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4일 오후 부산 경성대 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이준석&이언주 톡!톡! 콘서트’ 현장을 찾았다. ⓒ뉴스1 ‘환자는 서울에’, 부산까지 찾아온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게 던진 이준석 전 대표의 발언이다. ‘서울’은 용산 대통령실, 더 정확히는 윤석열 대통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전 대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정부여당의 위기가 국정기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그 핵심은 윤 대통령이라고 직격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도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왜 저렇게 하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른바 협상의 조건에 대해서도 “그쪽에서 연구할 사안이다. 나는 어떠한 조건도 제시할 생각이 없다”며 “지금 국민의힘을 이끄는 세력들을 시한부로 보고 있다. 선거를 통해 사라질 것이다”라고 질타했다. 윤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확실히 변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총선 참패를 피할 수 없고, 자신 역시 12월 말에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재삼 확인하고 있다.
국민의힘 비윤계를 대표하는 또 다른 축인 유승민 전 의원도 ‘용산 책임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 전 의원은 최근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인요한 위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전하며 “딱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유 전 의원이 밝힌 세 가지는 민심 이반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반성과 당 개입 중단, 대통령실과 당과의 수직적 관계 청산, 김기현 체제 개편 또는 전면 쇄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 전 의원은 “혁신위원장이 확답은 없었다”고 말했다.
탈당은 물론 신당 창당의 주체로 부상한 이 전 대표와 유 전 의원의 지적은 결국 윤 대통령의 반성과 변화다. 대선 출마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 위원장의 행보는 이와 동떨어져 있다. 인요한 혁신안 1호는 엉뚱하게 ‘대사면령’이었다. 당의 통합을 위해 이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등에 대한 징계를 취소하자는 제안은 곧바로 최고위에서 의결했다. 그러나 징계가 잘못됐다거나 당이 사과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로 인해 당사자인 이 전 대표와 홍 시장은 ‘두 번 모욕을 준다’며 격하게 반발했다.
1호가 당내 통합을 위한 상징적 조치라면, 2호는 본격적인 혁신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기대와 동떨어졌다. 당 지도부와 친윤, 다선 중진을 향해 불출마나 수도권 출마를 강력 권고하고, 국회의원 정수와 세비 등을 감축하는 제안이었다. 이른바 험지 출마론은 대통령실이나 검찰 출신 인사들의 출마 움직임이 잇따르면서 당선이 편한 텃밭에서 기존 인물을 뽑아내고 대통령의 측근을 꽂기 위한 명분으로 변색됐다는 지적이 많다. ‘험지 출마론’이 아니라 ‘양지 비우기’ 시도인 셈이다. 국회의원 정수 10% 축소는 대통령을 견제할 국회의 권한을 축소하는 데다 국회의원 1인당 권한은 늘려 그간의 정치개혁과도 정반대의 제안이다. 세비 삭감이나 불체포 특권 포기 등은 이미 여러 차례 약속된 지엽적 사안이라는 평가가 많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김태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모아타운 통합추진위 사무실에서 열린 '통합추진위 사무실 개소식'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3.10.5. ⓒ뉴스1
이런 인요한 혁신위의 초반 행보는 애초 발족 취지와 시점에 비춰 보면 ‘곁가지’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10월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대통령실과 여당에게 예상보다 격차가 큰 참패를 안겨줬다. 윤 대통령이 밀어붙인 특별사면과 안팎의 우려와 경고에도 감행한 초유의 보궐선거 원인제공자 공천에 대한 심판이었다. 아울러 임기 1년 반을 맞는 윤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었다. 그동안 비주류의 엄살로 치부되던 ‘수도권 위기론’의 실체가 드러났고, 당 안에서는 ‘이대로는 과반은커녕 100석도 힘들다’는 공포가 팽배해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 인요한 혁신위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국정이나 당정 관계 등 위기를 부른 핵심사안은 빠진 채 통합과 험지 출마라는 당내 사안이 간판으로 부상한 것이다. 아울러 국민의 분노를 부른 것은 대통령인데 국회를 수술하는 혁신안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 인 위원장은 기회가 있으면 말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대통령과 당 대표 일에 관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자신의 역할에 선을 그은 바 있다. 앞서 유 전 의원과의 면담 사실을 밝히면서도 대화 내용은 감춘 채 “만나보니 ‘코리안 젠틀맨’이고 애국자더라”라고 딴소리를 한 것도 이런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R&D 예산과 지방교부세 삭감 등 정부가 비판받는 주요 이슈에 대해 인요한 혁신위가 아무 발언을 하지 않는 것 역시 이런 한계에서 기인한다.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강서구청장 선거를 주도하다 참패의 책임을 안고 사퇴한 이철규 전 사무총장이 19일 만에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다시 총선 전면에 나선 것도 용산의 뜻이 관철된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용산은 제 갈 길 가는 상황에서 혁신위가 당과 국회만 뜯어고치겠다고 나서는 형국이다.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도 4일 “인요한 혁신위는 왜 혁신위가 출범했는지 되짚어보고, 대통령에게 제대로 말한마디도말 한마디도 못 할 혁신위라면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와이프,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혁신위 포문을 열었는데, 알고 보니 와이프와 자식 즉, 용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정작 문제의 핵심이다. 의사로서 쓴 약을 조제해 먹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인요한 혁신위가 진료하고 투약할 대상이 누군지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 앞에 놓였다.
동유럽의 제1전선에서 로씨야-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고, 중동의 제2전선에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났고, 동아시아의 제3전선에서 조선, 중국, 로씨야가 연대하는 반제공동전선과 미 제국을 수괴로 하는 제국주의 연합세력의 대결이 계속되고 있다. 복잡다단하게 뒤엉킨 오늘의 국제정세를 3개 전선 구도로 인식해야 정세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조선, 중국, 로씨야의 반제공동전선에 맞서는 미 제국의 전략자산은 항모타격단(Carrier Strike Group)이다. 미 제국의 항모타격단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 제국이 보유한 1개 항모타격단의 가격은 약 140억 달러(18조 3,061억 원)다. 1개 항모타격단의 1일 운영비는 5,600만 달러(732억 원)이고, 연간 운영비는 21억 달러(2조 7,460억 원)다.
미 제국은 이처럼 엄청난 비용을 말아먹는 항모타격단을 9개나 운용하고 있다. 미 제국이 보유한 항공모함은 11척인데, 미 제국이 운용하는 항모타격단은 9개다. 미 제국은 항공모함을 11척 보유했지만, 항모타격단 운용에 천문학적인 재정을 지출해야 하므로 항모타격단은 9개만 보유하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 제국이 9개 항모타격단을 운용하는 목적은 자기를 방어하려는 것이 아니다. 미 제국은 전 세계를 힘으로 지배하고 강압하고, 자기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약소국들을 무력 침공으로 짓밟으려는 범죄적 악의를 품고 9개 항모타격단을 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 제국의 올해 재정적자는 1조6,950억 달러(약 2,290조 원)에 이르렀고, 부채 이자는 올해 6,590억 달러(약 891조 5,000억 원)가 추가되었다. 이런 추세로 나가면, 앞으로 10년 뒤에 미 제국의 이자는 10조 6,000억 달러로 폭증해 국가체제가 재정파탄으로 붕괴될 수 있다. 사정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미 제국은 9개 항모타격단을 운용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탕진하며 매일 같이 도발 광기를 부리고 있다. 미 제국은 도발 광기에 미쳐 날뛰고, 그런 미 제국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윤석열 종미우익 정권은 맹종 광기에 미쳐 버렸다.
평시에 미 제국은 항공모함 1척을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고, 미사일순양함과 미사일구축함 6척, 공격 핵잠수함 1척, 군수보급함 1척을 배속시킨 항모타격단을 작전 수역에 출동시켜 순찰하게 한다.
그런데 세계 어느 지역에서 국지전이 일어나는 경우, 또는 국지전이 일어날 긴박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 미 제국은 위험수역에 2개 항모타격단을 급파한다. 미 제국이 위험수역에 급파하는 2개 항모타격단은 항공모함 2척, 미사일순양함 4척, 미사일구축함 8척, 공격 핵잠수함 2~4척, 군수보급함 1척으로 편성된다.
만일 세계 어느 지역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는 경우, 또는 전면전이 일어날 급박하고 엄중한 위험이 발생한 경우, 미 제국은 전쟁 수역에 3개 항모타격단을 급파한다. 미 제국이 전쟁 수역에 급파하는 3개 항모타격단은 항공모함 3척, 미사일순양함 9척, 미사일구축함 14척, 공격 핵잠수함 5~6척, 군수보급함 1~2척으로 편성된다. 미 제국이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였을 때, 3개 항모타격단을 걸프해역에 급파했었고, 2개 항모타격단을 지중해에 예비로 배치했었다.
미 제국 해군의 ‘함대대응계획(Fleet Response Plan)’에 의하면, 미 제국이 보유한 9개 항모타격단 중에서 6개 항모타격단은 유사시 30일 안에 전선에 출동할 준비를 갖추었고, 다른 2개 항모타격단은 유사시 90일 안에 전선에 출동할 수 있다고 한다. 현대전은 분초 단위로 급박하게 수행되는데, 미 제국 항모타격단은 굼벵이처럼 느린 속도로 출동을 준비한다.
미 제국의 9개 항모타격단 중에서 5개는 태평양에 배치되었고, 4개는 대서양에 배치되었다. 9개 항모타격단 배치상황은 다음과 같다.
1) 태평양에 배치된 5개 항모타격단
제1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칼 빈슨호(USS Carl Vinson)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3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USS Abraham Lincoln)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5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USS Ronald Reagan)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5항모타격단은 9개 항모타격단 중에서 일본에 고정 배치된 유일한 해외 배치 항모타격단이다.
제9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USS Theodore Roosevelt)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11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호(USS Nimitz)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2) 대서양에 배치된 4개 항모타격단
제2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드와잇 아이젠하워호(Dwight D. Eisenhower)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8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해리 트르먼호(USS Harry S. Truman)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10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부쉬호(George H. W. Bush)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제12항모타격단 - 핵추진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USS Gerald R. Ford)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얼마 전 화재 사고가 발생한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는 현재 후방에서 화재 원인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으므로, 제3항모타격단은 당분간 전선에 출동하지 못한다. 따라서 2023년 11월 현재 미 제국이 전선에 즉각 출동시킬 수 있는 항모타격단은 태평양에 배치된 4개 항모타격단과 대서양에 배치된 4개 항모타격단이다.
2. 동해에 집결한 3개 항모타격단
만일 동아시아의 제3전선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미 제국은 태평양에 배치한 4개 항모타격단 중에서 1개 항모타격단으로 태평양 연안을 방어하고, 나머지 3개 항모타격단을 전선에 투입하게 된다. 만일 중동의 제2전선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미 제국은 대서양에 배치한 4개 항모타격단 중에서 1개 항모타격단으로 대서양 연안을 방어하고, 나머지 3개 항모타격단을 전선에 투입하게 된다.
그런데 중국의 내정 문제인 대만 문제에 대한 미 제국의 불법적인 간섭 망동이 지금보다 더 악화되고, 내정 간섭을 배격하는 중국과 정면으로 충돌해 중미전쟁이 일어나면, 미 제국은 5개 항모타격단을 투입해야 한다.
미 제국이 다른 약소국을 침공할 때는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3개 항모타격단만 투입해도 되지만, 2개 항모타격단을 운용하는 중국에 맞서려면 3개 항모타격단으로는 안 되고, 5개 항모타격단을 투입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미 제국은 동중국해에 2개 항모타격단을, 남중국해에 2개 항모타격단을 각각 출동시키고, 대만 동부 해역에 나머지 1개 항모타격단을 출동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미 제국의 고민거리는 태평양에 항모타격단을 4개밖에 배치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하려면 항모타격단 5개를 태평양에 배치해야 마음이 놓이는데, 1개가 부족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2022년 6월 17일 세 번째 항공모함 푸젠호(福建號)를 진수하였다. 2024년에 푸젠호 시험항해가 끝나면, 해군에 인도된다. 그러면 중국은 푸젠호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는 세 번째 항모타격단을 2027~2028년 기간에 실전 배치할 것이다.
미 제국도 항공모함 존 에프 케네디호(USS John F. Kennedy)를 건조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2025년에 이 최신형 항공모함을 진수하게 된다. 그러면 3년 동안 시험항해를 마친 2028년에 해군에 인도될 것이다.
미 제국이 존 에프 케네디호를 실전 배치해도, 항모타격단을 9개에서 10개로 증가시키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국가재정 파탄으로 붕괴 위기에 몰린 미 제국이 항모타격단을 1개 더 조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것은, 미 제국의 해군력 증강속도가 중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한참 뒤졌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2023년 현재 중국의 전투함은 356척이고, 미 제국의 전투함은 296척에 불과하다. 2025년에 가면, 중국의 전투함은 400척으로 급증하는데, 미 제국의 전투함은 287척으로 되레 감소한다. 중국의 선박 건조 능력은 미 제국의 233배에 이른다. 이런 격차는 미 제국이 쇠락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라크 침략전쟁 이후 오늘까지 20년 동안 미 제국이 해외 작전 수역에 3개 항모타격단을 급파한 상황은 딱 한 차례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2017년 11월 11일 미 제국 제5항모타격단, 제9항모타격단, 제11항모타격단은 한국 해군 함대와 일본 해상자위대 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동해 작전수역에 출동하더니 ‘동해해상경계선(NLL)’ 남쪽 90km 수역까지 바짝 접근하였다.
항공모함 1척은 함재기를 약 80대 싣고 다니므로, 3개 항모타격단이 동해 작전 수역에 출동하였으면 함재기 약 240대가 동해로 출동한 것이다. 함재기 240대가 출격하면, 동해를 까마귀 떼처럼 뒤덮을 수 있다.
당시 동해에 출동한 3개 항모타격단에는 ‘경계 명령(WARNO)’이 하달되었는데, ‘경계 명령’을 받은 항모타격단 전투함들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즉각 발사할 준비를 갖추었고, ‘경계 명령’을 받은 항모타격단 함재기들은 합동직격탄(JDAM)을 장착하고 출격을 대기하였다.
미 제국의 3개 항모타격단은 2017년 11월 11일부터 나흘 동안 위와 같은 즉응 타격준비를 갖추고 동해를 휘젓고 다니면서 북침 도발 위협에 미쳐 날뛰었다.
미 제국이 동해에 집결시킨 3개 항모타격단의 광란적인 북침 도발 위협을 목격한 조선은 항모타격단을 일거에 격침시킬 결정적인 수중핵전략무기를 가져야 했다. 그 무기가 바로 핵무인수중공격정 ‘해일’이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수중핵전략무기 ‘해일’은 “은밀하게 작전 수역에로 잠항하여 수중 폭발로 초강력적인 방사능 해일을 일으켜 적의 함선 집단들과 주요 작전항을 파괴, 소멸”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적의 함선 집단들’은 미 제국의 항모타격단들을 지칭한다.
조선은 2023년 3월 21일부터 25일까지 톱날 침로, 타원형 침로, 8자형 침로를 자유자재로 잠항하는 핵무인수중공격정 ‘해일’의 운항 시험을 진행하였고, 수중 폭발시험도 성공적으로 완료한 후 곧바로 실전 배치하였다. 수중 소음이 적은 디젤-전동식 잠수함의 은밀한 잠항력, 장거리 순항미사일의 정밀한 타격력, 전술핵무기의 엄청난 파괴력을 하나로 통합해놓은 절묘한 무기가 핵무인수중공격정 ‘해일’이다.
핵무인수중공격정 ‘해일’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 주눅이 든 미 제국 제5항모타격단은 하는 수 없이 동해 작전 수역을 포기하고, 동해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동중국해까지만 북상한다.
3.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이 완성되었다
미 제국은 항모타격단이 없으면 전쟁을 하지 못한다. 항모타격단은 미 제국이 무력침공을 감행할 때 결정적인 작전 임무를 수행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근 80년 동안 미 제국은 항모타격단을 앞세우고 약소국들을 침공하여 잔악한 전쟁범죄를 저질러왔다.
항모타격단을 앞세운 미 제국의 무력 침공을 막아내는 것은, 평화와 진보를 염원하는 인류에게 가장 절실하고 중대한 문제로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는 항모타격단 격파 능력을 갖는 것밖에 없다. 항모타격단이 격파당하면, 미 제국은 등뼈가 부러진 야수처럼 일어서지 못하고 맥없이 엉금엉금 기어야 한다.
그래서 반미자주 3대 핵열강인 조선, 중국, 로씨야는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을 개발하기 위해 오랜 기간 힘써왔다. 그 결과, 오늘 조선, 중국, 로씨야는 미 제국 항모타격단을 일거에 수장시킬 고도의 격파 전술을 보유하였다. 조선, 중국, 로씨야는 제각기 독자적으로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을 개발하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격파 전술을 가지고 있다.
그와 달리 미 제국은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을 갖지 않았다. 9개 항모타격단을 운용하는 핵제국에 감히 덤벼들 적수가 있겠느냐는 오만한 생각에 빠져있었으므로,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을 구태여 개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반미자주 3대 핵열강인 조선, 중국, 로씨야의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은 항모타격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핵제국을 곤경에 빠뜨렸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미 제국이 낡은 항모타격단 방어 전술을 폐기하고, 조선, 중국, 로씨야의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에 맞서는 새로운 항모타격단 방어 전술을 개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미 제국의 구태의연한 항모타격단 방어 전술은 항모타격단에 배속된 미사일순양함과 미사일구축함에서 요격미사일을 발사해 항모타격단을 향해 날아오는 적의 미사일을 격추하는 것인데, 조선, 중국, 로씨야가 보유한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은 항모타격단 반항공망을 뚫고 들어가는 살벌한 첨입력을 발휘한다.
미 제국이 지난 냉전 시기에 개발한 또 다른 항모타격단 방어 전술은 항모타격단에 배속된 공격 핵잠수함들이 항모타격단을 향해 돌진하는 적의 어뢰를 수중에서 요격하는 것인데, 조선, 중국, 로씨야가 보유한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은 항모타격단 수중 요격망을 뚫고 들어가는 살벌한 첨입력을 발휘한다.
미 제국의 구태의연한 항모타격단 방어 전술이 이처럼 쇠퇴하자, 미 제국은 항모타격단을 계속 이동시키면서 항모타격단의 위치가 적에게 탐지되지 않게 하는 회피기동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전선에 배치된 미 제국 항모타격단은 회피기동을 계속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적의 정찰위성이 미 제국 항모타격단의 위치를 포착해도, 포착 시각으로부터 30분 정도 지나면, 그 항모타격단을 찾아내기 위해 1,800㎢의 드넓은 바다를 다시 탐색해야 하고, 90분 정도 지나면, 15,500㎢의 광대무변한 바다를 다시 탐색해야 한다.
정찰위성은 자기가 탐색한 수역을 다시 탐색하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와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약 90분 걸린다. 90분 동안에 정찰위성 감시를 피해 어디론가 빠져나간 항모타격단을 계속 추적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전략 무인정찰기다. 그러므로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에는 정찰위성과 전략 무인정찰기가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조선은 올해 전략 무인정찰기 새별-4형을 실전배치하였고, 정찰위성 만리경-1호도 개발하였다. 조선은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며칠 안에 쏘아 올릴 것이다. 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지구궤도 진입은 조선의 항모타격단 격파 전술이 가장 높은 수준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남중국해에서 확대된 전쟁위험
2023년 11월 현재, 세계적 범위에서 발생한 각이한 군사 대결과 무력 충돌을 살펴보면, 제1전선과 제2전선에서 각각 국지전이 일어났고, 제3전선에서 전면전 위험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전선의 국지전(로씨야-우크라이나전쟁)과 제2전선의 국지전(하마스-이스라엘전쟁)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지만, 제1전선의 국지전과 제2전선의 국지전은 각각 제3전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서, 제1전선의 국지전과 제2전선의 국지전 중에서 어느 한 국지전이 급속히 확전되어 동유럽이나 중동에서 전면전이 일어나면, 동아시아의 제3전선에 조성된 전쟁위험은 대전(大戰)으로 폭발할 것이다. 최근 남중국해에서 증대되고 있는 전쟁위험을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1) 공중강습훈련
2023년 10월 14일부터 31일까지 미 제국 해병대와 일본 육상자위대는 수직이착륙기를 동원해 오끼나와(沖繩)에서 이시가끼지마(石垣島)까지 전투원을 신속히 수송하는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것은 미일 동맹군이 공중강습훈련을 실시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일 동맹군이 대만에서 약 240km 떨어진 일본 열도 최남단의 이시가끼지마에서 공중강습훈련을 실시한 것은 중국을 공격하려는 도발 광기를 부린 것이다.
2) 다국적 해상전투훈련
2023년 10월 2일부터 13일까지 미 제국 해군은 일본 해상자위대, 영국 해군, 캐나다 해군, 필리핀 해군이 각각 파견한 각종 전투함들을 거느리고 남중국해에서 ‘싸마싸마(Sama Sama)’라는 작전명을 내건 다국적 해상전투훈련을 실시했다. 남중국해에서 벌어진 ‘싸마싸마’ 다국적 해상전투훈련이 중국을 침공하려는 해상전투훈련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3) 항모타격단 출동
미 제국은 2023년 10월 12일 제1항모타격단을 캘리포니아주 쌘디에고 해군기지에서 남중국해로 급파하였다. 시속 60km로 내달리는 미 제국 항공모함이 전속력으로 24시간 항행하면, 8~9일 만에 태평양을 건널 수 있다. 그러므로 제1항모타격단은 2023년 10월 20일 또는 10월 21일에 대만과 필리핀 사이에 있는 바시해협(Bashi Channel)을 지나 남중국해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항공모함 산둥호(山東號)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된 중국인민해방군 항모타격단은 2023년 10월 26일 바시해협을 통과하여 대만 동부 해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산둥호 항모타격단은 남중국해에 있는 하이난다오(海南島) 싼야(三亞) 해군기지에서 출항해 남중국해를 가로질러 바쉬해협을 통과했다.
싼야 해군기지에서 출항한 산둥호 항모타격단이 남중국해를 항행하고 있었던 2023년 10월 24일 밤, 미 제국이 위험한 불장난을 저질렀다. B-52H 전략폭격기를 남중국해 상공에 들이밀었던 것이다. 이 불장난은 산둥호 항모타격단의 항행을 방해하려는 도발 망동이었다. 산둥호 항모타격단과 B-52H 전략폭격기가 남중국해 한복판에서 조우하는 급박한 정황이 발생하였다.
그런 정황 속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은 기민하게 대처했다. B-52H 전략폭격기의 항로를 차단하기 위해 J-11 전투기 2대를 긴급 출격시킨 것이다.
원래 B-52H 전략폭격기는 적기의 내습을 우려해 홀로 날아다니지 않고, 언제나 호위기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날아다닌다. 급박한 정황이 발생한 2023년 10월 24일 밤에도 B-52H 전략폭격기는 호위기를 좌우에 2대씩 거느리고 남중국해 상공에 나타났다.
남중국해 상공에서 B-52H 전략폭격기의 위치를 탐색하던 중국인민해방군 J-11 전투기들은 호위기 4대를 거느리고 날아가는 B-52H 전략폭격기를 마침내 발견했다. 그 순간, J-11 전투기들은 평소에 연마해온 고도의 공중기동전술로 호위기 4대를 따돌리고, B-52H 전략폭격기 곁으로 재빨리 접근해 약 3m 거리까지 바싹 다가갔다.
고속으로 날아가는 전투기와 전략폭격기가 3m까지 바짝 접근하면, 양측 조종사들이 서로 얼굴표정을 식별할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한 이 전투행동은 최후의 순간에 공중충돌전술(aerial ramming tactics)을 결행하여 B-52H 전략폭격기의 항로를 차단하려는 초근접 비행이었다. 공중 충돌을 각오한 중국인민해방군 전투기들의 용맹한 비행술을 보고 식겁한 B-52H 전략폭격기는 기수를 돌려 황망히 꽁무니를 내뺐다.
미 제국에서 유명한 연구기관인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가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전투기가 전략폭격기를 격추할 무기를 갖지 못한 정황에서 마지막 선택으로 기체에 충돌하여 공중 핵타격을 저지하는 공중충돌전술은 현대전에서 능히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그 무슨 ‘하늘의 제왕’이라고 떵떵거리던 B-52H 전략폭격기가 중국 전투기의 용맹한 비행술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자, 약이 바짝 오른 미 제국은 제5항모타격단을 남중국해로 긴급 출동시키면서 한층 더 심술궂게 놀아댔다. 2023년 10월 26일 산둥호 항모타격단이 바시해협을 지나 대만 동부 해역에 들어간 바로 그날 미 제국 제5항모타격단도 바시해협을 지나 남중국해로 들어갔다.
그렇게 되자, 2023년 10월 26일 이후 남중국해의 작전상황은 시시각각 위태롭게 전변되기 시작했다. 산둥호 항모타격단은 대만 동부 해역에서 해상전투훈련을 실시하였고, 미 제국 제1항모타격단과 제5항모타격단은 남중국해에서 산둥호 항모타격단의 해상전투훈련을 방해하기 위한 즉응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B-52H 전략폭격기가 남중국해에서 산둥호 항모타격단의 항행을 방해하려 하고, 제1항모타격단과 제5항모타격단이 남중국해에서 산둥호 항모타격단의 해상전투훈련을 방해하려 한 것은 미 제국군이 중국인민해방군에 무모한 도발 위협을 가한 것이다.
5. 미 제국의 항모타격단 운용지침
바로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력 충돌 위험이 고조된 제3전선에서 미 제국의 전쟁교리(doctrine of war)가 어떻게 작동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 제국의 전쟁교리는 B-52H 전략폭격기 3개 편대와 3개 항모타격단을 전선에 동시에 급파해 무력침공을 도발하는 것인데, 그런 무력 침공의 전투행동조법은 항모타격단 운용지침에 서술되어 있다.
미 제국의 항모타격단 운용지침에 의하면, 미 제국이 무력침공을 도발할 때, 가장 먼저 B-52H 전략폭격기 3개 편대가 전선에 접근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공중에서 발사하는 선제타격으로 적국의 공군 기지들, 미사일 기지들, 반항공망을 속속 파괴하여 항공작전능력부터 먼저 제거한다는 것이다. 또한 무력 침공에 동원된 3개 항모타격단은 적국의 반격 위험을 피하기 위해 B-52H 전략폭격기 편대들이 적국의 항공작전능력을 제거할 때까지 전선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 해안선으로부터 약 370km 떨어진 해역에서 회피기동을 계속하면서 적에 자기 위치를 노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교리를 보면, B-52H 전략폭격기와 항모타격단이 동시에 전선에 출동하면 그것이 곧 무력 침공의 결정적인 징후로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정적인 징후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례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2017년 11월 11일 미 제국은 3개 항모타격단을 동해에 출동시켰으나, B-52H 전략폭격기는 한반도 상공에 출동시키지 않았다. 만일 미 제국이 3개 항모타격단과 B-52H 전략폭격기를 동시에 한반도에 출동시켰다면, 북침 전쟁을 도발하였을 것이다.
그와 대비해보면, 2023년 10월 24일 야음을 틈타 동중국해 상공에 나타난 B-52H 전략폭격기가 산둥호 항모타격단의 항행을 방해하려 하고, 남중국해에 들어간 제1항모타격단과 제5항모타격단이 산둥호 항모타격단의 해상전투훈련을 방해하기 위해 즉응 전투태세를 갖춘 것은 2017년 11월 11일 한반도에 조성되었던 북침전쟁 도발위험보다 훨씬 더 엄중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6.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위험한 사건들
세계 각지에서 크고 작은 군사 대결을 날마다 격화시키면서 무력 침공을 도발해보려고 미쳐 날뛰는 미 제국은 남중국해에서만 도발 망동을 자행하는 게 아니라, 동중국해와 한반도 근해에서도 도발 망동을 계속 자행하고 있다. 이것은 미 제국의 도발 망동이 한반도에서 남중국해까지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미 제국이 말하는 ‘확장억제’는 확장된 도발 망동을 뜻한다.
미 제국의 확장된 도발 망동은 동아시아에 형성된 제3전선을 끝없는 전쟁위험에 몰아넣고 있다. 최근에 연속적으로 발생한 다음과 같은 사건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1) 미 제국은 2023년 10월 6일부터 22일까지 ‘싸일런트 샤크(Silent Shark)’라는 작전명을 내걸고 괌 근해에서 한미연합군 대잠수함훈련을 실시하였다. 원래 대잠수함훈련은 아무 바다에서나 실시하는 게 아니라, 해저 지형을 파악한 바다에서만 실시한다. 그러므로 한미연합군이 괌 근해에서 대잠수함훈련을 실시한 것은, 전시에 괌으로 접근하는 중국인민해방군 잠수함들을 저지하기 위한 실전연습이었다. 한국군을 중미전쟁에 끌어들이려는 미 제국의 흉계가 여기서도 엿보인다.
2) 미 제국은 2023년 10월 9일부터 10일까지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를 지휘함, 주력함으로 하여 편성된 제5항모타격단을 동중국해 북부 해역에 출동시켜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과 한국 해군 구축함 및 군수보급함을 거느리고 3자 합동 해상전투훈련을 실시하였다. 제5항모타격단은 3자 합동 해상전투훈련을 마치고, 10월 12일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였다. 제5항모타격단은 2023년 10월 16일 부산작전기지를 출항해 남중국해로 떠났다.
3) 미 제국은 2023년 10월 17일 B-52H 전략폭격기 1대를 한반도 중부 상공에 진입시켜 위협 비행을 감행하고, 청주공군기지에 착륙시켰다. 청주 공군 기지에 착륙한 B-52H 전략폭격기는 2023년 10월 22일 한국 공군 전투기, 미 제국 공군 전투기,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들을 호위기로 거느리고 동중국해 북부 해역 상공으로 날아가 3자 합동 공중전투훈련을 실시하였다.
4) 미 제국은 2023년 10월 19일부터 27일까지 자국 해군, 한국 해군, 캐나다 해군, 필리핀 해군, 뉴질랜드 해군, 벨지끄(Belgique) 해군을 끌어들인 다국적 기뢰전훈련을 동중국해 북부 해역에서 실시하였다.
5) 미 제국은 2023년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한미연합군 해군력과 공군력을 동원해 충청남도 태안반도 서쪽 해역에서 대규모 연합전투훈련을 실시하였다.
6) 미 제국은 2023년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한미연합군 공군력을 동원해 ‘비질런트 디펜스 24(Vigilant Defence 24)’라는 작전명을 내걸고 한반도 동서공역을 오가는 대규모 연합전투훈련을 실시하였다.
위에 열거한 연속적인 사건들은 미 제국이 한국과 일본을 거느리고 조선과 중국을 노리는 무력 침공 준비에 얼마나 미쳐 날뛰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미 제국은 한반도, 동중국해, 오끼나와, 대만, 남중국해, 필리핀해를 연결하는 동아시아 제3전선 곳곳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무력 침공의 북소리를 울리고 있다.
제1전선과 제2전선에서 치솟은 국지전 화염이 증폭되어 전면전이 일어나는 날, 제3전선에서 대전이 일어나는 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미 제국이 이처럼 세계적 범위에서 엄중한 전쟁위험을 조성하고 도발 망동을 자행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감독'이라 불리지만, 국제연합(UN) 산하 노동 전문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의 원래 용어는 '노동감독'(labour inspection)이다. 사실 감독이란 말도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일본 번역을 따라 하다 보니 우리나라도 감독이라 쓰지만, Inspection의 원래 뜻은 감독보다는 감찰이나 사열에 가깝다.
일본에는 근로감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노동기준감독'이라는 말을 쓴다. 공장과 사무실, 즉 사업장에서 노동기준이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감독한다는 뜻으로 '근로감독' 제도의 원래 취지를 잘 살린 표현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근로감독관이라 하지 않고, 노동기준감독관이라 한다. 참고로 일본에서 근로라는 표현은 2차 대전의 패망과 더불어 종적을 감췄다. 노동자에 대한 '파쇼 통치'의 이데올로기적 구호가 근로였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새끼 변호사'처럼 취급되는 공인노무사가 전문직이 되려는 대학생들의 선호 직업이 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비슷한 열망을 가진 젊은이들이 국가 시험을 통해 국가공무원이 노동기준감독관이 된다.
노동력 통제수단으로 도입된 한국의 '근로감독'
우리나라에서 '근로감독' 제도가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 때다.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공장에서 터져 나오던 노동문제를 관리하려 도입된 '근로감독' 제도는 노동기준의 감찰과 사열을 통해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도입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근로감독' 제도는 노동자의 '근로'(work)를 감시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떠맡으면서 국가권력이 사용자의 노무관리를 대행해주는 통제수단으로 기능해왔다.
1980년대 후반 미국과 소련의 공동 노력으로 냉전체제가 해체되자 노태우 정권은 '북방정책'을 천명하고 1990년 9월 30일 소련과 국교를 수립했다. 그리고 1991년 8월 8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는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을 결의했고, 동년 9월 17일 국제연합 총회는 이를 승인했다. 이러한 지정학적 정세 하에서 대한민국은 1991년 12월 9일 ILO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ILO에 가입하지 않았다.
ILO 가입 이후 노태우 정권은 임기 말인 1992년 12월 9일 ILO 협약 두 개를 비준했다. 1964년 채택된 '고용정책' 협약 122호와 1947년 채택된 '근로감독'(labour inspection) 협약 81호가 그것이다. 두 협약의 비준은 국회 동의 없이 국무회의 결의를 통해 이뤄졌다. 두 협약의 입법적 요구를 대한민국의 법제도가 이미 충족하고 있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짜로 ''근로감독'과 관련된 국내의 법제도가 ILO 협약 81호를 충족시키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올시다'가 될 수밖에 없다.
다시 일본의 노동기준감독관 제도로 돌아가보자. 이름 그대로 일본의 노동기준감독관은 노동기준을 감독한다. 우리나라의 근로감독관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의 노동기준감독관은 개별 노동자들의 노동기준 문제를 주로 다루지, 노사관계나 노동조합 문제 같은 집단적 노동관계를 다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노동기준감독관은 노동기준법(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과 노동안전위생법(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일터에서 제대로 지켜지는지 여부를 감찰하고 사열한다. 사업장 안팎에서 개별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근로환경이 법률적 조건을 충족시키는지를 감찰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근로감독관은 노동기준과 산업안전이라는 본래의 업무는 뒤로 미룬 채 노동조합법, 노사관계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근로자참여촉진법(노사협의회) 등 집단적 노동관계 사안에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집단적 노동관계 법률은 노동조합의 활동을 보장하고 지원하기 위한 조항보다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억압하고 규제하려는 조항들로 가득하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근로감독관은 노동기준의 확보를 통한 노동자 보호라는 '노동감독제도'(labour inspection system) 본연의 취지를 내팽개친 채 노동자단체인 노동조합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시다바리(下張り)'로 기능하고 있다.
ILO 협약과 충돌하는 한국의 '근로감독' 제도
이는 ILO '근로감독' 협약 81호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문제는 ILO '근로감독' 협약 81호 어디를 읽어봐도 재정이나 전임자 같은 노동조합 활동이나 집단적인 노동관계(노사관계) 문제에 대해 감독관의 개입을 허용하는 조항은 없다는 점이다.
협약 81호 3조는 "근로조건과 노동자의 보호와 관련된 법률 조항의 집행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근로감독'의 기능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감독관이 챙겨야 할 근로조건(conditions of work)으로 "시간, 임금, 안전, 보건, 복지, 아동고용, 청소년 고용" 등을 명시하고 있다(3조). 일본의 노동기준감독관이 맡은 임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윤석열 정권의 고용노동부가 '노동조합 회계공시'와 '근로시간면제제도'(노조전임자 억제제도)를 활용해 노동조합운동을 억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자본과 강자와 부자를 위한 대한민국을 만들려는 윤석열 정권의 속성상 자신의 최대 걸림돌로 노동조합운동을 찍고 이를 탄압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노동조합운동 탄압을 위한 정권의 돌격대로 노동조합 밖의 미조직 노동자를 챙기는 임무를 맡고 있는 근로감독관을 동원하는 현실이다.
문재인 정권의 실책과 한계
문재인 정권 때 1000명을 추가로 채용하여 지금 근로감독관의 수는 3000명에 육박한다. 문재인 정권은 공장과 사무실에서 노동기준을 확보하고 노동자를 보호하라는 취지로 증원했겠지만, 현실에서 늘어난 근로감독관들은 일터에 가지 않고 노조 사무실에 와서 노조 장부나 뒤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 때 이뤄진 여러 정책들이 그랬듯이, 근로감독관의 수를 늘리는데 급급했지 그들의 질, 즉 기능과 역할을 정비하고 향상하는 데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다.
ILO는 노동자 1만 명당 감독관 1명을 권고한다. 우리나라 노동자 수는 약 2500만 명으로, 근로감독관 3000명은 ILO 기준을 훨씬 상회한다. 그리고 이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고 수준에 속한다. 일본의 경우 노동자 수는 우리보다 2배나 많은 6000만 명인데 감독관 수는 우리와 같은 3000명이다.
'근로감독'의 질이 일본보다 떨어지는 이유
노동자 수에 대비한 감독관 수가 일본보다 2배 이상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공장과 사무실에서는 '근로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의 16~17배에 달하는 체불임금건수 문제가 좋은 예다. 가야할 공장에는 가지 않고, 가지 말아야할 노조 사무실에 가는 근로감독관의 현실에서 보자면 대한민국 '근로감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노동조합 회계에 부정부패가 있다면, 검찰과 경찰이 판사한테서 영장을 발부 받아 노조 사무실을 뒤지면 된다. 그런데 부정부패에 관련된 혐의나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내부규약으로 풀어야 할 사안인 노동조합 회계공시에 대해 국가권력자의 입장을 강제하려 근로감독관이 노조 사무실을 찾아와 압박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노사가 자율적 교섭을 통해 임의로(voluntarily) 정할 노조전임자 문제에 국가권력이 개입하고, 이 문제를 뒤지겠다고 '근로감독' 제도를 동원하는 행위는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보장한 ILO 협약 87호와 98호에 대한 위반이자, '근로감독'의 기능과 목적을 규정한 협약 81호에 대한 위반이다.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훼손하는 윤석열 정권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하는 말 가운데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a rule-based international order)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국제질서의 규칙이 ILO 협약이다. 그리고 ILO 협약 81호, 87호, 98호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미 비준을 마쳐서 국내법적 효력이 발생한 지 오래다.
윤석열 대통령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위반하는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다고 자주 목소리를 높이는데, 본인이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위반하는 바로 그런 당사자가 아닌지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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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전국에서 모인 교육대학 학생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예비교사 5대 요구안'을 발표하며 모든 정당에 정책 협약식을 제안했다.
전국교육대학생연합(교대련)을 비롯한 400여 명 학생들은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를 열고 ▲ 민원 처리 방식, 과중 업무 개선으로 교사들을 폭언·폭력에서 보호 ▲ 교사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 ▲ 교사 정원 확대 ▲ 교육대학 구조조정 방지법 제정 ▲ 등록금 인상 시도 중단 및 대학 지원 OECD 평균으로 확대 등 5대 요구안을 내놨다.
▲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이날 집회 사회를 맡은 성예림 교대련 의장(서울교대 총학생회장)은 "올해 교대련은 총 두 차례의 설문조사와 스무 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5대 요구안을 마련했고 교사와 시민 총 3500명이 서명에 동참했다"라며 "오늘 이 자리에서 5대 요구안을 힘차게 외쳐 22대 국회에서 변화를 만들어내자"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3대 개혁 중 하나로 교육을 꼽았지만 교육 개혁에 정작 전문가인 교육계 목소리는 빠졌다.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는 경제부처'라고 말한 후 (정부는) 1월엔 교육전문대학원을, 4월엔 교사를 대폭 줄이는 중장기 교원수급계획을, 5월엔 대학이 구조조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글로컬대학30' 추진을 발표했다"라며 "모든 발표에 혁신, 개혁이란 말이 붙었지만 (이 정책들은) 무엇을 위한 혁신이고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사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동안 지난 7월부터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서이초 사건 이후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교사 의견조사 결과, 필요한 과제 1위로 학급당 학생 수 감축과 수업시간·초과근무 감축이 꼽혔다"라며 "교사가 교단을 떠나고 예비교사는 교직을 포기하는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 교육대학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교육대학 구조조정 방지법과 대학 재정 지원예산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성예림 전국교육대학생연합 의장(서울교대 총학생회장)이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들을 대표해 선포문을 낭독한 김나영 서울교대 총학생회장 당선인, 임민경 춘천교대 총학생회장 당선인, 최재우 진주교대 부총학생회장은 "예비교사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우리는 22대 총선을 준비하는 모든 정당에 정책 협약식을 제안하고 행동을 이어갈 것"이라며 "정부가 제대로 하지 않아 예비교사들은 다시 한 번 거리에 나섰다. (내년 총선 이후) 앞으로 4년 간 교육정책은 이전과 달라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언에 나선 윤세진 경인교대 총학생회장도 "(그 동안) 정부는 예비교사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교육이 아닌 경제 논리로 예산감축 정책을 추진해왔다"라며 "우리는 누구보다 당당하게 돈이 아닌 교육으로, 효율이 아닌 교육으로 응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대형 모니터에 나오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현직 교사 100여 명도 참석해 힘을 보탰다. 장은정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등위원장은 무대에 올라 "늘어난 수업시간과 업무량으로 교사들은 그야말로 지독하게 버티며 견디고 있다. 줄어드는 교원정원 문제는 예비교사의 생존권 문제"라며 "예비교사의 투쟁에 함께 하기 위해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현장교사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다. 개인을 넘어 교사공동체로, 생존권과 공교육을 지키는 동지로 다시 만나겠다"라고 말했다.
집회를 마친 이들은 서울시청~을지로입구역~보신각~광화문역 인근을 약 1시간 동안 행진했다. 행진 중 이들은 "교사들을 보호하라",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하라", "교사정원 확대하라", "교육대학 구조조정 방지법 제정하라", "대학 재정 지원예산 확대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 및 행진에는 경인교대·공주교대·광주교대·부산교대·서울교대·전주교대·제주교대·진주교대·춘천교대·한국교원대(이상 교대련 소속)·대구교대·청주교대 총학생회와 전북대 사범대 학생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초등교사노동조합,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이 참여했다.
▲ 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열린 '11.04 예비교사 행동의 날' 집회.
팔레스타인 여성이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하눈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에 파괴된 집의 잔해 속에서 소지품을 들고 나오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뉴시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3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병원 앞에서 구급차가 공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미국의 교전 일시 중단 제안을 거부하며 이날도 하마스를 상대로 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가자지구 보건부는 최대 의료기관인 알시파 병원 입구에서 구급차 행렬이 공습을 받아 15명이 숨지고 60여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는 소속 구급차 한 대가 알시파 병원 입구 2m 앞에서, 보건부 소속 구급차는 약 1㎞ 떨어진 곳에서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제네바 협약을 중대하게 위반한 전쟁 범죄”라고 비판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엑스(X)에 남긴 글. ⓒX 캡쳐
이 소식을 접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이날 자신의 엑스(X) 계정을 통해 “가자지구 병원 근처에서 환자를 대피시키던 구급차가 공습을 받아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며 “완전히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와 의료진, 의료시설, 구급차는 언제나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며 “지금 당장 휴전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군은 폭격을 인정하면서도, 하마스 조직원들이 사용하던 구급차를 식별하고 공격한 것이지 민간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은 인도적 목적의 일시 교전 중단을 제안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을 방문해 “인질들이 풀려날 수 있도록 더 나은 환경을 만들겠다”며 이스라엘을 설득했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우리 인질들의 귀환을 포함하지 않는 ‘일시적인 휴전’을 거부한다”고 맞섰다.
2.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 비판
1) 유엔헌장상 의무의 부존재 7)사후입법
2) 무력침략의 부존재 8) 미래
3) 유엔조치의 부존재 9) 극동
4) 유엔통합사령부의 부존재 10) 주변
5) 총회결의의 헌장위반 11) 비용
6) 승인 12) 초과
3.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에 관한 교환공문 비판
4. 결론
5. 자료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 번역문
1. 배경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가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전쟁기념 공연예술 센터에서 샌프란치스코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일본평화조약과 그에 따른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이하 교환공문)과 미일안보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로서 일본점령이 종료되고 54년 체제가 시작되었다.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은 한국에서 전쟁 중인 “유엔군”에 시설과 용역을 제공하기로 함으로서 이미 존재하던 “유엔사”후방기지의 법적근거를 제공하였다. “유엔사”후방기지의 법적근거인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을 분석하기에 앞서 평화조약과 안보조약이 추진된 배경과 교환공문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일본점령정책의 변화필요성을 느끼며 미국무부, 미국방부, 일본점령사령관 맥아더 간에는 각각의 구상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미국방부는 일본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것을 절대조건으로 하고 일본의 자위능력부여와 친서방화가 달성될 때까지 강화연기를 주장하며 일본의 기지를 가능한 한 장기간 자유롭게 이용하고자 하였다.
국무부는 강화연기에 반대하였다. 국무부의 케넌은 소련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일본의 안보는 우선 미일안보조약에 의해 보장하고 조속한 강화 후 일본 스스로 안보를 유지하도록 하고자 했다.(주1)
맥아더는 국무부의 조기강화는 지지하지만 가능하면 소련을 포함한 전면강화와 일본의 비무장중립화를 목표로 하였다.
국무부, 국방부, 맥아더 간에는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였고 때문에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일본강화에 대한 논쟁이 유보될 수밖에 없었다.(주2)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일본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된다. 후방기지로서의 일본이 없었더라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사”의 전쟁수행은 불가능함이 드러났고, 일본의 군사전략적 가치는 구체적으로 실증되기에 이르렀다. 덜레스(John F. Dulles)는 한국전쟁의 발발이 일본을 재군비할 기회라고 봤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신속하게 강화교섭을 진행시켜야 한다고 국무장관 애치슨(George Acheson)에게 권고하였다. 애치슨은 이 권고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국방부를 설득했다. 미국이 필요한 만큼의 군대를 바라는 곳이 어디건, 원하는 시간만큼 유지하는 권리를 부여하는 미일안보조약을 맺자는 제안으로 국방부와의 조율을 마쳤다.
요시다수상의 구상은 미국측의 요구에 부응하여 군비를 추진해가면서 무군비나 완만한 재군비노선을 채택하면서 헌법은 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주3)
미국 측은 일본이 구상한 핵심부분인 미군주둔의 범위를 유엔의 범위 내에서 설정한다는 내용에 반발하여 일본안의 수정을 요구한다.(주4)
요시다수상은 결국 유엔을 통한 안전보장안을 포기하고 미국을 통한 안전보장만이 일본의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로서 유엔을 통한 안전보장에서 의도했던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도 포기가 불가피했고 그에 따른 불평등관계를 감당하기로 했다.
대일강화조약교섭 당시, 냉전과 한국전쟁이라는 국제정세가 주는 압박감 속에서 일본은 ‘조기강화’를, 미국은 ‘미군의 일본주둔’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미군의 일본주둔’이라는 목표와 함께 군사전략적 관점에서 ‘일본의 재군비’도 포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급진적이든 점진적이든 재군비에 동의하는 형식을 취하며 대일강화조약과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하였다.(주5)
일본은 유엔헌장107조가 규정한 헌장 서명국의 적이었다. 평화조약은 유엔회원국의 적에서 유엔회원국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 등이 제외된 평화조약이기에 이들 국가에 있어서 일본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유엔회원국의 적이다. 따라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과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적국지위가 유지되고 있는 안보리상임이사국의 2/5인 소련, 중국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받아야하는 결론으로 귀결되고 이를 위한 대안이 미국과의 안보동맹이었다.
대일평화조약은 유엔헌장에 스며있는 4개의 국제체계(주6) 중 세 개의 국제체계를 반영하였다. 첫째는 주권체계이고, 둘째는 집단안보체계로서의 유엔체계이고, 셋째는 미국일극패권체계로서의 집단적 자위권‧동맹체계이다. 이를 위해 평화조약이 인용한 헌장조항은 2조5항과 51조이다. 헌장2조의 대표조항은 무력행사금지, 내정불간섭조항 등이지만 2조5항은 회원국의 의무조항이다. 회원국의 의무는 헌장2조2항에 의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것이지만 당시 일본은 회원국이 아니었기에 법적지위와 권리가 없었으므로 의무조항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 유엔에 대한 의무의 강조는 사실상 유엔을 주도하던 미국의 국익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골적인 미국패권체계로의 편입은 헌장51조, 그 중에서도 집단적 자위권의 강조에 의해 표현된다. 이 조항 자체가 1945년 유엔헌장제정회의 당시 대다수 참여국들의 반대를 받아가며 미국이 억지로 관철시킨 것이었다. 유엔조치이전에 안보리상임이사국과 그의 동맹국들이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인정되면, 그들은 자위권행사를 방해받지 않기 위해 유엔조치를 지연시킬 수 있고 그럼 유엔체계는 가동되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동맹을 가진 미국에게 51조는 특권을 부여해주는 유엔헌장의 예외조항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대일평화조약에서 미국은 집단안보체계와 일극패권체계를 통합하는 외교기술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2조5항의 집단안보체계에 관한 부분은 일본정부가 “유엔사”를 원조하도록 하는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으로 구체화되었고, 51조 집단적 자위체계에 관한 부분은 일미안보조약으로 구체화 되었다.
1) 평화조약과 교환공문의 관계
평화조약 전문은 ‘일본은 유엔가입을 신청하고 모든 상황에서 유엔헌장의 원칙을 준수하겠다는 의사’를 선언하였다.’ 주권회복 다음 순서로 강조된 문장이 바로 유엔가입이다.
미국은 자국의 외교적 발명품인 집단안보체계에 일본을 구속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평화조약이 발효되기 전까지 주권은 미회복된 것이며 주권회복 후에야 유엔가입신청이 가능하므로 당시 일본은 유엔회원국으로서의 법적지위가 부존재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조약5조(a)항(주7)은 ‘일본은 유엔헌장 제2조에 명시된 의무를 수락’하며 ‘유엔이 취하는 모든 조치에 대해 유엔에 모든 지원을 제공’한다고 했다.
그러나 헌장2조5항의 주어는 ‘회원국’이다. 비회원국은 권리가 없기에 의무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평화조약은 헌장2조5항의 주어 ‘회원국’의 자리에 비회원국인 ‘일본’을 바꿔치기 해 넣은 것이다. 비회원국이 목적어인 헌장2조6항의 주어는 ‘유엔기구’이다. 즉 비회원국이 유엔의 원칙을 따르도록 노력하는 것은 유엔기구이다. 비회원국인 일본은 유엔기구가 행할 노력의 대상일 뿐이다.
조약법에 대한 비엔나협약 제35조에 의하면 ‘조약의 당사국이, 조약규정을 제3국에 대하여 의무를 설정하는 수단으로 의도하며 또한 그 제3국이 서면으로 그 의무를 명시적으로 수락하는 경우에는, 그 조약의 규정으로부터 그 제3국에 대하여 의무가’ 발생한다. 그러나 유엔헌장은 제3국인 비회원국에 대해 의무를 설정하는 수단으로 의도하지 않았다.
유엔헌장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과 헌장상의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원칙의 준수는 권리의무관계를 창설하지 않지만 헌장상의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회원국으로서의 법적지위 즉 권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1950년 7월 15일, 요시다 총리는 유엔에 대한 협력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유엔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라고 한 답변(주8)이 비회원국인 일본입장에선 최선이었다.
당시 유엔회원국이 아닌 일본이 유엔의무를 자발적 수락했다고 해서 회원국으로서의 권리가 생긴다고 할 수 없다. 평화조약 5조a항에서 말한 의무는 권리없는 의무이고, 권리없는 의무란, 의무가 아니라 자선, 짝사랑, 동정, 맹목적 헌신, 혹은 굴종이다.
권리 없는 의무만의 세계가 가져오는 폐해를 파인버그는 ‘청구 없는 세계’인 Nowheresville라는 가상세계의 실험을 통하여 지적한다. 그리하여 권리가 없는 의무만의 세계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아무리 자비롭고 의무에 충실한 세계라 할지라도, 청구-권리가 없다면 그 세계는 극심한 도덕적 빈곤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사람들은 미덕을 토대로 해서 적절한 대우를 바랄 수 없게 될 것이다”(주9)
파인버그에 의하면 이러한 권리에 대한 사유는 주권적 권리의 독점(a sovereign monopoly of rights)을 통하여 표현된다고 한다. 법실증주의적 법적 청구(권리)는 법적 의무에 다름 아니다. 법적 권리와 법적 의무는 다른 관점에서 본 동일현상이다. 법적 권리라고 말하는 것은 잠재적 희생자의 관점에서 형벌을 묘사한 것이고, 법적 의무라고 말하는 것은 잠재적인 행위자의 관점에서 형벌을 묘사한 것이다.(주10)
비회원국에 의한 유엔조치는 헌장에 의해서도 문제가 된다.
헌장48조1항은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조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정하는 바에 따라 유엔회원국’에 의하여 취하여진다.
헌장53조1항에 의하면 ‘안전보장이사회의 허가없이는 어떠한 강제조치도 지역적 약정 또는 지역적 기관에 의하여 취하여져서는 안된다.’
안보리가 ‘정하는 바’나 ‘허가’에 의해 취해지지 않은 회원국의 조치조차 의무가 아니라 불법이 된다. 모든 조치에 대한 원조는 의무이자 권리이다. 만약 법적지위도 없고 권리도 없는 비회원국이 자발적으로 조치를 취하면 그 비회원국에 대해서는 안보리가 통제할 수 없고 그럼 헌장48조, 53조의 위반이 된다. 즉 불법이다. 따라서 당시 비회원국인 일본에 대한 평화조약 전문과 5조는 유엔헌장의 위반이 의심된다.
대일평화조약 전문과 5조의 a,b항에 근거해 요시다-애치슨간 서한이 교환된 것이므로 이 교환공문의 유엔헌장 위반도 당연히 연결된다.
2) 안보조약과 교환공문의 관계
평화조약 5조c항에서는 헌장51조의 자위권을 승인한다. 평화조약에서의 유엔헌장 51조를 인용한 자위권 운운은 사실은 연합군에 의한 일본 점령 종결 이후에도 일본에 미군이 주둔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 위한 측면이 강하였다.(주11) 그래서 안보조약은 미군을 ‘일본국 및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허용했다. 그리고 일본은 미합중국의 사전동의 없이 기지사용권을 제3국에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미국이 사전동의하면 제3국도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즉 미군은 일본이 제공한 기지에 대해 배타적 사용권을 가지는 것이다.
교환공문에서는 미군사령관인 연합군사령관의 ‘승인’에 의해 일본은 시설 및 용역을 “유엔군”에게 이미 제공해왔음을 확인한다. 기지의 공여는 일본이 하지만 기지사용은 미군의 승인에 의하므로 “유엔군”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갖는 것은 일본이 아닌 미군이 되는 것이다.
일‧미안보조약에서 자위권행사를 미국에게 위임함으로서 미국은 집단적자위권행사라는 미명하에 유엔보다 동맹을 앞세워 유엔내에서의 패권과 극동에서의 군사적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완성한 것이다.
2.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 비판
이제 교환공문의 문장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자. 상자글 안에 있는 교환공문의 문장을 그 아래에서 분석하는 방식으로 한다.
1) 유엔헌장상 의무의 부존재
‘금일 서명한 평화조약 효력발생과 동시에 일본은 “유엔이 이 헌장에 따라 행하는 모든 조치에 대한 모든 원조”를 유엔에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는 「유엔헌장」제2조에 표현된 의무를 진다.’
교환공문은 기본적으로 평화조약에 수반된 것이다. 즉 양자조약인 안보조약에 수반된 것이 아니라 다자조약인 평화조약에 수반된 것이다. 교환공문은 평화조약5조 a,b항을 좀 더 구체화시킨다. 평화조약이 “유엔의 모든 조치에 모든 원조”를 한다는 언급만 했다면 교환공문에는 이러한 원조가 유엔이 요구하는 원조라는 사실이 추가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비회원국인 일본에 유엔이 이러한 원조를 요구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평화조약의 발효로 일본주권이 회복되어 유엔가입신청자격이 생기나, 유엔회원국이 바로 되는 것은 아니다. 평화조약서명과 일본의 유엔회원국지위획득까지는 5년이라는 격차가 존재한다. 그런데 ‘유엔이 부과하기를 요구하는 헌장2조의 의무’는 모두 회원국에게 요구하는 의무이다. 비회원국에 대해서 유엔은 헌장의 원칙에 따르도록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즉 비회원국에 대해 유엔은 어떤 권리도 창출한 바 없기에 의무도 구성되지 않는다. 이는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유엔을 일미조약에 있어서 제3자로 보는 경우이다. 평화조약과 교환공문은 유엔에 권리를 부여할 의도를 가진 조약이다. 유엔이 동의하지 않았지만 반대하지도 않았으므로 이 경우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권리를 행사하는 3자는 조약에 규정된 권리행사조건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유엔헌장은 비회원국에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이 없으므로 유엔은 이 조건을 따를 수 없다.(주12) 따라서 일본이 유엔회원국이 되기 전까지 조약의 이 부분은 부존재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회원국이 되기까지 조약을 잠정적으로 적용하면 될 것이다. 이는 조약자체에 그런 규정이 있거나 다른 방법으로 당사국끼리 합의하면 가능하다.(주13) 그러나 평화조약자체에 그런 규정이 없고 다른 방법으로 합의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둘째, 유엔헌장을 일반국제법의 절대규범(강행규범)으로 보는 경우이다. 유엔헌장이 일반국제법인지에 대한 논란을 유보하더라도,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53조에 따르면 이는 절대규범(강행규범)과 충돌하는 조약이다. 헌장이 비회원국에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데 평화조약은 의무를 진다고 했기 때문이다. 절대규범과 충돌하는 조약은 무효이다.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에서 추가시킨 이 문장에 의해, 그 의미가 명확해짐에 따라 평화조약에서 합의한 유엔조치의 원조의무도 무효로 해석됨이 타당하다.(주14)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의 대전제인 일본이 자임한 유엔의무는 부존재하거나 무효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유엔회원국이 된 1956년 이후에는 조약의 무효성이 해결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2) 무력침략의 부존재
‘주지의 사실대로 무력침략이 한반도에서 발생했다.’
일반적인 상식에 따라 한국에서의 사태를 한국전쟁이라 칭할 수도 있고 한국내전이라 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유엔헌장에 의해 안보리에서 결의한 개념과는 무관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유엔헌장은 1928년 부전조약으로 알려진 켈로그-브리앙조약을 계승하였기에 전쟁이란 단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 유엔헌장 제39조가 사용하는 단어는 세 가지이다. 평화의 위협, 평화의 파괴, 침략이다. 우선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결정해야지 평화적 해결을 ‘권고’할지 군사적 ‘조치’를 할지 정할 수 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사태 직후 유엔안보리에서 미국의 인쇄되지 않은 결의안은 “침략행위”란 표현을 준비했다.(주15) 회의 전 미국 결의안을 영국, 프랑스, 인도, 이집트, 노르웨이 대표에게 보여줬을 때 이들은 대체로 침략행위란 단어의 사용에 대해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집트와 노르웨이는 한국이 내란상태에 있으므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침략했다고 암시하는 침략이란 단어의 사용에 반대했다. 왜냐하면 침략행위는 국가 간에만 야기될 수 있고 국내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주16) 즉 침략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미국은 결국 ‘침략행위’라는 표현을 포기하고 ‘평화의 파괴’라는 표현에 합의했다. 평화가 파괴된다면 평화는 ‘유지’될 수 없고 오직 ‘회복’할 수만 있다.(주17) 평화는 침략의 진압이 아닌 평화의 위협에 대한 제거와 진압으로서 ‘유지’될 수 있다.(주18) 따라서 “침략”과 “평화의 파괴”, “평화의 위협”은 서로 다른 것이다. 만약 ‘평화의 파괴’가 ‘침략행위’를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라면 39조의 표현은 명백히 틀린 것이 되기 때문이다.(주19) 그런데 미국은 일본에게 유엔헌장의 원칙에 따르고 유엔의 모든 조치에 모든 원조를 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면서 정작 안보리결의를 노골적으로 왜곡했다. 한반도에서는 ‘무력침략’이 발생하지 않았고 ‘평화의 파괴’가 발생했다. 따라서 교환공문이 유엔원칙과 그에 따른 유엔안보리결의를 따르고 있는지는 의심된다.
3) 유엔조치의 부존재
‘이에 대해 유엔 및 그 회원국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국사태에 대해 유엔의 조치는 없었다.(주20) 유엔의 조치가 없었다면 유엔회원국의 조치는 있었을까? 1994년 유엔법률국이 명확히 정리했듯이 “주한 통합사령부는 유엔의 지휘와 통제하에 있는 강제조치라기보다는 개별국가에 의해 허가된 무력사용이라는 점에서 걸프전에서 설립된 연합군사연대와 유사하다.”(주21)
유엔법률국은 유엔조치가 아님을 확인할 뿐 아니라 그 조치가 ‘개별국가’의 조치라고 함으로서 유엔회원국으로서의 조치도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 위에서 비교한 걸프전 당시의 다국적군은 미국이 강력히 주장했듯이 유엔과 무관한 군대였기 때문이다. 유엔법률국의 성명에 따르면 한국사태에서 이루어진 군사강제조치는 유엔이나 유엔회원국과 관계없이 개별국가가 취한 조치일 뿐이다. 따라서 이 문장 역시 미국과 일본의 자의적 해석일 뿐 유엔의 공식성명과는 불일치한다. 한국전쟁에서의 유엔조치는 부존재 한다.
4) 유엔통합사령부의 부존재
‘1950년 7월 7일 안전보장이사회결의에 따라 미국하에 유엔통합사령부가 설치되고’
1950년 7월 7일 안전보장이사회결의는 미국 통합사령부의 창설을 권고했다. 유엔의 기구로 만들자는 유엔사무총장과 다른 안보리 회원국들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한 것은 다름 아닌 미합참이었고 미국정부는 미합참의 의견을 수용하였다. 노르웨이의 순대(Arne Sunde)안보리 의장은 미국의 결의 초안(주22) 3항의 끝에 “유엔을 위한 기구로서”란 단어를 추가할 것을 요청했다. 미국은 그조차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혔다.(주23) 그런데 7월 25일 도쿄에서의 사령부창설식에서 통합사령부 대신 “유엔사령부”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이는 지금까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유엔사”라는 명칭에 대해 앞서 언급한 유엔법률국은 ‘잘못된 이름(misnomer)’임을 명확히 했다. “유엔사”는 유엔명칭을 도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교환공문에서는 “유엔사령부”도 아니고 통합사령부도 아닌 “유엔통합사령부”라는 새로운 이름을 명시했다. 일상이나 관행적인 단어로 사용되는 것도 문제인데 법적 지위와 효력을 창출하는 조약문에 이런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치명적인 착오이다. 조약상의 착오는 동의의 본질적 기초 구성한 것에 관한 경우에, 그 조약에 대한 동의를 부적법화할 수 있다.(주24) 단순한 자구상의 착오라면 정정하여 다시 서명하면 될 텐데 정정하지도 않았다.(주25) 이 교환공문은 “유엔통합사령부”라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의 기구를 위해 체결된 조약으로서 무효가 의심된다.
5) 총회결의의 헌장위반
‘총회는 1951년 2월 1일 결의에 따라 모든 국가 및 당국에 대해 유엔의 조치에 대해 여러 원조를 부여하고 또 침략자에 어떠한 원조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헌장24조1항은 안보리에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한 일차적 책임을 부여했다. 그리고 헌장12조는 유엔총회에 안보리가 부여된 일차적 책임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어떤 권고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만약 1950년 6월과 7월의 안보리의 임무가 계속 수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총회는 어떤 권고도 할 수 없다. 안보리에 불참하던 소련이 8월 1일 안보리 의장으로 복귀하자 소련의 거부권에 의해 어떤 임무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미국은 10월 7일 총회를 움직여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의 창설권고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의 불법성을 조각하기 위해 11월 ‘단결의 위한 결의’에서 총회가 2차적 책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을 통과시켰다. 전형적인 사후입법이다. 헌장24조1항 규정이 개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관행으로 굳혀가려는 중에 통과된 결의가 51년 2월 1일 총회결의이다. 아직 총회의 2차 책임이라는 개념이 합의되지도, 정착되지도 않았고, 헌장조항의 개정으로 이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비회원국인 일본에게 원조의무를 부여하면서 총회권고사항을 인용하는 것은 헌장의 위반이 의심된다.
6) 승인
‘연합군최고사령관의 승인을 얻어 일본은 시설 및 용역을 유엔회원국의 군대가 유엔조치에 참가하는데 있어 필요한 원조를 이제까지 해왔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유엔군”은 “유엔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유엔군”에 시설과 용역을 제공하는 일본은 유엔회원국이 아니었기에 지휘계통으로는 “유엔사령관”이 통제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일본점령사령관인 연합군최고사령관의 통제를 받았을 것이다. “유엔사령관”과 연합군최고사령관은 동일인물인 맥아더였다. 일본의 불법참전은 일본정부가 승인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맥아더사령관의 명령에 요시다정부가 굴복한 것이었다. 특히 용역의 경우 원산소해작전에 차출된 특별소해대는 요시다정부가 승인을 요청하거나 연합군사령관이 승인한 사실이 알려질 수 없는 기밀이었기에 공식승인이 있을 수 없었다. 이는 일본의 불법참전이 맥아더사령관의 통제하에 이루어졌다는 자백인 셈이다.
평화조약체결전인 피점령국일 때 일본은 법적근거도 없이 연합사령관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유엔군”에게 시설과 용역을 제공해야 했다. 그러나 평화조약으로 주권이 회복된 일본은 같은 주권국인 미국과 대등한 관계가 되었다. 그럼에도 일미안보조약 2조에는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 제3국에 기지사용을 허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미국이 동의하면 제3국인 참전국들에게도 일본은 기지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점령기간에는 미군의 승인이, 일본주권회복 후에는 동의로 바뀌었다. 일본을 주권국으로 대우해주는 외양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외양과 달리 내용상 승인과 동의는 구별되기 힘들었다. “유엔군”은 미군기지를 사용했으므로 이는 미국의 승인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결국 “유엔군”의 기지사용권은 일본이 아닌 미국에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미국과 안보조약을 체결했지만 다른 참전국들과는 조약의 체결도 없이 미국의 승인만으로 기지와 용역의 사용을 허용해야 했다. 평화헌법이 외국군대에 안보를 의탁할 권리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으로 미군주둔을 합리화한다 해도 “유엔군”은 일본의 승인이 아닌 미군의 승인에 의해 주둔하는 것이므로 그런 해석으로도 설명되기 어렵다.
이 문장은 이러한 원조를 ‘이제까지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 했다. 피점령국시기와 주권국시기의 구분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피점령국시기는 연합군사령관이자 “유엔사령관”의 일방적인 명령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위였다면, 점령이 종료되고 주권국이 된 상황에서 점령사령관인 연합군사령관의 명령이나 통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유엔회원국이 아닌 일본이 “유엔참전국”이 될 수도 없고, 유엔조치도 아닌 참전각국의 조치에 “유엔사령관”의 승인만으로 기지사용을 허용한다는 것은 유엔과 무관한 것으로 그것은 미국에의 굴종이었다.
또한 유엔조치가 아닌 각 참전국의 조치라면 참전국들과 상호안보조약을 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호안보조약은 조약당사국의 국내 안보위기에 대한 것이지 한국과 같은 제3국의 안보위기에 대한 것일 수 없다. 그것은 나토와 같은 지역안보조약을 따로 체결해야 한다. 따라서 후속으로 체결된 유엔군지위협정은 유엔조치에 의한 것도 지역안보협정도 아닌 기이하기 그지없는 협정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유엔조치가 존재한다는 잘못된 전제가 무너지면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의 법적근거 역시 붕괴한다.
소위 “유엔군”들에게 아무 조건도, 권리관계도, 법적지위설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기지사용을 허용한다는 것은 주권국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도 처음부터 미국의 일방적 승인에 의한 불평등관계를 희망한 것은 아니었다.
1950년 9월 미국의 국방성과 국무성 간의 의견조정에 관한 사항<NSC 60/1>을 신문 등을 통해 본 요시다수상과 외무성은 전문가와 군부원로를 모집하여 강화 후 일본의 안보에 관한 협의(주26)를 하고 「일미안전보장조약안」을 작성한다.(주27) 여기에서 미군의 기지사용에 관해서는 미일양국의 ‘사전협의’를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한 미일공동협의회를 구성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1960년 기시정부의 신안보조약의 핵심요구사항인 ‘사전협의’는 이미 10년 전 요시다정부의 요구였다. 요시다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되 대등한 관계를 설정하고자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평화조약, 상호방위조약, 교환공문이 체결되기 전 점령군인 연합국최고사령관의 승인만으로 시설과 용역의 자유사용이 보장되던 관행을 변경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1951년 2월 1일 요시다는 교섭의 본질적인 의제인 안전보장에 관하여 미리 작성해 둔 「일미안전보장조약안」을 토대로 한 ‘일미안전보장협정’을 제안했다. 하지만 미국은 군비를 갖추지 않고 자위수단조차 없는 일본과 상호안보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반론하며 일본의 제안을 거절했다.(주28) 이때 기지사용에 대한 일본의 ‘사전협의’구상도 폐기되었다. 1960년 기시 노부스케 정부에서 신안보조약 개정을 통해 ‘사전협의’구상을 관철시켰지만 다시 「조선의사록」의 비밀합의를 통해 사전협의 조항을 포기했다. 신안보조약에서도 미국과의 불평등관계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교환공문에 의해 일본은 미군만이 아니라 “유엔군”과의 불평등관계도 노정한다. 안보조약의 기지자유사용조항이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는 것에 대한 대가라면, 교환공문의 그것은 있지도 않은 유엔 원조의무수행을 위한 것으로 유엔으로부터 어떤 대가도 받을 수 없는 것이란 점에서 일본에겐 일미안보조약에 더해 배가된 불평등조항인 셈이다.
7) 사후입법
이제까지 해왔다.
교환공문에서 미국은 유엔조치에 필요한 원조를 ‘이제까지 해왔다’는 표현을 관철시켰다. 이는 한국사태 발발 후 “유엔사”에 의한 일본의 한국참전이 불법이었음을 당사자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이제까지 해왔다’는 이전까지의 위법행위를 사후추인받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이는 전형적인 사후입법 혹은 소급입법이다. 이같은 사후입법관행은 한국전쟁에서 이미 미국이 보여준 전형적인 수법이었다.(주29) 예를들면 1950년 7월 7일 안보리결의에서 통합사령부의 보고서제출 조항을 통해 결의이전에 있었던 미국의 불법참전을 사후합리화하려 했던 시도와 같다.
보고서 문제에 관심을 집중했던 것은 국무성이었다. 그 계기는 1950년 6월 30일에 트루먼 대통령이 승인하고 3일 후 모든 선박에 대해 공개 경고한 북한에 대한 해상봉쇄 조치였다.(주30) 유엔헌장상 봉쇄는 제42조에 의한 안보리 결정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6월 25일과 27일 안보리 결의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다. 국무성 스스로도 이들 결의만으로 봉쇄 조치에 충분한 근거가 되는지 의심했다. 국무성은 모든 의구심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성명에 담긴 의도가 안보리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길 희망했다. 7월 7일 안보리 결의에 의해 요청된 최초의 통합사령부 보고서는 봉쇄에 관한 사항을 전달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처럼 생각되었다. 그것은 안보리 회원국에게 그 봉쇄조치에 반대할 기회를 부여하게 된다. 그런데 만일 그들이 반대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것의 적법성을 묵시적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의도대로 보고서문제는 다른 의제에 가려져 거의 논의되지 않았고 미국의 불법참전은 합리화된 셈이 되었다. 미국이 보여 온 전형적인 사후입법, 소급입법 시도다. 그러나 교환공문으로 1951년 9월 이전 일본의 불법참전이 정당화되거나 해소되진 않는다.
8) 미래
‘미래는 규정되어 있지 않고 불행히도 유엔조치를 지원하기 위한 일본의 시설 및 용역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될 수 있으므로’
이 문장부터 교환공문은 논조가 급변한다. 과거와 현재까지의 일본의 유엔조치에 대한 원조에서 미래에 있을 유엔조치에 대한 원조문제로 비약한다. 이 문장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의 유엔조치의 경우 안보리결의가 계속 유효한가의 문제와, 한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의 유엔조치와 “유엔사”의 관계문제이다. 우선 전자의 문제를 검토해보자.
한국전쟁처럼 유엔안보리의 무력사용 결의에 무력사용의 종료조항이 따로 없을 때는 어떻게 종료하는가가 문제될 것이다. 이에는 두 개의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새로이 종료결의를 하는 것이고, 둘째는 결의가 요청한 내용이 충족되면 종료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 경우는 안보리가 부지런하면 된다. 그러나 안보리가 고의적으로 종료결의를 막으면 대책이 없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처럼 유엔의 군사력사용허락을 받은 국가들 중에 안보리상임이사국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결의내용충족이나 정전협정에 의한 결의종료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무력사용 종료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자국이 원하는 동안까지 유엔결의를 근거로 군사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지금 “유엔사”가 주장하는 논리 그대로이다.
둘째는 결의내용을 충실하게 해석하는 경우이다.
1950년 6월 27일 안보리결의는 6월 25일 무력공격이 평화의 파괴가 된다는 것을 결의한 바 있고, 북한 당국에게 38선까지 그들의 군대를 당장 철수시키라고 요청했으나 실행하지 않아 추진되었다. 27일 결의의 최종목적은 무력공격을 격퇴시키고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평화의 파괴가 구성되었으므로 파괴된 평화는 회복되어야 하고 그래서 결의의 목표도 회복이었다. 그럼 어디까지가 회복인가가 문제된다. 38선 이북으로의 철수가 애초 요청사항이었으므로 38선 이남으로의 무력공격을 격퇴하는 것이 회복의 내용이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38선 이북으로의 무력진격이 아닌 38선 이남에 대한 무력공격의 격퇴였다. 파괴된 평화의 회복으로서의 무력공격의 격퇴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10월 1일 이전에 달성되었다. 따라서 미국이 유엔총회 의제로 “유엔사”의 38이북으로의 진격과 북한에 대한 점령통치기구설치를 제안했을 때 영국이 이를 극구반대하며 이는 새로운 안보리결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보리에서 소련의 거부권행사로 새로운 결의가 불가능해지자 권한이 없는 총회를 동원한 것이었다. 따라서 국제평화와 안전에 일차적 책임을 지는 한국전쟁 안보리결의는 10월 1일경에 종료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로벨과 라트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보리의 군사력사용권한은 안보리에 의하여 명시적으로 그리고 만장일치로 지속적 효력을 갖는다는 결의를 하지 않는 한 정전협정의 체결로 종료된다.’(주31) 이들의 주장은 한국전쟁의 경우를 특정한 것이 아닌 일반적인 이론이다.
안보리가 정전협정을 반대하거나 무시하여, 무력사용을 결의하지 않는 한, 정전협정에 의해 안보리의 무력사용결의는 종료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를 따르더라도 한국전에서의 안보리결의의 효력은 정전협정과 함께 종료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물론 정전협정을 반대하거나 무시한다면 이는 안보리가 유엔헌장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위반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정전협정에 의해 안보리결의가 종료된다면, 종료를 위해서 결의를 따로 할 필요도, 해서도 안된다. 이 논리는 상임이사국에 의한 종료결의안의 거부권을 막기 위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전협정체결 이후에 전쟁이 발생할 경우 안보리가 추가적인 군사력 사용을 원한다면 반드시 새로운 안보리결의를 통해서만 유엔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국전쟁의 당사자 일방에 의한 심각한 정전협정의 위반이 있는 경우 유엔회원국은 지금이라도 1950년 안보리결의에 근거하여 북한에 대한 무력공격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50년 안보리결의 자체가 권고일 뿐 무력사용을 결의한 것이 아니지만 설령 이들 결의를 통상 해석하듯이 무력사용결의라 해도 최소한 정전협정에 의해 이들 결의는 종료된다고 봄이 적절하다.
따라서 교환공문에서 한국에서의 유엔조치가 이미 종료되었거나 정전을 통해 종료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의 유엔조치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더구나 한국사태의 연장선에서 미래를 언급하는 것을 넘어 전혀 다른 사태에 대한 유엔조치로 확대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다음 문장은 그런 심각성을 표현한다.
9) 극동
‘본 장관은 평화조약효력 발생 후에 1개국 혹은 2개국 이상의 유엔회원국의 군대가 극동에서의 유엔조치를 할 때’
이는 주일유엔군지위협정에도 그대로 사용된 문장이다. 이 문장은 문맥상 앞 문장에서 이어오던 한국전쟁의 “유엔사”와 전혀 무관한, 새로운 지역, 새로운 사태, 새로운 유엔결의, 새로운 유엔조치를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마치 “유엔사”의 활동범위가 극동의 유엔조치로도 확대될 수 있을 것 같은 착오를 일으킬 수 있다. 한반도가 아닌 극동에서의 유엔조치는 한국전관련 안보리결의와 무관하며 극동에 대한 결의는 당시로서는 부존재 했다.
유엔은 창설 당시 유엔상비군을 의도했고 이들 군대를 지휘할 유엔군사참모위원회도 헌장조항에 명기했다. 그러나 결국 미‧소의 견해차이로 유엔상비군을 창설하는데 실패했다.
유엔안보리에서 헌장7장 42조의 군사적강제조치를 결정할 때만, 유엔과 회원국 간의 특별협정을 맺을 때만, 해당사안에 대해서 유엔군을 구성할 수 있다. 한국전쟁에서는 유엔조치도 없었고, 유엔과 특별협정을 맺은 나라도 없었고, 유엔군이 구성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들 군대를 “유엔군”으로 부르는 것도 불법이다. 또한 안보리결의의 효력도 종료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런데 “유엔사”가 한국과 무관한 극동에서의 사태를 대비하여 “유엔군”이란 이름으로 일본의 “유엔사”후방기지를 항시 사용한다는 것은 가짜 유엔기구인 “유엔사”를 사실상의 유엔상비군이라고 참칭하는 셈이 된다. 이는 헌장의 노골적 위반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2018년 이후 캐나다를 중심으로 한 몇몇 “유엔사”회원국이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을 이행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북한선박에 대한 감시‧임검을 실시하는 주둔지로 일본의 “유엔사”후방기지를 사용해오고 있다. 대북제재결의는 한국전쟁시 안보리결의와 전혀 무관한 별도의 결의이다. 이들의 활동을 “유엔사”와 연결시키는 것은 북한이란 대상의 동일성을 핑계로 한 고의적 혼란조장일 뿐이다. 더구나 유엔조치의 대상이 북한도 아닌 러시아, 중국, 필리핀, 태국 등 극동국가들일 때 한국전쟁 때문에 구성된 “유엔사”를 유엔군으로 그대로 사용하자는 새로운 결의가 채택될 리 없다. 안보리상임이사국인 러시아나 중국이 이런 결의에 찬성할 리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엔사”가 유엔상비군처럼 활동한다면 당연히 유엔헌장 위반이 될 것이다. 만약 이같은 조치를 원한다면 “유엔사”가 아니라 유엔상비군을 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필리핀에서의 한‧미‧일‧필 군사연습이나, 대만에서의 한‧미‧대‧호‧뉴 군사연습이 “유엔사”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유엔사”가 아시아판 나토라는 말이 비유가 아닌 사실이 된다. 그러나 유엔상비군이 집단안보체계의 산물이라면 나토 등 군사동맹기구는 세력균형체계의 산물이란 점에서 둘은 구성원리가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유엔조치를 가정하여 세력균형적 동맹군을 “유엔군”으로 혹은 “유엔사”로 둔갑시키는 것은 유엔헌장의 심각한 위반이 의심된다.
10) 주변
‘그 군대를 일본 국내 및 그 주변에서 지원하는 것을 일본이 허용하고 용이하게 하며’
평화조약1조(b)항 ‘연합국은 일본과 그 영해에 대한 일본 국민의 완전한 주권을 인정한다.’고하여 주권의 바다영역을 영해라고 분명히 명시했다. 영해까지가 국내라면 그 주변은 당연히 영해 밖을 의미한다. 교환공문의 영어본은 주변에 대해 about을 사용하고 있다. around가 막연한 주변이라면 about은 꽤 한정된 주변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영해 밖이지만 배타적경계수역이나 비행정보구역 정도의 제한된 주변이어야 할 것이다. 예를들면 영해와 그 주변에 설치하는 등대나 항로지시기나 부표 같은 것이 이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미군에 대한 일본국내 및 그 주변에서의 주둔‧배치를 다룬 ‘미일안보조약3조에 따른 행정협정’ 3조1항(주32)에서는 ‘영역 밖에서의 권한행사에 있어서는 양국 정부 간에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양국이 협의하면 영토 밖 ‘주변’의 개념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1999년 ‘주변사태법’에서는 ‘주변’이 한반도와 대만으로 확장되었다.(주33) 안보조약과 행정협정은 미군이 일본 주변에서까지 주둔시설 및 지역에 대한 권리‧권한을 갖는다는 데에 초점이 있다. 이에 비해 교환공문은 일본이 주변지역에서 “유엔군”을 지원하는 의무를 진다는 것에 초점이 있다.
주변사태시 미군을 후방지원(주34)하는 것이 주변사태법이라면, 미래의 “유엔군”을 후방지원하는 것이 교환공문이다. 따라서 ‘주변’문제의 핵심은 유엔조치에 대한 일본의 후방지원에 있다. 모든 후방지원의 핵심은 병참이기에 교전상대국은 병참기지를 우선 공격할 것이고 “유엔사”후방기지와 기지주변이 공격받으면 일본은 자위권에 따라 무력공격에 나설 것이다. 바로 이런 예정된 수순 때문에 안보리의 통제가 요구되는 것이다. 즉 유엔조치에 대한 이같은 자의적, 세력균형적 후방지원은, “안보리조치는 안보리가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한다”는 헌장48조1항과 지역동맹에 의한 어떤 강제조치도 “안보리의 허가없이는 안된다”는 헌장53조1항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11) 비용
‘일본의 시설 및 용역사용에 수반되는 비용이 현재처럼 일본과 해당 유엔회원국과의 사이에 별도로 합의되어진 바대로 부담되는 것을 일본정부를 대신해 확인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비용은 유엔으로부터 단 한 푼도 지급되지 않는다. “유엔군”의 비용은 각 회원국이 지불한다. 유엔과 참전국간의 특별협정에 의해 각국이 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유엔과의 협정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유엔군”이 유엔의 이름만 도용했을 뿐 각국의 연합군에 불과하다는 것의 증거이다.
12) 초과
‘미국에 관한 한 미국과 일본 사이의 안보조약의 실시 세목을 규정한 행정협정에 따라 미국에 공여되어지는 것을 초과하는 시설 및 용역사용은 현재대로 미국의 부담으로 하겠다.’
일미행정협정 3조1항에 의하면 미국은 일본이 공여한 ‘시설 및 구역 내에서 필요하거나 적절한 권리, 권한, 권력’을 갖는다. 즉 공여지를 초과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권한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교환공문에 의해서는 공여지를 초과하는 시설에 대한 권한을 비용만 내면 가질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주일미공군기지 이자 “유엔사”후방기지였던 다치가와(立川)공군기지를 확장하려다 발생한 스나가와(砂川)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이 사건은 1957년 7월 8일 도쿄 서부 다치가와(立川)지역에 있는 미군비행장을 인근 스나가와 지역까지 확장하려는 정부의 강제측량에 반대하는 시민 7명이 미군비행장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고, 이들을 일본 정부가 일미행정협정에 따른 형사특별법 위반으로 기소한 사건이다. 1심 법원은 주일미군이 비무장평화주의를 규정한 일본헌법에 반하는 존재이며, 주일미군으로 인해 무력분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다는 요지의 판결을 하였다.(주35) 그러자 주일미대사인 맥아더2세가 적극 개입하여 최고재판소에서 유죄판결을 내림으로서 사실상 미일안보조약을 헌법보다 상위에 둔 것이란 비판을 받았다.(주36)
이 사건에서 새로이 주목할 것은 미일행정협정은 공여지내의 권한만을 인정하는데 행정협정상 공여된 것을 초과하여 기지를 확장하려 했다는 점이다. 즉 시설과 용역의 초과사용은 미일행정협정이 아니라 교환공문에 의한 것이란 점을 알 수 있다. 확장공사가 시작된 1957년 7월 1일 미공군작전기지였던 다치가와 공군기지가 “유엔사”후방기지로 지정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년 뒤인 1977년 8월 “유엔합동회의”를 통해 일본정부에 다치가와 공군기지는 반환되었다.(주37)
이처럼 교환공문은 미군이 “유엔군”의 이름으로 공여지를 초과사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데 용이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스나가와 사건 재판은 기지세력의 승리로 끝났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유엔사”에 의한 기지초과사용이 큰 정치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과 확장은커녕 결국 축소‧반환될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스나가와 사건은 평화헌법의 가치를 확인하고 “유엔사”후방기지를 철폐시킨 투쟁이 된 셈이다.
3.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에 관한 교환공문 비판
스나가와사건으로 촉발된 일미안보조약개정과정에서 이에 대한 미국내 논의와 그 결과 개정된「교환공문에 관한 교환공문」을 살펴보자.
1958년 9월 9일 미국 내에서 협상준비를 위한 회의가 열려 주일대사관이 기안하고 국무부가 수정한 신안보조약안을 둘러싸고 논의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국방: 한반도에서 전투작전행동을 하는데 일본을 사용할 수 있는가?
대사: 그 문제는 1951년 9월 8일 있었던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으로 처리되었고 안보조약 이 바뀌어도 유효하다.
국방: 교환공문은 대만해협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사: 유엔에 의한 조치가 아니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방: 일본이 대만에 대해 전투폭격기를 파견하기를 바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대사: 그것은 배치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일본기지에서 공격을 개시 하는 경우다.(주38)
미국은 한반도전투작전이 교환공문에 의하기 때문에 안보조약과 무관하다는 입장이고, 대만에서의 작전을 위해서는 유엔결의에 의한 군사강제조치가 새로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교환공문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즉 한반도는 이미 취해온 유엔결의에 의한 조치가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그에 비해 대 중국전투작전, 즉 일본기지에서 공격을 개시하는 것은 교환공문에 더해 새로운 유엔결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만이라도 단순 배치하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고 했다. 이는 교환공문이 아닌 미일안보조약에서 일본국내와 그 주변에 미군을 배치하는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안보조약과 교환공문에서 명시한 ‘주변’이 대만까지 포함됨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또한 현재 유엔사강화와 관련 “유엔사”후방기지가 전력증원만 하고 전투는 연합사가 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이 고정된 것처럼 주장하는 경우가 많으나 1958년 당시 이 회의록에 의하면 오히려 배치 등 전력증원은 미일안보조약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전투를 위해서는 교환공문이 필요함을 내부적으로 결론내리고 있음이 확인된다. 즉 “유엔사”는 병참이나 증원이 아닌 전투‧작전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이는 1983년 1월 19일 미합참의장이 명령한 「유엔사령관을 위한 위임사항」에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연합사령관은 필요시 전투부대를 제공하는 등 유엔군사령관을 지원할 것”
“유엔사로 예속된 모든 부대에 대하여 작전통제권을 행사함”
“전쟁이 재발할 경우 유엔사 및 연합사는 별개의 법적 군사적 체제로 유지하면서 유엔사 부대를 운용함”(주39)
이 공문에는 “유엔사”가 한미연합사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연합사가 “유엔사”를 지원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또 “유엔사령관”이 모든 “유엔사”소속부대에 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같은 “유엔사”의 임무와 기능은 오래전부터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1958년 10월 4일 조약개정을 위한 제1차 회합이 도쿄에서 열린다. 덜레스는 회합 직전에 주일미대사인 맥아더2세에게 조약개정에 대한 정식협상권한을 주었다. 맥아더대사는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의 조치를 지원하는 ‘애치슨-요시다 교환공문’은 강화조약에 관련된 것으로, 신안보조약이 그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은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이 안보조약과도 관련되고, 특히 한국전쟁을 염두에 두고 교환되었다는 입장을 취했다. 또한 이 교환공문이 전투작전행동에도 적용된다면, 일본의 최대요구인 ‘사전협의’제도와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측에 있어 사전협의제도는 교환공문을 존속시켜서 자유로운 기지사용의 제약을 줄이는데 있어 골치 아픈 문제였다.(주40) 이것을 해결한 것이 「조선의사록」이라는 안보밀약이었다. 이중계약을 한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사전협의제가 합의된 것처럼 발표하고 비밀협약을 통해서는 사전협의 없는 자유사용을 이전처럼 유지해가는 것이었다.
신안보조약(「일미간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조약」)의 개정문 만으로는 무엇이 변화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같은 날 체결된 「미일안보조약 제6조 실시에 관한 교환공문」에서 그 구체적 내용이 등장한다.
미군의 일본배치에 관한 중요변경, 미군의 장비에 대한 중요변경 및 일본이 실시하는 전투작전행동(전기 조약 제5조 규정에 따라 실시하는 것을 제외)을 위한 기지로서 일본 내 시설 및 구역 사용은 일본정부와의 사전협의 주제이다.
미군의 일본배치에 관한 중요변경은 미군의 승인에 의한 유엔군의 기지사용 등이고 미군 장비의 중요변경은 핵무기배치 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일본으로부터의 전투작전행동은 일본이 후방기지에서 전쟁발진기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경우의 기지사용은 일본정부와 사전협의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달리 말하면 사전협의만 되면 극동전체에 대한 전투작전행동에 아무 장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사록」의 밀약에 의해 사전협의는 무시되었다.
미국은 1975년 12월에 “유엔사”후방기지인 후츄 항공기지를 일본에 반환했다. 일본정부에 더 이상 일본과 한국의 “유엔군”을 지원할 수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1976년 초까지 기지사용을 철회한다고 공표한 것이다. 일본정부는 유엔합동위원회를 통하여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주41) 미군배치에 대한 중요변경에 있어 사전협의 따위는 없었다. 베트남으로의 전투작전행동기지로 사용될 때도 사전협의는 없었다.
이 조항은 조약 제5조 규정에 따라 실시하는 전투작전행동은 제외한다고 단서를 달고 있다. 신안보조약 5조는 다음과 같다.
각 체약국은 일본의 시정하에 있는 영역에서의 어느 한쪽에 대한 무력공격이 자국 평화 및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국 헌법상 규정 및 절차에 따라 공동의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을 선언한다. 앞서 언급한 무력공격 및 그 결과로 나타나는 모든 조치는 「유엔헌장」제51조의 규정에 따라 즉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해야만 한다. 그 조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 및 안전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경우 종료해야 한다.
즉 5조는 집단적자위권조항이다. 일본국내에 있는 자위대나 미군에 대한 무력공격에 대해 집단적자위권 차원에서 행하는 전투는 즉각적일 것이기에 사전협의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조치 후보고 한다는 것이다. 이 예외조항을 이용하면 일‧미간 안보밀약을 들춰내지 않아도, 즉 현재의 공식적인 신안보조약만으로도 충분히 “유엔사”지휘체계가 가동될 수 있게 된다. 「교환공문에 관한 교환공문」에 의해 「교환공문」이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4. 결론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에서 ‘극동에서의 유엔조치’는 설령 한국전쟁시 안보리결의를 인정해준다 해도 그 결의와도 무관한 것이다. 더구나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전쟁에서 유엔조치는 없었다. 각국의 조치가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교환공문」의 일부분은 조약으로서 성립이 불가능하여 법적지위가 부존재하거나 존재하더라도 대부분 그 효력을 상실하여 무효이다. 한‧미‧일동맹과 “유엔사”를 일치시켜 “유엔사”후방기지를 한국을 포함한 극동전체의 병참전투기지로 만들려는 계획의 법적토대인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의 합법적 지위는 그 자체로 의심된다고 하겠다.
5. 자료
요시다 내각 총리대신과 애치슨 국무장관 사이에 교환된 공문
(번역: 이시우)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서명
1952년 4월 28일 효력발생
1952년 4월 28일 공포(조약 제6호)
미합중국 국무장관으로부터 내각 총리대신에 보낸 서간
서간으로 인사 올립니다. 금일 서명한 평화조약 효력발생과 동시에 일본은 ‘유엔이 이 헌장에 따라 행하는 어떠한 조치에 대해서도 모든 원조를’ 유엔에 부과하기를 요구하는 「유엔헌장」제2조의 의무를 지게 됩니다.
주지의 사실대로 무력침략이 한반도에서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해 유엔 및 그 가입국은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1950년 7월 7일 안전보장이사회결의에 따라 합중국하에 유엔통합사령부가 설치되고 총회는 1951년 2월 1일 결의에 따라 모든 국가 및 당국에 대해 유엔의 조치에 대해 여러 원조를 부여하고 또 침략자에 어떠한 원조도 자제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의 승인을 얻어 일본은 시설 및 용역을 유엔회원국의 군대가 유엔조치에 참가하는데 있어 필요한 원조를 이제까지 해왔습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는 규정되어 있지 않고 불행히도 유엔조치를 지원하기 위한 일본의 시설 및 용역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될 수 있으므로 본 장관은 평화조약효력 발생 후에 1개국 혹은 2개국 이상의 유엔회원국의 군대가 극동에서의 유엔조치를 할 때 그 군대를 일본 국내 및 그 주변에서 지원하는 것을 일본이 허용하고 용이하게 할 것, 또한 일본의 시설 및 용역사용에 수반되는 비용이 현재처럼 일본과 해당 유엔회원국과의 사이에 별도로 합의되어진 바대로 부담되는 것을 일본정부를 대신해 확인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미합중국에 관한 한 미합중국과 일본 사이의 안전보장조약의 실시 세목을 규정한 행정협정에 따라 합중국에 공여되어지는 것을 초과하는 시설 및 용역 사용은 현재대로 미합중국의 부담으로 하겠습니다. 본 장관은 귀 장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1951년 9월 8일
딘 애치슨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 요시다 시게루 귀하
내각총리대신으로부터 합중국 국무장관에 보낸 서간
사간으로 인사 올립니다. 본 대신은 귀 장관이 다음과 같이 통보한 오늘 날자의 서간을 수령했음을 확인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미측 공문 생략)
본 대신은 서간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다음 정부를 대신해 평화조약 효력발생 후에 1개국 혹은 2개국 이상의 회원국이 이러한 유엔조치를 하는 군대를 일본 국내 및 그 주변에서 지원하는 것을 일본이 허용하고 용이하게 할 것, 또는 일본의 시설 및 용역에 수반한 비용이 현재대로 또는 일본과 해당 유엔회원국 간에 별도로 합의 되는 대로 부담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미합중국에 관한 일본과 미합중국 사이의 안전보장조약의 실시 세목을 규정한 행정협정에 따라 합중국에 부여하는 것을 초과하는 시설 및 용역 사용은 현재대로 합중국의 부담으로 하겠습니다.
본 대신은 귀 장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1951년 9월 8일
일본 내각 총리대신 외무장관 요시다 시게루
미합중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 귀하
3) 김태한, 「요시다 시게루의 외교정책에 관한 연구; 미군점령기 그의 인식과 실천을 중심으로」, (한서대학교국제관계학과석사논문, 2009), pp.60-61
4) 미국의 요구에 의해 수정된 안보조약은 일본이 희망하는 헌장에 의거한 집단자위의 관계가 설정될 수 있을 때까지 미국은 일본에 군대를 주둔시켜 지켜준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미군주둔의 목적이 극동에서의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및 일본의 안전에 기여하기 위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방위의 확실성이 사라짐을 의미하였다. 나아가 행정협정(미일간상호안전보장협정에 있어 일본은 국민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간결하게 조문을 작성하고 미군주둔의세세한 협정은 행정협정을 통해 정할 것을 미국에 요청하고 미국이 이를 받아들인다)을 통해서는 미군주둔의 세세한 규정이 행해짐으로써 주둔미군에 대한 온갖 특권부여로 인하여 미일간 상호안전보장은 형식적인 대등성이 사라지고 주둔군의 색채만 강하게 되었다. 五百旗頭眞外, 『戰後日本外交史』, (2000)/조양욱역, 『일본외교 어제와오늘』, (서울: 다락원 2002), pp.88-89.; 김태한, 「요시다 시게루의 외교정책에 관한 연구; 미군점령기 그의 인식과 실천을 중심으로」, (한서대학교국제관계학과석사논문, 2009), p.62
5) 유지아, 「전후 대일강화조약과 미일안보조약 과정에 나타난 미군의 일본주둔과 일본재군비 논의」, 일본학연구제41집, (2014.1)
6) 1648년 베스팔렌조약에 의한 주권체계(헌장1장), 1815년 비엔나협약에 의한 세력균형체계(안보리), 1915년 국제연맹규약, 1945년 유엔헌장에 의한 집단안보체계(총회), 1945 유엔헌장 51조에 의한 미국패권체계이다.
7) 5조(a) 일본은 유엔헌장 제2조에 명시된 의무, 특히 다음 의무를 수락한다.(i) 국제평화와 안보, 정의가 위협받지 않는 방식으로 평화적인 수단으로 국제분쟁을 해결한다. (ii) 국제관계에서 타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반하는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사용을 삼가고 유엔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기타 방식을 삼간다. (iii) 헌장에 따라 UN이 취하는 모든 조치에 대해 UN에 모든 지원을 제공하고 UN이 방지조치 또는 강제조치를 취할 수 있는 모든 국가에 대한 지원의 제공을 삼간다.
(b) 연합국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유엔헌장 제2조의 원칙을 따를 것임을 확인한다.
12)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6조 (제3국에 대하여 권리를 규정하는 조약) ① 조약의 당사국이 제3국 또는 제3국이 속하는 국가의 그룹 또는 모든 국가에 대하여 권리를 부여하는 조약규정을 의도하며 또한 그 제3국이 이에 동의하는 경우에는, 그 조약의 규정으로부터 그 제3국에 대하여 권리가 발생한다. 조약이 달리 규정하지 아니하는 한 제3국의 동의는 반대의 표시가 없는 동안 있은 것으로 추정된다. ② 상기 1항에 의거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국가는 조약에 규정되어 있거나 또는 조약에 의거하여 확정되는 그 권리행사의 조건에 따라야 한다.
13)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5조 (잠정적 적용) ① 다음의 경우에 조약 또는 조약의 일부는 그 발효 시까지 잠정적으로 적용된다. (a) 조약자체가 그렇게 규정하는 경우, 또는 (b) 교섭국이 다른 방법으로 그렇게 합의한 경우
14) 조약의 해석에 있어 평화조약의 추가합의라 할 수 있는 요시다-애치슨교환공문에 구체화된 내용을 참조하는 것은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31조(해석의 일반규칙)에 의한 것이다. 참조한 조항은 다음과 같다. ② 조약의 해석 목적상 문맥은 조약문에 추가하여 조약의 전문 및 부속서와 함께 다음의 것을 포함한다. (a) 조약의 체결에 관련하여 모든 당사국간에 이루어진 그 조약에 관한 합의 (b) 조약의 체결에 관련하여, 1 또는 그 이상의 당사국이 작성하고 또한 다른 당사국이 그 조약에 관련되는 문서로서 수락한 문서.
15) Dean Acheson, Present at the Creation: My Years in the State Department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Inc., 1969), p.404. 이 단어는 안보리회의에서 그로스 대사에 의해 읽혀지기 전 미국 초안에서 변경되었다(U.N. Document S/1497; U. S. Department of State,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Vol.Ⅶ Korea (Washington, D.C.: U. 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76), p.144).
16) Rosalyn Higgins, United Nations Peace Keeping, 1946-1967, Documents and Commentary Ⅱ, Asia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0), p.161
17) Hans Kels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l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1950), p.13
18) Hans Kels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l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1950), pp.13-14 참조. 평화 ‘유지’의 예방적 기능은 유엔의 목적으로 규정된 1조 1항에 의해 성립되었다. ‘평화의 파괴로 치달을 우려가 있는 국제적 분쟁이나 사태의 조정, 해결을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또한 정의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실현한다.’ 유엔의 이러한 목적은 총회, 안보리,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해 수행되는 기구의 기능을 구성한다. 이런 기구의 기능은 2조 3항에 ‘원칙’으로 나타난 회원국의 의무와 일치한다. ‘모든 회원국은 그들의 국제분쟁을 국제평화와 안전 그리고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아니하는 방식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한다(Hans Kels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l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1950), p.15 인용).
19) Hans Kels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A Critical Analysis of Its Fundamental Problems, (New York: Frederick A. Praeger, 1950), pp.13-14
20)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 이시우, 「“유엔사”에 의한 일본의 불법참전」, 『통일뉴스』(2023.10.24.)/ http: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259
21) UN Office of Legal Affairs, UN Juridical Yearbook, 1994, Chapter VI, pp.501-502
22) 뉴욕에 보낸 Telegram No.15, July 4, 4 p.m.,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0, Vol.VII (Washington, D.C.: U. 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76), p.300
23) U. S. Department of State, “Memorandum of Telephone Conversation, by the Deputy Director of the Office of United Nations Political and Security Affairs (Wainhouse)” (Washington July 6, 1950),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50, Vol.VII (Washington, D.C.: U. 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76), pp.318-319
24)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48조 ① 조약상의 착오는, 그 조약이 체결된 당시에 존재한 것으로 국가가 추정한 사실 또는 사태로서, 그 조약에 대한 국가의 기속적 동의의 본질적 기초를 구성한 것에 관한 경우에, 국가는 그 조약에 대한 그 기속적 동의를 부적법화하는 것으로 그 착오를 원용할 수 있다.
25)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79조 참조
26) 당시 일본에서는 강화에 있어 단독강화냐 전면강화냐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이 양분되어 있었는데 일본국민은 미국의 장기점령으로 단독강화라도 이루어져 하루빨리 독립을 회복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요시다 수상 역시 전면강화를 하여 비무장중립화 하는 것보다는 단독강화를 하여 미국과의 연계를 통해 일본의 독립을 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단독강화 시에 일본의 안전보장에 관한 사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요시다 수상에게 가장 큰 과제였다. (김태한, 「요시다 시게루의 외교정책에 관한 연구; 미군점령기 그의 인식과 실천을 중심으로」, (한서대학교국제관계학과석사논문, 2009), p.61)
27) <미일안전보장조약안>은 다음의 5가지로 요약이 된다. ① 미일 양국사이에 조인되는 안보협정은 유엔헌장의 틀 안에서 성립된 것으로 한다. ② 미국은 제 국가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을 명확히 약속한다. ③ 일본의 방위문제와 미군의 기지사용에 관해서는 미일양국의 사전협의를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한 미일공동협의회를 구성한다. ④ 양국 사이에 조인되는 안보조약은 상호공동방위조약으로 한다. ⑤ 대외안전과 국내치안을 분리하는 이원적 방위정책을 고수한다. (한상일, 「전후 일본의 방위정책-미일안보조약을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Vol.15, No.1. (서울: 한국국제정치학회 1976), p.207.)
29) 유엔안보리결의나 미국정부의 공식참전결정 이전에 이미 미군은 한국전선에 투입되어 있었으며 미공군은 일본 다치가와 등의 기지에서 발진하고 있었다. 유엔결의는 사후입법행위에 불과했다.
30) (U) Msg, JCS 84885 to CINCFE, 3 July, 1950; James F. Schnabel, Robert J. Watson, The History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The Joint Chief of Staff and National Policy Vol.Ⅲ The Korean War PartⅠ (Historical Division Joint Secretariat Joint Chiefs of Staff, 1978)/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미국합동참모본부사 한국전쟁(상)』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90), p.113 n486
31) Jules Lobel, Michael Ratner, “Bypassing the Security Council: Ambiguous Authorizations to Use Force, Cease-Fires and the Iraq Inspection Regime”, AJIL, vol.93(1999), p.144.
32) 일미행정협정 3조1항. 미국은 시설 및 지역 내에서 시설의 설립, 사용, 운영, 방어 또는 통제에 필요하거나 적절한 권리, 권한 및 권한을 갖는다. 미국은 또한 지원, 방어 및 통제를 위해 해당 시설 및 지역에 대한 접근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해당 시설 및 지역에 인접하거나 인근에 있는 토지, 영해 및 영공에 대한 권리, 권한 및 권한을 보유한다. 본 조에 부여된 권리, 권한 및 권한의 시설 및 영역 밖에서의 행사에 있어서는 경우에 따라 합동위원회를 통해 양국 정부 간에 협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34) 미군에 대한 보급 운송 수리 등의 후방지원활동은 가능하지만, 탄약 등의 보급은 불가능하다. 또한 전투지역에서의 후방활동은 가능하지 않고 비전투지역 즉 현재 전투행위가 일어나지 않고, 자위대의 활동기간 동안 전투행위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인정되는 지역을 대상으로 하였는바, 사실상 ‘공해’등에서의 후방지원활동이 주된 임무가 되었다. 前田哲男, 「後方地域支援」, 山内敏弘, 日米新ガイドラインと周辺事態法, (法律文化社, 1999年), p.51이하.; 이경주, 「일본 안보관련법의 위헌성과 한반도 평화」, 『안암법학』No.49, (안암법학회 2016), p.13
36) 2008년 미국공립문서관 자료가 공개되면서 스나가와 사건에 미국이 간섭한 전모가 드러났다. 일본외무성은 2010년 4월 재판 생존자들에게 공개했다. 2014년 4명의 재판생존자들은 도쿄 지방재판소에 재심을 청구했다. 개번 매코맥‧노리마쯔 사또꼬/정영신 역,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 (창비, 2014),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자료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시장이 꿈틀거린다.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D램 단가가 2년여 만에 상승 전환하면서 회복론에 무게가 쏠린다. 업계의 감산 공조가 효과를 내기 시작했고, 기술 고도화에 따른 고사양 칩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회복이 더디게 이뤄질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면서 국제 정세 불안이 커지고 등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
2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1,100원(1.60%) 오른 6만 9,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때 7만원까지 올랐다. SK하이닉스는 5천원(4.16%) 오른 12만 5,300원에 장을 마쳤다. 반도체 업황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기업은 아직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서도, 적자 폭을 줄여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3조 7,5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상반기에 이어 3개 분기 연속 적자다. 올해 총 적자 규모는 12조 6,900억원에 달한다. 다만, 적자 폭은 1분기 4조 5,800억원, 2분기 4조 3,600억원에서 축소됐다.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적자 규모는 1조 7,920억원으로, 전 분기 2조 8,821억원보다 38% 감소했다.
양사는 공히 실적 개선 배경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를 꼽았다.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 연산이 고도화하면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늘고 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제품이다. 대규모 서버를 운영하는 구글과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이 주요 고객사로 있다. DDR5도 고성능 D램을 대표한다. 기존 DDR4보다 성능을 높인 차세대 제품이다.
다만, 고부가 제품은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D램 시장에서 HBM 비중은 물량 기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매출 기준으로는 10% 수준으로 추산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올해 DDR5의 매출 기준 비중을 20%로 전망한다. 아직 주류는 DDR4라는 얘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 평균판매단가(ASP) 상승도 적자 감소에 주효했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반도체 업황이 저점을 지나 4분기, 내년까지 회복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삼성전자는 4분기 전망에 대해 “메모리 시장 회복 추세가 가속화하고, 전 분기 대비 가격 상승 폭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도 “D램은 생성형 AI 붐과 함께 시황이 지속해서 호전될 전망이고, 낸드도 시황이 나아지는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면서 “재고가 줄어든 고객사 중심으로 메모리 구매 수요가 창출되고, 가격도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고 했다.
DDR4 가격 상승이 반도체 업황 개선 전망에 힘을 싣는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인 DDR4 4Gb의 10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월 대비 15.38% 오른 1.5달러를 기록했다. D램 고정 거래가격이 상승한 건 2021년 7월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4분기 DDR4와 DDR5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정부 통계에서도 반도체 반등 조짐이 보인다. 전날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3.1% 감소한 89억 4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감소세가 시작된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낮은 감소율이다. 올해 1분기 저점 이후 점차 회복하는 추세다. 반도체 수출 감소율은 지난해 4분기 25.8%, 올해 1분기 40%, 2분기 34.8%, 3분기 22.6%를 기록했다.
정부는 반도체 수급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보는 근거로 업계의 감산 확대와 AI 서버용 고부가 제품 수요 확대,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를 들었다.
증권가도 업황 개선을 점친다. 키움증권은 삼성전자가 4분기 D램에서 흑자 전환하고, 낸드도 적자 폭이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스마트폰과 PC용 메모리 가격 상승세를 전망하면서 “메모리 업황이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공급자 우위의 가격 협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화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가 4분기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측했다.
SK하이닉스 HBM3 자료사진. ⓒSK하이닉스
지정학적 갈등·세계 경기 회복은 여전히 불확실
업황 반등을 공급과 수요로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 공급 측면에 기인한 메모리 가격 상승 전망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은 이르면 지난해, 늦어도 올해 4월부터 감산에 돌입했다. 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최근의 가격 상승은 주요 기업 감산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된다. 하나증권은 전날 보고서에서 “공급 업체의 강도 높은 감산과 낮아진 가격이 고객사 재고 확보를 자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향후에도 해당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메모리 업황의 방향성과 업체들의 실적 개선 가시성은 확보됐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유안타증권도 “메모리 공급 업체의 감산으로 4분기부터 재고 감소세가 확대될 것이라는 점은 가격 상승 탄력도를 높여 나갈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감산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내년에도 업계의 일부 선별적인 감산이 이어질 것”이라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시설투자 축소 현상을 감안하면 업계 비트그로스(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증가율) 성장률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는) 빠른 시간 내 재고 정상화를 구현하기 위해 추가 선별적인 생산 조정 등 필요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실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SK하이닉스도 “감산 원복은 재고 수준과 시장 상황에 맞춰 점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며 당분간 감산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문제는 수요다. 서버와 스마트폰, PC 고객사가 재고 소진에 대응하는 측면 외에 추가적인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가 관건이다. 빅데이터와 AI 기술이 발달하고 스마트폰과 PC 성능이 높아지면서 고부가 제품 수요가 증가하는 건 긍정적이다.
다만,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날 ‘호황과 불황을 지나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는 반도체 산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업황 회복 조짐을 전하면서도 “2020년의 광란(반도체 슈퍼사이클)으로 즉시 복귀할 것이라고 보는 경영진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트렌드포스도 “공급 업체가 4분기에 공격적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반면, 내년 상반기 수요 전망은 보수적이고 불확실하다”고 진단했다.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 회복을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 패권 경쟁 속에 상호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중동 정세도 불안하다. 한국 반도체 수출 주요 시장인 중국의 경기 반등도 기대와 달리 미진하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길어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업황 회복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업계의 감산 공조가 전제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진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 실적 관련 보고서에서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 메타·스냅·월풀·마스터카드 등 기업의 4분기 소비 둔화 경고를 감안할 때,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국면”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황이 다시 고꾸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이투자증권은 전날 보고서에서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기존 9만 5천원에서 7만 7천원으로 낮추면서 “경기선행지표 하락에 따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조만간 하향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개월 이후의 반도체 업황을 알려주는 경기선행지표가 곧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게 하이투자증권 설명이다. 하이투자증권은 “경기선행지표가 조만간 하락세로 전환한다면, 이는 내년 중순경 반도체 수요와 업황이 둔화할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인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대통령의 국정 기조를 바꾸는 게 총선 필승 전략이라고 모두가 친절하게 조언하는데,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새 전략이라고 내놓은 게 경기도 김포시 서울 편입이다. 답안지가 틀렸다. 서울 확장 전략은 2002년 충청 수도 이전과도, 2008년 뉴타운 개발 광풍과도 다르다.
'부울경 메가시티'를 보면 간단하다. 부산, 울산, 경남 3개 시도는 부울경 메가시티를 내세운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 작년 6월 지방선거 이후 들어선 부울경 국민의힘 지방 정부 세 곳은 같은 해 10월 부울경 초광역 경제동맹을 결성하기로 합의하면서 '메가시티'를 좌초시켰다. 그래도 부울경 시민들은 잘 살고 있다.
'서울'이란 이름값은 다를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과연 그럴까? 행정구역 변경은 뉴타운이나, 수도 이전보다 더 쉽다고 국민의힘 스스로 설명하고 있다. 왜 쉬울까? 뉴타운이나 수도 이전처럼, 대규모 자원이 투입되는 도심 개발도, 신도시 건설도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 레테르를 붙이면 집값이 오른다? 지도에서 김포시의 모양과 위치를 확인하자. 집값은 서울 도심과의 물리적 거리로 결정된다. 물리적 거리를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교통'이다. 서울로 편입된다는 '기대감'으로 집값 상승 효과는 일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통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우린 이런 걸 '거품'이라고 부른다.
남는 건 집값 욕망을 부추기는 정부와 집권 여당의 철지난 레파토리다. 물론 선거에서 '파괴력'은 있을 것이다. 아파트값(상승 기대감을 포함해)과 선거 득표수는 여의도 정치공학의 검증된 팩트이자, 오래된 격언이니까.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런 '선거 공학'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집권 세력의(특히 대통령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수반돼야 한다. 2002년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이라는 새 인물과 함께 등장했고, 2008년 뉴타운 광풍은 이명박이라는 새 인물과 함께 등장했다. 지금 '메가시티 서울'과 함게 등장할 '새 인물'은 있나? '심판론'과 '지원론' 사이에 낀 집권(당선) 3년차(내년 총선 기준) 대통령이 있을 뿐이다.
이명박이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을 뒤집으려던 게 집권 2년차였다. 그걸 막고 '세종시 원안 플러스 알파론'을 내세워 '세종시 개발론'으로 받아친 건 새로운 주자 박근혜였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부울경 메가시티가 좌초한 것은 '새 인물' 윤석열의 등장과 함께였다는 것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개발 공약=득표'로 보기에, 선거공학이란 건 생각보다 복잡한 방정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개막식에서 격려사를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포가 서울 되면 출퇴근 거리가 줄어드나?
게다가 너무 앙상하다. 김기현 대표가 지난 30일 김포 서울 편입 발언을 한 장소는 김포골드라인을 관리하는 김포한강차량기지에서 연 수도권 신도시 교통대책 마련 간담회에서였다. 수도권 교통대책 마련을 위한 자리인데, 갑자기 "이 도시(김포)에서 출퇴근하는 인구의 85% 정도가 서울로 출퇴근을 한다"(유의동 정책위의장)는 발언이 나오더니, 김포 서울 편입론으로 단번에 도약한다.
팩트부터 틀렸다. 85%라는 숫자는 김포골드라인 탑승객의 서울 하차 인원 비율이다. 이용객은 대부분 출퇴근 목적이겠지만, 김포 전체 출퇴근자의 85%가 마치 서울에 출퇴근하는 것처럼 사안을 교묘하게 비틀었다. 그러자 서울 편입론의 근본 원인이 교통 문제인 듯, 대부분의 언론이 '김포 출퇴근 인구의 85%가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말에 주목했다. <조선일보>마저 사설에 "김포시 주민의 85%가 서울로 출근하는 등 위성도시와 서울은 단일한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오보를 냈다. 실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김포시 인구 중 서울로 출퇴근(통학 포함)하는 비율은 12.7%다. 48만 명 중 약 6만 명이다.
85%가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게 김포를 서울로 만드는 근거가 될 수도 없다. 김포가 서울이 되면 출퇴근 거리가 줄어드나? '서울이 된 김포'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것과 '경기도 김포'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것은 다른 일인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방법이 있다. 모든 대학의 이름을 '서울대'로 바꾸면 된다.
논란이 일자 김병수 김포시장은 "서울 편입은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의 설립준비 과정과 발맞춰서 준비한 것이기 때문에 교통 문제랑 관계없다"(YTN 인터뷰)고 간단히 부인해버린다. 자, 우여곡절 끝에 교통 문제를 제하고 나니 '정략'만 남는다.
두 가지다. 첫째, 집값 상승 부추기기. "서울 편입을 통한 집값 상승 기대심리를 자극해 반전을 꾀하겠다"(동아일보, 여권 관계자), "메가 서울 이슈는 경계 도시 사람들의 (집값 상등의) 오래된 욕망, 니즈를 읽은 것"(같은 신문, 국민의힘 관계자)이라고 흥분한다. 둘째, 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경기북도 구상'에 제동 걸기. 김병수 시장은 "북도와 남도로 나누어지면, 남도로 가도 그렇고 북도로 가도 그렇고 사실상 또다시 고립되는 섬 지역이 된다. 실제로 지금도 남도나 북도 쪽 교류보다는 서울로 교류를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서울로 편입하는 게 김포시민들의 편익을 더 높이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민주당과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에 날린 견제구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선 많은 질문들에 대해 답해야 한다.
먼저 김포의 서울 편입인가, 서울의 김포 흡수인가? 희한하게도 서울시장이 아니라, 김포시장이 서울이 가질 수 있는 '메리트'를 세일즈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서울이 바다를 품고, 서울에 항구를 만든다고 하는 원대한 계획을 말하면서 '김포가 서울에 편입된다'고 주체를 뒤집어 놓는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서울이 김포를 흡수하는 걸 전제로 한다.
'흡수'가 아니라면 '편입'을 말하며 서울 '메가시티론'을 운운하면 안된다. 보수, 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민주화 이후 모든 정권이 추구한 '지방 균형 발전'의 당위성과 대전략을 어떻게 수정할지 일언반구 없으면서 서울을 '메가시티'로 만들겠다고 한다면 최소한 대통령의 대국민 설명이 필요한 일이다.
서울에 항구를 만든다는 구상은 어떤가. 이미 인천항이 존재하는데, 북한 바로 밑에 '서울항'을 조성하는 게 효율적인가? 김포의 바다는 북한과 맞닿아 있다. 그 끝자락엔 북한과 1.2Km 떨어진 '애기봉'이 있다. 지난 2010년엔 북한의 타격 1순위로 예상됐던 곳이다. 만약 북한이 도발하며 '서울시 애기봉'을 때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김포를 서울로 편입하고자 한다면, 최소한 접경지역에서 상호 적대적 군사 행위를 자제하자는 남북간 9.19군사합의를 뒤집으면 안된다.
'서울 공화국' 논란도 피할 수 없다. 당장 대구시장 홍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방화 시대 국토균형발전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삼고 연일 회의를 열고 있는 마당에 이미 메가시티가 된 서울을 더욱 비대화 시키고 수도권 집중 심화만 초래하는 서울 확대 정책이 맞느냐?"라고 반발했다. 김포 뿐 아니라, 광명, 과천, 구리, 하남 등을 포함해 서울을 '메가시티'로 만들자고 하면서 대통령이 "지방에 기업이 오면 파격적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다.
메가시티 논의는 부울경 메가시티처럼 서울 일극화의 한반도에서 '다극화'를 통해 지역을 살리자는 취지로 나온 개념이다. 그런 '메가시티' 논의를 서울을 확장시키자는 데 갖다 붙이는 건 염치의 문제다.
남는 건 김포의 넓은 부지를 '서울처럼' 개발하자는 개발업자들의 논리, 그리고 '김포의 땅값과 집값이 서울처럼 오를 것'이라는 망국적 부동산 투기업자들의 욕망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집값 상승의 욕망을 부추겨 시민들을 갈라치기 하고 지방을 소외시키는 정책을 집권 여당이 추진하는 게 대체 맞는 일인가?
보수 논객들과 국민의힘은 이를 '신의 한수', '김기현의 승부수'라고 극찬하며 민주당에 '김포 서울 편입론과 메가시티 서울에 대한 입장이 뭐냐'고 묻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대상이 있다. '지방 시대'를 선언한 용산과 윤석열 대통령이다. 서울 메가시티 구상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은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2일 대전시 유성구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지방시대 엑스포 및 지방자치·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단체와 정당은 오는 18일 촛불행동이 주최하는 전국 집중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촛불대행진’에서 탄핵운동본부 발족 행사를 열기로 결의했다.
참가자들은 ▲‘윤석열 탄핵 100만 범국민선언’ 진행(현재 32만 9천여 명 참여) ▲국회의원 전원에게 ‘윤석열 탄핵에 관한 입장을 묻는 공개질의서’ 발송 ▲윤석열 탄핵의 정치 여론 확산을 위한 대토론회 개최 ▲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에게 ‘탄핵 추진 사업 경과보고’ 등을 탄핵운동본부의 사업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날 간담회에서는 탄핵운동본부 구성과 관련한 논의가 있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촛불행동의 대표가 상임본부장을 맡고, 참가단체의 대표가 공동본부장을 맡는 것으로 윤곽을 잡았다, 현재 참가 의사를 밝힌 국민주권당(준)·사회민주당(준)·열린민주당의 대표가 공동본부장이며, 이후 공동본부장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권오혁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2일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탄핵운동본부를 만드는 이유를 “각계각층의 힘을 모아 윤석열 탄핵 운동을 벌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윤석열 탄핵에 공감하는 단체나 정당 모두 함께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11월 둘째 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탄핵운동본부 결성 취지와 사업 등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단체와 정당이 각각 윤석열 심판·퇴진·탄핵 투쟁을 벌여왔는데, 탄핵운동본부가 이런 투쟁을 하나로 모아내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신도시 교통대책 마련 간담회하는 김기현 대표 ⓒ뉴시스 여당인 국민의힘이 김포시 서울 편입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김포시가 서울이 됐을 때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심리에 편승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지난 강서구 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이 제2의 뉴타운을 꿈꾸며 총선 돌파구 마련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같은 예상과 달리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실제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김포가 서울로 지명이 바뀐다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리적 위치가 그대로인 상황인데, 서울에 편입된다는 이유만으로 집값이 오르는 건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김포한강차량기지에서 가진 수도권 신도시 교통대책 마련 간담회에 참석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김포 외에 서울과 경계하는 주변 도시 중 출퇴근과 통학을 서울과 직접 공유하는 곳들을 모두 서울시로 편입하는 ‘메가시티’ 서울 계획도 언급했다.
국민의힘이 김포시 서울 편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2일 오전에는 당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김포시 서울 편입 이슈를 다룰 ‘수도권 주민편익 개선 특별위원회(가칭)’을 발족했다. 특위 위원장에는 조경태(부산 사하구을) 국민의힘 의원을 임명했다.
서울 뉴타운 자료사진 ⓒ아트액추얼리
‘뉴타운’ 공약과 겹쳐 보이는 ‘김포시 서울 편입’ 정책
국민의힘의 이 같은 행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된 수도권 ‘뉴타운’ 개발 공약과 겹쳐 보인다.
뉴타운은 2002년부터 서울에서 추진한 재개발 방식이다. 소규모 재개발 사업과 달리 광역 단위 생활권을 중심으로 재개발하는 정비 사업이다. 한때 뉴타운 광풍이 일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2008년 치러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서울 판세를 뒤집기 위한 승부수로 ‘뉴타운 공약’을 앞세웠다.
광역 단위 재개발로 수많은 서울 시민에게 집값 상승의 기대감을 준 것이다. 당시 뉴타운 개발지역으로 선정되면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국민의힘이 김포시를 서울시에 편입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높은 서울 지역에 편입되면 김포시 집값도 오를 거라는 기대감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실제 한나라당은 당시 뉴타운을 앞세워 수도권 선거에서 승리했다. 서울에서는 도봉, 노원, 성북, 관악 등 민주당 강세 지역까지 차지하며 48개 선거구에서 40석을 차지했다. 수도권 전체로는 111개 지역구 중 81곳에서 승리했다. 이 선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보수당이 수도권에서 이긴 유일한 선거였다.
하지만 뉴타운 사업은 이후 사업 지구가 남발되면서 그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주택 경기가 급격히 가라앉으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 집값 하락에 따라 주민들의 추가 분담금 액수는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정부가 2009년부터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지은 보금자리주택이 나오면서, 개발 이익에 기댄 뉴타운은 사업성에 위기를 맞았다. 아울러 뉴타운 사업은 기존 주택을 철거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만 짓는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진행돼 서울의 집값과 전셋값을 끌어올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국민의힘이 갑자기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하겠다고 나선 건 정치적인 이유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며 “김포시에 살고 있는 집주인들에게 집값이 오를 거라는 기대감을 심어주고 거기에 편승해 표를 얻으려는 의도다. 과거 ‘뉴타운’ 때와 매우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 소장은 “이런 계획(김포시 서울 편입)이 나올 땐 당연히 관련 연구결과나 분석결과 등 신빙성 있는 자료들이 함께 제시돼야 하는 게 맞다”면서 “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추진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서울시와 경기도 김포 ⓒ민중의소리
김포시 서울 편입에 따른 집값 상승 기대감?...
전문가 “지역명만 바꾼다고 집값 오르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김포시가 서울에 편입되더라도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긴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김포시가 서울시가 된다는 기대감과 실제로 집값이 오르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는 “서울에 편입된다는 점에서 김포시의 집주인들이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건 한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서울의 집값이 그만큼 비싸기 때문”이라면서도 “그러나 실제 집값이 오르는 건 별개 문제다. 서울 집값이 비싼 건 ‘서울’이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다. 인프라나, 교육환경, 직주근접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라고 짚었다.
이 대표는 “김포시가 서울시에 편입된다고 해서, 강남 옆으로 옮겨 오는 게 아니다. 현재의 위치에서 지역명만 바뀔 뿐이다”라며 “단순히 지역명만 바뀐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주고 김포시에 있는 집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건 부동산 투자자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포시 서울 편입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인구 감소로 지방 소멸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을 다시 확대하는 건 결국 정부가 나서 지방 소멸 부추기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최은영 소장은 “그나마 1963년 이후 서울의 대규모 확장을 억제했기 때문에 그 낙수효과로 경기도 등 수도권 인구가 이만큼 분산될 수 있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서울을 키우겠다는 발상은 우리 사회의 공간적 양극화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 윤정헌 기자 ” 응원하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대 규모 난민촌 자발리아를 이틀 연속 공습한 가운데 유엔(UN)이 해당 공격이 전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군사 작전에만 치중하고 가자지구 통치 공백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는 현재 이스라엘의 방식으로는 하마스를 궤멸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주민들과의 분리도 실패해 제거한 조직원보다 더 큰 규모의 새 조직원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미국 CNN 방송은 1일(이하 현지시각)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 인근 팔루자 지역에서 발생한 폭발이 자국군 공습에 의한 것임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전날 인구 밀집 지역인 자발리아에 대한 공습으로 아랍 국가를 비롯한 각국의 비난이 쇄도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틀 연속 이 지역을 폭격한 것이다.
이 지역 인구 밀도는 서울의 5배가 넘는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지휘·통제 기관을 겨냥했고 "공습으로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이 제거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비난을 의식한 듯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하마스 지하 땅굴 붕괴 탓이며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고 있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1일 언론 브리핑에서 "공습으로 민간인 난민촌 내 건물이 붕괴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난민촌 지하 테러 터널(하마스 땅굴)을 포함한 지하 군사 시설이 무너지며 추가 붕괴를 낳았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이어 그는 "이는 사람을 죽이는 테러리스트들이 민간인을 어떻게 인간 방패로 사용하는지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들(민간인)에게 안전을 위해 대피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밤사이 지상군이 자발리아의 "학교, 의료 센터, 관공서와 가까운 민간 건물"에서도 전투를 벌였으며 하마스가 민간 시설 내에 은신처를 두고 있다고 거듭 설명했다.
이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자발리아 난민촌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 수와 파괴 규모는 전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불균형적 공격"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같은 날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스라엘의 자발리아 난민촌 폭격에 따른 많은 사상자 수에 경악했다"며 인도주의적 필요를 위한 전투 일시 중지를 촉구했다.
전날 볼리비아가 이스라엘과 단교를 선언하고 칠레와 콜롬비아가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를 불러들인 데 이어 1일 요르단도 가자지구 공격에 항의하며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를 불러들였다. <로이터>는 이란 국영 언론을 인용해 이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가 가자지구 폭격을 비난하고 무슬림 국가들에게 이스라엘에 석유 및 식량 수출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2일 하마스 쪽이 이틀 간의 자발리아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를 적어도 195명으로 추산했다고 보도했다. 120명은 실종 상태고 부상자는 777명에 이른다.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습격 이후 이어진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인한 가자지구 총 사망자 수는 1일까지 8805명, 부상자는 2만 2240명에 달했다. 해당 기간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128명이 숨지고 2274명이 다쳤다.
가자지구 사상자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데다 난민촌 공습까지 벌어지자 이스라엘을 강력히 지지해 온 미국 정부도 점차 곤경에 처하고 있는 모양새다. <로이터>를 보면 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기금 모금 행사 연설 중 자신을 랍비(유대교 율법학자)라고 밝힌 성난 시민과 맞닥뜨렸다.
자신의 이름을 제시카 로젠버그라고 밝힌 시민은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을 끊고 "랍비로서, 당신이 당장 휴전을 촉구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일시 중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시 중지로 포로(인질을 의미) 구출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휴전에 반대하고 더 짧고 규모가 작으며 비공식적인 형태의 일시 중지를 옹호하는 백악관의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다.
전날 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 지원 예산안에 대한 심의의 일환으로 열린 미 상원 청문회 회의장엔 휴전 및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학살 중단 요구를 외치는 손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 한 무리의 방청객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날 청문회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가자지구 지상전이 예상됐던 전면 침공에서 점진적 형태로 바뀌고 가자지구로 반입되는 구호 트럭 물량도 늘고 있는 것과 함께, 보도에 따르면 미 당국이 이스라엘에 책임이 있다고 본 지난 주말 가자지구 통신 두절이 복구된 것은 이스라엘이 민간인 보호를 점차 강조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을 어느 정도 반영할 뜻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1일 오전 3시부터 11시 14분까지 가자지구의 통신이 지난 주말에 이어 또 두절됐고 무엇보다 미국이 거듭 언급한 전투 일시 중지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이 미국의 권고를 완전히 따르진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1일 미 국무부는 언론 브리핑에서 3일 이스라엘을 다시 방문할 예정인 블링컨 장관이 민간인 사상자 최소화 및 인도적 지원 제공에 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매튜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스라엘 정부에 "국제인도주의법과 전쟁법 준수에 대해 매우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 국적자들의 가자지구 탈출은 계속됐다. 1일 가자지구에서 이집트로 향하는 라파 검문소를 통해 400명 가량의 외국 국적자 및 부상자 일부가 가자지구를 빠져 나간 가운데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2일 가자지구 국경 당국은 통과가 허용된 외국 국적자 600명의 명단을 추가로 발표했다. 해당 명단엔 한국, 미국, 멕시코, 헝가리, 스위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자들이 포함됐다.<AFP>
통신은 이스마일 카이라트 이집트 외교부 차관이 2일 외국 외교관들과 만나 "60개국 이상"적의 "7000명 가량"의 외국인 및 외국 국적자들의 가자지구 대피에 도움을 줄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다만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외국 국적자 대피가 시작된 1일 가자지구 통신이 두절되며 많은 외국 국적자들이 탈출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고 곳곳에 이스라엘 공습이 쏟아지며 라파 검문소로 갈 안전한 방법도 스스로 알아내야 했다고 한다.
"군사 작전에 정치 과정 병행 돼야 하마스와 주민 분리 가능…가자지구 미래 나중 아닌 지금 터 닦아야"
이스라엘이 3주 넘게 가자지구에 거센 공습을 가하고 있지만 하마스 퇴치 뒤 가자지구의 통치 공백에 대해선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지금과 같은 방식은 하마스를 궤멸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주민들과의 분리도 실패해 새 조직원을 양산하는 꼴이라는 전문가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과정이 군사 작전과 동시에 진행 돼야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와 분리돼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로버트 페이프 미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는 1일 CNN 기고에서 "하마스를 물리치려는 이스라엘의 전략은 유효할 가능성이 낮다. 이미 이스라엘은 죽인 테러리스트보다 더 많은 테러리스트를 양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테러 조직 퇴치를 위해선 지역 주민들과 테러리스트를 분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군사적 조치와 지역 주민들에게 통치권을 돌려주는 정치적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 한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은 하마스 궤멸 뒤 가자지구의 미래에 대해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페이프 교수는 정치적 과정이 병행되지 않은 군사 작전이 현 세대의 테러리스트를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세대의 테러리스트로 대체할 뿐"이라며 "이스라엘이 현재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정치적 결과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이 군사적으로 1~2달 만에 테러리스트를 소탕하려는 노력은 죽인 것보다 더 많은 테러리스트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테러리스트를 대중으로부터 분리하는 원칙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 달성은 매우 어렵다"며 이스라엘과 미국이 그간 벌여온 작전을 예로 들었다. 1982년 6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분쇄하기 위해 레바논 남부를 침공해 단기적으론 성과를 얻었지만 곧바로 이에 대항해 헤즈볼라가 창설됐고 이스라엘이 1985년 레바논 남부에서 군을 물린 뒤 계속 성장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가자지구의 경우도 이스라엘이 1990년대 초반부터 2005년까지 군사적 점령을 유지하며 많은 테러리스트를 죽였지만 주민들의 반발만 샀고 결국 이듬해 곧바로 하마스가 이 지역을 장악했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경우 6주 만에 승기를 잡았지만 이후 이라크에서 대규모 내전이 발생했고 혼란이 지속되며 결국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IS)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는 "가자지구에서 이런 비극적 패턴이 이미 벌어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는 하마스와 지역 주민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결속이 강화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으며 하마스 모집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페이프 교수는 반면 ISIS 퇴치 작전은 초기부터 군사 작전과 정치적 작전이 결합돼 변화를 가져 왔다고 짚었다. 무슬림 지상군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몇 년에 걸쳐 군사적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테러리스트를 퇴치한 지역은 주민들이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과정을 병행함으로써 테러리스트가 재생산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는 "테러리스트에게 지속적 피해를 입히는 유일한 방법은 수 년에 걸친 장기 작전을 통해 확인된 테러리스트에 대해 선별적 공격을 가하고 테러리스트와 지역 주민들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정치적 작전을 병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마스를 주민들로부터 분리하는 유일한 길은 정치적으로만 가능하다"며 "나중이 아니라 지금 팔레스타인 국가로 향한 길을 닦는 정치적 과정을 시작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를 대체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정치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통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마스와 주민들을 점점 더 분리시킬 수 있다"며 결국 "누가 가자지구를 이끌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민간 위성업체 맥사 테크놀로지가 제공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 폭격 전인 10월31일(왼쪽·현지시각)과 폭격 뒤인 11월1일의 위성 이미지. 건물이 밀집된 부분이 파괴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10월31일과 11월1일 이틀 연속으로 이 지역을 폭격했다. ⓒAFP=연합뉴스▲1일(현지시각)부터 외국 국적자와 이중 국적자 일부가 가자지구를 떠날 수 있도록 허용되며 2일 가자지구에서 이집트로 향하는 라파 검문소에서 출국 허가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는 11일 윤석열 정권에 분노한 민중들의 총궐기가 예고되어 있다. 지난 7~9월 사이, 세 번의 ‘윤석열 퇴진 범국민대회’보다 한 발 더 전진했다. 자그마치 20만이 참여하는 총궐기다.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농민·빈민 뿐만 아니라 풀뿌리 시민단체까지 상경한다.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릴 때보다 분노의 속도가 빠르다”고 했다. 그와 함께 20만 총궐기의 배경 그리고, 총궐기 이후를 상상해 본다.[편집자]
▲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 ⓒ정강산 기자
11일 총궐기는 지난 1~3차 범국민대회와 다른 점이 있다.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뿐만 아니라 전국민중행동, 전국비상시국회의까지 참가 규모가 더욱 커졌다. 이날 총궐기에 앞서 노·농·빈의 퇴진 결의대회는 물론, 각계 시민사회 풀뿌리 단체가 참가하는 ‘윤석열 정권 심판 범시민대회’도 열린다. 윤석열 정권에 성난 민중들의 역대 최대규모 총궐기가 될 전망이다.
김재하 대표는 “윤석열 퇴진을 두고 ‘퇴진’이냐, ‘심판’이냐, 혹은 ‘탄핵’이냐 등 다양한 표현들이 있는데, 크게 차이가 있는 건 아니”라고 단언한다. “3개월 뒤, 혹은 6개월 뒤에 전체 범국민적 투쟁으로 변화하게 되면, 지금 나타나는 ‘표현’의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윤석열 퇴진을 두고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 이날 총궐기대회 후 “용산으로 진격하자”는 것에 마음이 모이고 있고 “결국엔, 전 민중적 총궐기만이 윤석열 정권을 퇴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한뜻으로 지향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퇴진광장을 열자!” 11.11 총궐기의 구호다. 김 대표는 두 가지 의미를 전했다. “성난 민심을 광장으로 모아 내자”는 것, 다른 하나는 “닫힌 광장을 열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민심이 광장에 터져 나오는 걸 두려워하는 기성 정치인들이 광화문광장, 서울시청광장 할 거 없이 광장을 닫아버리거나, 아예 없애는 행태를 보이는 상황. 11월11일 광장을 여는 것은 “윤석열에 분노한 민심을 표출하는 것과 동시에, 광장에 모인 민중들의 힘을 확인하고 서로서로 용기와 지혜를 얻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윤석열 정권 1년 6개월간 가장 극심한 탄압을 받아온 노동자는 물론, 추수철이 끝나고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며 또 다른 농번기를 보내는 농민도 정권 퇴진을 위해 전례 없는 상경을 준비 중이다. 빈민 역시 최대규모 집결을 예고하고 있다.
김 대표는 풀뿌리 시민단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고 귀띔했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문제로 인한 생활협동조합(생협)과 먹거리 단체, 환경단체들의 분노부터 ‘강제징용 굴종외교’에서 비롯된 민족문제단체까지, 분노하는 대오가 확장되고, 실제 총궐기 참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11일 총궐기에서 각 부분의 힘이 한데 모인다면 총궐기를 마친 이후에도 단체들의 행동 역시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그는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릴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속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때와 다른 상상이 필요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노동자·농민·빈민 등 민중진영이 앞장서 나아가고 있고, 이른 시일에 ‘퇴진’ 구호를 들었으며, 퇴진운동본부 구성 등 전열 정비도 빨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퇴진’ 구호는 박근혜 퇴진 때와는 달리 정권교체는 물론, 새로운 체제를 향한 지향을 담고 있다”면서 “박근혜 퇴진 후 5년 동안 하지 못했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체제를 상상해야 하며, 그래서 이번 총궐기는 새로운 한국사회를 향한 ‘디딤돌’을 놓는 총궐기가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총궐기 이후의 과제도 이와 연동돼 있다. ‘디딤돌’에서 나아가 ‘주춧돌’을 놓고, 결국엔 ‘정권 퇴진’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있다.
김 대표는 “윤석열 퇴진은 이제 민중들에게 상식이 되어있고, 그 여론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면서도 “각계각층의 요구를 밀접히 결부시켜 한국사회 체제 변화를 향한 요구로 상승시켜 나가야 하며, 윤석열 정권 퇴진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민중들의 절박한 의지를 더욱 높이 모아가야 한다”는 것. 김 대표는 이를 “퇴진 운동의 주체는 민중”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20일 제주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이어지는 ‘윤석열정권 퇴진 노동자·민중 전국 대행진’ 중 10일간의 일정을 소화하고 올라왔다.
대행진에 나선 이유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퇴진을 위해, 퇴진 이후에 새로운 사회를 위해 윤석열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폭넓게 단결해야 하고, 더욱 강하게 단결해야 한다”면서 지역 곳곳을 행진하면서 “대중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중들의 무궁무진한 힘과 지혜를 모아내는 대행진”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 대구지역 대행진. 차량 행진 ⓒ노동과세계
아래는, 11일 총궐기 준비 상황과 이후 과제에 대한 김재하 대표의 답변 전문이다.
11.11 총궐기는 윤석열정권퇴진본부와, 전국민중행동, 전국비상시국회의까지 결합해 최대 규모가 예상된다. 어떤 과정이 있었는가.
“지난 6월 ‘윤석열 정권 퇴진’을 걸고 전국민중행동은 물론, 노·농·빈 민중들의 퇴진 행동이 터져 나왔다. 이를 더욱 상승시키기 위해 ‘퇴진운동본부’를 결성해 활동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켠엔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 오신 원로 선생님들, 저명인사들, 종교계 인사들이 참가하는 전국 비상시국회의(추)도 활동해 왔다. 총궐기를 앞두고, 윤석열 정권에 분노하는 행동의 폭을 더욱 넓히기 위해서 시국회의 추진위에 제안을 했고, 시국회의 측에서도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윤석열 ‘퇴진’이라는 구호에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는데.
“윤석열 퇴진을 두고 ‘퇴진’이냐, ‘심판’이냐, 혹은 ‘탄핵’이냐 등 다양한 표현들이 있는데, 크게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퇴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닌데, 시기적으로 무르익은 시기가 맞냐, 아니냐는 약간의 차이들이 있는 것이다. ‘심판’이라 함은 주로 선거를 두고 표현하는 의미가 깊고, ‘탄핵’이라 함은 국회에서의 절차(행위)에 방점이 찍힌 표현으로 읽히기도 한다. 결국은 임기 내에 윤석열을 끌어내리는 의미다. ‘퇴진’이라는 의미에 포함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앞으로 3개월 뒤, 혹은 6개월 뒤에 전체 범국민적 투쟁으로 변화하게 되면, 지금 나타나는 ‘표현’의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윤석열 퇴진을 두고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 총궐기대회 후 ‘용산으로 진격하자’는 것에 마음이 모이고 있으며, 결국엔, ‘전 민중적 총궐기만이 윤석열 정권을 퇴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한뜻으로 지향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 대행진 4일 차 경남지역 대행진에서 김재하 공동대표 ⓒ노동과세계
‘퇴진광장을 열자’ 구호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달라.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성난 민심을 광장으로 모아내자”는 것, 다른 하나는 “닫힌 광장을 열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민심이 광장에 터져 나오는 걸 두려워하는 기성 정치인들이 광화문광장, 서울시청광장 할 거 없이 광장을 닫아버리거나, 아예 없애는 행태를 보인다. 11월11일 광장을 여는 것은 윤석열에 분노한 민심을 표출하는 것과 동시에, 광장에 모인 민중들의 힘을 확인하고 서로서로 용기와 지혜를 얻는 자리가 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릴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속도다. 노동자·농민·빈민 등 민중진영이 앞장서 나아가고 있고, 이른 시일에 ‘퇴진’ 구호를 들었으며, 퇴진운동본부 구성 등 전열 정비도 빨랐다. 박근혜 때와 다른 상상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의 ‘퇴진’ 구호는 박근혜 퇴진 때와는 달리 정권교체는 물론, 새로운 체제를 향한 지향을 담고 있다. 박근혜 퇴진 후 5년 동안 하지 못했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체제’를 상상해야 하며, 그래서 이번 총궐기는 새로운 한국사회를 향한 ‘디딤돌’을 놓는 총궐기가 될 것이다.”
총궐기대회에 앞서 열리는 ‘윤석열 심판 범시민대회’ 대회의 상에 대해 말해 달라.
“대회 당일 노동자·농민·빈민 단위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걸고 사전대회를 하는데, 범시민대회도 굉장히 유의미한 대회라고 할 수 있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대책위, 노조법 2·3조 운동본부, 강제징용문제 대응하는 정의기억연대 등 다양한 단위들을 묶어낼 수 있는 게 범시민대회(서울시청 동편 무교로)다. 민생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 자주 평화의 문제 등 윤석열 정권의 실정으로 인한 문제가 산적해 있지 않은가.
범시민대회 개최 제안에 다들 호응이 좋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문제로 인한 생활협동조합(생협)과 먹거리 단체, 환경단체들의 분노부터 ‘강제징용 굴종외교’에서 비롯된 민족문제 단체 등까지 분노하는 대오가 확장되고, 총궐기 참가를 실제 준비하고 있다. 시민대합창단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 아마 주최 측에서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다양한 단위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각 부분의 힘이 한데 모인다면 11일 총궐기를 마친 이후에도 단체들의 행동 역시 더욱 활성화 될 것이다.”
▲ 부산지역 대행진 ⓒ노동과세계
각 지역의 총궐기 조직화는 잘 되고 있는가.
“총궐기를 앞두고 지역별로 기자회견을 하고, 도심에서 피켓팅을 하며 윤석열 퇴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농민들은 농촌 지역까지도 현수막을 내걸었다.
선거가 한창인 민주노총도 조직화에 나서고 있고, 추수철이 끝나고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며 또 다른 농번기에 있는 농민도 정권 퇴진을 위해 전례 없는 상경을 준비 중이다. 농민 1만 명은 노동자 10만 명이 넘는 가치가 있다. 진주농민회는 상경투쟁 차량 20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들었다. 빈민 역시 최대규모 집결을 목표로 한다. 연로하신 도시빈민들이 ‘윤석열 퇴진’을 위해 나서고 있다. 한국노총도 당일 ‘정권 심판’을 걸고 여의도에서 10만 노동자대회를 연다. 이 역시 굉장히 의미 있는 투쟁이다. 이렇게 모이면 11일 30만이 집결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반노동·반농민·반빈민 정책을 펴고, 자신의 요구를 걸고 싸우는 노동자·농민·빈민을 탄압한다. 반대로 재벌 독점자본과 검찰권력을 비롯한 기득권의 이해, 제국주의의 이해를 대변하는 윤석열 정권을 가만 놔둘 수 있겠는가. 한국사회 모든 구조를 파괴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다.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 성과물을 윤석열 정권은 한꺼번에 파괴시키고 뺏어간다. 1년 6개월 동안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3년 반을 더 고통스러워하며 다음 선거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 경남 진주. 농민과 함께 ‘윤석열 퇴진 총궐기’ ⓒ노동과세계
‘총궐기 대행진’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대행진의 목적은 두 가지다. 제주부터 시작해 서울까지 윤석열 퇴진의 기운을 끌어모아 총궐기로 모으는 것, 그리고 앞으로 어떤 투쟁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목표와 상에 대해 일치를 만들고, 총궐기 이후를 도모하는 목적이 있다. 윤석열 정권 퇴진을 위해, 퇴진 이후에 새로운 사회를 위해 윤석열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폭넓게 단결해야 하고, 더욱 강하게 단결해야 한다. 지역 곳곳을 행진하면서, 그리고 간담회를 하면서 대중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중들의 무궁무진한 힘과 지혜를 모아내는 대행진이 되고 있다.”
최대규모 총궐기 이후 과제가 있다면.
“노동자·농민·빈민 등 절대다수의 대중과 우리 민족이 살길은 윤석열 정권 퇴진인데,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대중들이 직접 나설 때 가능하다.
박근혜 정권 퇴진 때를 보자. 비록 미수에 그쳤지만, 박근혜 정권은 계엄령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윤석열 정권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윤석열 정권과 기득권들의 강력한 저항이 있을 때, 우리 안에서도 부침이 있을 것이다.
윤석열 퇴진은 이제 민중들에게 상식이 되어있고, 그 여론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젠 각계각층의 요구를 밀접히 결부시켜 한국사회 체제 변화를 향한 요구로 상승시켜 나가야 하며, 윤석열 정권 퇴진 이후 새로운 사회에 대한 민중들의 절박한 의지를 더욱 높이 모아가야 한다. 퇴진 운동의 주체는 민중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퇴진 때도, 2015년 총궐기부터 2년을 싸웠다. 한겨울에도 4개월간 대규모 촛불을 밝혔다. 대중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모든 힘을 모아서 강하게 투쟁해야 한다.”
여당은 ‘메가 서울’을 얘기하고, 정부와 대통령은 지역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엇박자가 나타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중앙 정부는 쥐고 있는 권한을 지역으로 이전시키고 뒤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면서 “저는 지난 9월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우리 정부는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선언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교육부와 지방시대위원회는 이날 공청회를 열어 비수도권 지역의 교육 여건을 끌어올려 지역 인재들이 지역에서 대학 진학과 취업을 하도록 하겠다는 교육발전특구 추진계획 시안을 발표했다.
서울신문 <교육특구로 ‘인서울 쏠림’ 막는다>, 조선일보 <K팝高·AI高… 지역 원하는대로 세운다>, 세계일보 <‘지방대 키우기’ 지역인재 전형 확 늘린다> 등은 1면 머리기사로 배치됐다.
▲11월3일자 주요신문 1면
세계일보 <‘지방대 키우기’ 지역인재 전형 확 늘린다> 기사는 “특구로 지정된 지역은 학생 선발과 교육 과정 운영의 자율성이 확대된 초·중·고를 운영할 수 있다. 지역 대학은 학생 선호도가 높은 첨단기술 관련 분야, 지역산업 연계 특성화 분야 등의 지역인재 특별전형을 확대할 수도 있다. 특히 현재 40%인 의대 지역인재 전형 비율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현재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 대부분이 서울 주요 대로 몰리는 상황에서 ‘지역 명문고 졸업생을 지역 대학으로 보낸다’는 계획은 현장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했다.
국민일보 <들끓는 ‘메가 서울’ 찬반 봇물 터졌다> 기사는 “여권이 추진하는 ‘메가 서울’ 프로젝트와 관련해 국민의 힘내부에서 분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과 맞닿은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서울편입’ 요구가 분출하지만, 경기도와 접한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편입 반대’ 목소리가 일고 있다”면서 “김포 하나 더 붙여서 덩치만 키운다고 서울의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김재섭 서울 도봉강당협위원장 주장 등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1면 <수도권 일극체제, 청년 무한경쟁 내몬다> 기사에서 “한은 조사국 지역경제조사팀이 2일 지역경제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지역 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보고서를 보면 2015 ~2021년 수도권에서 순증한 인구 중 청년층(15~34세)이 차지하는 비중이 78.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난해 기준 국내 인구의 절반 이상(50.6%)이 국토에서 불과 11.8% 를 차지하는 수도권에 모여 살고 있다. 국토의 10% 남짓한 지역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중된 사례는 다른 선진국에서 찾기 어렵다”고 했다.
여당 인재영입위원장에 ‘또 윤핵관’
2일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에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관계자)으로 꼽히는 이철규 의원이 임명됐다. 지난달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사무총장직에서 사퇴했던 인사가 내년 총선 인사를 발탁하는 자리로 돌아왔다.
경향신문 사설(‘윤핵관‘ 에 인재영입 맡긴 여당, 강서 참패 반성한다더니)은 “윤핵관인 이 전 총장은 지난 8월 배에 구멍을 내는 승객은 승선 못한다며 친윤감별사 역할을 자임했다. 친윤 인사를 대거 공천하려는 구상이란 의구심이 당내에서부터 움트고 있다”며 “통합 쇄신 알맹이는 빠진 채 혁신위는 겉으로만 혁신을 외치고, 당 내부는 친윤 독주 회전문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여권은 검사 출신 대통령에 판사 출신 여당 대표, 경찰 출신 사무총장 인재영입위원장 원내 대표로 수사 사법기관 출신만의 수직적 관계가 강고하게 구축됐다”고 지적했다.
▲11월3일자 동아일보 기사
세계일보 사설(與 인재영입위원장에 ‘윤핵관’… 혁신 의지 있기는 하나)도 “환골탈태를 외치면서 여권 위기에 책임을 물어야 할 윤핵관을 다시 중용하는 것은 상식 밖”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일보 사설(‘윤핵관‘ 회전문 인사, 징계 잡음… 與 혁신하는 것 맞나)은 “보선 패배 후 당과 대통령실 관계의 주도권을 당이 쥐어야 하고, 당이 대통령실에 쓴 소리를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게 여권의 주된 목소리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혁신위 1호 안건으로 이준석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등에 대한 징계취소안이 의결되고 당사자들이 애초 징계감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여당이 혁신하기는커녕 이렇게 계속 헛발질만한다면 유권자들의 심판욕구만 더 키울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사설(선거 지고 혁신한다는 당에서 또 나온 이상한 인사)은 “국민의힘은 2016년 ‘진박 논란’ 으로 민심을 잃은 경험이 있다. 찐박, 대박, 범박, 변박, 쪽박, 탈박 등 각종 파생어가 난무한 논란에 국민은 피로감을 넘어 혐오감을 느꼈다. 그 결과는 단순히 총선 참패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 탄핵과 분당으로 이어졌다”며 “지금 국민의힘에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조짐이 보인다”고 했다.
한국일보 사설( 친윤·친명의 총선 공천 장악... 여야 혁신에 찬물)의 경우 “내년 총선을 앞둔 여야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천을 준비하고 있어 우려를 낳는다”며 “정치 발전 차원에서라도 여야는 상향식 공천을 포함한 공천 개혁에 조속히 시동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세월호 참사’ 해경 지휘부 무죄, ‘이태원 참사’ 수사에 영향 미칠까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이 2일 세월호 참사 당시 초동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한 혐의로 재판 받아온 박근혜 정부 해양경찰청 지휘부에 대한 무죄를 확정했다.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석균 전 해경청장,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 등 당시 해경 지휘부 9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3일자 신문 중에선 한겨레가 머리기사, 경향신문이 사진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경향신문 <‘세월호 구조 실패’ 책임, 잘못 끼운 수사… 결국 되돌리지 못했다> 기사는 “해경 지휘부에 면죄부를 준 이날 판결은 참사 초기 수사단계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결과”라는 시민사회 등 지적을 전했다. 이 기사는 “박근혜 정부가 구조 실패 책임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탓에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김경일 전 123정장만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김 전해경청장 등해 경 지휘부 11명은 문재인정부 때인 2019년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이 출범한 뒤에야 비로소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해경청장은 참사 초기와 다른 진술을 법정에서 내놓았고, 법원은 그의 법정진술을 받아들여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재판 과정에선 법원마다 판단을 달리해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고 했다.
▲11월3일 한겨레 사진 기사
조선일보는 <‘세월호 구조 실패’ 무죄 확정… 10년째 무리한 수사·재판 마무리> 제목의 기사에서 “세월호가 잠수함 등 외부 물체와 부딪혀 생긴 충격 등에 의해 침몰했다는 ‘외력설’이나‘고의 침몰설’ 은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문재인 정부 검찰 특수단은 세월호 단체 등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검사 9명과 수사관 20명을 투입해 1년 2개월 동안 전면 재수사를 벌였다”고 지난 수사와 재판이 과도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이 신문은 <‘세월호’ 한풀이와 정략의 희생자들 결국 모두 무죄>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기도 했다.
한겨레 <‘세월호’ 현장 지휘관 빼고 다 무죄…‘이태원’ 재판에 영향 우려> 기사는 이번에 확정된 판결에 대해 “사실상 직급이 높고 현장 파악 능력이 떨어질 수록 업무상 과실에 대한 형사책임이 가벼워진 셈이다. 실제로 세월호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물어 기소된 해경은 모두 12명이었지만, ‘유죄’가 선고된 해경은 현장 지휘관이었던 김경일 당시 123정장이 유일하다”며 “안전 관리와 구조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휘부는 다 빠져 나가고 현장책임자만 법적 책임을 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해경 지휘부를 공동정범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 윗선을 수사 중인 검찰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은 김광호 서울 경찰청장, 류미진 전 서울 청 인사교육과장, 정대경 전 서울청 112상황 3팀장과 이태원파출소 1 · 2팀장 등 경찰 책임자들을 넘겨받았으나 6개월이 넘도록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며 “검찰이 밝혀왔던 입장과 대법원의 세월호 무죄판결을 종합하면, 검찰이 경찰 윗선을 기소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고 봤다.
국민일보 <해경 지휘부 무죄 확정...‘세월호’ 재판 사실상 마무리> 기사도 “법원 판례는 참사 현장과 직접 연관성이 인정된 지휘관은 처벌이 가능하지만, 정보가 제한된 윗선은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대형사고 대비 체계를 정비하지 않은 윗선의 관리 책임을 질책할 수 있어도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결론”이라면서 “이번 판결은 김광호 서울 경찰청장 등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지휘부의 사법처리를 앞둔 검찰 판단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전망치 넘은 물가상승률
10월 물가상승률이 정부가 전망한 연간 상승률(3.3%)을 웃도는 3.8%로 나타났다고 2일 통계청이 밝혔다. 계절적 요인이나 일시적 충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3%대를 유지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3.5%, 신선과실지수는 26.2%로 2011년 1월(31.9%)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간 10월이면 물가가 안정될 거라 낙관했던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245억 원을 투입해 김장 재료를 최대 50~60% 할인하기로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2일 모든 부처가 물가 안정을 정책 최우선 순위에 두는 범부처 특별물가 안정체계를 즉시 가동할 것이라 밝혔다.
▲11월3일 세계일보 사진 기사
이를 두고 경향신문은 “이명박 정부 당시 정부가 주요 품목에 대한 가격통제에 나서면서 제기됐던 ‘배추 국장’ ‘무 과장’ 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며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52개 품목을 선정해 이른바 MB물가지수 를 관리한 전례가 있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고금리 와중 장바구니 물가 ‘도미노 인상’… 서민 살림 직격탄> 기사에서 “최근 가공식품 업체들이 줄줄이 가격을 올리고 있는 데다 공공요금 인상 등 향후 물가를 밀어 올릴 요인도 적지 않아 장바구니 부담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며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한 원자재가 불확실성이 상존해 단기간 내 물가 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이라는 전망을 전했다.
국민일보 사설(서민 생계 위협하는 고물가… 실효성 있는 대책 필요하다)은 “정부가 원가요인을 줄이는 방안을 요구하자제품용량과 부피를 줄이는 꼼수인상으로 소비자를 우롱하는 기업들은 일벌백계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중남미 국가들의 정정 불안이 일상화된 주요 원인이 물가 잡기 실패였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정권의 명운을 걸겠다는 각오로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8000만 원 이상만 단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부착이 내년 1월부터 이뤄지지만 기존보다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일보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결국 8000만원 이상만 단다> 기사는 “법인차 번호판의 적용 대상은 차량가액 8000만원 이상이며, 제도 시행일 이후 신규 또는 변경 등록하는 차량부터 시행된다. 민간 법인이 소유한 차량과 리스차, 장기렌트차(1년 이상), 관용차가 모두 포함된다. 단 개인 사업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설명한 뒤 “국토부가 그동안 진행했던 연구용역과 공청회 등에서 제시한 적용대상에서 크게 후퇴하면서 정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초 국토부는 경차와 수사·경호 등 특수목적의 관용차 등에만 일부 예외를 두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이렇게 대상이 축소된 것을 두고 리스·렌터카 업계는 물론 민간 법인에서도 연두색 번호판 도입 확대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해온 게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했다.
카카오모빌리티, 대통령 지적에 ‘거리 손님 수수료’ 손 본다
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T)가 2일 사업자와 노동조합이 모인 택시 4단체와 가맹 협의회, 지역 사업자, 전문가 등을 아우르는 협의체를 구성해 가맹 택시 수수료 체계 개편 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카카오모빌리티, 거리 손님 태워도 수수료 떼가... 뒤늦게 “손볼것”> 기사는 “개편의 핵심은 카카오모빌리티의 가맹 택시(카카오 T 블루) 기사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카카오모빌리티는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이용자와 택시를 연결해 주는 심판(중개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가맹 계약을 통해 선수(택시사업)로도 뛴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했다.
한국일보는 사설(대통령 한마디에 대책 나선 카카오, 이런 게 독점 폐해)에서 “사정이 그렇지 않은데도 ‘울며 겨자 먹기’로 시늉하는 게 아니라면, 택시기사 불만이 진작부터 있어왔던 터라 독점 폐해를 여실히 드러내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라며 “이 참에 카카오를 넘어 플랫폼 기업의 독점적 폐해에 대한 전반적 검토와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나아가 “이와 별개로 소통 과정에서 불거진 일이긴 하나 대통령이 특정 사안에 일일이 간여하는 데 따른 폐해도 적지 않은 만큼 부처에 맡길 일과 대통령이 개입할 국정에 대한 분별도 분명히 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판자촌의 한숨
건조한 가을이 다가오면서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 전원 마을 비닐하우스촌에서 화재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겨레 <“불날 때마다 마을 줄어들어”…판자촌의 한숨> 기사는 “전원 마을 비닐하우스촌은 2014년에야 비로소 수도가 생겼다. 하지만 배수로가 확보되지 않아 주민들은 여전히 장마철엔 침수를 걱정하고, 건조한 가을이 오면 화재를 두려워한다”며 “화재에 취약한 판잣집과 비닐하우스에 사는 ‘비주택’ 거주자만 전국에 1만 5940명(2022년 기준 통계청 주택 총조사) 이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임대주택 이전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움직임은 없다”고 지적했다.
누구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라 하고, 누구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전쟁이라 한다. 또 누구는 ‘민주’ 이스라엘과 ‘테러’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이라고 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은 이스라엘의 억압에 맞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이다. 70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독립전쟁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억압사, 팔레스타인 비극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도와 숫자, 국제 협정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명칭을 통해 팔레스타인 비극사를 정리한다.<편집자주>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이스라엘이 보복 공격을 시작했고, 헤즈볼라가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우리 언론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라고 소개되는 하마스는, 가자지구의 집권당이다. 즉 하마스는 정당이다.
헤즈볼라(Hezbollah)는 1982년 무렵에 레바논에서 조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바논은 오랜 기간 내전을 겪었다. 그 내전 과정에서 헤즈볼라가 생긴 것은 맞다. 그러나 구성은 복잡하다. 우선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헤즈볼라에 참여했다. 1948년 1차 중동 전쟁이 일어나자, 팔레스타인 지역 북쪽의 1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레바논으로 피신했다. 전쟁은 끝났으나 이스라엘이 봉쇄하여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레바논 지역에 피신해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 중 일부가 헤즈볼라에 참여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근거지인 레바논 남부를 점령하기 위해 군사행동을 개시했다. 이에 맞서는 과정에서 레바논 사람들도 헤즈볼라에 참여했다.
한편 레바논은 오랜 기간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 사이에 내전을 벌여왔다. 헤즈볼라는 내전에 참여했고, 레바논 무장 조직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헤즈볼라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무장 조직이기도 하고, 레바논의 이슬람교도 무장 조직이기도 하다. 그래서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치에도 관여하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에도 관여한다.
▲ 2006년 헤즈볼라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이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하마스(HAMAS)는 ‘순수’ 팔레스타인 정당이다. 1987년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팔레스타인 대규모 봉기(1차 인티파다) 시기 조직되었다. 반(反)이스라엘 기치를 내걸고, 팔레스타인 독립을 주장하는 팔레스타인 저항조직 중 하나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PLO가 이스라엘과의 협력 노선으로만 일관하자, 하마스는 강경노선을 채택했다. 하마스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지지가 높아졌다. 2006년 가자지구에서 진행된 선거에서 하마스는 1당의 자리에 오른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와 하마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동지적 관계였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사실상 앙숙이 되어 있다.
PLO는 1950년대 말 파타(Fatah, 팔레스타인의 한 정당)의 주도 아래 만들어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조직이다. PLO는 결성 직후 요르단을 근거지로 했다가 1970년대 레바논으로 본부를 옮겼고,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자, 이스라엘의 공격을 피해 근거지를 옮겨 다녔다. 1987년 결성된 하마스 역시 PLO에 가입했다. PLO는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을 대표하는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PLO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 투쟁을 포기하는 입장을 취한다. 오슬로 협정을 통해 PLO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자치정부를 수립할 권리를 확보했다. 그래서 PLO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팔레스타인 내에서 PLO의 온건 노선에 대한 비판 여론이 급증했다. 무력 항쟁을 통해 가자지구와 서안, 동예루살렘을 수복해야 하고,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영구 추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런 주장을 대표했던 세력이 하마스였다. 하마스는 PLO를 탈퇴하고, 무장 단체들을 흡수하면서 힘을 키웠다. 하마스가 이탈하자 PLO는 사실상 파타당만 남게 되었다.
▲ PLO의 초대 의장 슈케이리(Ahmad Shukeiri), 2대 의장 함무다(Yahia Hammuda), 3대 의장 아라파트(Yasser Arafat), 4대 의장 압바스(Mahmoud Abbas). 오슬로 협정 이후 PLO 의장은 팔레스타인자치정부 대통령도 맡는다.
2006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했다. 국가수반은 파타가 맡고, 총리는 하마스가 맡는 연립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대립은 더욱 격화되어, 하마스는 파타를 부정부패 집단이라고 공격했고, 파타는 하마스를 독립 방해 세력으로 규정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팔레스타인 세력들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하마스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집단”이라고 비난하고, 파타에 1억 달러에 가까운 군사원조를 제공했다. 하마스가 연정에 참여하면 팔레스타인을 봉쇄하겠다는 협박도 하면서, 두 세력의 분열을 부추겼다.
결국 연정은 깨지고 두 세력 사이에 분쟁이 격화되었다. 그 후 파타는 서안지구에서,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정권을 행사하는 이중 권력 구조를 갖게 되었다.
미국의 하마스 제거 공작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미국은 하마스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작에 착수한다. 당시 미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서안으로 날아가 자치정부 수반 아바스를 만나 하마스 축출을 제안했다. 파타에 무기까지 제공하려 했으나, 미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해 결국 실패했다.
2007년 미국의 지원 아래 이집트에서 훈련을 마친 파타 보안군 500명이 가자지구를 침입했다. 하마스와 파타 사이에 가자지구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며칠 만에 하마스가 이들을 제압하면서 미국의 구상은 실패한다.
2008년 이런 내용이 담긴 문서가 공개되었고, 미국 정치잡지 <베니티 페어>와 아랍언론 <알자지라>가 이 문서를 입수하여 보도하면서 미국 공작 실상이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 미국 잡지 베니티 페어는 2008년 4월호에서 하마스를 제거하는 미국의 공작을 폭로했다.
인티파다
1967년 3차 중동 전쟁 이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공급하는 물에 의존해야 했고, 일터로 가기 위해 이스라엘군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1987년 12월 8일 이스라엘 탱크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돌진하여 4명이 즉사하고, 7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마침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6천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장례식에 참석했고, 장례를 마친 후 이스라엘의 사과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시작했다. 1차 인티파다가 시작된 것이다.
인티파다(Intifada)는 '봉기', ‘진동’, ‘전율’ 등을 의미하는 아랍어 단어이다. 이스라엘 봉쇄에 맞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봉기와 저항 운동을 인티파다라고 부른다.
▲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이스라엘 탱크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있다.
인티파다가 일어나자, 이스라엘군은 가자 거리를 봉쇄했고, 중무장한 이스라엘 병사들 앞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돌멩이를 던지며 저항했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탱크 앞에서 돌멩이를 들고 서 있는 사진은 1차 인티파다를 상징하는 사진이 되었다. 1차 인티파다는 1993년 오슬로협상이 시작되면서 중단되었다.
2000년 9월 28일, 이스라엘 극우 정당인 리쿠드당(이스라엘 현 총리 네타냐후가 소속된 당)의 대표 아리엘 샤론이 예루살렘의 무슬림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 근처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통치권을 선언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즉각 반발하고 시위를 벌였다.(2차 인티파다) 2주 동안 90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죽고, 2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2차 인티파다는 2005년까지 계속되었다.
1차 인티파다가 이스라엘군의 점령과 억압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라면, 2차 인티파다는 7년 동안 진행된 평화 협상에 대한 실망과 분노에서 나온 것이었다. 한편 2차 인티파다는 1차와는 달리 무장 투쟁의 성격이 짙었다. 오슬로 협정 결과 팔레스타인 경찰들은 무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2차 인티파다의 원인을 제공한 샤론은 2001년 이스라엘 총리가 되었다. 샤론은 오슬로 협정 효력 상실을 선포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전면적 공격에 착수했다. 2차 인티파다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분리 장벽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그리고 동예루살렘
가자지구는 길이 41km, 폭 10km의 좁은 지역으로,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위치한다. 그 좁은 땅에 200만 명이 거주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보이는 곳이다.
1948년 1차 중동 전쟁 이후 이집트가 가자지구를 관리했으나, 1967년 3차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한 후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서안지구가 위치한다. 1948년 1차 중동 전쟁 이후 서안지구는 요르단이 관리했는데, 1967년 3차 중동 전쟁 이후 서안지구도 이스라엘 점령 아래 놓이게 되었다.
2차 인티파다 기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완전히 봉쇄했다. 이 두 지역은 이스라엘군이 발행한 특별허가증 없이는 마을간 통행도 금지되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무장 투쟁이 생길 때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을 진행했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거대한 감옥’이며, 이스라엘군의 ‘살아서 움직이는 표적’이다.
예루살렘은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의 성지이다. 1947년 유엔에서조차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에 넘겨주지 않고, 국제 개방 구역으로 남겨놓은 이유이다.
1948년 1차 중동 전쟁 이후 예루살렘의 88%에 해당하는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12%에 해당하는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이 관할했다. 1967년 3차 중동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점령했다.
▲ 현재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점령지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이스라엘 정착촌(파란색 세모 표시)이 건설되고 있다.
1967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 점령하자 유엔안보리는 세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철수를 촉구하는 결의안(242호 결의안)을 채택했으나 이스라엘은 그 결의안을 따르지 않고 있고, 결의안 채택에 찬성했던 미국은 결의안을 이행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군사·경제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귀환권과 이스라엘 정착촌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그리고 동예루살렘은 1948년 건국 당시 이스라엘 땅이 아니었으나, 중동 전쟁이 계속되면서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곳의 다수를 차지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쫓겨나서 난민이 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왔고, 정착촌을 건설했다. 이렇게 팔레스타인 거주지는 점차 줄어들었고, 이스라엘 정착촌은 점점 늘어났다.
전쟁으로 거주지를 벗어났던 사람이 전쟁 종료 후 다시 돌아가는 것은 국제법이 정한 권리이다. 이를 ‘귀환권’이라고 한다. 1948년 12월 11일 유엔 총회 역시 194호 결의안을 채택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이웃들과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은 허용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들의 귀환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정착촌을 건설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돌아올 터전을 없앴다. 이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등에 임시 거처인 캠프를 설치하여 고난하고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귀환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목적은 분명하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완전히 내몰고, 팔레스타인 지역에 ‘순수한’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려는 것이다.
▲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 대문에 적힌 “Gas the Arabs!”(아랍인들을 질식사시키자!)라는 페인트 문구를 빈번하게 볼 수 있다. JDL은 이스라엘 극우 단체이다.
그렇다면 오슬로 협상 이후 ‘정직한’ 중재자를 자처한 미국은 어떤 입장인가. 1991년 미국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정착촌 활동을 반대해 왔으며, 앞으로도 반대할 것이라는 확약 서한을 PLO에 보냈다. 이 확약 서한을 받은 후 PLO는 미국이 중재하는 평화 협상에 임했고, 그 결과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었다. 1999년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역시 “이스라엘의 정착촌 활동은 평화 구축에 파괴적인 요인”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평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이스라엘의 정착촌은 몇 배로 증가했고, 미국의 원조금은 정착촌 건설에 사용되었다. 겉으로는 이스라엘 정착촌을 반대한다면서, 속으로는 정착촌 확대를 지원했다.
중동지역을 담당하는 미국무부 차관인 로버트 펠트로(Robert Pelletreau)의 의회 진술(1994년 10월)은 미국의 속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오슬로 협정 이후 정착촌 확대는 더 이상 평화의 장애물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정착촌 확대가 오슬로 협정에 모순되지 않는다는 발언이다. 미국의 중재는 펠트로의 입장에 기반해 진행되었다. 미국은 ‘정직한’ 중재자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은밀한 지원자’였을 뿐이다.
그 결과 2000년 무렵, 이스라엘의 정착촌은 200곳이 되었고, 20만 명의 이스라엘 정착민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거주한다. 7년의 평화 협상 기간 이스라엘은 정착촌 확대를 위해 27만 4천 핵타아르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땅을 몰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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