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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05
    어제와 오늘
    루냐
  2. 2007/01/05
    거울 친구(3)
    루냐
  3. 2007/01/05
    충동 수강(6)
    루냐

어제와 오늘

사람들은 모두 자연처럼 조금씩 변화하고 있어서 

하루가 똑같이 굴러가더라도, 어제와 오늘의 나는 똑같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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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나의 거울이 된다.

어제는 그런 거울 같은 친구 Y를 만났다.

 



진지하고 다정하다. 자기의 삶을 사랑하는 것만큼 남의 삶도 사랑하려고 한다. 움직이기 전에 고민하고, Y만의 관심어린 눈빛으로 나를 비춘다. 나를 바라볼 때의 그 또릿또릿한 눈빛 앞에서 무엇이든 '대충'해버릴 수 없다. 대답도 생각도 표정도... Y와 나 사이의 모든 것들을.

 

우리는 아직도 서로가 궁금해서 질문을 던진다.

Y는 어제도 그냥 루냐라는 작은 우주를 느끼려고 질문을 던졌다.

 

"너는 너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해?"

"너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뭐야?"

 

나는 물었고, Y도 나에게 물었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고, 결국 울었다. 상담을 받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몰랐던 내 고민의 지점을 알게 되었고, 겉으론 웃지만 사실은 냉소적인 나 자신이 그대로 드러나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확 까발려지는 그 느낌이 당황스러워 잠시 Y 앞에서 사라지고 싶어졌다. 그래도 사라질 순 없으니 대신 조금 덜 솔직해지려고 했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Y에게 보여졌던 나는 이런이런 아이었는데, 어제는 그런 기존의 이미지에서 갑자기 벗어나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기에 망설여졌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Y에게 망설여서 미안하고,

먼저 말해주고 들어줘서 고마운 마음 가득..

 

그리고...

어제 비로소 실체가 드러난 내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이지러진 모습 그대로 나는 절룩거리며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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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 수강

우공의 엔꾸엔뜨로에 갔다가

민예총 오프강좌 소식을 보고 충동 수강.

 

1월 9일부터 2월 27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나는 인사동으로 간다.

 

오래간만에 설렌다. 이제서야 새해를 맞이하는 느낌.



<페미니즘과 미학, 그 불온한 동거>

 

살로메, 유디트, 클레오파트라… 수많은 서구 미술가들에게 뛰어난 예술적 영감을 선사했던 이 여성들의 공통점은? 치명적 아름다움으로 남성을 파멸에 빠뜨리는 흡혈귀 같은 존재, 즉 팜므파탈이다. 가녀린 소녀로 묘사되던 살로메가 농염한 성적 매력을 지닌 팜므파탈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이 사회운동으로 대두되면서부터다. 가부장 사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여성들의 외침이 남성들의 사회적 거세공포를 팜므파탈이라는 이미지로 드러내고 벌주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서양의 전통적인 누드화에서 왜 여성들은 하나같이 비스듬히 누워서 거울 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까? 왜 서구의 미술사에서는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또는 피카소와 같은 위대한 천재적인 여성 미술가를 찾아볼 수 없을까? 왜 오늘날 여성 미술가들은 똥이나 피를 이용한 끔찍하고 역겨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일까? 본 강의는 페미니즘 예술을 둘러싼 미학적 문제들과 이에 대한 다양한 해답들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페미니즘과 미학이 과연 행복하게 동거할 수 있을는지에 대해 조망해보고자 한다.

1 근대 미학의 전통을 넘어서 무관심성과 자율성의 미학 비판(1/9)
2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는가?(1/16)
3 보는 쾌락 스펙타클로서의 여성과 응시의 담지자로서의 남성?(1/23)
4 남성적 응시(male gaze)로부터 여성 관객성(female spectatorship)으로의 모색(1/30)
5 포스트페미니즘과 대중문화 재현과 저항(2/6)
6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아서
여성적 숭고(the feminine sublime)와 그로테스크(the grotesque)(2/13)
7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아서 역겨움(the disgust)과 비천함(the abject)(2/20)
8 하나의 페미니즘 미학은 가능한가? 페미니즘과 미학의 변증법(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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