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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8/11
    카피레프트, 그리고 스크랩(1)
    레니
  2. 2004/08/10
    열정
    레니
  3. 2004/08/08
    더워(7)
    레니
  4. 2004/08/07
    기술적인, 너무나 기술적인
    레니
  5. 2004/08/07
    혼잣말
    레니
  6. 2004/08/05
    집단의 이름으로, 전체의 이름으로(11)
    레니
  7. 2004/08/04
    Otherside
    레니
  8. 2004/08/02
    Keep Warm, Burn out the Rich(4)
    레니
  9. 2004/08/01
    체 게바라와 티셔츠
    레니

카피레프트, 그리고 스크랩

pure님의 Copyright? 와

rmlist님의 카피레프트? 에 대한 트랙백입니다.

트랙백을 걸기 전엔 제목이 이렇게 비슷한 줄 몰랐는데...

 

카피레프트는 확실히 나에게 있어 어려운 주제다.

이전에 정보운동관련 세미나라도 할라 치면

항상 카피레프트 부분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의 소유권부터 시작해 상품, 가치, 자본 등

근본적인 개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가

이를 자본론대로 명료하게 분석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논쟁은 언제나 극한 대립의 상태로 마무리되었던 것 같다.

 

지금도 카피레프트의 정확한 의미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단지 나의 사고와 지식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정보는 나눌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는 명제를 긍정하고

나의 저작물에 대해 카피레프트를 붙이는 것.

(뭐 그리 대단한 저작물 따윈 없지만 말이다)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카피레프트의 전부이다.

 

 




그래도 확실히 문제의 소지는 있다.

상업적 의도가 없다고 치더라도

타인의 저작물을 자신의 저작물의 일부로 넣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일부 포탈 블로그에서 제공하는 스크랩 기능을 사용하면

아주 손쉽게 이 일을 할 수 있고,

이 기능을 경멸(!!!)하는 블로거들도 꽤 있는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카피레프트를 표방한다고 해도

나의 저작물을 인용하는 사람이 있다면(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저작물의 출처를(링크라도) 밝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는 개인의 명예욕... 이런 걸 떠나서

하나의 저작물, 저작물의 일부가 인용되었을 때

그것만으로는 쓰여지게 된 맥락을 이해할 수 없고

전체적인 저작물, 또는 저작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의 생각이나 지식이 자신만의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그것을 종합하고 표현하는 것은 개인이고,

그 경계는 개인성만큼이나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즉, 개인의 글을 무단으로 퍼 갔을 때 생기는 불쾌감,

이것은 단지 명예욕의 소산이고 어두운 인간 (이 말은 쓰기 싫은데) 본성 중 하나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포탈 블로그의 스크랩을 진보넷 블로그에는 도입할 예정이 아직 없다.

일단 스크랩이라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블로거도 있으며(나 포함 ;;;)

트랙백이 주는 "링크"라는 확장 가능성을 막을 수 있으며

개인이 쓰는 포스트들의 관계를 무시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단지 무단 스크랩을 불허한다고

카피레프트 정신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유권과 명예욕에 집착하는 치졸한 행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크랩 대신 트랙백을 걸거도록 강제하거나

글을 긁어 복사해 갈 때 출처를 남겨달라고 하는 것이

풍부한 소통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가 되진 않을 것이다.

소통의 방식도 소통과 마찬가지로

어느정도의 공감대와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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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난 열정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그리고 그 열정에 최소한이라도 공감을 할 수 있을 때,

매우 행복하다.

반면에 어떠한 공감도 할 수 없는

그러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되면

매우 불행하다.

 

오늘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고 답답했던 것이

아마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라 생각되는데

그래서 하기 싫고 좀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하려 하는데

왜 그들은 자신들의 열정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고.

 

제길. 차라리 머리를 비우자.

 

 



♪ B.T. - Satelli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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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

덥다. 불쾌지수도 높고.

너무 더워서 그런지 mp3p에 그린데이와 오프스프링을 꽉꽉 채워 다닌다.

 

네트는 광대하고 사람은 종류별로 다양하니

항해하는 동안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겪기도 하지만

명바기 만큼이나 보고만 있어도 짜증이 분출되는 인간을 만나는 불운도 있다.

 

난 후자의 경우

상처 받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자아를 어떻게든 나타내 보려고 악의적인 표현도 서슴치 않는 이가 쓴 글을 보고

나만 상처 받으면 왠지 억울하잖아.

 

그래서 보통의 경우는

...생깐다.

잘 안되면

...곤란하다. ;;;

보통은 한심하다고 생각해 보려고 노력한다.

어쩌겠는가. 그렇게 살겠다는데.

 

다행히도 나에겐 오프스프링이 있는걸.

 

 



♪ The Offspring - Come Out Swing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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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인, 너무나 기술적인

난 개발자라는 일군의 무리 중 하나다.

개발자 무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특히 열정있는 사람과)

종종 기술이 밝은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믿는

기술결정론-내지는 기술우위적태도-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라는 문제는

이들에게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로 작용한다.

 

기술의 가치중립성, 기술의 사회적 사용.

지겹도록 듣던 얘기이고, 공대를 다니다 보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같은 기술을 적용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어떤 목적에서 만들었는가, 어떤 사람들이 사용하는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진보넷 블로그는 블로그가 새로운 소통수단으로 등장한 시기에 비교하면

매우 늦게 준비되었고, 사실 그 전까지 블로그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그 사이에 설치형 블로그를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접했으며

상업 포탈과 여러 회사들은 블로그 서비스를 개시했다.

블로그라는 소통 기술을 받아들인 시점이 너무 늦은 것이다.

 

그래서

이미 늦어버렸고 "서비스"도 다른 블로그들에 비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보넷 블로그를 사용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나?

"서비스"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대체재가 충분하다면

굳이 진보넷 블로그를 사용해야할 이유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면

블로그 기획자들과 개발자들은

멋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진보넷 블로그를 만들었나?

다른 사람들의 속내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훌륭한 "서비스" 따위는 관심없다.

(솔직히 조금은 관심이 있다...;;;)

난 오히려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이유를

소통의 목적을, 그 내용을, 그리고 그 방법을

블로거들과 포스트를 쓰면서 트랙백을 걸면서

확인하고 기획하며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물론 진보넷이 자본이 깔아놓은 인프라를 사용하고

이를 사용하는 이상 검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이 있다고 해서

"북한"과 "핵"이란 단어를 포스트에 넣으면

창문을 깨고 특수요원들이 침투해서 자루에 담아 어디론가 실어가나?

검열의 결과가 현실 세계에서 영향력을 미치려면

이에 대한 헤게모니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이 싸움은 기술적인 것과 별개로 정치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투쟁은 유효하고 유통기한이 없다.

(이것이 정보운동이 일면 수세적으로 보이는 원인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즉, "이미 검열기술은 우리 모든 것을 검열 가능하게 한다. 피할 수 없다."

이런 소리 늘어놓고 있는 시간동안

정보인권, 검열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전선에는

누군가가 기술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고 있다는 말이다.

 

기술적으로까지 훌륭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부족하면

제안하고 같이 기획하여

진보시켜나면 되지 않은가.

하긴,

이미 "이용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훌륭한 "서비스"를 바라는 고객이 되어버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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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술마시고 나면

정리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단지 어지럽기만 하다. 모든 것이.

 

과거는 현재를 만들고

현재는 미래를 결정한다.

 

나의 과거는 나의 것이고

나는 그것에 의해 만들어졌다.

 

어떻게 사고하고 판단할 지는 알겠지만

어떻게 행동할 지는 모르겠는걸.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음을 난 믿고 싶어.

진심으로.




♪ 꽃다지 - 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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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이름으로, 전체의 이름으로

안드로이드님의 "LG 정유 파업에 대한 단상"에 트랙백한 글입니다.

 

와, 진보넷 블로그 외부에서 트랙백이 걸린 건 이게 처음이네요.

블로그에서 포스트 사이의 네트워킹, 말로만 수없이 떠든 것 같은데

실제로 이렇게 트랙백이 걸리고 걸고 하니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안드로이드님의 감정을 불타오르게 한 첫 번째 요인에 대해

전 완전히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요인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동의하고

세 번째 요인에 대해서는 (저는 안그렇지만)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 요인에서 말한 그 "피해"라는 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논리와 철학과 이념을 배제하고 감정적으로 봐도 말이죠.




저는 자본주의적인 노동을 합니다.

매일 8-9시간씩, 일주일간 44-50시간을 말이죠.

누구를 위해서? 당연히 절 위해서죠.

정확하게 얘기하면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 취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돈" 때문입니다.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 전혀 없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볼 때 "저 놈이 나을 위해 일해 주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멍청한 관리자는 없을 겁니다.

회사와 노동자와서 관계는 서로 피해 안 주고 협력하는 관계가 아니라

임금으로 얽힌 계약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죠.

 

국민과 국가 경제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 역시 전혀 없습니다.

매달 임금에서 원천 징수되는 각종 세금을 내고 나면

제가 국가를 위해 하는 일은 다 끝난 겁니다.

 

저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강제노동하는 게 아닌거죠.

 

그래서 파업-즉 노동을 멈추게 되면

회사에 대한 피해, 국민에 대한 피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사회에서 누군가 회전을 멈추게 되면

다른 바퀴에 피해를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계속 돌아가기 위해서

다른 바퀴에게 계속 회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옳은가요?

지하철 파업을 하면 내가 지각하고 불편하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더라도 참고 계속 일하라고

지하철 노동자들에게 말하는 것이 정당한가요?

집단이기주의에 의해 "피해"를 받는 "국민들"은

정작 자신들이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국가 경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마 국가 경제를 위해 모든 국민들이 개미처럼 일해야 한다는

개발독재시대의 생각을 갖고 계신 건 아니겠죠.

파업을 하면 국가 경제에 피해가 물론 갑니다.

"기간산업"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죠.

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계속 노동해야만 한다고 요구할 권리가 있는 건가요?

파업으로 해결되어야만 하는 문제라면

당연히 파업을 통해 풀어야만 하고

그 동안 발생하는 "피해"는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파업을 통해 발생하는 피해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분노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저는 파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적인 손실은

충분히 감수할 용의가 있고 적극 그들의 편에 설 생각이 있습니다.

즉, "국민"의 한 사람인 저한테까지 그들이 파업의 "공공성"을 구차하게

(정말 구차한 일이죠. 왜 자신이 노동을 멈추게 되었는지를 공공적인 차원에서

설명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설득할 필요는 없단 얘깁니다.

 

첫 번째 요인에서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

집단의 이름으로, 전체의 이름으로 합리화시키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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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side

How long how long will I slide
Separate my side I don’t
I don’t believe it’s bad
Slit my throat
It’s all I ever


I heard your voice through a photograph
I thought it up it brought up the past
Once you know you can never go back
I’ve got to take it on the otherside

Centuries are what it meant to me
A cemetery where I marry the sea
Stranger things could never change my mind
I’ve got to take it on the otherside
Take it on the otherside
Take it on
Take it on

 

...

                                   - Red Hot Chili Peppers, 'Otherside'

 

아직 늦지 않았다고,

난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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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p Warm, Burn out the Rich

민족성이 실존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한 사회에 따른 경향성은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를 따르면 한국 사회에는 이상한 평등주의가 존재한다.

누군가 큰 이익을 보면 주변 사람과 나눠야 하고

다 같이 어려운데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 지탄받는다.

어떻게 해석하면 "아주 위험한" "공산주의 사상"(허걱)인데,

뭐 여기까진 좋다고 치자. 최소한 나쁘진 않다.

문제는 이 관점이 국가차원으로 확대될 때 발생한다.

국가 경제가 어려운데 감히 파업을 하다니! 또는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는데 월급 올려달라고 하다니! 또는

게다가 연봉이 6-7천이래, 대우도 국내 최고 수준이래, 하는 일도 별로 없다는데. 등등

그리하여 결론은 저놈들 다 짤라라. 내가 일하겠다. 뭐 이런 식이다.

Burn out the rich! 이건 거의 증오 수준이다.

 



회사에서 공개한 연봉 테이블 및 여타 지원 내역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그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파업하는 노동자가 고액 연봉을 받기 때문이라는 데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고액 연봉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파업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인간들은 존재하지만 말이다)

같은 이유로 대기업 총수, 고위 관료를 증오하진 않지 않은가.

그리하여 세상에는 두 종류의 노동자가 존재하게 된다.

파업해도 되는 노동자, 파업하면 안되는 노동자.

그 기준은? 연봉 3000정도면 되려나?

 

결국 이들에게 있어 파업은 연봉 올리기를 위한 줄다리기이고

이들은 파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정치-경제적인 문제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오늘도 게시판에, 신문 독자 투고란에, 열심히 글을 쓰고 보낸다.

Keep warm, burn out the rich!!!

 

사실 위의 아나키즘적인 이미지가 어떤 맥락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림의 꽃병이 날아가게 될 목적지인 "The Rich"가 누구인지는 알 것 같다.

가난한 자일수록 더욱 착취하는 자들,

부의 독점을 구조적으로 유지하는 자들,

전세계를 자신들이 구상하는 질서로 재편하고자 하는 자들.

바로 그들이 진정 "The Rich"라는 영광의 칭호를 부여받을 자격이 있다.

고작(!!!) 연봉 6-7천 받는 노동자들이 감히...

 

증오와 적의를 동반한 "정의로운" 시민들의 목소리에

저 그림 이미지가 떠올랐다.

뭐 목적없는 분노에 일일히 신경쓸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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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와 티셔츠

neoscrum님의 체 게바라는 너희들의 상품이 아니다! 를 트랙백한 글입니다.

 

이전 회사를 다닐때
전혀 혁명적이진 않지만 혁명적인 사상을 동경하던 형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담배를 피우다가 느닷없이 체 게바라를 아느냐고 묻더군요.
뭐... 안다고... 대답하니까
인터넷에서 게바라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그의 혁명 사상이 %$%!@%$#%#^~ 라고 설명했습니다.
주의깊게 듣지 않아 무슨 말을 했는지 자세히 기억은 못하지만
대충 짐작컨데 그의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정신력 등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았습니다.

 

60년대 전설적인 남미 공산 게릴라로 활동했던 체 게바라였지만,
이젠 MTV의 아무 의미없는 이미지들 중의 하나로,
길거리 티셔츠 판매의 일등 공신으로,
또는 엉뚱한 의미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체 게바라로부터 배우는 경영전략"라는 책도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어딘가에서 출판했을런지도...)

 

의미 따위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이미지만을 차용하고 복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에서
게바라의 이미지는 커트 코베인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이런 식의 이미지 무한 복제는 막을 수도 없고 통제하기도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코르다의 대응은 적절했다고 봅니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식의 싸구려 이미지와 함께 게바라 동지의 삶을 엉뚱하게 해석하는
그래서 결국 위인전의 위인 중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의미 왜곡이라고 봅니다.

 

지나간 혁명가의 이미지를 신주모시듯 조심스레 다룬다고
그의 혁명적 삶이 더욱 가치있어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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