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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화물연대,총파업 결의후 경찰과 격렬 충돌

"박종태를 살려내라", "박종태를 살려내라"

▲ 시위대가 경찰이 거리행진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벽으로 사용한 경찰버스에 '박종태를 살려내라' 글씨를 새겼다. ⓒ 심규상 오마이뉴스

 

밥먹는 식당 덮치고, 귀향버스 올라 잡아가 / 경찰, 대대적 검거... 연행자 400여명 넘을듯
[현장 4신·마지막 - 대전] 화물연대, 총파업 결의후 경찰과 격렬 충돌
09.05.16 19:52 ㅣ최종 업데이트 09.05.17 00:37  심규상 (djsim)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33560&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NEW_GB=...

 

 

(대전=연합뉴스) 김준호 기자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대전에서 이렇게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16일 오후 민노총 조합원 1만여명이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인 고 박종태 씨를 애도하며 시위를 벌인 대전시 대덕구 동부경찰서 인근 도로 는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이날 충돌은 민노총 조합원들이 당초 신고내용과 달리 중앙병원에서 약 1.7㎞ 떨어진 대한통운까지 계속 행진을 하려 하면서 빚어졌다.

 

시위대 사이에서는 돌이 난무했고, 이를 방패로 막던 경찰도 물대포와 경찰봉으로 응수하며 1시간여 동안 시가전을 벌였다. 만장(輓章)을 들고 행진하던 시위대는 박 씨를 애도하는 내용이 쓰인 검은색 천을 떼어내고 시위도구로 활용했다. 만장깃대 가운데 일부는 '죽창'처럼 끝이 날카로워 행진을 저지하는 경찰에게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일부 시위대는 한번에 5-6개의 만장깃대를 시위대 후방에서 공수해 온 뒤 대나무 끝이 경찰의 진압방패에 막혀 부러지거나 갈라지면, 곧바로 새것으로 교체해주기도 했다.

 

경찰은 경찰버스를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친 뒤 물대포를 쏘며 행진을 막아보려 했지만 1만여명의 시위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과정에서 인천에서 지원 온 한 경찰관이 시위대 차량에 치여 중상을 입는 등 돌이나 경찰봉에 맞아 부상한 시위대와 경찰 수십명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대한통운까지 시위대가 휩쓸고 간 1.7㎞ 구간에는 전의경 버스와 지휘차량 등 경찰 차량 30여 대가 유리창과 철망, 문짝이 부서진 채 나뒹굴며 마치 폭격을 맞은 듯 했다. 시위대는 경찰이 자신들의 행진을 저지한 데 대한 분을 풀려는 듯 눈에 보이는 경찰 차량마다 돌 등을 던지며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대한통운 앞에서 별다른 충돌없이 집회를 마친 시위대가 해산하는 순간 경찰은 검거조를 전격 투입해 시위를 주도한 민주노총 간부 등 80여명을 연행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주민들 사이에서는 시위대를 격려하거나 비난하는 등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한 주민은 "현 정권 아래서 오죽 먹고 살기가 어려웠으면 저렇게 격렬한 시위를 벌이겠느냐"며 "교통정체도 있었고, 소음도 있었지만 시위대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주민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경찰서에 진입하려 하는 등의 행위는 이해가 안된다"며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여야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kjunho@yna.co.kr (끝))

 

 

"참고 또 참았다…이제 더는 못 참겠다"  

故박종태 사망 보름…화물연대 '총파업' vs 경찰 500명 연행
기사입력 2009-05-17 오후 2:34:02 /여정민 기자(대전)

 

▲ 박 씨가 숨진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까지 행진을 하겠다는 노동자들에게 경찰은 물대포를 쏘아댔고, 노동자들은 결국 만장으로 만들었던 대나무를 경찰을 향해 겨누었다. ⓒ프레시안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참았는데, 이제는 평화적으로 못 합니다."

16일 오후 대한통운 택배 기사들과 함께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박종태 씨의 영안실이 있는 대전중앙병원 앞에서 한 화물연대 조합원이 "아저씨들, 평화적으로 해야지 폭력을 쓰면 어떻게 해요?"라는 한 시민의 말에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의 눈앞에는 1만5000여 명의 노동자와 110개 중대 1만 여 명의 경찰이 대치하고 있었다. 박 씨가 숨진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까지 행진을 하겠다는 노동자들에게 경찰은 물대포를 쏘아댔고, 노동자들은 결국 만장으로 만들었던 대나무를 경찰을 향해 겨누었다.

 

"아니 그래도 비도 오는데, 다칠까봐 그러지"라고 걱정하는 시민을 향해 그 화물연대 조합원은 참아 왔던 말들을 쏟아냈다.

"사람이 죽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저 인간들은 꼼짝을 안 하잖아요. 대한통운 앞까지 행진하겠다는데 그것도 못하게 하지 않습니까. 평화적으로 하면 우리만 자꾸 잡아가고 우리 말은 들어주지도 않는데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고 박종태 씨의 죽음으로 촉발된 노동계의 투쟁이 격화되고 있다. 화물연대는 이날 조합원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총파업을 통과시켰고, 민주노총은 다시 "이 투쟁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5.18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은 대한통운 대전지사 부근까지 행진을 했고, 뒤로 물러서던 경찰은 해가 진 뒤 해산하는 참가자들을 뒤쫓아 500명 가까이 무차별 연행했다. 돌아가려고 버스에 올라탄 참가자들까지 일일이 버스에서 끌어내렸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집회 참가 차량을 세워 연행해갔다.

노동계가 박 씨의 죽음에 대해 대응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매년 전라도 광주에서 열던 '5·18 정신계승 노동자대회'가 올해는 박 씨의 죽음을 불러온 대전에서 열렸다. 화물연대는 이날 같은 장소에서 조합원 총회를 열고 총파업을 결의했다. 돌입 시기는 지도부에 위임하기로 했다. 김달식 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장은 "정부가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지 않는 한 고속도로 봉쇄를 비롯해 상경 투쟁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우겠다"며 "파업 돌입 시기는 정부와 대한통운 측의 대화의지를 본 뒤 다음주 중으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화물연대는 이번 총파업이 대한통운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대한 투쟁임을 강조했다. 화물연대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뒤에는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 정책이 있다"며 "경제 위기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이명박에 맞서 모든 조직과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이번 총파업이 노동계 전체로 확산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김달식 본부장은 무대 위에 올라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지난 2006년 포항에서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은 하중근 씨와 한미 FTA를 반대하며 스스로 산화한 허세욱 씨를 언급하며 "화물연대의 힘만으로 싸우도록 그냥 두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김 본부장은 "철도, 택시, 항공 등 운수노조 산하의 모든 운수 노동자들도 총파업을 결의해 달라"며 "민주노총도 총파업을 결의해달라"고 요구했다. (...)

 


▲ 노동계는 시민·사회 단체들과도 함께 박 씨의 죽음을 정부에 대한 투쟁의 도화선으로 삼겠다는 계획이어서 충돌은 상당 기간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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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북유럽 사민주의 (링크)

[화제의 책]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안네마리에 린드그랜·잉바르 카를손 지음, 윤도현 옮김, 논형 펴냄, 2009-04-10, 196쪽, 13,000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15113437&section=03
"복지는 약자만을 위한 것?" / 성현석 기자 (기사입력 2009-05-16 오후 2:30:37)

"좌우로 비틀거려도 앞으로 나간다"…자유, 평등, 연대, 민주주의
사민주의자에게 자유란?
"시장 근본주의는 자유의 적"
"50년대 해법이 90년대에도 통할 수는 없다"
'지는 해'가 된 신자유주의, 한국이 택한 길의 끝에는?

대충 이런 중간 제목들을 단 아주 아주 긴 서평(책소개) 이다. 내가 사민주의에 각별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일 처지는 아니지만, 한 번 보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혹은 두루 잃혀도 좋을) 글로 보여지고, 다 옮기기에는 너무 길어서 링크만 걸어 둔다. 더불어 기사의 말미에 딸린, 또한 엄청 많은(대단한 프레시안!) '관련기사'도 친절하게도 모두 링크가 걸려있는데, 그 목록만 참고삼아 가져온다.

 

[저자-역자 소개(알라딘)]

안네마리에 린드그렌 (Anne-Marie Christina Lindgren) - 1943년 7월 17일생.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저술가. 이 책이 쓰여 질 당시 사회민주주의 운동진영 내의 논쟁을 주로 다루는 저명 잡지 "Tiden"의 편집장 그리고 사회민주당 당 강령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70년대부터 80, 90년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잉바르 카를손 (Gosta Ingvar Carlsson) - 1934년 11월 9일생. 스웨덴 정치가. 1965년 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돌아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 스웨덴 사회민주당 청년 동맹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후 교육부 장관(1969~1973), 주택부 장관(1973~1976), 부수상(1982~1986)을 거쳐 스웨덴 수상(1986~1991, 1994~1996), 사회민주주의당 당수(1986~1996)를 지냈다.

윤도현 -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한림대학교, 서울대학교, 동국대학교 강사와 국회 정책연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한국 사회민주주의 선언>, <계급이여 안녕?> 등이 있다.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 관련 기사 모음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 연재를 시작하며: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 첫 번째 키워드 : 협동

☞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上)
☞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中)
☞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下)

- 두 번째 키워드 : 코뮌

☞ "가족 없이 늙어도, 당당하다" (上)
☞ "'착한 정부'는 '코뮌'에서 나온다" (中)
☞ "'인민의 집', 그들만의 천국?" (下)

- 세 번째 키워드 : 생태

☞ "산적이 100년 동안 다스리는 마을에서는…" (上)
☞ 'MB식 녹색성장'이 불안한 이유 (中)
☞ '친환경 기술'로 녹색성장?…"글쎄요" (下)

- 네 번째 키워드 : 민감

☞ "'강철신경'은 자랑이 아니다"


 ○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 북유럽 교육

☞<1> "당신은 펜을 들고, 친구는 카메라를 든 것처럼"
☞<2> "경쟁과 협력…누가 더 많이 웃고 살까"
☞<3> "한국 부모들, 심리학을 공부하세요"
☞<4> 백년대계를 바꾸는 열 가지 차이는?
☞<5> "지구 반대편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 핀란드 교육 탐방

☞ "세금 많아서 자랑스럽다"…"튼튼한 복지는 좋은 교육의 조건"
☞ "협동ㆍ배려ㆍ여유 vs 경쟁ㆍ욕심ㆍ긴장"
☞ "부모 잘 만나야 우등생 되는 사회…벗어나려면"
☞ "멀리 봐야 희망을 찾는다"

 

○ 핀란드 교육 관련 인터뷰

☞ 국제학력평가 1위, 핀란드의 비결은?
☞ "경쟁? 100m 달리기 할 때만 들어본 단어입니다"
☞ "일제고사, 교사 해직…한국은 놀랄 일 투성이"
☞ "교원노조는 좋은 교육 위한 동반자"
☞ "관리자는 '윗사람'이 아니다"
☞ "'피드백'이 교육을 살린다"
☞ "차별, 더 강력한 차별이 필요하다"

 

○ 핀란드 학교 탐방

☞ 꼴찌 없는 교실, 이유는?
☞ "자율 선택 강조하는 평등교육"
☞ "직업교육이 더 자랑스럽다"
☞ "혼자서 잘 해내는 아이를 키운다"
☞ "수업시간에 잠자는 아이를 보기 어려운 이유"
☞ "관료주의 깨야 공교육 산다"

 

○ 도종환 시인이 본 핀란드 교육

☞ 핀란드의 아이들
☞ 악덕의 씨를 심는 교육

 

○ 스웨덴 학교 이야기

☞ "일등을 포기한 학교에서, 더 많이 배웠다"
☞ "외운 것은 가장 낮은 수준의 지식일 뿐"
☞ 청소부에게 야단맞는 대학 교수
☞ 사민주의 사회에서 이뤄지는 경쟁 실험

 

○ 잘 사는 나라가 져야 할 책임

☞ "'아이에게 살충제 먹이는 회사'엔 투자할 수 없다"
☞ 당당하게 '퍼주자', 스웨덴처럼

 

○ 스웨덴 우파의 도전

☞ 스웨덴 우파 집권, 그 이후…
☞ 스웨덴에 특목고가 생긴다?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 "노는 게 공부다"
☞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 "덜 소비하는 풍요"

☞ "에너지 덜 쓰니, 삶의 질은 더 높아져"
☞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공동체 생활"
☞ '빚과 쓰레기'로부터의 자유
☞ "장관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 "우리는 언제 '덴마크의 1979년'에 도달하려나"

 

- "낡고 초라한 아름다움"

☞ "수도 한 복판에 있는 300년 전 해군 병영"
☞ 인기 높은 헌 집
☞ "코펜하겐에 가면, 감자줄 주택에 들르세요"
☞ 도서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 덴마크 사회의 그림자

☞ "덴마크는 천국이 아니다"
☞ "덴마크 사회의 '관용'은 유럽인을 위한 것?"

 

○ 입양대국 북유럽, 그리고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들
☞ "스웨덴에서 자란 입양인이 왜 한국을 그리워하죠?"
☞ "중국에 공녀, 일본에 위안부, 그리고 우리"
☞ 해외입양은 아동복지인가, 아동학대인가?
☞ "한국은 여전히 '미개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 해외입양 16만명 중 10만명이 미국으로, 왜?
☞ 한국, 경제대국? 세계 1위 '아동수출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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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파키스탄 <-> 탈리반

미국의 압력에 의해서, 파키스탄 북부의 알카이다-탈리반을 향한 파키스탄 군의 공격이 지난 4월 26일 이래로 격화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도에서 파키스탄 북부의 빨간색에 빗금친 곳이 탈리반 점령구이고 그 곳에 공격이 행해진다는데, 문제는 엄청나게 늘어나는 전쟁 피난객들(기사에 의하면 13일 현재 36만명에 이른다 함)을 수용하고 보호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지도의 파란텐트 표시가 피난민 수용소, 빨간텐트는 새로 만든 수용소), 유엔도 그 점을 걱정하고 있다는 등의 르몽드 기사들을 링크 걸어 둔다.

 

Les zones sous influence talibane au Pakistan

Infographie Les régions sous influence talibane au Paki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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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 Pakistan, le consensus sur l'offensive contre les talibans s'effrite
LEMONDE.FR | 13.05.09 | 17h24  •  Mis à jour le 13.05.09 | 17h39   
Soldats de l'armée pakistanaise dans la vallée de Swat, le 8 mai.
AP/Mohammad Sajjad /Soldats de l'armée pakistanaise dans la vallée de Swat, le 8 mai.
 
Les combats entre les militaires pakistanais et les talibans se sont poursuivis, mercredi 13 mai, dans le nord-ouest du pays. L'armée a fait savoir que son aviation a bombardé des positions des islamistes dans la vallée de Peochar, au nord-ouest de la vallée de Swat, où des commandos héliportés avaient déjà été envoyés la veille. Envoyé spécial du Monde au Pakistan, Jacques Follorou détaille, depuis Islamabad, la stratégie militaire pakistanaise, tout en soulignant que "la situation est confuse", car il est "difficile de vérifier les avancées revendiquées par l'armée pakistanaise" : [특파원 목소리]

Engagée depuis le 26 avril, l'offensive miliaire pakistanaise a été déclenchée sous la pression des Etats-Unis, qui évoquaient une "abdication" des autorités d'Islamabad devant les talibans. Mobilisant quelque 15 000 militaires contre environ 5 000 islamistes, elle a fait l'objet, les premiers jours, d'un relatif consensus dans la société pakistanaise. Mais celui-ci a tendance à s'effriter désormais, relève Jacques Follorou : [특파원..]

Le président pakistanais, Asif Ali Zardari, a demandé, mardi 12 mai à l'ONU, l'aide internationale pour les civils déplacés par les combats. Selon le HCR, plus d'un demi-million de personnes ont fui de la vallée de Swat et de sa région située à une centaine de kilomètres d'Islamabad. Un précédent bilan, il y a deux jours, faisait état de 360 000 personnes enregistrées dans divers camps de la Province de la Frontière du Nord-Ouest. Jacques Follorou décrit ce qu'il y a vu : [특파원..]

Le Mond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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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uis plusieurs mois, les tirs de missiles américains ciblant des cadres d'Al-Qaida et des talibans dans les zones tribales pakistanaises sont devenus fréquents. Islamabad proteste toujours publiquement, en vain, et Washington ne les dément jamais. 
AP/Master Sgt. Steve Horton /Depuis plusieurs mois, les tirs de missiles américains ciblant des cadres d'Al-Qaida et des talibans dans les zones tribales pakistanaises sont devenus fréquents. Islamabad proteste toujours publiquement, en vain, et Washington ne les dément jamais.
[파키스탄에서 알카이다와 탈리반을 겨냥하는 미국 미사일 발사 기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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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반대]사회보장은 성장의 동력(결과만이 아니라)

오래 살려는 욕망은 고사하고, 웬만하면 아프지나 말고 큰 병이나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없는 자들의 소박한 소망이리라. 다른 건 다 치우고 국민건강보험 문제만 놓고 볼 때, 무능이 어쩌고 부패가 어쩌고 싸가지가 있든 없든 그나마 민주정부 10년 덕에 이제는 가족 중에 누가 큰 병이 걸려도 집안 모조리 말아먹는 일은 없게 된 것이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잘은 모르겠지만, 아래에 옮기는 글에 의하면 암 질환의 경우 현재 75%까지 보험이 적용된다니 훌륭한 진전으로 보여진다. 어설픈 국가에서 다른 세계와 견줄 때 유일하게 잘 한 것 중의 하나가 그나마 건강보험의 일반화였고 그것이 민주정부 10년에 걸쳐 더 확대되어 쪼끔은 자랑거리이기도 하겠는데, 그놈의 실용과 효율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강부자 정권의 역주행이 '의료 민영화'의 길을 차곡차곡 밟고있다니 눈을 크게 뜨고 힘을 모아 경계하고 대항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마침 오늘자 르몽드 사설에서도 의료보험 문제를 다뤘기에 옮겨온다. "중국의 의료보험" 이라는 제목을 단 사설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엄청난 만년 의료보험 적자로 인해 시스템을 약간 손볼려고 사르코지 정권이 시도하는 반면, 멀리 중국에서는 초대대적인(gigantesque) 의료개혁을 착수 중에 있으며 2011년까지 전국민 90%까지 의료보험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중국의 이런 계획이 갖는 다음과 같은 논리에 있다고 한다 :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작금의 세계경제위기 국면에서 중국경제의 수출종속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내수를 살려야 한다는 것; 그런데 현재 중국인들은 언제 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소비보다는 저축에 더 집중한다는 것; 이 흐름을 돌려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해 중국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 바로 전국민 의료보험 정책이라고 한다.

 

이런 논리가 경제위기타개책으로 나오는 마당에, 사르코지는 오히려 사회보장을 축소하려고 작당하니 참으로 안타깝다는 것. 어쩌면 닮아도 꼭 그렇게도 나쁜 점만 닮아서, 우리의 지도자께서는 사르코지가 부시 똘마니로 나설 때 질새라 달려가 부시에게 안기더니, 이런 정책에서도 똑같이 동무애를 발휘하는지... 그래도 그들에게는 사르코지를 견제할 강력한 야당이라도 있지만, 우리는 뭐 그놈이 그놈 비슷하고 안 비슷한 놈들은 지들끼리 싸우고 난리니, 심히 걱정이다. 하여튼 사설의 결론이 인상깊다 : 광범한(관대한) 사회보장제도는 지속적인 성장의 결과만은 아니고, 성장을 위한 동력이고 근원이기도 하다.

 

[Edito du Monde]  Sécu chinoise

C'est le monde à l'envers. Ou cela y ressemble. A Paris, le Sénat va commencer, mardi 12 mai, l'examen du projet de loi "Hôpital, patients, santé, territoire", qui vise notamment à rationaliser davantage la gestion du système hospitalier français. Les syndicats des personnels concernés contestent vigoureusement ce texte dont la philosophie consiste, dénoncent-ils, à obtenir une participation croissante des patients au financement du fameux "trou de la Sécu".

Cette controverse devrait intéresser le professeur Deng Dasong, spécialiste chinois des questions de sécurité sociale, qui séjourne en France cette semaine. Car la Chine s'engage dans une gigantesque réforme de son système de santé. Elle entend améliorer la couverture du risque maladie pour 90 % des Chinois d'ici à 2011 et de la généraliser d'ici à 2020.

Cela passe par la création ou la rénovation, sur tout le territoire, de dizaines de milliers de dispensaires et d'hôpitaux. Cela suppose la fixation publique du prix de trois cents médicaments, aujourd'hui en vente "libre" dans les hôpitaux. Enfin, la rémunération des personnels de santé, particulièrement mal payés, sera fortement augmentée pour favoriser leur qualification et limiter la corruption. Le premier volet de ce plan coûtera 93 milliards d'euros d'ici à 2011.

Le calcul de Pékin est simple : pour rendre l'économie nationale moins dépendante d'exportations en chute libre en raison de la crise qui sévit en Occident, les Chinois doivent consommer plus. Ils doivent donc cesser d'épargner comme ils le font actuellement pour pouvoir s'offrir, en cas de malheur, soins et médicaments. Pour y parvenir, la Chine a tout bonnement choisi la voie d'une assurance-maladie universelle publique, financée par les cotisations obligatoires prélevées sur les salaires. Comme notre bonne vieille "Sécu" !

De son côté, Barack Obama a donné la priorité, dans le budget adopté par le Congrès américain le 29 avril, à la remise sur pied d'une couverture maladie qui, mise en pièces par l'évolution de l'économie et la précarité de l'emploi, laisse de côté des dizaines de millions d'Américains et bride, là encore, la consommation et la croissance. En Chine comme aux Etats-Unis, il s'agit de réparer les dégâts du sous-financement d'un secteur-clef de la société comme de l'économie.

Au moment où la France adapte son système, ces réformes venues d'ailleurs nous le rappellent : une sécurité sociale généreuse n'est pas seulement une conséquence de la croissance durable, elle en est aussi à l'origine.

Article paru dans l'édition du 12.05.09.

 

▲ 이명박 정부는 의료 민영화의 길로 기어이 가는가? 건전한 보수 세력을 자처하는 범여권 정치인은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의료 민영화에 제동을 걸고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나서야 한다. ⓒ프레시안

 

 

"국민건강보험 암살 음모의 진상을 밝힌다"
[복지국가SOCIETY] 국민건강보험의 정치경제학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9-05-12 오전 7: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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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였을 때 많은 국민들, 특히 서민들은 그들의 삶이 한결 나아지길 바라며 희망 섞인 기대를 표시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라는 성장주의 패러다임이 노무현 정부의 국정 목표로 제시되었다.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은 예리하게 그 본질을 지적하며 비판을 쏟아냈으나, 지지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으되 좀 더 지켜보는 쪽을 선택하였다. 그런데 이후로 들려오는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삼성'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이 노무현 정부의 대세를 장악한 것이었고, 이후 대통령마저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연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무렵 필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수장인 이사장의 직위에 있었다. 오래 전부터 시민사회 주도의 의료보험 통합 운동을 지지해왔고, 김대중 정부 당시 보건복지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2000년에 출범한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근거 법률인 '국민건강보험법'을 제정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으로서, 필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직에 있는 동안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을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는 나름의 '대단한(?)'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들려온 청와대 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논리가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똥이 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곧바로 청와대 주도의 '의료 산업화'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었는데, 그 핵심은 인천 등의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보건복지부의 수장은 김화중 장관에서 김근태 장관으로 바뀌고 있었는데, 보건복지부는 청와대와 경제부처의 강력한 의료 산업화 추진 의지에 밀려 '공공의료 투자 확대를 전제로 한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이라는 절충과 타협에 동의하였다.

그 전에 필자는 정부의 의료 산업화 추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조병희 교수팀에게 연구용역을 발주하여 의료 산업화 관련 연구를 수행토록 하였는데, 연구의 주된 결과는 "노무현 정부의 의료 산업화는 우리나라 국민 의료의 구조적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근거로 필자는 시민사회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정부의 의료 민영화 추진에 나름대로 저항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이후 법률적으로 의료 민영화가 본격 추진되는 일만 남게 되었다. 2004년 연말,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한 '경제특구법 개정안'이 여당의 친노파 주도로 한나라당의 열광적 지지 속에 연말 국회를 통과하였다.

노무현 정부의 의료 산업화 추진에 따라 민간의료보험은 시장에서 그 세력을 빠른 속도로 넓혀가고 있었다. 텔레비전과 신문은 민간의료보험 광고로 넘쳐났다. 이로 인해 머지않은 장래에 국민건강보험의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민간의료보험의 확산을 저지하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총력 대응체제로 꾸려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공단 본부 내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민간의료보험 대응 기획팀을 새로 만들고 관련 연구와 홍보 기능을 대폭 강화하였다.

국민건강보험을 위협하는 민간의료보험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이들 보험회사의 주력 상품이던 암 보험을 표적으로 삼을 필요가 있었다. 당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은 관계로 국민들이 중증 암에 걸리면 지나치게 높은 본인 부담 진료비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당시는 민생의 의료 불안이 지금보다 더 심각했던 시기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그 당시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장하던 '암부터 무상의료' 슬로건을 적극 수용하기로 결정하고, 이들과 실무적으로 연대하면서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나섰다. 이 일을 하는 데는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건강보험료를 크게 인상해야 했다.

건강보험 재정의 획기적 확충이 절실하였으므로 필자는 당시 김근태 장관을 설득하였다. 그래서 필자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있던 3년 동안 건강보험료는 연평균 거의 10%씩 인상되었다. 덕택에 당시 적자였던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흑자로 돌아섰고, 이렇게 확보된 재정으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충에 나섰다.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하고, 특히 암 환자의 본인 부담 진료비를 대폭 낮추고, 항암제 등의 고가 진료 항목에 대한 보험급여를 인정함으로써 암 환자의 실질 의료비 부담을 크게 낮추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00년 당시 50%에 불과하였던 국민건강보험의 의료비 보장성 수준은 필자의 임기가 끝난 직후인 2006년 연말 기준으로 63% 수준까지 높아졌다. 특히, 암 질환의 보장성 수준은 75%까지 높아졌다. 당연히 민간보험회사가 주력 상품으로 판매하던 암 보험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건강보험의 상황이 본질적으로 호전된 것은 아니었다. 민간보험회사들은 기존의 암보험 중심의 '정액' 의료보험상품보다는 '실손' 의료보험상품의 개발과 판매에 주력하기로 방침을 정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원래 '실손' 의료보험상품은 손해보험회사들(삼성화재, 동부화재 등)만 판매할 수 있었으나, 2005년 보험업법의 개정으로 이들 실손 의료보험상품을 생명보험회사들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기실 국민건강보험의 주적은 이들 '실손' 의료보험상품이다. 기능이 국민건강보험과 동일하여 사실상 경쟁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국민들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때 평균적으로 발생하는 의료비의 약 60%는 국민건강보험이 보상해주고, 나머지 40%는 환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데, 만약 이 환자가 '실손' 민간보험에 가입하였다면 환자 부담 의료비 전액을 보험회사가 부담하는 것이다. 대신에 환자는 값비싸고 비효율적인 '실손' 민간보험에 매달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이 부족하여 공적으로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는 고가의 비급여 진료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진료를 실손 의료보험상품은 전부 보장해주고 있다. 이는 비효율과 낭비라는 큰 문제도 있겠으나,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국민건강보험은 재정적으로 더욱 위축되고 실손 의료보험은 의료비 조달 시장을 거의 장악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장차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에 의존하는 일반서민과 고가의 실손 민간보험에 가입한 중상층 이상의 국민들로 나누어질 것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현저히 다름은 물론이다. 한 나라에 두 개의 국민과 두 개의 의료제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양극화된 의료제도의 모습을 선진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미국에서 보고 있다.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심각한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실손' 의료보험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의료에 대한 국민 불안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인데, 이렇게 중산층과 서민들이 값비싼 '실손'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이들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줄이는 것으로 서민경제의 발전에 매우 불리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들 민간의료보험 가입자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여전히 낮아 중산층과 서민의 의료 불안이 상당히 큼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불행한 일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2009년도 건강보험료가 동결되었다. 이는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다. 국민의료비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므로 장차 전체 의료비 중에서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하는 의료비의 비중이 줄어들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에 반비례해서 '실손' 민간의료보험의 시장 영역은 커진다. '실손' 민간의료보험이 고급 진료를 중심으로 의료비 조달 시장을 넓게 장악할수록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더욱 위축되고 고가의 의료서비스를 보험 급여할 여력은 더욱 줄어든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동안 시민·사회단체들과 양심적 전문가들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 노력은 효과적으로 저지되고 있다. 이제 국민건강보험은 시련에 처했고, '실손' 민간의료보험 회사들은 큰돈을 벌 계기를 잡고 있다. 이는 사회정의의 원리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과 보건의료노조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유럽 선진국 수준으로 나아가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또, 민주노총은 사회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미에서 사회연대노총을 자청하였고, 한국노총도 조합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국민건강보험의 획기적 보장성 확대에 동의하였단다.

건강보험료를 인상하여야 하고, 이들 양대 노총 조합원의 대다수를 이루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건강보험료를 지금보다 더 내야한다. 하지만 이로 인한 열매는 참으로 단 것이다. 저임금의 정규직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 등의 취약계층은 건강보험료를 조금만 더 내게 될 것이나, 고소득자는 엄청나게 많은 액수를 더 내게 되고, 여타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임금에 비례해서 적정 수준에서 건강보험료 더 부담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확충된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우리 국민 모두의 의료비로 사용될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 가계, 여타 서민과 중산층의 민생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의료 불안은 없어지고, '실손' 민간의료보험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값비싼 민간의료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므로 서민가계와 민생경제에는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이는 국민 모두가 이기는 정의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들어선 이후 의료 민영화를 더욱 밀어붙이더니, 이제 보건복지가족부까지 나서 의료 민영화의 길로 가려한다. 비영리법인의 의료채권 발행 허용, 의료경영회사(MSO) 설립 허용, 병원 간 합병 허용,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영리병원 유치를 위한 유인책 허용 등을 통해 사실상 의료 민영화의 길로 접어들려는 것이다.

이제 머지않아 내국인 주식회사 병원도 가시화될 것이다. 이러한 의료공급 측면의 시장화 조치는 '실손'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면서도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 국민건강보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대로 가면, 결과는 자명해 보인다.

세계에서 사회의료보험제도를 최초로 제도화한 사람은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다. 그는 철저한 보수주의자다. 영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에서 걸출한 보수주의자들이 국가 복지를 확충하고 제도화하는 데 앞장섰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과 그 주변에 몰려있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시장만능주의 정책, 특히 의료와 교육 등 보편적 사회정책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장만능주의의 만행을 저지하고 국민건강보험을 획기적으로 강화해나갈 진정한 보수 세력은 범여권에 존재하지 않는가?

건전 보수 세력을 자칭하는 범여권 정치인들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옳다. 그리고 시민·사회세력과 보건의료노조가 추진하고 있고, 양대 노총이 기꺼이 동의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의 획기적 확충' 운동에 동의하고 힘을 실어주는 보수 세력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건전 보수다.

이명박 정치 세력은 건전 보수가 아니라 원조 신자유주의자인 미국 부시 정권의 철저한 동지이자 표독한 시장만능주의 추진 세력일 뿐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민주당 내부에도 이명박 정치 세력과 이념이 비슷한 신자유주의 주구들이 더러 있다. 민주당은 이들을 극복하고 시민사회가 추진하고자 하는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의 획기적 확충' 운동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이 옳다. 이것은 과거 친노파가 저지른 '의료 산업화' 악행을 속죄하는 길이기도 하다.

오늘 이 순간에도 많은 국민들이 의료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값비싸고 낭비적인 '실손'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고, 국민건강보험은 시시각각 위축되고 있다. 이명박 정치 세력의 신자유주의 의료민영화 정책은 우리를 향해 해일처럼 거세게 몰려오고 있다. 자본이 국가 복지제도와 사회정의를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국민건강보험마저 신자유주의의 시장만능에 무너진다면,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비롯하여 복지국가를 염원하던 우리 모두의 꿈도 멀어지는 것이다. 일부 자본과 이명박 정치 세력을 제외한 모든 국민과 제 세력이 힘을 합치면,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획기적 보장성 확충은 현실이 될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힘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주의는 장차 역동적 복지국가의 든든한 밑천이 될 것이다.

 
/이성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법무법인 씨엘 대표변호사

 

cf. '영리병원', 나도 한마디(2009년 03월 15일): http://blog.jinbo.net/radix/?pid=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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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MB 동행 (이래도 되나?)

황석영씨, 이 대통령 중앙아시아 방문 동행
소설가 황석영(66)씨가 10~14일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2개국(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방문길에 동행한다. 이 대통령의 국외 나들이에 문인, 그것도 진보적 색채를 띤 인사가 함께하는 것은 처음이다. 남북한과 몽골, 중앙아시아의 문화 공동체인 ‘알타이 문화연합’을 구상해온 황씨는 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알타이 문화연합에 대해 이 대통령과 오래전부터 교감을 해왔고, 이것이 이 대통령의 ‘신아시아 외교’ 구상이나 ‘녹색성장’과도 통한다”며 “두 나라의 문화계 인사 등을 만나 알타이 문화연합 구상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말께 “외국 나갈 때마다 ‘경제 대통령’, ‘자원 외교’만 강조되는데 ‘문화 대통령’ 얘기도 듣고 싶다”며 참모들에게 황씨 동행을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황씨는 지난 5일 청와대의 연락을 받고 흔쾌히 수락했다. (...) [황준범 기자, 기사등록 : 2009-05-08 오후 10:12:22 ⓒ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53999.html)

 

이런 아주 전향적 진보(?)의 행보가, 똥물 담고 구비구비 흐르는 센느 강변에서, 아마도, 한가로이 체득한 낭만과 방탕의 결과이고, 숨막히는 자본도시의 현실에 맞서 터득한 오랜 고뇌와 천착의 결과가 아니라면, 맞다, 생각이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생각을 바꿔버린다는 태고적 진리를 거듭 확인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빠이빠이 황석영! 이하 다른 독자들의 고언도 함께 들어본다 (레디앙의 댓글들과는 질이 다르군!).

 

전체기사의견(16개 중에서 발췌 -090510, 03:00현재)

editoree (121.133.XXX.54)   2009/05/10 02:01:20  [입춘세설]
끝없는 재승덕才勝德의 향연....
손과 머리로만 쓰는 글쟁이의 한계,
문학의 정치도구화, 문화 권력의 중심 지향화....
누가 대문호라 망발하는가.
문학[예술]이 정치의 프로파간다로 전락하는 까닭은
정치의 전략이라기보다는
문학[예술] 스스로의 노예 근성의 발로다.
한 독자로서의 권리야 절독으로 표현하면 될 일이지만,
저이에게 실린 방자한 문화 권력의 위임은
누가 컨트롤할 것인가.
 
 boinda (218.149.XXX.49)   2009/05/09 17:06:47  황구라전 상서
하워드 진의 책이 팔리는 책방에서 내 책도 팔린다는 이야기를 당신 입으로 했을때 소가 웃는 모습으로 웃었습니다/기사는 전합니다/진보인사라고/모두들 신음소리 내고 있는데 저자의 목소리만 들리는가요/공공기관 수위까지 모두 교체하고 맘에 들지 않는자들 모두 잡아 들이고 입에 재갈을 물리는데 당신 귀는 어찌 저자의 소리만 들린단 말입니까/기사는 당신을 진보인사라고 합니다/황구라씨 그렇습니까?

 
nalda51 (125.191.XXX.26)   2009/05/09 13:51:58  
작가회의에서 '민족'자 빼는 것도 성공했고, 해외에 살면서 상하나 받아보자는 일념으로 오래 고생했는데 잘 안되는건가요? 그래서 콘크리트 녹색, 페인트 녹색의 악세사리 역할도 흔쾌히 응하는 건가요? 당신이 오래전 쓴 글들이 당신을 비웃겠소. 
 
tonio74 (210.117.XXX.250)   2009/05/09 12:29:56  
몇 년전 겨우 등단을 해서 문단 변두리에 머무는 무명작가지만 심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지금 황석영 같은 대문호가 힐 일은 정부의 사이비 녹색성장, 민주주의 퇴보, 남북관계 역주행과 같은 꼴통짓에 대해 비판하고 할말을 다 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소설가 황석영을 뇌리에서 지우겠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 이름깨나 있는 것들 하나같이 참 별일없이 잘들 놀고 자빠졌다~아주그냥~
 
 hannb (123.213.XXX.140)   2009/05/09 11:03:32  
당신이 뭘 할 수 있을거라 착각하지 마세요. 병신의 악세서리일 뿐입니다.
 
 f8076 (115.93.XXX.36)   2009/05/09 10:55:05  
김우중이 따라다니던 장기표짝 나지 마시고 잘 생각해서 하세요
당신은 자원입니다. 

 


 

[추가1]

 

황씨가 작년에 파리에서 완전히 철수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도대체 그곳에서 뭘보고 느꼈는지가 궁금하여 구글에 '황.. 파리'를 쳐보니 동아-중앙의 지난 인터뷰 기사가 바로 나온다. "세계정신"을 현장에서 생생히 느끼고 깨달은 바가 너무 많아서 이어는 행보가 이런 것이라니, -대가의 고뇌와 통찰을 소인이 어찌 알 수 있을까만- 내가 보기에는 4년 동안 쳐발랐을 돈이 아깝다 (아마도 이런 돈도 해외송금-유학비에 포함되어, 국내경기가 어려울 때 가난한 유학생들 죄스럽게 하는 데 한 몫을 했으려나...).

[동아일보 2006-02-09]황석영씨 “佛 장기체류 준비 위해 일시 귀국”
(...) 그는 “해외 생활을 통해 21세기를 맞은 작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정신’을 갖는 것임을 절감했다”면서 “세계정신이란 다양하면서도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를 세계 속에서 형상화하려는 의식”이라고 덧붙였다. 런던 테러 사건, 파리 폭동 사태 등 유럽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는 그는 “문제는 타지에서 온 떠돌이 이주자들의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것이 오늘날 세계의 고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황 씨는 “센 강 미라보 다리가 보이는 작은 아파트를 구했다”면서 “직접 식탁 의자까지 조립해야 하는 유럽 생활이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 [김지영 기자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02090061]

 

[중앙일보 2006.09.25]작가 황석영에게 듣는다
황석영씨는 올 2월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파리로 이사했다. 영국에서는 2004년 초부터 2년 가까이 지냈다. 따라서 유럽 생활이 거의 3년이 돼 간다. 그는 요즘 오랜만에 충전의 기회를 얻고 있다고 했다. 외국에서 생활하고 작품 활동을 하면 두 가지 좋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과 사회로부터 '거리감'을 둘 수 있고, 밖에 나와 보면 이 시대를 관통하는 '세계의 정신' 같은 일정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낯선 곳에서 타인이 되는 외로움과 자유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털어놨다. (...) "혁명이 아니라면, 개혁이란 합리적 보수의 숫자를 늘려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파리에 체류 중인 한국의 대표적 진보 성향 작가인 황석영씨는 보수와 진보가 사사건건 맞붙는 국내 현실에 대해 이 같은 처방을 내렸다. 황씨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진보적 관점에서 통렬하게 지적해온 지식인의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나온 '합리적 보수론'은 그래서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중도적인 사람이 많이 늘어나야 과거 독재시절의 상흔을 치유하고 튼실한 민주사회를 다질 수 있다"며 자신의 생각을 재차 확인해 주었다.인터뷰는 19일 오후 황씨가 사는 파리 센 강변 아파트에서 이뤄졌다. 중앙일보 창간 41주년 기념 '황석영에게 듣는다-2006년 대한민국 어디로 가나'를 위해서다. (...) [파리=박경덕 특파원 ※창간 41주년 기념 '이문열에게 듣는다'는 9월 18일자에 실렸습니다. 황석영(黃晳暎) [現]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1943년생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1000&Total_ID=2457425]

 

[추가 II (5월15일)]

 

그리고 "욕 먹을 각오가 돼 있다"는 분(혹은 놈, 혹은 xxx)의 기대에 부응하여 모든 신문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전하는데 동참한다. 그 중 흥미로운 두 가지만 골라와 본다:  1) '왜 우리의 든든한 이문열을 놔두고 좌파냄새 나는 황씨를 데려갔냐'는 복거일의 MB에 대한 서운함을 전하는 기사가 흥미롭지만, 말에 담긴 내용은 결코 예사롭지만은 않다. 왜냐면 이명박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한국 정통 보수를 배반하고 실용으로 위장한 중도로 옮겨타서는 절대 안된다는 경고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 2) 이광일이 분석한 지식인의 역사의식 결여에 대한 비판과 '이명박표 실용주의'의 실체가 갖는 함정과 허상을 다루는 기고문. 대충 발췌하고 링크만 건다.

[송호균 기자] "이문열 제치고 황석영?…배은망덕 MB" / 소설가 복거일 "우파일각에서 MB정체성 의심"
... 소설가 복거일 씨는 15일 오전 "(이명박 정부가) 한나라당 정권인 이상 중도 정권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 "(이 정부는) 분명히 우익정권"이라고 반박했다. [MB 내편 만들기?] ... 복 씨는 "좌파 정권 하에서 핍박을 받은 우익의 문인들을 대통령께서 만나고 초청을 해야 한다"면서 "대표적인 게 이문열 씨 같은 경우인데, 그를 제쳐놓고 갑자기 황석영 씨를 개인적 친분을 앞세워 데리고 가면 우파 시민들이 어떻게 보겠느냐"고 이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9-05-15 오전 11:27:36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090515111820§ion=01)

 

[이광일 기고]소설가 황석영의 천박한 '마지막 구라' / 잘 가시오, 이 시대의 모든 '올드보이들'이여!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저자로 알려진 황석영 씨가 전향을 했든 어쨌든 그 자체를 뭐라 할 이유는 없다. ... 무언가 씁쓸한 뒷맛이 남는 것은 그래도 한 시대를 가로질렀던, 이른바 '큰 이야기꾼'의 '마지막 구라'치고는 너무나 함량미달의 천박한 역사인식과 언술이었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 ... 독단과 파시즘적 실용주의 비판. 즉 정치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위협하지 않는 세력들과의 부분적 타협을 의미하는 것일 뿐,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세력들에게는 오직 배제, 억압, 차별을 주저치 않는 그런 실용주의; 관료기술적 행태. ...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9-05-15 오전 10:24:05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15101020§ion=01)

 

근데, '왜-어쩌다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저자 였던 황석영이 이렇게 됐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단지 늙어간다는 이유 때문만도, 배부른 지식인이 됐기 때문만도, 좀 난 놈이 더 나려고 하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려보는 단순한 명예욕(정권에 붙어야 노벨상 어쩌고 하는 꼼수 속의)으로도 해소될 수 없는, 그의 변절(?)과  막말들(광주사태, 민노당은 말야.., 등)에 대한 연원 혹은 동기를 추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나는 딱 두 가지만 들고싶다: '여자-가족이 좀먹어버린 지식인의 의식', 그리고 ' '이빨 빠진 좌파의 현 꼬라지'.

[2004년 5월]소설가 황석영씨 부인 5억 손배소
소설가 황석영씨 부인 김명수씨(49)는 10일 “남편과 이혼소송이 진행 중인 데도 방송작가 출신 K씨가 황씨의 부인 행세를 해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며 K씨를 상대로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김씨측은 소장에서 “K씨는 황씨의 이혼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본부인은 이혼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6년 가까이 황씨와 부부처럼 생활하면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이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2002년 9월 김명수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내 지난해 9월 서울 가정법원에서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으며,김씨측은 항소해 재판은 같은 법원 항소부에 계류 중이다. (스포츠투데이 김미현 입력시간 2004-05-10)

 

[2007년 7월] 황석영 前부인 이혼소송 변호사에 손배訴
소설가 황석영씨의 전 부인인 재미무용가 김명수(53)씨가 황씨와의 이혼 소송에서 자신의 변론을 맡았던 이모 변호사가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5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김씨는 20일 접수한 소장에서 "(2004년 황씨와의 이혼 소송 상고심과 관련) 이 변호사가 상고 기간 내에 상고 이유서를 제출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해 상고가 기각되도록 한 과실이 있다. 또 상고 기각 결정이 났음에도 2달 반 이상이나 원고에게 통지하지 않은 보고의무 위반으로 정신적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입력시간 : 2007/07/22)

 

내가 잘은 모르지만, 이런 사실로 유추해봤을 때, 환갑이 넘은 황씨(1943년생)는 자기보다 12살이나 젊은 "재미무용가"인 본부인을 버리고, 아마도 본부인보다 더 젊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방송작가 출신 K씨"와의 평화로운 밀월을 위해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영국과 프랑스로 거처를 옮겼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러한 삶의 양태(낭만이 흐르는 센느강변 옆의 아파트에에서 누렸을 방만한 삶)가 그의 사고구조를 바꿔놓았던 것으로 보여지므로, '누가 진보작가 황석영을 이렇게 만들었냐'에 대한 1차적 원인제공 인자는 바로 여자라고 나는 겁없이(!) 단정을 하고싶다. 아니, 더 정확히(그러나 좀 비겁하게) 말하자면, 여자와 가족을 위해서는(이건 황씨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리라) 진보고 나발이고 다 버릴 수 있는, 꼭 그 정도의 신념과 의지로 본의 별로 아니게 만들어졌던 '껍데기 진보'의 탈을 쓴 남자.

 

그리고, 황씨가 겁없이, 막말도 서슴치 않고, 멋대로, 진보의 역사와 진보정치세력을 깔보는 듯한 발언을 뱉아낼 수 있었던 동기(동력)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이빨 빠진 좌파의 현 꼬라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행여 지난해의 촛불이 소기의 실재적(추상적 말고) 성과를 거두는(최소한 미친소라도 막았다면) 위엄을 보였다던가, 그래서 지금의 진보라고 자처하는 야당 정치세력들과 노동단체들이 MB정권에 위협적인(최소한 유의미한) 대항세력으로 상당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과연 그래도 황씨가 이런 행보를 자신있게 선택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의 기회주의는 욕먹을 대상이라기 보다는 소위 진보진영이 무책임하게 허용하고 파생시킨 무능의 결과물은 아닐까? 그렇게 황씨의 기회주의적 선택의 이면에는 우습게 보이고, 무시될 처지에 놓인, 초라한 작금의 넓은 의미의 진보진영의 허상이 숨어있다는 말이겠다. 집나간 며느리 욕하기 전에, 지 아들만 싸고돌며 집안 전체의 안정적이고 평화적 운영에는 아랑곳없이 질투와 시기와 험담으로 무장한 성질 고약한 시어머니를 나무랄 수 있는 시아버지가 지금은 필요한 시점이려나... [최소한 좌파진영(광범한 진보 말고) 내에서만이라도 고약한 시어머니의 기질은 이제 좀 버리고, 좌파적 권위와 위엄을 하루속히 회복하길 기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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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종태 열사 투쟁 승리 결의대회 (09/05/09,대전)

고 박종태 열사 미망인 하수진씨가 고인에게 붙이는 편지

 
  
▲ 고 박종태 열사 미망인 하수진 씨가 고인에게 붙이는 편지 9일 오후 대전 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 앞에서 열린 '박종태 열사 투쟁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고 박종태 열사 미망인 하수진 씨가 고인에게 붙이는 편지를 낭독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박종태

 

 

여보! 오랜만에 불러보네. 나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나. 당신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병원에 걸린 사진 속에서 당신이 튀어 나올 것만 같고, 다른 화물연대 조합원들처럼 바쁜 듯이 걸어 들어올 것만 같고, 큰 아이 말처럼 당신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것만 같아.

 

아이들에겐 사람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게 된다, 다만 언제 죽게 될지 모를 뿐인데, 아빠가 조금 빨리 가신 것 같다고 말했으면서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받아들여지지가 않네.

 

체포영장이 떨어진 날, 입을 옷가지들을 챙겨서 보냈는데, 속옷이 마음에 걸려서 싸구려가 아닌 좀 좋은 것으로 줄려고 사다 놓은 속옷이 아직 서랍장에 그대로 있을 텐데...

 

여보 생각나? 작년 12월 마지막 날 눈이 너무도 이쁘게 와서 정말 모처럼 만에 팔짱도 끼고 손도 잡고 걸으면서 '나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지?'하고 했던 말, 나 그때 그냥 웃기만 했는데 말해 줄걸 그랬어. '그래 당신 괜찮은 사람이다'.

 

당신이 사랑했던 동지들도,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지금 보게 되면서 늦었지만 알게 돼. 당신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여보. 아직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지만, 걱정하지마. 나 아직 잘 견디고 있고, 당신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당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세상을 이루기 위해 작은 힘이지만 보태려고 노력하고 있어.

 

당신이 정말 마음 놓고 웃으며 편안한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간직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당신이 가는 마지막 길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당신의 선택이 헛되지 않도록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살아갈게.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한 가정의 가장을 궁지로 몰아서 죽인 놈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밥줄을 끊겠다'는 둥, '질서를 지키라'는 둥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인간입니까? 사람을 죽여 놓고 협상은커녕 사죄도 그 어떤 것도 하고 있지 않는 대한통운과 금호는 누구를 위해서 아름다운 기업입니까? 고인은 아직 깜깜한 어둠속에서 차디찬 얼음장 속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편이 사랑했던 대한통운 택배 조합원 여러분, 그리고 화물연대 조합원 여러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지 마십시오, 죄인은 여러분들이 아니라 저 뒤에 숨어있는 자들입니다. 더 이상 슬러하는 대신에 일어나서 싸워주십시오. 고인의 유언대로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대접 받을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싸움을 이어가야 합니다. 남아있는 저희 가족이 살 수 있는 것도 여러분들에게 달려있습니다.

 

 

 

5000여명의 노동자들이 나무에 리본을 단 이유
고 박종태 열사 투쟁 승리 결의대회... "고인 유언처럼 악착같이 싸우자"
오마이뉴스 09.05.09 20:54 ㅣ최종 업데이트 09.05.09 21:32  장재완 (jjang153)  
 

대전 대덕구 읍내동 대한통운 앞 삼거리가 검은 옷에 검은 리본을 단 5000여명의 노동자들로 가득 메워졌다.

이들은 대한통운으로부터 계약해지 된 78명의 택배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을 이끌다가 지난 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 고 박종태씨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노동자들.

'노동기본권 보장, 비정규직 철폐, 노동탄압 중단, 운송료 삭감 중단, 해고자 원직복직, 고 박종태 열사 대책위원회'는 9일 오후 대전 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 앞에서 '박종태 열사 투쟁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지난 6일 1000여명이 모여 제1차 투쟁결의대회를 개최한 화물연대를 비롯한 노동계는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등 제 진보진영 전체가 참여하는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이날 첫 투쟁결의대회를 마련한 것.

 

대한통운 정문을 가로막고 대형 무대가 설치됐고, 5000여명의 노동자들은 읍내삼거리 도로 전체를 점거한 채 대오를 갖춰 자리했다. 이들은 '근조'라고 쓰인 검은색 리본을 가슴에 달았고 '박종태를 살려내라', '대한통운 박살내자'라고 쓰인 손 피켓을 들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임성규 민주노총위원장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심상정 전 진보신당 공동대표, 이수호 민주노총 최고위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등 진보진영 주요인사들은 물론이고 각 지역별 민주노총 간부와 조합원들도 참석했다.

고인에 대한 묵념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시작된 이날 대회는 경과보고와 대회사, 문예공연, 추모사, 유족인사, 투쟁사, 상징의식, 거리행진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대회사에 나선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박종태 열사는 결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뒷걸음질 치면서 거기에 깔려 죽은 것"이라며 "지금도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 수레바퀴에 손이 잘리고 발이 잘리고 목숨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 이 땅은 모든 진보세력들이 지난 5월 1일 노동자대회를 기점으로 하나가 되어 총력투쟁에 나서기로 결의했다"면서 "노동자를 탄압하는 이명박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그리고 대한통운과 금호그룹을 심판하기 위해 힘차게 투쟁하자"고 말했다.

 

임 위원장의 뒤를 이어 추모사에 나선 이는 정영신씨. 그녀는 용산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고 이상림씨의 며느리다. 검은 상복을 입고 무대에 오른 그녀는 "박종태 열사의 소식을 듣고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면서 "왜 힘없는 철거민과 노동자들이 희생을 당해야 하는지, 원망스럽고 한스럽다"고 말했다.

"살려고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을 죽인 이명박 정권, 일하고 싶어서 싸워야 했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은 그들은 사죄해야 한다. 용산참사가 110일이나 지났지만 저희 유가족들 지치지 않았다. 여러분들도 지치지 않고 싸워서 반드시 고임의 염원을 이루어 달라."

 

정씨를 이어 박종태 열사의 미망인인 하수진씨가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인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하씨는 "여보, 오랜만에 불러 보네"로 시작된 편지에서 "아직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지만, 걱정하지마, 잘 견디고 있다"면서 "당신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당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세상을 이루기 위해 작은 힘이지만 보태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씨는 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지 말라"면서 "고인의 유언대로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대접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하씨가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참가자들은 일제히 눈시울을 붉히며 고인을 추모했다.

 

 

투쟁사에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심상정 전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나섰다. 먼저 강 대표는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자본가들,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경찰이 또 다시 한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면서 "돈만 보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이명박 정권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심상정 전 대표는 "박종태 열사의 죽음은 노동자 대우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설움을 대변한 죽음이었다"면서 "7살과 10살 자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눈을 감아야 했던 젊은 노동자의 죽음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결의의 시간을 통해 ▲ 노동기본권 보장 ▲ 비정규직 철폐 ▲ 노동탄압 중단 ▲ 운송료 삭감 중단 ▲ 집단 해고된 화물연대 대한통운택배 조합원 전원 복직 등을 촉구했다.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는 '상징의식'으로 고인이 목숨은 끊은 인근 야산의 현장과 주변 나무에 노란색 리본을 묶고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노란리본에 "종태야 잘가라", "네 몫까지 싸워서 반드시 승리하마" 등의 문구를 적어 놓았다.

상징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일부 참가자들과 경찰이 몸싸움을 벌이면서 부상자가 생기기도 했다. 또한 대한통운 건물의 현관과 유리창이 파손되기도 했으나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 '박종태 열사 투쟁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마친 5000여 노동자들이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박종태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200여개의 검은 만장을 앞세워 고인이 안치된 대전중앙병원까지 1.7km의 도로를 따라 행진한 뒤 모든 일정을 마감했다.

한편,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날 오전 민주노총 대전본부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오는 16일 같은 장소에서 전국 노동자 1만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규탄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했다. 또한 16일까지 대한통운측의 사죄와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원직복직 처리가 되지 않을 경우, 서울에서 대규모 노동자대회를 개최하는 등 전국적인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출처 : 5000여명의 노동자들이 나무에 리본을 단 이유 - 오마이뉴스
 

 

  
▲ '박종태 열사 투쟁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마치고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는 참가자들. 
ⓒ 오마이뉴스 장재완  박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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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Levy가 본 사르트르와 좌파

베르나르-앙리 레비(BHL)의 책, <사르트르의 세기>(Le Siècle de Sartre (2000))의 한국어 번역본에 대한 고명섭의 서평 마지막 부분만 옮겨온다. "공산주의로 경도된 '후기 사르트르'는 실패다" 라고 책이 말하는 모양인데, 레비든 사르트르든 나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점은 좀 생각해 볼 거리(가치)가 되겠기에 약간만 살펴본다.

레비가 내린 이런 판단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출세작이자 처녀작이라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La Barbarie à visage humain (1977)) 이라는 책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Ce grand cadavre à la renverse (2007)) 라는 책으로 내려올 필요가 있겠다. 뭐 별 거는 아니고, 1977년에는 좌파의 전체주의적 경향을 야만으로 본 모양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에는 사르코지가 아닌 사회당을 지지하니 스스로 좌파를 자처하는 듯하다. 아주 유명하고 활동적인 사람이라지만 좌파적 실천에서든 이론에서든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는고로 나도 별로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워낙에 인구에 회자되니 상식삼아 알아는 본다. 위키 소개상 눈에 띄는 것으로는, 레비가 68년에 입학한 빠리고등사범에서 알튀세르에게서도 배웠고 그 출발은 스피노자와 헤겔이었으며 입학 후 3년만에 획득한 교사자격시험에 8등으로 합격했다니, 천재성은 인정할만 하겠는데 그 후의 통속화(?) 과정이 좀 안타깝다는 느낌이다. 하여튼 관련 글 찌라시들을 밑에 둔다 (둘 다 선호대상이 아니므로 모든 그림은 생략).

(...) 1952년 이후 사르트르는 공산주의 운동의 동반자가 되고 스탈린주의 소련을 옹호하며 마오쩌둥주의자들의 막역한 친구가 된다. 완전한 자유를 주창하고 그것을 실천하던 전기의 ‘실존주의자’ 사르트르가 여기서 자신을 이념과 운동에 구속시키는 존재가 된다. 그런 변신의 바탕을 철학적으로 보여주는 저작이 <변증법적 이성 비판>(1960)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 저작은 후기 사르트르의 사유가 집적된 대표작으로 평가받지만, 지은이는 이 책이야말로 사르트르의 철학적 실패를 보여주는 저작이라고 단언한다. 사르트르가 헤겔이라는 거대한 정신에 맞서 일대 결전을 벌였지만 그 헤겔에게 패배한 뒤 헤겔주의의 동일성·주체성 철학으로 떨어지고 말았고, 그런 패배의 정치적 발현이 교조적 좌익 운동 투신이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전기의 실존주의 자유 투사 사르트르를 사랑하고 후기의 공산주의 동반자 사르트르와 거리를 두려 한다. (고명섭 기자, 사르트르의 ‘허리’에서 시작해 ‘사유’에서 맺다 / <사르트르 평전>베르나르앙리 레비 지음·변광배 옮김/을유문화사·3만5000원, 2009-05-08 오후 09:03:14 ⓒ 한겨레)

 

"1977년, 처녀작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으로 교조적인 사회주의를 비판하며 ‘신철학’의 기수로 나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꼭 30년이 지난 2007년,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를 내놓았다.(프로네시스 동시 복간 및 출간) 그 냉소와 독설은 여전하나, 비관주의로 일관하던 화법에는 다소 힘이 들어갔다. “나자빠진 거대한 시체CE GRAND CADAVRE A LA RENVERSE”(원제인 이 말은 1960년 사르트르가 폴 니장의 소설 『아덴 아라비』의 서문에서 알제리 전쟁이 끝난 후 암울했던 시기 좌파를 표현한 것)로 은유한 좌파를 자처하며, “일어나 다시 걸을 것”을 주문하는 그의 목소리는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 사르코지와의 통화에서 출발한 레비의 이 긴급한 호소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2007년 프랑스 대선에서 지지를 호소한 사르코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왜 좌파 후보(세골렌 루아얄)에게 투표를 했는지에 대한 레비의 변이자, 사르코지 내각으로 투항한 구좌파, 선거에서 패배한 중도좌파, 무기력하거나 무책임한 극좌파에게 던지는 청원서이다. 좌파의 몰락을 직시하고 좌파의 희망을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 “자유와 인권”을 최상위 가치로 여기며 “혁명은 과연 바람직한가”를 되묻고(제2부)[그럼에도 나는 좌파다, 변광배 (옮긴이), 웅진, 2008], “나는 책임 있는 사회주의자가 좋은 자유주의와 나쁜 자유주의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창조적인 정치적 텍스트를 양산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하는 레비는,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좌파에 가깝다."

출처: 알라딘 책소개에서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82926

 

 

Bernard-Henri Lévy (né Bernard Levy le 5 novembre 1948, à Béni Saf en Algérie), surnommé BHL, est un intellectuel engagé, écrivain, journaliste, essayiste, metteur en scène de théâtre, cinéaste, homme d'affaires et éditorialiste présent tant sur la scène publique nationale qu'internationale. Après avoir passé plusieurs années au Maroc, sa famille s'installe à Neuilly-sur-Seine en France en 1954. Son père, André, a fondé La Becob, une société d’importation de bois africains qui a été rachetée par le groupe Pinault-Printemps-Redoute en 1997. Après des études au lycée Pasteur de Neuilly-sur-Seine puis deux années préparatoires au lycée Louis-le-Grand,

 

1968) il entre à l’École normale supérieure de la rue d’Ulm où il a comme professeurs Jacques Derrida et Louis Althusser [Les philosophes qui ont formé sa réflexion sont : Hegel, Spinoza, Louis Althusser et Emmanuel Levinas. Il rapporte à propos de Hegel l’« éblouissement » qu’il a éprouvé en découvrant la langue et la pensée hégéliennes en particulier la vision hégélienne de l'histoire. Son professeur à l’École Normale Supérieure, Althusser, l’a amené à apprécier les subtilités de la métaphysique de Spinoza et les liens étroits reliant le théologique au politique.] Il publie un premier article dans la revue Les Temps modernes intitulé "Mexique, nationalisation de l'impérialisme" suite à un séjour au Mexique en 1969. En 1971, il est reçu huitième au concours d’agrégation de philosophie. En septembre de la même année, il écrit dans Combat un long reportage consacré à l'Irlande du Nord ainsi qu'une série d'articles et d'enquêtes sur le monde paysan français dont la thèse rejoint la problématique maoïste et montre comment la lutte des classes s’invite dans les provinces françaises. En 1976, il est l'une des têtes de file du mouvement des « nouveaux philosophes » constitué de philosophes et intellectuels engagés. Depuis, cette dénomination est restée attachée à son œuvre. Il tient un Bloc-notes hebdomadaire dans le magazine français Le Point.

1977) Mais c'est la publication chez Grasset, en mai 1977, de La Barbarie à visage humain qui marque l'émergence du phénomène "BHL". Dans cet essai, Bernard-Henri Lévy analyse aussi bien les effets du fascisme que de la version totalitaire du socialisme d’État pour tenter d’en faire un bilan pour la période contemporaine. La Barbarie à visage humain dénonce la tentation totalitaire inhérente à toute "idéologie progressiste". BHL, à la fois dans la dénonciation du fascisme et du communisme historique, se présente comme le représentant d’une génération venue après la double catastrophe du fascisme et du stalinisme et désireuse de repenser la politique en sortant des schémas totalitaires. Présentant ce livre, BHL déclare alors : « Chacun sait aujourd'hui que le rationalisme a été un des moyens, un des trous d'aiguille par quoi s'est faufilée la tentative totalitaire. Le fascisme n'est pas issu de l'obscurantisme, mais de la lumière. Les hommes de l'ombre, ce sont les résistants... C'est la Gestapo qui brandit la torche. La raison, c'est le totalitarisme. Le totalitarisme, lui, s'est toujours drapé des prestiges de la torche du policier. Voilà la "barbarie à visage humain" qui menace le monde aujourd'hui[2]. » Cet essai déclenche de nombreuses réactions et controverses.

1979) Depuis Le Testament de Dieu, publié en 1979, Bernard-Henri Lévy a puisé les sources de sa philosophie dans les textes de Franz Rosenzweig et Levinas. Sa philosophie s'inscrit dans le combat contre le Mal, la lutte contre le fanatisme et l’antitotalitarisme.

2000) il publie Le Siècle de Sartre aux éditions Grasset
2007) dans son livre sur le Parti Socialiste Ce grand cadavre à la renverse (Grasset), il analyse la tentation anti démocratique de la gauche française.

 

출처: wikipedia.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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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종태]아빠의 뜻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지만, 비통해하거나 슬퍼하지만은 않겠다"

"고인이 남기고 간 뜻이 이뤄질 때까지,

아이들이 아빠의 뜻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날까지 참고 견디겠다" -한수진-


故 박종태 씨 아내 한수진 씨 "고인의 뜻 이뤄질 때까지 참고 견디겠다"

다음은 이날 기자 회견에서 밝힌 한수진 씨의 발언 전문이다.

지금 이 시간까지 우리 아이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몇 시간 후면 내가 만나 얘기해줘야 하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여기 저기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하기도 어렵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왜 다른 아빠와 달리 우리 아빠는 우리랑 안 놀아주냐'며 떼쓰던 아이들에게…. 마침 어제가 어린이날이었지만 내일은 우리 아들 생일이다. 실감이 안 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많은 일들을 하면서 아이들 아빠가 많은 추억을 남기고 가준 것 같아서 고맙다. 작년 아들 생일에는 나에게는 한 번도 안 끓여준 미역국도 끓여줘서, 그나마 추억을 갖고 있게 해줘서 고맙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지만, 비통해하거나 슬퍼하지만은 않겠다. 고인이 남기고 간 뜻이 이뤄질 때까지 참고 견디겠다. 아이들이 아빠의 뜻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날까지….

멀쩡했던 두 아이 아빠를, 단란했던 가정을, 이렇게 만든 금호자본과 그것을 방조한 정부가 조금이라도 인간의 탈을 쓴 사람이라면 하루 빨리 나타나서 사죄해야 한다. 또 다른 열사가 생기기 전에 더 큰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두 다리 뻗고 자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와서 사죄하기를 경고한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는 왜 죽어야 했나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 대접 받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프레시안 기사입력 2009-05-06 오후 4:54:34

 

아들 생일에 손수 미역국을 끓여주던 다정했던 아빠였다. 두 아이와 자신만 남겨두고 떠난 남편에게 아내가 "그래도 추억을 남겨주고 가서 고맙다"고 꾹꾹 울음을 참아가며 얘기할 수 있던 사람이었다. 지난 3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 박종태 씨는 구두 합의를 깨고 일방적으로 78명 택배 기사와의 계약마저 해지한 대한통운과 싸우고 있던 중이었다. 본인은 대한통운 택배 기사도 아닌, 25톤 화물차를 운전하는 노동자였다. "일체의 대화를 회피"하는 대한통운 탓에 "파업 아닌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대한통운 소속 조합원의 갖게 된 절망에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지난 달 30일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는 실종된 지 오래됐고,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고분고분 노예로 살라고 한다. 동지들을 잃을 수 없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 살 딸 아이와 일곱 살 아들 아이를 남겨둔 채였다. 아들의 생일을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지난 2007년 10월, 법으로 보장된 "단체 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분신한 전기공 정해진 씨의 죽음 이후 불과 2년도 못 돼 또 다시 노동자가 노동 3권을 보장받기 위해 목숨을 버린 것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6일 한 목소리로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라며 '고 박종태 열사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함께 싸울 것을 다짐했다. "대한통운으로부터 계약해지된 78명의 원직 복직 등이 이뤄지기 전까지 장례도 치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 회사와 전속 계약을 맺는 택배 기사와 달리 본인은 여러 회사의 물량을 운송하는 25톤 트럭 운전 기사였지만, 박 씨는 지회장으로 대한통운 기사들의 투쟁을 이끌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지난 23일 체포영장이 발부되기도 했던 박 씨는 지난달 30일 한 정당 게시판에 죽음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사라졌다. 박 씨는 이 글에서 "현재 적들은 죽음을 요구하고 있다"며 "투쟁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면 바쳐야 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것.

 

이후 발견된 유서에서 그는 "나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최소한 화물연대가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서 전문] "시대가 노동자에게 죽음을 요구"

다음은 박종태 씨가 남긴 유서의 전문이다.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들이 투쟁의 제단에 제물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동지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동지들을 잃을 수 없었습니다.

저의 육신이 비록 여러분과 함께 있진 않지만, 저의 죽음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줄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 대접 받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큰 나라를 반토막내서 배 부르고 등 따신 놈들, 미국과 극우보수 꼴통들이 이번 참에 아예 지네들 세상으로 바꿔 버리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는 실종된 지 오래됐고,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고분고분 노예로 살라고 합니다.

그 속에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안락만을 위해서 투쟁할 것이 아니라 통 큰 목적을 가지고 한발 한발 전진하기 위해 손을 잡고 힘을 모으는 적극적이고 꾸준한 노력과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의 생존권, 민중의 피폐한 삶은 사상과 정견을 떠나서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 민중은 이론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최소한 화물연대 조직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 힘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깜깜할 겁니다. 어떻게 승리하는지 저는 보지 못할 겁니다. 그것이 아쉽고 억울합니다. 꼭 이렇게 해야, 이런 식의 선택을 해야 되는지, 그래야 한 발짝이라도 전진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속상하고 분합니다.

이름을 거론하자니 너무나 많은 동지들이 떠오릅니다. 저를 이만큼 건강한 간부로 활동가로 있게 해 준 소중한 분들. 저를 믿고 따라 준 형님, 동생, 친구들. 이 의미 있는 투쟁, 힘겨운 투쟁에 끝까지 남아 준 동지들 모두가 저에겐 희망이었습니다.

광주라는 곳도 사랑합니다.

날고 싶어도 날 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행복하고 서로 기대며 부대끼며 살아가길 빕니다. 복잡합니다. 동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면서 그 속에 저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올림.

 

운수노조 등에 따르면 대한통운은 지난 1월 노조와 구두로 수수료를 건당 30원씩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양 측은 2월 시행을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외려 3월 15일 대한통운은 "본사의 방침"이라며 "합의는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노조에 통보했다. 이튿날 노조는 회사에 대한 항의의 일환으로 분류 작업을 거부했다. 김종인 운수노조 위원장은 "택배를 분류하는 것은 계약서 상 택배 기사의 업무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간 관행으로 택배 기사가 별도의 수당 없이 진행해 왔던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회사는 이들의 '항의'에 "근무지 이탈"이라며 "12시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전원 해고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다시 오후 3시 경 "저녁 6시 전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자동 계약 해지됨을 최종 통보한다"는 문자가 조합원들에게 날아 왔다. 또 하루 뒤인 17일, 회사는 내용증명 우편으로 해고 통보서를 보냈다. 화물연대 심동진 사무국장은 "대한통운은 집단 계약해지 이후 노조와 비공식 대화마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초 단 한 차례 노조와 마주 앉아 임금 등 근로조건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대한통운 소속 PD직으로 고용하겠다"고 말했던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심동진 국장은 "대한통운은 PD직이 되면 택배 기사가 산 화물차의 소유 관계나 물량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전혀 설명도 하지 않고 그저 화물연대를 탈퇴해야 대화할 수 있다고만 되풀이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한통운은 화물기사들의 수입과 직결된 운송료 삭감의 선두주자"라는 것이 운수노조 관계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택배 뿐 아니라 컨테이너 운송료도 대한통운이 한진, CJ 등 다른 물류운송 업체보다 가장 먼저 깎아 왔다는 것. 박 씨를 죽음으로 내몬 이번 사태도 대한통운의 이런 경영 전략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노동계의 분석이다.

 

노동계는 또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도 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화물기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정부 정책이 이들을 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초 노동부는 실제 덤프트럭과 레미콘 차주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볼 수 없다며 관련 노조에 시정을 요구했다. 신고필증을 반려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부는 이들 화물 기사들이 자기 차를 가지고 영업을 하는 사람이므로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 주장은 다르다. 회사와 맺는 '화물운송 계약'은 형식적으로만 파트너 관계로 포장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종속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택배 기사의 경우 한 회사와 계약을 맺고 그 회사의 물건만을 나르고 있는 데다, 출근 시간이나 휴가도 자율적이지 않다는 것이 노조 주장이다. 때문에 민주노총은 이런 정부 정책을 놓고 "수 년 동안 합법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음에도 이제와 신고필증 반려 운운하는 것은 건설노조와 운수노조에 대한 탄압 이외에 해석할 길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일 노동절 대회에서 "이들 노조의 신고필증을 반려할 경우 민주노총은 설립신고필증 반납을 통한 특단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었다.

 

여기에 대한통운 택배 기사들의 싸움 과정에 개입한 경찰 등 공권력의 태도도 박 씨가 절망한 이유의 한 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운수노조 위원장은 "경찰은 신고 인원보다 많이 왔다고 집회 참가자를 무조건 연행하고 1인 시위자까지 병력을 동원해 둘러싸는 등 과도한 진압을 일삼았다"고 비판했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이 박 씨의 죽음에 대해 "고인은 거꾸로 가는 역사의 칼날에, 이명박 정부가 휘두르는 민중 탄압의 철퇴에 맞아 목숨을 잃은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임 위원장은 "또 고인은 그런 이명박 정부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 우리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이라며 '총력 투쟁'의 뜻을 밝혔다.

 

박 씨의 아내인 한수진 씨도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지만, 비통해하거나 슬퍼하지만은 않겠다"며 "고인이 남기고 간 뜻이 이뤄질 때까지, 아이들이 아빠의 뜻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날까지 참고 견디겠다"고 말했다. 이날 화물연대는 1000여 명의 간부들이 모인 가운데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오는 9일에는 역시 같은 곳에서 민주노총 등 '대책위' 주최로 집회가 열린다. 매년 5월 18일 즈음에 개최하던 '5.18 정신 계층 전국 노동자대회'도 이번에는 광주가 아닌 대전에서 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화물연대는 총파업까지 검토하고 있다. 김달식 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장은 "아무리 힘없는 화물 노동자라지만 사람을 개처럼 부려먹고 버려서는 안 된다"며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몽둥이가 필요하다면 우리가 몽둥이를 들겠다"고 밝혔다. (여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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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지지자들의 정체성 (부평을의 경우)

[도표 출처] 오마이 김당 기자의 여론분석 기사

 

"(...) <부평신문>이 여론조사 기관 '더 피플'에 의뢰해 지난 4월 17일에서 19일 동안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진보신당 지지자 중 43.8퍼센트는 민주당 홍영표 후보를 지지했고, 12.5퍼센트만이 민주노동당 김응호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출처 : '반MB 승리' 자축만 하기엔 허전한 무엇 - 오마이뉴스 링크


이번 보궐선거 결과 분석물들 중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여기서 진보신당 지지자들의 정체성이 어느정도 느껴지는데, 내게는 과히 긍정적이지는 않다. 여론조사에서 부평을 진보신당 지지자들의 10명 중 1명만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하고, 4명은 홍영표라는 노무현 정부 시절 'FTA 국내대책본부장'을, 나머지 5명은 아마도 기권을 선택했다. 물론 최종 투표에서야 '폭력과 야만의 현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대의에 따라서 비판적 지지로 '구 FTA 국내대책본부장'이든 뭐든 당선 가능한 민주당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다는 우리적 상황논리에 충분히 공감을 하지만, 지지하는 후보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1명만이 '진보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 아니 10명 중 9명은 -좀 과장하여 말하면- 진보든 뭐든 민노당은 무조건 싫다고 표명한 것인데, 여기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밖에는 안 보여진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민주노동당 측에서 울산과 비교하며 서운한 감정을 갖기에는 그동안 지은 죄가 너무 많겠기에(많다니)  참기로 하고(*), 단지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진보신당 지지자들의 정체성이 과연 얼마나 진보적인가 하는 점이다. 같이 진보니까 무조건 대동단결하고, 비슷하게 같은 적을 뒀으니 무조건 우린 친구가 되자는 것이 아니다. 종북이든 패권이든 맘대로 정의하고 맘대로 비판하는 것은 다 좋은데, 그런 감정에 너무 충실하느라 나중에는 미운 놈이 사용하는 것이면 그것이 좌파적 가치든 뭐든 상관없이 무조건 배척하는 사태까지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세부적인 정강지침에서야, -어제 손호철의 말마따나- 한 쪽에서는 30-40년대의 쾌쾌묵은 골수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하고, 다른 쪽에서는 21세기적 첨단의 생동(생태-환경) 사회주의(사민주의)를 하면서 서로 건설적인 비판을 할 수야 있겠지만, 그런 구체적 실천 방향의 차이로 말미암아 좌파의 기본적(근본적) 가치까지도 도매금으로 매도해서는(팔아먹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주적 앞에서 함께 어깨 걸고 싸우는 동지가 되면야 더 없이 좋겠지만, 이런저런 내부 역학도 있으니 이런 과잉의 희망은 버리더라도, 적보다도 내부의 경쟁자를 더 미워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좌파적 가치에 대한 충실성이나 진지성이 결격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진보신당은 전체당원의 60%가 민주노동당과는 무관한 신규 당원이라고 자랑을 하던데,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 60%의 상당 수는 수도권-중산층(최소한 화이트칼라)-먹물(최소한 책 읽는 자)의 축선상에 있을 듯하고, 그들이 갖는 좌파적 신념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 지에 나는 약간 의문이 든다. 아마도, 이런 부실한 신념이 위의 여론조사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면, 신념과는 무관하게 전혀 길들지 않은 천연의 감정에만 충실한 일종의 가족주의자들이 레디앙의 마구잡이 댓글러들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가족주의도 '수도권-중산층-먹물'과 약간은 친족일 것이다).

 

(*) 참고로 나는 두 정당과 조금의 상관도 없는 방관자다. 굳이 선택을 하라면, 대중영합주의와 시대추종주의로 경도되어 이념적 탈색을 선호하는 진보신당 보다는 좌파적 전통과 원칙에 충실한 민주노동당을 나는 지지한다. 피디와 엔엘의 개념 상으로는 이러한 나의 두 정당에 대한 정의가 뒤바뀌는 게 옳겠는데, 여기에는 우리적 민족주의라는 특수인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개념이 약간 혼란스런 꼴이 됐다. 

 

 


 

[내 통제권의 밖에 놓인 내 답변-댓글을 본문으로 옮겨다 둔다. 맥락을 위해 이의-댓글도 함께]

 

글쎄요  2009/05/02    #

'진보성'의 기준이 민노당 지지인 듯 한게 영 그렇네요. 특정 정당의 지지자가 자기 지지정당 후보가 없는 곳에서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이 뭘까요? 1)유사성 2)현실적 가능성입니다. 진보신당 지지자들이 민노당을 자기 지지정당인 진보신당에 좀 더 유사한 성향의 정당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그들은 자기 지지정당이 아닌 정당의 후보에 대해 '현실적 가능성'측면도 따진 겁니다. 유권자로서 말이지요.
두번째, 복수의 진보정당이 있는 상황에서 그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건 '친연관계'가 작용하거나, 혹은 그 차이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원근법'에 의해 내부자가 보는 그 차이는 외부의 관측보다 크게 보입니다. 울산에서 단일화가 논의될 때 민노당 당원게시판이 '진보신당이 진보냐, 진보신당은 조선일보나 다름없다'는 식의 극언까지 날아다니고 결국 그 후폭풍으로 박승흡 대변인이 사퇴해 버린 것은 대충 다 아는 이야깁니다. 두 당의 당원 혹은 의식적인 지지자들이 두 정당의 '유사성'과 '차이'중 무엇에 전자에 더 집중할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울산처럼 당 대 당의 차원에서 의식적 노력이라도 없는 한, 기존 지지자들의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나 경계심리를 쉽게 누그러뜨리기 힘듭니다.

 

술래  2009/05/02   #

1) 님이 지적하신 "현실적 가능성"에 기초한 지지에 대해서는,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적 '비판적 지지'의 망령까지도 기꺼이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최종투표도 아닌 '지지 후보를 묻는 여론조사'에 적용된 이 기준은 너무 지나치거나, -제가 볼 때에는- "좌파적 가치에 대한 충실성과 진지성이 결격된 결과"로 밖에는 안 보이고, 그래서 진보신당 지지자들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입니다.

2) 유사성으로 따진다면야, 두 진보정당의 사이가 민주당이나 딴나라당보다는 훨씬 유사하다는 점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줄로 믿고, 중요한 것은 님께서 "친연관계"라고 표현하신, 이런 저런 이유에서 발생한 '미워하는 감정'의 반 이성적 작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님께서 "지지자들이 두 정당의 '유사성'과 '차이'중 무엇에 더 집중할거라는 보장"이 없다고 하셨을 때, 그것은 유사성으로서의 "좌파적 가치"보다는 '차이의 존중'이라는 미명으로 위장하고는 반 좌파 후보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위의 여론조사의 결과를 다시 설명한 것일텐데, 저는 이런 행태를 "일종의 가족주의"에 함몰된, 객관적 기준을 상실한 전혀 좌파적이지 못한 행동이라는 취지에서 그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문제 삼았던 것입니다. 가족주의라는 틀 속에서는 그 어떤 고상하고 준엄한 외적 가치도 침투하기 힘든 게 우리적 정서일테고, 그 속에서 이뤄지는 판단들이라는 것은 "원근법"에 의한 정확성보다는 맹목적 감성과 끈적한 피의 얽힘으로 인해 객관적 시각을 놓치기가 더 쉬운 것은 아닐까요? (게시판에 걸렸다는 "극언"들에 대해서는, -저는 게시판에는 안 가봤고 주로 레디앙에서 감을 잡곤 하는데- 누가 더 하고 덜한지를 여기서 따지고 싶지는 않고 제 3자들이 더 잘 알 줄로 봅니다.)

3) "진보성"으로 따지자면야, "1930~40년대 식민지반봉건사회에 뿌리를 둔 ‘민족주의적 좌파세력’이 중심이 된" 민주노동당 보다는 인터넷-디지털 시대에 선도적으로 부응하며 "‘21세기형 진보정당’을 추구하는" 진보신당이 훨씬 '진보적'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그 진보성이 좌파적 가치에 대한 충실성과 진지성까지 바로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여기서 다시 '진보와 좌파'라는 지겨운 구분틀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겠는데, 별 신빙성 없을 제 발언을 다시 반복하느니 보다는, "좌우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는 며칠 전에 나온 한겨레 기사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 "언뜻 보기에 좌파와 우파는 단지 방향을 지시하는 것 같고, 진보 보수가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다. 좌우는 고정적인 개념인 데 반해 진보 보수는 상대적이다. 좌우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그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가들의 사상이나 현재 프랑스 좌파의 이념이 크게 다르지 않다." (좌파 우파, 진보 보수라는 덫 / 김제완, 한겨레 2009-04-29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52483.html)
(*) 인용: 손호철, 레디앙, 2009-04-30,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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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noza, selon P.-F.Moreau & R.Misrahi

http://hyperspinoza.caute.lautre.net/spip.php?article1934
Qui sont aujourd’hui les admirateurs de Spinoza ? (Publié le 26 avril 2009)
par Moreau, Pierre-François (Interview de Pierre-François Moreau. Propos recueillis par Catherine Golliau)

 

1/ Spinoza est-il spinoziste ?
Pierre-François Moreau : Tout dépend de la définition que vous donnez de cet adjectif ! Le spinozisme, c’est d’abord la doctrine de Spinoza. Définition rigoureuse, mais limitée parce qu’elle ne peut prendre en compte que les domaines sur lesquels Spinoza s’est exprimé. Une deuxième définition possible est celle du professeur américain Jonathan Israel, qui a écrit « Les Lumières radicales » (Editions Amsterdam, 2006). Pour cet auteur, le mouvement des Lumières s’est développé à partir d’Amsterdam, dès les années 1660, pour se répandre ensuite dans toute l’Europe. Spinoza n’y tient qu’une place modeste mais il en est devenu l’emblème : le « spinozisme » désigne alors cette ébullition d’idées radicales - de même que le surréalisme a été incarné par André Breton sans se limiter à lui. Enfin, le spinozisme peut aussi être compris comme l’application des méthodes de Spinoza à des domaines que lui-même ne connaissait pas, par exemple, la psychanalyse (Lacan s’en est réclamé), la sociologie avec Philippe Zarifian ou l’économie avec Frédéric Lordon.

 

2/ Qui se revendique de Spinoza aujourd’hui ?
Beaucoup de gens. Spinoza fascine pour le discours radical qu’on lui a attribué et qui a suscité de nombreux fantasmes, notamment littéraires. Il est aussi revendiqué par les laïques, par exemple, aujourd’hui en Israël ou dans les pays arabes. Certains théologiens s’en inspirent pour renouveler leur vision de l’écriture. Il attire aussi pour l’attention qu’il porte au corps, ce qui le distingue de beaucoup de penseurs classiques. Mais même chez les spécialistes de la philosophie, les approches sont très différentes. En France, où l’on s’intéresse surtout à l’histoire des systèmes, on l’admire parce que sa philosophie est l’un des systèmes les plus structurés. Aux Etats-Unis, où Descartes est le symbole de la « philosophie continentale », Spinoza apparaît comme l’une des évolutions possibles du cartésianisme. En Italie, peut-être le pays où l’on publie le plus sur lui, on le voit d’abord comme un penseur politique que l’on confronte à des auteurs comme Machiavel, Hobbes ou Marx.

[오늘날 스피노자가 요청되는 상황에 대하여, 프랑스에서는 가장 조직적인 시스템의 철학자로, 미국에서는 대륙철학의 상징인 데카르트철학의 발전적 연장으로, 이탈리아에서는(스피노자에 대해 가장 많은 출판을 하는) 마키아벨리-홉스-맑스와 함께 정치사상가로 스피노자가 취급된다 함.]

 

3/ Quel est le point commun des spinozistes ?
On est toujours spinoziste contre quelqu’un. Le spinozisme est la philosophie de la minorité contre la majorité, la pensée alternative contre la pensée dominante. C’est une philosophie qui revendique la controverse en tant que telle. Dans l’« Ethique », Spinoza réfute l’idéologie finaliste, mais seulement après avoir longuement démontré les raisons positives qui rendent la finalité impossible. Le spinozisme n’est pas une pensée de l’aphorisme, de la formule, mais de la démonstration : si je pose que je ne suis pas d’accord, je donne des raisons fortement articulées.

[<윤리학>에서 스피노자는 목적론적 이념을 거부하는데, 그것은 단순한 선호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 목적론이 불가능한 것으로 돌려질 적극적 이유를 길게 입증한 연후의 거부이다. 스피노자주의는 금언이나 경구에 대한 사상이 아니라, 입증하고 논증하는 사상이다: 즉, 예컨데, 내가 무엇엔가 동의하지 않는 입장을 취한다면, 그 이유를 아주 조목조목 밝히는 사상이라는 말이다.]

 

4/ Le spinozisme est-il de gauche ?
Il est difficile de poser la question en ces termes. Oui, Spinoza est un penseur politique engagé. Le « Traité théologico-politique » est un pamphlet, ce n’est pas un texte abstrait. Mais quelle signification politique peut-il avoir aujourd’hui ? Par la démarche, sa pensée se rapproche de celle de Machiavel ou du Marx de la maturité. Il analyse les institutions et les actes pour eux-mêmes sans jeter sur eux un regard moral. Prenez le cas de la corruption politique : jamais il ne la condamnera comme un vice. Il se demandera si la corruption nuit à la solidité du pouvoir et si elle est nocive pour les citoyens. Il en analysera donc les causes nécessaires et cherchera les moyens efficaces de l’empêcher.

['스피노자주의는 좌파사상인가' 라는 질문에 답: 출발점에서 본다면, 스피노자의 생각은 마키아벨리와 맑스(후기)의 그것들(생각)과 가깝다. 스피노자는 도덕적 시각을 벗어버리고 (정치)기구와 (정치)행위 그 자체를 분석한다. 즉, 예컨데, 만약에 권력의 부패가 사회적 연대를 해치고 시민들에게 해악을 끼친다면, 스피노자는 그렇게 된 필연적 원인들을 분석하고 그것을 방지할 효과적인 수단을 탐색할 것이라는 말이다.]

 

SOURCE : http://www.lepoint.fr/actualites-litterature/2007-07-12/interview-de-pierre-francois-moreau/1038/0/192162

 

 



http://hyperspinoza.caute.lautre.net/spip.php?article1935
"Spinoza et nous", par Robert Misrahi (Publié le 26 avril 2009)

 

Une doctrine libertaire et révolutionnaire. En plein XVIIe siècle, face au calvinisme puritain et au judaïsme orthodoxe, le philosophe d’Amsterdam invente une éthique de la joie de vivre qui reste plus actuelle que jamais par Robert Misrahi (Robert Misrahi est philosophe, auteur de « Spinoza » (Entrelacs, coll. « Sagesses éternelles »), « le Travail de la liberté » (Le Bord de l’Eau, 2008). A paraître : « l’Ombre et le Reflet », photographies de Minot-Gormezano, textes de Robert Misrahi (Skira-Fhmmarwn).)

 

1/ L’éthique humaniste de la joie [생략]
2/ Le pacte social
Avant de décrire ce stade ultime de la joie qu’est la béatitude, nous devons au moins esquisser la politique de Spinoza. Une société démocratique et pacifiée est la condition préalable au déploiement d’une existence personnelle heureuse et d’une sagesse de la joie extrême. C’est pourquoi Spinoza conclut sa morale de l’utile propre par l’analyse du pacte social. Il introduit celle-ci par une réflexion qui devrait impressionner les esprits démunis de notre temps : « L’homme qui est conduit par la raison est plus libre dans la société où il vit selon le décret commun que dans la solitude où il n’obéit qu’à lui-même. » Le pacte, comme accord commun sur les désirs reconnus comme des droits et sur les désirs reconnus comme devant être sacrifiés, permet le passage du droit de nature au droit civil, la loi étant seule garante de la sécurité et de la liberté de tous et de chacun. Sur cette base, Spinoza étudie ailleurs les diverses constitutions possibles et laisse entendre que le gouvernement démocratique est le meilleur des gouvernements. Dans son projet, la souveraineté électorale serait la seule autorité légitime, la terre pourrait être une propriété collective et les citoyens auraient le droit de posséder une arme. Enfin et surtout, « dans une libre République, chacun a toute latitude de penser et de s’exprimer ». On le voit, toutes nos valeurs démocratiques, et notamment la laïcité et la liberté de croyance et d’expression, s’enracinent d’abord chez Spinoza et ensuite seulement chez les philosophes des Lumières. Mais c’est par l’éthique existentielle de la joie que la politique trouve un souffle, une raison d’être et une source d’inspiration. C’est parce qu’ils négligent ce lien fondateur entre l’existentiel et le politique que nos contemporains peinent à construire des politiques qui aient un sens et un avenir.
3/ Une certaine espèce d’éternité [생략]


SOURCE : http://hebdo.nouvelobs.com/hebdo/parution/p2303/dossier/a391526-spinoza_et_nous.html

 

* 각 항목의 번호는 원문의 것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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