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일기 06.10.12

#1. 끄적끄적

 

오늘 블로그에 글을 많이 쓰는군.

뭐, 일상에 변동이 많은 것도 아닌 삶인 주제에 나불거리기는 잘한다. 내 특기.

 

동명이인.  뜨악

순간 내 이름이  네이버 검색 2위로 올라 깜짝 놀라다.

흔한 이름도 아니거늘.쩝.

황진이를 4위로 제치고 금방 10월 모의고사도 해치웠다. 푸하하하 1위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건 왜 일까. 그냥 어딘가에 드러난다는게 싫어서(익명성 너무 좋아!)

아...나도 이름 바꾸고 싶어진다. 삼순이처럼!

순간 이름을 지어주셨던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워지는건 또 뭔가. 쩝.

뜬금없지만, 생각이 나면, 또 써주는게   인.지.상.정 !  쳇

 

 

#2.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앞으로는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죽음'이란 것과 직면해서 나온 눈물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보인 반응은? 놀라셨단다. 내가 울거라곤 생각을 못하셨다나.

 

그렇다. 난 할아버지와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었던 거다.



할아버지는 늘 집에 계시는 걸 좋아했다. 취미는 바둑, 서예, 화단가꾸기. 뭐 이런거.

그래서 늘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 친구분들이 집으로 오셔서 바둑을 두곤 했다.

마치 우리 집이 기원같았는데, 난 그게 늘 싫었다.

왜냐면 그 만큼 우리 엄마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친구분들의 시중을 들어야했으니까.

일찍 시집 온  울 엄니는 고된 시집살이에도 홀시아버지를 모시며 군말없이 살던 착한 며느리였다. 

어렸을 땐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정확해지시는 할아버지의 배꼽시계에 맞춰

우리 엄니는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늘 정성스럽게 차려 상을 내 보냈다. (대단도하시지..)

 

 

지금이나 예전이나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결코 인자한 성품은 아니셨던 것 같다.

늘 다가가기 어렵고, 무서웠다. 커다란 안방에서 "얘야~"를 외치시면

뛰어갔던 어머니의 종종 걸음 수만큼 할아버지와의 거리감이 컸다.

생전에 살아계실 때엔 한번도 할아버지와 겸상을 했던 적이 없었다. 늘 어머니는 상을 두번

차려야했고, 난 어머니와 고모와 함께 두 번째 상에서 기름진 반찬을 구경하며 밥을 먹었다.

 

 

그러던 할아버지와 크게 틀어진 건 자장면 한 그릇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잠깐 어딘가로 외출하신 동안, 점심에 자장면을 시켜먹었는데, 세상에.

할아버지 당신 드실 것과 남동생 것 두 그릇만 시킨게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에 자장면이 비쌌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는데, 설령 그랬더라도

빈 그릇에 덜어라도 줬어야지...(으흑...비굴해.) 그런 것도 없이 난 손가락만 빨았다.

 

다행히 엄마가 곧 들어와서 손가락 빨다가 엄청 울면서 억울해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난 먹을거 가지고 차별하는 사람이 제일 싫더라.

그 순간에도 할아버지는 울음을 뚝 그치라고 나를 혼냈다. (정말 미워~)

어머니도 속상했는지 다음날인가 할아버지 외출하셨을 때 자장면을 시켜줬는데,

난 동생도 같이 먹는게 대단히 맘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그 땐 어려서 할아버지보다 옆에서 좋아라 춘장을 빨던 동생이 더 얄미웠었는데,

엄마가 시켜 준 자장면을 먹을 때 동생에게 단무지는 절대 못 먹게 했던 기억도 난다.ㅋ

 

 

할아버지와 같이 산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고작 3년.

그 전에는 작은 할아버지와 약수터도 함께 다니고, 아양도 떨면서 재잘거리던 산소녀였는데

(하하..사당에서 살던 때...작은 할아버지도 집에 계시는 걸 좋아하셨지. 그런거보면 유전인가?

그래도 작은 할아버지는 내가 참 좋아했다.) 할아버지와 살면서 억압된게 참 많았던 것 같다.

 하다못해 할아버지 친구분께서 용돈으로 주신 돈은 단돈 100원이라도 꼭 허락을 맡고 써야했으니까.

 

 

돌아가실 때에도 집에서 삼일장을 지내느라 어머니가 많이 고생하셨는데,

그 날 밤 꿈에서.   

생전 내겐 웃지도 않던 할아버지가 웃으시면서 내 손목을 잡으며 같이 가자고 말하던

그 순간은 아직도 기억한다. 그 꿈속에서 기괴하게 웃는 할아버지의 배를 그동안 억눌린 만큼 있는 힘껏 발로 찼던 순간도.

이런 말은 그렇지만 사실 얼마나 속 시원했는지..

 

 

앗, 어쩌다가 얘기가 이렇게까지 왔네.

암튼 이런 기억을 갖게 해 주신 분이 내 이름도 지어주셨는데,

이런 사유로 이름 바꾸고 싶다고 동사무소에 쓰면, 불효막심한 년이 되는건가??

 

 

 

 

#3.

뭐, 십년도 넘게 예전에 돌아가신 분 생각해서 뭘 하겠어.

아직도 내 이름이 네이버 검색 1위려나?

어...벌써 내려갔네. 세상 정말 순식간이라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