 통일의 길을 열어나가는데 앞장서겠다고 결의했다.

   
▲ 대회 참가자들이 '외세를 몰아내고 민족자주통일 이룩하자'는 제목의 4월혁명 59주년 선언문 낭독에 이어 결의를 다졌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는 '4.27시대 평화와 통일위한 제2의 4월혁명을'이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월혁명상 시상은 올해 생략됐으며, '4월혁명 59주년 행사'에 이어 2부에서는 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가 '4.27시대 평화와 통일 위한 제2의 4월혁명을'이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이 교수는 1958년 미국의 핵무기가 한국에 반입되었다는 것이 기밀해제된 미국 의회 보고서를 통해 공식 확인되었고, 이승만의 하야와 1960년 4월혁명 직후 한국정부의 장관 임명 과정에 주한 미국대사가 시시콜콜 관여한 것도 드러났다고 하면서 그로부터 두 세대의 세월이 지났지만 미국의 간섭은 여전한데 이를 해결하자면 제2의 4월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사월혁명회과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는 19일 정오 수유리 4.19묘소에서 민족민주운동단체 합동참배식을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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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은 철저한 공격전’

노동신문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은 철저한 공격전’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4/21 [09:04]  최종편집: ⓒ 자주시보
 
 

 

북의 노동신문이 21일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시정연설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소식에 의하면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의를 잘 알고 조국의 융성번영과 찬란한 미래를 앞당기기 위하여 힘차게 싸워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은 현시기 사회주의 강국건설과 공화국 정부의 대내외정책과 관련한 문제들에 완벽한 해답을 주는 기념비적 문헌이라며 “(시정연설에서는현 정세와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선 우리 혁명의 요구우리 인민의 지향을 정확히 분석한 데 기초해 사회주의 강국건설에서 견지하여야 할 근본원칙과 입장과학적인 전략과 전술을 뚜렷이 밝혀주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시정연설은 사회주의 강국건설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국가건설사상을 철저히 구현해나갈 데 대한 문제로부터 나라의 모든 힘을 경제건설에 집중하여 사회주의의 물질적 기초를 튼튼히 다질 데 대한 문제북남관계개선과 조선반도평화보장을 위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혁명이 절실히 요구하는 문제들에 전면적인 해답을 주어 사회주의 건설과 우리 혁명발전에서 커다란 이론 실천적 의의를 가진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문은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의 역사적 의의 첫 번째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가건설 사상과 업적을 계승 발전시켜 주체의 사회주의강국 건설이론을 비상히 풍부화한 데 있다며 “(시정연설은김일성-김정일주의국가건설이론을 더욱 심화시켜 국가건설과 활동에서 자주의 혁명노선을 견지하고 국가 활동과 사회생활 전반에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철저히 구현할 데 대한 원칙적 문제들과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의 전략적 방침을 비롯해 우리 공화국을 영원히 김일성김정일동지의 국가로자주자립의 강국인민의 이상사회로 빛내어나가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뚜렷이 명시한 강령적 지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로 우리 인민은 사회주의강국건설의 곧바른 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해 나갈 수 있는 위력한 사상 이론적 무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의 역사적 의의 두 번째로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아보려고 날뛰는 적대세력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우리 힘우리 식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최대의 속도로 다그쳐 나갈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무기를 마련해준데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구체적으로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적대세력들의 제재해제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어나갈 것이라는데 대하여 천명한 것은 적대세력들의 정수리에 철추를 내리는 통쾌한 선언으로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시정연설은 철저한 공격전으로 일관되었다며 적대세력들의 제재 돌풍은 자립자력의 열풍으로 쓸어버려야 한다는 사상에는 남들이 가늠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자력갱생의 힘을 사회주의 건설을 추동하는 실제적인 원동력으로 전환시켜 놀라운 발전상승의 길로 질풍 쳐 내달리며 자력부강의 새 역사를 펼쳐나가려는 우리 당의 확고한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 시정연설은 굴함 없는 공격정신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고 보다 큰 승리를 이룩하려는 절세위인의 드팀없는 의지와 자기 힘으로 부강조국을 일떠세우려는 우리 인민의 강용한 기상이 응축된 기념비적 노작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 세 번째로는 우리 인민뿐 아니라 자주와 정의를 지향하는 세계의 모든 나라와 인민들에게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고 반제투쟁으로 힘 있게 고무추동한데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이번 시정연설에서 북미 관계와 관련해 원칙적 입장을 밝힌 것은 대북적대시정책을 노골화하고 세계를 제 마음대로 농락하는 세력들의 책동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리는 김정은 위원장의 담대한 배짱으로 이는 북의 주민들뿐 아니라 국가의 근본이익과 관련해서는 티끌만 한 양보나 타협도 하지 말아야 하며 오직 자체의 힘으로 국력을 강화하고 번영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는 철리를 알려줘 세계 진보적 인민들에게 커다란 고무적 힘을 안겨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은 현시대에 제국주의와 어떻게 맞서 투쟁하여야 하며 자기의 존엄을 지키자면 어떤 입장과 원칙을 견지하여야 하는가를 깊이 새겨주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시정연설에서 밝힌 남조선 당국과 손잡고 북남관계를 지속적이며 공고한 화해협력관계로 전환시키고 온 겨레가 한결같이 소원하는 대로 평화롭고 공동 번영하는 새로운 민족사를 써나가려는 확고한 의지를 피력했으며 이는 조국통일의 밝은 미래를 앞당겨오는 데서 우리 민족 모두가 변함없이 틀어쥐고 나가야 할 고귀한 지침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마지막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서 밝힌 투쟁의 기치강령적 지침을 백승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자기의 힘으로 앞길을 개척해 나가려는 북녘 주민들의 진군은 그 무엇으로써도 돌려세우거나 멈춰 세우질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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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만행의 역사는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기고] 5.18과 나의 인생 유전

 

 

 

 

 

자유한국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모독한 김순례, 김진태 의원에 대해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다. 사실상 '면죄부'를 쥐어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5.18은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자국민을 학살하고, 이를 통해 독재 정권을 낳은 최악의 인권 유린 사태였다. 과거의 사실이 밝혀진 오늘날까지도 그 후유증은 여전히 깊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로 신군부의 언론 통제에 항의해 사표를 쓴 후 학자가 된 이상백 전 건국대 부총장이 최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망언 사태를 보고 과거 자신의 경험담을 전해 왔다. 편집자.  
 
나는 교수이기 이전에 기자였다. 어언 39년의 세월이 건너간 옛 일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터지고 전두환 신군부가 당시 '언론자유 수호선언'에 가담한 기자들의 대량 해직 폭거를 자행하기 전, 나는 과감히 먼저 사표를 던지고 신문사를 떠났다. 광주 항쟁의 무력 진압에 항거하여 20대 후반부터 40대 초까지 오롯이 내 청춘을 바친 언론인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그 후 보안사와 안기부의 지속적인 미행과 감시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으며, 한동안 실업자 생활을 면치 못하는 등 굴곡의 인생 유전이 시작되었다. 
 
얼마 전 몇몇 극우 성향 국회의원들의 '5.18' 폄훼 발언과 '600명 북한군 침투설', 전두환 씨의 광주 법원 출두로 광주민주화운동이 새삼 부각되었다. 한국동란 이후 가장 비극적인 참사로 기록되는 이 사건을 느닷없이 정쟁의 도구로 들고 나온 일부 보수 정치인들의 태도와 전 씨의 뻔뻔스런 발언에 탄식과 울분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윽한 동안 잊고 지내던 5.18 당시의 험악한 사회 분위기를 전하고, 그에 저항하여 기자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나의 사연을 말하고자 한다.  
 
5.18은 광주에서 일어났지만 그 불행은 전국적으로 확산됐으며, 나 역시 그런 불이익과 불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5.18은 전국의 각 직장의 운명은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개인사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비극이었다.  
 
김재규의 저격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자 이 나라 모든 국민의 가슴은 그 동안의 오랜 군부독재가 끝나고 이 땅에도 진정한 민주 정치가 구현되리라는 기대로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그 이후의 나라 현실은 국민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박정희 정권 때보다 더 가혹한 신군부의 등장으로 귀결되었다.  
 
이에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지에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되고, 마침내 광주에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자 전두환 일당이 공수부대를 투입, 무력으로 이를 제압하는 한편 자신들의 만행을 은폐하기 위한 방편으로 철저한 언론통제에 들어갔다. 신군부는 일간 매체에서 제작되는 신문이 시중에 배포되기 전 반드시 군 보안사의 검열을 거치도록 제도화 했고, 그들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삭제하도록 강제했다.  
 
그 당시 군부의 검열을 받기 위하여 시쇄 몇 부를 들고 서울시청에 마련된 검열실을 다녀온 기자들의 참담한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한 곳이라도 온전한 기사를 싣기 위하여 검열관과 치열한 실랑이를 벌이며 그 정당성을 역설했지만, 번번이 위관급 검열관의 강압에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허탈과 울분으로 상기된 표정들이 지금도 나의 안전에 어른거린다. 
 
평상시 같으면 이미 가판대에 진열되었을 시간이라 다시 조판을 할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윤전기에 걸려 있는 연판에서 지적된 부분을 긁어내고 신문을 찍어내다 보니 곳곳이 여백으로 뻥뻥 뚫린 흉물인데다가 더러는 문맥조차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만신창이 신문을 독자들 앞에 내놓아야 했다.  
 
이와 같은 전대미문의 언론 탄압에 분개한 기자들의 저항 운동이 당시 동아일보를 비롯해 몇몇 신문사에서 암암리에 전개되고, 그 흐름 속에서 나의 인생행로도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1980년 당시 나는 동아일보 편집국 스포츠동아부의 편집기자로 재직하고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던 5월 하순, 같은 부서의 이계홍 기자가 은밀히 나에게 다가와 지금 편집국 내에서 뜻있는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선언’을 준비 중인데 이 선배도 동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즈음 사회부의 심송무 기자, 문화부의 박병서 기자, 국제부의 김재홍 기자 등이 주동해 이 선언을 준비 중이었다. 그 선언서에 서명할 동지를 규합하기 위하여 각 부서에 실무 간사 한사람씩을 선정했는데, 그때 스포츠동아부에서는 이계홍 기자가 간사로 나섰다. 
 
나 역시 5.18 사태에 분개하던 터라 이 기자의 권유에 놀람과 함께 공감을 느꼈으나 내심 한편으로는 그 서명이 가져올 후환을 예감하며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좀 더 생각해보고 가부를 알려주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철학도인 이 선배 같은 분이 서명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잘 생각해 보시고 결과를 알려주십시오." 
 
그날 밤 나는 이 문제로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섣불리 서명했다가 해직되는  것은 물론이요, 경우에 따라서는 군부정권에 체포돼 구속되고, 고문을 당할 수도 있었다. 당시는 항용 그랬으니까 각오해야만 했다. 이런 참혹한 상황에 내가 과연 동조해야 하는가?
 
이런 고뇌 중에도 문득 문득 되씹히며 떠오르는 것이 "철학도인 이 선배 같은 분이 서명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라는 이 기자의 목소리였다. 심각한 심적 갈등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던 어느 순간 문득 다음과 같은 통렬한 자각이 나에게 다가왔다. 
 
"이른바 철학도로서 나름 지적 존재임을 자부해온 나에게 그 지적 존재로서 나의 존재가치를 드높여 주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일찍이 칸트가 지적한대로 내심의 도덕률일 것이다. 한갖 고상한 이론이 아니라 나의 행동의 원리로서 자각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내심의 외침 말이다. 한데 그동안 나는 그 외침에 과연 얼마나 귀를 기울이며, 그에 부응하고자 노력해 왔던가? 특히 결단의 대상이 나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경우, 과연 나는 이를 뿌리치고 내심의 외침, 곧 양심의 명령에 따라 행동해 왔던가? 아무리 좋은 사상이나 생각도 행하지 않으면 헛된 꿈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두려워하지 말고 나서자. 양심의 소명에 충실하자. 그것이 양심을 지킨 철학도로서의 책무다." 
 
이튿날 나는 출근하자마자 이 기자를 불렀다.  
 
"이형, 앞장서시오. 심송무 기자에게 갑시다." 
 
이렇게 해서 나는 5.18의 거센 물결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시련에 직면하게 된다. 나의 '언론자유수호선언' 동참 소식이 알려지면서 소속 부서인 스포츠동아부 부원들의 미묘한 반응들이 침묵 속에 나를 긴장시켰다. 그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데스크였다. 그는 미리 부원들을 다잡은 뒤 나를 불렀다.  
 
"이상백 씨, 최고참 선배가 그럴 수가 있어? 선동하는 거요?"
 
분노가 묻어나는 일갈이었다. 그리고 그의 일장 훈시가 장황하게 이어졌다. 
 
"과거의 그 어느 정권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거친 신군부가 마음만 먹으면 신문사 하나쯤 정간시키거나 폐간시키는 일쯤 식은 죽 먹기인 시국이요. 자중하시오. 선임기자가 선동하는 모습은 모양이 좋지 않소!"  
 
현 시국에 대한 기자들의 결사(結社)를 염려한 회사 당국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자들에 대한 선무 공작은 늘 그렇듯 평기자와 지근거리에 있는 데스크들의 몫이다. 최고참 기자에다 선임기자인 내 행동을 그는 20여 명 부서 기자들 앞에서 제압하면서 다른 기자들이 동요하지 못하도록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나는 후배기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처지여서 내 움직임 하나하나가 주시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었다. 
 
데스크의 강압적 충고에 나는 한동안 꾹 참았다. 그러나 신군부의 폭력진압을 불가피한 일로 용인하는 듯한 그의 언동에 발끈하고 말았다. 욕설과 함께 심한 언쟁이 오가고 여태까지 흉허물없이 지내던 둘 사이는 한 순간에 회복하기 어려운 관계로 돌변했다. 노선상의 차이는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악화되었으나, 내 양심이 시키는 행동이었으므로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 후 사측으로부터도 협박성 회유가 있었다. 고참 기자들이 선두에 나서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이 다각적으로 내려왔다. 나는 신군부와의 싸움 이전에 데스크를 비롯한 사측과 먼저 싸워야 하는 입장에 처하고 말았다.  
 
5.18 폭거에 대한 언론자유 실천운동은 독립운동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지난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루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모 부장이 나를 다방으로 불러냈다. 그분은 내 팔을 붙잡더니 사정하듯, 그리고 충고하듯 말했다. 
 
"이 기자, 뭐 언론자유 선언인가에 서명했다면서? 75년 광고 사태 때도 회사 경영에 큰 시련이 있었던 거 아시잖아. 제발 너무 나서지 말고 회사 안정에 협조하세요. 이 기자가 다칠까봐 걱정돼서 하는 말이요. 용기는 가상하지만 개인이 다칠 때 누가 보상할 것이요? 자중하시오."  
 
그분 말대로 내가 걱정되어 충고 한마디 해준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 측의 압력임을 알게 모르게 시사해주는 것이어서 뒷맛이 씁쓸했다. 이런 때 회사가 구성원을 보호해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군부 편에 서는 듯한 압력에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데스크와의 알력이 깊어졌다. 그와는 직급의 고하를 떠나 사사로운 입장에서 오랜 친구지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서로 눈을 맞추는 것조차 겸연쩍을 정도로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이 같은 그와의 반목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회사를 등에 업고 나를 짓누르는 것이라 여겨지자 더욱 참기 어려운 모욕감과 분노가 일었다.
 
자고로 심적 고통의 약은 한잔 술 아니던가? 나는 이래서 매일 저녁 청진동 뒷골목 소줏집에서, 또는 지금은 없어진 국제극장 뒤 카페에서 가까운 친구들과 후배기자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서는 귀가 시간에 늦곤 했다. 패거리 가운데는 타사의 박 모 후배 기자도 있었다. 그는 당시 진행되고 있는 광주 현지의 상황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무언가 비선망이 있는 듯 했다.  
 
광주의 신문사 지국조차 폐쇄되다 보니 도통 안개 속인 그곳 소식을 우리는 그의 입을 통하여 생생히 들을 수가 있었다. 며칠 전엔 광주역 앞에서 시위대 몇 명이 죽고, 또 며칠 전엔 전남도청 앞에서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시 외곽에서도 탈출하던 시민들이 무더기로 총 맞아 죽고, 그리고 마침내 시민군이 무장했다고 하는 내용들이었다. 이런 내용을 세상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뉴스를 다루는 기자들마저 몰랐으니 암흑세상이라고 해야 옳았다. 
 
그래서 그는 이런 참상을 한 줄도 보도하지 못하는 신문사에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며 비분강개했다. 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나보고도 이런 비굴한 지성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형도 삼시세끼 굶지 않을 텐데 왜 형답지 않게 꿍꿍 앓고만 있느냐며 취중이었지만 거칠게 나를 추궁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폭압권력에, 세상에 항변하는 절규였을 것이다. 나는 박 기자의 충동적인 권유 때문에서가 아니라,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작금의 여러 가지 내 처지를 생각하며 나도 이제 거취를 결단해야 할 때가 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나는 마침내 사표를 쓰기로 결심했다. 문제의 서명으로 인해 언젠가 강제 해직이 될 수도 있는 처지인데 몇 주, 몇 달쯤 더 버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서 사내의 '언론자유실천위원회'가 정식 결성되기 전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사회의 첫 일터였던 신문사를 떠났다. 
 
그러나 결행은 했지만 내면의 갈등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당장 실업자가 된 공포감이 나를 짓눌렀다. 더군다나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등졌다는 아쉬움 때문에 견디기 어려웠다. 막상 떠나긴 했지만 정작 갈 곳이 없다는 현실이 또한 나를 암담하게 했다. 부모와 형제들, 자식을 거느린 장자로서 앞으로도 계속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섣부른 행동을 한 것이 아닌가, 후회되기도 했다.  
 
광야에 내던져진 마음으로 한동안 거리를 헤매었다. 막상 사표를 던지고 나니 동료, 후배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영웅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내 양심의 소명에 따른 것인데, 혹 영웅주의적 모습으로 비쳐질까 주저되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당장 개인적으로 좋은 면도 있었다. 아우들의 등록금 등으로 부채의 중압감에 허덕이던 나에게 퇴직금이라는 목돈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나는 석사학위를 갖고 있었고, 두서너 군데 강사를 뛰면 최소한의 생활은 버텨낼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공부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강사라도 제대로 하려면 박사과정을 이수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뒤늦은 공부 끝에 박사과정에 적을 두었다.  
 
그런 어느 날 뜻밖의 보도가 나왔다. 전두환 정권의 문교부 장관이던 이규호 장관이 졸업 정원제를 시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내용인즉슨 대학 입학 정원을 현재보다 30% 이상 늘려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대신 졸업 시에 그에 비례한 30%를 탈락시켜 졸업을 어렵게 만든다는 제도였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완화하여 입시생과 학부모의 환심을 사는 한편 졸업을 어렵게 함으로써 재학생들이 데모 따위에 한 눈을 팔지 않고 학업에 전념하도록 만든다는 궁리에서 나온 정권 나름의 묘책이었다. 
 
이렇게 학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경우 교수의 수요 역시 급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당시 박사 과정에 있던 예비 교수들이 하나둘 대학 전임으로 자리를 잡았고, 나도 그 흐름에 편승하여 마침내 지방 대학에 자리를 얻었다. 본격적인 학자이자 교수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곧 난처한 문제가 대두되었다. '언론자유선언'에 서명한 후 사표를 쓰고 퇴사한 이력으로 인해 안기부의 신원 조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였다. 다행히 그것은 별 문제 없이 넘어 갔다. 
 
신군부의 압력으로 신문사들이 '언론자유선언'에 참여한 기자들을 일제히 해직한 날이 1980년 8월 9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앞서 자진 사표를 던지고 나왔으므로 그들의 체킹 포인트를 비켜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교수 생활 초기에 기자 시절 '언론자유선언'에 서명한 사실과 이로 인해 사표를 쓰고 퇴직한 사실이 보안사의 정보망에 체크돼 또 다른 감시의 그물망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나의 연구실에 교무과장이 찾아와 엉뚱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날 오전 안기부 직원이란 사람이 찾아와서 최근 나의 동태를 묻고 갔다는 것이다. 아마도 신문사 시절에 있었던 일로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학교에서의 나의 일상에 관하여 좋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했다. 특히 강의를 잘해서 학생들의 인기를 독점하고 있는 유능한 교수라고 전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 학기말 수강생 수가 많은 교양과목 교수들을 상대로 시범 실시된 학생들의 강의평가에서 내가 최고점을 받은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얼마 후 건국대학교로 이직하게 되어 교수들에게 이임인사를 하던 중에 알게 된 일이다. 그 지방 출신으로 사회활동이 잦은 모 교수가 그 당시 내가 당국의 지시로 학교에서 파면을 당할 뻔했다는 저간의 사정을 귀띔해주었다. 요즘 생각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는 이처럼 독재 정권이 요주의 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사 전횡을 일삼던 시기였다.   
 
문제를 제기한 쪽은 안기부가 아니라 보안사였고, 보안사로서는 직무상 민간인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라 내 문제를 안기부에 이첩해 처리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는 보안사와 안기부라는 두 정보기관 간에 암투가 벌어지던 시절이라 그 지방 안기부 책임자가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교수를 공연히 잡으려 한다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면서 내 문제를 덮어버리는 바람에 무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학군단장으로 평소 학내에서 호가호위하던 현역 육군 소령의 모함이 사건의 발단이었다고 했다. 공적인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학군단 학생들의 공결 처리를 요구하는 그의 제의를 거절한 일이 있은 후 그가 암암리에 내 뒷조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정보기관에 문제 교수로 제보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아일보에서 시국에 저항하여 사표를 던지고 나온 문제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문제교수로 낙인찍어 제보했다는 것이다. 당시의 대학 캠퍼스는 이렇게 정권이 다른 이들은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학내 감시 정보망을 구축해 공포 분위기로 몰고 가던 시기였다.  
 
그 무렵 나는 수도권인 부천에 거주하고 있었다. 겨울 방학 중 어느 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경찰 한 명이 찾아왔다. 조사할 일이 있으니 경찰서로 함께 가줘야겠다는 것이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정보과장이라는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대뜸 "당신이 북한 체제가 남한보다 우수하다는 등 용공적 발언을 하고 다닌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자술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철학교수다. 평소 나는 강의시간에 '사회는 전투적인 혁명에 의해서만 발전한다'는 공산주의의 폭력성과 인민을 마르크스 레닌주의 및 김일성 주체사상이란 이데올로기의 노예로 길들이는 북한식 교육을 소개하고 비판해온 사람이다. 그런 내가 북한을 두둔하고 다녔다니 동의할 수 없다"는 항변과 함께 자술서 작성을 거부했다.  
 
그러나 밤이 새도록 정보과 형사들이 번갈아 들어와 회유와 협박으로 나를 어르고 달래며 자술서 작성을 강요했다. 이런 사태가 사흘이나 계속됐다. 그들의 협박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은 이런 감옥과 같은 부정의한 세상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였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최근 지방 상공인들과 관변 단체의 모임에 초빙되어 강연을 했던 일이 생각났다. 명색이 철학교수인지라 '사회 지도층과 도덕성'이란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했는데 "회사건 국가건 지도 계층의 윤리적 규범이 그 사회와 조직의 성패를 좌우한다. 특히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직자의 윤리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 현실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데 공직자의 윤리의식과 민주의식이 절실히 요구된다"라는 요지의 강연을 했다.  
 
며칠 동안 경찰서에 붙들려 있는 나를 보고 심각성을 느낀 어머니와 동생들이 구명운동에 나섰다. 어머니는 부천시 부녀회의 임원이었고, 그곳 유력 인사의 부인들과 친분이 있었다. 또한 나와는 달리 초등학교 때부터 부천서 학교를 다닌 동생들의 동창생 가운데는 부친이 지방 명사인 친구도 있었다.  
 
어머니와 아우들이 그런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나의 구명 운동에 나섰다. 몇 분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셨고, 예술인 중 원로 몇 사람들도 발 벗고 나섰다.
 
그들의 탄원 덕분이었을까? 쇼비니스트 풍의 정보과장과 달리 신사적인 인상의 경찰서장이 심사숙고 끝에 나의 훈방을 결정했다. 내 문제가 정보기관으로 이첩되었더라면 경찰서에서보다 더욱 혹독한 고초와 함께 교수직마저 부지할 수 없는 사태가 초래될뻔한 일이었다. 이처럼 당시는 공포사회였다. 
 
이 모든 것은 동아일보 사직 사건으로부터 연원했다고 생각된다. 그때 이미 요즘 말하는 블랙리스트가 작성돼 나의 활동 공간을 알게 모르게 제약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 나는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여유를 부리고, 평소의 소신대로 의사를 개진했지만 그럴수록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에워싼 '작은 저항'이 이토록 끈질기게 내 인생의 시련으로 다가올 줄이야 나는 상상도 못했다.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는 내가 이럴진대 당시 광주 항쟁의 복판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감시는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몸이 오싹해진다.  
 
나는 사실 이런 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 80대 노년기에 이른 나로서는 한창 젊었을 때의 뜨거운 열망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세상의 변화를 묵묵히 응원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데, 불과 수십 년 전의 일, 그것도 천하가 다 아는 5.18을 아무렇지 않게 폄훼와 왜곡, 조작까지 하는 자들을 보고 참을 수 없어서 펜을 들었다.  
 
역사를 지우려 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대로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 역사다. 화인처럼 더 생생히 부활하는 것이 역사의 정명(正名)이다.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시민정신이 깨닫고 있다. 때문에, 그것은 더욱 선명하게 깃발처럼 나부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정명의 정신으로 살아갈 것이다. 
 
필자 약력 
 
1939년 충남 홍성 출생.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 받음. 
대학 졸업 후 1980년까지 동아일보 기자 등 언론계 종사. 
그 뒤 전주대 전임강사를 거쳐 건국대학교 인문대학 교수.
건국대학교 부총장 역임.  
저서로는 <존재와 시간의 사유>(건국대출판부) 
<종교-영원과의 화해>(공저, 황소와 소나무)  
<이성과 반이성>(공저, 지성의 샘) 
<자아와 실존>(공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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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네이버에서 '소상공인' 간담회가 열린 까닭

[현장] 박영선 장관, "최저임금 부작용 대비, 600만 소상공인 입김을 대변하겠다"

19.04.19 20:38l최종 업데이트 19.04.19 20:48l

 

 

 서울 네이버 파트너 스퀘어 내부 사진들
▲  서울 네이버 파트너 스퀘어 내부 사진들
ⓒ 류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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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아래 중기부) 장관이 19일 포털업계 대기업 네이버를 찾았다. 이곳에서 열린 소상공인 상생 현장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박 장관은 이날 오후 2시께 서울 네이버 파트너스퀘어를 방문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을 비롯한 11명의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중기부에 취임한 후 박영선 장관이 소상공인 업계와 간담회를 갖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몇 번이나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강조했다. 박 장관이 직원들에게 직접 제안했던 독서 토론회에 필요한 책도 상생을 위해 지역 서점에서 사오겠다고 했다. 박 장관은 이날 참석한 박대춘 한국서점조합연합회장을 향해 "요즘 서점 사정이 좋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며 "독서토론회에 필요한 책 중 절반 가량을 역사가 오래된, 작은 서점에서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연착륙 필요해"

 

박 장관은 '4차 산업'의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 동시에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카카오톡이 처음 생겼을 때 (카카오톡쪽으로부터) '수익성으로 인해 회사가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면서도 "그런데 (카카오가) 지금은 신기루가 된 것처럼, 변화하는 시기에는 위기와 기회가 함께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어 "소상공인 대부분이 온라인 쇼핑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면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상권 전환기인 이 때에 소상공인에 대한 피해가 크지 않도록 정부가 어떻게 4차 산업을 연착륙시킬 것인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소상공인과 상생하려는 기업들의 노고를 치켜세웠다. 박 장관은 "네이버의 경제관은 '네이버가 가진 일부를 내려놓고 소상공인과 함께 채워가자'는 것"이라면서 "오늘 파트너 스퀘어를 살펴보니 촬영이 필요한 소상공인들을 위해 네이버가 스튜디오를 제공하는 등 윈윈(WIN-WIN)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네이버 파트너 스퀘어 내부 사진들
▲  서울 네이버 파트너 스퀘어 내부 사진들
ⓒ 류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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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박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 앞서 파트너 스퀘어 시설 곳곳을 둘러봤다. 화장품 콘텐츠 촬영을 위해 만들어 놓은 스튜디오 앞에서 발걸음도 멈췄다. 네이버쪽 관계자는 박 장관에게 해당 스튜디오를 '소상공인들이 이용하도록 만든 곳'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 파트너스퀘어는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2013년 네이버가 만든 '상생형' 공간으로, 소상공인을 위한 교육 장소 및 스튜디오로 활용되고 있다.

박영선 장관, 대기업-소상공인 상생 모델로 '서울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언급하기도
   
이날 네이버 파트너스퀘어를 소상공인 간담회 장소로 선택한 것 이러한 가치를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취임한 후 줄곧 '상생'을 강조하는 행보를 보였다. 지난 11일의 당진 전통시장 방문이 대표적이다. 박 장관은 이 시장을 이마트(노브랜드)와 지역 상인이 공존하는 '우수 사례'로 꼽으며, 자발적인 상생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중기부 관계자는 간담회 후 브리핑을 통해 "박영선 장관의 대외 일정에는 상생과 공존이라는 테마가 있다"며 "앞으로의 정책적 행보 역시 한동안 상생과 공존 측면에서 지역 선정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간담회에서 박영선 장관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최 회장은 "장관님과는 오랜 시간동안 현장에서 울고 웃었다"며 "소상공인 전체가 인정하는 분"이라며 친밀함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소상공인 기본법 등에 대해 차례대로 언급했다. 이 중 최 회장이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최저임금. 최 회장은 "(박 장관이) 청문회에서 최저임금 문제를 (회사) 규모별로 나눠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는데, 이에 공감한다"며 "소상공인뿐 아니라 저소득층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는데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했다. 

박 장관은 이에 대해 "현 정부가 최저임금에 대해 갖고 있는 방향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부작용에 대해 더 대비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이어 "최저임금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정책을 하나 둘씩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600만 소상공인들의 입김을 대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19일 네이버 파트너 스퀘어에서 열린 소상공인 상생 간담회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박영선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  19일 네이버 파트너 스퀘어에서 열린 소상공인 상생 간담회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박영선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 중소벤처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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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관건적 시기”…뚜렷해진 ‘줄타기 외교’

 

입력 : 2019.04.20 06:00:03 수정 : 2019.04.20 06:01:01

 

김정은 “관건적 시기”…뚜렷해진 ‘줄타기 외교’
 

시진핑에 보낸 편지서 친선 강조 
베트남에도 답전…우방과 밀착
러시아와 8년 만에 정상회담 등 
‘포스트 하노이’ 노선 강화 움직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줄타기 외교’가 뚜렷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자력갱생”을 ‘포스트 하노이’ 노선으로 내세운 이후 사회주의 연대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북·러 정상회담이 다음주(24일 혹은 25일) 개최될 예정이고, 중국·베트남 등 우방국과도 더 밀착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한국에 대해선 연일 압박성 메시지를 던지며 ‘불가근불가원’식 거리를 두고 있다. 김 위원장이 올 연말을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통보한 가운데,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외교 공간을 확보하고 ‘장기전’에 대비해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전략적으로 긴 호흡으로 움직여온 북한 외교가 또다시 변곡점을 맞는 흐름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자신이 국무위원장에 재추대된 것을 축하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지난 17일 답전을 보냈다고 노동신문이 19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가 북·중 수교 70주년이라는 점을 들어 “조선반도의 정세 흐름이 매우 관건적인 시기에 들어선 오늘 북·중 친선협조 관계를 더욱 귀중히 여기고 전진시켜나가는 것은 중대한 사명”이라고 했다. “가장 진실한 동지적 관계”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에게도 “총비서 동지의 축하는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위한 우리 당과 국가와 인민의 투쟁에 대한 힘 있는 지지와 고무가 된다”는 답전을 보냈다. 그는 지난달 초 베트남을 방문했으며,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

김 위원장은 내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하노이 노딜’ 이후 김 위원장의 첫 외교 행선지다. 8년 만의 북·러 정상회담에선 경제협력 문제가 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 우군 확보·경제 지원 등 
‘장기전’ 대비 협상력 강화 해석
한·미엔 연일 압박 메시지 대조
 

김 위원장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에 제재 완화에 대한 지원사격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보리 제재에 따라 올해 말까지 해외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모두 송환될 예정인데, 북한은 러시아에서 일하는 자국 노동자들의 체류를 희망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이 제재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러시아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반면 미국과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을 맞아 김 위원장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전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17일 신형 전술유도무기 사격 시험을 현지지도했으며, 북 외무성은 18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북·미 협상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 축하 메시지와 ‘정상 간 신뢰’를 내비치면서도 미국을 압박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남측에 대해서도 “오지랖 넓은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가 돼달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남북 교류협력 사업은 사실상 중지됐다. 개성 공동연락사무소의 정례 협의 채널인 남북 소장회의는 이날로 8주째 열리지 않았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사회주의 연대를 복원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미국으로부터 제재 완화를 받아내기 어려워진 만큼 국제사회에서 우군을 확보함으로써 비핵화 협상의 장기화에 대비하고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이 핵 포기 카드를 들고 나왔기 때문에 사회주의 연대 등 국제관계 개선도 가능한 것”이라며 “미국과의 협상을 재개하기 전에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고 체력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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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방종지수’

‘저질언론지수’를 만들어 ‘자유지수’를 보완해야 한다
 
강기석 | 2019-04-19 13:47:5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경 없는 기자회」가 18일 발표한 2019년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41위를 기록, 아시아에서 가장 언론자유도가 높은 국가가 됐다.

지난 4일 ‘신문의 날’ 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한 한 청와대 언론 관련 인사로부터 “왜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가 빨리 회복되지 않는 것이냐”고 걱정하는 말을 들었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보름 만에 화답을 내놓은 셈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언론자유지수는 계속 상승해 왔지만, 참여정부 때인 2006년 역대 최고 순위인 31위에 올랐던 달콤한 기억을 지니고 있는 이 인사는 여전히 순위 상승에 목이 말랐던 것이다. 이 인사의 말을 들으면서 “그렇게 (수구)언론에 당하면서도 자유지수 순위 걱정이라니, 참 속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언론종사자로서 대한민국 언론자유지수가 상승했다는 사실이 기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나는 「국경 없는 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언론 및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전 세계 비정부기구 활동가들과 언론인·인권운동가, 특파원들을 대상으로 △다원주의 △취재 및 보도의 투명성 △뉴스생산구조 등 여러 기준의 설문을 돌려 매년 순위를 정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언론의 자유를 구속하는 여러 요인 중 정치적 요인(권력의 침탈)을 특히 중시하며, 보도의 질 보다 제도나 틀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또한 기자 지상주의에 함몰돼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국경 없는 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가 제대로 된 언론자유를 측정하려면 ‘언론방종지수’ 혹은 ‘저질언론지수’를 만들어 ‘자유지수’를 보완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한국의 경우 더욱 그렇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0&table=gs_kang&uid=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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