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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8/26
    진보 블로그. 단상. 정리되지 않은.(10)
    레니
  2. 2004/08/22
    폭주(11)
    레니
  3. 2004/08/21
    하늘을 보는 습관(2)
    레니
  4. 2004/08/21
    덧글(6)
    레니
  5. 2004/08/19
    Rain(4)
    레니
  6. 2004/08/18
    오케, 여기까지(5)
    레니
  7. 2004/08/14
    지금 이 모습을 CEO가 본다면(4)
    레니
  8. 2004/08/14
    만화잡지(8)
    레니
  9. 2004/08/14
    여동생과 할머니(2)
    레니
  10. 2004/08/13
    신입사원연수(5)
    레니

진보 블로그. 단상. 정리되지 않은.

* 진보 블로그가 정식으로 운영된지 벌써 한 달이 넘었네. 와. 시간 빠르다.

 

* 블로그가 점점 싸이처럼 되는 것 같은 느낌. 오프라인 인맥은 온라인으로, 온라인에서는 새로 인맥이 형성되고.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하지만. 아직 관계가 확장되기에는, 블로그의 수가 너무 적은 걸까. 아니면 블로거의 다양함이 적은 걸까.

 

* 블로그의 2대 주제. 개인화, 네트워크. 블로거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표현하고 싶어하면서 동시에 다른 포스트들과 연결되고 싶어하겠지. 전자는 포스팅, 스킨이겠고, 후자는 피드백 활동과 블로그 탑일꺼야. 블로그 구독은 후자의 행동이지만 성격상 전자와 가깝다고 생각해. 이 둘은 분명 충돌하는 주제가 아니고 상호작용하는 것임이 분명한데, 난 왜 자꾸만 대립한다고 생각되는지 모르겠어.

 

* 다른 포탈 블로그도 그러한지 모르겠는데, 역시나 포스트를 자주 쓰는 블로거들은 따로 있는 것 같애. 블로그 만들어 놓고 아직 한 개의 포스트를 쓰지 않은 블로거도 있고. 아무래도 포스트에 대한 피드백이 좀 더 가열차게 포스팅하게 하는 동력 중에 하나가 되는 것 같아. 다른 이의 포스트에 좀 더 쉽게,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은데. 현재 블로그 탑으론 아무래도 좀 부족하지.

 

* 쓰다 보니 든 생각. 이 포스트를 등록하고 나서, 다른 사람이 이걸 본 후, 내가 쓴 글에 가로줄 쫙쫙 긋고 자기 생각을 밑에 덧붙인다면, 별로 기분 안 나쁠 것 같아. 오히려 시원할지도. 특정 포스트를 위키처럼 쓸 수 있도록 하는 옵션도 재미있지 않을까? 만들기는 좀 어려울 것 같긴 해. 물론 가로줄 그어놓고 "즐" 한 마디 써 놓으면 후회되겠지만. 후훗. 그 점에 있어서는 블로거들을 믿는 수밖에.

 

* "와 끝났다"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잠깐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시작인 것 같아. 가능성을 일단 믿어보고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나아갈 수밖에. 언젠가 제대로 후회할 날이 올 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않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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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

문제의 시작은 예상치 못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였다.

 

천성산 살리기 선전전에 갔다가 옆에 있는 교보문고를 들렸다.

전에 국어교사를 하는 후배를 만났다가

보르헤스 단편집을 들고 있길래 재미있냐고 물어보니

재미있다고 하면서 같이 추천해 준 작가가 마르케스였다.

이 얘기가 떠올라 마르케스의 소설을 찾아보니

"외국소설" 코너에 몇 개가 검색되더라.

이 중 "칠레의 모든 기록"을 사기로 마음먹고 탐험을 떠났다.

성격상 일단 혼자 다 뒤져본다음 정 못찾을 것 같으면 점원에게 물어보는 편이라

"외국소설"의 전 서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교보문고의 교묘한 상술에 놀아난 건지

"외국소설" 코너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일본소설".

눈길을 주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그만 에쿠니 가오리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하나씩 집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비극의 서막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난 일본 소설은 웬만해서 두 권 연속으로 읽지 않는데,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어서 습관처럼 그렇게 한다.

일본 소설을 두 권 샀으니 마르케스 이외의 책을 한 권 사야 한다.

이런 강박관념에 싸여 보르헤스를 하나 더 샀다.

(아직 마르케스는 못 찾은 상태. 이미 본말이 전도된지 오래다.)

 

대충 마음의 평정을 찾고 마르케스를 뒤지는데,

이건 신의 장난, 또는 악마의 장난이라고 할까.

"눈먼 자들의 도시"가 하필 검색 중에 발견되고 말았다.

이 대목에서는 조금 심각하게 갈등이 되더군.

1-2분 정도 그 자리에 서서 생각해 보았다. 이걸 사도 되는지 아닌지.

역시나 생각을 오래하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속삭인다.

"이봐, 니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앉아있지? 단순하게 생각하라구."

순간적으로 책을 빼 들고 말았다. 이번에도 악마의 승리. 넌 정말 대단해.

 

결국 찾던 마르케스도 사고. 도합 5권의 "소설"을 한 번의 구매를 통해 얻었다.

아아 사회과학서적이여 당분간 안녕.

가을 맞을 준비는 다 끝났군.

 

난 교보문고 자본의 교묘한 상술에 놀아난걸까.

그냥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했다고 생각하는게 맘 편하겠지.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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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는 습관

 


 

 



♪ Pink Floyd - Goodbye Blue Sky ♪



살면서 장래희망은 수차례 바뀌는 것이긴 하지만

내 기억에 가장 처음 구체적으로 가졌던 장래희망은

천문학자였다.

어린 시절, "뉴턴"이라는 과학잡지를 몇 권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잡지에 실린 우주에 관한 그림/사진들이

어린 마음에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었나 보다.

아름다운 우주를 실제로 보고 싶어

부모님에게 천체망원경을 사달라고 수차례 조르기도 했지만

당시 부족한 예산 덕분에 지금까지 천체망원경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을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달랬었다.

언제나 서울시 외곽의 한창 개발중인 곳에만 살아서 그런지

밤엔 불빛이 거의 없었고 별도 잘 보였다.

초등학교 때, "등화관제훈련"이란 걸 가끔 했었는데,

적(북한이겠지)의 폭격에 대비하여 모든 가정의 불을 끄고

쥐죽은 듯이 한 시간 가량을 버티는 민방위 훈련의 일종이었다.

훈련 시간 중에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지상은 암흑 천지인데에 비해 별들은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은하수"라는 존재를 직접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고

어쩌면 마지막일런지도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입시 경쟁에 뛰어들면서

하늘은 더 이상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입시 지옥을 빠져나와 대학에 들어와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땅 위에는 관심을 가져야 할 존재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것만으로 충분했었다.

단 한 번

매우 지쳐있을때 방에 누워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그 행복은 금새 잊혀졌다.

 

다시 하늘을 보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은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였다.

땅 위에 더 이상 눈 돌릴 곳이 없어 쳐다본 것이 하늘이었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요즘은 일 년 중 하늘이 가장 아름다운 때인 것 같다.

무수히 많은 나의 습관 중 하늘을 보는 습관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몇 안되는 습관 중 하나이다.

가끔 하늘을 쳐다보며 멍하게 있을 때면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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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덧글에 대한 생각.

 

개인적으로 덧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블로그 기획을 하면서도 덧글의 영향력을 어떻게든 줄여볼라고

아둥바둥했던 기억이 나는데

역시나 트랙백에 비해 덧글이 더욱 활발하게 달리고 있죠.

 

블로그가 커뮤니케이션 방식 중 하나인 것처럼

덧글 역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미 게시판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어떤 글에 대해 짧은 의견을 제시하는 용도로 기획이 된 거겠죠.

 

블로그에서도 덧글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또 다른 포스트의 성격을 지닌 트랙백에 비해

덧글은 특정 포스트에 종속되는 것이므로

독립적인 자기완결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의 공간이 아닌 곳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원활한 피드백을 기대하기도 힘들죠.

 

제가 쓴 포스트 중 몇몇에 제가 스스로 덧글을 달면서

"바보같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미 많은 블로거들이 자신의 글에 스스로 덧글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굳이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비난/비하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그 표현은 순전히 저에게 국한된 것으로

제가 가진 영역을 벗어나서까지 그런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전 스스로 덧글을 달면서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단 느낌을 받았는데,

일단 덧글이기에 포스트로 쓰면 좀 더 명확하게 쓸 수 있을 것을

500 바이트의 압박 속에서 썼다 지웠다 하는 것이 일단 마음에 안 들었고,

특정인의 덧글에 답하는 내용의 덧글을 쓰면서

과연 그 사람이 이 덧글을 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생기는 거죠.

다른 블로거의 블로그에 덧글을 달면

저의 경우 그 사실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일방적으로 내뱉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취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간 이 사람이 내 블로그를 다시 방문해서

내가 쓴 덧글을 읽어줄꺼야"...하는 막연하면서도 일방적인 기대.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소통의 의지만큼이나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되기에

그런 기대가 싫었던 거에요.

 

이건 부차적인 이유지만, 덧글에 붙는 점수가 부담스럽기도 했었고;;;

 

별 거 아닌 내용을 장황하고 구차하게 쓴 느낌이 없지않아 있지만

제가 붙인 "바보같다"는 단어가 위험스러워 보여서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놨습니다.

 

요즘 특히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리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의 가능성이 크다고 해도

저에게 있어 가장 효과적이면서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직접적인 대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2인 또는 3인의.

말하는 이의 얼굴을 보지 않고 내 의견을 제시하는 건

언제나 불안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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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누군가가 "레니는 어떤 계절을 좋아하죠?"라고 물어본다면

(이런 질문을 받은 기억은 한 번도 없지만)

"여름, 비오는 밤요"라고 대답할 듯 하다.

(당연히 이런 대답을 한 기억도 없지)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계절의 모든 것을 다 좋아할 수는 없잖아.

 

비오는 여름날 밤이라

그냥 자기에는 좀 아깝다.



♪ Cowboy Bebop OST - Rain ♪



I don't feel a thing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and I stopped remembering
그리고 난 기억하는 것조차 멈췄지.
The days are just like moments turned to hours
순간 같은 날들은 시간으로 변해갔지.

Mother used to say
어머니는 말하곤 했지.
if you want, you'll find a way
네가 바란다면, 너의 길을 발견할거라고.
Bet mother never danced through fire shower
하지만 어머니는 퍼붓는 총탄 속에서 춤춰보진 않았겠지.

Walk in the rain, in the rain, in the rain
빗속을 걷는다, 빗속을, 빗속을.
I walk in the rain, in the rain
난 빗속을 걷고 있어. 빗속을.
Is it right or is it wrong
그것이 옳은가? 아니면 틀린가?
and is it here that I belong
그리고, 내가 속한 곳이 여기일까.


I don't hear a sound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
Silent faces in the ground
침묵이 땅에 깔리고
The quiet screams, but I refused to listen
조용한 비명, 하지만 난 듣길 거부했지.


If there is a hell
만일 지옥이 있다면
I'm sure this is how it smells
난 이것이 그 냄새라고 확신해.
Wish this were a dream, but no, it isn't
이것이 꿈이길 소원하지만, 아냐, 그건 아냐.


Walk in the rain, in the rain, in the rain
I walk in the rain, in the rain
Am I right or am I wrong
and is it here that I belong


Walk in the rain, in the rain, in the rain
I walk in the rain, in the rain
Why do I feel so alone
왜 나는 이렇게 외로움을 느끼는 걸까.
For some reason I think of home
그건 내가 돌아갈 집을 생각하기 때문일거야.

 

 - 출처 : 네이버 지식인;;;; 내 멋대로 약간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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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 여기까지

요즘 회사 식당에서 밥에 약을 타는지

도무지 12시를 넘길 수가 없다. 신데렐라도 아니면서;;;

요즘 같이 비오는 여름은 좀 늦게 자 주는 것이 예의일텐데

생각할 시간도 없고 포스트 쓸 여유도 없다.

주말에라도 밤에 비왔으면...

 

"시작이 반이다"

그렇긴 하다. 일을 시작하는게 어렵단 뜻이겠지?

준비기간이란 것도 필요하고 조사도 해야 하고 아직 익숙하지 않아 헤매기도 하고

그러면서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겠지.

그래도 뭔가를 시작하면

일단 재미가 있다.

평소에 생각해 오던 것이든 지하철 타고 가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든

전화선을 타고 매트릭스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오듯

일을 진행하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은

잠 못 자고 주말을 희생하고 가끔은 원없이 스트레스 받더라도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특히, 일을 일단 벌여놓고 보는 피곤한 습관을 가진 나로서는

시작은 반의 반도 안되는 가치밖에 안될 거다.

 



"마무리는 전부다"

난 마무리하는 것이

모든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시작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이어진다면

지친다. 지겹기도 하고.

적절한 시기에 가지를 쳐 줄 필요가 있다. 깔끔하게.

그리고 이후에 좀 더 발전된 모습으로 만나서

다시 시작해 보는 거다.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면 좀 곤란하다;;;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발전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한 개인부터 시작하여 소규모의 조직까지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신나게 준비하고 진행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끊고 다시 흩어져 활동하다가

다시 적절한 타이밍에 모여 보다 발전적인 프로젝트를 하는

나선형의 해후.

가장 재미있으면서 지치지 않고 서로 성장해 가는 활동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튼 마무리는 중요하다.

관심도 없는 얘기를 끝도없이 무한 반복하여 떠드는 사람 앞에서

"(미안하지만) 오케, 여기까지", 끊을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어렸을 적 코미디 프로그램 중 쓰리랑(아리랑이었나?) 부부란 코너가 있었는데

(아마 김한국과 김미화가 나왔었던 것 같은데...)

두 사람이 정신없이 떠드는 와중에 코너가 끝날 시간이 되면

국악하던 북치는 아주머니가 마지막에 "마무리 마무리"를 외치고

마무리 동작과 함께 코너가 끝났던 기억이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 그리고 이런 식의 마무리는 약간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그래도 마무리는 중요하다.

프로젝트든 활동이든 관계든 아니면 연애든.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고, 다행히 이번에는 적절한 수준에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나선의 끝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

 

(다시 읽어보니 이 포스트는 산만하기가 서울역에 그지없다.

 역시 회사 식당에서는 밥에 약을 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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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모습을 CEO가 본다면

토요일은 거의 포스트를 쓰는 날이군.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블로그에 로긴해서

지금까지 뭉개고 있다.

 

CEO가 이 모습을 본다면

사장의 마지막 대사를 한다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껄.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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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잡지

jineeya (님을 붙이려니 너무 어색해요)의 "[허브] 잘되기를 부탁해!"에 대한 트랙백입니다.

 

여동생의 영향인지 순정만화를 많이 봅니다.

대부분 단행본으로 구해서 보긴 하는데

그 중 "윙크"라는 만화잡지만은 한 달에 두 번 꼬박꼬박 보고 있죠.

 

 

 

 

(흐흐, "궁"은 안 보는 만화이긴 합니다만...)



윙크에서 "사각사각"을 연재하던(지금은 끝났습니다만) 김나경이란 작가가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타이틀 페이지에 "만화를 당당하게 사서 볼 권리"라는

주제의 캠페인 배너(?)를 요.(하핫 무의미한 링크;;;)

이 캠페인의 주 타격 방향은 만화대여업소와 그 고객들(?) 입니다.

단행본이나 잡지를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만화방에 가거나 / 대여점에서 빌려보거나 / 사서 보는 것인데,

만화를 사서 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경험적으로도 잘 알 수 있죠.

따라서 만화가에게 직접적인 수익(인세)이 돌아가는 구조를 방해하는 요인인

만화대여업소에 대해 직접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운동들이 넷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대표적인 것이 반(Anti)청보법 운동과 함께 반(Anti)대여체제 운동을 하고 있는

"자유의 검은 리본"입니다.


 

 

이 논쟁은 mp3 및 소리바다에 대한 논쟁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지금와서 음반업계는 음반시장의 불황을 얘기하면서

대부분의 책임을 mp3 공유에 돌리고 있습니다.

이 얘기가 너무도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음악적 가치보다 상품적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고려하고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여 음반을 팔아온 음반업계와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스스로 음악의 유통 구조를 허약하게 만들었고

지금 그 결과가 돌아온 것 뿐이죠.

 

그렇다면 만화시장에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음... 저 자신도 대여업소를 통해 만화잡지를 빌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행본으로 산 만화의 대부분은 일본만화입니다.

한국 만화가들의 수익에 전혀 기여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만화대여점이 없어진다해도 저는 윙크를 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신 한국 작가들의 단행본을 구입하게 되겠죠.

그러나 박희정을 제외한 한국 작가의 매력은

제가 좋아하는 몇몇 일본 작가의 매력에 비해 떨어지므로

그 우선순위가 한참 밀릴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결과적으로 못 보는 만화가 많아질 뿐이란 얘기가 되는군요.

 

일본에서는 만화가 종합적인 문화 컨텐츠로 인식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만화가 그러한 힘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음반 시장에서 항상 미국이나 일본의 예를 드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무조건 구입해야만 문화 컨텐츠가 소비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음악보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만화의 매체 특성상

독자층을 현저하게 줄일 것임이 분명합니다.

 

차라리 만화방이나 대여업소와의 빅딜을 통해

적절한 수입분배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어떨까요. (쉽지는 않겠지만)

단행본 값은 나름대로 부담되는 값인데

여유가 있는 사람이 문화 컨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면

이 또한 부당한 일이고,

수입의 많고 적음이 만화사랑의 척도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무조건 사서 봐라. 빌려보는 놈은 도둑놈.

뭐 이렇게 얘기한다면 에잇, 안보면 그만이지. 이렇게 대답할 것 같아서

약간은 자기 변명적으로 포스트를 쓰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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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과 할머니

사슴벌레 님의 "도시락 반찬에 관한 안좋은 추억"에 대한 트랙백입니다.

 

옛날엔 어땠는지, 또는 외국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오빠-여동생이 있는 가족에는

대부분 권력 관계가 전형적입니다.

오빠에게 가족들의 모든 기대와 지원이 전폭적으로 쏟아지고

여동생은 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자기 것을 챙겨야 하는

빈익빈 부익부의 관계.

그래서 그런지 남매 사이가 좋은 가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더군요.

거기에 할머니/할아버지 같이 전통적 가치관을 유지하고 있는 연장자가 있으면

이 관계는 더욱 분명해 집니다.

 

저희 가족 역시 이러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인정하고 동생도 인정하는 바

저와 여동생 간의 관계는 다른 가족들과 많이 틀립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동생하고 매우 친하게 지냈고

(싸웠던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때에도 말이죠.)

신기하게도 대화가 매우 잘 통하여(이건 정말 드문 일이더군요)

아마 제 인생 중 가장 얘기를 많이 나눈 상대가 제 동생일 겁니다.

 

 



권력관계 역시 매우 재미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때 까지는 전형적인 권력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언제나 제 동생은 제가 쓰던 참고서들을 그대로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참고서에 연필로 글씨를 써야 했죠. 나중에 지워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 관계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달라졌습니다.

동생이 엄청난 우등생으로 변신한 것이죠. :)

저도 그렇게 공부를 못한 편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기 때문에 신뢰도가 많이 하락했습니다.

(중학교 땐 고스톱;;;열풍이 불어서 친구 중 집이 비는 일이 있으면

그 집은 하우스;;;가 되어 밤새 음주와 도박을 즐기곤 했죠.

하루는 부모님께 미행을 당하여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후후)

그리하여 저에게 오는 관심과 지원이 동생에게 분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학 이후론 완전히 역전되었죠.

 

나중에 동생과 얘기를 나누다가

동생이 우등생으로 변신하게 된 동기 중 하나로

부모님의 관심을 들더군요.

또 초등학교 때 참고서를 물려받아 쓴 것이

큰 한으로 남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방적인 지원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이후 적절히 분배되었기 때문에

동생과의 관계가 계속 좋을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중학교 이후 적절히 논 것이

아주 잘 한 일 같기도 하군요. :)

 

참 메뚜기 하니까 생각나는데

저희 할머니도 어렸을 적 메뚜기 튀김을 가져와

강제로(!!!) 먹인 일이 있습니다.

사실 먹어보면 고소하고 나쁘지 않은 맛인데

메뚜기의 험악한 인상 덕분에 먹기가 꺼려지는 면이 있죠.

뭐 할머니의 강제로 먹이기 놀이;;;땜에 지금도 많이 싸우긴 하지만

새로운 맛의 세계를 알게된 점도 많아

전 그리 원망스럽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단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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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연수

신입사원연수를 1박 2일간 다녀왔다.

역시나 이놈의 회사는 다른 대기업들에 비해

약간은 세련된 마인드를 가지긴 했다.

소통과 관계에 대해 일종의 문화코드로 명쾌하게 단언한다.

물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고

교육하는 사람들 역시 명확한 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지만.

뭐 진의가 어떻든 해석이야 어떻든 간에

나로서는 모자 뒤집어 쓰고

Red Hot Chili Peppers 요상한 그림의 티를 입고 교육장에 나타나도

별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인생의 가장 무의미한 시간 베스트 5 안에 들어갈 만한 시간이었다.

 

 


 

강의 도중 끄적거린 낙서들. 기념이다.

훗 나의 집중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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